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아닌 자의 장미 (Die Niemandsrose)"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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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번역 현황 및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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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 첼란의 시집 <아무도 아닌 자의 장미>는 <양귀비와 기억>(1952), <문지방에서 문지방으로>(1955), <언어창살>(1959>에 이어 1963년에 발표된 첼란의 네 번째 시집으로, 1959년부터 1963년 사이에 쓰인 총 53편의 시를 수록하고 있다. 첼란은 이 시집을 누구보다 가까이 느꼈던 러시아 유대 시인 오십 만델슈탐에게 헌정했는데 (“Dem Andenken Ossip Mandelstamms”), 그가 1962년까지 만델슈탐의 시들을 번역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형식상으로나 문체상으로 대단히 다양하다. 운율을 가진 단가 형식의 시들, 러시아풍의 장시들, 그리고 성서의 <시편 Psalm> 전통과 연결되는 형식 등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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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아무도 아닌 자의 장미>는 위에서 언급한 바대로 첼란의 4번째 시집의 제목이지만, 실제로 ‘아무도 아닌 자의 장미 Niemandsrose’라는 시구가 등장하는 시는 이 시집에 실려, 우리말로는 ‘찬미가’ 혹은 ‘시편’으로 번역된 <Psalm>이란 개별시다. 국내에서는 1980년대 초에 이 시뿐 아니라 첼란 시 전반에 대한 번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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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개별시의 경우 이동승이 <찬미가>로 옮겨 <20세기 독일시 2>(1981)에 수록한 것을 국내 최초의 번역으로 꼽을 수 있다. 김주연도 1984년에 <현대시선>에 첼란의 시 19편을 선별하여 번역했는데, 그중에 <찬미가>를 포함시켰다. 이 두 역자의 경우 여러 나라의 현대 시인들을 다루는 시선집에 첼란 시 몇 편을 수록한 것으로, 이른바 ‘현대시’의 다양한 경향들을 소개하는 차원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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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란에 대한 보다 체계적이고 학술적인 번역과 연구는 1980년대 중반에 시작되었는데, 고위공, 김영옥, 전영애 등을 들 수 있다. 고위공은 1985년에 <열음세계시> 시리즈의 일환으로 나온 <죽음의 푸가>를 보완해서 1986년에 새로 펴낸 번역 시집에 <아무도 아닌 자의 장미>라는 제목을 붙였다. 전영애는 1986년에 <어두운 시대와 고통의 언어: 파울 첼란의 시>(문학과지성사)라는 첼란 연구서를, 김영옥은 원 시집의 구분 없이 총 61편의 시를 번역하여 <죽음의 푸가>라는 제목으로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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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개별시들을 선별하여 옮긴 다른 역자와는 달리 <아무도 아닌 자의 장미> 시집 전체를 옮긴 역자는 제여매와 허수경 두 사람이다. 제여매는 이 시집 전체를 번역하여 처음으로 단행본으로 출판했고(2010), 첼란 전집을 완역한 기념비적인 작업을 행한 허수경은 전집 1권에 <아무도 아닌 자의 장미> 53편 전부를 포함시켰다(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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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완역된 시집 전체를 포함하여 실제로 ‘Niemandsrose’라는 시어가 등장하는 <찬미가>를 주된 고려 대상으로 삼고자 한다. <찬미가 Psalm>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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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a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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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emand knetet uns wieder aus Erde und Leh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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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emand bespricht unseren Sta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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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em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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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lobt seist du, Niem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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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r zulieb woll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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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r blü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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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tge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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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n Nic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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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ren wir, sind wir, wer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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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r bleiben, blüh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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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emandsr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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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m Griffel seelenh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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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m Staubfaden himmelswü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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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m Purpurwort, das wir san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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über, o ü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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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m Do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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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문론적 차원에서만 보자면 1-3연은 비교적 분명한데 비해, 마지막 4연은 첼란 특유의 대단히 파격적인 구조를 취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까닭에서인지 번역에서도 많은 편차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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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의미론적 차원에서 여전히 문제가 되는 Niemand와 Nichts를 비롯하여 seelenhell, himmelswüst와 같은 첼란의 시어를 중심으로, 그리고 구문론적 차원에서는 첼란 시의 개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4연을 중심으로 개별 번역 비평을 시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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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개별 번역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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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동승 역의 <찬미가>(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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讚美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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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우리를 다시 흙과 진흙으로 빚지는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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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우리의 먼지를 論議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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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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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아닌 자여, 찬미받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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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사랑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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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꽃 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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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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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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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無였으며, 무이며, 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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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으리라. 꽃 피어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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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 장미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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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것도 아닌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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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해맑은 줄기를 지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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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처럼 거칠은 실먼지를 지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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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왕관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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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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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에 대해 노래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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眞紅의 말을 지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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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문과 원문을 같이 수록한 이 시집에서 이동승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이 시를 번역했다. 초역임에도 불구하고 이동승의 번역은 각각의 의미소들을 살리면서 대단히 충실하게 원문에 다가가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Niemand를 ‘누구도 ~~ 않다’라는 부정구문으로 옮겼고, Niemandsrose는 ‘누구의 것도 아닌 장미’로 옮겼다. 그러나 ‘누구의 것도 아닌 장미’의 경우 장미의 소유주가 없다는 뜻으로 읽힐 소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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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2연에서 “찬미받으라 Gelobt seist du”나 “우리는 꽃 피고자 한다 wir blühen”에서 높임말이 아닌 일반적인 명령어나 평서문을 사용하여 이 시가 가지는 성서의 찬미가적인 전통과의 연결성은 조금 떨어져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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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연에서도 그가 무척 고심한 흔적을 찾아낼 수 있는데, 원문의 전치사 mit의 대응어로 ‘지닌’을 선택하여 세 번이나 각운처럼 사용하는 치밀함을 보인다. 그러나 über dem Dorn을 가시 ‘위’라는 장소적 의미가 아니라 가시에 ‘대해’ 노래한다로 옮긴 부분은 원문의 전체적인 의도에서 다소 비켜선 인상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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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김주연 역의 <찬미가>(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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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아닌 자가 우리를 또다시 흙과 점토로 이겨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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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아닌 자가 보잘것없는 우리들 먼지에 대고 주문을 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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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아닌 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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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해 주라 누구도 아닌 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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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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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꽃피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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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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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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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였으며 지금은 더욱 무이며 장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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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무일 것이다 꽃이 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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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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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아닌 자의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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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영혼의 꽃대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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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 날아가는 꽃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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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빛 말에 빛을 빼앗긴 화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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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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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 말을 노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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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했다 오오 떡갈나무의 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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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 높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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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연의 경우는 이동승과는 달리 Niemand를 ‘누구도 아닌 자’라는 부정의 주어로 옮기고 이어지는 술어를 긍정문으로 표현했는데, 이것은 이후에 대부분의 역자에 의해 일반적으로 채택되는 방식이다. 그러나 4연의 “하늘로 날아가는 꽃가루 / 분홍빛 말에 빛을 빼앗긴 화관을 쓴 장미”나 “떡갈나무의 침” 등은 원문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어 보인다. 김주연의 번역은 전반적으로 원문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그가 엄밀한 텍스트 번역보다는 의(미)역을 선호하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이때 그는 ‘의(미)역’의 폭을 거의 오역에 가깝도록 상당히 넓게 허용하는 것처럼 보이고, 이 같은 번역 방식은 오늘날까지도 우리나라 시 번역의 한 유형으로 작용한다. 다시 말해 역자는 원저자의 숨은 의도를 찾아내는 데 주력하기보다 역자 자신의 이해를 더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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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시인 약력에서 김주연은 “<아무 것도 아닌 장미>(1963) <실(紗)의 태양>(1968)과 후기의 시집으로 옮겨감에 따라서 시어의 긴장은 점점 ‘비극적으로 높아져’ 거의 언어표현의 극한까지 이르는 경향이 엿보인다”라고 평하는데, 시어의 긴장을 ‘비극적’으로 보는 관점은 이후 역자들의 평가에서는 다소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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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고위공 역의 <찬미가>(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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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란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번역을 시도한 고위공은 첼란의 시집 8편(1. 양귀비와 기억 2. 문지방에서 문지방으로 3. 언어 창살 4. 누구도 아닌 자의 장미 5. 숨결 돌림 6. 실낱 태양 7. 빛의 강제 8. 눈 구역)에서 각각 몇 편을 선별하여 번역하여 전체를 <아무도 아닌 자의 장미>라는 제목으로 출판했다. 이중 <찬미가>의 번역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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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다시금 아닌 자 흙과 점토로 우리를 빚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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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아닌 자 우리 티끌을 말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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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아닌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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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아닌 자여, 당신은 찬양받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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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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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피어나려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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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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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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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無)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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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無)이며, 무(無)로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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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피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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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無)의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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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아닌 자의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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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해맑은 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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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황량한 꽃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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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화관(花冠)을 지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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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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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가시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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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부른 자색어(紫色語)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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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공은 Niemand의 역어로 ‘아무도 아닌 자’(시집 제목)와 ‘누구도 아닌 자’(개별시)를 혼용한다. 그는 ‘찬양받을지어다’, ‘피어나려 하나이다’와 같은 종결어미들을 사용하여 시편 혹은 찬미가의 분위기를 강조한다. 또한 4연이 식물학적으로 장미꽃의 수정과정을 보여준다고 지적하면서, 그 과정의 완성에서 ‘자색어’가 출현한다는 설명을 각주에 덧붙인다. 하지만 vom Purpurwort, das wir sangen을 ‘우리가 노래 부른 자색어(紫色語)의’로 옮겨 전치사 vom를 살렸지만, 그것의 연결관계는 열어둔 채 남겨놓는다. 그는 또 각주에서 이 시가 성서적 내용을 패러디하면서도 부정을 통한 새로운 ‘찬미로의 전환’을 촉구한다고 덧붙이는 점이 눈에 띄는데, 이는 김주연의 관점과는 분명 차이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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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4일 (일) 06:58 판

파울 첼란(Paul Celan, 1920-1970)의 시집

아무도 아닌 자의 장미
(Die Niemandsrose)
작가파울 첼란(Paul Celan)
초판 발행1963
장르시집

작품소개

파울 첼란이 1963년에 출판한 시집이다. <양귀비와 기억>(1952), <문지방에서 문지방으로>(1955), <언어창살>(1959)에 이어서 나온 네 번째 시집으로 1963년 피셔 출판사에서 출판되었으며, 1959년부터 1963년 사이에 쓰인 시들이 수록되어 있다. <아무도 아닌 자의 장미>는 4부로 이루어진 연작시의 성격을 띠고 총 53편의 시를 수록하였다. 이 시집의 제목에 나오는 ‘아무도 아닌 자’는 <찬미가>에서 표현된 것으로, 유대인들처럼 역사상 비인간적인 취급을 받으며 고통받았던 사람들과 그들의 역사에 대한 성찰에서 나왔다. 삶은 위대한 사람들에게만 속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아닌 자’에게도 속한다는 것이다. <아무도 아닌 자의 장미> 속의 시들은 다양한 시 형식을 취하고 주제 상으로도 서로 비밀스러운 조응 관계에 놓여 있다. 그 속에는 유대적-성경적 세계가 계속해서 유지되는가 하면, 구약성서의 창조사에 대한 회의가 드러나기도 하고, 동시에 전적으로 현재성으로 가득한 세계도 존재한다. 설명을 거부하는 듯한 엄격한 어법, 절제된 이미지들은 첼란의 인간에 대한 이해와 무관하지 않다. 이 연작시는 인간이 파시즘 시대의 엄청난 파괴에 대한 기억을 내몰거나 잊어버리지 않은 채 극복할 수 있을 때야 비로소 자기 자신에 도달할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준다. 이 시집에 실린 몇 편의 시들은 김영옥, 고위공 등에 의해 선별적으로 번역되었으나 국내 완역은 2010년 제여매에 의해 이루어졌다(시와진실).


초판 정보

Celan, Paul(1963): Die Niemandsrose. Frankfurt a. M.: S. Fischer.


번역서지 목록

번호 개별작품제목 번역서명 총서명 원저자명 번역자명 발행연도 출판사 작품수록 페이지 저본 번역유형 작품 번역유형 비고

번역비평

1. 번역 현황 및 개관

파울 첼란의 시집 <아무도 아닌 자의 장미>는 <양귀비와 기억>(1952), <문지방에서 문지방으로>(1955), <언어창살>(1959>에 이어 1963년에 발표된 첼란의 네 번째 시집으로, 1959년부터 1963년 사이에 쓰인 총 53편의 시를 수록하고 있다. 첼란은 이 시집을 누구보다 가까이 느꼈던 러시아 유대 시인 오십 만델슈탐에게 헌정했는데 (“Dem Andenken Ossip Mandelstamms”), 그가 1962년까지 만델슈탐의 시들을 번역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형식상으로나 문체상으로 대단히 다양하다. 운율을 가진 단가 형식의 시들, 러시아풍의 장시들, 그리고 성서의 <시편 Psalm> 전통과 연결되는 형식 등이 그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아무도 아닌 자의 장미>는 위에서 언급한 바대로 첼란의 4번째 시집의 제목이지만, 실제로 ‘아무도 아닌 자의 장미 Niemandsrose’라는 시구가 등장하는 시는 이 시집에 실려, 우리말로는 ‘찬미가’ 혹은 ‘시편’으로 번역된 <Psalm>이란 개별시다. 국내에서는 1980년대 초에 이 시뿐 아니라 첼란 시 전반에 대한 번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 개별시의 경우 이동승이 <찬미가>로 옮겨 <20세기 독일시 2>(1981)에 수록한 것을 국내 최초의 번역으로 꼽을 수 있다. 김주연도 1984년에 <현대시선>에 첼란의 시 19편을 선별하여 번역했는데, 그중에 <찬미가>를 포함시켰다. 이 두 역자의 경우 여러 나라의 현대 시인들을 다루는 시선집에 첼란 시 몇 편을 수록한 것으로, 이른바 ‘현대시’의 다양한 경향들을 소개하는 차원으로 볼 수 있다. 첼란에 대한 보다 체계적이고 학술적인 번역과 연구는 1980년대 중반에 시작되었는데, 고위공, 김영옥, 전영애 등을 들 수 있다. 고위공은 1985년에 <열음세계시> 시리즈의 일환으로 나온 <죽음의 푸가>를 보완해서 1986년에 새로 펴낸 번역 시집에 <아무도 아닌 자의 장미>라는 제목을 붙였다. 전영애는 1986년에 <어두운 시대와 고통의 언어: 파울 첼란의 시>(문학과지성사)라는 첼란 연구서를, 김영옥은 원 시집의 구분 없이 총 61편의 시를 번역하여 <죽음의 푸가>라는 제목으로 출판했다. 이처럼 개별시들을 선별하여 옮긴 다른 역자와는 달리 <아무도 아닌 자의 장미> 시집 전체를 옮긴 역자는 제여매와 허수경 두 사람이다. 제여매는 이 시집 전체를 번역하여 처음으로 단행본으로 출판했고(2010), 첼란 전집을 완역한 기념비적인 작업을 행한 허수경은 전집 1권에 <아무도 아닌 자의 장미> 53편 전부를 포함시켰다(2020). 이 글에서는 완역된 시집 전체를 포함하여 실제로 ‘Niemandsrose’라는 시어가 등장하는 <찬미가>를 주된 고려 대상으로 삼고자 한다. <찬미가 Psalm>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Psalm

Niemand knetet uns wieder aus Erde und Lehm,
niemand bespricht unseren Staub.
Niemand.

Gelobt seist du, Niemand.
Dir zulieb wollen
wir blühn.
Dir
entgegen.

Ein Nichts
waren wir, sind wir, werden
wir bleiben, blühend:
die Nichts-, die
Niemandsrose.

Mit
dem Griffel seelenhell,
dem Staubfaden himmelswüst,
der Krone rot
vom Purpurwort, das wir sangen
über, o über
dem Dorn.

구문론적 차원에서만 보자면 1-3연은 비교적 분명한데 비해, 마지막 4연은 첼란 특유의 대단히 파격적인 구조를 취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까닭에서인지 번역에서도 많은 편차를 보인다. 이 글에서는 의미론적 차원에서 여전히 문제가 되는 Niemand와 Nichts를 비롯하여 seelenhell, himmelswüst와 같은 첼란의 시어를 중심으로, 그리고 구문론적 차원에서는 첼란 시의 개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4연을 중심으로 개별 번역 비평을 시도하고자 한다.


2. 개별 번역 비평

1) 이동승 역의 <찬미가>(1981)

讚美歌

누구도 우리를 다시 흙과 진흙으로 빚지는 않으리라,
누구도 우리의 먼지를 論議하지 않으리라
누구도.

누구도 아닌 자여, 찬미받으라.
당신을 사랑하여
우리는 꽃 피고자 한다.
당신을 
향하여.

우리는 無였으며, 무이며, 무로
남으리라. 꽃 피어나며 :
무의 장미꽃,
누구의 것도 아닌 장미.

영혼의 해맑은 줄기를 지닌
하늘처럼 거칠은 실먼지를 지닌,
붉은 왕관과
우리가 아,
가시에 대해 노래하는
眞紅의 말을 지닌.

번역문과 원문을 같이 수록한 이 시집에서 이동승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이 시를 번역했다. 초역임에도 불구하고 이동승의 번역은 각각의 의미소들을 살리면서 대단히 충실하게 원문에 다가가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Niemand를 ‘누구도 ~~ 않다’라는 부정구문으로 옮겼고, Niemandsrose는 ‘누구의 것도 아닌 장미’로 옮겼다. 그러나 ‘누구의 것도 아닌 장미’의 경우 장미의 소유주가 없다는 뜻으로 읽힐 소지가 있다 또한 2연에서 “찬미받으라 Gelobt seist du”나 “우리는 꽃 피고자 한다 wir blühen”에서 높임말이 아닌 일반적인 명령어나 평서문을 사용하여 이 시가 가지는 성서의 찬미가적인 전통과의 연결성은 조금 떨어져 보인다. 4연에서도 그가 무척 고심한 흔적을 찾아낼 수 있는데, 원문의 전치사 mit의 대응어로 ‘지닌’을 선택하여 세 번이나 각운처럼 사용하는 치밀함을 보인다. 그러나 über dem Dorn을 가시 ‘위’라는 장소적 의미가 아니라 가시에 ‘대해’ 노래한다로 옮긴 부분은 원문의 전체적인 의도에서 다소 비켜선 인상을 준다.


2) 김주연 역의 <찬미가>(1984)

누구도 아닌 자가 우리를 또다시 흙과 점토로 이겨 만든다
누구도 아닌 자가 보잘것없는 우리들 먼지에 대고 주문을 외운다
누구도 아닌 자가

칭찬해 주라 누구도 아닌 자여
당신을 위해
우리는 꽃피기를 원한다
당신을 보고

우리는 일찍이
무였으며 지금은 더욱 무이며 장래도
오직 무일 것이다 꽃이 피면서
무의 
누구도 아닌 자의 장미

밝은 영혼의 꽃대궁
하늘로 날아가는 꽃가루
분홍빛 말에 빛을 빼앗긴 화관을
쓴 장미
우리는 그 말을 노래했다
노래했다 오오 떡갈나무의 침
위로 높이

김주연의 경우는 이동승과는 달리 Niemand를 ‘누구도 아닌 자’라는 부정의 주어로 옮기고 이어지는 술어를 긍정문으로 표현했는데, 이것은 이후에 대부분의 역자에 의해 일반적으로 채택되는 방식이다. 그러나 4연의 “하늘로 날아가는 꽃가루 / 분홍빛 말에 빛을 빼앗긴 화관을 쓴 장미”나 “떡갈나무의 침” 등은 원문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어 보인다. 김주연의 번역은 전반적으로 원문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그가 엄밀한 텍스트 번역보다는 의(미)역을 선호하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이때 그는 ‘의(미)역’의 폭을 거의 오역에 가깝도록 상당히 넓게 허용하는 것처럼 보이고, 이 같은 번역 방식은 오늘날까지도 우리나라 시 번역의 한 유형으로 작용한다. 다시 말해 역자는 원저자의 숨은 의도를 찾아내는 데 주력하기보다 역자 자신의 이해를 더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역자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시인 약력에서 김주연은 “<아무 것도 아닌 장미>(1963) <실(紗)의 태양>(1968)과 후기의 시집으로 옮겨감에 따라서 시어의 긴장은 점점 ‘비극적으로 높아져’ 거의 언어표현의 극한까지 이르는 경향이 엿보인다”라고 평하는데, 시어의 긴장을 ‘비극적’으로 보는 관점은 이후 역자들의 평가에서는 다소 달라진다.

3) 고위공 역의 <찬미가>(1986)

첼란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번역을 시도한 고위공은 첼란의 시집 8편(1. 양귀비와 기억 2. 문지방에서 문지방으로 3. 언어 창살 4. 누구도 아닌 자의 장미 5. 숨결 돌림 6. 실낱 태양 7. 빛의 강제 8. 눈 구역)에서 각각 몇 편을 선별하여 번역하여 전체를 <아무도 아닌 자의 장미>라는 제목으로 출판했다. 이중 <찬미가>의 번역은 다음과 같다.

누구도 다시금 아닌 자 흙과 점토로 우리를 빚으리.
누구도 아닌 자 우리 티끌을 말하리.
누구도 아닌 자.

누구도 아닌 자여, 당신은 찬양받을지어다.
당신을 위해
우리는 피어나려 하나이다.
당신을
향해.

우리는 무(無)였고,
무(無)이며, 무(無)로 남을 것입니다.
꽃을 피우며,
무(無)의 장미,
누구도 아닌 자의 장미.

영혼의 해맑은 줄기,
하늘의 황량한 꽃실,
빨간 화관(花冠)을 지닌.
그 위에서
오, 가시 위에서
노래 부른 자색어(紫色語)의.

고위공은 Niemand의 역어로 ‘아무도 아닌 자’(시집 제목)와 ‘누구도 아닌 자’(개별시)를 혼용한다. 그는 ‘찬양받을지어다’, ‘피어나려 하나이다’와 같은 종결어미들을 사용하여 시편 혹은 찬미가의 분위기를 강조한다. 또한 4연이 식물학적으로 장미꽃의 수정과정을 보여준다고 지적하면서, 그 과정의 완성에서 ‘자색어’가 출현한다는 설명을 각주에 덧붙인다. 하지만 vom Purpurwort, das wir sangen을 ‘우리가 노래 부른 자색어(紫色語)의’로 옮겨 전치사 vom를 살렸지만, 그것의 연결관계는 열어둔 채 남겨놓는다. 그는 또 각주에서 이 시가 성서적 내용을 패러디하면서도 부정을 통한 새로운 ‘찬미로의 전환’을 촉구한다고 덧붙이는 점이 눈에 띄는데, 이는 김주연의 관점과는 분명 차이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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