착한 카스페를과 어여쁜 안네를의 이야기 (Geschichte vom braven Kasperl und dem schönen Annerl)
클레멘스 브렌타노(Clemens Brentano, 1778-1842)의 노벨레
| 작가 | 클레멘스 브렌타노(Clemens Brentano) |
|---|---|
| 초판 발행 | 1817 |
| 장르 | 노벨레 |
작품소개
1817년에 발표된 독일 후기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인 클레멘스 브렌타노의 노벨레이다. 같은 해 그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는 가운데 가톨릭으로 개종하는데, 종교적 색채가 짙은 이 작품을 당시 여자 친구 루이제 헨젤의 어머니한테서 들은 슐레지엔의 유아 살해 이야기와 어떤 하사관의 자살 이야기를 토대로 단 4일 만에 완성했다고 전해진다. 형식적으로 볼 때 이 작품은 제목이 보여주듯이 두 개의 내부 이야기가 하나의 커다란 틀이야기와 정교하고 긴밀하게 결합해 있는 틀노벨레다. 내용상으로는 ‘명예’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도 모티프로 쓰이고 있다. 명예의 화신이라 할 수 있는 창기병 하사관 카스페를은 자기를 상대로 도둑질을 한 아버지와 이복형을 우여곡절 끝에 직접 붙잡아 법의 심판을 받게 한다. 그는 자신의 명예가 훼손된 것에 대해 수치심과 절망감을 느껴 어머니의 무덤에서 총으로 자살한다. 카스페를의 약혼녀인 안네를은 그에게 감화되어 역시 명예를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나중에 밝혀지듯이 그로싱어 백작에게 유혹당하고 버림받은 그녀는 사생아를 낳고, 그 아이를 죽여 사형 판결을 받는다. 아버지 이름을 대면 처벌에서 벗어날 수 있음에도 안네를은 침묵하면서 죗값을 치르려 한다. 그녀의 죄와 형벌은 모두 명예를 지키는 것과 관계가 있다. 카스페를과 안네를의 명예는 틀이야기의 두 화자, 즉 카스페를의 외할머니이자 안네를의 대모인 노파와 그녀를 우연히 만나 주인공들의 가련한 사연을 듣게 된 젊은 작가 ‘나’의 관여를 통해 결국 극적으로 회복된다. 단순하고 소박하여 그만큼 근본적인 언어로 쓰인 이 낭만주의 산문의 전형적인 수작은 국내에선 <카스펠르와 알넬르의 이야기>란 제목으로 이영구에 의해 처음 번역되어 1959년에 독일 단편선 <金髮의 엣크벨트>에 수록되었다(대동당).
초판 정보
Brentano, Clemens(1817): Geschichte vom braven Kasperl und dem schönen Annerl. In: Gubitz, Friedrich Wilhelm(ed.): Gaben der Milde. Berlin, 7-81.
번역서지 목록
| 번호 | 개별작품제목 | 번역서명 | 총서명 | 원저자명 | 번역자명 | 발행연도 | 출판사 | 작품수록 페이지 | 저본 번역유형 | 작품 번역유형 | 비고 |
|---|---|---|---|---|---|---|---|---|---|---|---|
| 카스펠르와 알넬르의 이야기 | (獨逸短篇選)金髮의 엣크벨트 | 노오벨클럽 9 | 브랜타아노 | 李榮九 | 1959 | 大東堂 | 115-152 | 편역 | 완역 | ||
| 2 | 카스펠로와 어여쁜 안넬로 | 카스펠로와 어여쁜 안넬로 : 外 6篇 | 브랜타아노 | 文正出版社編輯部 | 1967 | 文正出版社 | 115-152 | 편역 | 완역 | ||
| 카스펠과 안넬의 이야기 | 獨逸短篇文學大系. 1 近代篇 | 클레멘스 브렌타노 | 金光堯 | 1971 | 一志社 | 150-180 | 편역 | 완역 | |||
| 카스페루루와 안네루루 | (컬러版)世界短篇文學大系 3 | 世界短篇文學大系 3.浪漫主義文學 | 브렌다노 | 宋永擇 | 1971 | 博文社 | 245-273 | 편역 | 완역 | ||
| 갸륵한 카스펠과 예쁜 아넬의 이야기 | 세계단편문학선 : 獨·佛 篇 .2 | (三省版)世界文學全集 29 | C·브렌타노 | 黃允錫 | 1975 | 三省出版社 | 59-89 | 편역 | 완역 | ||
| 6 | 갸륵한 카스펠과 어여쁜 아넬의 이야기 | 붉은 고양이 外 | 世界短篇文學全集 7 | C·브렌타노 | 역자미상 | 1983 | 瑞林出版社 | 207-242 | 편역 | 완역 | |
| 7 | 갸륵한 가스펠과 예쁜 아넬의 이야기 | 세계단편선 | 삼성판 세계문학전집 32 | C. 브렌타노 | 黃允錫 | 1984 | 삼성출판사 | 322-355 | 편역 | 완역 | |
| 착한 카스페를과 어여쁜 안네를의 이야기 | 붉은 고양이 | 클레멘스 브렌타노 | 이관우 | 2005 | 우물이 있는 집 | 230-280 | 편역 | 완역 | |||
| 9 | 착한 카스페를과 어여쁜 안네를의 이야기 | (독일대표단편문학선) 금발의 에크베르트 | 세계단편문학선집 1 | 클레멘스 브렌타노 | 이관우 | 2013 | 써네스트 | 78-120 | 편역 | 완역 |
번역비평
1. 번역 현황 및 개관
서정시인이자 동화작가이며 극작가이기도 했던 클레멘스 브렌타노는 독일의 후기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이다. 그는 무엇보다 친구이면서 훗날 매제가 된 아힘 폰 아르님과 함께 민요를 수집해 발간한 세 권짜리 민요집 <소년의 경이로운 뿔피리>(Des Knaben Wunderhorn, 1805~1808)로 잘 알려져 있다. 본 번역비평에서 다루고자 하는 <착한 카스페를과 어여쁜 안네를의 이야기>는 브렌타노가 정신적으로 매우 힘든 가운데 가톨릭으로 개종한 1817년에 발표된 ‘틀노벨레’(Rahmennovelle)다. 그는 이 작품을 당시 여자 친구였던 루이제 헨젤(Luise Hensel)의 어머니로부터 들은 슐레지엔에서의 유아 살해 이야기와 어떤 하사관의 자살에 관한 이야기를 예술적으로 변용해 단 4일 만에 완성하였다고 전해진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착한 카스페를과 어여쁜 안네를의 이야기>는 두 개의 ‘내부 이야기’(Binnenhandlung)가 하나의 커다란 ‘틀이야기’(Rahmenhandlung)와 정교하고도 긴밀하게 결합한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내용상으로는 ‘명예’를 주도 모티프로 작품 전반에 걸쳐 짙은 종교적 색채를 띤다.
<착한 카스페를과 어여쁜 안네를의 이야기>의 한국어 번역은 1950년대 말에 처음 등장하였는데, 이영구(1959, 대동당)의 번역이 바로 그것이다. 시기적으로 보면, 이 작품은 우리나라에서 특히 1970년대에 많이 번역되었다. 송영택(1971, 박문사), 김광요(1971, 일지사), 황윤석(1975, 삼성출판사) 등의 번역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와 같은 현상은 한국 출판 역사에서 1960, 70년대 도래했던 세계문학전집 전성기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로부터 시간이 한참 흐르고 2000년대 중반에 접어들어 브렌타노의 낭만주의 노벨레는 이관우(2005, 우물이 있는 집)에 의해 다시 한번 우리말로 옮겨진다. 이 밖에 황윤석(1984, 삼성출판사)과 이관우(2013, 써네스트)의 경우처럼 기존의 번역이 같은 출판사에서 또는 출판사를 바꿔 재출간되었거나 번역자가 정확히 나와 있지 않은 번역본도 두 종이 있다(제목과 본문으로 미뤄 보건대, 하나는 이영구의 번역이고, 다른 하나는 황윤석의 번역임이 거의 분명하다). 요컨대, 이제껏 국내에서 시도된 <착한 카스페를과 어여쁜 안네를의 이야기>의 번역출간을 종합적으로 정리해 보면, 이 짧은 노벨레 소품은 단독으로 출판된 적이 없고, 다양한 소재와 내용의 작품들을 함께 담고 있는 여러 번역 모음집에 수록되었다.
모두 합해 역자가 다섯인 <착한 카스페를과 어여쁜 안네를의 이야기>의 우리말 번역에서 우선 눈에 띄는 흥미로운 점은 독일어 제명 ‘Geschichte vom braven Kasperl und dem schönen Annerl’이 <카스펠르와 알넬르의 이야기>(차례에서와 달리 본문에서는 <용감한 카스펠르와 어여쁜 알넬르의 이야기>로 되어 있다), <카스페루루와 안네루루>, <카스펠과 안넬의 이야기>, <갸륵한 카스펠과 예쁜 아넬의 이야기>, <착한 카스페를과 어여쁜 안네를의 이야기> 등으로 각각 다르게 번역되었다는 점이다. 또한 역자가 이영구로 강력히 추정되나, 표기돼 있지 않은 번역본이 담긴 선집의 표지에서는 <카스펠로와 어여쁜 알넬로>란 제목도 볼 수 있다. 이런 혼란상은 역설적이지만 외국어 이름의 한국어 번역 표기와 관련된 역사성과 더불어 작품의 두 주인공이 지닌 특성을 설명해 주는 독일어 형용사 ‘brav’와 ‘schön’의 적절한 번역 혹은 그것의 (비)의도적 누락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킨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의 본론에서 좀 더 숙고해 보도록 하겠다.
2. 개별 번역 비평
1) 이영구 역의 <카스펠르와 알넬르의 이야기>(1959)
이영구의 번역은 해방 후 비교적 이른 시기에 다른 여섯 개의 단편들과 함께 역시 낭만주의 작가인 루트비히 티크의 금발의 에크베르트 (Der blonde Eckbert)를 표제작으로 하는 번역집에 담겨 출간되었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차례와 본문의 한국어 번역 제목이 서로 같지 않다는 점이다. 즉 각각 <카스펠르와 알넬르의 이야기>와 <용감한 카스펠르와 어여쁜 알넬르의 이야기>인데, 전자는 작품의 독일어 제목에서 형용사인 ‘brav’와 ‘schön’이 우리말로 옮겨지지 않았다. 후자의 경우 ‘schön’을 ‘예쁘다’를 예스럽게 이르는 말 ‘어여쁘다’로 번역한 것은 타당해 보이나, ‘brav’는 불충분하게 번역되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단어는 18세기 독일에서 ‘용감하다, 대담하다’라는 의미뿐 아니라, ‘올바르다’, ‘정직하다’, ‘성실하다’, ‘유능하다’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은 인간의 성격 및 행동 방식에 있어서의 윤리·도덕성 그리고 그의 능력을 뜻하기도 했다.[1] 작품 속에서 카스페를은 무엇보다 명예 의식과 의무감이 지나칠 정도로 강한 고집 센 인물로 등장한다.
이영구의 번역에서는, 번역문에 대한 수용자의 접근성을 높이는 자국화 전략과 관련해 흥미로운 사례가 발견된다. 그는 행복한 동화의 결말로 마무리되는 작품 끝부분에서 엄격한 신념과 가혹한 운명 때문에 스스로 죽음을 선택해야 했던 카스페를과 안네를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는 “Herzog”를 “영감님” 또는 “대감님”으로 번역했는데, 다른 네 번역에서는 “공작(님)”으로 옮겼다. 이영구는 전자가 높은 신분의 사람을 나타내는 데 있어 좀 더 친숙하고 직관적인 표현이라 생각한 듯하다. 그러나 그는 안네를을 파멸로 몰아넣은 귀족인 그로싱어(Grossinger)의 작위 “Graf”는 다른 역자들과 똑같이 “백작”으로 번역해 기이한 괴리감을 불러일으킨다. 그 밖의 자국화 전략으로 이영구는 ‘누구의 말을 사정없이 끊고 자신이 이야기하기 시작하다’라는 뜻의 독일어 관용어 ‘jm. übers Maul fahren’이 쓰인 “daß ihm[Kasperl] […] übers Maul gefahren”(17f.)[2]을 “오금을 박히던 일”(이영구, 128)(“난폭한 말”(황윤석, 70), “내뱉었던 일”(이관우, 247)) 그리고 “oder […] alles ist verloren”(38)을 “그렇잖으면 만사휴의야”(이영구, 144)(“그렇지 않으면 […] 모든 게 끝장이오”(황윤석, 83), “그렇지 않으면 […] 모든 게 끝장나요”(이관우, 268))로 옮기는 등 우리말 관용구나 사자성어를 이용하고 있다.
이영구의 번역에서는 여러 오역과 실수가 발견되는데, 그중에는 줄거리의 올바른 이해를 방해하는 예도 있다. 카스페를은 죽은 후 무덤에 묻히지 못하고, 해부대에 올라야만 한다. 그 이유는 그가 유언에서 언급한 대로 절망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이다.
Es ist ein Befehl an alle Gerichte ergangen, daß nur die Selbstmörder aus Melancholie ehrlich sollen begraben werden, alle aber, die aus Verzweiflung Hand an sich gelegt, sollen auf die Anatomie […].(30)
어떤 재판소에서도 염세 자살을 한 자는 훌륭하게 장사를 지내주지만, 절망으로 자살한 자는 해부에 붙인다는 규칙이 되어 있답니다.(이영구, 138. 밑줄 강조 필자)
우울증에서 온 자살자들만 명예롭게 묻힐 수 있고 절망에서 자살한 사람은 모두 해부를 하라는 명령이 재판소에 내려졌다는 거예요.(황윤석, 77. 밑줄 강조 필자)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자들만이 명예롭게 묻히고, 절망으로 자살한 자들은 모두 해부대로 보내라는 명령이 모든 법원에 내려졌다네.(이관우, 259. 밑줄 강조 필자)
이영구는 “Melancholie”를 ‘세상을 괴롭고 귀찮은 것으로 여겨 비관함’의 뜻을 지닌 “염세”로 번역하는데, 이 단어는 절망의 유의어이다. 절망 때문에 자살했음에도 카스페를에게 명예의 무덤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 이 작품에서 해결되어야 할 중요한 문제인 만큼 “Melancholie”와 “Verzweiflung”의 차이를 명확히 구분해 번역하는 게 꼭 필요하다 하겠다.
송영택의 번역본은 총 10권으로 구성된 박문사 <(컬러판)세계단편문학대계>(1971) 제3권 <낭만주의문학>에 수록돼 있다. 그런데 한국어 번역 제목이 특이하게도 <카스페루루와 안네루루>이다. 이 두 이름은 일견 일본어에서 온 듯한 느낌을 준다. 이에 대해서는 벨기에 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Maurice Maeterlinck, 1862~1949)의 동화극 <파랑새>(L'Oiseau bleu, 1908)에서 중요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 틸틸(Tyltyl)과 미틸(Mytyl)은 우리나라에서는 오랫동안(아니면 여전히?) 치르치르(찌루찌루, 치루치루)와 미치르(미찌루, 미치루)로 알려져 있었는데, 이는 일본식 발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다소 의아한 오류는 무엇보다 마테를링크 원작의 일본어 중역이 초래한 씁쓸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치르치르와 미치르의 경우처럼 카스페루루와 안네루루는 브렌타노 작품의 일본어 번역 제목에 들어 있는 두 주인공 이름의 일본식 발음 ‘カスペルル’와 ‘アンネルル’를 그대로 한국어로 표기한 것이다.
<카스페루루와 안네루루>라는 한국어 번역 제목에 대한 언술과 결부하여 혹시 송영택의 번역이 일본어 번역본을 참고했는지 호기심과 관심이 생긴다. 우선 재미있는 것은 본문에서 “Kasper”(즉 “Kasperl”)는 “카스페루루”가 아닌 “카스펠”로 그리고 “Annerl”은 제목에서와 마찬가지로 “안네루루”로 옮겨졌다. 서로 다른 언어를 번역한 듯한 두 이름은 작품에의 몰입을 방해하는 측면이 있다. 또한 송영택은 우리말로 옮김에 있어 너무도 많은 한자말을 사용하고 있는데, 대표적 예를 들면 “Nachtigallen”(3)을 “작은 야명조(夜鳴鳥)”(송영택, 245)(“꾀꼬리”(이영구, 116), “밤꾀꼬리”(김광요, 150), “나이팅게일”(황윤석, 60))로, 이러한 번역 방식이 역자의 작업 스타일 때문인지, 아니면 많건 적건 간에 일본어판의 영향 때문인지는 무엇보다 그의 번역문과 (먼저 찾아야 할) 해당 일본어 번역문의 면밀한 비교를 통해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3) 김광요 역의 <카스펠과 안넬의 이야기>(1971)
김광요는 브렌타노의 이 노벨레를 번역하여 전체가 3권으로 되어 있는 일지사 <독일단편문학대계>(1971)의 첫 번째 권인 <근대편>에 수록했다. 한글 제명은 <카스펠과 안넬의 이야기>인데, 이영구의 번역 제목 중 하나와 같이 독일어 원제에서 남녀 주인공을 수식하는 두 형용사 ‘brav’와 ‘schön’의 우리말 번역이 누락되었다.
김광요의 번역에서는 크고 작은 오역은 별개로 하더라도 조금은 지나친 자의적 번역이 때때로 눈에 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Die Sterne gehen ewig unbekümmert ihren Weg ― wozu suche ich Erquickung und Labung, und von wem suche ich sie und für wen?(5)
별들은 영원히 걱정하지 않고 자기 길을 간다. 무엇 때문에 나는 청량제와 강심제를 찾느냐? 그리고, 누구로부터 위안물을 구하고, 또 누구를 위하여 그러고 있는가?(김광요, 151-152. 밑줄 강조 필자) 일월성진(日月星辰)은 영원히, 그런 따위의 일에도 아랑곳 없이 자기 궤도를 돌고 있다. 나는 대체 뭣 때문에 위안과 기쁨을 찾고있는 것일까?(송영택, 246-247. 밑줄 강조 필자) 별들도 무관심하게 영원히 자기 궤도를 운행할 뿐인데, 나는 무엇을 위해 활력과 위안을 찾고 있으며, 그것도 누구로부터, 또 누구를 위해 찾고 있단 말인가?(황윤석, 61. 밑줄 강조 필자) 별들은 끝없이 아무 걱정 없이 제 길을 가는데 …… 나는 무엇 때문에 활력과 기쁨을 찾으며, 누구에게서 누구를 위해 그것들을 찾는가?(이관우, 233. 밑줄 강조 필자)
이 노벨레의 구성에 있어 일인칭 화자 ‘나’와 노파는 ‘틀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두 명의 화자이다. 작품 첫머리에서 노파를 우연히 만나게 된 ‘나’는 고령에도 흐트러짐 없이 자기 자신을 오롯이 내보이는 그녀의 굳건함에 깊이 감동한다. 이에 그는 언제까지고 그저 제 갈 길을 가는 별들의 모습을 연상하며 스스로에 관한 생각에 빠진다. 위의 원문에서 “unbekümmert”는 특정 정신 상태 또는 마음의 태도를 나타내고 있고, 네 명의 역자 모두 (단어 선택의 차이는 있지만) 그에 걸맞게 우리말로 옮겼다. 내용적 측면에서 볼 때 대구 관계에 있는 “Erquickung und Labung” 역시 추상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겠는데, 다른 세 역자와 달리 김광요는 그것을 물적 대상(“청량제와 강심제”는 기본적으로 약품에 속한다)으로 번역했다.
또 하나 재미있는 예는 작품 말미에서 찾아볼 수 있다. 혼인 빙자 간음죄가 만천하에 드러난 그로싱어는 독약을 마시고 자살하면서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이 담긴 유서 편지를 ‘나’에게 남겼다. 그는 거기에서 정신적으로 매우 힘든 상태의 안네를을 유혹할 때 썼던 수단에 관해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바로 “gewisse medizinische Mittel, die etwas Magisches haben”(47)이다. 김광요는 이 구절을 “마약 성분이 들어 있는 한 의약품”(김광요, 180)(“어떤 비밀한 효력을 가진 약품”(이영구, 152). “어떤 비밀의 힘을 가진, 약”(송영택, 272), “마적인 힘을 갖고 있는 어떤 의약품”(황윤석, 88f.), “마법적인 효력이 있는 어떤 의약품”(이관우, 279))으로 옮김으로써 과장된 번역의 느낌을 주는 동시에, 독해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방해한다.
4) 황윤석 역의 <갸륵한 카스펠과 예쁜 아넬의 이야기>(1975)
황윤석의 번역본은 독일과 프랑스의 여러 단편이 함께 들어 있는 삼성출판사 <세계단편문학선 II>(1975)에 수록되었으며, 이 번역은 1984년 별다른 수정 없이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삼성판 세계문학전집> 제32권 <세계단편선>에 실려 재출간되었다. 한국어 번역 제목에 있어 역자는 원제의 ‘schön’은 이영구와 비슷하게 ‘예쁘다’로 번역했지만, ‘brav’의 경우 다른 선택을 하였다. 황윤석은 후자를 ‘착하고 장하다’의 뜻을 지닌 ‘갸륵하다’로 옮겼는데, 앞에서 언급한 카스페를의 지극히 크고 지극히 올곧은 인물 유형을 떠올려 보면, 그의 번역이 이영구의 그것보다 더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참고로 일본어 번역 제목 <健氣なカスペルルと美しいアンネルルの物語>에서 남자 주인공의 특성을 규정하는 단어 ‘健氣’는 ‘갸륵함, 기특함’의 의미도 가지고 있다.
황윤석의 번역에서는 비슷한 시기인 1970년대 초에 나온 송영택과 김광요의 번역에서보다는 한자어 단어가 상대적으로 눈에 덜 띈다. 가령 “게다가 무료(無聊)하기도 하고”(송영택, 246)가 “또 지루하시기도 할 테고요”(황윤석, 61)로, “프랑스 군대에 갑자기 철권제재제도(鐵拳制裁制度)가 채용되게 되었다.”(송영택, 251)가 “갑자기 프랑스 군대에 매질을 해도 좋다는 명령이 내렸지요”(황윤석, 65)로, “그의 부채(負債)를 다 갚을 수가 없었소”(김광요, 156)가 “그의 빚을 다 갚을 수가 없었지요”(황윤석, 65)로, “더우기 오늘은 기일(忌日)이니”(김광요, 165)가 “네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인 오늘”(황윤석, 74)로 바뀐 것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요컨대, 황윤석의 번역은 정확도를 잃지 않으면서도 전체적으로 다른 두 번역에 비해 더 쉽고 더 자연스러운 우리말의 모습을 담고 있다 하겠다.
5) 이관우 역의 <착한 카스페를과 어여쁜 안네를의 이야기>(2005)
이관우는 2005년에 <착한 카스페를과 어여쁜 안네를의 이야기>를 번역 출간하였다. 시기적으로 가장 나중에 나온 그의 번역은 표제작 루이제 린저의 <붉은 고양이>(Die rote Katze, 1956)를 비롯해 다양한 작품과 함께 고전주의에서 전후문학까지를 아우르는 독일 대표단편선에 실려 있다. 그리고 2013년 다른 출판사에서 거의 그대로 재출간되었다. 한국어 번역 제목에 관해 얘기하자면, 역자는 독일어 원제의 ‘brav’를 황윤석과 비슷한 맥락에서 ‘착하다’로 옮겼으며, ‘schön’의 경우는 이영구와 동일하게 ‘어여쁘다’를 사용했다.
비교 대상인 다른 번역들에 비해 최근의 번역인 만큼 이관우의 번역은 가독성 면에서 여러모로 장점이 있다. 가로쓰기, 새 맞춤법·표준어에 따른 한글 표기, 이전에 비해 더 많은 구어체적 표현의 사용, 보다 직관적인 이해를 가능케 할 번역 시도 등은 번역문에 대한 일차적 접근의 성공, 바꿔 말하면 번역문이 우리말로 자연스럽게 잘 읽히는 것에 유의미한 도움을 준다.
이관우의 번역에서 한 가지 생각해 볼 점은 일인칭 화자 ‘나’와 그로싱어 백작 사이의 대화에 있어 끝말의 어투에 관한 것이다.
》Lieber Graf《, sagte ich mit Ungestüm, 》Sie müssen mich gleich zum Herzog bringen, gleich auf der Stelle, oder alles ist zu spät, alles ist verloren!《 Er schien verlegen über diesen Antrag und sagte: 》Was fällt Ihnen ein, zu dieser ungewohnten Stunde? Es ist nicht möglich; kommen Sie zur Parade, da will ich Sie vorstellen.《(38)
나는 격렬하게 말했다. “사랑하는 백작님, 나를 곧장 공작님께 데려다 주세요. 지금 즉시요.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게 너무 늦고, 모든 게 끝장나요!” 그는 이 부탁에 당황한 듯 말했다. “이 밤늦은 시간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 그건 불가능해. 열병식장으로 오면 자네를 소개시켜주겠네.”(이관우, 268)
「백작」하고 나는 거칠게 말했다. 「곧 공작님에게 안내해 주게, 당장 말이야. 그렇지 않으면 모든게 파멸일세」 그는 나의 요구에 당혹하는 빛을 보였다. 「자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이러한 시간에 말이야. 그런 일을 할 수 있나, 열병식 때에 오게. 그때 소개해 줄 테니」(송영택, 267)
「백작,」 나는 성급하게 말했다. 「당신은 나를 곧장 공작한테 데려다 주어야 하오. 지금 당장 말이오.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것은 너무 늦소.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되오!」 그는 이 부탁에 당황한 것같이 보였다. 「이렇게 이른 시각에 무슨 생각이 떠오른 건가? 그것은 불가능하네. 자넨 사열식에 참석하게. 그러면 내가 공작을 만나게 해 주지.」(김광요, 174)
「백작,」나는 성급하게 말했다. 「나를 곧장 공작님께로 안내해 주오. 지금 당장에. 그렇지 않으면 때를 놓쳐 버릴 것이고 그렇게 되면 모든 게 끝장이오!」 이 요구에 그는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요, 이런 별난 시간에? 안되요. 열병식 때 오면 소개해 드리겠소.」(황윤석, 83)
작가인 ‘나’는 필시 시민계급의 사람일 것이고, 그로싱어의 경우 호칭으로 보아 귀족임을 알 수 있다. 이 둘 간에는 분명 신분의 차이가 있으나, 작품 속에서 그들은 서로 ‘친구’이기도 하다(이관우의 번역에서 보면 “할머니께 장미꽃을 드린 제 친구”(이관우, 266), “나는 자네 친구니”(이관우, 270) 등의 구절이 있다). 여기서 인용하지 않은 이영구를 포함해 다른 역자들은 위 원문 중 ‘나’와 그로싱어의 대화를 우리말로 옮김에 있어 전체적으로 동일한 높임 수준의 종결 어미를 사용한다. 이에 반해 이관우의 번역에서는 전자의 발언에만 상대방에 대한 높임을 나타내는 접미사(‘-님’), 종결 어미(‘-세요’), 보조사(‘요’) 등이 쓰인다. 그 결과 ‘나’와 그로싱어의 관계가 동등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3. 평가와 전망
독일 후기 낭만주의 작가 브렌타노가 만들어낸 다양한 문학적 형상물 중에 특히 예술성이 뛰어난 분야는 서정시와 동화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번역되어 소개된 그의 작품 목록을 살펴보면, 그 과거의 현재화 작업에 있어서 이러한 미학적 및 역사적 가치 평가가 충분히 고려되고 반영된 것처럼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본 번역비평이 고찰의 대상으로 삼은 노벨레 <착한 카스페를과 어여쁜 안네를의 이야기>는 그동안 브렌타노의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더 많이 한국어 번역자들의 선택을 받았다. 하지만 사실상 2005년 이래로 이 낭만주의 산문의 전형적인 수작에 대한 새로운 번역 시도는 행해지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과 함께 읽고 있으면 낡았다는 느낌이 들게 만드는 옛 번역본들은 날이 갈수록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갔고, 이제는 거의 잊힌 존재가 되어 버렸다. 도덕적 엄격주의가 바탕이 된 두 주인공 카스페를과 안네를의 자기 파괴적 명예 관념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 계급 간의 갈등과 불화를 그야말로 순진하고 안일하게 조화로운 화해의 장으로 마무리하는 종교적 이데올로기가 오늘의 번역 의욕과 수용 의욕에 어떻게 얼마나 조응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그러나 이 모든 약점에도 불구하고 브렌타노의 <착한 카스페를과 어여쁜 안네를의 이야기>는 단순하고 소박하기 때문에 그만큼 근본적인 언어를 통해 이제는 가식적이고 공허한 소음들에 둘러싸여 있는 추상적인 가치 개념들의 재인식을 도울 예술적 자극제로서의 가능성을 가진다. 앞으로 나올 이 작품의 새로운 번역은 이와 같은 점들도 숙고하고 고민하기를 기대해 본다.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이영구(1959): 카스펠르와 알넬르의 이야기. 대동당.
송영택(1971): 카스페루루와 안네루루. 박문사.
김광요(1971): 카스펠과 안넬의 이야기. 일지사.
황윤석(1975): 갸륵한 카스펠과 예쁜 아넬의 이야기. 삼성출판사.
이관우(2005): 착한 카스페를과 어여쁜 안네를의 이야기. 우물이 있는 집.
- 각주
- ↑ Vgl. Kluge, Gerhard(1979): Clemens Brentano. Geschichte vom braven Kasperl und dem schönen Annerl. Text, Materialien, Kommentar. München/Wien: Carl Hanser Verlag, 52.
- ↑ 독일어 원문은 다음 판본을 이용한다. Brentano, Clemens(1976): Geschichte vom braven Kasperl und dem schönen Annerl. Stuttgart: Reclam. 원문 인용 시 본문에 쪽수를 표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