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시집 (West-östlicher Divan)"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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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 등에 높이 앉은 안내자 | 낙타 등에 높이 앉은 안내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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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적들은 놀라 달아난다오. | 도적들은 놀라 달아난다오. | ||
2025년 6월 20일 (금) 13:16 판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의 시
| 작가 |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
|---|---|
| 초판 발행 | 1819 |
| 장르 | 시 |
작품소개
괴테가 14세기 페르시아 시인 하피스의 시 독일어 번역본을 읽고 자극을 받아 쓴 12편의 연작시이다. 각 편에는 ‘가인’, ‘하피스’, ‘사랑’, ‘명상’, ‘불만’, ‘격언’, ‘티무르’, ‘줄라이카’, ‘술집 소년’, ‘비유’, ‘배화교도’, ‘천국’이라는 소제목이 달려 있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피폐해진 유럽을 떠나고자 하는 갈망과 생명의 시원(始原)으로서의 동방 세계에 대한 절실한 동경을 동서양 문화의 융합이라는 시적 목표 아래 시공을 초월한 하피스와의 대화 형식을 기본으로 하고, 그를 따라 시와 사랑과 술을 예찬한다. 괴테는 당시 독자들의 호응이 시원치 않아 <서동시집의 더 나은 이해를 위한 메모와 논고>를 따로 발표했으나, 헤겔은 <서동시집>을 괴테의 작품 가운데 가장 풍부하고 완숙의 경지에 이른 작품이라고 칭찬했으며, 하이네도 상징성이 풍부한 <서동시집>의 언어를 높이 평가하였다. 아우구스트 폰 플라텐의 <가젤>(1821), 프리드리히 뤼커트의 <동방의 장미>(1822), 빅토르 위고의 <동방>(1829) 등이 창작되는 계기가 되었다. 국내에서는 1968년 강두식에 의해 처음 번역되었다(휘문출판사).
초판 정보
Goethe, Johann Wolfgang von(1819): West-östlicher Divan. Stuttgart: Cottaische Buchhandlung.
번역서지 목록
| 번호 | 개별작품제목 | 번역서명 | 총서명 | 원저자명 | 번역자명 | 발행연도 | 출판사 | 작품수록 페이지 | 저본 번역유형 | 작품 번역유형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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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비평
1. 번역 현황 및 개관
노년의 지혜와 완숙한 시적 경지가 집약된 것으로 평가받는 괴테의 대작 <서동시집>은 우리에게 번역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운다. 그에게 창조적 영감을 불어넣어 준 14세기 페르시아 시인 하피스의 시집을 괴테는 1814년에 출간된 하머(Joseph von Hammer)의 독일어 번역으로 읽었기 때문이다. 총 196편의 시를 열두 묶음, 즉 12서(Buch)로 나누어 싣고 오리엔트의 문화와 시문학에 관한 방대한 연구 <보다 나은 이해를 위하여 Besserem Verständniss>를 덧붙인 초판은 1819년에 출간되었으며, 여기에다 43편의 시를 추가하여 총 239편의 시를 수록한 <신 시집 Neuer Divan>은 1827년에 나왔다. 국내에 완역된 <서동시집>은 대개 함부르크판 또는 프랑크푸르트판 괴테 전집을 번역 저본으로 삼은 것으로 1827년의 증보판을 토대로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서동시집>에 실린 시들 중 널리 알려진 개별 시편은 시집 전체의 완역이 나오기 전에 이미 산발적으로 번역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부적 Talismane>, <되살아난 지난날 Im Gegenwärtigen Vergangenes>, <복된 동경 Selige Sehnsucht> 및 <줄라이카의 서 Buch Suleika>에 속한 시 네 수, 이렇게 총 일곱 수의 시가 탐구당의 <탐구 신서> 시리즈 중 한 권으로 1980년에 출간된 <독일 고전주의시> (황윤석 역)에 실려있다. 그러나 <서동시집> 시편 전체의 번역은 이보다 이십여 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나왔다. 2002년 독문학자 최두환이 번역, 발행한 <서동시집>은 239편의 방대한 시집의 초역으로서 의의가 있으나 괴테의 시집 초판이 오리엔트에 관한 연구를 함께 품고 있다는 점에서는 불완전하다고 할 수 있겠다. 초역에서 함께 번역하지 않은 산문 부분, ‘<서동시집>의 더 나은 이해를 위한 메모와 논고’까지 포함한 번역은 2006년 열일곱 명의 괴테 독회 회원들의 공동 번역(대표 역자: 당시 괴테 학회 회장 안문영)으로 출간되었다. 초역의 역자 최두환은 공동 번역의 역자로도 이름을 올리고 있는데, 한국 괴테 학회 산하의 괴테 독회를 처음으로 창설한 이가 바로 그이므로 <서동시집> 번역의 역사에서 그의 공로가 매우 크다 하겠다. 불과 반년 후인 2007년 5월에 나온 김용민의 번역은 다시 산문 편 없이 시부분만 완역했으며, 2012년에 출간된 전영애의 번역은 산문 편을 포함한 완역을 1권으로, 상세한 해설과 관련 논문들을 수록한 <괴테 서·동 시집 연구>를 2권으로 하여 총 두 권으로 출간되었다. 전영애 역시 2006년 공동 번역의 역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 2021년에 나온 임우영의 번역 역시 산문 편을 포함한 완역으로 각 서의 앞머리에 개관을 싣고 또 시마다 상세한 해설을 덧붙이고 있다. 가장 최근인 2024년에 나온 번역본의 역자는 장희창으로 역시 괴테 독회의 공동 번역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모든 번역본이 상세한 역주를 붙이고 있으며, <서동시집>의 시편을 완역한 역자들이 모두 대학 강단에 섰던 독문학자라는 점은 괴테가 만년에 쓴 이 시집을 번역하는 일이 그만큼 학술적 전문성을 요구하는 작업이라는 점을 방증한다.
아래에서는 초역부터 2021년에 나온 역본까지 총 다섯 종의 번역본을 대상으로 하여 각 번역본의 주요 특징을 먼저 살펴본 후, <서동시집>의 첫 번째 서인 ‘가인의 서 Buch des Sängers’를 여는 첫 번째 시 <헤지라 Hegire>를 중심으로 번역을 비교해 본다. 원문은 다수의 번역이 저본으로 삼고 있는 함부르크판 전집에서 인용한다.
HEGIRE Nord und West und Süd zersplittern, Throne bersten, Reiche zittern, Flüchte du, im reinen Osten Patriarchenluft zu kosten, Unter Lieben, Trinken, Singen 5 Soll dich Chisers Quell verjüngen. Dort, im Reinen und im Rechten, Will ich menschlichen Geschlechten In des Ursprungs Tiefe dringen, Wo sie noch von Gott empfingen 10 Himmelslehr’ in Erdesprachen Und sich nicht den Kopf zerbrachen. Wo sie Väter hochverehrten, Jeden fremden Dienst verwehrten; Will mich freun der Jugendschranke: 15 Glaube weit, eng der Gedanke, Wie das Wort so wichtig dort war, Weil es ein gesprochen Wort war. Will mich unter Hirten mischen, An Oasen mich erfrischen, 20 Wenn mit Karawanen wandle, Schal, Kaffee und Moschus handle; Jeden Pfad will ich betreten Von der Wüste zu den Städten. Bösen Felsweg auf und nieder 25 Trösten, Hafis, deine Lieder, Wenn der Führer mit Entzücken Von des Maultiers hohem Rücken Singt, die Sterne zu erwecken Und die Räuber zu erschrecken. 30 Will in Bädern und in Schenken, Heil’ger Hafis, dein gedenken, Wenn den Schleier Liebchen lüftet, Schüttelnd Ambralocken düftet. Ja, des Dichters Liebeflüstern 35 Mache selbst die Huris lüstern. Wolltet ihr ihm dies beneiden Oder etwa gar verleiden, Wisset nur, daß Dichterworte Um des Paradieses Pforte 40 Immer leise klopfend schweben, Sich erbittend ew’ges Leben. (HA 2, 7-8. 강조 필자)
2. 개별 번역 비평
1) 최두환 역의 <서동시집>(2002)
<서동시집>의 산문 부분을 제외하고 시 부분만 완역한 최두환의 <서동시집>은 역자가 직접 운영하는 출판사 시와 진실에서 2002년 간행되었다. 역자 후기에서 역자는 작품의 역사적 배경과 집필 당시 괴테가 처한 상황을 <서동시집>의 시편을 예로 들어 설명하면서, 작품의 생성사와 마리안네 폰 빌레머(Marianne von Willemer)의 영향, 전체 열두 편의 시편을 간략히 개관하고 있다. 그는 동방 세계에 이미 관심을 기울여 온 사람에게는 산문편이 필요 없다는 괴테의 말을 인용하며 앞의 두 시편이 전체 시집의 길잡이 역할을 해주기도 하고 오늘날은 국제화 시대이므로 괴테가 염려했던 민족주의적 편협성이 해소된 것을 전제로 산문편의 번역은 다음 기회로 미룬다고 설명한다. 역자는 함부르크판 전집을 번역 저본으로 하고 헨드릭 비루스(Hendrik Birus) 교수가 편집하고 주석을 단 프랑크푸르트판 전집의 주석을 참조했음을 밝히고 있다. 이후의 모든 번역이 이 판본을 참조했음을 밝히고 있는 것을 보면, 비루스 교수의 <서동시집> 판본이 이 시집을 더 깊이 이해하고 번역을 시도하는 데에 결정적 기여를 한 것으로 보인다. 최두환 역의 <서동시집>은 괴테 독회 공역이나 김용민 역본과 마찬가지로 함부르크판 전집을 원본으로 했음을 밝히고 있지만, 다른 점이 한 가지 있다. 이후에 나온 이 두 역본은 괴테가 1827년 증보판에 싣지 않고 빼놓은 시들 중 함부르크판 전집의 편집자인 에리히 트룬츠(Erich Trunz)가 선별한 ‘유고 중에서 Aus dem Nachlass’까지 함께 번역했으나 최두환의 초역은 이 부분을 제외했다. 우선 <헤지라>의 초역은 아래에 전문을 인용한다.
헤지레 북녘도 서녘도 남녘도 갈기갈기 찢겨지고 있다. 옥좌들 무너지고 왕국들 부들부들 떨고 있다. 달아나라, 순수한 동녘 땅으로 옛 족장들의 숨결 만끽하기 위해, 사랑과 술과 노래 즐기며 5 키저의 원천수로 젊어져야 하느니. 그곳, 순수와 올곧음의 고장에서 나 인류의 원초적 심저(心底)에까지 파고들리라. 하늘의 가르침 지상의 언어로 하늘님에게서 직접 받아들이고 10 이러쿵저러쿵 따지지 않던 사람들 아직 살아 있던 곳 조상들 높이 떠받쳐 모시고 그 어느 낯선 것에도 복종하길 거부하던 사람들 아직 살고 있던 곳 15 나 그곳에서 젊음의 제한된 삶 즐기리 믿음 넓고 지모(智謀)는 짧은, 그곳에선 말씀이 얼마나 소중했던가 하늘님이 직접 하신 말씀이었기에. 나 목자들 틈에 끼여 가리 20 가다가 오아시스에서 상쾌하게 물 마시리 털목도리랑 커피랑 사향이랑 사고 팔며 카라반과 함께 가리 어떠한 외길이라도 따라 나서리 사막에서 도시로, 도시에서 사막으로. 25 험난한 바윗길 오르내릴 때 위안이어라 하피스여, 그대의 노래 낙타 등에 높이 앉은 안내자 신나게 노래 부르면 별들 잠에서 깨어나고 30 도적들은 놀라 달아난다오. 온천에서, 주막에서 하피스 성인이여, 나 그대를 생각하리다. 사랑스런 아가씨 너울 살짝 열어제치어 살랑이는 머리카락 용연 향내 풍길 때면 말이요, 35 그렇소, 시인이 속삭이는 사랑의 말은 천상의 선녀들마저 설레게 한다 하질 않소. 너희가 시인의 이런 능력 시샘하려 든다면, 또는 심지어 그를 괴롭히려 까지 한다면, 한 가지만 알아 두라, 시인의 말은 40 언제나 나직이 파라다이스 문가 두드리며 떠돌고 있노라 영원한 생명을 갈구하면서. [강조: 필자] 43
우선 주목할 부분은 (<가인의 서> 권두에 붙은 모토를 제외하면) <서동시집>을 여는 첫 번째 시인 이 시의 제목 표기가 번역본에 따라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시의 원제목은 ‘Hegire’며, 최두환은 ‘헤지레’, 괴테독회는 ‘헤지르’, 김용민과 임우영은 ‘헤지라’, 전영애는 ‘에쥐르[헤지라]’로 표기했다. ‘Hegire’는 아랍어 ‘Hedschra’의 프랑스어 표기(hégire)에서 빌려온 것으로 <서동시집>의 아랍어 표기를 검토해 준, (괴테가 ‘친구’로 부르는) 코제가르텐(Kosegarten)은 수정 메모에서 아랍어식 표기는 독자에게 너무 낯설고 야만적으로 들릴 수 있으며 또한 이 단어는 프랑스식 표기를 통해 유럽에서 통용되었다고 설명한다(FA Ⅲ/1, 293; Ⅲ/2, 883). 괴테 자신이 독자를 배려하여 당시에 통용되는 표기를 선택한 점을 고려할 때, 이 제목은 오늘날 한국에서 통용되는 표현, 즉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헤지라’로 옮기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최두환의 번역은 대체로 원문의 내용에 충실한 편이나 부사나 어구를 보충하여 설명하는 식으로(“갈기갈기”, “부들부들”, “이러쿵저러쿵”) 시행의 길이가 길어지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사막으로부터 도시까지”(전영애 역)를 “사막에서 도시로, 도시에서 사막으로”와 같이 옮기는 식이다. 출간된 연도는 뒤따르는 번역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지만, 역자의 연배가(1935~) 높아서인지 “원천수”, “심저”, “하늘님”, “너울” 등 다소 고풍스러운 표현들이 자주 등장하며 “천상의 선녀들”처럼 자국화하는 경향도 보인다. 반면, 이후의 모든 번역은 ‘후리들’로 음차 표기하고 “이슬람교의 천국에 사는 영원한 성 처녀들”(김용민 역)과 같은 각주를 달았다. 이 시 번역의 경우에도 초역의 영향력은 막강함을 볼 수 있는데, 초역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지는 후속 번역의 사례를 보면 다음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