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적 떼 (Die Räuber)"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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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title =도적 떼 (Die Räube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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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프리드리히 쉴러의 5막극으로 1781년에 익명으로 발표되었다. 슈투름 운트 드랑 시대의 대표작으로 1782년 만하임에서 초연된 후 오늘날까지도 자주 공연된다. 외모가 추한 둘째 아들 프란츠는 일생 동안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의 형 카알이 학업을 위해 라이프치히에 머무르는 동안 프란츠는 아버지 | + | 프리드리히 쉴러의 5막극으로 1781년에 익명으로 발표되었다. 슈투름 운트 드랑 시대의 대표작으로 1782년 만하임에서 초연된 후 오늘날까지도 자주 공연된다. 외모가 추한 둘째 아들 프란츠는 일생 동안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의 형 카알이 학업을 위해 라이프치히에 머무르는 동안 프란츠는 아버지 막시밀리안 폰 모어 백작의 유산을 가로채기 위해 계략을 꾸며 아버지와 형을 속인다. 이에 카알은 아버지에게서 쫓겨났다고 믿고 사회적 불의에 복수하기 위해 도적 떼에 합류한다. 하지만 두 인물은 모두 실패한다. 모어 가문의 성을 차지한 양심 없는 지배자 프란츠는 도적 떼의 습격을 받고는 달아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카알 또한 자신이 행한 도적 행위와 살상 행위 때문에 점차 양심의 갈등에 빠진 채 스스로 법정에 출두하는 것으로 속죄한다. 가족 간의 갈등을 다루지만 동시에 사회적 갈등을 다룬 작품으로, 이 작품으로 쉴러는 일약 유명해졌다. 1955년 고금출판사 개집부의 편역이 나왔고, 1959년 박찬기가 <群盜>라는 제목으로 처음 완역했다(양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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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群盜 || 獨逸篇 || 縮少世界文字全集 3 || 쉴러 || 古今出版社 概輯部(고금출판사 개집부) || 1955 || 古今出版社 || 85-108 || 편역; 개작 || 개작; 편역 || | | 1 || 群盜 || 獨逸篇 || 縮少世界文字全集 3 || 쉴러 || 古今出版社 概輯部(고금출판사 개집부) || 1955 || 古今出版社 || 85-108 || 편역; 개작 || 개작; 편역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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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2 || 群盜 || 群盜 || 陽文文庫 59 || 쉴러 || 朴贊機(박찬기) || 1959 || 陽文社 || 1-198 || 완역 || 완역 || | + | | <div id="박찬기(1959)" />[[#박찬기(1959)R|2]] || 群盜 || 群盜 || 陽文文庫 59 || 쉴러 || 朴贊機(박찬기) || 1959 || 陽文社 || 1-198 || 완역 || 완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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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 群盜 || 世界名作 다이제스트 5, 군도 외 4편 || 世界名作 다이제스트 5 || 쉴러, F. || 正信社 編輯部(정신사 편집부) || 1959 || 正信社 || 12-43 || 편역 || 편역; 개작 || | | 3 || 群盜 || 世界名作 다이제스트 5, 군도 외 4편 || 世界名作 다이제스트 5 || 쉴러, F. || 正信社 編輯部(정신사 편집부) || 1959 || 正信社 || 12-43 || 편역 || 편역; 개작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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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 群盜(五幕) || 群盜(五幕) || <레싱, G.E. 外 ; 獨逸古典戱曲選> (世界文學全集) 87 || 프리드리히 폰 실러 || 姜斗植(강두식) || 1974 || 乙酉文化社 || 227-358 || 편역 || 완역 || | | 6 || 群盜(五幕) || 群盜(五幕) || <레싱, G.E. 外 ; 獨逸古典戱曲選> (世界文學全集) 87 || 프리드리히 폰 실러 || 姜斗植(강두식) || 1974 || 乙酉文化社 || 227-358 || 편역 || 완역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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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7 || 群盜 || 群盜 || 世界代表古典文學 6 || 실러 || 강두식 || 1982 || 韓國出版社 || 199-319 || 편역 || 완역 || | + | | <div id="강두식(1982)" />[[#강두식(1982)R|7]] || 群盜 || 群盜 || 世界代表古典文學 6 || 실러 || 강두식 || 1982 || 韓國出版社 || 199-319 || 편역 || 완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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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8 || 군도 || 군도 || 범우희곡선 17 || 프리드리히 실러 || 홍경호 || 2002 || 범우사 || 13-246 || 완역 || 완역 || | + | | <div id="홍경호(2002)" />[[#홍경호(2002)R|8]] || 군도 || 군도 || 범우희곡선 17 || 프리드리히 실러 || 홍경호 || 2002 || 범우사 || 13-246 || 완역 || 완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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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9 || 도적 떼 || 도적 떼 || Mr.Know 세계문학 || 프리드리히 폰 실러 || 김인순 || 2007 || 열린책들 || 6-150 || 완역 || 완역 || | + | | <div id="김인순(2007)" />[[#김인순(2007)R|9]] || 도적 떼 || 도적 떼 || Mr.Know 세계문학 || 프리드리히 폰 실러 || 김인순 || 2007 || 열린책들 || 6-150 || 완역 || 완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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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 도적 떼 || 도적 떼 || 열린책들 세계문학 55 || 프리드리히 폰 실러 || 김인순 || 2009 || 열린책들 || 9-242 || 완역 || 완역 || | | 10 || 도적 떼 || 도적 떼 || 열린책들 세계문학 55 || 프리드리히 폰 실러 || 김인순 || 2009 || 열린책들 || 9-242 || 완역 || 완역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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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11 || 도적 떼 || 도적 떼 || 고려대학교 청소년문학시리즈 17 || 프리드리히 폰 실러 || 이경미 || 2009 || 고려대학교 출판부 || 9-307 || 완역 || 완역 || | + | | <div id="이경미(2009)" />[[#이경미(2009)R|11]] || 도적 떼 || 도적 떼 || 고려대학교 청소년문학시리즈 17 || 프리드리히 폰 실러 || 이경미 || 2009 || 고려대학교 출판부 || 9-307 || 완역 || 완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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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 군도 || 군도 1 || 큰글 세계문학전집2 013 || 프리드리히 실러 || 강두식 || 2012 || 큰글 || 11-197 || 편역 || 완역 || | | 12 || 군도 || 군도 1 || 큰글 세계문학전집2 013 || 프리드리히 실러 || 강두식 || 2012 || 큰글 || 11-197 || 편역 || 완역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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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 군도 || 군도 2 || 큰글 세계문학전집2 014 || 프리드리히 실러 || 강두식 || 2012 || 큰글 || 11-193 || 편역 || 완역 || | | 13 || 군도 || 군도 2 || 큰글 세계문학전집2 014 || 프리드리히 실러 || 강두식 || 2012 || 큰글 || 11-193 || 편역 || 완역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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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A04}}<!--번역비평-->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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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 '''번역 현황 및 개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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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프리드리히 쉴러의 첫 희곡인 <도적 떼>는 독일 문학사에서는 단명했던 사조, 슈투름 운트 드랑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손꼽힌다. 작품의 주제어라고 할 수 있는 ‘자유’에 대한 열망은 권위적이고 난폭한 군주 칼 오이겐 공의 학교에서 7년 동안이나 원치 않는 학업을 수행할 수밖에 없었던 젊은 쉴러의 번민과 고통의 산물로 <도적 떼>에 직접적으로 투영되었다. 그 결과 이 작품은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갈등과 형제 갈등을 원동력 삼아 구태의연한 세대에 저항하는 도적들과 그 우두머리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급진적 경향을 띠게 된다. 이러한 연유로 작품을 출간해 줄 출판사를 찾지 못했던 쉴러는 1781년 익명으로 <도적 떼>를 자비 출판한다. 쉴러는 자신을 ‘편집자 Herausgeber’로 위장한 ‘서문 Vorrede’에서 왜 전통적인 극작법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는지 설명하고(슈투름 운트 드랑의 극미학), 작품의 진지한 이해를 위해서 이 작품을 ‘극적 이야기 eine dramatische Geschichte’, 다시 말하면 레제드라마로 꼼꼼히 ‘읽을’ 것을 요구한다.<ref>서문에서 쉴러는 왜 희곡, 그것도 레제드라마로서 이 장르를 선택했는지, 이를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설명하고, 특히 왜 도적들을 작품의 주인공으로 삼았는지, 그것을 통해 최종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세하게 논의한다. 신화와 문학에서 악명높은 주인공들, 클롭슈토크의 ‘아들라멜레히’, 밀턴의 ‘사탄’, 그리스 비극의 ‘메데아’,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3세’ 등을 언급하며, 사악한 캐릭터들이 불러일으키는 ‘경탄과 혐오 Bewunderung in Abscheu’, 그리고 그 극적 효과로서의 ‘전율 어린 경이로움 mit schauderndem Erstaunen’을 설명한다. 그러나 쉴러에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극적 효과에만 매료되어서는 안 되고, ‘그 속에 숨겨진 추악한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어야 하며 daß er das Laster nicht ziere, bei diesem, daß er sich nicht von einer schönen Seite bestechen lasse, auch den häßlichen Grund zu schätzen’, 바로 이러한 연유로 쉴러 자신은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릴 수 없다고 예단했다.</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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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출간 바로 이듬해인 1782년 1월 13일 <도적 떼>는 우여곡절 끝에 만하임에서 초연이 성사되는데, 당시 관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ref>“극장은 마치 정신병원 같았다. 관객들은 주먹을 쥐고 눈을 부릅뜨며 환호성을 질러 댔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끼리 흐느끼며 서로 부둥켜안았다. 여성 관객들은 마치 쓰러질 듯 문 쪽으로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모든 것이 혼돈처럼 녹아내렸고, 그 혼돈의 안개 속에서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졌다.”</ref>이러한 분위기는 함부르크, 라이프치히, 베를린, 슈투트가르트와 빈 공연까지 이어졌으며, 만하임에서의 초연 10년 후인 1792년에는 파리에서도 공연되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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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 작품은 개연성이 떨어지는 급진적 전개, 비극적 동기의 결여, 대사의 부자연스러움, 시간과 장소의 문제 등 형식적 미완결성으로 인해 비판받기도 하는데, 훗날 쉴러 자신도 이 작품을 ‘거칠다’고 평가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적 떼>를 쓰기 전 쉴러의 극작에 대한 사전 지식이 셰익스피어 포함 극 작품을 몇 편 읽은 것이 전부였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첫 희곡에서 거둔 성공만으로도 그가 극작가로서 천재천재적 재능을 지니고 있었음을 증명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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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도적 떼>의 국내 초역은 세계문학번역이 본격적인 활기를 띠기 시작한 원년인 1959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국립중앙도서관 소장자료 기준(2025.2.21.) 1963년 북한에서 출간된 번역 종을 포함하면 지금까지 총 8인의 번역자가 이 작품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으로 확인된다. 북한 번역본 제외 국내 번역본을 기준으로 하면 2000년 이전에 세 사람의 번역자가, 2000년 이후에는 네 명의 번역자가 이 작품을 새로 번역 출간했다. 1959년 박찬기가 초역을 내놓은 이래, 1973년에는 강두식이, 1990년에는 정영호가 선집 형태의 <도적 떼> 번역을 발표해, 대략 15년 정도의 시차를 두고 순차적으로 새로운 번역이 나왔고, 2000년대 이후에는 2002년 홍경호, 2007년 김인순, 2009년 이경미, 2023년 홍성광이 새로운 번역본을 출간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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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 중 정영호의 번역본을 제외한 나머지 번역자의 번역본들은 출판사 변경 등을 통해 여전히 시중에 유통 중이다. 다시 말하면 <도적 떼>를 읽고자 하는 오늘날의 독자들은 1959년의 초역부터 2023년 새롭게 번역된 최신 번역까지 65년여에 걸쳐 나온 상이한 번역본들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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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 '''개별 번역 비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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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 비평에서는 다음의 두 가지 관점을 중점적으로 비교 검토하면서, 개별 번역 종의 고유한 특성을 도출해보고자 한다. 우선, 1) 상기한 번역 현황을 고려하여 상이한 번역 종에 나타난 ‘언어적 시차’를 집중적으로 살펴본다. 일례로 번역된 제목에서도 이러한 시차는 확연히 느껴지는데, 초기 번역자에 속하는 박찬기, 강두식, 정영호, 홍경호는 제목으로 ‘군도’를, 2000년대 초반 번역자들인 김인순과 이경미는 ‘군(群)’을 순수 한글 ‘떼’로 변경하여 도적 떼로 쓰고 있다. 가장 근래에 새로운 번역을 내놓은 홍성광은 원제목 ‘Die Räuber’, 즉 복수 형태를 그대로 살려 ‘도적들’로 번역했다. 제목 번역에서 드러나는 언어적 차이는 두 가지 층위에서 주목할 만하다. 첫째, 동일한 원작에 대한 다양한 세대의 번역자가 써 내려간 65년에 걸친 <도적 떼> 번역사는 한국어의 변모 과정을 추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둘째, 원작이 18세기 후반 작품이라는 사실은 첫 번째 층위를 더 강화하는 장치로 기능할 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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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 이 작품의 주요 특징 중 하나는 엄격한 드라마 형식의 파기로, 이는 셰익스피어의 영향이자 그 결과로서 곧 슈투름 운트 드랑의 시학이 된다. 이 작품에서의 형식 파기는 삼통일 법칙의 포기뿐만 아니라 ‘데코룸’, 즉 적절한 시적 운율을 따르는 고상한 언어의 과감한 포기에서도 확인된다. 작품의 언어적 특징은 ‘격정의 수사학’, ‘반란적인 젊은 세대의 표현’, ‘격정적이며 가슴속에서 우러나는 정열적 언어’ 등으로 설명되고 있는데, 한마디로 요약하면 ‘격정적 고상 Pathetischerhabene’ 즉, “격정적인 제스추어, 수사학적인 언어, 그리고 도덕적인 고상한 태도”(Klaus L. Berghahn)로 집약될 수 있다. 무엇보다 당대 보편적인 희곡들과 달리 도둑 떼와 그 두목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언어적 파격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으며, 쉴러는 작품의 이러한 설정을 활용하여 등장인물 간의 언어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줌으로써 가치관, 계층, 나이 차이 등 ‘어느 정도의 개인성 eine gewisse Individualität’을 드러내고 이를 통해 갈등을 미학적 차원에서 구현한다. | ||
| + | 예를 들면, 주인공 카를은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은 지식인이면서도 구세대에 염증과 혐오를 느껴 도적 떼의 두목이 되는 격정적 인물이며, 그의 반대자인 동생 프란츠는 계몽주의, 합리주의 또는 그러한 주의를 가장한 기회주의의 대변자이다. 프란츠는 여러 차례의 독백을 통해 자기에게 유리한 상황을 도출하기 위한 사고의 과정을 투명하게 보여주는데, 일례로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하고, 그 질문들에 대해 스스로 답변함으로써 계략의 디테일을 다듬어 간다. 모어 백작의 부드러운 감상적 언어는 전통적인 준엄한 아버지 상에 위배되며, 그런 맥락에서 그는 못된 둘째 아들에 의해 희생된다. 일편단심 카를을 사랑하는 아말리아는 음악과 예술을 사랑하고, 자기 의견을 피력할 줄 아는 당당한 여성으로서 당대 유행하던 감상주의를 대변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마지막으로 도적들의 언어는 자연주의를 선취한 듯 무대에 어울리지 않는 정제되지 않은 거친 표현들을 담고 있다. 결국 쉴러는 대사를 통해 각 인물의 특성을 뚜렷하게 드러내고, 이를 통해 다시금 좁혀질 수 없는 인물 간의 갈등이나 간극을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번역된 대사가 이러한 개성을 얼마나 담아내고 있느냐 또한 <도적 떼>의 번역에서 중요한 쟁점이 될 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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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 '''[[#박찬기(1959)|박찬기 역의 <群盜>(1959/1996)]]<span id="박찬기(1959)R"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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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서울대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교수를 역임한 박찬기의 번역은 1959년 陽文社에서 출간된 초역이다. 번역본 맨 앞에 <靑年期의 쉴러와 <群盜>에 대하여>라는 解說을 삽입하여 작가와 작품을 소개한 뒤, 해당 해설의 마지막에 “실러 誕生 二百年 記念日을 앞두고”라고 써서 번역 출간의 의의를 재확인한다. 이 번역의 특징은 14년 후 발표되는 강두식의 번역과 비교할 때 오히려 더 현대적인 인상을 준다는 점이다. 실제 이 번역은 1975년 서문당에서 다시 출판된 이후, 1996년 개정판까지 나왔으며 1996년 개정판과 동일한 버전의 종이책과 이(e)북이 지금까지 판매 중인 것으로 확인된다. 1959년의 번역과 1996년의 번역은 이름이나 지명과 같은 고유명사 표기를 일부 경음에서 격음으로 변경한 것을 제외하면<ref>1959년 번역에서는 ‘Moor’를 ‘모올’로 번역한 반면, 1975년 번역에서는 ‘몰’로 바꾸어 번역하여 개악시킨 사례도 있다.</ref> 거의 바뀐 것이 없지만, 오늘날 읽기에도 크게 무리가 없을 정도이다. 이 번역이 쉽지 않은 작품의 국내 초역인데다 지금으로부터 약 65년 전 번역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대단히 성공적이라고 할 만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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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 번역에서 등장인물들의 대사는 큰 격양이나 고조 없이 무난하게 말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 이러한 특징은 강두식의 ‘격정적인’ 번역과 비교해 보면 더더욱 분명해진다. 다만 박찬기의 번역에서는 이상하게도 종교와 관련된 단어들이 혼란스럽게 사용되는 양상을 보인다. 예를 들면, 성당을 사원으로 번역하고, 신부와 목사를 혼용하거나, 신부를 승려라고 표현하고, 원문의 ‘Tausend Schwernoth!’를 “나무아비타불”(박찬기, 47)<ref>이 번역어는 강두식도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ref>로 번역하는 식이다. 이러한 자국화하는 번역은 초역에서는 어쩔 수 없는 시대적 한계를 고려한 배려였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개정판에서는 수정 반영될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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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 '''[[#강두식(1982)|강두식 역의 <群盜>(1982)]]<span id="강두식(1982)R"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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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두식은 서울대 독문과 교수를 역임한 독문학자이자 번역자이다. 강두식의 첫 번역은 1973년 韓國出版社에서 12권으로 출간한 世界代表古典文學全集 중 6권에 수록되어 있다. 독일 문학에 할애된 이 선집에는 쉴러의 全小說集(<靈視者>, <犯罪者>, <寬大한 行爲>, <菩提樹 밑의 散策>, <運命의 遊戲>)과 <群盜>, 그리고 레싱의 <賢人 나탄>이 순서대로 실려 있으며, 선집의 번역자는 강두식으로 되어 있지만, 선집 앞에 수록된 ‘解說’ <실러의 생애와 작품세계>, <실러의 산문에 대하여>, <레싱의 시민극>의 필자가 각각 강두식, 홍경호, 박환덕으로 명기되어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들이 해당 작품의 번역자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선집의 구성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조금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극작가로 알려진 쉴러의 몇 안 되는 소설들을 싣고 있다는 점과 레싱이 쉴러보다 앞 세대임에도 불구하고 쉴러의 작품들을 먼저 배치한 점이 특징적이기 때문이다. 선집은 검색상 1973, 1974, 1982년에 출간된 것으로 확인되지만, 실제 국립중앙도서관 홈페이지를 통해 ‘원문보기’가 가능한 것은 1982년이 유일하다. 따라서 여기서는 1982년 번역본을 검토한다. | ||
| + | 강두식의 번역은 모든 번역종 중에서도 뚜렷한 개성을 드러내는 번역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이러한 개성이 가장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지점으로는 1막 1장의 편지 번역과 1막 2장 카를의 첫 등장 장면을 꼽을 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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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우선 편지 낭독 장면을 살펴보자. 주인공 카를의 동생인 프란츠는 장자의 자리를 탐내어 아버지와 형을 이간질하기 위해 형의 만행을 고발하는 조작된 편지를 아버지에게 읽어준다. 드라마에서 편지의 낭독은 문어와 구어가 충돌하는 지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특히 독일어에 비해 한국어에서는 아직도 문어와 구어의 차이가 상당하기에 드라마에서 편지를 번역할 때는 문체적 간극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 다른 번역에서도 이 부분의 문어성을 의도적으로 강조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강두식은 이 문체적 간극을 극적으로 과장한다.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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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프란쯔''' (편지를 읽는다) 「라이프치히에서 5월 초하루 백씨(伯氏)에 관해서 소생이 알 수 있었던 점은 귀하께 조금도 숨기지 않기로 약속한 바는 있사오나,<br> | ||
| + | 만일 그런 속박이 없었던들 소생의 무고한 붓이 인형에 대해서 이렇게 폭군 노릇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br> | ||
| + | 기왕에 인형(仁兄)으로부터 배수(拜受)한 그 수많은 서신으로 짐작컨대,<br> | ||
| + | 이런 소식은 틀림없이 현재의 정리(情理)에 상처를 입힐 것으로 짐작합니다.<br> | ||
| + | 기왕에도 소생은 인형이 그런 흉악무도한 백씨를 위해서……」 […]<br> | ||
| + | 「그리고 소생은 고령이시고 신앙이 두터우신 인형의 춘부장께서 대경실색하시어…….」 […] <ref>강두식, 200</ref><br> | ||
| + | |||
| + | '''프란쯔''' 「대경실색 하시어 교의에 쓰러지시고,<br> | ||
| + | 처음 혀도 잘 돌지 않는 말로 아버지라고 부르던 그날을 저주하시게 될 것으로 짐작하옵니다.<br> | ||
| + | 물론 세상 사람들은 모든 비밀을 소생한테 털어놓기를 꺼리고,<br> | ||
| + | 인형의 귀에 들어가게 되는 것 역시 소생이 알고 있는 것 중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br> | ||
| + | 백씨께서는 현재 추악한 행위가 극(極)에까지 이른 듯 보이는데,<br> | ||
| + | 원래 백씨의 천재성은 소생 같은 것으로는 미칠 수가 없을 정도이므로,<br> | ||
| + | 사실 그런 행동이 어느 정도까지 발전하게 될 것인지 소생도 짐작을 할 수가 없을 지경입니다.」 […] <ref>강두식, 200</ref><br> | ||
| + | |||
| + | '''Franz''' (liest). »Leipzig, vom 1sten Mai.<br> | ||
| + | Verbände mich nicht eine unverbrüchliche Zusage, dir auch nicht das Geringste zu verhehlen,<br> | ||
| + | was ich von den Schicksalen deines Bruders auffangen kann, liebster Freund,<br> | ||
| + | nimmermehr würde meine unschuldige Feder an dir zur Tyrannin geworden sein.<br> | ||
| + | Ich kann aus hundert Briefen von dir abnehmen, wie Nachrichten dieser Art dein brüderliches Herz durchbohren müssen;<br> | ||
| + | mir ist's, als säh' ich dich schon um den Nichtswürdigen, den Abscheulichen […]<br> | ||
| + | »mir ist's, als säh' ich schon deinen alten, frommen Vater todtenbleich« […] <ref>Schiller, 10</ref><br> | ||
| + | |||
| + | '''Franz''' – »todtenbleich in seinen Stuhl zurücktaumeln und dem Tage fluchen,<br> | ||
| + | an dem ihm zum erstenmal Vater entgegengestammelt ward.<br> | ||
| + | Man hat mir nicht Alles entdecken mögen, und von dem Wenigen, das ich weiß, erfährst du nur Weniges.<br> | ||
| + | Dein Bruder scheint nun das Maß seiner Schande erfüllt zu haben;<br> | ||
| + | ich wenigstens kenne nichts über dem, was er wirklich erreicht hat,<br> | ||
| + | wenn nicht sein Genie das meinige hierin übersteigt. […]« <ref>Schiller, 10</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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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 편지글에서는 ‘초하루’, ‘백씨’, ‘소생’, ‘귀하’, ‘인형’, ‘배수’, ‘정리’, ‘춘부장’, ‘대경실색’, ‘교의’ 등 오늘날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한자어들을 사용하고, ‘있사오나’, ‘하시어’, ‘하옵니다’, ‘정도이므로’, ‘지경입니다’와 같이 극존칭 또는 완곡어법을 사용하여 문어체적 경향을 강화한다. 실제 프란츠는 편지를 낭독하는 사이사이 혼잣말을 하거나 아버지 모어 노인에게 말을 걸기도 하는데, 이러한 방식의 구어의 개입은 편지의 문체를 더 부각하는 효과를 낸다. 물론 이러한 번역 스타일은 기본적으로는 번역자 개인 또는 세대의 언어(감각)에 기초한 것일 것이다. 그런데 이 번역은 강두식의 번역보다 15년 앞선 박찬기의 번역본과 비교해도 훨씬 고풍스러운 인상을 주기에, 이것이 번역자에 의해 의도된 과장일 수도 있다는 추측도 가능해진다.<ref>'''프란츠''' (편지를 읽는다) ‘라이프치히에서 보냄. 5월 초하룻날. 귀하의 형님에 대한 모든 일을 숨김없이 알려 드리겠다는 어김없는 약속을 귀하와의 사이에 맺지만 않았던들, 소생의 죄 없는 이 글이 귀하의 마음을 폭군과 같이 뒤흔들어 놓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미 귀하에게 받은 수많은 편지로 보아, 이와 같은 소식이 필연코 귀하의 형제에 대한 우애심을 심히 손상시킬 것이라고 추측하는 바입니다. 소생은 벌써 귀하가 그 비열하고 흉악한 형님 때문에……’ […] ‘그리고 소생은 늙으신 당신의 경건한 부친께서도 이 편지를 보시고 사색이 되시는 것을 눈앞에 뵈옵는 것만 같습니다.’ <br> | ||
| + | '''프란츠''' ‘그리고 소생은 늙으신 당신의 경건한 부친께서도 이 편지를 보시고 사색이 되시는 것을 눈앞에 뵈옵는 것만 같습니다. 귀하의 형님께서는 현재 그 추행의 극단에 도달한 것같이 보이며, 소생의 재주가 귀형의 천재를 멀리 따라가지 못하는 바이오니, 지금 어느 정도까지 도달한 것인지는 소생으로서도 알 도리가 없는 바입니다.’(박찬기 23-24)</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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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번역자가 의도하는 바는 무엇일까? 이 편지글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작품의 ‘시간성’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쉴러의 작품이 18세기 후반으로부터 기원하고, 작품의 배경은 쉴러가 실제 살았던 시대의 억압적 분위기를 재현하고 있다는 번역서 서두에 배치된 해설을 통해 습득한 사전 지식은 분명히 이 편지글을 통해 환기될 수 있다. 물론 이 번역어들이 18세기 후반의 독일어에 정확하게 상응하는 것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2007년 이후의 번역들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는 경향들, 즉 동시대화된 언어, 자연스러운 리듬, 가독성의 추구 등과 비교해 보면, 강두식의 번역이 드러내는 원작의 ‘시간성’은 매우 분명해진다. 그래서 비록 이 번역이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나이 든’ 번역으로 보일지라도, 그것이 결코 단점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
| + | 강두식 번역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두 번째 지점은 1막 2장에 나온다. 카를이 처음으로 직접 등장하는 이 장면은 평범한 도적 떼와는 다른 카를의 지적인 면모와 그러면서도 세상에 불만을 가진 반항적 면모를 함께 담아낸다. 냉소와 반어가 가득한 이 첫 대사를 강두식은 다음과 같이 번역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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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카알''' 천상에서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의 훨휠 타는 불길은 이제 꺼져버렸네.<br> | ||
| + | 그 대신 인간놈들이 지금 사용하고 있는 것이 석송 가루지, 그 무대에서 쓰는 불 말일세.<br> | ||
| + | 담뱃불도 부칠 수 없는 물건이지.<br> | ||
| + | 그놈들은 마치 헤라클레스의 몸뚱이에 달라붙은 쥐새끼처럼 여기저기 기어 다니면서 헤라클레스의 불알 속에 든 것이 무엇인가 하고,<br> | ||
| + | 또 두개골에서 골수를 빼내서는 연구를 한단 말일세.<br> | ||
| + | 알렉산더는 겁쟁이였다고 강의를 하는 프랑스의 신부 녀석이 있는가 하면,<br> | ||
| + | 폐병으로 골골하는 대학 교수 녀석은 한 마디할 때마다 암모니아의 정신 나는 병을 코끝에다 갖다 대면서도 <힘에 대해서> 어쩌구저쩌구 늘어놓고 있거든.<br> | ||
| + | 애새끼를 만들 적마다 정신이 아찔한 선생 녀석들이, 한니발의 전술의 결점을 찾아낼 수 있단 말인가.<br> | ||
| + | 아직 젖비린내 나는 놈들이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해서 칸네 전쟁기의 문귀를 뒤지고 스키피오의 승리에 대해서 입을 비죽거리고 있거든. <ref>강두식, 208–209</ref><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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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카를''' 하늘에서 불을 훔쳐 내온 프로메테우스의 불꽃은 다 타버리고 말았다!<br> | ||
| + | 그 대신 인간들은 요즈음 석송(石松)가루의 불을 사용하고 있지.<br> | ||
| + | 무대에서 쓰는 가짜 불 말이야.<br> | ||
| + | 그것은 담뱃불도 붙이지 못하는 물건이니까,<br> | ||
| + | 그들은 헤라클레스의 막대기에 있는 생쥐들처럼 이리저리 기어다니며 그 불알의 내용이 어떠한 것인가를, 머리를 짜서 연구하고 있단 말이야.<br> | ||
| + | 알렉산더는 겁쟁이였다고 강의하는 프랑스의 승려가 있는가 하면,<br> | ||
| + | 폐병에 걸린 대학 교수가 한마디의 말을 할 때마다 암모니아 흥분제를 코에 갖다 대며 '힘'에 대하여 강의를 하고 있는 형편이야.<br> | ||
| + | 어린 아이를 만들 때마다 기절할 지경인 작자들이 한니발의 전술에 대해서 비평하고,<br> | ||
| + | 머리에 피도 안마른 건방진 것들이 번역을 한답시고 칸네 전쟁 기록의 구절을 캐내는가 하면,<br> | ||
| + | 스키피오의 승리에 대해서 눈물을 흘린단 말이야. <ref>박찬기 1996, 40–41</ref><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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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Moor.''' Der lohe Lichtfunke Prometheus' ist ausgebrannt, dafür nimmt man jetzt die Flamme von Bärlappenmehl – Theaterfeuer, das keine Pfeife Tabak anzündet.<br> | ||
| + | Da krabbeln sie nun, wie die Ratten auf der Keule des Hercules, und studieren sich das Mark aus dem Schädel, was das für ein Ding sei, das er in seinen Hoden geführt hat.<br> | ||
| + | Ein französischer Abbé dociert, Alexander sei ein Hasenfuß gewesen;<br> | ||
| + | ein schwindsüchtiger Professor hält sich bei jedem Wort ein Fläschchen Salmiakgeist vor die Nase und liest ein Collegium über die Kraft.<br> | ||
| + | Kerls, die in Ohnmacht fallen, wenn sie einen Buben gemacht haben, kritteln über die Taktik des Hannibals –<br> | ||
| + | feuchtohrige Buben fischen Phrases aus der Schlacht bei Cannä und greinen über die Siege des Scipio, weil sie sie exponieren müssen. <ref>Schiller, 19</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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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두식의 번역에서 ‘인간놈들’, ‘몸뚱이’, ‘쥐새끼’, ‘신부 녀석’, ‘골골하는’, ‘교수 녀석’, ‘어쩌구저쩌구’, ‘애새끼’, ‘선생 녀석’, ‘젖비린내 나는 놈들’과 같은 표현들이 어떻게 카를의 캐릭터에 냉소적이고 반항적인 면모를 투영하는지는 박찬기의 번역과 비교해 보면 상대적으로 잘 드러난다. 물론 이런 식의 번역은 경우에 따라선 과장된 것으로 평가받을 여지도 다분하다. 그러나 카를이 곧 도적 떼의 두목으로 추대된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쉴러가 이 작품을 레제드라마로 집필했다는 점, 그리고 오늘날 한국에서 대부분의 드라마들이 ‘레제드라마’로만 읽힌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이러한 과장은 독자의 상상력과 오감을 자극하는 생동감을 매개하는 순기능을 지닐 수도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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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강두식 역의 <군도>(201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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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두식 번역에서 특징적인 점 중 하나는 기존 번역이 2012년에도 출판사와 판형을 달리해 단독 출판되었다는 점이다. 이 번역서는 ‘도서출판 큰글’이라는 곳에서 낸 ‘큰글세계문학전집2’ 시리즈 중 13권으로 출간되었으며, ‘저시력자’의 ‘책 읽을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A4사이즈 판형에 큰 폰트로 디자인되어 있다. 특히 이 책은 ‘보이스아이’라는 앱을 통해 매 페이지 우측 상단에 찍혀 있는 QR코드를 찍으면 해당 페이지를 읽어주는 서비스도 함께 제공한다. 다만 이 시리즈에서는 디자인상 어쩔 수 없이 볼륨이 커져 <군도>를 1, 2권으로 나눠 놓았고, 각 권당 가격을 29,000원으로 책정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실제 판매량이 높진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 시리즈가 2010년부터 출간되기 시작했으니, 그 사이 오디오북 시장의 급속한 성장으로 인해 그 영향력은 미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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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좋은 취지와는 별개로 해당 번역서는 간과하기 어려운 오류도 범하고 있다. 표지 뒷면에 큰 글씨로 “자유를 향한 열정과 사회 비판을 형제의 반목이란 소재로 표현한 희극 <군도>”라고 작품을 소개한다. 아울러 등장인물 이름인 고유명사를 오기하거나(‘슈피겔 베르크’), 등장인물과 대사를 혼동하여 잘못 편집된 부분도 여러 차례 눈에 띈다. 어쨌든 이 번역본은 현재도 판매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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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3) '''[[#홍경호(2002)|홍경호 역의 <군도>(2002)]]<span id="홍경호(2002)R"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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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한양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를 역임한 홍경호의 번역은 2002년 범우사 시리즈의 일환으로 출간되어 현재도 같은 출판사를 통해 유통 중이다. 책의 구성은 <이 책을 읽는 분에게>라는 제목하에 번역자의 길지 않은 작품 해설 및 번역의 변(“번역을 마치며 독자들의 아낌없는 질타와 충고를 바란다”)으로 시작하고, 쉴러 연감으로 마무리된다. 강두식의 1막 편지 번역에서 사용된 특징적 어휘들, 예를 들면, “백씨(伯氏)”(홍경호, 17), “소생”(홍경호, 17), “성화같이 배상”(홍경호, 19), 상당 부분 의역된 “대단한 비분 강개일세 Das ist ja recht alexandrinisch geflennt.”(홍경호, 35)<ref>해당 부분은 박찬기는 “이건 또 아주 굉장히 유식한 한탄인데!”로, 김인순 이후의 번역자들은 대부분 “참으로 따분한 일들일세.” 정도로 번역하고 있다.</ref>와 같은 표현들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고, ‘두령’이라는 단어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번역은 강두식 번역본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아마도 1973년 강두식의 <군도>가 실린 선집을 두 사람이 함께 작업한 인연과 연관이 있을 듯 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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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홍경호의 번역은 강두식의 번역에 비해 차분한 인상을 주는데, 이는 강두식의 번역에서 나타나는 경향, 즉 단호한 어조와 거친 말투를 구현하기 위해 문장을 쪼개고, 문장 배치를 도치하는 등의 파격을 정서하고 현대화하는 방식으로 윤문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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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4) '''[[#김인순(2007)|김인순 역의 <도적 떼>(2007)]]<span id="김인순(2007)R"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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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독문학을 전공한 전문 번역가 김인순의 번역은 열린 책들의 세계문학 시리즈 중 하나로 출간되었다. 이 번역은 <군도> 번역사에서 전환점이 되는 번역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바로 전 번역인 홍경호의 번역과는 5년 정도의 시차를 두고 출간되었지만, 두 번역본 사이의 언어 차이가 상당히 크기 때문이다. 이는 홍경호의 번역이 2002년 처음 출간되었다고는 하나, 강두식의 번역에 영향을 받았으며, 상기한 바와 같이 상당히 고풍스러운 어휘들을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과도 무관하지 않다. | ||
| + | 김인순은 18세기의 작품임을 의식한 듯 ‘~합니까?’, ‘~냐?’ ‘~하네’, ‘~하도다!’ ‘~구나!’ 등 예스러운 종결어미들을 적극적으로 차용한다. 그러나 더 이상 강두식이나 홍경호의 번역본에서 보았던 눈에 띄는 옛 어휘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이 번역본은 종결어미에서만 원작의 시간성을 감지할 수 있을 뿐 어휘는 대부분 현대화되어 동시대 독자와의 거리감을 좁힌다. | ||
| + | 이 번역이 지니는 또 다른 전환적 의의는 김인순의 번역부터 ‘각주’가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확인된다. 문학 작품에서의 ‘각주’ 사용에 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지만, 일반인들이 읽는 문학 전집에 본격적인 각주를 도입한다는 것은 독자의 전문성을 존중하는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 문학 작품의 독서에 진지하게 임하는 태도 또는 그래야 한다는 당위성이 보편적 합의가 되어 가고 있다는 징후로 읽힐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양상은 김인순의 번역, 이경미의 번역을 거쳐 이들 번역과는 또 15여 년 가까이 시차를 두고 출간된 홍성광의 번역에서 더 강화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 ||
| + | 김인순의 번역도 전반적으로 등장인물들의 개성, 특히 카를이나 도적 떼의 거친 수사학을 과감하게 드러내는 번역 태도를 취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돋보이는 지점은 여성 등장인물인 아말리아의 캐릭터를 구현하는 다음과 같은 장면에서 잘 드러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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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아말리아''' 벌레 같은 당신이 명령을 내린다고? 나한테 명령을? 그 명령에 코웃음으로 답한다면?(김인순, 130) | ||
| + | '''아말리아''' 버러지 같은 당신이 명령을 내린다고요? 내게 명령을 내린다고요? 그 명령에 코웃음을 친다면요?(홍성광, 155) | ||
| + | '''Amalia.''' Wurm du, befehlen? mir befehlen? — und wenn man den Befehl mit Hohnlachen zurückschickt?(Schiller, 7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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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우선 이 인용문은 홍성광의 번역이 김인순의 번역에 영향을 받았을 수 있음을 보여주면서도, 반말과 높임말의 차이가 어감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도 확인시켜준다. 바로 이어지는 장면에서 아말리아가 자신을 모욕하는 프란츠에게 칼을 겨누게 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높임말 번역은 다음 장면에서의 반전이 급작스럽다는 인상을 줄 수 있는 반면, 김인순의 반말 번역은 아말리아가 강단 있고, 강인한 면모를 가진 여성이라는 것을 안정적으로 구현하도록 보조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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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5) '''[[#이경미(2009)|이경미 역의 <도적 떼>(2009)]]<span id="이경미(2009)R"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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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고려대학교에서 독문학을 전공하고, 현재는 공연예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경미의 번역은 고려대학교출판부에서 발행하는 <고려대학교 청소년문학시리즈> 17권으로 출간되었다. 번역자가 공연예술, 특히 실무 연극에 대한 이해가 깊을 뿐만 아니라, 이 시리즈가 청소년을 주 독자층으로 삼고 있는 점을 고려했기 때문인지 이 번역은 다른 어떤 번역보다 구어의 자연스러운 구현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고유한 특징을 드러낸다. 그러나 1막 2장 카를의 첫 대사를 비교해 보면 이 번역이 바로 앞서 번역된 김인순의 번역에 상당히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점은 부인될 수 없을 것 같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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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카를''' 프로메테우스의 활활 타오르던 불길은 꺼져 버리고, 사람들은 이제 극장에서 사용하는 석송(石松)' 가루 불꽃으로 만족하고 있어.<br> | ||
| + | 담뱃불조차 붙이기 어려운 그 불 말일세.<br> | ||
| + | 저들은 쥐새끼들처럼 헤라클레스의 몽둥이에 달라붙어 기어 다니고, 두개골의 골수를 빼내어 불알 속에 무엇이 들어 있었는지 연구한다네.<br> | ||
| + | 어느 프랑스 성직자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겁쟁이였다고 설교하고,<br> | ||
| + | 어느 폐병쟁이 대학교수는 한마디 할 때마다 암모니아수 병을 코끝에 갖다 대는 주제에 힘에 대해 강의를 펼친다네.<br> | ||
| + | 애새끼 하나 만들면서 녹초가 되어 나가떨어지는 녀석들이 한니발의 전술을 이러쿵저러쿵 헐뜯는가 하면,<br> | ||
| + | 아직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들이 잘난 척하고 싶어 어디선가 주워들은 칸나이 대전의 문구들을 논하고 스키피오의 승리를 놓고 말싸움을 벌인다네.<br> | ||
| + | '''슈피겔베르크''' 참으로 따분한 일들일세. <ref>김인순, 30–31</ref><br><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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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카를''' 활활 타오르던 저 프로메테우스의 불길은 꺼져버리고, 이제 사람들은 고작 극장에서 쓰는 석송石가루불꽃으로 만족하고 있어.<br> | ||
| + | 그들은 쥐새끼처럼 헤라클레스의 몽둥이에 달라붙어 기어다니고, 두개골에서 골수를 빼내서는 불알 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 연구한다네.<br> | ||
| + | 어느 프랑스 성직자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겁쟁이였다고 설교하고,<br> | ||
| + | 어느 폐병쟁이 교수는 말 한마디 할 때마다 암모니아수 병을 코끝에 갖다 대는 주제에 힘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지.<br> | ||
| + | 애새끼 하나 만들려면 힘에 부쳐 녹초가 되어 나가 떨어지는 놈들이, 한니발의 전술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어 대고,<br> | ||
| + | 아직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들이 잘난 척하고 싶어 어디선가 주워들은 칸나이 전투의 문구들에 대해 논하고,<br> | ||
| + | 스키피오가 거둔 승리를 놓고 말씨름을 한다네.<br> | ||
| + | '''슈피겔베르크''' 참 따분한 일이지. <ref>이경미, 33–34</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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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6) '''홍성광 역의 <도적들>(202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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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독문학자 출신 전문 번역자인 홍성광의 번역은 2023년 출간된 가장 최근의 번역으로 민음사 세계문학 시리즈 중 하나로 출간되었으며, 이 희곡의 번역 중 저본을 표기한 유일한 번역본이다. 번역자로서 다작을 (번역)하는 홍성광의 번역들은 전반적으로 문장이 유려하고, 흐름이 좋다. 이는 가독성을 우선순위로 두는 번역자의 번역 의도에 기인한 듯하다. 일례로 홍성광의 희곡 번역에서 긴 대사는 항상 원문의 편집 상태와는 별개로 임의로 줄바꿈이 되어 있는데, 이 또한 가독성을 높이기 위한 번역자의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 ||
| + | 다만 대개는 장점으로 작용하는 매끄럽고 잘 윤문된 그의 가독성 높은 문체들은 <도적 떼>에 매우 잘 어울린다는 인상을 주지는 못한다. 이 작품은 쉴러 자신의 말을 빌리자면 ‘거친’ 작품이며, 그 거친 특성이 특히나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구세대에 대한 저항, 자유를 위한 투쟁을 몸소 실천하려는 슈투름 운트 드랑 미학의 구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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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카를''' 프로메테우스의 활활 타오르던 불꽃은 꺼져 버리고, 사람들은 그 대용품으로 석송(石松) 가루불꽃을 사용하고 있어.<br> | ||
| + | 담뱃불도 붙일 수 없는 무대용 불 말일세.<br> | ||
| + | 그들은 쥐새끼처럼 헤라클레스의 몽둥이 위를 기어다니고, 두개골의 척수를 빼내 고환 속에 뭐가 들었는지 연구한다네.<br> | ||
| + | 프랑스의 어느 신부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겁쟁이였다고 설교하고,<br> | ||
| + | 폐병 걸린 어느 대학교수는 말을 한마디 할 때마다 코끝에 암모니아수병을 갖다 대는 주제에 힘에 대한 강의를 늘어놓는다네.<br> | ||
| + | 애 하나 만들면서 녹초가 되는 녀석들이 한니발의 전술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헐뜯고……<br> | ||
| + |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들이 어디서 주워들은 칸나이 전투에서 나온 문구를 떠벌리고,<br> | ||
| + | 스키피오의 승리를 놓고 이런저런 말다툼을 벌인다네. <ref>홍성광, 35</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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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신랄한 풍자와 반어를 담고 있는 카를의 대사 번역에는 반어가 완전히 반감된 것은 아니지만, 강두식의 번역이나 김인순의 번역과 비교하면 리듬감 있게 말하는 점잖 빼는 식자의 모습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바로 위에서 인용한 아말리아의 대사도 비슷한 기조를 보인다. 중립적인 단어들과 리드미컬하고 매끄러운 문장들은 더할 나위 없이 읽기 좋지만, 오히려 그 높은 가독성 때문에 스물둘의 넘치는 패기로 세상을 뒤흔들어보겠다는 쉴러의 정제되지 않은 열망이 반감되어 버리는 역효과가 생긴다는 점은 이 번역의 유일한, 그러나 무시할 수 없는 흠이 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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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공익현 역의 <군도>(196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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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통일부 산하 북한자료센터 소장자료인 이 번역본은 ‘조선 문학 예술 총 동맹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가격은 77전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10,000부 발행”이라고 해서 발행 부수를 표기한 점이 한국의 출판문화와는 차이를 보인다. ‘청년문학’, ‘조선문학’, ‘로동신문’, ‘문학신문’ 등 북한에서 발행되는 잡지와 신문에 ‘쉴러 서거 一백五0주년 기념의 밤’과 같은 행사 기사 등 쉴러 관련 기고문이 여러 차례 실린 것으로 보아 북한 사회의 쉴러에 대한 관심이 (특히 1960년대)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쉴러의 작품 중에서도 <도적 떼>가 번역된 데에는 이 작품이 “지배자와 피지배자 간의 모순이 격화되어 있는 사회 제도에 대한 젊은 쉴러의 반항의 기치”(박홍석, 69)를 담고 있으며, 작품 첫 부분에 인용된 “약으로 고칠 수 없는 자는 칼로 고치고, 칼로 고칠 수 없는 자는 불로 고친다”는 히포크라테스의 명언을 직접적인 “혁명적 호소”로 읽었기 때문인 듯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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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군도>의 역자는 <프리드리히 쉴러와 <군도>>라는 역자 서문에서 18세기 후반에 대한 엥엘스의 진단<ref>“하나의 썩어 문들어져 가는 집단이였다. 농민들, 상인들, 수공업자들은 탐욕적인 정부와 불경기의 이중적 압박을 받고 있었다. 모든 것은 추태를 나타내였고 전국적으로 불만이 지배하였다. 교육도, 대중의 지혜를 계발시킨 수단도, 출판의 자유도, 여론도 없었고 다른 나라들과의 무역도 전혀 없었다. 도처에 가증스러운 현상들과 러기주의만이 있었다 … 모든 것이 부패하고 진동하고 붕괴에 직면하고 있었으나 인민 속에는 로후한 기관의 썩어 문들어진 송장을 쓸어 낼 만한 력량이 없었으므로 유리한 전변을 기대할 수도 없었다.”(공익현 1963, 3)</ref>으로 시작하여, 이 작품에 선취된 계급 혁명적 태도를 강조한다. 아울러 이러한 당대 현실을 악명높은 비텐베르크 영주 칼 오이겐을 통해 직접 경험한 쉴러가 “독일 인민의 민족 의식 형성과 통일적 독일 국가를 위한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가한 시인”으로서 억압체제에 대한 “독일 인민들”의 “반항을 불러 일으켰다”고 평가하며 작품의 의의를 강조한다.<ref>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부합하지 않는 작품의 결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인다. “쉴러는 칼 모오로의 후회를 결코 정당한 사회를 건설하려는 사람들의 최종적 결론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도리어 그는 자기의 그후 작품들에서 이 위대한 과업 해결에로 각방으로 접근하고 있다. <군도>는 그가 선포하고 있는 사회적 사상이 모호하고 많은 모순을 내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8세기 독일 문학의 그 어느 작품보다도 독일 인민의 민족 의식을 각성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공익현, 6)</ref> 한국 전쟁 종전 후 10년 정도밖에 안 된 시점에 출간된 번역이라 그런지 이 번역본은 그보다 4년 앞서 출간된 박찬기의 번역이나 또는 그보다 9년 후에 출간된 강두식의 번역과 현격한 차이를 보이지는 않는다. 예를 들면, 이 번역본에서는 오늘날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두령”이라는 단어가 Hauptmann의 번역어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 번역어는 위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강두식의 번역에서도 사용된 단어이다. 이런 어휘의 사용은 오히려 비슷한 시기 남한과 북한의 번역이, 상당한 시차를 둔 남한 번역 종보다 더 가깝게 느껴지게 하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이가 있다면, 두음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단어들이나 “~하라우”, “말이구나”와 같은 종결어미를 통해 이북 억양을 느낄 수 있으며, 시간과 장소를 “때”와 “곳”으로 표기한 것에서는 북한의 순우리말 정책의 영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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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3. '''평가와 전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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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시대에 따른 다양한 번역 종의 비교·분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번역이 꾸준히 나와야 할 필요성을 몸소 입증한다. 또한 그러면서도 여기서 옛 번역의 의의도 재확인해 볼 수 있었다. 동시대의 언어 감각에 맞는 신세대 번역과는 별개로, 고풍스러운 어조를 담은 옛 번역은 무엇보다 역시나 고풍스러운 원문의 ‘시간성’을 지속적으로 환기해 준다는 점에서 독특한 향수를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사라져가는 한국어 어휘들의 보물창고 역할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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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무엇보다 저본 표기나 서문 번역의 누락과 같은 반복된 실수는 새로운 <도적 떼> 번역이 극복해야 할 문제임은 분명하다. 아울러 새로운 번역에서는 드라마 장르적 특수성이나 극작가의 의도를 조금 더 조직적이고 적극적으로 번역에 반영해야 할 필요성도 요구된다. 쉴러는 <도적 떼>를 애초에 상연 가능성을 배제한 레제드라마로 집필하였는데, 이러한 작가의 의도는 독서를 통해서도 등장인물을 개성과 상호 갈등이 확연히 드러나도록 구성된, 풍부한 제스처를 담은 지문과 대조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언어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따라서 등장인물에 따른 어휘나 어조의 급격한 변화 등을 번역어에서도 일관성 있게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이나 전략 등을 모색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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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마지막으로 <도적 떼>의 번역 비평은 연구 분야의 외연 확장 차원에서도 영감을 제공한다. 우선 북한 자료와의 비교, 분석은 북한에서의 독일 문학의 해석 방식이나 이데올로기적 접근 방식에 대해 검토해 볼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번역 자료는 북한어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도 유의미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번역서의 경우 동일한 원작이라는 기준을 두고 번역어 비교 검토가 가능하기에, 언어 사용에 있어 보다 분명한 차이 등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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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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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박찬기(1959): 群盜. 양문사.<br> | ||
| + | 박찬기(1996): 군도. 서문당.<br> | ||
| + | 강두식(1982): 群盜. 세계대표고전문학전집 6권. 한국출판사.<br> | ||
| + | 정영호(1990): 群盜. 世界文學大全集 9. 金星出版社.<br> | ||
| + | 강두식(2012): 군도 1 · 2. 도서출판큰글.<br> | ||
| + | 홍경호(2002): 군도(群盜). 범우사.<br> | ||
| + | 김인순(2007): 도적 떼. 열린책들.<br> | ||
| + | 이경미(2009): 도적 떼. 고려대학교청소년문학시리즈 017. 고려대학교출판부.<br> | ||
| + | 홍성광(2023): 도적들. 민음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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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div style="text-align: right">양시내</div>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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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각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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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27일 (금) 00:07 기준 최신판
프리드리히 쉴러(Friedrich Schiller, 1759-1805)의 희곡
| 작가 | 프리드리히 쉴러(Friedrich Schiller) |
|---|---|
| 초판 발행 | 1781 |
| 장르 | 희곡 |
작품소개
프리드리히 쉴러의 5막극으로 1781년에 익명으로 발표되었다. 슈투름 운트 드랑 시대의 대표작으로 1782년 만하임에서 초연된 후 오늘날까지도 자주 공연된다. 외모가 추한 둘째 아들 프란츠는 일생 동안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의 형 카알이 학업을 위해 라이프치히에 머무르는 동안 프란츠는 아버지 막시밀리안 폰 모어 백작의 유산을 가로채기 위해 계략을 꾸며 아버지와 형을 속인다. 이에 카알은 아버지에게서 쫓겨났다고 믿고 사회적 불의에 복수하기 위해 도적 떼에 합류한다. 하지만 두 인물은 모두 실패한다. 모어 가문의 성을 차지한 양심 없는 지배자 프란츠는 도적 떼의 습격을 받고는 달아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카알 또한 자신이 행한 도적 행위와 살상 행위 때문에 점차 양심의 갈등에 빠진 채 스스로 법정에 출두하는 것으로 속죄한다. 가족 간의 갈등을 다루지만 동시에 사회적 갈등을 다룬 작품으로, 이 작품으로 쉴러는 일약 유명해졌다. 1955년 고금출판사 개집부의 편역이 나왔고, 1959년 박찬기가 <群盜>라는 제목으로 처음 완역했다(양문사).
초판 정보
Schiller, Friedrich(1781): Die Räuber. Frankfurt/Leipzig.
번역서지 목록
| 번호 | 개별작품제목 | 번역서명 | 총서명 | 원저자명 | 번역자명 | 발행연도 | 출판사 | 작품수록 페이지 | 저본 번역유형 | 작품 번역유형 | 비고 |
|---|---|---|---|---|---|---|---|---|---|---|---|
| 1 | 群盜 | 獨逸篇 | 縮少世界文字全集 3 | 쉴러 | 古今出版社 概輯部(고금출판사 개집부) | 1955 | 古今出版社 | 85-108 | 편역; 개작 | 개작; 편역 | |
| 群盜 | 群盜 | 陽文文庫 59 | 쉴러 | 朴贊機(박찬기) | 1959 | 陽文社 | 1-198 | 완역 | 완역 | ||
| 3 | 群盜 | 世界名作 다이제스트 5, 군도 외 4편 | 世界名作 다이제스트 5 | 쉴러, F. | 正信社 編輯部(정신사 편집부) | 1959 | 正信社 | 12-43 | 편역 | 편역; 개작 | |
| 4 | 群盜 | 群盜 | 릴케 ; 世界文學全集 5 | 쉴러 | 합동출판사 편집부 | 1964 | 合同出版社 | 12-43 | 편역 | 개작; 편역 | |
| 5 | 群盜 | 全小說集 外 | 世界古典文學大全集 3 | Fredrich Von Schiller | 姜斗植; 朴煥德; 洪京鎬(강두식; 박환덕; 홍경호) | 1973 | 文友社 | 199-319 | 편역 | 완역 | |
| 6 | 群盜(五幕) | 群盜(五幕) | <레싱, G.E. 外 ; 獨逸古典戱曲選> (世界文學全集) 87 | 프리드리히 폰 실러 | 姜斗植(강두식) | 1974 | 乙酉文化社 | 227-358 | 편역 | 완역 | |
| 群盜 | 群盜 | 世界代表古典文學 6 | 실러 | 강두식 | 1982 | 韓國出版社 | 199-319 | 편역 | 완역 | ||
| 군도 | 군도 | 범우희곡선 17 | 프리드리히 실러 | 홍경호 | 2002 | 범우사 | 13-246 | 완역 | 완역 | ||
| 도적 떼 | 도적 떼 | Mr.Know 세계문학 | 프리드리히 폰 실러 | 김인순 | 2007 | 열린책들 | 6-150 | 완역 | 완역 | ||
| 10 | 도적 떼 | 도적 떼 | 열린책들 세계문학 55 | 프리드리히 폰 실러 | 김인순 | 2009 | 열린책들 | 9-242 | 완역 | 완역 | |
| 도적 떼 | 도적 떼 | 고려대학교 청소년문학시리즈 17 | 프리드리히 폰 실러 | 이경미 | 2009 | 고려대학교 출판부 | 9-307 | 완역 | 완역 | ||
| 12 | 군도 | 군도 1 | 큰글 세계문학전집2 013 | 프리드리히 실러 | 강두식 | 2012 | 큰글 | 11-197 | 편역 | 완역 | |
| 13 | 군도 | 군도 2 | 큰글 세계문학전집2 014 | 프리드리히 실러 | 강두식 | 2012 | 큰글 | 11-193 | 편역 | 완역 |
번역비평
1. 번역 현황 및 개관
프리드리히 쉴러의 첫 희곡인 <도적 떼>는 독일 문학사에서는 단명했던 사조, 슈투름 운트 드랑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손꼽힌다. 작품의 주제어라고 할 수 있는 ‘자유’에 대한 열망은 권위적이고 난폭한 군주 칼 오이겐 공의 학교에서 7년 동안이나 원치 않는 학업을 수행할 수밖에 없었던 젊은 쉴러의 번민과 고통의 산물로 <도적 떼>에 직접적으로 투영되었다. 그 결과 이 작품은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갈등과 형제 갈등을 원동력 삼아 구태의연한 세대에 저항하는 도적들과 그 우두머리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급진적 경향을 띠게 된다. 이러한 연유로 작품을 출간해 줄 출판사를 찾지 못했던 쉴러는 1781년 익명으로 <도적 떼>를 자비 출판한다. 쉴러는 자신을 ‘편집자 Herausgeber’로 위장한 ‘서문 Vorrede’에서 왜 전통적인 극작법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는지 설명하고(슈투름 운트 드랑의 극미학), 작품의 진지한 이해를 위해서 이 작품을 ‘극적 이야기 eine dramatische Geschichte’, 다시 말하면 레제드라마로 꼼꼼히 ‘읽을’ 것을 요구한다.[1]
출간 바로 이듬해인 1782년 1월 13일 <도적 떼>는 우여곡절 끝에 만하임에서 초연이 성사되는데, 당시 관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2]이러한 분위기는 함부르크, 라이프치히, 베를린, 슈투트가르트와 빈 공연까지 이어졌으며, 만하임에서의 초연 10년 후인 1792년에는 파리에서도 공연되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이 작품은 개연성이 떨어지는 급진적 전개, 비극적 동기의 결여, 대사의 부자연스러움, 시간과 장소의 문제 등 형식적 미완결성으로 인해 비판받기도 하는데, 훗날 쉴러 자신도 이 작품을 ‘거칠다’고 평가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적 떼>를 쓰기 전 쉴러의 극작에 대한 사전 지식이 셰익스피어 포함 극 작품을 몇 편 읽은 것이 전부였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첫 희곡에서 거둔 성공만으로도 그가 극작가로서 천재천재적 재능을 지니고 있었음을 증명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도적 떼>의 국내 초역은 세계문학번역이 본격적인 활기를 띠기 시작한 원년인 1959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국립중앙도서관 소장자료 기준(2025.2.21.) 1963년 북한에서 출간된 번역 종을 포함하면 지금까지 총 8인의 번역자가 이 작품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으로 확인된다. 북한 번역본 제외 국내 번역본을 기준으로 하면 2000년 이전에 세 사람의 번역자가, 2000년 이후에는 네 명의 번역자가 이 작품을 새로 번역 출간했다. 1959년 박찬기가 초역을 내놓은 이래, 1973년에는 강두식이, 1990년에는 정영호가 선집 형태의 <도적 떼> 번역을 발표해, 대략 15년 정도의 시차를 두고 순차적으로 새로운 번역이 나왔고, 2000년대 이후에는 2002년 홍경호, 2007년 김인순, 2009년 이경미, 2023년 홍성광이 새로운 번역본을 출간했다.
이 중 정영호의 번역본을 제외한 나머지 번역자의 번역본들은 출판사 변경 등을 통해 여전히 시중에 유통 중이다. 다시 말하면 <도적 떼>를 읽고자 하는 오늘날의 독자들은 1959년의 초역부터 2023년 새롭게 번역된 최신 번역까지 65년여에 걸쳐 나온 상이한 번역본들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2. 개별 번역 비평
이 비평에서는 다음의 두 가지 관점을 중점적으로 비교 검토하면서, 개별 번역 종의 고유한 특성을 도출해보고자 한다. 우선, 1) 상기한 번역 현황을 고려하여 상이한 번역 종에 나타난 ‘언어적 시차’를 집중적으로 살펴본다. 일례로 번역된 제목에서도 이러한 시차는 확연히 느껴지는데, 초기 번역자에 속하는 박찬기, 강두식, 정영호, 홍경호는 제목으로 ‘군도’를, 2000년대 초반 번역자들인 김인순과 이경미는 ‘군(群)’을 순수 한글 ‘떼’로 변경하여 도적 떼로 쓰고 있다. 가장 근래에 새로운 번역을 내놓은 홍성광은 원제목 ‘Die Räuber’, 즉 복수 형태를 그대로 살려 ‘도적들’로 번역했다. 제목 번역에서 드러나는 언어적 차이는 두 가지 층위에서 주목할 만하다. 첫째, 동일한 원작에 대한 다양한 세대의 번역자가 써 내려간 65년에 걸친 <도적 떼> 번역사는 한국어의 변모 과정을 추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둘째, 원작이 18세기 후반 작품이라는 사실은 첫 번째 층위를 더 강화하는 장치로 기능할 수 있다.
2) 이 작품의 주요 특징 중 하나는 엄격한 드라마 형식의 파기로, 이는 셰익스피어의 영향이자 그 결과로서 곧 슈투름 운트 드랑의 시학이 된다. 이 작품에서의 형식 파기는 삼통일 법칙의 포기뿐만 아니라 ‘데코룸’, 즉 적절한 시적 운율을 따르는 고상한 언어의 과감한 포기에서도 확인된다. 작품의 언어적 특징은 ‘격정의 수사학’, ‘반란적인 젊은 세대의 표현’, ‘격정적이며 가슴속에서 우러나는 정열적 언어’ 등으로 설명되고 있는데, 한마디로 요약하면 ‘격정적 고상 Pathetischerhabene’ 즉, “격정적인 제스추어, 수사학적인 언어, 그리고 도덕적인 고상한 태도”(Klaus L. Berghahn)로 집약될 수 있다. 무엇보다 당대 보편적인 희곡들과 달리 도둑 떼와 그 두목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언어적 파격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으며, 쉴러는 작품의 이러한 설정을 활용하여 등장인물 간의 언어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줌으로써 가치관, 계층, 나이 차이 등 ‘어느 정도의 개인성 eine gewisse Individualität’을 드러내고 이를 통해 갈등을 미학적 차원에서 구현한다. 예를 들면, 주인공 카를은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은 지식인이면서도 구세대에 염증과 혐오를 느껴 도적 떼의 두목이 되는 격정적 인물이며, 그의 반대자인 동생 프란츠는 계몽주의, 합리주의 또는 그러한 주의를 가장한 기회주의의 대변자이다. 프란츠는 여러 차례의 독백을 통해 자기에게 유리한 상황을 도출하기 위한 사고의 과정을 투명하게 보여주는데, 일례로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하고, 그 질문들에 대해 스스로 답변함으로써 계략의 디테일을 다듬어 간다. 모어 백작의 부드러운 감상적 언어는 전통적인 준엄한 아버지 상에 위배되며, 그런 맥락에서 그는 못된 둘째 아들에 의해 희생된다. 일편단심 카를을 사랑하는 아말리아는 음악과 예술을 사랑하고, 자기 의견을 피력할 줄 아는 당당한 여성으로서 당대 유행하던 감상주의를 대변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마지막으로 도적들의 언어는 자연주의를 선취한 듯 무대에 어울리지 않는 정제되지 않은 거친 표현들을 담고 있다. 결국 쉴러는 대사를 통해 각 인물의 특성을 뚜렷하게 드러내고, 이를 통해 다시금 좁혀질 수 없는 인물 간의 갈등이나 간극을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번역된 대사가 이러한 개성을 얼마나 담아내고 있느냐 또한 <도적 떼>의 번역에서 중요한 쟁점이 될 수 있다.
서울대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교수를 역임한 박찬기의 번역은 1959년 陽文社에서 출간된 초역이다. 번역본 맨 앞에 <靑年期의 쉴러와 <群盜>에 대하여>라는 解說을 삽입하여 작가와 작품을 소개한 뒤, 해당 해설의 마지막에 “실러 誕生 二百年 記念日을 앞두고”라고 써서 번역 출간의 의의를 재확인한다. 이 번역의 특징은 14년 후 발표되는 강두식의 번역과 비교할 때 오히려 더 현대적인 인상을 준다는 점이다. 실제 이 번역은 1975년 서문당에서 다시 출판된 이후, 1996년 개정판까지 나왔으며 1996년 개정판과 동일한 버전의 종이책과 이(e)북이 지금까지 판매 중인 것으로 확인된다. 1959년의 번역과 1996년의 번역은 이름이나 지명과 같은 고유명사 표기를 일부 경음에서 격음으로 변경한 것을 제외하면[3] 거의 바뀐 것이 없지만, 오늘날 읽기에도 크게 무리가 없을 정도이다. 이 번역이 쉽지 않은 작품의 국내 초역인데다 지금으로부터 약 65년 전 번역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대단히 성공적이라고 할 만하다.
이 번역에서 등장인물들의 대사는 큰 격양이나 고조 없이 무난하게 말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 이러한 특징은 강두식의 ‘격정적인’ 번역과 비교해 보면 더더욱 분명해진다. 다만 박찬기의 번역에서는 이상하게도 종교와 관련된 단어들이 혼란스럽게 사용되는 양상을 보인다. 예를 들면, 성당을 사원으로 번역하고, 신부와 목사를 혼용하거나, 신부를 승려라고 표현하고, 원문의 ‘Tausend Schwernoth!’를 “나무아비타불”(박찬기, 47)[4]로 번역하는 식이다. 이러한 자국화하는 번역은 초역에서는 어쩔 수 없는 시대적 한계를 고려한 배려였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개정판에서는 수정 반영될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강두식은 서울대 독문과 교수를 역임한 독문학자이자 번역자이다. 강두식의 첫 번역은 1973년 韓國出版社에서 12권으로 출간한 世界代表古典文學全集 중 6권에 수록되어 있다. 독일 문학에 할애된 이 선집에는 쉴러의 全小說集(<靈視者>, <犯罪者>, <寬大한 行爲>, <菩提樹 밑의 散策>, <運命의 遊戲>)과 <群盜>, 그리고 레싱의 <賢人 나탄>이 순서대로 실려 있으며, 선집의 번역자는 강두식으로 되어 있지만, 선집 앞에 수록된 ‘解說’ <실러의 생애와 작품세계>, <실러의 산문에 대하여>, <레싱의 시민극>의 필자가 각각 강두식, 홍경호, 박환덕으로 명기되어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들이 해당 작품의 번역자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선집의 구성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조금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극작가로 알려진 쉴러의 몇 안 되는 소설들을 싣고 있다는 점과 레싱이 쉴러보다 앞 세대임에도 불구하고 쉴러의 작품들을 먼저 배치한 점이 특징적이기 때문이다. 선집은 검색상 1973, 1974, 1982년에 출간된 것으로 확인되지만, 실제 국립중앙도서관 홈페이지를 통해 ‘원문보기’가 가능한 것은 1982년이 유일하다. 따라서 여기서는 1982년 번역본을 검토한다. 강두식의 번역은 모든 번역종 중에서도 뚜렷한 개성을 드러내는 번역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이러한 개성이 가장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지점으로는 1막 1장의 편지 번역과 1막 2장 카를의 첫 등장 장면을 꼽을 수 있다.
우선 편지 낭독 장면을 살펴보자. 주인공 카를의 동생인 프란츠는 장자의 자리를 탐내어 아버지와 형을 이간질하기 위해 형의 만행을 고발하는 조작된 편지를 아버지에게 읽어준다. 드라마에서 편지의 낭독은 문어와 구어가 충돌하는 지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특히 독일어에 비해 한국어에서는 아직도 문어와 구어의 차이가 상당하기에 드라마에서 편지를 번역할 때는 문체적 간극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 다른 번역에서도 이 부분의 문어성을 의도적으로 강조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강두식은 이 문체적 간극을 극적으로 과장한다.
프란쯔 (편지를 읽는다) 「라이프치히에서 5월 초하루 백씨(伯氏)에 관해서 소생이 알 수 있었던 점은 귀하께 조금도 숨기지 않기로 약속한 바는 있사오나,
만일 그런 속박이 없었던들 소생의 무고한 붓이 인형에 대해서 이렇게 폭군 노릇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기왕에 인형(仁兄)으로부터 배수(拜受)한 그 수많은 서신으로 짐작컨대,
이런 소식은 틀림없이 현재의 정리(情理)에 상처를 입힐 것으로 짐작합니다.
기왕에도 소생은 인형이 그런 흉악무도한 백씨를 위해서……」 […]
「그리고 소생은 고령이시고 신앙이 두터우신 인형의 춘부장께서 대경실색하시어…….」 […] [5]
프란쯔 「대경실색 하시어 교의에 쓰러지시고,
처음 혀도 잘 돌지 않는 말로 아버지라고 부르던 그날을 저주하시게 될 것으로 짐작하옵니다.
물론 세상 사람들은 모든 비밀을 소생한테 털어놓기를 꺼리고,
인형의 귀에 들어가게 되는 것 역시 소생이 알고 있는 것 중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백씨께서는 현재 추악한 행위가 극(極)에까지 이른 듯 보이는데,
원래 백씨의 천재성은 소생 같은 것으로는 미칠 수가 없을 정도이므로,
사실 그런 행동이 어느 정도까지 발전하게 될 것인지 소생도 짐작을 할 수가 없을 지경입니다.」 […] [6]
Franz (liest). »Leipzig, vom 1sten Mai.
Verbände mich nicht eine unverbrüchliche Zusage, dir auch nicht das Geringste zu verhehlen,
was ich von den Schicksalen deines Bruders auffangen kann, liebster Freund,
nimmermehr würde meine unschuldige Feder an dir zur Tyrannin geworden sein.
Ich kann aus hundert Briefen von dir abnehmen, wie Nachrichten dieser Art dein brüderliches Herz durchbohren müssen;
mir ist's, als säh' ich dich schon um den Nichtswürdigen, den Abscheulichen […]
»mir ist's, als säh' ich schon deinen alten, frommen Vater todtenbleich« […] [7]
Franz – »todtenbleich in seinen Stuhl zurücktaumeln und dem Tage fluchen,
an dem ihm zum erstenmal Vater entgegengestammelt ward.
Man hat mir nicht Alles entdecken mögen, und von dem Wenigen, das ich weiß, erfährst du nur Weniges.
Dein Bruder scheint nun das Maß seiner Schande erfüllt zu haben;
ich wenigstens kenne nichts über dem, was er wirklich erreicht hat,
wenn nicht sein Genie das meinige hierin übersteigt. […]« [8]
이 편지글에서는 ‘초하루’, ‘백씨’, ‘소생’, ‘귀하’, ‘인형’, ‘배수’, ‘정리’, ‘춘부장’, ‘대경실색’, ‘교의’ 등 오늘날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한자어들을 사용하고, ‘있사오나’, ‘하시어’, ‘하옵니다’, ‘정도이므로’, ‘지경입니다’와 같이 극존칭 또는 완곡어법을 사용하여 문어체적 경향을 강화한다. 실제 프란츠는 편지를 낭독하는 사이사이 혼잣말을 하거나 아버지 모어 노인에게 말을 걸기도 하는데, 이러한 방식의 구어의 개입은 편지의 문체를 더 부각하는 효과를 낸다. 물론 이러한 번역 스타일은 기본적으로는 번역자 개인 또는 세대의 언어(감각)에 기초한 것일 것이다. 그런데 이 번역은 강두식의 번역보다 15년 앞선 박찬기의 번역본과 비교해도 훨씬 고풍스러운 인상을 주기에, 이것이 번역자에 의해 의도된 과장일 수도 있다는 추측도 가능해진다.[9]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번역자가 의도하는 바는 무엇일까? 이 편지글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작품의 ‘시간성’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쉴러의 작품이 18세기 후반으로부터 기원하고, 작품의 배경은 쉴러가 실제 살았던 시대의 억압적 분위기를 재현하고 있다는 번역서 서두에 배치된 해설을 통해 습득한 사전 지식은 분명히 이 편지글을 통해 환기될 수 있다. 물론 이 번역어들이 18세기 후반의 독일어에 정확하게 상응하는 것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2007년 이후의 번역들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는 경향들, 즉 동시대화된 언어, 자연스러운 리듬, 가독성의 추구 등과 비교해 보면, 강두식의 번역이 드러내는 원작의 ‘시간성’은 매우 분명해진다. 그래서 비록 이 번역이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나이 든’ 번역으로 보일지라도, 그것이 결코 단점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강두식 번역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두 번째 지점은 1막 2장에 나온다. 카를이 처음으로 직접 등장하는 이 장면은 평범한 도적 떼와는 다른 카를의 지적인 면모와 그러면서도 세상에 불만을 가진 반항적 면모를 함께 담아낸다. 냉소와 반어가 가득한 이 첫 대사를 강두식은 다음과 같이 번역한다.
카알 천상에서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의 훨휠 타는 불길은 이제 꺼져버렸네.
그 대신 인간놈들이 지금 사용하고 있는 것이 석송 가루지, 그 무대에서 쓰는 불 말일세.
담뱃불도 부칠 수 없는 물건이지.
그놈들은 마치 헤라클레스의 몸뚱이에 달라붙은 쥐새끼처럼 여기저기 기어 다니면서 헤라클레스의 불알 속에 든 것이 무엇인가 하고,
또 두개골에서 골수를 빼내서는 연구를 한단 말일세.
알렉산더는 겁쟁이였다고 강의를 하는 프랑스의 신부 녀석이 있는가 하면,
폐병으로 골골하는 대학 교수 녀석은 한 마디할 때마다 암모니아의 정신 나는 병을 코끝에다 갖다 대면서도 <힘에 대해서> 어쩌구저쩌구 늘어놓고 있거든.
애새끼를 만들 적마다 정신이 아찔한 선생 녀석들이, 한니발의 전술의 결점을 찾아낼 수 있단 말인가.
아직 젖비린내 나는 놈들이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해서 칸네 전쟁기의 문귀를 뒤지고 스키피오의 승리에 대해서 입을 비죽거리고 있거든. [10]
카를 하늘에서 불을 훔쳐 내온 프로메테우스의 불꽃은 다 타버리고 말았다!
그 대신 인간들은 요즈음 석송(石松)가루의 불을 사용하고 있지.
무대에서 쓰는 가짜 불 말이야.
그것은 담뱃불도 붙이지 못하는 물건이니까,
그들은 헤라클레스의 막대기에 있는 생쥐들처럼 이리저리 기어다니며 그 불알의 내용이 어떠한 것인가를, 머리를 짜서 연구하고 있단 말이야.
알렉산더는 겁쟁이였다고 강의하는 프랑스의 승려가 있는가 하면,
폐병에 걸린 대학 교수가 한마디의 말을 할 때마다 암모니아 흥분제를 코에 갖다 대며 '힘'에 대하여 강의를 하고 있는 형편이야.
어린 아이를 만들 때마다 기절할 지경인 작자들이 한니발의 전술에 대해서 비평하고,
머리에 피도 안마른 건방진 것들이 번역을 한답시고 칸네 전쟁 기록의 구절을 캐내는가 하면,
스키피오의 승리에 대해서 눈물을 흘린단 말이야. [11]
Moor. Der lohe Lichtfunke Prometheus' ist ausgebrannt, dafür nimmt man jetzt die Flamme von Bärlappenmehl – Theaterfeuer, das keine Pfeife Tabak anzündet.
Da krabbeln sie nun, wie die Ratten auf der Keule des Hercules, und studieren sich das Mark aus dem Schädel, was das für ein Ding sei, das er in seinen Hoden geführt hat.
Ein französischer Abbé dociert, Alexander sei ein Hasenfuß gewesen;
ein schwindsüchtiger Professor hält sich bei jedem Wort ein Fläschchen Salmiakgeist vor die Nase und liest ein Collegium über die Kraft.
Kerls, die in Ohnmacht fallen, wenn sie einen Buben gemacht haben, kritteln über die Taktik des Hannibals –
feuchtohrige Buben fischen Phrases aus der Schlacht bei Cannä und greinen über die Siege des Scipio, weil sie sie exponieren müssen. [12]
강두식의 번역에서 ‘인간놈들’, ‘몸뚱이’, ‘쥐새끼’, ‘신부 녀석’, ‘골골하는’, ‘교수 녀석’, ‘어쩌구저쩌구’, ‘애새끼’, ‘선생 녀석’, ‘젖비린내 나는 놈들’과 같은 표현들이 어떻게 카를의 캐릭터에 냉소적이고 반항적인 면모를 투영하는지는 박찬기의 번역과 비교해 보면 상대적으로 잘 드러난다. 물론 이런 식의 번역은 경우에 따라선 과장된 것으로 평가받을 여지도 다분하다. 그러나 카를이 곧 도적 떼의 두목으로 추대된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쉴러가 이 작품을 레제드라마로 집필했다는 점, 그리고 오늘날 한국에서 대부분의 드라마들이 ‘레제드라마’로만 읽힌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이러한 과장은 독자의 상상력과 오감을 자극하는 생동감을 매개하는 순기능을 지닐 수도 있다.
- 강두식 역의 <군도>(2012)
강두식 번역에서 특징적인 점 중 하나는 기존 번역이 2012년에도 출판사와 판형을 달리해 단독 출판되었다는 점이다. 이 번역서는 ‘도서출판 큰글’이라는 곳에서 낸 ‘큰글세계문학전집2’ 시리즈 중 13권으로 출간되었으며, ‘저시력자’의 ‘책 읽을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A4사이즈 판형에 큰 폰트로 디자인되어 있다. 특히 이 책은 ‘보이스아이’라는 앱을 통해 매 페이지 우측 상단에 찍혀 있는 QR코드를 찍으면 해당 페이지를 읽어주는 서비스도 함께 제공한다. 다만 이 시리즈에서는 디자인상 어쩔 수 없이 볼륨이 커져 <군도>를 1, 2권으로 나눠 놓았고, 각 권당 가격을 29,000원으로 책정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실제 판매량이 높진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 시리즈가 2010년부터 출간되기 시작했으니, 그 사이 오디오북 시장의 급속한 성장으로 인해 그 영향력은 미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좋은 취지와는 별개로 해당 번역서는 간과하기 어려운 오류도 범하고 있다. 표지 뒷면에 큰 글씨로 “자유를 향한 열정과 사회 비판을 형제의 반목이란 소재로 표현한 희극 <군도>”라고 작품을 소개한다. 아울러 등장인물 이름인 고유명사를 오기하거나(‘슈피겔 베르크’), 등장인물과 대사를 혼동하여 잘못 편집된 부분도 여러 차례 눈에 띈다. 어쨌든 이 번역본은 현재도 판매되고 있다.
한양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를 역임한 홍경호의 번역은 2002년 범우사 시리즈의 일환으로 출간되어 현재도 같은 출판사를 통해 유통 중이다. 책의 구성은 <이 책을 읽는 분에게>라는 제목하에 번역자의 길지 않은 작품 해설 및 번역의 변(“번역을 마치며 독자들의 아낌없는 질타와 충고를 바란다”)으로 시작하고, 쉴러 연감으로 마무리된다. 강두식의 1막 편지 번역에서 사용된 특징적 어휘들, 예를 들면, “백씨(伯氏)”(홍경호, 17), “소생”(홍경호, 17), “성화같이 배상”(홍경호, 19), 상당 부분 의역된 “대단한 비분 강개일세 Das ist ja recht alexandrinisch geflennt.”(홍경호, 35)[13]와 같은 표현들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고, ‘두령’이라는 단어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번역은 강두식 번역본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아마도 1973년 강두식의 <군도>가 실린 선집을 두 사람이 함께 작업한 인연과 연관이 있을 듯 하다.
홍경호의 번역은 강두식의 번역에 비해 차분한 인상을 주는데, 이는 강두식의 번역에서 나타나는 경향, 즉 단호한 어조와 거친 말투를 구현하기 위해 문장을 쪼개고, 문장 배치를 도치하는 등의 파격을 정서하고 현대화하는 방식으로 윤문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독문학을 전공한 전문 번역가 김인순의 번역은 열린 책들의 세계문학 시리즈 중 하나로 출간되었다. 이 번역은 <군도> 번역사에서 전환점이 되는 번역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바로 전 번역인 홍경호의 번역과는 5년 정도의 시차를 두고 출간되었지만, 두 번역본 사이의 언어 차이가 상당히 크기 때문이다. 이는 홍경호의 번역이 2002년 처음 출간되었다고는 하나, 강두식의 번역에 영향을 받았으며, 상기한 바와 같이 상당히 고풍스러운 어휘들을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과도 무관하지 않다. 김인순은 18세기의 작품임을 의식한 듯 ‘~합니까?’, ‘~냐?’ ‘~하네’, ‘~하도다!’ ‘~구나!’ 등 예스러운 종결어미들을 적극적으로 차용한다. 그러나 더 이상 강두식이나 홍경호의 번역본에서 보았던 눈에 띄는 옛 어휘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이 번역본은 종결어미에서만 원작의 시간성을 감지할 수 있을 뿐 어휘는 대부분 현대화되어 동시대 독자와의 거리감을 좁힌다. 이 번역이 지니는 또 다른 전환적 의의는 김인순의 번역부터 ‘각주’가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확인된다. 문학 작품에서의 ‘각주’ 사용에 관해서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지만, 일반인들이 읽는 문학 전집에 본격적인 각주를 도입한다는 것은 독자의 전문성을 존중하는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 문학 작품의 독서에 진지하게 임하는 태도 또는 그래야 한다는 당위성이 보편적 합의가 되어 가고 있다는 징후로 읽힐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양상은 김인순의 번역, 이경미의 번역을 거쳐 이들 번역과는 또 15여 년 가까이 시차를 두고 출간된 홍성광의 번역에서 더 강화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김인순의 번역도 전반적으로 등장인물들의 개성, 특히 카를이나 도적 떼의 거친 수사학을 과감하게 드러내는 번역 태도를 취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돋보이는 지점은 여성 등장인물인 아말리아의 캐릭터를 구현하는 다음과 같은 장면에서 잘 드러난다.
아말리아 벌레 같은 당신이 명령을 내린다고? 나한테 명령을? 그 명령에 코웃음으로 답한다면?(김인순, 130) 아말리아 버러지 같은 당신이 명령을 내린다고요? 내게 명령을 내린다고요? 그 명령에 코웃음을 친다면요?(홍성광, 155) Amalia. Wurm du, befehlen? mir befehlen? — und wenn man den Befehl mit Hohnlachen zurückschickt?(Schiller, 77)
우선 이 인용문은 홍성광의 번역이 김인순의 번역에 영향을 받았을 수 있음을 보여주면서도, 반말과 높임말의 차이가 어감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도 확인시켜준다. 바로 이어지는 장면에서 아말리아가 자신을 모욕하는 프란츠에게 칼을 겨누게 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높임말 번역은 다음 장면에서의 반전이 급작스럽다는 인상을 줄 수 있는 반면, 김인순의 반말 번역은 아말리아가 강단 있고, 강인한 면모를 가진 여성이라는 것을 안정적으로 구현하도록 보조한다.
고려대학교에서 독문학을 전공하고, 현재는 공연예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경미의 번역은 고려대학교출판부에서 발행하는 <고려대학교 청소년문학시리즈> 17권으로 출간되었다. 번역자가 공연예술, 특히 실무 연극에 대한 이해가 깊을 뿐만 아니라, 이 시리즈가 청소년을 주 독자층으로 삼고 있는 점을 고려했기 때문인지 이 번역은 다른 어떤 번역보다 구어의 자연스러운 구현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고유한 특징을 드러낸다. 그러나 1막 2장 카를의 첫 대사를 비교해 보면 이 번역이 바로 앞서 번역된 김인순의 번역에 상당히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점은 부인될 수 없을 것 같다.
카를 프로메테우스의 활활 타오르던 불길은 꺼져 버리고, 사람들은 이제 극장에서 사용하는 석송(石松)' 가루 불꽃으로 만족하고 있어.
담뱃불조차 붙이기 어려운 그 불 말일세.
저들은 쥐새끼들처럼 헤라클레스의 몽둥이에 달라붙어 기어 다니고, 두개골의 골수를 빼내어 불알 속에 무엇이 들어 있었는지 연구한다네.
어느 프랑스 성직자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겁쟁이였다고 설교하고,
어느 폐병쟁이 대학교수는 한마디 할 때마다 암모니아수 병을 코끝에 갖다 대는 주제에 힘에 대해 강의를 펼친다네.
애새끼 하나 만들면서 녹초가 되어 나가떨어지는 녀석들이 한니발의 전술을 이러쿵저러쿵 헐뜯는가 하면,
아직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들이 잘난 척하고 싶어 어디선가 주워들은 칸나이 대전의 문구들을 논하고 스키피오의 승리를 놓고 말싸움을 벌인다네.
슈피겔베르크 참으로 따분한 일들일세. [14]
카를 활활 타오르던 저 프로메테우스의 불길은 꺼져버리고, 이제 사람들은 고작 극장에서 쓰는 석송石가루불꽃으로 만족하고 있어.
그들은 쥐새끼처럼 헤라클레스의 몽둥이에 달라붙어 기어다니고, 두개골에서 골수를 빼내서는 불알 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 연구한다네.
어느 프랑스 성직자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겁쟁이였다고 설교하고,
어느 폐병쟁이 교수는 말 한마디 할 때마다 암모니아수 병을 코끝에 갖다 대는 주제에 힘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지.
애새끼 하나 만들려면 힘에 부쳐 녹초가 되어 나가 떨어지는 놈들이, 한니발의 전술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어 대고,
아직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들이 잘난 척하고 싶어 어디선가 주워들은 칸나이 전투의 문구들에 대해 논하고,
스키피오가 거둔 승리를 놓고 말씨름을 한다네.
슈피겔베르크 참 따분한 일이지. [15]
6) 홍성광 역의 <도적들>(2023)
독문학자 출신 전문 번역자인 홍성광의 번역은 2023년 출간된 가장 최근의 번역으로 민음사 세계문학 시리즈 중 하나로 출간되었으며, 이 희곡의 번역 중 저본을 표기한 유일한 번역본이다. 번역자로서 다작을 (번역)하는 홍성광의 번역들은 전반적으로 문장이 유려하고, 흐름이 좋다. 이는 가독성을 우선순위로 두는 번역자의 번역 의도에 기인한 듯하다. 일례로 홍성광의 희곡 번역에서 긴 대사는 항상 원문의 편집 상태와는 별개로 임의로 줄바꿈이 되어 있는데, 이 또한 가독성을 높이기 위한 번역자의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개는 장점으로 작용하는 매끄럽고 잘 윤문된 그의 가독성 높은 문체들은 <도적 떼>에 매우 잘 어울린다는 인상을 주지는 못한다. 이 작품은 쉴러 자신의 말을 빌리자면 ‘거친’ 작품이며, 그 거친 특성이 특히나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구세대에 대한 저항, 자유를 위한 투쟁을 몸소 실천하려는 슈투름 운트 드랑 미학의 구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카를 프로메테우스의 활활 타오르던 불꽃은 꺼져 버리고, 사람들은 그 대용품으로 석송(石松) 가루불꽃을 사용하고 있어.
담뱃불도 붙일 수 없는 무대용 불 말일세.
그들은 쥐새끼처럼 헤라클레스의 몽둥이 위를 기어다니고, 두개골의 척수를 빼내 고환 속에 뭐가 들었는지 연구한다네.
프랑스의 어느 신부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겁쟁이였다고 설교하고,
폐병 걸린 어느 대학교수는 말을 한마디 할 때마다 코끝에 암모니아수병을 갖다 대는 주제에 힘에 대한 강의를 늘어놓는다네.
애 하나 만들면서 녹초가 되는 녀석들이 한니발의 전술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헐뜯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들이 어디서 주워들은 칸나이 전투에서 나온 문구를 떠벌리고,
스키피오의 승리를 놓고 이런저런 말다툼을 벌인다네. [16]
신랄한 풍자와 반어를 담고 있는 카를의 대사 번역에는 반어가 완전히 반감된 것은 아니지만, 강두식의 번역이나 김인순의 번역과 비교하면 리듬감 있게 말하는 점잖 빼는 식자의 모습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바로 위에서 인용한 아말리아의 대사도 비슷한 기조를 보인다. 중립적인 단어들과 리드미컬하고 매끄러운 문장들은 더할 나위 없이 읽기 좋지만, 오히려 그 높은 가독성 때문에 스물둘의 넘치는 패기로 세상을 뒤흔들어보겠다는 쉴러의 정제되지 않은 열망이 반감되어 버리는 역효과가 생긴다는 점은 이 번역의 유일한, 그러나 무시할 수 없는 흠이 된다.
- 공익현 역의 <군도>(1963)
통일부 산하 북한자료센터 소장자료인 이 번역본은 ‘조선 문학 예술 총 동맹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가격은 77전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10,000부 발행”이라고 해서 발행 부수를 표기한 점이 한국의 출판문화와는 차이를 보인다. ‘청년문학’, ‘조선문학’, ‘로동신문’, ‘문학신문’ 등 북한에서 발행되는 잡지와 신문에 ‘쉴러 서거 一백五0주년 기념의 밤’과 같은 행사 기사 등 쉴러 관련 기고문이 여러 차례 실린 것으로 보아 북한 사회의 쉴러에 대한 관심이 (특히 1960년대)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쉴러의 작품 중에서도 <도적 떼>가 번역된 데에는 이 작품이 “지배자와 피지배자 간의 모순이 격화되어 있는 사회 제도에 대한 젊은 쉴러의 반항의 기치”(박홍석, 69)를 담고 있으며, 작품 첫 부분에 인용된 “약으로 고칠 수 없는 자는 칼로 고치고, 칼로 고칠 수 없는 자는 불로 고친다”는 히포크라테스의 명언을 직접적인 “혁명적 호소”로 읽었기 때문인 듯하다.
<군도>의 역자는 <프리드리히 쉴러와 <군도>>라는 역자 서문에서 18세기 후반에 대한 엥엘스의 진단[17]으로 시작하여, 이 작품에 선취된 계급 혁명적 태도를 강조한다. 아울러 이러한 당대 현실을 악명높은 비텐베르크 영주 칼 오이겐을 통해 직접 경험한 쉴러가 “독일 인민의 민족 의식 형성과 통일적 독일 국가를 위한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가한 시인”으로서 억압체제에 대한 “독일 인민들”의 “반항을 불러 일으켰다”고 평가하며 작품의 의의를 강조한다.[18] 한국 전쟁 종전 후 10년 정도밖에 안 된 시점에 출간된 번역이라 그런지 이 번역본은 그보다 4년 앞서 출간된 박찬기의 번역이나 또는 그보다 9년 후에 출간된 강두식의 번역과 현격한 차이를 보이지는 않는다. 예를 들면, 이 번역본에서는 오늘날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두령”이라는 단어가 Hauptmann의 번역어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 번역어는 위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강두식의 번역에서도 사용된 단어이다. 이런 어휘의 사용은 오히려 비슷한 시기 남한과 북한의 번역이, 상당한 시차를 둔 남한 번역 종보다 더 가깝게 느껴지게 하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이가 있다면, 두음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단어들이나 “~하라우”, “말이구나”와 같은 종결어미를 통해 이북 억양을 느낄 수 있으며, 시간과 장소를 “때”와 “곳”으로 표기한 것에서는 북한의 순우리말 정책의 영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3. 평가와 전망
시대에 따른 다양한 번역 종의 비교·분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번역이 꾸준히 나와야 할 필요성을 몸소 입증한다. 또한 그러면서도 여기서 옛 번역의 의의도 재확인해 볼 수 있었다. 동시대의 언어 감각에 맞는 신세대 번역과는 별개로, 고풍스러운 어조를 담은 옛 번역은 무엇보다 역시나 고풍스러운 원문의 ‘시간성’을 지속적으로 환기해 준다는 점에서 독특한 향수를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사라져가는 한국어 어휘들의 보물창고 역할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저본 표기나 서문 번역의 누락과 같은 반복된 실수는 새로운 <도적 떼> 번역이 극복해야 할 문제임은 분명하다. 아울러 새로운 번역에서는 드라마 장르적 특수성이나 극작가의 의도를 조금 더 조직적이고 적극적으로 번역에 반영해야 할 필요성도 요구된다. 쉴러는 <도적 떼>를 애초에 상연 가능성을 배제한 레제드라마로 집필하였는데, 이러한 작가의 의도는 독서를 통해서도 등장인물을 개성과 상호 갈등이 확연히 드러나도록 구성된, 풍부한 제스처를 담은 지문과 대조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언어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따라서 등장인물에 따른 어휘나 어조의 급격한 변화 등을 번역어에서도 일관성 있게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이나 전략 등을 모색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도적 떼>의 번역 비평은 연구 분야의 외연 확장 차원에서도 영감을 제공한다. 우선 북한 자료와의 비교, 분석은 북한에서의 독일 문학의 해석 방식이나 이데올로기적 접근 방식에 대해 검토해 볼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번역 자료는 북한어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도 유의미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번역서의 경우 동일한 원작이라는 기준을 두고 번역어 비교 검토가 가능하기에, 언어 사용에 있어 보다 분명한 차이 등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박찬기(1959): 群盜. 양문사.
박찬기(1996): 군도. 서문당.
강두식(1982): 群盜. 세계대표고전문학전집 6권. 한국출판사.
정영호(1990): 群盜. 世界文學大全集 9. 金星出版社.
강두식(2012): 군도 1 · 2. 도서출판큰글.
홍경호(2002): 군도(群盜). 범우사.
김인순(2007): 도적 떼. 열린책들.
이경미(2009): 도적 떼. 고려대학교청소년문학시리즈 017. 고려대학교출판부.
홍성광(2023): 도적들. 민음사.
- 각주
- ↑ 서문에서 쉴러는 왜 희곡, 그것도 레제드라마로서 이 장르를 선택했는지, 이를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설명하고, 특히 왜 도적들을 작품의 주인공으로 삼았는지, 그것을 통해 최종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세하게 논의한다. 신화와 문학에서 악명높은 주인공들, 클롭슈토크의 ‘아들라멜레히’, 밀턴의 ‘사탄’, 그리스 비극의 ‘메데아’,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3세’ 등을 언급하며, 사악한 캐릭터들이 불러일으키는 ‘경탄과 혐오 Bewunderung in Abscheu’, 그리고 그 극적 효과로서의 ‘전율 어린 경이로움 mit schauderndem Erstaunen’을 설명한다. 그러나 쉴러에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극적 효과에만 매료되어서는 안 되고, ‘그 속에 숨겨진 추악한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어야 하며 daß er das Laster nicht ziere, bei diesem, daß er sich nicht von einer schönen Seite bestechen lasse, auch den häßlichen Grund zu schätzen’, 바로 이러한 연유로 쉴러 자신은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릴 수 없다고 예단했다.
- ↑ “극장은 마치 정신병원 같았다. 관객들은 주먹을 쥐고 눈을 부릅뜨며 환호성을 질러 댔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끼리 흐느끼며 서로 부둥켜안았다. 여성 관객들은 마치 쓰러질 듯 문 쪽으로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모든 것이 혼돈처럼 녹아내렸고, 그 혼돈의 안개 속에서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졌다.”
- ↑ 1959년 번역에서는 ‘Moor’를 ‘모올’로 번역한 반면, 1975년 번역에서는 ‘몰’로 바꾸어 번역하여 개악시킨 사례도 있다.
- ↑ 이 번역어는 강두식도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
- ↑ 강두식, 200
- ↑ 강두식, 200
- ↑ Schiller, 10
- ↑ Schiller, 10
- ↑ 프란츠 (편지를 읽는다) ‘라이프치히에서 보냄. 5월 초하룻날. 귀하의 형님에 대한 모든 일을 숨김없이 알려 드리겠다는 어김없는 약속을 귀하와의 사이에 맺지만 않았던들, 소생의 죄 없는 이 글이 귀하의 마음을 폭군과 같이 뒤흔들어 놓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미 귀하에게 받은 수많은 편지로 보아, 이와 같은 소식이 필연코 귀하의 형제에 대한 우애심을 심히 손상시킬 것이라고 추측하는 바입니다. 소생은 벌써 귀하가 그 비열하고 흉악한 형님 때문에……’ […] ‘그리고 소생은 늙으신 당신의 경건한 부친께서도 이 편지를 보시고 사색이 되시는 것을 눈앞에 뵈옵는 것만 같습니다.’
프란츠 ‘그리고 소생은 늙으신 당신의 경건한 부친께서도 이 편지를 보시고 사색이 되시는 것을 눈앞에 뵈옵는 것만 같습니다. 귀하의 형님께서는 현재 그 추행의 극단에 도달한 것같이 보이며, 소생의 재주가 귀형의 천재를 멀리 따라가지 못하는 바이오니, 지금 어느 정도까지 도달한 것인지는 소생으로서도 알 도리가 없는 바입니다.’(박찬기 23-24) - ↑ 강두식, 208–209
- ↑ 박찬기 1996, 40–41
- ↑ Schiller, 19
- ↑ 해당 부분은 박찬기는 “이건 또 아주 굉장히 유식한 한탄인데!”로, 김인순 이후의 번역자들은 대부분 “참으로 따분한 일들일세.” 정도로 번역하고 있다.
- ↑ 김인순, 30–31
- ↑ 이경미, 33–34
- ↑ 홍성광, 35
- ↑ “하나의 썩어 문들어져 가는 집단이였다. 농민들, 상인들, 수공업자들은 탐욕적인 정부와 불경기의 이중적 압박을 받고 있었다. 모든 것은 추태를 나타내였고 전국적으로 불만이 지배하였다. 교육도, 대중의 지혜를 계발시킨 수단도, 출판의 자유도, 여론도 없었고 다른 나라들과의 무역도 전혀 없었다. 도처에 가증스러운 현상들과 러기주의만이 있었다 … 모든 것이 부패하고 진동하고 붕괴에 직면하고 있었으나 인민 속에는 로후한 기관의 썩어 문들어진 송장을 쓸어 낼 만한 력량이 없었으므로 유리한 전변을 기대할 수도 없었다.”(공익현 1963, 3)
- ↑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부합하지 않는 작품의 결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인다. “쉴러는 칼 모오로의 후회를 결코 정당한 사회를 건설하려는 사람들의 최종적 결론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도리어 그는 자기의 그후 작품들에서 이 위대한 과업 해결에로 각방으로 접근하고 있다. <군도>는 그가 선포하고 있는 사회적 사상이 모호하고 많은 모순을 내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8세기 독일 문학의 그 어느 작품보다도 독일 인민의 민족 의식을 각성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공익현, 6)
바깥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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