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스 이야기 (Schachnovelle)"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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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의 원작은 틀이야기와 속이야기로 구성된다. 틀이야기는 뉴욕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는 대형 여객선 안에서 닷새 동안 일어나며, 그 안에 체스 세계 챔피언인 미르코 첸토비치의 (속)이야기와 체스의 숨은 고수인 B 박사의 속이야기가 들어있다. 일인칭 관찰자 시점에 위치한 화자가 틀이야기를 서술하고, 그 ‘나’의 ‘친구’가 첸토비치의 이야기를 말하며, 작품의 중요한 부분인 B 박사의 속이야기는 일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전개된다. 틀이야기 안에 속이야기가 담겨있는 액자소설의 형식을 차용하지만 속이야기가 틀이야기로 ‘치고 들어와’, B 박사와 첸토비치가 체스로 대결하는 틀이야기에서 B 박사의 과거 트라우마의 플래시백이 일어난다. 매우 정교하게 짜였으나 액자의 형식이 부서지는 파격적인 구성이기도 하고, 화자가 세 명인 복합적인 구성이기도 하다. 츠바이크는 장(章)이나 부(部)와 같은 구분을 하지 않았다<ref>이 노벨레는 많은 판본이 있는데, 개중에는 문단과 문단 사이에 한 줄 빈칸을 삽입하거나 B 박사가 자신의 이야기 (속이야기)를 시작하는 대목 앞에 “*”를 삽입한 경우도 있는 등 편집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 번역비평에서 참조한 레클람 판본에는 츠바이크의 원고와 똑같이 처음부터 끝까지 형식적인 구분이 없다. 본문에서 인용되는 독일어 원문도 이 판본이다. Zweig, Stefan(2013): Schachnovelle. Kommentierte Ausgabe., Klemens Renoldner(ed.), Stuttgart: Reclam. 원문 인용 시 괄호 안에 쪽수만 표기한다. 이하 모든 밑줄은 평자에 의한 강조이다. </ref>. 역자들은 나름대로 작품의 형식에 개입하는데, 원작의 형식을 따르는 번역자도 있으며(김연수), 긴 문단의 경우 나누기도 하고(정상원), 페이지를 새롭게 하는 방식으로 몇 개의 덩어리로 구분하거나(박영구), 세 개의 장으로 나누기도 한다(최은아). 이중 오영옥의 번역이 가장 눈에 띄는데, 작품을 일곱 개의 장으로 나누고, “배 위의 ‘진기한 새 한 마리’/ 사제관의 고아가 체스 마이스터가 되다/ 미끼로 놓은 체스 시합/ 시합 중에 나타난 제3의 인물/ 나치 치하의 독방에서 겪은 ‘무(無)’/ 한 사람을 둘로 나눈 체스시합/ 마지막 체스 시합”으로 소제목을 붙였다. 원작의 형식으로부터는 멀어졌지만, 제목을 붙이는 독자친화적인 결정은 낯선 외국 문학을 안내하여 독서를 돕는 효과가 있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원작은 틀이야기와 속이야기로 구성된다. 틀이야기는 뉴욕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는 대형 여객선 안에서 닷새 동안 일어나며, 그 안에 체스 세계 챔피언인 미르코 첸토비치의 (속)이야기와 체스의 숨은 고수인 B 박사의 속이야기가 들어있다. 일인칭 관찰자 시점에 위치한 화자가 틀이야기를 서술하고, 그 ‘나’의 ‘친구’가 첸토비치의 이야기를 말하며, 작품의 중요한 부분인 B 박사의 속이야기는 일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전개된다. 틀이야기 안에 속이야기가 담겨있는 액자소설의 형식을 차용하지만 속이야기가 틀이야기로 ‘치고 들어와’, B 박사와 첸토비치가 체스로 대결하는 틀이야기에서 B 박사의 과거 트라우마의 플래시백이 일어난다. 매우 정교하게 짜였으나 액자의 형식이 부서지는 파격적인 구성이기도 하고, 화자가 세 명인 복합적인 구성이기도 하다. 츠바이크는 장(章)이나 부(部)와 같은 구분을 하지 않았다<ref>이 노벨레는 많은 판본이 있는데, 개중에는 문단과 문단 사이에 한 줄 빈칸을 삽입하거나 B 박사가 자신의 이야기 (속이야기)를 시작하는 대목 앞에 “*”를 삽입한 경우도 있는 등 편집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 번역비평에서 참조한 레클람 판본에는 츠바이크의 원고와 똑같이 처음부터 끝까지 형식적인 구분이 없다. 본문에서 인용되는 독일어 원문도 이 판본이다. Zweig, Stefan(2013): Schachnovelle. Kommentierte Ausgabe., Klemens Renoldner(ed.), Stuttgart: Reclam. 원문 인용 시 괄호 안에 쪽수만 표기한다. 이하 모든 밑줄은 평자에 의한 강조이다. </ref>. 역자들은 나름대로 작품의 형식에 개입하는데, 원작의 형식을 따르는 번역자도 있으며(김연수), 긴 문단의 경우 나누기도 하고(정상원), 페이지를 새롭게 하는 방식으로 몇 개의 덩어리로 구분하거나(박영구), 세 개의 장으로 나누기도 한다(최은아). 이중 오영옥의 번역이 가장 눈에 띄는데, 작품을 일곱 개의 장으로 나누고, “배 위의 ‘진기한 새 한 마리’/ 사제관의 고아가 체스 마이스터가 되다/ 미끼로 놓은 체스 시합/ 시합 중에 나타난 제3의 인물/ 나치 치하의 독방에서 겪은 ‘무(無)’/ 한 사람을 둘로 나눈 체스시합/ 마지막 체스 시합”으로 소제목을 붙였다. 원작의 형식으로부터는 멀어졌지만, 제목을 붙이는 독자친화적인 결정은 낯선 외국 문학을 안내하여 독서를 돕는 효과가 있다.  
  
오영옥의 번역은 역자 소개와 작품해설 등 곁텍스트가 국판 두 쪽 분량으로 최소한에 머무른다. 번역에 있어서는 원작의 내용을 무리 없이 전달하지만, 초역의 오류들을 노정하는 아쉬운 측면이 있다. 무엇보다 원문에서 번역이 까다로운 어휘나 표현을 생략하는 경향이 있는데, 일례로 오영옥의 번역에서 B 박사는 호텔에 감금되었던 경험을 들려주겠다면서, “좀 복잡한 얘기지만 어쨌든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날에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오영옥 165)이라고 말한다. 원문은 “zu unserer lieblichen großen Zeit”(34)로 ‘사랑스럽고 lieblich’와 ‘위대한 groß’은 전혀 그렇지 못한 파시즘의 시대를 반어적으로 풍자한다. 여기서 B 박사가 아이러니를 구사하는 것은 그가 어떤 인물인지 알려주는 단초도 될 수 있다. 그런데 이 두 형용사가 생략되어 B 박사의 말은 그저 평범한 번역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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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옥의 번역은 역자 소개와 작품해설 등 곁텍스트가 국판 두 쪽 분량으로 최소한에 머무른다. 번역에 있어서는 원작의 내용을 무리 없이 전달하지만, 초역의 오류들을 노정하는 아쉬운 측면이 있다. 무엇보다 원문에서 번역이 까다로운 어휘나 표현을 생략하는 경향이 있는데, 일례로 오영옥의 번역에서 B 박사는 호텔에 감금되었던 경험을 들려주겠다면서, “좀 복잡한 얘기지만 어쨌든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날에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오영옥 165)이라고 말한다. 원문은 “zu unserer lieblichen großen Zeit”(34)로 ‘사랑스럽고 lieblich’와 ‘위대한 groß’은 전혀 그렇지 못한 파시즘의 시대를 반어적으로 풍자한다. 여기서 B 박사가 아이러니를 구사하는 것은 그가 어떤 인물인지 알려주는 단초도 될 수 있다. 그런데 이 두 형용사가 생략되어 B 박사의 말은 그저 평범한 번역문이 되었다.      
  
 
'''2) [[#박영구(1997)|박영구 역의 <체스>(1997)]]<span id="박영구(1997)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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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⑤ 호텔 감방에 갇혀 있던 그 마지막 몇 개월 동안 제가 그렇게 ‘<u>미치광이처럼 지칠 줄도 모르고(infolge dieser irrwitzigen Unersättlichkeit)</u>’ 제 자신을 상대로 과연 몇 판이나 두었는지 결코 엇비슷하게나마 맞추기도 힘들 거예요. 어쩌면 천 번,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많았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저로서도 어찌할 수가 없는 <u>‘신들린 상태(eine Besessenheit)’</u> 같았어요. [···] 물론 지금에 와서는 당시의 제 상황이 지나친 정신적 자극에서 오는 <u>‘아주 병적인 상태(eine durchaus pathologische Form geistiger Überreizung)’</u>였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고 있습니다만, 그런 증세는 아직까지 의학계에도 알려져 있지 않은 일종의 <u>‘체스중독증(Schachvergiftung)’</u>이라고나 해야 할 것 같군요.(박영구 87)
 
  ⑤ 호텔 감방에 갇혀 있던 그 마지막 몇 개월 동안 제가 그렇게 ‘<u>미치광이처럼 지칠 줄도 모르고(infolge dieser irrwitzigen Unersättlichkeit)</u>’ 제 자신을 상대로 과연 몇 판이나 두었는지 결코 엇비슷하게나마 맞추기도 힘들 거예요. 어쩌면 천 번,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많았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저로서도 어찌할 수가 없는 <u>‘신들린 상태(eine Besessenheit)’</u> 같았어요. [···] 물론 지금에 와서는 당시의 제 상황이 지나친 정신적 자극에서 오는 <u>‘아주 병적인 상태(eine durchaus pathologische Form geistiger Überreizung)’</u>였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고 있습니다만, 그런 증세는 아직까지 의학계에도 알려져 있지 않은 일종의 <u>‘체스중독증(Schachvergiftung)’</u>이라고나 해야 할 것 같군요.(박영구 87)
  
박영구의 번역은 술술 잘 읽혀서 줄거리 파악이 쉽기도 하고, 원작의 흥미진진한 전개가 번역문에서도 잘 느껴지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역자가 작품해설에서 역설한 심리소설적인 측면을 실제 번역에서 정밀하게 살리는 것 같지는 않다. ‘Irrsinn’을 ‘미쳤다’고 눙치듯이 번역하고, ‘irrwitzige Unersättlichkeit’는 ‘미치광이’로 축약하며, ‘fanatisch’와 ‘manisch’를 구분 없이 ‘광적으로’ 옮기는 등 원어가 함의한 의미의 결을 섬세히 살리지 않고 일상적인 표현으로 대체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Besessenheit’를 독한사전에 있는 대로 “신들린 상태”로 번역하는 것은 “편집증적 집착”(김연수 66)이나 “광기서린 집착”(정상원 301)보다 한국어 사용 독자에게는 더 직관적으로 다가갈 수 있으나 텍스트의 맥락에 어울리지 않게 토속적이어서 어색하다. B 박사의 ‘체스중독증’이 환청을 듣는 망상으로까지 악화하기 때문에, 김연수의 번역처럼 ‘편집증적 집착’이 B 박사의 병리적인 상태를 살리는 선택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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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구의 번역은 술술 잘 읽혀서 줄거리 파악이 쉽기도 하고, 원작의 흥미진진한 전개가 번역문에서도 잘 느껴지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역자가 작품해설에서 역설한 심리소설적인 측면을 실제 번역에서 정밀하게 살리는 것 같지는 않다. ‘Irrsinn’을 ‘미쳤다’고 눙치듯이 번역하고, ‘irrwitzige Unersättlichkeit’는 ‘미치광이’로 축약하며, ‘fanatisch’와 ‘manisch’를 구분 없이 ‘광적으로’ 옮기는 등 원어가 함의한 의미의 결을 섬세히 살리지 않고 일상적인 표현으로 대체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Besessenheit’를 독한사전에 있는 대로 “신들린 상태”로 번역하는 것은 “편집증적 집착”(김연수 66)이나 “광기서린 집착”(정상원 301)보다 한국어 사용 독자에게는 더 직관적으로 다가갈 수 있으나 텍스트의 맥락에 어울리지 않게 토속적이어서 어색하다. B 박사의 ‘체스중독증’이 환청을 듣는 망상으로까지 악화하기 때문에, 김연수의 번역처럼 ‘편집증적 집착’이 B 박사의 병리적인 상태를 살리는 선택으로 생각된다.  
  
 
'''3) [[#김연수(2010)|김연수 역의 <체스 이야기>(2010)]]'''  
 
'''3) [[#김연수(2010)|김연수 역의 <체스 이야기>(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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첸토비치와 B 박사가 체스 경기를 벌이는 클라이맥스도 원문에 밀착하되 자연스러운 한국어로 매끄럽게 옮긴 충실한 번역이다. 망부석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주어진 10분의 마지막 순간까지 버티는 냉혈한인 첸토비치와, 그보다 훨씬 뛰어나지만 체스 경기 중에 체스중독의 플래시백에 빠지는 B 박사가 대립하는 부분은 문장의 이음새가 틀어지지 않아서 읽는 재미를 배가한다. B 박사가 또다시 심리적 파국을 겪고, 화자가 그에게 “영어로 “기억하세요!””(정상원 317)라고 말하는 문장은 원문에도 영어로 “Remember!”(73)이다. 이 말을 다른 역자들은 ‘기억하세요!’로 옮겼는데, 이렇게 말하면 작품의 화자가 하필 그 순간에, 외국어로, B 박사에게만, 말하는 의도는 묻히고 만다. 작품 속 외국어인 이 영어는 작가가 던지고 독자가 풀어야 할 수수께끼일 수도 있다. 정상원의 번역은 ‘영어로’라는 설명을 첨언하여 그 자리에 작가의 (이해를 바라는) 의도가 있음을 가리킨다.   
 
첸토비치와 B 박사가 체스 경기를 벌이는 클라이맥스도 원문에 밀착하되 자연스러운 한국어로 매끄럽게 옮긴 충실한 번역이다. 망부석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주어진 10분의 마지막 순간까지 버티는 냉혈한인 첸토비치와, 그보다 훨씬 뛰어나지만 체스 경기 중에 체스중독의 플래시백에 빠지는 B 박사가 대립하는 부분은 문장의 이음새가 틀어지지 않아서 읽는 재미를 배가한다. B 박사가 또다시 심리적 파국을 겪고, 화자가 그에게 “영어로 “기억하세요!””(정상원 317)라고 말하는 문장은 원문에도 영어로 “Remember!”(73)이다. 이 말을 다른 역자들은 ‘기억하세요!’로 옮겼는데, 이렇게 말하면 작품의 화자가 하필 그 순간에, 외국어로, B 박사에게만, 말하는 의도는 묻히고 만다. 작품 속 외국어인 이 영어는 작가가 던지고 독자가 풀어야 할 수수께끼일 수도 있다. 정상원의 번역은 ‘영어로’라는 설명을 첨언하여 그 자리에 작가의 (이해를 바라는) 의도가 있음을 가리킨다.   
  
정상원은 작품해설에서 화자가 “dieser unmenschliche Schachautomat”(24), 즉 “비인간적인 체스 기계”(정상원 264)라고 비난하는 첸토비치를 현재의 인공지능과 비교할 수 있다고 하거나, B 박사에 대해서도 오스트리아 파시즘 Austrofaschismus과의 관련성을 언급하는 등, 작품에 대해서 거리두기를 취하면서 선행한 번역들의 작품해설과 차별되는 해석의 방향을 보여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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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원은 작품해설에서 화자가 “dieser unmenschliche Schachautomat”(24), 즉 “비인간적인 체스 기계”(정상원 264)라고 비난하는 첸토비치를 현재의 인공지능과 비교할 수 있다고 하거나, B 박사에 대해서도 오스트리아 파시즘 Austrofaschismus과의 관련성을 언급하는 등, 작품에 대해서 거리두기를 취하면서 선행한 번역들의 작품해설과 차별되는 해석의 방향을 보여주기도 한다.  
  
 
'''3. 평가와 전망'''
 
'''3. 평가와 전망'''

2025년 9월 21일 (일) 08:27 판

슈테판 츠바이크 (Stefan Zweig, 1881-1942)의 소설

체스 이야기 (Schachnovelle)
작가슈테판 츠바이크 (Stefan Zweig)
초판 발행1942
장르소설

작품소개

슈테판 츠바이크가 1941년과 1942년에 걸친 브라질 망명 시절에 쓴 소설로 작가의 마지막 작품이다. 이야기는 뉴욕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는 대형 여객선 안에서 일어난다. 오스트리아 출신 이주자인 ‘나’는 같은 배에 탄 체스 세계 챔피언 첸토비치와 시합을 하고 패색이 짙었는데, 관전 중이던 B 박사의 훈수를 받게 된다. ‘나’는 B 박사로부터 그가 옛 오스트리아의 명망 있는 가문 출신으로 황실 재산의 기밀을 캐려는 나치 친위대에 의해 호텔 독방에 갇혀 여러 달 심문을 받은 경험에 대해 듣는다. 그는 연필도 책도 없는 완벽한 무의 공간이자 외부로부터 철저히 단절된 공간에서 심리적인 고문에 시달리던 중 우연히 체스 장인들의 대국 기보를 담은 책을 접하게 되었다고 한다. 기보를 다 외우고 매일 상상 속에서 블라인드 체스에 빠지다 급기야는 자신을 까만 말과 하얀 말로 완전히 분열하여 대국하는 데에 이르렀고, 그로 인한 인격분열과 광기 증상을 보여 풀려나게 되었다고 한다. 지성을 갖춘 교양 시민 B 박사와 달리 체스 챔피언 첸토비치는 비천한 집안 출신으로 체스 외에는 지적으로 열등한 인물이다. 첸토비치는 암기력도 상상력도 부족하지만 실전에는 누구보다도 능한 인물로서 세계 챔피언이 되고 온 세계를 누비며 시합을 하여 돈을 버는 데만 몰두해왔다. 경험과 전술에 능하고 편집증적인 치밀함을 보여주는 첸토비치는 상상 속 체스는 전혀 두지 못한다. 첸토비치와 시합하면서 처음으로 실전으로 체스를 두게 된 B 박사는 첫판에서 첸토비치를 이긴다. 체스 중독에 빠질까 봐 한 판만 두기로 했는데 두 번째 판이 벌어지고 상대의 전략과 기만술로 B 박사는 정신적으로 혼란한 상태에 빠져든다. 화자 ‘나’는 B 박사에게 한판만 두기로 한 애초 계획을 상기시킨다. B 박사는 화자의 말을 들어 시합을 끝내고 다시는 체스를 두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하면서 자리를 뜬다. 이 소설은 전략적 심리전의 미니어처인 체스 시합을 모티프로 냉혹한 이성으로 권력을 추구하는 첸토비치라는 인물을 통해 히틀러로 대변되는 권력자 유형을 비판한다. 동시에 B 박사의 내면에 잠복한 광기와 심리적 분열 상태를 향해 엄중히 경고하면서 당대 지식인들의 태도를 겨냥한 작품으로 해석된다. 국내에서는 1994년 오영옥에 의해 처음 번역되었다(범우사).


초판 정보

Zweig, Stefan(1942): Schachnovelle. Buenos Aires: Pigmalión.


번역서지 목록

번호 개별작품제목 번역서명 총서명 원저자명 번역자명 발행연도 출판사 작품수록 페이지 저본 번역유형 작품 번역유형 비고
1 체스 체스, 아내의불안 범우문고 115 슈테판 츠바이크 오영옥 1994 범우사 9-96 편역 완역 초판
체스 아내의 불안, 체스 슈테판 츠바이크 오영옥 1997 범우사 9-122 편역 완역 양장판, 판권기에 따르면 2쇄
체스 체스 슈테판 츠바이크 박영구 1997 푸른숲 7-114 완역 완역
4 체스 체스, 아내의 불안 범우문고 115 슈테판 츠바이크 오영옥 2004 범우사 9-103 편역 완역 2판
체스 이야기 체스 이야기, 낯선 여인의 편지 세계문학전집 21 슈테판 츠바이크 김연수 2010 문학동네 7-85 편역 완역
체스 이야기 체스 이야기 슈테판 츠바이크 소설시리즈 4 슈테판 츠바이크 최은아 2021 세창미디어 9-150 완역 완역
체스 이야기 감정의 혼란 : 슈테판 츠바이크의 대표 소설집 츠바이크 선집 1 슈테판 츠바이크 정상원 2024 하영북스 243-318 편역 완역


박희경

1. 번역 현황 및 개관

슈테판 츠바이크의 노벨레 <체스 이야기>는 작가가 망명지인 브라질에서 삶을 마감하기 전에 쓴 마지막 작품이다. 츠바이크는 1942년 2월 21일 원고 3부를 만들어서 각각 편집자와 번역가에게 보냈고, 그다음 날 유서를 썼고 부인과 함께 생을 마감했다. 작가의 사후 첫 출판은 포르투갈어로 번역된 판본으로 1942년 가을에 나왔다. 독일어 초판본은 그해 12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300부가 출간되었고, 1943년에 스톡홀름에서 두 번째 독일어 판본이 나왔다. 그 후 이 작품은 여러 차례 출판되었으나, 2013년에 레클람 출판사에서 비로소 작가가 넘긴 원고의 상태대로 편집되어 출간되었다. 2022년에는 ‘슈테판 츠바이크 센터 Stefan Zweig Zentrum Salzburg’와 잘츠부르크 대학교에서 공동으로 펴낸 <슈테판 츠바이크 작품전집>(일명 “잘츠부르크 판 Salzburger Werkausgabe”)의 한 권으로 출판되었다. 오늘날 <체스 이야기>는 작가의 최고 작품으로 평가되기도 하고 수많은 언어로 번역되기도 했는데, 독일어권에서는 세계현대문학의 반열에 올리기도 한다. 이외 이 작품은 영화, 연극, 오페라 등에서도 활발히 수용되었고 여전히 재해석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다섯 명의 번역자가 이 노벨레를 번역했고, 책으로는 일곱 번 출판되었다. 초역은 오영옥이 1994년에 했고 츠바이크의 노벨레 <아내의 불안>(원작의 제목: Angst)과 합본되어 <체스·아내의 불안>으로 출판됐다. 이 책은 양장판으로 편집을 달리하여 1997년에 <아내의 불안·체스>로 제목의 순서를 바꿔서 다시 출판되었다. 이후 2004년에 다시 <체스·아내의 불안>으로 재출판되었는데, 1994년의 번역이 미미하게 수정된 데 그쳤다. 따라서 오영옥의 번역은 출판 횟수로는 3종이나 실제로는 첫 번역이 세 차례 출판된 것으로 판단된다. 그 후 박영구의 번역이 1997년에 <체스>라는 제목의 단행본 형태로 출간되었는데, 책 표지의 제목 옆에 “슈테판 츠바이크의 심리소설”이라는 문구가 들어있다. 이 두 책은 절판된 상태이며 현재로서는 접근성이 굉장히 낮다. 세 번째 번역은 김연수가 2010년에 했는데, 제목을 <체스 이야기>로 바꾸었다. 이 번역은 <낯선 여인의 편지>와 합본으로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권으로 출간되었다. 김연수의 번역은 2024년까지 16쇄를 찍었는데, 판매 부수로 볼 때 가장 넓은 독자층을 가진 번역본으로 보인다. 김연수의 번역 이후에 출간된 번역들은 <체스 이야기>를 제목으로 하고 있다. 최은아의 번역은 2021년에 ‘슈테판 츠바이크 소설시리즈 4권’으로 세창미디어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B6 판형(4×6판)으로 작은 사이즈에 가볍게 만들어진 포켓북의 외관을 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 나온 번역은 2024년에 출간된 정상원의 번역으로 <츠바이크 선집 1>에 수록되었는데, 이 책은 <감정의 혼란>을 표제작으로 하며 노벨레와 단편 등 총 4편의 작품을 담고 있다.


2. 개별 번역 비평

1) 오영옥 역의 <체스>(1997)

슈테판 츠바이크의 원작은 틀이야기와 속이야기로 구성된다. 틀이야기는 뉴욕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는 대형 여객선 안에서 닷새 동안 일어나며, 그 안에 체스 세계 챔피언인 미르코 첸토비치의 (속)이야기와 체스의 숨은 고수인 B 박사의 속이야기가 들어있다. 일인칭 관찰자 시점에 위치한 화자가 틀이야기를 서술하고, 그 ‘나’의 ‘친구’가 첸토비치의 이야기를 말하며, 작품의 중요한 부분인 B 박사의 속이야기는 일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전개된다. 틀이야기 안에 속이야기가 담겨있는 액자소설의 형식을 차용하지만 속이야기가 틀이야기로 ‘치고 들어와’, B 박사와 첸토비치가 체스로 대결하는 틀이야기에서 B 박사의 과거 트라우마의 플래시백이 일어난다. 매우 정교하게 짜였으나 액자의 형식이 부서지는 파격적인 구성이기도 하고, 화자가 세 명인 복합적인 구성이기도 하다. 츠바이크는 장(章)이나 부(部)와 같은 구분을 하지 않았다[1]. 역자들은 나름대로 작품의 형식에 개입하는데, 원작의 형식을 따르는 번역자도 있으며(김연수), 긴 문단의 경우 나누기도 하고(정상원), 페이지를 새롭게 하는 방식으로 몇 개의 덩어리로 구분하거나(박영구), 세 개의 장으로 나누기도 한다(최은아). 이중 오영옥의 번역이 가장 눈에 띄는데, 작품을 일곱 개의 장으로 나누고, “배 위의 ‘진기한 새 한 마리’/ 사제관의 고아가 체스 마이스터가 되다/ 미끼로 놓은 체스 시합/ 시합 중에 나타난 제3의 인물/ 나치 치하의 독방에서 겪은 ‘무(無)’/ 한 사람을 둘로 나눈 체스시합/ 마지막 체스 시합”으로 소제목을 붙였다. 원작의 형식으로부터는 멀어졌지만, 제목을 붙이는 독자친화적인 결정은 낯선 외국 문학을 안내하여 독서를 돕는 효과가 있다.

오영옥의 번역은 역자 소개와 작품해설 등 곁텍스트가 국판 두 쪽 분량으로 최소한에 머무른다. 번역에 있어서는 원작의 내용을 무리 없이 전달하지만, 초역의 오류들을 노정하는 아쉬운 측면이 있다. 무엇보다 원문에서 번역이 까다로운 어휘나 표현을 생략하는 경향이 있는데, 일례로 오영옥의 번역에서 B 박사는 호텔에 감금되었던 경험을 들려주겠다면서, “좀 복잡한 얘기지만 어쨌든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날에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오영옥 165)이라고 말한다. 원문은 “zu unserer lieblichen großen Zeit”(34)로 ‘사랑스럽고 lieblich’와 ‘위대한 groß’은 전혀 그렇지 못한 파시즘의 시대를 반어적으로 풍자한다. 여기서 B 박사가 아이러니를 구사하는 것은 그가 어떤 인물인지 알려주는 단초도 될 수 있다. 그런데 이 두 형용사가 생략되어 B 박사의 말은 그저 평범한 번역문이 되었다.

2) 박영구 역의 <체스>(1997)

츠바이크의 <체스 이야기>는 해석의 가능성이 다양하다고 알려져 있다. B 박사의 이야기만 하더라도, 오스트리아의 명문가 출신에 뛰어난 지성과 섬세한 감각을 갖춘 법률가가 나치가 고안한 ‘심리적 살인’의 덫에 걸려서 망가지는 정치적·역사적 성격을 띠는 한편, ‘미치지 않기 위해서 미친’ 사람이 털어놓는 정신병리학적인 보고이기도 하다. 박영구의 번역은 심리소설의 측면을 부각한다. 그의 번역은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는데 책 표지에 “슈테판 츠바이크 심리소설”이라는 문구를 부제처럼 제시하며, 역자가 “심리 묘사의 극치를 이루는 츠바이크의 마지막 소설”(박영구 115)로 규정한다. 작가가 “편집광적인” 유형의 두 인물을 설정하여 심리실험을 펼치는 작품이라는 역자의 해설이 있기에, 심리학적인 어휘와 표현들을 어떻게 번역했는지 주목하게 된다. 실제로 박영구의 번역에서만 ‘편집광자’라는 어휘가 나타나기도 한다. 원작에서는 ‘편집광적 monomanisch’이라는 단어가 두 번 나온다. 한 번은 화자가 체스 세계 챔피언인 첸토비치에게 호기심을 느끼면서 하는 말, “Alle Arten von monomanischen, in eine einzige Idee verschossenen Menschen haben mich zeitlebens angereizt, [···]”(13)에 나오는데, 박영구는 “단 한가지 일에만 생각을 집중하는 편집광적인 유형의 사람들에게 평생 매력을 느껴왔다”(박영구 19)고 번역한다. 여기서 일인칭 화자는 ‘편집광적’이라는 어휘의 의미를 넓게 잡아서, 어떤 특정한 일에(만) 비상한 능력을 발휘하는 유형의 인간을 가리킨다. 다른 한 번은 B 박사가 호텔에 감금되었을 때 체스에 중독된 경험을 일컬어 “diese monomanische Besessenheit”(60)라고 표현하는데, 박영구는 “편집광적인 신들린 상태”(박영구 87)로 옮긴다. 여기서 B 박사는 정신병리학적인 의미를 담아서 특정한 일에 몰입하는 열정이 열병이 되는 상태를 말한다. 요컨대 원작에서 ‘monomanisch’라는 어휘는 비유를 위한 문학적 표현이면서 또한 정신의학적 용어로 쓰인다. 이 어휘 외에도 쓰임에 따라서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어휘들이 꽤 있기 때문에 번역자가 어떻게 번역하는가에 따라서 B 박사가 겪는 광기와 착란의 정도가 다르게 된다.

B 박사는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채 호텔 방 안에서만 지내야 했을 때 미치지 않기 위해서 자신을 흰 말과 검은 말로 분리하여 블라인드 체스를 두는데, 곧 체스 놀이가 체스 강박이 되고 체스 대결에 광적으로 집착하다가 정신과 신체가 망가지는 상태에 이른다. B 박사는 이 과정을 ‘Irrsinn’, ‘geistiger Marasmus’, ‘Selbstzerteilung’, ‘Schizophrenie’, ‘Bewusstseinsspaltung’, ‘Manie’, ‘Besessenheit’등 정신병리학의 영역에 걸쳐있는 어휘들을 동원하여 상세히 묘사한다. 열정이 열병으로 변모하는 단계들을 박영구의 번역으로 읽어보자.(아래 인용에서는 괄호 안에 번역된 어휘와 표현을 삽입하되, 해당 원문 전체를 제시하지 않는다).

① 간단히 말해서 저는 그같이 불가능하고 불합리한 짓을 절망감 속에서 몇 달 동안 필사적으로 해보려고 했던 겁니다. 하지만 ‘완전히 미쳐버리거나(dem puren Irrsinn)’, 아니면 ‘완전한 신경 쇠약(einem völligen geistigen Marasmus)’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서 저는 그처럼 ‘모순된 짓(Widersinn)’을 하는 것 말고는 달리 어쩔 수가 없었어요.(박영구 79) 
② 하지만 저의 그 ‘혼란한 실험(meinem abstrusen Experiment)’에서 그 같은 ‘자기 분할(Selbstzerteilung)’ 자체는 아직 크게 위험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여러 체스판들을 자력으로 고안해냄으로써 갑자기 ‘존재의 기반을 잃게 되어 깊은 심연 속으로 빠져드는 것(den Boden unter den Füßen verlor und ins Bodenlose geriet)’이 오히려 가장 위험한 일이었습니다.(박영구 82) 
③ 이런 모든 얘기가 터무니없어 보이고, 사실 그렇게 ‘인위적인 정신 분열증(eine solche künstliche Schizophrenie)’, ‘위험한 흥분 상태(gefährlicher Erregtheit)’를 동반하는 그런 ‘의식 분열(eine solche Bewusstseinsspaltung)’은 정상적인 상태의 정상적인 사람한테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일 겁니다.(박영구 83-84) 
④ 저는 제 자신을 상대로 싸우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게임 말고는 다른 아무것도 할 게 없었기에, 저의 분노와 복수심을 ‘거의 광적으로(fanatisch)’ 그 같은 게임에 쏟아부었습니다. 제가 맞서 싸울 수 있었던 대상은 바로 제 안의 또 다른 저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저는 체스를 두는 동안 ‘거의 광적인 흥분 상태(in eine fast manische Erregung)’로 빠져들어 갔습니다.(박영구 84)  
⑤ 호텔 감방에 갇혀 있던 그 마지막 몇 개월 동안 제가 그렇게 ‘미치광이처럼 지칠 줄도 모르고(infolge dieser irrwitzigen Unersättlichkeit)’ 제 자신을 상대로 과연 몇 판이나 두었는지 결코 엇비슷하게나마 맞추기도 힘들 거예요. 어쩌면 천 번,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많았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저로서도 어찌할 수가 없는 ‘신들린 상태(eine Besessenheit)’ 같았어요. [···] 물론 지금에 와서는 당시의 제 상황이 지나친 정신적 자극에서 오는 ‘아주 병적인 상태(eine durchaus pathologische Form geistiger Überreizung)’였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고 있습니다만, 그런 증세는 아직까지 의학계에도 알려져 있지 않은 일종의 ‘체스중독증(Schachvergiftung)’이라고나 해야 할 것 같군요.(박영구 87)

박영구의 번역은 술술 잘 읽혀서 줄거리 파악이 쉽기도 하고, 원작의 흥미진진한 전개가 번역문에서도 잘 느껴지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역자가 작품해설에서 역설한 심리소설적인 측면을 실제 번역에서 정밀하게 살리는 것 같지는 않다. ‘Irrsinn’을 ‘미쳤다’고 눙치듯이 번역하고, ‘irrwitzige Unersättlichkeit’는 ‘미치광이’로 축약하며, ‘fanatisch’와 ‘manisch’를 구분 없이 ‘광적으로’ 옮기는 등 원어가 함의한 의미의 결을 섬세히 살리지 않고 일상적인 표현으로 대체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Besessenheit’를 독한사전에 있는 대로 “신들린 상태”로 번역하는 것은 “편집증적 집착”(김연수 66)이나 “광기서린 집착”(정상원 301)보다 한국어 사용 독자에게는 더 직관적으로 다가갈 수 있으나 텍스트의 맥락에 어울리지 않게 토속적이어서 어색하다. B 박사의 ‘체스중독증’이 환청을 듣는 망상으로까지 악화하기 때문에, 김연수의 번역처럼 ‘편집증적 집착’이 B 박사의 병리적인 상태를 살리는 선택으로 생각된다.

3) 김연수 역의 <체스 이야기>(2010)

김연수가 번역한 <체스 이야기>의 작품해설에서 역자는 첸토비치와 히틀러의 유사성에 주목한다. 이에 따르면 사람을 절대적인 고립 상태에 감금하여 내부로부터 무너지게 만드는 게슈타포의 고문 방식과 일부러 시간을 질질 끌어 상대방을 심리적인 혼란 상태에 빠트려서 시합을 망치게 하는 첸토비치의 전략이 본질적으로 유사하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체스 시합 중 첫 번째 대국의 한 부분을 김연수의 번역으로 읽어보자.

그래서 첸토비치가 결정을 오래 끌면 끌수록 그는 점점 더 초조해했고, 기다리는 동안 화가 나서 입술 주위에 적대감이 역력하게 나타났다.(김연수 76) [···] 우리의 친구는 말없이 기다리는 이 시간을 우리 못지않게 참을 수 없어했다. 갑자기 그가 벌떡 일어서더니 흡연실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천천히, 조금 뒤에 더 빨리, 그러다가 점점 더 빨라졌다. 모두가 놀라서 그를 바라보기는 했지만 누구도 나만큼 불안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가 아무리 급히 왔다 갔다 해도 그 걸음걸이가 늘 동일한 간격으로 공간을 재고 있다는 것이 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마치 빈방 한가운데서 보이지 않는 횡목에 부딪혀 돌아설 수밖에 없는 것만 같았다. 과거에 그가 호텔 감방에서 왔다 갔다 했던 것을 무의식적으로 재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전율을 느꼈다. 수개월간 감금되었을 때 바로 저렇게, 흡사 우리에 갇힌 동물처럼 왔다 갔다 했음이 틀림없었다. 저렇게 두 손은 경련을 일으키는 듯하고 어깨는 구부정하게 구부린 자세로 말이다. 바로 저런 모습으로, 시선이 고정되어 움직이진 않지만 열이 나는 눈빛에 붉은 광기마저 감도는 저 모습으로, 그는 그곳에 수천 번을 왔다 갔다 한 것이 분명했다.(김연수 77-78)[2] 

첸토비치가 숙고의 시간을 길게 가지자 B 박사가 이상 행동을 하고, 화자는 그 모습에서 체스중독의 증상이 되살아난 것을 알아차린다. 원작에서는 화자가 관찰하고, 깨닫고, 추측하는 부분이 쉼표와 쌍반점으로 길게 이어지며 점층적으로 긴장감을 끌어올리는데, 김연수의 번역은 문장을 짧게 잘라가는 방식으로 긴박한 느낌이 드는 긴장감을 전달한다. 이 대목에서 일인칭 화자가 B 박사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진하게 묻어나는 것도 번역의 한 특징이다. 이를테면 원문에는 ‘ein ärgerlicher und fast feindseliger Zug’, 즉 기다리는 동안 ‘입술 언저리에 불쾌하고 거의 적의를 띤 기색’이 나타나는데, 김연수의 번역은 화자가 관찰자의 위치에서 벗어나 인물의 속내를 들여다본 듯 ‘화가 나서 입술 주위에 적대감이 나타나’는 걸로 감정을 표현한다. 또한 원문에서는 화자가 B 박사의 행동을 보면서 그의 과거를 추측하는 데 비해서, 번역에서는 화자가 B 박사의 행동을 해석하고 “~틀림없었다”, “~분명하다”고 단정한다. 이 또한 화자가 관찰자의 입장에 머물지 않고 B 박사와 상당히 동일시하는 태도로 보인다. B 박사가 겪은 증상을 알고 있는 화자가 그의 이상행동을 판단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화자의 눈과 하나가 되는 독자가 텍스트를 쉽게 이해하도록 하는 효과를 낳는다. 그런데 원문에서는 화자가 외부 관찰자에 머무르면서, B 박사의 보행이 무의식적으로 호텔 감방의 크기를 재현한다는 ‘전율이 이는 깨달음’을 경험하는데, 번역에서 이 부분이 예리하게 옮겨지지 않은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마지막 문장에 포함된 ‘시선이 고정되어 움직이진 않지만 열이 나는 눈빛에 붉은 광기마저 감도는 저 모습’에 해당하는 원문은 ‘die roten Lichter des Wahnsinns im starren und doch fiebernden Blick’으로 주어와 동사가 없이 문장의 끝에 위치한다. 이는 화자가 현재 시점에서 관찰하는 모습일 수 있는 동시에 과거의 모습일 수도 있는 이중의 가능성을 갖는데, 역자가 ‘바로 저런 모습으로 [···] 저 모습’으로 반복하여 현재와 과거의 이중적인 시간성을 잘 살린다고 판단된다.

두 번째 대국에서 첸토비치는 일부러 한 수에 주어진 10분의 시간을 끝까지 쓰는 전략으로 B 박사를 도발한다. 첫 번째 대국에서 조바심을 내보였던 B 박사는 두 번째 대국에서 “laut und boshaft”(72)하게 웃고, “in heftigem, beinahe grobem Ton”(73)으로 말하는 등, 그의 행동에서 “alle Symptome einer anormalen Erregung”(73)이 나타나는데, 김연수의 번역은 “큰 소리로 심술궂게 웃었다”, 말을 “아주 격렬하게, 거친 어조로 [···] 던졌다”(김연수 80)로 옮기고, 또한 “비정상적인 흥분의 증상들이 분명하게 드러났다”(김연수 81)로 옮겨서 B 박사한테서 또 다른 인격이 나타나듯이 변하는 모습을 잘 전달한다.

[···] 우리 친구의 행동은 더욱더 이상해졌다. 겉으로 보기엔 더는 시합에 참여하지 않고, 그 대신 뭔가 아주 다른 것에 몰두하는 것만 같았다. 그는 격렬하게 왔다 갔다 하던 것을 멈추고 꼼짝도 않은 채 자기 자리에 앉아 있었다. 미친 사람처럼 멍한 시선으로 허공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이해할 수 없는 말을 계속 중얼거렸다. 다음 수를 이어 가는데 몰입하고 있거나, 아니면 완전히 다른 게임을 만들고 있는 듯 했다. 생각해볼 때 후자 같았다. 왜냐하면 첸토비치가 마침내 한 수를 둘 때마다 그를 환기시켜 정신을 차리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 분 정도만 지나면 그는 곧 그런 상태로 돌아갔다. 그가 이미 오래전에 첸토비치와 우리를 잊고, 갑자기 격렬하게 폭발할 수도 있는 싸늘한 광기에 휩싸인 것은 아닐까 하는 의혹이 점점 더 나를 엄습했다.(김연수 82)[3]

화자는 여기서 관찰자의 위치에서 B 박사가 미동 없이 앉아서 초점 없는, 광기에 가까운 시선을 한 채 쉼 없이 혼잣말을 내뱉는 것을 관찰한다. 원문에서 화자는 “entweder verlor er sich in endlosen Kombinationen, oder er arbeitete — dies war mein innerster Verdacht — sich ganz andere Partien aus.”(75)라고 하면서, B 박사가 호텔 감방에서 그랬듯이 블라인드 체스를 하고 있다는 의심을 한다. “끝없는 경우의 수 조합 속으로 자신을 잃거나, 아니면 — 이것이 내 가장 깊은 의심이었다. — 전혀 다른 판들을 속으로 가다듬고 있거나.”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역자는 원문의 안에 삽입된 문장을 ‘생각해볼 때 후자 같았다’로 옮기면서 원문을 의역하여 B 박사의 상황을 전달한다. 이때 어휘의 의미가 상당히 탈각되면서 아쉽게도 원문의 질감이 밋밋해진다. 역자가 의도하지 않았을 법한 방식으로 원문의 의미가 전달되는 부분도 있는데, 상상의 체스에 빠진 B 박사를 깨워서 정신을 차리게 하면 이내 다시 그런 상태로 되돌아간다는 부분이다. 원문을 충실히 옮긴 정상원의 번역은 “첸토비치가 드디어 맞수를 두면 우리가 매번 넋을 놓고 있는 그를 깨워서 독촉해야 했을 정도였다. 그러면 그는 몇 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실제 상황으로 다시 돌아오곤 했다”(정상원 316)이다. 원문대로라면 B 박사는 현실의 체스 시합으로 돌아오는 데 시간이 걸릴 만큼 현실감각을 상실한 상태에 빠져 있고, 김연수의 번역에서는 현실로 돌아와도 이내 그 상태로 돌아간다.


4) 최은아 역의 <체스 이야기>(2021)

최은아가 번역한 <체스 이야기>는 포켓북 크기의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는데, 옮긴이에 대한 간단한 약력과 짧은 작품 설명을 담고 있다. 최은아의 번역에는 재치가 엿보이는 어휘들이 있다. 일례로 작품의 도입부에서 첸토비치가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었다는 문장에서, 최은아는 원문 “[···], dessen einzige Barke eines Nachts von einem Getreidedampfer überrannt wurde”(6)의 동사를 살려서 “작은 배를 곡물을 가득 실은 증기선이 밀쳐 넘어뜨렸다.”(최은아 12)로 번역하는데, 이는 ‘충돌했다’(박영구 9), “충돌해 뒤집혔다”(김연수 10), “부딪혔다”(정상원 246)라는 일반적인 번역과 달리 감각적인 느낌을 준다. 나치가 관청과 기업들에 비밀리에 심은 “Zellen”(36)을 “세포”(최은아 68)로 옮긴 것도 문맥에 부합한다. 그런 한편 구문에 있어서는 기존의 번역과 비슷하고, 원문의 다층위적인 텍스쳐에서 한 층위를 버리고 문장을 평면적으로 만드는 경향도 나타난다.


5) 정상원 역의 <체스 이야기>(2024)

정상원은 슈테판 츠바이크의 <광기와 우연의 역사>(Sternstunden der Menschheit)를 번역하였고, <감정의 혼란>을 비롯하여 츠바이크의 노벨레와 단편을 다수 번역하였다. 작품해설에서 “몇 년에 걸쳐 츠바이크의 작품을 번역 중”(정상원 322)이라고 밝히고 있어서, 역자가 츠바이크의 작품을 번역하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고 짐작되기도 한다. <체스 이야기>를 번역한 다른 역자들이 저본을 밝히지 않았던 데 비해서 정상원은 “잘츠부르크 완결판에 근거한 번역”(정상원 323)이라고 제시한다. 구체적인 서지를 말하지 않으나 아마도 찰츠부르크 판 <슈테판 츠바이크 작품전집>의 제5권을 저본으로 삼은 걸로 보인다. 정상원의 번역은 장점이 많다. 무엇보다도 원문에 대한 이해와 유려한 한국어 문장이 돋보인다. 예를 들어 다음 대목을 보자.

Dieser eigentlich unbeschreibbare Zustand dauerte vier Monate. Nun – vier Monate, das schreibt sich leicht hin: just ein Dutzend Buchstaben! Das spricht sich leicht aus: vier Monate vier Silben. In einer Viertelsekunde hat die Lippe rasch so einen Laut artikuliert: vier Monate! Aber niemand kann schildern, kann messen, kann veranschaulichen, nicht einem andern, nicht sich selbst, wie lange eine Zeit im Raumlosen, im Zeitlosen währt, und keinem kann man erklären, wie es einen zerfrißt und zerstört, dieses Nichts und Nichts und Nichts um einen,[···](44)  
이렇듯 도저히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상태로 넉 달을 보냈습니다. 흠, 넉 달이라, 쓰기 쉬운 단어지요. 몇 자만 적으면 되지 않습니까! 말하기도 쉽군요, 넉 달 ··· 딱 두 음절입니다. 입을 벌려 두 음절을 내뱉는 데는 채 1초도 안 걸립니다. 넉 달! 그러나 공간을 벗어나고 시간을 벗어난 곳에서 특정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지는지 결코 묘사할 수도, 측량할 수도 없으며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없는 건 물론이고 저 자신도 제대로 실감할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을 에워싼 무, 아무것도 없는, 그러한 무의 상태가 어떻게 그 사람을 갉아먹고 망가트리는지를 다른 사람에게 설명한다는 건 불가능합니다.(정상원 284) 

여기서 ‘Vier Monate- ein Dutzend Buchstaben- vier Monate vier Silben- In einer Viertelsekunde’ 등 vier의 소리를 반복하는 원문의 언어유희에 정상원은 한국어의 ‘둘=2’라는 숫자로 대응하는 방식을 택하여 ‘넉 달- 몇 자 ··· - 두 음절– 채 1초’로 옮긴다. ‘Viertelsekunde’를 ‘채 1초도’ 되지 않는 시간으로 옮긴 것도 영리한 선택이다.(이 어휘를 오독하지 않은 유일한 번역자이기도 하다). 원문의 ‘schildern’, ‘messen’, ‘veranschaulichen’을 동사 ‘묘사하다’, ‘측량하다’, ‘보여주다’로 옮기면서, 간접 목적어(대상)인 타자와 자신을 나누고, 여기에 원문에 없는 동사 “실감하다”를 첨가하여 한국어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만들었다. 그리고 원문에서 세 번 반복되는 ‘Nichts’를 ‘한 사람을 에워싼 무, 아무것도 없는, 그러한 무의 상태’로 번역하였다. 이렇게 설명을 부연하는 번역에서는 원문이 주는 시각적·청각적인 자극이 약화되지만, 그 대신에 추상적인 개념인 ‘무(無)’를 상대방에게 이해시키려는 화자의 태도가 강화되는 효과가 생긴다. 원문에서는 언어의 한계에 부딪힌 화자가 어휘들을 반복하기도 하고 여러 차례 쉼표로 문장을 멈추는 데 비하여, 번역문에서는 화자가 정제되고 유려한 문장으로 설명하고 설득하는 어투를 구사한다. 그 결과 번역문에서는 원문이 주는 거친 긴장감이 살짝 후퇴하면서 무에 대한 사유의 흔적이 전면에 나타난다. 정상원의 번역에서 B 박사의 체스중독은 다음과 같다.

막바지에 저는 아침부터 밤까지 오직 체스에만 몰두했는데 체스를 둘 때면 극도로 흥분한 나머지 잠시도 조용히 앉아 있을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경기 내용을 생각하면서 저는 끊임없이 왔다 갔다 했습니다. 점점 더 빨리, 더 빨리, 더욱더 빨리 왔다 갔다 왔다 갔다 했고, 경기가 결말을 향해 치달을수록 더욱 격렬하게 왔다 갔다 했습니다. 이기고 승리하겠다는, 저 자신을 꺾겠다는 욕망은 차츰 일종의 광기로 변했습니다. 체스를 두는 하나의 나는 다른 내가 지나치게 꾸물댄다고 조바심을 치며 부르르 떨었습니다. 하나의 나는 다른 나를 몰아붙였습니다. 당신에게는 한심하게 들리겠지만 저는 저 자신을 욕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의 내가 즉시 맞수를 두지 않으면 다른 나는 ‘빨리, 좀 빨리하란 말이야!’ 혹은 ‘어서 해, 어서!’라고 짜증을 냈습니다. 물론 지금 저는 제 상태가 신경과민에서 정신병으로 진전된 단계였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상태를 의학적으로 칭하는 이름은 아직 없기에 체스 중독증이라는 이름밖에는 떠오르질 않는군요.[4] (정상원 300-301) 

여기서도 역자는 원문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를 토대로 한국어로 매끄럽게 다시쓰기를 하는데, 문단의 서두에 있는 부사 ‘schließlich’를 ‘막바지에’로 옮긴 것을 시작으로 B 박사가 발병의 단계에 이르게 된 점을 부각하는 특징을 보인다. 역자는 두 가지 전략을 쓰는데, 우선 원문에 술어가 없는 경우 ‘왔다 갔다’는 표현을 반복하거나, 강한 감정적인 표현인 ‘짜증을 냈다’를 첨언하여 원문의 의미를 극적(劇的)으로 강화한다. 박영구가 “자신에게 투덜대기 시작했다”(박영구 87)로 옮기고, 김연수가 “재촉했어요”(김연수 66)를 첨언한 것과 비교하면, 정상원의 ‘짜증’이 가장 감정이 고조된 흥분상태를 보여준다. 이와 함께 ‘광기 Wut’, ‘조바심을 치며 부르르 떨었습니다 ich zitterte vor Ungeduld’, ‘욕하기 beschimpfen’처럼 원문의 어휘와 표현을 옮길 때는 여러 역어 중에서 보다 더 센 느낌의 역어를 선택한다. 그리고 직역하면 “정신적으로 지나치게 과민해진 병적인 양상’(김연수 66)”인 ‘eine pathologische Form geistiger Überreizung’을 ‘신경과민에서 정신병으로 진전’이라고 정신병리학적으로 명명한다. 이렇듯 정상원은 원문의 의미를 원문보다 더 높은 강도로 번역하는 방식으로 체스에 미친 B 박사의 심리적 파국을 표현한다.

첸토비치와 B 박사가 체스 경기를 벌이는 클라이맥스도 원문에 밀착하되 자연스러운 한국어로 매끄럽게 옮긴 충실한 번역이다. 망부석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주어진 10분의 마지막 순간까지 버티는 냉혈한인 첸토비치와, 그보다 훨씬 뛰어나지만 체스 경기 중에 체스중독의 플래시백에 빠지는 B 박사가 대립하는 부분은 문장의 이음새가 틀어지지 않아서 읽는 재미를 배가한다. B 박사가 또다시 심리적 파국을 겪고, 화자가 그에게 “영어로 “기억하세요!””(정상원 317)라고 말하는 문장은 원문에도 영어로 “Remember!”(73)이다. 이 말을 다른 역자들은 ‘기억하세요!’로 옮겼는데, 이렇게 말하면 작품의 화자가 하필 그 순간에, 외국어로, B 박사에게만, 말하는 의도는 묻히고 만다. 작품 속 외국어인 이 영어는 작가가 던지고 독자가 풀어야 할 수수께끼일 수도 있다. 정상원의 번역은 ‘영어로’라는 설명을 첨언하여 그 자리에 작가의 (이해를 바라는) 의도가 있음을 가리킨다.

정상원은 작품해설에서 화자가 “dieser unmenschliche Schachautomat”(24), 즉 “비인간적인 체스 기계”(정상원 264)라고 비난하는 첸토비치를 현재의 인공지능과 비교할 수 있다고 하거나, B 박사에 대해서도 오스트리아 파시즘 Austrofaschismus과의 관련성을 언급하는 등, 작품에 대해서 거리두기를 취하면서 선행한 번역들의 작품해설과 차별되는 해석의 방향을 보여주기도 한다.

3. 평가와 전망

<체스 이야기>의 번역들은 겉읽기에는 비슷해서 각 번역의 개별적 특성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역자들이 작품을 해석함에 있어서 같은 점이 많은데, 이것이 실제 번역을 수행함에 일정 정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더불어 츠바이크의 문체가 비교적 단순한 문장 구조를 기반으로 하는 까닭에, 그의 글의 구조가 번역문장이 서로 엇비슷하게 닮을 가능성을 배태하고 있다고도 보인다. 하지만 츠바이크는 대상을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묘사하기 위해서 일상적이지 않은 어휘들을 동원한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가로지르는 어휘는 체스판을 사이에 두고 양극단을 이루는 두 인물을 선명하게 그려내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따라서 역자가 어떤 역어를 선택하는가가 이 작품의 번역에서 중요해 보인다. 역자들이 선택한 낱말은 그 하나하나로는 미세한 차이만을 가질지라도, 그것들이 모이면, ‘편집광자’와 ‘편집증자’가 다르듯이, 두 인물의 성격이 달라질 수 있다. 실제로 본 번역비평에서는 번역과 번역 간에 미묘한 차이들을 어휘의 차원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아울러 선행번역이 축적되면서 한국어 문장을 다듬는 공정의 과정이 정교해지는 양상도 일부 확인할 수 있었다. 가장 최근의 번역작인 정상원의 <체스 이야기>는 ‘zu unserer lieblichen großen Zeit’를 놓쳤을 뿐, 전반적으로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높은 가독성을 확보한 것으로 판단된다. 다른 한편 좋은 번역은 언제나 다음 번역을 촉발한다는 법칙을 확인하기도 했는데, 앞으로 <체스 이야기>의 구조적인 복합성(다수의 화자, 다수의 시점 등)과 문체적 특징(쌍반점, 쌍점, 쉼표 등 문장부호의 활용, 문장 요소의 생략, 동일 어휘의 반복과 표현의 변주 등)을 세밀히 옮기는 번역시도가 나타날 것을 기대해 본다.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오영옥(1997): 체스. 범우사.

박영구(1997): 체스. 도서출판 푸른숲.

김연수(2010): 체스 이야기. 문학동네.

최은아(2021): 체스 이야기. 세창미디어.

정상원(2024): 체스 이야기. 하영북스.



  • 각주
  1. 이 노벨레는 많은 판본이 있는데, 개중에는 문단과 문단 사이에 한 줄 빈칸을 삽입하거나 B 박사가 자신의 이야기 (속이야기)를 시작하는 대목 앞에 “*”를 삽입한 경우도 있는 등 편집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 번역비평에서 참조한 레클람 판본에는 츠바이크의 원고와 똑같이 처음부터 끝까지 형식적인 구분이 없다. 본문에서 인용되는 독일어 원문도 이 판본이다. Zweig, Stefan(2013): Schachnovelle. Kommentierte Ausgabe., Klemens Renoldner(ed.), Stuttgart: Reclam. 원문 인용 시 괄호 안에 쪽수만 표기한다. 이하 모든 밑줄은 평자에 의한 강조이다.
  2. [...] je länger darum Czentovics Entschließung sich verzögerte, um so mehr wuchs seine Ungeduld, und um seine Lippen preßte sich während des Wartens ein ärgerlicher und fast feindseliger Zug. [···] Mit einem Ruck stand er plötzlich auf und begann im Rauchzimmer auf und ab zu gehen, erst langsam, dann schneller und immer schneller. Alle blickten wir ihm etwas verwundert zu, aber keiner beunruhigter als ich, denn mir fiel auf, dass seine Schritte trotz aller Heftigkeit dieses Auf und Ab immer nur die gleiche Spanne Raum ausmaßen; es war, als ob er jedesmal mitten im leeren Zimmer an eine unsichtbare Schranke stieße, die ihn nötigte umzukehren. Und schaudernd erkannte ich, es reproduzierte unbewußt dieses Auf und Ab das Ausmaß seiner einstmaligen Zelle; genau so mußte er in den Monaten des Eingesperrtseins auf und ab gerannt sein wie ein eingesperrtes Tier im Käfig, genau so die Hände verkrampft und die Schultern eingeduckt; so und nur so mußte er dort tausendmal auf und nieder gelaufen sein, die roten Lichter des Wahnsinns im starren und doch fiebernden Blick(71).
  3. [···] das Benehmen unseres Freundes [wurde] sonderbarer. Es hatte den Anschein, als ob er an der Partie gar keinen Anteil mehr nehme, sondern mit etwas ganz anderem beschäftigt sei. Er ließ sein hitziges Aufundniederlaufen und blieb an seinem Platz regungslos sitzen. Mit einem stieren und fast irren Blick ins Leere vor sich starrend, murmelte er ununterbrochen unverständliche Worte vor sich hin; entweder verlor er sich in endlosen Kombinationen, oder er arbeitete – dies war mein innerster Verdacht – sich ganz andere Partien aus, denn jedes Mal, wenn Czentovic endlich gezogen hatte, mußte man ihn aus seiner Geistesabwesenheit zurückmahnen. Dann brauchte er immer einige Minuten, um sich in der Situation wieder zurecht zufinden; immer mehr beschlich mich der Verdacht, er habe eigentlich Czentovic und uns alle längst vergessen in dieser kalten Form des Wahnsinns, der sich plötzlich in irgendeiner Heftigkeit entladen konnte(75).
  4. Schließlich steigerte sich meine Erregung während des Spielens und ich tat nichts anderes mehr von morgens bis nachts – zu solchem Grade, dass ich nicht einen Augenblick mehr stillzusitzen vermochte; ununterbrochen ging ich, während ich die Partien überlegte, auf und ab, immer schneller und schneller und schneller auf und ab, auf und ab, und immer hitziger, je mehr sich die Entscheidung der Partie näherte; die Gier, zu gewinnen, zu siegen, mich selbst zu besiegen, wurde allmählich zu einer Art Wut, ich zitterte vor Ungeduld, denn immer war dem einen Schach-Ich in mir das andere zu langsam. Das eine trieb das andere an; so lächerlich es Ihnen vielleicht scheint, ich begann mich zu beschimpfen – ›schneller, schneller!‹ oder ›vorwärts, vorwärts!‹ –, wenn das eine Ich in mir mit dem andern nicht rasch genug ripostierte. Selbstverständlich bin ich mir heute ganz im Klaren, dass dieser mein Zustand schon eine durchaus pathologische Form geistiger Überreizung war, für die ich eben keinen andern Namen finde als den bisher medizinisch unbekannten: eine Schachvergift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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