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Wo warst du, Ad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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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뵐(Heinrich Böll, 1917-1985)의 소설

아담,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Wo warst du, Adam?)
작가하인리히 뵐(Heinrich Böll)
초판 발행1951
장르소설


작품소개

제2차 세계 대전에 6년 동안 참전했던 하인리히 뵐의 전쟁터에서의 경험과 포로 생활 등 자전적 요소가 반영된 반전 소설이다. 1951년에 발표된 이 작품에는 총 9개의 에피소드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 에피소드들은 각각 다른 사람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지만, 모든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파인 할스’라는 인물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어 전쟁의 단면들을 조감해 낸다. 에피소드들은 고질적인 군 내부의 부패나 헛된 죽음 등을 중점적으로 다루면서 무력함과 공허가 만연한 전쟁터를 고발한다. 예를 들면, 적이 건너지 못하게 파괴한 다리를 재건하지만, 다시 적이 진군한다는 소식에 막 완공된 다리를 폭파하는 일화나 상사가 먹을 와인 병들을 챙기느라 신속하게 대피하지 못해 죽음을 맞이하는 군인, 전투 중 고질적인 변비로 인한 복통 때문에 포화를 피하지 못한 군인, 항복하러 가다가 불발탄을 건드려 적의 무차별 공격을 받게 된 군인의 일화가 그렇다. 개인들의 무력한 운명과 무상한 죽음을 통해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는 이 소설은 전쟁의 근본적인 원인은 파고들지 못한 채 ‘개인의 고통스러운 증후들’을 ‘티푸스적인 것’(생텍쥐페리)으로 진단할 뿐이라는 측면에서, 반전 소설로서의 한계를 지적받기도 했다. 뵐은 창세기 3장 9절 ‘아담아,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라는 제목을 테오도르 헤커의 <밤과 낮의 수기>에서 인용했음을 소설의 첫 부분에 밝히고 있는데, 여기서 제목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나는 세계의 대 전쟁터에 가 있었습니다’이다. 결국, 제목을 통해 뵐은 ‘전쟁이 인간에 의해 자행되는 것으로 어떤 알리바이로도 정당화될 수 없음’을 강조하며, ‘휴머니즘의 회복’을 촉구한다. 국내에서는 홍경호에 의해 1965년 처음 번역되었다(여학생사).


초판 정보

Böll, Heinrich(1951): Wo warst du, Adam? Opladen: Verlag Friedrich Middelhauve.


번역서지 목록

번호 개별작품제목 번역서명 총서명 원저자명 번역자명 발행연도 출판사 작품수록 페이지 저본 번역유형 작품 번역유형 비고
아담,그대는 어디에 있었느냐 아담,그대는 어디에 있었느냐 世界名作시리즈 18 H. 뵐 洪京鎬 1965 女學生社 5-212 완역 완역
아담, 너는 어디에 있었나 아담, 너는 어디에 있었나 하인리히 뵐 전희수 1972 人文出版社 9-255 완역 완역
아담, 너는 어디 가 있었나 아담, 너는 어디 가 있었나, 칼들을 가진 男子 하인리히 뵐 郭福祿 1972 三珍社 19-154 편역 완역
4 아담 너는 어디가 있었나 휴가병열차 外 世界文學全集 5 하인리히 뵐 김원경 1975 凱旋門出版社 253-433 편역 완역
5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 '72年度 노오벨文學賞 受賞作品 하인리히 뵐 韓用雨 1976 新文出版社 7-213 완역 완역
아담아, 너는 어디 있었느냐?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아담아, 너는 어디 있었느냐?, 어느 공용 외출의 끝 主友세계문학 4 하인리히 뵐 高委恭 1982 主友 153-291 편역 완역
7 아담아, 너는 어디 있었느냐?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아담아, 너는 어디 있었느냐?, 어느 공용 외출의 끝 主友세계문학 4 하인리히 뵐 고위공 1984 學園社 139-277 편역 완역 초판 1983
8 아담아, 너는 어디 있었느냐?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아담아, 너는 어디 있었느냐? 하인리히 뵐 고위공 1984 學園社 139-? 편역 완역
9 아담아, 너는 어디 있었느냐?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外 (The)Hak Won's world literature, 學園세계문학 23 하인리히 뵐 고위공 1985 學園社 153-291 편역 완역 초판(1982년) 확인불가, 5판(1985)
10 아담아, 너는 어디 있었느냐? 아담아, 너는 어디 있었느냐? 한권의 책 43 하인리히 뵐 고위공 1990 學園社 11-213 완역 완역
11 아담아, 너는 어디 있었느냐? 아담아, 너는 어디 있었느냐? 한권의 책 28 하인리히 뵐 고위공 1994 학원사 11-213 완역 완역 초판 표기이지만 1990년판과 동일
12 아담, 그대는 어디에 있었느냐? 아담, 그대는 어디에 있었느냐? 하인리히 뵐 金保會 2008 보성 7-197 완역 완역
13 아담, 너는 어디에 가 있었나 아담, 너는 어디에 가 있었나 지식을만드는지식 고전선집 641 하인리히 뵐 곽복록 2011 지식을만드는지식 19-268 완역 완역
14 아담, 너는 어디에 가 있었나 아담, 너는 어디에 가 있었나 지식을만드는지식 고전선집 하인리히 뵐 곽복록 2014 지식을만드는지식 19-268 완역 완역 큰글씨책

번역비평

양시내

1. 번역 현황 및 개관

하인리히 뵐이 1951년 발표한 <아담,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1]는 뵐의 작가적 입지를 확고히 해준 폐허 문학의 대표작이다. 총 아홉 개의 장으로 구성된 작품은 단편과 장편이 혼재된 양상을 띤다. 개별 장들은 독립된 이야기들로 단편으로 기능하면서도, 이 개별 장들이 ‘파인할스’라는 군인을 중심으로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독일의 패전이 거의 확실해진 1944년-45년이고, 공간적 배경은 루마니아와 헝가리 전선이다. 뵐이 소설 서두에 인용한 ‘티푸스’ 같은 전쟁[2]은 소설 속에서는 작품 전반을 지배하는 우울과 무기력 그리고 그 종착점인 무의미하고 헛된 죽음으로 발현된다.

<아담>은 뵐의 후기 작품에 비해 연구사적으로 크게 주목받는 작품은 아니지만, 전쟁을 혹독하게 치른 분단국가인 한국의 특수한 상황과 맞물려 적극적으로 수용된 것으로 보인다. 1965년 홍경호의 초역이 출간된 이래 1972년에는 곽복록, 전희수, 원휘의 번역이 나왔고, 1982년에는 고위공이 새로운 번역을 내놓았다. 이후 홍경호, 곽복록, 고위공의 번역이 출판사를 달리하는 등 지속적으로 개정되어 나오다가, 2008년 김보회가 새로운 번역을 내놓아 같은 작품의 번역자에 이름을 올린다. 정리해 보면 이 작품은 지금까지 총 6인, 즉 홍경호, 곽복록, 전희수, 원휘, 고위공, 김보회에 의해 번역되었고, 이 중 홍경호, 고위공, 곽복록의 번역은 여러 출판사를 통해 다양한 버전으로 재차 출간되었다. 현재는 홍경호, 곽복록, 김보회[3]의 번역만이 유통되고 있다.

<아담>의 국내 수용 및 번역사에서 특기할 만한 점도 있다. 우선 1972년 일회적으로 여러 명의 번역자가 새로운 번역을 내놓았음이 확인되는데, 이러한 일시적 붐 현상은 1972년이 하인리히 뵐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해라는 사실로 설명될 수 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현상은 이 작품이 1990년까지 매우 다양한 버전으로 출간되었다는 점이다. 즉 이 작품은 ‘세계문학전집’ 등 시리즈 도서의 일환으로 출판되거나, 작가의 다른 작품들 또는 다른 독일어권 작가의 문학 작품들(예를 들면, 토마스 만의 <마리오와 마술사>, 요셉 로트의 <욥> 등)과 함께 편역 형태의 책으로 출판되다가, 1990년대 이후에는 주로 단독 단행본(또는 하인리히 뵐 작품으로만 구성)으로 출판되고 있는데, 여기서 순수한 교양 목적의 독서에서 조금 더 전문적으로 책을 접하는 독자층의 변화 등 독서 및 출판문화의 변모 양상을 가늠할 수 있다.


2. 개별 번역 비평

<아담>은 전세가 기울어 패전을 목전에 둔 독일 병영에서의 무의미한 죽음을 무미건조하게 다룸으로써 전쟁의 아이러니를 역설하고, 반전 메시지를 전한다. 전쟁을 경험한 동시대 독일의 다른 젊은 작가들처럼 뵐도 미국식 단편소설, 특히 헤밍웨이의 반전문학에 나타난 보고체와 같은 간결 명료한 문체에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이러한 문체적 특징은 언어적 화려함이나 미사여구 대신 담백한 문장이 주를 이루는 이 작품에서도 잘 드러난다. 통사적으로 단순하고, 길이가 짧은 문장들을 병렬적으로 나열하는 뵐의 이러한 문체는 어휘적 또는 통사적 차원에서의 직역적 시도를 통해 가장 잘 드러나고 또 잘 전달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번 번역비평에서는 이러한 문체적 특징을 각 번역자들이 어떻게 한국어로 구현하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번 번역비평에서 주목해서 살펴보는 지점은 소설의 첫 장면(1장, 패색이 짙은 독일 장군의 지치고 무기력한 모습을 묘사함으로써 전쟁 상황과 분위기를 함축적으로 전달)과 마지막 장면(9장, 무사히 귀향했으나 집 문 앞에서 공포탄에 맞아 사망하는 파인할스의 허망한 죽음을 묘사) 그리고 가장 극적인 장면인 동시에 작품의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는 7장의 마지막 장면(관념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아리안의 우월성을 더 이상 확신할 수 없게 되자 폭력적인 광기에 빠지는 필스카르트에 의해 유대인 여성 일로냐가 희생됨)이다.


1) 홍경호 역의 <아담,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1965/1988)

이 작품의 초역자인 홍경호의 번역서는 1965년부터 1988년까지 출판사나 출판 형태를 바꿔가며 여러 차례 출간된다. 1965년에 출간된 초역은 <아담, 그대는 어디에 있었느냐>라는 제목으로 ‘女學生社’를 통해 발표되었고, 1976년에는 <아담, 그대는 어디에 있었느냐 外>로 삼중당에서, 1988년에는 <아담,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외)>로 범우사에서, 1990년에는 <아담,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短篇, 욥 記, 사보이 호텔>로 금성출판사에서 출간된 바 있다. 1988년 처음 출간된 범우사 판은 <아담,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라는 제목으로 여러 차례 개정판이 나왔으며 현재까지 시중에 유통 중이다.

홍경호의 번역은 초역임에도 불구하고, 정확성이나 완성도가 높은 번역이며 이런 이유 때문인지 번역자는 이후 개정판에서 번역을 거의 바꾸지 않는다.


그녀가 노래를 시작했을 때부터 모든 것이 조용해졌다. 바깥도 역시 조용해졌다. 필스카이트는 그녀를 응시했다. 여자가 아름다웠다. 여자, 그는 아직도 여자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의 일생은 바보스러운 순결 속에서 지나갔던 것이다. 그리고 혼자 있을 때에는 가끔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모습에서 아름다움과 위대함과 종족의 완전성을 찾아보려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그 모습이 여기에 있다. 아름다움과 위대성 그리고 종족의 완전성이 그를 완전히 압도하는 그 무엇과 결부되어 여기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바로 신앙이었다.(홍경호 1988, 117. 이하 모든 밑줄 강조는 필자에 의한 것임)
그녀가 노래를 시작했을 때부터 조용해졌다. 필스카이트는 그녀를 주시했다. 그녀는 아름다왔다. 게다가 여인이었다. 그는 한 번도 여인을 가져 본 일이 없었다. 그의 생활은 너무나도 순결한 가운데 지나갔다. 혼자 있을 때면 종종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비춰 보고 그 안에서 아름다움과 위대함과 민족적인 완전성을 찾아 보려했지만 허사였다. 그것은 여기 있었다. 아름다움과 위대함과 민족적인 완전성, 그것들은 그를 완전히 꼼짝 못하게 하는 그 무엇과 결합되어 있었다. 그것은 신앙이었다.(전희수 1972, 182-183)
Seitdem sie angefangen hatte zu singen, war es still geworden, auch draußen, Filskeit starrte sie an: sie war schön - eine Frau - er hatte noch nie eine Frau gehabt - sein Leben war in tödlicher Keuschheit verlaufen - hatte sich, wenn er allein war, oft vor dem Spiegel abgespielt, in dem er vergebens Schönheit und Größe und rassische Vollendung suchte - hier war es: Schönheit und Größe und rassische Vollendung, verbunden mit etwas, das ihn vollkommen lähmte: Glauben.(101) [4]

위 인용문을 통사적 층위에서 전희수의 번역과 홍경호의 번역을 비교해 보면 두 가지 특징이 드러난다. 우선 원문의 명사 ‘eine Frau’를 처리하는 방식이다. 전희수는 ‘게다가 여인이었다’로 번역한 반면, 홍경호는 단순히 ‘여자’로 번역한다. 전희수가 문장에서 명사를 서술어 없이 단독으로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우리말의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면, 홍경호는 독일어의 통사를 그대로 노출한다. 고위공이나 곽복록도 ‘여인이었다’, ‘그녀는 아름다웠고 여자였다’로 주어와 술어를 갖춘 문장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이와는 대조적인 선택이다. 이렇게 명사로만 구성된 원문의 한국어 번역에서 서술어를 첨가하지 않는 번역 태도가 이외 다른 곳에서도 반복되는 것을 보면 이는 홍경호의 일관된 번역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원문의 두 번째 밑줄은 관계절이 포함된 분사구이다. 전희수는 이를 독립된 문장으로 떼어내서 앞 문장에 대한 부연 설명으로 처리한다. 이러한 번역 방식은 의미 손상도 없을 뿐만 아니라, 관계절이 없는 우리 언어의 특징에 부합하는 일반적인 번역 방식이다. 반면 홍경호는 이 부분을 ‘그를 완전히 압도하는 그 무엇과 결부되어’로 번역하여 한 문장을 유지하여 원문의 문장 수를 지킨다.

그렇다고 원문의 통사적 특징을 최대한 살리는 홍경호의 번역 전략이 일관되게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위 인용문의 첫 문장에서 전희수가 ‘조용해졌다’라고 번역한 부분을 홍경호는 ‘모든 것이 조용해졌다’라고 번역한다. 인용문 마지막의 ‘신앙이었다’는 ‘그것은 바로 신앙이었다’라고 번역하여 더 극화하기도 한다. 비근한 예로는 7장의 마지막 문장 “Draußen fing die Metzelei an”도 있다. 다른 번역자들은 이 문장을 “밖에서는/밖에서도/바깥에서는 학살이 시작되고 있었다”라고 번역한 데 반해 홍경호는 “이윽고 밖에서도 학살이 시작되었다”라고 번역, ‘이윽고’라는 접속사를 첨언하여 번역한다(물론 이 첨언은 타 번역자들이 현재 진행형 서술어를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참사의 연속성을 보완하는 효과는 있다). 홍경호는 원문의 형식적 특징을 살리는 번역을 지향하면서도, 독자에게 친절한 번역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으려 했던 것 같다. 즉, 홍경호의 번역은 통사적 층위에서의 직역성은 높지만, 어휘적 층위에서의 직역성은 제한적으로나마 절충하는 양상을 보인다.


2) 곽복록 역의 <아담, 너는 어디에 가 있었나>(1972)

곽복록의 <아담>은 하인리히 뵐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해인 1972년 처음 번역되었는데, 같은 해에만 <아담, 너는 어디가 있었나, 칼들을 가진 남자>(三珍社), <25시, 아담 너는 어디가 있었나>(三珍社), <아담, 어디에 가 있었나: 戰爭이 터졌을 때>(노벨문화사) 등 (최소) 세 가지 버전으로 출판되었다. 이후 1976년에는 <마리오와 마술사, 간텐바인, 아담, 너는 어디가 있었나>(三珍社)라는 편역서로 출간되었다가, 같은 책은 1980년에는 <마리오와 마술사>를 표제로 개정된 바 있다.

2011년부터는 지식을만드는지식, 일명 지만지에서 단독 단행본으로 출간되고 있다. 이 책은 작품 해설뿐만 아니라 (다른 작품과는 달리) 일부 주석을 차용하고 있어 전문성을 선호하는 독서층을 겨냥한다. 지만지에는 저본의 표기와 함께 “이 책은 옮긴이가 <Wo warst du, Adam?>(Ullstein Buch, 1951)을 원전으로 삼아 번역한 <아담, 어디에 가 있었나>(노벨문화사, 1972)를 손질해 새로 낸 것입니다.”라는 설명도 덧붙여져 있다. 이 정보를 바탕으로 지만지 출판본과 1972년 곽복록의 초역을 비교한 결과 상당 부분이 윤문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윤문 과정을 거치면서 1972년 번역본 대비 직역의 정도가 상당 부분 낮아진 것으로 추측하게 하는 지점들이 있지만, 본 번역비평에서는 1972년 초역본과 현재 시중에서 유통되고 있는 지만지 번역본 상 거의 변화가 없는 부분을 주로 검토 대상으로 삼았다.

우선 곽복록은 독자에게 친절한 해설적인 번역을 추구한다.

장군은 자기의 닳아 빠진 군모에 맥은 없어 보였지만 아직은 반듯한 자세로 손을 갔다 댔다.(곽복록 1972, 6)
장군은 낡은 모자에 손을 갖다 댔는데, 그저 손을 들어 보인 것뿐이었다.(홍경호 1965, 10)
장군은 자기의 닳아빠진 군모에 적어도 아직은 반듯한 자세로 손을 갔다 댔다.(전희수 1972, 10)
대장은 손을 다 닳은 모자에 똑바로 갖다 올렸다.(고위공 155)
Der General hielt seine Hand an die verschlissene Mütze, die Hand wenigstens hielt er gerade, […].(7) 

각각의 번역이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문의 주요 인자는 ‘wenigstens’이다. 이 단어의 의미를 홍경호는 ‘그저’로, 전희수는 ‘적어도 아직은’으로 번역하고, 고위공은 아예 단어를 누락시킨다. 반면 곽복록은 ‘맥은 없어 보였지만 아직은’으로 번역하여 ‘wenigstens’가 함의하는 전후 맥락을 보충한다.

이러한 해설적인 특성은 무엇보다 곽복록의 번역이 거듭 출간되면서 강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예를 들면, 다음은 7장에서 극한의 공포스러운 상황에 처한 유대인 일로냐의 내면을 묘사한 부분이다.

수도원을 나왔을 때의 일로너는 정말 불안했었다. 트렁크를 들고 전차 쪽으로 걸어갔을 때, 그리고 젖은 손으로 돈을 움켜쥐고 있었을 때 그녀는 못 견디게 불안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낯설고 추하게 보였다. 그런데 이런 세상에 어린애와 남편을 갖기 위해 되돌아왔던 것이다. 그것은 수도원에서는 찾을 수 없는 일련의 기쁨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전차 쪽으로 걸어가고 있을 때부터는 더 이상 그 기쁨을 발견하기를 바라지도 않았거니와 이 불안 속에 있는 자기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있었다.(곽복록 1972, 187) 
수도원을 나왔을 때의 일로너는 정말 불안했었다. 트렁크를 들고 트럭 쪽으로 걸어갔을 때, 그리고 젖은 손으로 돈을 움켜쥐고 있었을 때 그녀는 못 견디게 불안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낯설고 추하게 보였다. 그런데 이런 세상에 어린애와 남편을 갖기 위해 되돌아왔던 것이다. 그것은 수도원에서는 찾을 수 없는 하나의 기쁨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트럭 쪽으로 걸어가고 있을 때부터는 더 이상 그 기쁨을 발견하기를 바라지도 않았거니와 이 불안 속에 있는 자기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있었다.(곽복록 2011, 177) 
Sie hatte damals große Angst gehabt, als sie aus dem Kloster zurückkam, große Angst, als sie mit dem Koffer zur Straßenbahn ging und mit ihren nassen Fingern das Geld umklammert hielt: diese Welt war ihr fremd und häßlich vorgekommen, in die sie sich zurückgesehnt hatte, um einen Mann und Kinder zu haben - eine Reihe von Freuden, die sie im Kloster nicht finden konnte und die sie jetzt, als sie zur Straßenbahn ging, nicht mehr zu finden hoffte, aber sie schämte sich sehr, schämte sich dieser Angst...(101)


이 장면에서 대략 ‘반 시간’ 내에 죽을 운명에 처한 일로냐는 자신의 죽음을 결정할 필스카이트의 소환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상황에서도 아직 죽음의 공포를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고, 되려 과거 수도원 생활을 떠나 속세로 귀향하던 때 느꼈던 두려움을 상기한다. 해당 부분에서 1972년의 곽복록 초역은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하고 있다. 2011년 지만지에서 출간된 번역본은 언뜻 보면 1972년의 번역과 대동소이한 듯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정적 차이가 확인된다. 2011년 번역본에서는 기존의 ‘전차’가 ‘트럭’으로 바뀐 것인데 원문과 대조하면서 수정했다면 해당 단어를 ‘트럭’으로 대체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렇게 번역함으로써 일로냐가 느끼는 역설적 두려움은 완전히 전도되어 버리고 만다. 다만 이러한 번역 오류는 번역자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편집 과정에서 변경된 것일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 문장 구조가 상대적으로 복잡하고, 맥락상 따라가기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단락을 원문과의 대조 없이 윤문하면서 잘 연결이 되지 않는 이 문장들이 쉽게 이해되도록 하기 위해 원문의 ‘전차’를 (일로냐가 수용소에 타고 온) ‘트럭’으로 변경하고, 당시의 두려움에 대한 일로냐의 반응(수치)을 현재 상황에 대해 느끼는 두려움인 것처럼 바꿈으로써 번역문의 가독성은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주체가 누가 되었든 이러한 과도한 개입은 번역서의 독서에서는 전혀 걸리지 않지만, 중대한 오역임은 부정할 수 없다.

곽복록의 번역은 한국어의 매끄러운 연결을 우선시하고, 장면의 의미나 감정선을 강조, 해설해 주는 등 독자 친화적인 번역인 것은 분명하지만, 이런 식의 번역 전략은 다른 번역과 비교할 때, 원문의 문체적 특징으로부터는 멀어질 수 있는 위험을 지닌다는 점에서 고민거리를 남긴다.


3) 전희수 역의 <아담, 너는 어디에 있었나?>(1972)

곽복록의 번역이 출간된 1972년은 상기한 바와 같이 하인리히 뵐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해이기도 하다. 같은 해 곽복록 이외 두 사람 더 이 작품을 번역한다. 그 번역자 중 한 사람은 元輝인데, 그는 ‘72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작품’이라는 수식과 함께 ‘제문출판사’를 통해 <아담, 너는 어디에 있었는가?>라는 제목의 번역서를 내놓았다. 이 번역서에는 저본이나 작품 제목의 근거이자 뵐의 주제 의식을 함축하고 있는 서두의 인용문도 없고[5], 작품 해설뿐 아니라 번역자의 약력도 누락되어 있어, 번역자 확인도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이 번역은 내용적 정확도가 많이 떨어지기에 논외로 한다.

또 다른 번역자는 전희수이다. 전희수의 번역본은 ‘인문출판사’라는 곳에서 출간되었고, 역시 ‘72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작품’임을 강조하고 있다. 홍경호, 곽복록, 고위공의 번역이 여러 출판사를 통해 반복적으로 출간된 것과 달리 이 번역은 단발성으로 출간된 이후 재출간되지는 않았다. 번역서 마지막 부분 번역자 소개에 의하면 전희수의 약력은 “前 韓國 外國語大學 敎授/現 自由伯林大學 敎授/譯書 ‘카프카와의 對話’ 其他”로 소개되었다.[6] 전희수는 다작한 번역자는 아니지만, 1961년 보르헤르트의 <우리 꼬마 모차르트 Unser kleiner Mozart>를 초역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을 고려할 때 1세대 독문학자에 속할 것으로 추정된다.

1장의 시작 부분을 곽복록의 번역[7]과 비교할 때, 곽복록의 번역이 설명적인 인상을 준다면, 전희수의 번역은 한자어의 사용을 통해 어휘를 축약하고, 구두점이나 연결어를 단순하게 사용하여 전반적으로 간결한 인상을 자아낸다(‘고급 장교들이 서로 빈정거리며 주고 받는 전화 속에서 씨부렸을 아프게 찌르는 비난들을’/‘고급 장교들이 저희들끼리 빈정거리며 주고받는 전화 속에서 내뱉을 아프게 찌르는 비난들을’, ‘분노 같은 말못할 이상한 것’/‘말못할 이상한 분노’, ‘네모꼴로 가로 서 있는 대열의 왼쪽 모퉁이’/‘사각 횡대의 왼쪽 모퉁이’).

전희수 곽복록
먼저 크고 누렇고 쓸쓸한 얼굴이 그들의 옆을 지나갔다. 장군이었다. 장군은 피곤해보였다. 푸른 빛의 누낭(溟囊), 말라리아에 걸린 누런 눈, 실패를 거듭한 사람만이 갖는 시들고도 엷은 입술을 한 그는 재빠른 동작으로 천여 병사들의 옆을 지나갔다. 먼지 덮인 사각형의 횡대(積隊) 오른쪽 모퉁이에서 시작하여 쓸쓸한 표정으로 병사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훑어보고는 활기도 매서움도 잃은 듯 맥이 풀린 채 모퉁이를 돌아갔다. 그리하여 모든 병사들은 그의 가슴에는 금과 은으로 번쩍이는 훈장이 가득 차 있지만, 목에는 훈장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장군의 목에 훈장이 있고 없는 것쯤 그리 대단치 않은 일인줄 알면서도 그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그들은 새삼 놀랐다. 훈장이 없는 이 야위고도 누런 장군의 목은, 패전(敗戰)과 실패한 후퇴와, 고급 장교들이 저희들끼리 빈정거리며 주고받는 전화 속에서 내뱉을 아프게 찌르는 비난들을 짐작할 수 있게 하였고, 이것은 참모 본부 사람들이나 절망적으로 보이는 이 지치고 늙은 사람을 민망스럽게 만들었다.

저녁이면 그는 웃옷을 벗고, 여윈 다리와 말라리아에 결려 수척해진 몸을 침대 가장자리에 걸치고는 브랜디를 마셨다.

그의 얼굴을 쳐다본 九九九명의 병사들은 모두가 비통 · 연민 · 불안 그리고 말 못할 이상한 분노 같은 것을 느꼈다. 그런지 이미 오래였다. 그것은 너무나도 오랫동안 계속하여 장군의 목에 응당 있어야 할 훈장을 못 가지게 한 전쟁에 대한 분노였다. 장군은 자기의 닳아빠진 군모에 적어도 아직은 반듯한 자세로 손을 갔다 댔다.

그는 사각 횡대의 왼쪽 모퉁이에 이르자 힘차게 방향을 바꿔 비어있는 중앙부로 가서 섰다. 그러자 일련의 장교들이 저마다 그러나 정연하게 그의 주위를 둘러쌌다. 그러나 이 하급 장교들은 십자 훈장을 햇빛 속에 번쩍이고 있는데, 훈장이 없는 그를 본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었다.(전희수 9-10)

처음 크고 누런 쓸쓸한 얼굴이 그들의 옆을 지나갔다. 장군(將軍)이었다. 장군은 피곤해 보였다. 푸른 빛의 누낭(溟囊), 말라리아에 걸린 누런 눈, 실패를 거듭한 사람만이 갖는 시들고도 엷은 입술을 한 그는 빠른 동작으로 천여 명 병사들의 옆을 지나갔다. 먼지 덮인 사각형의 횡대(橫隊) 오른쪽 모퉁이에서 시작하여, 쓸쓸한 표정으로 병사들 각자의 얼굴을 훑어보고는 활기도, 매서운 기운도 잃은 듯 맥이 풀린 채 모퉁이를 돌아갔다. 그리하여 병사들 모두는 그의 가슴은 금과 은으로 번쩍이는 훈장으로 가득 채워져 있지만, 목에는 훈장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장군의 목에 훈장이 있고 없고는 그리 대단치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그들은 새삼 놀랐다. 훈장이 없는 이 야위고도 누런 장군의 목은 패전(敗戰)과 실패한 후퇴, 고급 장교들이 저희끼리 빈정거리며 주고받는 전화 속에서 내뱉었을 아프게 찌르는 비난들을 짐작할 수 있게 하였고, 이것은 참모본부 사람들이나 절망적으로 보이는 이 지치고 늙은 사람을 민망스럽게 만들었다. 저녁이면 그는 웃도리를 벗고 야윈 다리, 말라리아에 걸려 수척한 몸을 침실 가장자리에 앉히고는 브랜디를 마셨다. 그의 얼굴을 쳐다본 九九九 명의 병사들은 모두가 비통(悲痛), 연민, 불안, 그리고 말 못할 분노 같은 이상한 것을 느꼈다. 벌써 오랫동안 그래 왔다. 너무나 오래 계속하여 장군의 목에 응당 있어야 할 훈장을 못 가지게 한 전쟁에 대한 분노 말이다. 장군은 자기의 닳아 버린 군모에 적어도 아직은 반듯한 자세로 손을 갔다 댔다.

그는 사각 횡대의 왼쪽 모퉁이에 왔을 때 방향을 바꾸어 열려진 쪽 가운데로 와서 서 버렸다. 그러자 한 떼의 장교들이 저마다 그러나 정연하게 그의 주위를 감쌌다. 그러나 계급 낮은 다른 장교들은 십자 훈장을 햇빛 속에 번쩍이고 있는데, 훈장이 없는 그를 본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었다.(곽복록 1976, 341)


흥미로운 사실 한 가지는 상당한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문체적 분명히 드러나던 1972년 같은 해에 출간된 두 번역과 달리[8], 곽복록의 1976년 번역이 전희수의 번역에 더 근접해진 양상을 보인다는 사실이다. 두 번역 사이의 차이는 밑줄 친 부분에서만 확인되는 등 위 두 번역의 유사도 중 문자 단위 일치도는 거의 90%에 육박한다. 번역의 시간적 선후 관계를 고려한다면 곽복록이 초역 이후 개정 작업에서 전희수의 번역을 참조했을 것으로 조심스럽게 추정해 볼 수 있다. 이는 전희수의 번역이 함축적인 한자어의 사용, 단순한 문장구조와 원어에 근접하는 어휘의 통사적 배치 등을 통해서 간결, 명료하고 정제된 번역문을 구사하고 이를 통해 뵐의 문체를 상기시킨다는 강점을 지녔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4) 고위공 역의 <아담아, 너는 어디 있었느냐?>(1982)

홍익대 교수를 역임한 고위공의 번역은 1982년 처음 출간되었다. 이 번역본은 1982년에는 ‘主友’와 ‘學園社’에서 동시 출간되었으며, 1984년부터는 ‘學園社’를 통해서만 출간되었는데, 주우는 학원사의 자회사이다. 그의 번역은 대부분 뵐의 반전문학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인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와 함께 출간되었으며, 여기에 <어느 공용 외출의 끝>이 덧붙인 버전도 출간된 바 있다. 특기할 점은 1984년에는 상기한 두 버전 모두 출간되었는데,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와 <아담아, 너는 어디 있었느냐?>만 실린 버전에는 작품 해설이나 번역자 후기가 전혀 없는 반면 ‘주우세계문학’ 시리즈 중 4권으로 출간된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아담아, 너는 어디 있었느냐?/어느 공용 외출의 끝>에는 <언어와 양심, 예술과 도덕의 통일>이라는 번역자 해설이 덧붙여 있다. 다만 여기서도 저본에 대한 언급이나, 작품 서두의 두 인용문은 생략되었다.

고위공의 번역은 거시적으로는 선행 번역들과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는다. 그의 번역 특징 중 하나는 형용사의 번역에서 잘 드러난다. 다음은 <아담>의 첫 문장이다.

먼저 무거운 표정을 한, 크고 누런 어떤 사람이 병사들을 사열하였다. 대장이었다.(고위공 155) 
Zuerst ging ein großes, gelbes, tragisches Gesicht an ihnen vorbei, das war der General.(7)

작품의 첫 장면에서는 독일 장군의 사열 장면이 자세하게 묘사된다. 그는 말라리아에 걸려 마르고 지친 몸을 이끌고 천여 명에 이르는 병사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데, 명색이 장군이라는 사람이 제대로 된 훈장 하나 목에 걸지 못했다. 마치 패전할 독일의 운명을 암시하는 듯한 이 첫 장면에서 뵐은 장군을 묘사하는 형용사 중 하나로 ‘tragisch’라는 단어를 선택했다. 장군이 일종의 의례로 군인들 앞에 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또 장군이 독일의 운명을 은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기서의 ‘tragisch’는 비극적이라는 의미에 가까울 것이다. 그런데 고위공은 이 단어를 ‘무거운 표정을 한’이라고 번역하여 매우 일상적인 층위로 옮겨 놓는다. 고위공이 다른 번역자들과 달리 ‘사열하다’라는 군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번역자는 장군에게 어울릴 법한 형용사를 찾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로 인해 ‘tragisch’라는 단어는 단순히 심리를 묘사하는 차원에 머물게 되어 버리고, 전쟁의 비극적 결말에 대한 암시의 기능은 상실하게 된다. [9]

고위공의 자유로운 형용사 사용은 이 지점뿐만 아니라 번역서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되어 나타난다. 같은 단락에서 다른 번역자들이 ‘맥빠진/맥이 풀린’으로 번역한 ‘schlapp’을 ‘느릿느릿 발걸음을 떼며’라고 해석하는가 하면(바로 앞 문장에서 ‘허둥거리며 hastig’ 지나간다는 묘사가 있다), 바로 뒤에 ‘슬픔, 연민, 두려움, 남모르는 분노’로 부연설명되는 ‘etwas seltsames’는 ‘어떤 색다른 감정’이라고 번역한다.

죽음을 관리하는 이곳이 조용하다는 데 그녀는 놀랐다.(고위공 252)
죽음을 관리하는 일이 그다지도 태연히 이루어지고 있는 데에 그녀는 놀랐다.(홍경호 117)
죽음을 다스리는 일이 얼마나 태연하게 진행되어 가고 있는가를 보고 그녀는 놀랐다.(곽복록 176; 전희수 180)   
Sie war erstaunt, wie gelassen es in dieser Verwaltung des Todes zuging.(101)

이 문장은 수용소의 ‘죽음의 부서/사무실’이 너무나 일상적인 모습을 띠고 있는 것에 놀라는 일로냐의 속마음을 묘사한 장면이다. 여기서 다른 번역자들은 ‘gelassen’을 ‘태연히/태연하게’로 번역한 반면, 고위공은 이를 ‘조용하다’로 번역한다. 다른 번역자들이 ‘초조하게/초조한 듯’이라고 번역한 ‘ungeduldig’는 ‘성급하게’로, 주로 ‘잘못된’으로 번역된 ‘verkehrt’는 ‘우스운’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일상적 톤에 가까운 형용사의 선택이 뵐이 무미건조하게 묘사하고 있는 사태 본연의 심각성을 약화시키는 효과를 일으킨다는 점에서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그녀는 깜짝 놀라 주춤했다. “자, 불러 봐, 아무것이나 좋으니….”하고 그는 성급하게 말했다.(고위공 252)
Sie stutzte. »Los«, sagte er ungeduldig, »singen Sie etwas ganz gleich was...«(102)

위 인용문은 유대인을 죽이기 전 의례적으로 노래를 시키는 필스카이트가 일로냐에게 노래를 빨리하라고 재촉하는 장면이다. 이 번역에서는 문장과 문장의 일대일 대응성도 떨어지지만, 죽음을 목전에 둔 일로냐의 주저함이나, 그런 일로냐에게 위압적으로 노래를 강요하는 필스카이트 사이의 긴장은 잘 감지되지 않는다. 곽복록의 번역이 원문의 통사적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는 번역임에도 불구하고[10], 원문과 닮아있다는 인상을 주지 못하는 것은 원문 형용사가 담고 있는 의미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는 번역어의 선택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이렇듯 고위공의 번역은 번역의 직역성이 통사적 층위뿐만 아니라 단어적 층위에서도 이뤄져야 함을 방증하는 사례로서 기능한다.


3. 평가와 전망

지금까지 <아담>에서 무미건조하고 단순한 통사구조를 특징으로 하는 뵐의 문체가 중요함을 전제로 하여 몇몇 중요한 장면에서 나타나는 번역자별 번역 경향이나 번역 전략을 검토하고, 이것이 문체, 즉 텍스트의 형식을 어떻게 드러내는지 살펴보았다. 번역자들 대부분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뵐의 문체를 살리기 위해 직역을 주된 번역 전략으로 삼고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번역자별 정도의 차이가 있고, 직역을 우선순위에 두는 번역자조차 직역의 원칙이 철두철미하게 지켜지지는 않았다. 홍경호의 번역은 전반적으로 원문에 충실하고, 다른 어떤 번역자보다 원문의 통사적 구조를 최대한 살리려는 경향을 보이지만, 때론 접속사나 목적어를 보충해서 도착어의 독자에게 다가서는 전략을 취하기도 한다. 곽복록의 번역은 전반적으로 직역에서 멀어지는 자유도가 높은 해설적 번역인 것으로 판단되지만, 정량적 분석에서는 문장 길이의 평균값이 가장 짧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희수의 번역은 원문의 문장 순서나 단어의 반복 등 원문 구조를 모방함으로써 통사적 직역성을 강화하려는 전략을 일관성 있게 보여주지만, 이 과정에서 오히려 문장의 길이가 대폭 늘어나는 것은 감수한다. 고위공의 번역에서는 독일어 통사구조를 상당 부분 살리려는 노력이 돋보이지만, 상황에 부합하지 않는 형용사 사용이 잦은 점이 이 장점을 상쇄해 버리는 효과를 낸다. 원문의 형식을 드러내는 번역으로서의 직역의 가능성은 원문의 고유한 특성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번 번역비평에서는 보고체의 무미건조하고 간결한 문체를 원문의 가장 주된 ‘형식’으로 설정하고, 이 형식을 완전히 체계가 다른 한국어로 어떻게 옮기고 있는지를 잘 드러내는 사례들을 비교 검토해 보았다. 이를 통해 각각의 번역자들은 개인의 번역 철학이나 언어 감각, 기호에 따라 작품을 번역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아쉽게도 어떤 번역본에서도 번역본을 관통하는 일관된 원칙을 찾기는 어려웠다. 이 선행 번역들을 발판 삼아 다음에 나올 <아담>의 번역은 일관된 원칙을 바탕으로 독자로 하여금 뵐의 ‘문체’를 상기하게 하는 번역이기를 기대해 본다.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홍경호(1988): 아담,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범우사.

곽복록(1972): 아담, 어디에 가 있었나. 노벨문화사.

원휘(1972): 아담, 너는 어디 있었는가? 제문출판사.

곽복록(2011): 아담, 너는 어디에 가 있었나. 지식을만드는지식.

전희수(1972): 아담, 너는 어디에 있었나? 인문출판사.


양시내


  • 각주
  1. 이하 본문에서는 <아담>으로 약칭한다. 원작 제목의 번역은 ‘아담, 그대는 어디에 있었느냐’, ‘아담, 너는 어디에 가 있었나’, ‘아담, 너는 어디가 있었나’, ‘아담, 너는 어디에 있었는가?’, ‘아담아, 너는 어디 있었느냐?’ 등 다양한 버전이 존재한다. 이는 존칭/친칭의 차이나 의문형 종결 어미의 변주에 기인한다. 제목은 소설 서두에 인용된 다음의 인용문에서 기원한다: “세계적인 참극이 우연히도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도 했다. 그것은 하느님 앞에서 알리바이를 구하려는 사람에게도 그러했다. ‘아담,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나는 세계 대전에 참가했었습니다.’ - 테오도르 해커 <낮과 밤의 수기>에서”
  2. “나는 이미 수많은 모험을 체험했었다. 우편선의 개설, 사하라와 남아메리카의 정복…… 그러나 전쟁은 참된 모험이 아니다. 그것은 모험에 대한 보상행위일 뿐이다. 전쟁은 티푸스 같은 질병이다. - 생 텍쥐페리 <알라스 비행(飛行)에서>”
  3. 공주대학교 교수를 역임한 김보회의 번역은 본문에 저본 페이지를 표기한 것으로 보아, 대학 강의용 교재로 출판한 번역인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페이지만 표기된 해당 저본은 표기되지 않았고, 테오도르 헤커와 생 텍쥐베리 인용문도 누락되어 있다. 번역자는 대전 소재의 도서출판 보성이라는 곳에서 자신의 모든 역서를 출간했는데, 소형 출판사의 너그러운 교정 교열방침 덕분인지 이 작품의 경우 한국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원문의 독일식 문장 부호를 그대로 노출하고 있다.
  4. Böll, Heinrich(2003): Wo warst du, Adam? München: Deutscher Taschenbuch Verlag. 원문 인용 시 괄호 안에 쪽수만 표기한다.
  5. 저본을 표기한 것은 지만지에서 출간된 곽복록의 번역서가 유일하며, 홍경호의 번역과 곽복록의 번역만이 작품의 제목에 영감을 준 테오도르 헤커의 인용문과 생 텍쥐베리의 인용문을 수록하고 있다.
  6. 전희수가 번역한 것으로 확인된 또 다른 작품은 1961년 번역된 보르헤르트의 <우리의 꼬마 모차르트>()가 있으며, 전희수가 이 작품의 초역자로 기록되어 있다.
  7. “먼저 크고 누런, 그리고 쓸쓸한 듯한 얼굴이 병사들의 옆을 지나쳤다. 장군이었다. 그는 매우 피곤해 보였다. 푸른빛의 눈자위, 말라리아에 걸린 듯한 눈동자, 실패만 거듭한 사람만이 갖는 시들고도 엷은 입술, 장군은 빠른 동작으로 천여 명의 병사들 옆을 지나쳤다. 먼지가 덮인 네모나게 가로 선 대열 오른쪽 모퉁이서부터 쓸쓸한 표정으로 병사들의 얼굴을 일일이 훑어보고는 활기도, 매서운 기운도 잃은 듯 맥이 풀린 채 모퉁이를 돌아갔다. 그리하여 모든 병사들은 그의 가슴에 가득 채워진 금과 은으로 만든 훈장이 번쩍이고 있지만, 목에는 훈장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장군의 목에 훈장이 있든 없든 그리 대단치 않음을 알면서도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훈장이 없는 이 여위고도 누런 장군의 목은 패전과 후퇴의 실패와 고급 장교들이 서로 빈정거리며 주고 받는 전화 속에서 씨부렸을 아프게 찌르는 비난들을 짐작할 수 있게 했고 이것은 참모본부 사람들이나 절망적으로 보이는 이 지치고 늙은 사람을 민망스럽게 만들었다. 그는 저녁엔 웃옷을 벗고 여윈 다리와 학질에 걸려 수척한 몸을 침대 가에 앉히고는 브렌디를 마셨다. 그의 얼굴을 쳐다본 999명의 병사들은 모두가 비통, 연민, 불안 그리고 분노 같은 말 못할 이상한 것을 느꼈다. 벌써 오랫동안 그래왔다. 장군의 목에 응당 있어야할 훈장을 못가지게 한 너무나 오래 계속한 전쟁에 대한 분노 말이다. 장군은 자기의 닳아빠진 군모에 맥은 없어 보였지만 아직은 반듯한 자세로 손을 갔다 댔다./ 그는 네모꼴로 가로 서 있는 대열의 왼쪽 모퉁이에 왔을 때 방향을 바꾸어 열려진 쪽 가운데로 와서 서버렸다. 그러자 한 떼의 장교들이 정연하게 그의 주위를 에워쌌다. 그러나 계급 낮은 다른 장교들은 십자훈장을 햇빛 속에 번쩍이고 있는데, 훈장이 없는 그를 본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었다.”(곽복록 1972, 16f.)
  8. 곽복록의 번역은 1972년 10월 23일 출간, 전희수의 번역은 1972년 11월 1일 출간된 것으로 확인된다.
  9. 같은 지점을 홍경호는 ‘비참한’으로, 곽복록과 전희수는 ‘쓸쓸한 듯한’으로 번역한다.
  10. 홍경호의 번역에서 언급된 관계절을 포함한 분사구를 고위공은 다음과 같이 번역한다: “여기에 그것이 있었다. 미와 위대함과 종족적 완전성이 신앙이라는 그 무엇과 결합하며 완전히 그를 마비시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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