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떠오르는 생각 (Nachtgedanken)"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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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16일 (화) 00:58 판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 1797-1856)의 시
| 작가 |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 |
|---|---|
| 초판 발행 | 1844 |
| 장르 | 시 |
작품소개
1844년에 발표한 독일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의 시이다. 1830년 7월 혁명을 지지하는 글을 발표하여 요주의 인물로 떠오른 하이네는 1831년 파리로 이주했다가 결국 그곳에서 남은 반평생을 살게 된다. 이 시는 하이네가 독일을 떠난 지 열두 해가 지났을 무렵에 쓰였다. 불면의 밤을 보내는 시적 화자는 독일을 생각하면 독일에 두고 온 어머니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연로한 모친을 걱정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을 토로한다. 이때 늙고 약한 어머니와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변함없이 건재한 “뼛속까지 튼튼한” 독일이 대비된다. 이제 시적 화자의 상념은 불의에 맞서 싸우다가 피 흘리고 죽어간 수많은 이들에게로 향한다. 밤새 가슴을 짓누르는 고통으로부터 시적 화자를 구해주는 것은 “프랑스의 화사한 햇살”과 그런 햇살을 닮은 미소를 지으며 들어오는 자기 아내다. 역시 낙후한 어둠의 독일과 혁명의 나라인 빛의 프랑스가 대비된다고 할 수 있다. 이 시는 “시대의 시”(Zeitgedichten) 연작의 마지막 시로, <신시집>에 실려 <독일. 겨울동화>와 함께 발표되었다. 시집은 출간되자마자 프로이센과 독일 연방국가에서 압류되고 시인에게 체포령이 떨어졌다. 집필 시기나 주제 면에서 ‘포어메르츠 Vormärz’(메테르니히 치하의 복고 체제를 비판하는 1848년 3월 혁명 발발 전의 문학)로 분류될 수 있으며, 시의 첫 구절 “독일을 생각하면 [...]”이 매우 유명하다. 시의 운율은 ‘쌍운’(aabb)이며, 주로 4음보 약강격을 보인다. 국내 초역은 1965년 이동일 역의 <밤이면>이다(성문사).
초판 정보
Heine, Heinrich(1844): Nachtgedanken. In: Neue Gedichte. Hamburg: Hoffmann und Campe, 274-276.
번역서지 목록
| 번호 | 개별작품제목 | 번역서명 | 총서명 | 원저자명 | 번역자명 | 발행연도 | 출판사 | 작품수록 페이지 | 저본 번역유형 | 작품 번역유형 | 비고 |
|---|---|---|---|---|---|---|---|---|---|---|---|
| 1 | 밤에 떠오르는 생각 | 바다의 亡靈 | 世界詩人選 22 | 하인리히 하이네 | 金光圭 譯 | 1975 | 民音社 | 85-90 | 편역 | 완역 | |
| 2 | 야사(夜思) | 하이네 詩集 | 世界의 詩人 2 | 하인리히 하이네 | 世界의 詩人 編纂會 編譯 | 1976 | 文化公倫社 | 25-28 | 편역 | 완역 | |
| 3 | 야사(夜思) | 아름다운 5월 | 하인리히 하이네 | 石鄕 編譯 | 1976 | 文化公論社 | 25-28 | 편역 | 완역 | ||
| 4 | 밤에 떠오르는 생각 | 19세기 독일시 | 探求新書 176 | 하인리히 하이네 | 金光圭 譯 | 1980 | 探求堂 | 74-119 | 편역 | 완역 | |
| 5 | 밤에 나는 생각한다 |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 김남주 번역시집 2 | 하인리히 하이네 | 김남주 | 1995 | 푸른숲 | 85-87 | 편역 | 편역 | |
| 6 | 밤의 상념 | 독일시 : 독일 서정 | 하인리히 하이네 | 정명순 | 2022 | 전남대학교출판문화원 | 174-174 | 편역 | 완역 | ||
| 7 | 밤중의 상념 | 모든 이별에 앞서가라 - 독일대표 시선 | 창비세계문학 91 | 하인리히 하이네 | 최연숙 | 2023 | 창비 | 82-84 | 편역 | 완역 |
번역비평
1. 번역 현황 및 개관
하이네의 시 <밤에 떠오르는 생각>은 시대 비판적·풍자적 시들을 묶은 연작 <시대시>(Zeitgedichte)의 마지막 시로 1844년 <신시집>(Neue Gedichte>에 실려 처음 발표되었다. 한국에서 <신시집>은 1989년 김수용에 의해 단 한 차례 완역되었을 뿐이나, <밤에 떠오르는 생각>은 2025년 현재까지 최소 일곱 명의 역자에 의해 번역되었다. <신시집>에 실린 작품 다수가 이미 다양한 하이네 시선집에 수록되어 여러 차례 소개된 것처럼 <밤에 떠오르는 생각>도 대부분 이런 경로로 국역되었다. 초역은 1965년 이동일의 번역 <밤이면>이다. 1920년대부터 한국에서 하이네 시가 다수 소개된 것을 고려할 때, 초역이 늦은 편이다. 초역 이후 한동안 새 번역이 없다가 1975년에서야 시인이자 독문학자인 김광규에 의해 재번역되었다. 이후 짜깁기식 번역이 여러 차례 나오기도 했으나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던 이 시는 1988년 김남주 시인의 번역시집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에 <밤에 나는 생각하네>라는 제목으로 실리며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이외에도 1987년 시인이자 아동문학가인 김명수도 이 시의 번역을 시도했고, 1989년 하이네를 전공한 독문학자 김수용이 <신시집>을 국내 최초로 완역함으로써 비로소 원전에 충실한 번역본이 나오게 되었다. 80년대 후반 이렇게 세 종이나 새 번역이 출판된 것은 하이네의 정치시가 소개되기 어려웠던 군사정권 하의 엄혹한 분위기가 87년 민주 항쟁으로 완화되었던 덕분일 것이다. <신시집>이 완역되기도 했고 정치시에 대한 관심도 퇴조하면서 그 뒤로 30년 넘게 새로운 번역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2022년에서야 독문학자 정명순이 시선집 <독일시독일서정>을 내면서 오랜만에 새로운 번역을 시도했고, 1년 뒤 독문학자 임홍배가 역시 독일시선집 <모든 이별에 앞서가라>(2023)에서 하이네의 대표시 중 하나로 이 시를 소개했다.
시의 원제 “Nachtgedanken”은 ‘밤의 상념’ 혹은 ‘한밤의 생각’이라는 뜻의 비교적 일상적인 어휘이지만, 한국어로는 제각기 다르게 번역되었다. 이동일의 초역에서는 <밤이면>, 김광규는 <밤에 떠오르는 생각>, 김명수는 <밤생각>, 김남주는 <밤에 나는 생각하네>, 김수용은 <밤의 생각>, 정명순은 <밤의 상념>, 임홍배는 <밤중의 상념>이라고 제목을 옮겼다. 이외에도 70년대 중후반에 <야사(夜思)>라는 제목으로 번역되기도 했다. 제목은 다양하나 정확성 면에서 큰 차이가 없으므로 전체 개관에서만 표준 제목을 따르고 개별 번역비평에서는 역자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한다.
<밤에 떠오르는 생각>은 하이네의 시 중에서도 소박하고 일상적인 어휘로 이루어져 있으며, 구문도 단순하고 사용된 상징이나 기교도 적은 편이다. 운율은 4음보 약강격에 쌍운(aabb)을 취하며 속마음을 덤덤하게 토로하는 어조이다. 또 시어의 반복이 많으며 이를 통해 특정한 효과를 낸다. 개별 번역 비평에서는 이러한 시의 형식적 특징이 어떻게 번역되어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이외에도 시적 화자가 독일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가 눈여겨봐야 할 점이다. 주지하다시피 하이네는 망명 생활 중에 독일의 상황을 비판 · 풍자하는 시를 다수 남겼으며, 독일에 대한 향수를 토로하는 시를 쓰기도 했다. <밤에 떠오르는 생각>에서도 12년 동안이나 고국에 돌아가지 못하여 어머니와 생이별 상태에 놓여 있는 시적 화자는 독일에 대해 양가적 감정을 내비친다. 특히 “참나무와 보리수”라는 독일의 전통적 상징과 함께 독일의 지속성과 튼튼함이 강조되는 6연에서 이 감정은 매우 모호하게 드러난다. 우선 이것은 독일에 대한 시적 화자의 그리움을 표현한 것일 수 있다. 비슷한 주제를 다룬 하이네의 다른 시 <객지에서>(In der Fremde)에서 시적 화자는 이렇게 노래한다. “Ich hatte einst ein schönes Vaterland./Der Eichenbaum/Wuchs dort so hoch”[1](한때 나는 아름다운 조국이 있었노라./참나무가/거기서 드높이 자랐고). 여기서 참나무는 시적 화자가 떠올리는 독일의 대표적인 아름다운 정경이다. 그렇다면 <밤에 떠오르는 생각> 6연에서 “참나무”가 자라는 독일은 긍정적인 대상, 그리움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러나 <밤에 떠오르는 생각>과 함께 <시대시>에 실린 다른 시 <안심하시오>(Zur Beruhigung)에서 “참나무”와 “보리수”는 반역도 혁명도 일으킬 깜냥이 없는 그저 우직하고 순종적이기만 한 게르만인들의 상징으로서 부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그렇다면 불과 몇 편 앞에서 이런 은유를 읽은 독자는 <밤에 떠오르는 생각>에서도 6연을 독일에 대한 시적 화자의 냉소적 아이러니의 표현으로 읽을 수 있다. 그러면 6연은 늙어가는 어머니와 달리 건재하기만 한 독일, 수많은 동지를 피 흘리게 했으나 여전히 변함없는 독일을 비꼬는 말로 읽힌다. 이제 개별 번역의 전반적인 특징을 살펴보면서 시적 화자가 독일에 대해 갖는 태도를 각 역자들이 어떻게 전달하는지 살펴보겠다. 원전 번역이 아닌 번역도 번역사적 중요성을 감안해 번역비평에 포함시켰음을 미리 일러둔다.
2. 개별 번역 비평
1) 이동일 역의 <밤이면>(1959)
국내 초역인 이동일 역은 1965년 하이네 시선집 <로오렐라이>(성문사)에 발표되었다(66-67쪽). 역자에 대한 정보가 책에 실려 있지 않아 이 번역이 원전 번역인지는 확실치 않다. 시선집 구성이 하이네의 대표 시집 순을 따른다는 점에서(1부는 <노래책>, 2부는 <신시집>, 3부는 <로만체로>, 4부는 <최후의 시집>) 나름의 전문성을 자랑하며, 해설에서 역자가 한국에서 당시까지 가장 많은 하이네 시를 수록한 번역서라고 자부하지만, 동일한 역자의 이름으로 같은 해, 같은 출판사에서 <괴에테시완역전집>과 <바이런 시 전집>이 출간된 정황으로 보아 원전 번역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하이네 시선집 <로오렐라이>는 이후 <장미의 기도>, <낙엽지는 오솔길>이라는 달라진 제목으로 (바이런, 괴테 시선집과 함께) 출판사를 옮겨가며 수 차례(1967년, 1968년, 1972년, 1977년) 재간행됐다.
이동일의 <밤이면>은 전체적으로 시의 내용을 매끄럽게 전달하고 시적 화자의 감정에 이입할 수 있도록 원문에는 없거나 느슨하게만 암시된 시행 간의 논리적 연결 관계를 명확히 한 것이 눈에 띈다. 가령 2연을 보자.
Die Jahre kommen und vergehn!/Seit ich die Mutter nicht gesehn,/Zwölf Jahre sind schon hingegangen;/Es wächst mein Sehnen und Verlangen. 해는 오고 또 지나간다!/어머니를 만난지도/어언 열두 해가 흘렀건만/그리움은 점점 더 깊어져 갈뿐.(모든 밑줄 강조 필자)
2연 3행 번역에서 역자는 “흘렀건만”이라는 어미를 사용하여 어머니를 보지 못하고 흘러버린 세월에 대한 야속함을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마찬가지로 4행에서도 “갈뿐”이라는 어미를 사용해 시적 화자의 무력함과 안타까움을 진하게 드러낸다. 이렇게 시적 화자의 감정을 증폭시키는 면모는 대부분의 문장을 ‘~다’ 어미를 사용해 덤덤하고 건조하게 끝낸 김수용 역과 비교해 보면 보다 뚜렷이 드러난다.
해는 오고 또 간다!/어머니를 보지 못한 이래/십이 년이 벌써 흘러갔다;/내 그리움과 동경은 커져만 간다.(김수용)
다음으로 독일에 대한 시적 화자의 태도가 이동일 역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 보자.
Deutschland hat ewigen Bestand,/Es ist ein kerngesundes Land;/Mit seinen Eichen, seinen Linden,/Werd ich es immer wiederfinden. 독일은 영원히 뻗어나갈 나라/고장도 없이 튼튼한 나라다./그 떡갈나무와, 그 보리수를/나는 어느 때까지 기억하리라.
6연 1행을 역자는 “독일은 영원히 뻗어나갈 나라”라고 번역했다. 이것이 3행에 나오는 떡갈나무와 보리수의 이미지를 빌려 왕성하게 자라는 나무의 상을 표현한 것인지, 아니면 시적 화자의 애국주의적 표현인지는 모르겠으나 독일이 계속해서 확장될 나라라고 말한다. 이에 비해 2행 “고장도 없이 튼튼한 나라다”는 아이러니한 느낌이 없지 않다. 독일에 대한 하이네의 태도를 고려해보면, 독일은 왜 이렇게 고장도 나지 않고 튼튼한 것인가 하는 불만 섞인 표현으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자는 시에 붙인 짤막한 해설에서 “조국과 어머니를 생각할 땐 독설가 <하이네>의 야유는 자취를 감추고 사모의 정만 우러났음”(67)이라고 쓰고 있어, 이러한 해석이 역자의 의도는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동일은 4행을 시적 화자가 독일의 상징 “떡갈나무”와 “보리수”를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해석함으로써 시적 화자가 다시는 독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임을 암시한다. 이를 통해 독일을 보다 아련하고 애틋한 그리움의 대상으로 만든다.
Seit ich das Land verlassen hab,/So viele sanken dort ins Grab,/Die ich geliebt – wenn ich sie zähle,/So will verbluten meine Seele. 내가 독일을 하직한 뒤로/그 땅에서는 내가 사랑하던/많은 사람들이 죽어 없어졌다/그 분들을 생각할적마다 내 맘은 피를 흘린다
아무래도 초역이다 보니 정확하지 않은 번역이 눈에 띈다. 3행의 “zähle”를 ‘생각하다’라고 번역했는데 정확성도 떨어지지만 바로 뒷 연에서 같은 동사가 반복(“그러나 역시 헤어보지 않을순 없다Und zählen muß ich”)되므로 ‘헤어보다’로 동일하게 번역해야 한국 독자가 시어의 반복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이동일 역은 시어의 반복 기법을 잘 살리지 않아 번역문에서 이것을 음미할 가능성이 차단된다.
Mir ist, als wälzten sich die Leichen/Auf meine Brust - Gottlob! Sie weichen! 마치 내 가슴 위를 시체가 딩굴어 가는듯한 이 마음,/―그러나 고맙게도 이런 마음은 차츰 사라져 간다!(밑줄 강조 필자)
또한 고맙게도 시체들이 물러난다고 해야 할 것을 죽어간 동지들에 대한 부채감이 사라져간다고 해석했다. 이는 시적 화자가 느끼는 부채감이 의식적으로 억압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원문과 거리가 멀다.
종연 종행에서 “die deutschen Sorgen”을 “독일의 우수”라고 번역하였는데, “독일에 대한 시름”(김광규)과 달리 독일 자체가 비탄이나 우울에 빠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는 혁명의 나라 “프랑스의 환한 햇살”과 보기 좋게 대조를 이루지만, 앞에서 나온 “고장도 없이 튼튼한 나라”로서의 독일과는 상충된다.
2) 김광규 역의 <밤에 떠오르는 생각>(2001)
이동일 역이 추정컨대 중역이라면, 원전 번역으로서 초역의 영예는 김광규 역 <밤에 떠오르는 생각>이 누려야 할 것이다(85-87쪽). 당시 부산대 독어교육과 교수이자 <문학과지성>에 막 등단한 신인 시인이었던 역자는 1975년 민음사 세계시인선 제22권에 하이네 시선집 <바다의 망령>을 발표했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번역 저본이 밝혀져 있다. 1970년에 나온 비스바덴판 2권짜리 하이네 전집을 기초로 했으며, 역주에 참고한 도서명도 함께 밝혀놓았다. 한독 대역본이며, “가급적 우리말의 어감을 살려 원문에 충실한 번역을 해보고자 노력했다”(12)는 번역 의도도 밝혀져 있다.
김광규 역은 역자의 번역 지향에 맞게 원문의 표현을 최대한 존중하려고 노력한 부분이 눈에 띈다. 대표적으로 시적 화자가 자신의 어머니를 “늙은 여자/부인 die alte Frau”라고 부르는 부분을 김광규 역은 최대한 존중하려고 했다.
Die alte Frau hat mich behext,/Ich denke immer an die alte,/Die alte Frau, die Gott erhalte! 그 늙은 부인이 나를 매혹했음인가,/나는 언제나 그녀만을 생각한다./그 늙은 부인을, 하느님 보호해 주소서!
Die alte Frau hat mich so lieb,/Und in den Briefen, die sie schrieb,/Seh ich, wie ihre Hand gezittert,/Wie tief das Mutterherz erschüttert. 그 늙은 부인은 나를 무척 사랑했다,/이제 그녀가 쓴 편지를 보면,/얼마나 그녀의 손이 떨리고,/얼마나 어머니의 마음이 아팠는가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역자들은 한국어로 어머니를 그렇게 부르는 것이 불손해 보일뿐더러 사모곡의 분위기를 해친다고 생각해서인지 그냥 어머니라고 옮겼다. 심지어 김명수는 “어머님”이라고 높여서 옮기기도 했다. 김광규 역시 이러한 직역이 한국어에서 어색할 수 있음을 충분히 의식하고 있어 이 ‘늙은 부인’이 어머니를 가리킨다는 것을 주를 달아 설명해 놓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그는 이 생경한 표현을 끝까지 관철시킨다. 심지어 인칭대명사 ‘sie’도 원문대로 ‘그녀’라고 옮긴다. 지금도 한국어에서 어머니를 ‘그녀’라고 부르면 어머니를 객관화하거나 거리를 두어 바라보는 효과가 생기는데, 당시에는 이 효과가 훨씬 컸으리라 짐작된다. 이로써 김광규 역은 이동일 역에 비해 시적 화자의 감정이 훨씬 절제되어 있고, 자신의 감정을 보다 거리를 두고 성찰적으로 바라보는 느낌을 준다. 물론 일부는 서투른 번역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가령 바로 위에서 인용한 4연에서 2행과 3행은 ‘그녀’라고 하고 4행은 “어머니의 마음”으로 옮겨 인칭대명사가 일관되지 않은 느낌을 주는 대목이 그렇다.
또 김광규 역은 원시의 반복어법을 번역문에서 최대한 살려내고자 했다. 대표적으로 교차배열법(Chiasmus)이 사용된 부분을 보자.
Es wächst mein Sehnen und Verlangen.//Mein Sehnen und Verlangen wächst. 날이 갈수록 그립고 보고 싶다.//그리움과 보고싶음 점점 커진다.(김광규) 그리움은 점점 더 깊어져 갈뿐.//내 갈망은 자꾸만 늘어간다(이동일) 그리움과 동경만 더해 간다//그리움과 동경만이 더해 간다(김남주) 내 그리움과 동경은 커져만 간다.//내 그리움과 동경은 커져만 간다.(김수용) 그립고 보고픈 마음이 갈수록 커진다.//그리움과 보고픔이 이토록 짙어짐은(정명순) 보고 싶은 그리움 커져만 간다//보고 싶은 그리움 커져만 간다(임홍배)
예시들을 훑어보기만 해도 원시의 교차배열법을 번역하는 일이 얼마나 까다로운지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역자들은 도치된 부분을 살리지 못했다. 이동일은 아예 반복과 교차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고, 김남주, 김수용, 임홍배는 (거의) 동일한 문장을 반복하는 방식을 택했다. 반복을 통해 일부 점층적 효과를 내기는 하였으나, 원문보다 단조로워 보인다. 정명순은 주술의 위치를 뒤집지는 않았지만, 두 번째로 반복되었을 때 이것을 주절로 만들어 단조로움을 피하였다. 이와는 달리 김광규는 첫 번째 문장의 “그립고 보고 싶다”를 두 번째 문장에서 명사화하여 교차배열법을 살려낸다.
문제의 6연에서 역자는 시적 화자가 독일에 갖는 태도를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독일은 영원히 존속하리라,/독일은 속까지 썩지는 않은 나라./그곳의 떡갈나무, 그곳의 보리수와 함께/언제고 나는 독일을 다시 보겠지.
역자는 “ein kerngesundes Land”를 “속까지 썩지는 않은 나라”라고 번역하였는데, 이것은 독일이 썩기는 썩었되, 속까지 썩지는 않은 나라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즉 독일이 부패하고 후진적인 나라이긴 하나, 그 근본에는 순수함과 저력이 있는 나라로 희망이 남아 있는 나라라는 의미를 전달한다. 이는 시적 화자가 독일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음을 전달하며, 언젠가는 독일에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씩씩하게 품는 것으로 해석된다.
<밤에 떠오르는 생각>은 역자가 1980년에 에히터마이어(Echtermeyer)의 <독일시선집. 시초부터 현재까지. 벤노 폰 비제가 새로 엮음 Deutsche Gedichte von den Anfängen bis zur Gegenwart, neugestaltet von Benno von Wiese>(Düsseldorf 1974)에서 낭만주의부터 사실주의까지를 번역하여 낸 책 <19세기 독일시>(탐구당)에 시구의 어미 정도만 일부 수정되어 재수록되었다.
3) 김명수 역의 <밤생각>(1987)
시인이자 아동문학가 김명수는 1970년대 초반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독문학을 수학하고 돌아와 다수의 독일어권 청소년·아동 문학을 번안해 소개했다. 그는 하이네 문학에도 큰 관심을 보였는데, 그의 하이네 번역은 1987년 일월서각에서 출판된 두 권의 하이네 시집에 실려 소개되었다. 하나는 <하이네 시집-정치시>[2]이고, 다른 하나는 <하이네 시가 있는 명상 노우트>[3]이다. 두 권의 시집 제목은 사뭇 다르다. 전자는 뚜렷하게 정치적 색채를 내세운 반면, 후자는 그러한 색채를 완전히 숨기고 있다. 그러나 후자의 <엮은이의 말>에서 김명수는 하이네 번역에 담긴 정치적 의도를 분명히 한다. 그는 한국의 하이네 수용이 주로 연애시 위주로 편향되어 있는 문제를 비판하면서 1830년 이후에 나온 하이네의 정치시를 소개하여 시인의 투사적 면모를 알리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또 19세기 중엽의 독일과 20세기 후반 한국이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를 겪었으나 민주화를 이루지 못한 점에서 평행하므로 한국에서 하이네 시가 현재성을 지닐 것이라 보았다. 번역의 저본은 1986년에 나온 바이마르판 <하이네 전집> 중 1권으로 역자가 여기서 하이네의 대표시들을 추려내어 엮었다. 김명수 역을 보면 전반적으로 세부에서 번역의 정확성이 떨어지고, 단어의 사전적 의미에 지나치게 얽매여 있다. 첫 연을 보자.
Denk ich an Deutschland in der Nacht,/Dann bin ich um den Schlaf gebracht,/Ich kann nicht mehr die Augen schließen./Und meine heißen Tränen fließen. 밤중에 나는 독일을 생각한다/나는 잠을 잃었기 때문에/나는 더 이상 눈을 감을 수 없고/그리고 내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린다.
첫 행을 유일하게 조건절로 번역하지 않은 번역이다. 2행에서는 원문에 없는 인과의 의미가 들어가 있다. 또 4행 맨 앞의 병렬접속사 ‘und’는 이미 3행의 “없고”에서 충분히 옮겨졌는데도 굳이 ‘그리고’라고 하여 서툰 느낌을 준다. 그밖에도 3연 4행 “하느님이 보호하시는, 어머님!”은 “하느님이시여 어머니를 보호해주소서”의 오역이다. 9연 4행 “내 가슴에―고마와라! 그들은 길을 비켜 준다!”에서 “길을 비켜준다”가 원어 ‘weichen’의 한 가지 뜻이기는 하나, 문맥상 ‘물러나다’가 더 적합하다. 10연 2행 “청명한 프랑스의 낮의 햇볕이”라는 번역도 내용상 맞지 않다. 시의 시점이 밤에서 아침으로 이동하는 국면에서 ‘낮의 햇볕’이라는 표현은 흐름을 방해한다. 이것은 독일어 “Tageslicht”를 그대로 직역한 결과로 보인다. 시의 종행 “그리고 잇달아 독일의 근심을 웃어버리리”도 문장의 전체 의미를 번역했다기보다는 개별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조합한 결과에 가깝다.
이밖에도 시행의 순서를 바꿔 번역해 원문과 강조하는 바가 달라지기도 했다.
Das Vaterland wird nie verderben,/Jedoch die alte Frau kann sterben. 그러나 어머니는 돌아가실 수 있다 해도/조국은 결코 멸망하지 않으리라
원문에서는 조국은 망하지 않아도 어머니는 죽을 수 있음이 강조된다면, 여기서는 행순서가 바뀌어 조국이 망하지 않는다는 것에 방점이 찍히게 된다. 이는 6연 1행과 2행(“독일은 영원하다/내 조국은 왕성한 나라”)의 의미와 결합하여 조국의 영속성을 강조한다. 역자는 시의 이해를 돕는 <감상 노우트>에서 이 시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읊은 사모곡”(105)이라고 규정하면서, “이념으로 무장된 혁명가에게도 어머니의 존재란 무엇보다 소중하고 고귀한 것임을 깨우치게 된다”(105)라고 해설하나, 번역시에서는 어머니에 대한 아들의 그리움만이 아니라 혁명가의 사무치는 애국심도 느껴진다. 역자는 독일의 시 <위안으로>(Zur Beruhigung)도 “희망에 찬 조국의 정치적 징조를 보며 조국의 평화를 기원하는 축복”(194)을 보내는 시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밤생각>은 2013년에 <김명수 전집>이 간행되면서 제7권 <시 해설>에 재수록되었다.
4) 김남주 역의 <밤에 나는 생각하네>(1988)
김남주 시인은 한국에 하이네의 정치시를 알리는 데 기여한 문인 중 한 명이다. 1988년 옥중에서 낸 그의 <해방시집 I.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남풍)는 네루다, 브레히트와 더불어 하이네의 시 36편을 소개하며, 1991년 창비에서 하이네의 <아타 트롤>과 12편의 시사시를 번역한 시집이 나오기도 했다. 김남주의 하이네 번역은 명백히 정치적 목적을 띤 것이었다. 시집 맨 앞에는 “싸우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이 시들을 읽어주기 바랍니다”라고 모토를 달았으며, 시대의 불의에 맞서 저항하는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기 위하여 번역을 했다고 밝힌다.
김남주의 하이네 번역은 원전 번역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1988년 염무웅 평론가에게 보내는 옥중 편지에서 그는 하이네와 브레히트 등을 자신에게 많은 영향을 준 시인으로 꼽으며 이들의 시를 주로 영어와 일어로 읽었다고 쓰고 있다.[4] 그러나 독일어 지식이 없었던 것은 아닌 듯하다. 시인은 자신이 6개의 외국어를 한다는 헛소문이 돈다면서도, 영어와 일어, 독일어는 감옥에 들어가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고도 말한다.[5] 그러나 조재룡의 연구에 따르면 김남주가 주로 저본으로 삼았던 것은 일어본으로 보인다.[6] 아무튼 수인의 몸으로 극한의 상황에서 감시의 눈길을 피해 성취한 김남주의 번역은 염무웅 평론가의 말마따나 “세계 번역사에 남을 참혹하게 위대한, 최악의 고통에서만 솟아오를 수 있는 영광의 한 페이지”[7]인 것은 분명하다.
김남주 역(79-80쪽)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은 시적 화자의 능동성이다. 우선 제목 번역 “밤에 나는 생각하네”에서 드러나듯 독일 생각은 시적 화자의 머릿속에서 어쩌다가 떠오른 것이 아니다. “밤중에 독일이 생각나면”(이동일), “밤중에 문득 독일 생각이 나면”(김광규), “한밤중 독일 생각이 나면”(정명순)과 달리, 김남주는 시의 첫 행도 “밤에 독일을 생각하면”이라 옮긴다. 시적 화자가 독일을 보다 의식적으로 생각하고 걱정하는 뉘앙스를 전달하는 것이다. 또한 망명으로 인해 어머니를 보지 못하는 처지를 한탄하는 대목에서 김남주는 “Seit ich sie nicht ans Herz geschlossen”을 “내가 어머니 품을 떠난 이래”라고 옮겨 시적 주체의 능동성을 표현한다. “내 어머니의 품 속에 안겨본 뒤로”(김광규), “어머니 품에 안겨본 지”(정명순)와 같은 번역은 시적 화자가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여전히 어린 아이 같다는 뉘앙스를 풍기며, “내가 어머니와 단절된 이후부터”(김명수)는 시적 화자가 어머니를 보지 못하는 상황이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것임을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내가 어머니를 가슴에 안지 못한 이래”(김수용), “어머니를 가슴에 안아보지 못한 지”(임홍배)도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능동성을 강조하지만, 김남주는 여기서 한 발 더 나가 대의를 위해 “어머니의 품을 떠”났다는 뜻으로, 혁명가 상에 맞게 의역했다고 할 수 있다.
김남주 역은 한국 독자가 쉽게 이입할 수 있도록 자국화한 면도 있다. 가령 김광규 역에서 “늙은 부인”이라 번역된 부분을 “늙으신 어머니”라고 옮긴 부분, 3인칭 ‘그녀’로 직역된 부분을 ‘당신’이라고 옮긴 부분이 그렇다. 어머니를 모두 한국적 존대법에 맞게 자연스럽게 높인 것이다.
Ich denke immer an die alte,/Die alte Frau, die Gott erhalte! 늙으신 어머니 생각만 한다/신이여 어머니를 보살펴 주소서!
편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당신의 손이/얼마나 떨리고 당신의 가슴은/얼마나 쓰라렸는지를
또 이 시 특유의 반복의 맛과 묘미를 잘 살린 부분도 눈에 띈다.
Zwölf lange Jahre flossen hin,/Zwölf lange Jahre sind verflossen, 12년이란 긴 세월이 흘러갔다/12년이란 긴 세월이 흘러가버렸다(김남주) 열두 해라는 세월이 흐르고/열두 해라는 세월이 흘러갔다(이동일) 열두 해란 긴 세월이 지나가 버렸다./열두 해란 긴 세월이 흘러가 버렸다(김광규) 열두 해 긴 시간/열두 해 긴 세월이 흘렀다.(정명순) 열두해가 흘러갔다/열두해가 속절없이 흘러갔다(임홍배)
원문을 보면 단순한 표현이 반복·변주되고 있다. 첫 행에서는 ‘흘러가다fließen’의 과거 시제가, 다음 행에서는 현재완료 시제가 쓰였고, 첫 행은 그 전 행의 ‘Sinn’과 각운이 맞는 ‘hin’이라는 분리 전철이 쓰인 것이 다를 뿐이다. 대부분의 역자들은 반복적인 표현이 단조로운 느낌을 주기 때문인지,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김광규는 앞에서는 ‘지나가다’, 뒤에서는 ‘흘러가다’라고 제각기 다른 시어를 사용했으며, 정명순도 “긴 시간”, “긴 세월” 이렇게 다르게 옮겼다. 임홍배는 뒷 행에 ‘속절없이’라는 부사를 넣어서 반복만으로는 잘 전달되지 않는 점층적 효과를 내고자 했다. 그런데 김남주는 ‘버리다’라는 보조동사를 사용해 이 문제를 비교적 간단히 해결한다. 자연스럽게 반복의 느낌을 살리면서도 점층법적인 수사적 효과도 낸 것이다. 역자의 절묘한 번역 감각이 잘 드러난다.
그 밖에도 김남주 역은 시의 흐름에서 반전 효과를 극적으로 살려낸다.
Seit ich das Land verlassen hab,/So viele sanken dort ins Grab,/Die ich geliebt ― wenn ich sie zähle,/So will verbluten meine Seele. 내가 조국을 떠난 이후/참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사랑했던 사람들 ― 그 수를 헤아리면/내 영혼에서는 피가 흐를 것이다
위 7연에서 3행 앞부분은 관계절로 2행의 선행대명사 “viele”를 받는데, 김남주 역에서는 별개의 문장처럼 번역되어 있다. 그러나 앞에 죽은 사람들이 ‘나’가 “사랑했던 사람들”임을 이해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다. 오히려 원문의 배치대로 죽은 사람들이 ‘나’가 ‘사랑했던 사람들’이라는 반전 효과가 잘 살아난다. 이렇게 함으로써 관계문대로 해석한 “내가 사랑하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그곳에서 무덤 속으로 사라졌는가”(김광규),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그곳에서 무덤에 묻혔다”(김수용)와 같이 선행사를앞의 수식어로 바꾼 번역보다 좀더 드라마틱한 효과가 난다. 원문대로 옮겨놓은 줄표가 바로 이런 효과를 의도한 것이기도 하다.
Und zählen muß ich ― Mit der Zahl/Schwillt immer höher meine Qual,/Mir ist, als wälzten sich die Leichen/Auf meine Brust ― Gottlob! sie weichen! 그러나 헤아리지 않을 수도 없다 ― 그 수를 헤아리면/고통만 더해 가고 시체가/내 가슴 위에서 뒹구는 것만 같지만―/아 그러나 고맙기도 해라! 그들이 물러가 주니
그다음 연에서도 이러한 반전 효과가 잘 살아 있다. 번역문을 보면 원문과 달리 3행에 나오는 단어인 “시체가”(die Leichen)가 2행 끝에 올라와 있다. 이렇게 앙잠브망 기법을 씀으로써 3행의 내용, 즉 죄책감과 부채감을 더욱 주목시키는 효과를 낸다. 또 3행 끝에서는 ‘~지만’ 뒤에 줄표를 붙여 다음 행에 상반된 내용이 나올 것을 예감케 하면서 원문의 줄표가 갖는 반전 효과도 증폭시켜 놓았다. 김남주 역은 대체로 직설적이며 표현에 군더더기가 없다. 앞에서 볼 수 있듯이 직역하면 “수많은 이들이 무덤 속으로 쓰러졌다”(임홍배) 정도일 행도 그냥 ‘죽었다’라고 번역했다. 그런데 마지막 행만은 예외다. “Gottlob”을 “아 그러나 고맙기도 해라”라고 비교적 장황하게 옮겨 놓았다. 그러자 이 부분에서 유달리 시적 화자의 고통과 안도감이 더 격렬하게 느껴진다. 여기에서 시적 화자의 감정에 깊게 공감했을 역자의 주관성을 엿볼 수 있다.
김남주 역은 시인의 타계 1주기를 추념하여 1995년에 같은 출판사에서 재간되었다. 개정판에는 마야코프스키와 아라공의 시가 추가되었다. 2018년에 또다시 개정판이 출판되었다. 이 판본에서 하이네의 시는 시인명의 ‘가나다’ 순에 따라 맨 마지막으로 밀려나 있다.
5) 김수용 역의 <밤의 생각>(1989)
김수용의 <Nachtgedanken> 번역(200-202쪽)은 <신시집>의 국내 최초 완역과 함께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 하이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1989년 문학과지성사에서 <신시집>을 번역 출간하고, 하이네의 시세계에서 <신시집>이 갖는 의미와 <신시집>의 구성 및 각 연작시의 세부 주제에 대한 해설을 붙여놓았다. 그는 <신시집>의 연작시 <시대시>가 당시 1840년대 독일에서 쏟아져 나온 정치시와는 그 내용과 형식에서 구분됨을 분명히 하면서, “하이네의 ‘시대시’는 어떠한 정치적 노선도 추종하지 않으며, 보수 진보 양대 세력을 모두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215)고 쓰고 있다. 이로써 하이네의 <시대시>를 정치적으로만 해석하는 관점에 거리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김수용 역도 전공자들의 번역이 그렇듯이 직역에 가깝다. 줄표는 물론 세미콜론과 같이(“십이 년이 벌써 흘러갔다;”) 한국어 문어에서 자리잡지 못한 문장부호까지 그대로 번역문에 옮겨놓았다.
김수용 역도 김광규 역처럼 어머니를 가리키는 “늙은 부인”이라는 생경한 표현을 감행했다. 또한 주어를 생략하곤 하는 한국어의 어법에 맞서 독일어 원문대로 ‘나는’을 빼놓지 않고 번역했다. 예컨대 “나는 항시 그 늙은 부인을 생각한다”, “내가 어머니를 가슴에 안지 못한 이래”, “그녀가 쓴 편지에서 나는” 등을 들 수 있다. 이렇게 하자 문장의 간결성은 다소 희생되지만, 시적 화자의 능동성이 보다 강조된다. 김수용 역에서 시적 화자는 독일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았으며, 혁명의 투지도 잃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독일은 영원히 존속해갈 것이다,/독일은 아주 건강한 나라이다,/참나무와 보리수를 지닌 이 나라를/나는 항시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김수용은 “ein kerngesundes Land”를 말 그대로 “아주 건강한 나라”로 해석했다. 이것은 어머니의 노환과 대비되지만, 독일에 대한 아이러니는 별로 표현되어 있지 않다. ‘나’의 생각에 독일은 “영원히 존속”할 것이며, 이 나라를 “항시 다시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역자는 시적 화자가 독일에 대한 애정이 굳건하며, 이런 독일을 자신의 손으로 해방시키겠다는 투쟁적 의지를 표명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이러한 투쟁적 의지는 9연에서 시적 화자가 독일에서 싸우다 죽어간 사람들의 숫자가 떠올라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에서도 잘 드러난다.
Und zählen muß ich – Mit der Zahl 그러나 나는 세어보아야 한다―숫자와 함께(김수용) 그러나 헤아려 보지 않을 수 없고―그 수효와 함께(김광규) 그러나 헤아리지 않을 수도 없다 – 그 수를 헤아리면(김남주)
김광규와 김남주 역에서는 싸우다 죽어간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를 세어보지 않을 수 없는 시적 화자의 부채감과 죄의식이 두드러진다면, 김수용 역에서는 그들을 잊지 않고 세어보아야 한다는 의지와 의무감이 더욱 강조된다. 김수용 역은 아무래도 직역에 가까워 전체적으로 감정 표현이 딱딱한 편이며, 단호하고 의연한 어조가 두드러진다.
6) 정명순 역의 <밤의 상념>(2022)
정명순 역은 80년대 후반 이후 오랜만에 나온 새 번역이다. <밤의 상념>은 역자가 편역한 <독일시독일서정>(전남대학교출판부, 2022)에 실려 발표되었다(174-177쪽). 이 책은 독일의 유명 문학평론가 라이히-라니츠키가 엮은 독일 시선집 <최고의 독일 시 Die besten deutschen Gedichten>를 참고해 중세부터 현대까지 독일 대표 시들을 옮겨놓은 것이다. 시선집은 수업 교재로 사용될 것을 염두에 두었는지 한독 대역본이며, 하이네의 시는 총 일곱 편 번역되어 있다.
역자는 원문의 문장 구조에 얽매이기보다는 비교적 자유롭게 문장을 재구성했다. 원시의 시행이월을 따르기보다는 의미가 행마다 일단락되도록 시행을 재배치했으며, 한국 독자에게 이해가 잘 되는 관습적 표현을 취한 경우도 많다. 가령 “세월이 오고 또 간다!”(임홍배)라고 직역할 수 있을 2연 1행은 “세월은 무심히 흐르는구나!”로 옮겨졌으며, “나는 항시 그 늙은 부인을 생각한다”(김수용)라는 3연 3행은 “언제나 그리운 어머니!”로 되어 있다. 또 바로 이 예시에서도 드러나듯이 정명순은 동사로 끝나는 문장을 명사구로 바꿔서 번역하는 경향을 보인다. 원문을 직역하려 한 김수용 혹은 임홍배의 번역과 비교해 보자.
내 마음을 한시도 떠나지 않는 어머니.(정명순) 어머니는 항시 내 마음속에 있다.(김수용)
점점 더 커지는 나의 고통,(정명순) 내 고통은 점점 부풀어오른다.(임홍배)
비치는 활기찬 프랑스 햇살,(정명순) 프랑스의 밝은 햇빛이 들어온다;(김수용)
독일 걱정을 몰아내는 내 여인이구나.(정명순) 미소 지으며 독일 걱정을 쫓아버린다.(임홍배)
이러한 명사구로의 전환은 시적 화자가 덤덤하게 자신의 속마음을 고백하는 듯한 어조가 아니라 영탄조로 전환되어 보다 경쾌한 맛이 있다. 그러나 다소 관습적인 시적인 언어의 느낌도 난다.
이와는 반대로 매우 직설적인 표현을 쓴 경우도 있는데, 가령 6연을 보자.
독일은 끝까지 살아남겠지/참 강한 나라야!/떡갈나무, 보리수가 있는 그 나라를/언젠가 다시 보겠지
6연 1행은 많은 역자들이 “독일은 영원히 존속한다”라고 직역을 했는데, 독일에 대한 시인의 양가적 태도를 염두에 두면, 정명순 역이 제일 정확하게 그 뉘앙스를 짚은 것으로 보인다. 독일이 단순히 영원히 존속한다는 뜻이라기보다는, 망해도 당연한 독일은 망하지 않고 계속 버틸 것이라는 의미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2행 “참 강한 나라야”도 그렇게 읽을 수 있다. 독일이 강했으면 하고 염원하거나 정말로 강한 나라이구나 하고 감탄하는 것도 아닌, 다소 비꼬는 뉘앙스가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4행 독일을 “언젠가 다시 보겠지”도 독일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이나 독일에 반드시 돌아가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에 비해 독일을 생각하는 마음은 훨씬 가볍게 표현되어 있다.
7) 임홍배 역의 <밤중의 상념>(2023)
정명순 역과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임홍배 역 역시 독일의 대표시들을 선별한 <모든 이별에 앞서가라>(창비, 2023)에 실려 발표되었다(82-84쪽). 총 51명의 시인, 105편의 시가 실려 있는 이 책에서 하이네의 시는 다섯 편이 선정되어 있으며, <밤중의 상념>도 그중 하나다. 이 시선집의 특징은 역자의 해설이 매우 상세하다는 것이다. 해설이 붙어 있는 시선집들은 많으나, 대개 시 생성 배경이나 작가의 소전 정도만 나와 있고 시 해석과 관련된 부분은 한두 줄에 그치고 만다. 그러나 <모든 이별에 앞서가라>에서는 모든 시마다 한두 쪽 이상의 해설이 붙어 있어, 시의 이해와 해석을 친절히 돕는다.
임홍배 역의 특징은 독일에 대한 시적 화자의 냉소적 태도가 (아마도 처음으로) 가장 분명하게 의도되어 있다는 것이다. 6연의 번역을 보자.
독일은 영원히 존속할 것이다/뼛속까지 튼튼한 나라니까!/참나무와 보리수와 더불어/독일이야 언제든 다시 보겠지
역자는 “ein kerngesundes Land”를 “뼛속까지 튼튼한 나라”라고 번역하여 독일어 원어 표현에 충실하면서도 맛깔스럽게 옮겨냈다. 또 나이 들고 병약한 어머니와 달리 망하지도 않고 계속해서 체제를 유지하는 독일의 ‘튼튼함’을 비아냥대는 뉘앙스도 전달하고자 했다. 특히 4행의 “독일이야 언제든”이라는 표현은 조국에 대한 그리움이나 조국에 대한 책임감을 나타내는 기존 번역과 달리, “독일쯤이야 언제든”으로 읽혀 독일에 대한 냉소적 태도를 잘 나타낸다. 이러한 역자의 시 해석은 해설에서도 잘 설명되어 있다. “시인과 어머니를 생이별로 갈라놓은 원흉은 아직도 봉건 절대군주가 건재한 독일의 집권세력이다. 따라서 그들에 대한 의분도 토로할 법하지만, 그런 감정은 6연에서 독일을 “뼛속까지 튼튼한 나라”라고 비꼬는 정도로만 절제되어 있다.”(96) 이는 하이네 시를 액면 그대로 읽기보다는 시인 특유의 아이러니에 주의해서 읽은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임홍배 역에서도 김남주 역이나 김수용 역과 유사하게 전체적으로 시적 화자를 능동적 주체로 번역했으며, “die alte Frau”를 “노인네”라고 새롭게 번역해 보기도 했다. 역자는 이렇게 하여 한국어에서 자연스러움도 희생시키지 않으면서도 원문의 뜻을 살려보려 했다. 또 “연로한 어머니”라고 번역하여, ‘늙은’이라는 직설적이고 (한국어에서) 불손하게 들리는 어감을 중화시키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원문의 의미에서 충실하면서도 한국어로도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는 균형감각이 돋보인다.
3. 평가와 전망 하이네의 <밤에 떠오르는 생각>은 누구나 공감하기 쉬운 주제를 소박한 언어와 선명한 이미지로 비교적 쉽게 전달하는 작품이다. 한국 독자들에게 작품 세부에서 전달되지 못하는 점들이야 있지만 전체 주제는 성공적으로 전달된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왕 여러 종의 번역이 나와 있으니 6연의 예처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부분에서 역자가 좀더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번역이 시도되어도 좋지 않을까 싶다. 특정한 해석적 관점에서 원시의 전체 어조나 어휘를 조율함으로써 시의 주제를 보다 선명하게 드러내는 번역도 필요해 보인다. 개별 번역 비평에서 보았지만, 주제적 모호함이 원시의 모호함보다는 역자의 해석 자체의 모호함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이는 경우가 더러 눈에 띄기 때문이다.
또한 시의 주제를 잘 전달하면서도 원시의 운율 및 시적 언어의 특징을 한국어에서도 구현하는 번역은 여전히 번역의 이상으로 남아 있다.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이동일(1959): 밤이면. 성문사.
김광규(2001): 밤에 떠오르는 생각. 민음사.
김명수(1987): 밤생각. 일월서각.
김남주(1988): 밤에 나는 생각하네. 남풍.
김수용(1989): 밤의 생각. 문학과지성사.
정명순(2022): 밤의 상념. 전남대학교출판부.
임홍배(2023): 밤중의 상념. 창작과비평사.
- 각주
- ↑ Heinrich Heine(1972): Werke und Briefe in zehn Bänden. Bd. 1, Berlin und Weimar: Aufbauverlag, 277. (http://www.zeno.org/nid/20005024749) (최종확인일: 2025.09.02.)
- ↑ 이 책은 <김명수 전집>에는 <김명수 시인 출간도서 목록>에 등재되어 있으나 도서관 소장본이 검색되지 않는다.
- ↑ <김명수 전집>에는 <하이네 시 해설서>로 등재되어 있다. 본문에서는 <하이네 시가 있는 명상 노우트>, 103-105쪽을 비평의 기초로 삼았다.
- ↑ 염무웅(1995): 순결한 삶, 불꽃 같은 언어. 김남주 번역시집 2. 아침 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푸른숲, 299.
- ↑ 같은 곳. 일설에 따르면 김남주 시인이 독문학 전공자와 하이네 시를 독일어로 같이 읽고 공부하기도 했다고 한다.
- ↑ 조재룡(2014): 김남주 번역의 양상과 특성에 대한 연구-번역을 통한 정치성의 관철 과정을 중심으로. 현대문학의 연구 53, 2014, 247-257.
- ↑ 염무웅(1995), 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