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선문 (Arch of Triumph)"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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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Remarque, Erich Maria(1945): Arch of Triumph. Sorell, Walter / Lindley, Denver(Tr.). Springfeld, OH: Collier’s 116. <단행본 초판> Remarque, Erich Maria(1945): Arch of Triumph. Sorell, Walter / Lindley, Denver(Tr.). New York: Appleton-Century. <독일어 초판> Remarque, Erich Maria(1946): Arc de Triomphe. Roman. Zürich: F.G. Micha. | + | Remarque, Erich Maria(1945): Arch of Triumph. Sorell, Walter / Lindley, Denver(Tr.). Springfeld, OH: Collier’s 1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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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단행본 초판> Remarque, Erich Maria(1945): Arch of Triumph. Sorell, Walter / Lindley, Denver(Tr.). New York: Appleton-Century.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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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독일어 초판> Remarque, Erich Maria(1946): Arc de Triomphe. Roman. Zürich: F.G. Mich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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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1 || 凱旋門 || 凱旋門 || ||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 蔡廷根 || 1950 || 正音社 || 5-627 || 완역 || 완역 || | + | | <div id="채정근(1950)" />[[#채정근(1950)R|1]] || 凱旋門 || 凱旋門 || ||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 蔡廷根 || 1950 || 正音社 || 5-627 || 완역 || 완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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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 개선문 || 世界名作 다이제스트. 1, 햄릿 외 || || 르마루크 || 正信社編輯部 編 || 1959 || 正信社 || 175-230 || 편역 || 축역 || | | 2 || 개선문 || 世界名作 다이제스트. 1, 햄릿 외 || || 르마루크 || 正信社編輯部 編 || 1959 || 正信社 || 175-230 || 편역 || 축역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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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3 || 凱旋門 || 凱旋門, 西部戰線 異狀없다 || 世界文學全集 42 || 레마르크 || 丘冀星 || 1962 || 乙酉文化社 || 8-419 || 편역 || 완역 || 초판 | + | | <div id="구기성(1962)" />[[#구기성(1962)R|3]] || 凱旋門 || 凱旋門, 西部戰線 異狀없다 || 世界文學全集 42 || 레마르크 || 丘冀星 || 1962 || 乙酉文化社 || 8-419 || 편역 || 완역 || 초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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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 凱旋門 || 凱旋門 || 世界文學全集 後期 19 || 레마르크 || 姜斗植 || 1964 || 正音社 || 15-423 || 완역 || 완역 || | | 4 || 凱旋門 || 凱旋門 || 世界文學全集 後期 19 || 레마르크 || 姜斗植 || 1964 || 正音社 || 15-423 || 완역 || 완역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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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5 || 개선문 || 개선문, 변신 || 주니어 논술문학 18 || 레마르크 || 확인불가 || 2005 || 삼성비엔씨 || 9-98 || 편역 || 편역 || 내용 축약 | | 75 || 개선문 || 개선문, 변신 || 주니어 논술문학 18 || 레마르크 || 확인불가 || 2005 || 삼성비엔씨 || 9-98 || 편역 || 편역 || 내용 축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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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76 || 개선문 || 개선문 || 그랑프리 세계 대표 문학, (초등학교·중학교 교과서에 나오는)논리논술 세계 대표 문학 3 || E.M. 레마르크 || 김소연 엮음 || 2006 || 삼성비엔씨 || 9-112 || 편역 || 편역 || | + | | <div id="김소연(2006)" />[[#김소연(2006)R|76]] || 개선문 || 개선문 || 그랑프리 세계 대표 문학, (초등학교·중학교 교과서에 나오는)논리논술 세계 대표 문학 3 || E.M. 레마르크 || 김소연 엮음 || 2006 || 삼성비엔씨 || 9-112 || 편역 || 편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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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7 || 개선문 || 개선문 || || 에리히 M. 레마르크 || 홍경호 || 2013 || 범우 || 11-550 || 완역 || 완역 || | | 77 || 개선문 || 개선문 || || 에리히 M. 레마르크 || 홍경호 || 2013 || 범우 || 11-550 || 완역 || 완역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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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8 || 개선문 || 개선문 || 문예 세계문학선 16 ||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 송영택 || 2014 || 문예출판사 || 5-617 || 완역 || 완역 || 2판 1쇄 | | 78 || 개선문 || 개선문 || 문예 세계문학선 16 ||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 송영택 || 2014 || 문예출판사 || 5-617 || 완역 || 완역 || 2판 1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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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79 || 개선문 || 개선문 1 || 세계문학전집 331 ||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 장희창 || 2015 || 민음사 || 7-379 || 완역 || 완역 || | + | | <div id="장희창(2015)" />[[#장희창(2015)R|79]] || 개선문 || 개선문 1 || 세계문학전집 331 ||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 장희창 || 2015 || 민음사 || 7-379 || 완역 || 완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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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 || 개선문 || 개선문 2 || 세계문학전집 332 ||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 장희창 || 2015 || 민음사 || 7-382 || 완역 || 완역 || | | 80 || 개선문 || 개선문 2 || 세계문학전집 332 ||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 장희창 || 2015 || 민음사 || 7-382 || 완역 || 완역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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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A04}}<!--번역비평-->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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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 '''번역 현황 및 개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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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929년 출판된 [[서부전선 이상없다 (Im Westen nichts Neues)|<서부전선 이상없다>]]를 필두로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작가로 꼽혀도 무방하다. 국내에서는 1930년 <서부전선 이상없다>를 시작으로 그의 주요 작품들이 차례로 번역되었다. 그중에서도 레마르크가 누린 인기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개선문>은 1950년에 채정근에 의해 처음 번역된 이후 지금까지 70여 종의 번역본이 나와 있다, 레마르크가 일찍부터 한국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고, 그의 작품이 문학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이나 의의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이처럼 많은 번역본이 현재도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는 사실은 긍정적이지만은 않는 기현상에 해당한다고도 볼 수 있는데, 그 원인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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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946년에 원작이 출판된 <개선문>의 경우 현재 저작권은 소멸되었고, 오늘날은 인류 공통의 자산에 해당하는 셈이다. 그러나 저작권이 살아있던 시절에도 베른 협약의 효력이 발생한 1996년까지 <개선문>은 부단히, 그리고 가차 없이 한국의 출판사들에 의해 착취되었다. 1950년대 후반부터 국내 출판사들이 앞다투어 내놓았던 전집류의 단골 목록으로 빠지지 않았고, 전집과 더불어 출판계의 또 하나의 축을 이루었던 문고판으로도 적극적으로 출판되었다. 심지어 1980, 90년대 논술이 대학입시에 주요 대목을 차지하던 시절에는 사고 및 논술 문고의 일환으로도 활용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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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그렇다면 무엇이 그토록 <개선문>의 번역에 열광하게 했는가? 그것은 무엇보다 여러 세대의 독자들을 매료시킨 작품내재적 요인이 크겠지만 그 외에도 흔히 ‘전보문’이라 불리는 원작의 글쓰기에서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극단적으로 짧고 의미전달이 상대적으로 분명한 레마르크의 문장들은 많은 역자들에게 번역에 도전할 용기를 주지 않았을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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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또한 수많은 번역을 낳게 한 대중적 인기의 원인은 일정 부분 이 작품의 영화화에서도 찾을 수 있다. 1948년 개봉한 루이스 마일스톤 감독의 영화가 국내에서는 1954년 7월 28일 수도극장에서 처음 개봉되어 전쟁의 와중에서 문화와 예술에 갈증을 느끼던 한국 관객들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1953년 정전협정이 체결된 이듬해인 1954년 ‘한국영화입장세면세조치’<ref>한국영화 면세조치는 전후 한국영화 산업의 부흥을 이끈 중요한 정책적 전환점이었다. 이승만 정부가 시행한 이 조치는 국산영화에 대한 입장세(관람세)를 면제함으로써 한국영화의 제작과 소비를 장려하려는 목적이었다. 6.25 전쟁 이후 폐허가 된 사회에서 영화는 국민의 정서적 위로와 문화적 활력소 역할을 했다. 면세조치 이후 영화 제작 편수가 급증했고, (1955년 15편에서 1959년 111편으로 증가) 한국영화의 첫 번째 중흥기를 여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실제 극장가에서는 제작비나 기술력에서 우위에 있던 외국영화의 상영이 압도적이었다.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 참고.</ref>가 도입되어 국내에서도 영화 제작에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 실제로 극장가의 상영작 중에는 외국영화, 특히 미국영화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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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영화 <개선문>은 원작의 시각적 이미지를 강화하고,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2차세계대전 직전 파리의 불안하고 절망적인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연출했다. 어두운 조명(키아로스쿠로 Chiaroscuro 조명)과 그림자를 적극 활용한 느와르 영화 풍의 분위기는 불법 난민들의 고단한 삶과 미래의 불확실성을 효과적으로 재현했던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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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하지만 이 영화는 원작이 내포하고 있는 크고 작은 인간적인 에피소드를 생략하고 남녀 주인공의 애정관계에 집중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는데, 이는 이 작품을 반전 소설이나 휴머니즘 소설보다는 전쟁을 배경으로 한 비극적이고 애절한 멜로드라마로 인식하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또한 4시간에 달하는 초벌 편집본을 2시간으로 대폭 줄이는 과정에서 서사적 개연성이나 캐릭터의 몰입도가 깨졌다는 비판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당대 최고의 배우들(잉그리드 버그만, 샤를르 보이에 등)과 막대한 제작비, 뛰어난 감독 등으로 국내에서도 널리 회자되었고, 원작 소설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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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어지는 개별 번역 비평에서는 이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이국성’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해 보려 한다. 2차세계대전 직전의 프랑스 파리라는 공간적 배경은 말할 것도 없고, 유대인의 도피를 도왔다는 죄목으로 여러 차례 수감되었다가 이곳에 불법 체류 중인 독일인 의사 라빅과 혼혈 여배우 조앙 마두의 관계, 곳곳에서 몰려든 피난민들의 혼돈과 불안이 지배하는 대도시의 분위기 속에는 이국적 정서가 다분하다. 특히 여주인공 조앙 마두는 혼혈 여배우로, 혼혈이란 정체성은 그녀의 불안정한 삶과 사회적 주변성, 그리고 사랑과 인간관계에서의 복잡한 감정들을 강조하는 장치로 사용되면서 소설의 이국적 이미지를 강화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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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에 더하여 1933년 이미 스위스로 넘어갔고 1939년부터는 미국에서 망명 생활을 하며 글을 썼던 작가의 초국가적인 삶의 방식도 이 작품의 ‘이국성’에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소설의 번역에서는 이국성 혹은 국제성을 어떻게 살려내는지, 또한 이국성과 불가분하게 연결되는 감상성이나 시적 정서를 비롯한 복합적인 심리적 갈등을 어떻게 우리말로 재현해내는지가 번역의 중요한 사안이 될 수 있다. 나아가 기록적인 중복번역이 문제가 되는 만큼 축약 번역 혹은 편역의 문제 또한 짚어보고자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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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 '''개별 번역 비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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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 '''[[#채정근(1950)|채정근<ref>이동조 편저(2006): 저널리스트 채정근 작품집,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머리말 참고. 채정근은 1910년 평양에서 출생하여 숭실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 건너가 릿교(立敎) 대학에 입학했다가 중퇴한 후 귀국하여 1932년 1월에 동아일보 신의주 지국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하였다. 조선일보로 자리를 옮겨 1939년부터 1940년 폐간 때까지 근무하였다. 그 이후 ‘라미라 가극단’ 결성단원으로, 번역작가로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해방 이후에는 고려문화사를 창립하여 ‘민성’ 등의 잡지를 발간했고, ‘전조선문필가협회’ 등에 참여하여 문화 건국 사업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나 채정근은 1950년 인민군 치하의 서울에 남았다가 보위부에 출두한 후 북으로 간 것으로만 알려져 있을 뿐 그 이후의 소식을 알 수 없다.</ref>역의 <개선문>(1950)]]<span id="채정근(1950)R"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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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개선문>의 국내 최초 번역자로 알려진 채정근(1910-1950?)은 일제 강점기와 해방공간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신문기자, 번역가, 예술인이지만, 한국전쟁 동안 북으로 옮겨간 이후부터의 행방은 모호하다. 일본 유학을 시도한 바 있고 일본어에 능통했던 그가 이 소설을 일본어판에서 옮겼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지만, 실제로 그는 처음에는 ‘콜리어스’지에 실린 연재물을, 나중에는 크로웰 콜리어 출판사에서 출판된 영어판에서 옮긴 것으로 밝히고 있다. 그는 애초에 출판을 목적으로 하기보다는 “소설 공부로 정독할 기회”<ref>채정근(2006): 저널리스트 채정근 작품집, 도서출판 모시는 사람들, 221.</ref>를 갖고자 한 것이 본래의 의도였다고 말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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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그는 번역의 완결성을 위해 프랑스 번역본도 참고했고, 마지막 교정을 볼 때는 일본어 번역본도 참고했다고 전한다. 하지만 둘 다 영어본보다 생략된 곳이 많았다고 지적하는데, “프랑스어 역본은 묘사의 간결을 위한 것으로 보이나. 일본어 역본은 가다가 몇 줄씩 그냥 뺀 곳이 드문드문 있고, 또 오독에 의한 것으로 보여지는 오역이 적지 아니 산재하였다”(222)고 기술하는 것을 보면 그가 여러 외국어에 박식했고, 무엇보다 충실한 번역을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지를 알 수 있다. 그의 번역은 책의 말미에 수많은 각주를 달아 지명이나 인명, 혹은 중요한 사실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는 등 단순히 오락적인 독서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대단히 진지하고 치밀한 일종의 ‘연구번역’에 가까운 성격을 띤다. | ||
| + | 그는 작가가 “제2차세계대전의 전날 밤의 유로프를 그리며 모든 것의 부정으로부터 모든 것의 긍정에의 심적 경과를 묘파”(221)했으며, 그 점에서 일본어 역자가 “‘일종의 실존주의’로 단정한 것도 일리가 있을”(같은 곳) 것이라고 별도의 기고문에서 덧붙인 것을 보면,<ref>레마르크는 일본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누렸는데, 태평양 전쟁의 폐해를 직접 체험했던 일본 독자들에게 레마르크의 작품이 주는 반전 메시지는 깊은 공감대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전쟁의 외형적이고 물리적 파괴뿐 아니라 인간 내면의 황폐함과 불안감을 다룬 이 작품은 전쟁의 비극성, 인간의 고독과 소외, 절망 속에서의 사랑과 희망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추구함으로써 전쟁 직후의 일본 사회에서 큰 인기를 얻었던 것이다.</ref> 그 역시 이 작품을 실존주의적 계열로 이해하는 듯하다. 하지만 일본어 역자나 그 말에 동조하는 채정근 자신도 실제로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함으로써 전쟁이 시작되고, 주인공을 비롯한 많은 사람이 어딘지도 모르게 실려 가는 결말 부분을 ‘모든 것의 긍정’으로 심정이 바뀌었다고 본 것은 독특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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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채정근의 번역에서 두드러지는 부분은 앞서 언급한 이국성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했다는 점이다. 그는 외래어를 상당히 많이, 즐겨 사용한 것이 눈에 띄고 (빠쟈마, 클로-붜, 빠리장...) 이 작품에 유독 많은 낯선 지명과 인명 등 외국어 표현과 관련해서는 조선어학회의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을 따르고 있다고 밝히면서 최대한 정확성을 꾀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당시의 외래어 표기법이 오늘날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예를 들면 조앙을 쟌느로 표기한다) 그의 번역은 영어본이나 우리말 모두에게 대단히 충실한 번역이라 할 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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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그는 또한 본문에 나오는 외국어 대화들도 그대로 살리고자 했다. 예를 들어 주인공 라비크가 자신을 고문했던 게슈타포 출신의 하케와 파리에서 예기치 않게 만나 대화하는 장면에서 “아우프 비더 젠”(441)이라고 독일어로 말하는 장면이나 “도너베터(440)”와 같은 말들은 그대로 음차(transcription)하는 방식을 택한다. 나아가 라빅과 하케가 독일어로 대화를 나누는 부분은 원문에서는 별도로 이탤릭체로 표기되어 있는데, 이 부분을 방점 표시를 통해 구분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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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국성과 관련하여 작품의 결말 부분에서 정부(情夫)의 총에 맞은 조앙 마두가 죽어가는 장면을 살펴보자. 최후의 순간 점차 의식을 잃어가는 그녀는 라빅 앞에서 무의식적으로 어린 시절의 언어인 이탈리아어로 말한다. 여기에는 모든 의식과 사고가 사라져갈 때 인간에게 남은 언어는 유년 시절의 언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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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Sie sprach die Sprache ihrer Kindheit. Sie war zu müde für das andere, Ravic nahm ihre leblosen Hände [...] | ||
| + | “<u>Mi ami?</u>” | ||
| + | Es war die Frage eines Kindes, das sich schlafen legen will. Es war die letzte Müdigkeit hinter allen anderen. [...] | ||
| + | “<u>Sono stata... sempre con te...</u>” | ||
| + | “<u>Baciami...</u>”[...] | ||
| + | Sie hatten immer in einer geborgten Sprache miteinander gesprochen. Jetzt, zum erstenmal, sprach jeder, ohne es zu wissen in seiner. Die Barrieren der Worte fielen, und sie verstanden sich mehr als je. | ||
| + | “<u>Sino stata ... perdura... senza di te...</u>”(470-471; 모든 밑줄 강조 필자)<ref>Remarque, Erich Maria(2003): Arc de Triomphe. Köln: Kiepenheuer & Witsch 2003년 판을 사용했고, 이후로는 위에서처럼 괄호 안에 쪽수만 표기한다.</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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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여자는 어린 시절의 말로 말하였다. 다른 나라 말에 지친 것이었다. 라비크는 여자의 생명없는 손을 잡았다. | ||
| + | “<u>미 아미, 투? (당신도 저를 사랑하셔요?)</u>” | ||
| + | 이는 잠들려는 어린애의 물음이었다. 다른 모든 것을 초월한 마지막 피로였다. [...] | ||
| + | “<u>소노 스-타타-셈프레 콘 테 (저는 당신과 ... 언제나 함께 있었어요...)</u>” [...] | ||
| + | 이때까지는 언제나 서로 남한테서 빌린 국어로 말하였었다. 그런데 지금 처음으로, 이를 의식하지 않고서, 서로 자기들의 모국어로 말하는데, 말의 장벽은 허물어지어 서로 언제보다도 더 잘 이해하는 것이었다. | ||
| + | “<u>바치아미 (키쓰해 주셔요.)</u> [...] | ||
| + | “<u>손 스타-타, 페르두타 센짜 더 테 (저는 당신 없이는 못살아요.)</u>”(61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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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처럼 외국어 원문을 음차하고 한국어 번역을 병기하는 방식은 이후 다수의 번역자들에게도 그대로 계승되었다.<ref>구기성의 경우도 원어를 번역하지 않은 채 그대로 두는 방법을 취했다.(411) 그것은 이영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정영호는 위의 부분을 음차하지 않고 아예 이탈리아 원어를 그대로 남겨두는 방식을 취했다. 이들은 이국성을 살리기 위해 외국어를 전략적으로 사용한 경우에 해당한다.</ref> 하지만 세밀한 노력을 기울인 채정근의 번역본은 그가 북으로 넘어간 후에는 남한의 출판계에서 더 이상 유통되지 않았고, 다른 역자들의 번역으로 대체되었다. 그의 국내 최초 번역본을 출판했던 정음사도 다른 번역으로 대체했고, 현재 채정근의 판본은 구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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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 '''[[#구기성(1962)|구기성 역의 <개선문>(1962)과 여타의 번역들]]<span id="구기성(1962)R"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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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채정근의 초역 이후 강두식을 비롯하여 많은 독문학자들이 <개선문>의 번역에 착수하였다. 실제로 어지간한 독문학자들은 대부분 이 작품의 번역에 관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ref>구기성(1962), 강두식(1964), 김광주(1965), 박환덕(1971), 손재준(1972), 홍경호(1974), 박종호(1975), 이영구(1976), 정영호(1980), 남정현(1983), 송영택(1983), 김기선(1985), 김홍진(1987), 윤순호(1991), 장희창(2015) 등의 독문학자와 그 외 독문학자가 아닌 다른 역자들도 <개선문>의 번역자에 이름을 올렸다.</ref> 이들의 번역은 출판사와 출판연도를 바꿔가며 여러 차례 발행되는 경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들의 번역은 일부 개인적인 문체적 특징을 제외하면 서로 큰 차이가 없어, 뚜렷한 변별 요소를 찾기 어렵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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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국성에 더하여 그것과 직결되는 서정적, 시적 문체를 옮기는 문제를 살펴보자. 레마르크는 보고나 객관적인 서술을 위해서는 짧고 간결한 문장을, 심리 상태나 사유하는 부분에서는 길고 시적인 문장을 사용한다. 특유의 간결체 문장 사이사이에 인물의 내면적 고뇌와 회상 장면 등에서는 긴 복합문을 사용하여 다층적이고 복잡한 감정의 연속적 흐름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따라서 짧은 문장과 긴 문장, 객관성이 두드러지는 문장과 주관적이고 감정적 혹은 감상적인 문장의 혼합을 적절히 옮김으로써 전체적인 리듬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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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또한 인물들의 미묘하고 복잡다단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미세한 감정의 변화를 나타내는 어휘나 뉘앙스를 옮기는 것이 중요한데, 대부분의 역자들은 직역보다는 얼마간의 의역을 통해 정서적, 시적 뉘앙스를 살리는 방안을 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관점에서 몇몇 역자의 번역을 비교해 보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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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다음은 소설의 초반에 개선문을 묘사하는 장면이다. 실제로 개선문은 반복적으로 묘사되면서 단순한 배경으로서뿐 아니라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상징적 구심점의 역할을 한다. 거대하고 웅장한 개선문과 어디에도 소속될 수 없는 절박한 인간들, 장구한 역사와 필멸의 개인이 대면하는 장소인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인들과는 달리, 각처에서 모여든 난민들에게 그것은 승리의 상징이 아니라 오히려 무력감과 소외된 아웃사이더라는 인식을 한층 더 강하게 불러일으킨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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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Sie erreichten den Etoile. Der Platz lag im rieselnden Grau mächtig und unendlich vor ihnen. Der Nebel hatte sich verdichtet, und die Straßen, die rundum abzweigten, waren nicht mehr zu sehen. <u>Nur noch der weite Platz war da mit den verstreuten, trüben Monden der Laternen und dem steinerenen Bogen des Arc, der sich riesig im Nebel verlor, als stütze er den schwermütigen Himmel und schütze unter sich die einsame, bleiche Flamme auf dem Grab des Unbekannten Soldaten, das aussah wie das letzte Grab der Menschheit inmitten von Nacht und Verlassenheit</u>.(1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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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그들은 에뜨왈르에 이르렀다. 이 광장은 그들 앞에 <u>보슬보슬 내리는 잿빛의 비에 젖어</u> 우람하고 끝도 없이 가로놓여 있었다. 안개는 짙어져 있었다. 그래서 방사상으로 갈라진 거리들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다만 널따란 광장만이, 사방에 흩어져 있는 가로등의 희미한 달들과 석조의 아치를 지니고 거기 있었을 따름이었다. 이 아아치는 안개 속에 그 거대한 모습이 스며들어 흡사 우울한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것 같았으며, 그 밑에, <u>밤과 고독의 틈바구니에 끼어 있는</u> 인류 최후의 무덤처럼 보이는 무명용사의 묘 위를 비쳐주고 있는, <u>호젓하고 파리한 불꽃</u>을 지켜주고 있는 것 같았다.(구기성 1962, 14) | ||
| + | |||
| + | 그들은 에뜨와르까지 왔다. 광장은 <u>보슬보슬 내리는 회색의 이슬비 속에</u> 기다랗고 끝없이 <u>가로누워</u> 있었다. 안개가 짙어서, 광장에서 팔방으로 갈라져 나간 길들은 이제 분간할 수가 없었다. 다만 끝없이 널다란 광장에는 <u>가로등의 달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서</u>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석조 아아치는 우뚝 솟아 안개 속에 자취를 감추고, 마치 우울에 쌓인 하늘을 떠받들어, 그 밑에 자리잡은 무명전사의 묘지에서 타고 있는 외롭고 희푸른 불길을 지키고 있는 것 같았다. 무명전사의 묘지는 <u>밤의 어둠과 고독 속에서</u> 인류의 마지막 묘지처럼 보였다.(이영구 1976, 18) | ||
| + | |||
| + | 그들은 에뚜알 광장에 이르렀다. 광장은 <u>보슬비 내리는 침침한 어둠 속에</u> 기다랗게 누워 있었다. <u>짙은 안개 탓으로</u> 광장에서 갈라져 나가는 길들을 분간할 수조차 없었다. 다만 그 넓은 광장 여기저기에는 <u>가로등들이 희미하게 눈을 뜨고 있었고</u>, 우뚝 솟은 개선문 석조 아치는 안개 속에 모습을 감춘 채였다. 마치 암울한 하늘을 떠받들고, 그 아래 묻힌 무명 용사들의 묘지에서 타고 있는 <u>버림받은 창백한 불길을 지켜주고 있는 듯이</u>. 무명 용사의 묘지는 <u>고독한 밤에 묻혀</u> 인류의 마지막 묘소처럼 보였다.(정영호 1980, 27) | ||
| + | |||
| + | 그들은 에뜨와르까지 왔다. 광장은 <u>보슬보슬 내리는 회색의 이슬비 속에</u> 기다랗고 끝없이 가로누워 있었다. 안개가 짙어서 팔방으로 갈라져 나간 길들은 이제 분간할 수가 없었다. 다만 끝없이 널다란 광장에는 가로등의 달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서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석조 아치는 우뚝 솟아 안개 속에 자취를 감추고, 마치 우울에 싸인 하늘을 떠받들어, 그 밑에 자라잡은 무명전사의 묘지에서 타고 있는 <u>외롭고 희푸른 불길</u>을 지키고 있는 것 같았다. 무명전사의 묘지는 <u>밤의 어둠과 고독 속에서</u> 인류의 마지막 묘지처럼 보였다.(송영택 1983, 17) | ||
| + | |||
| + | 그들은 에투알 광장까지 걸어갔다. 광장은 <u>보슬비 내리는 잿빛 어둠 속에서</u> 거대하고 무한한 모습으로 그들 앞에 누워 있었다. 안개가 짙게 깔려, 광장을 중심으로 갈라져 나간 길들은 더 이상 분간할 수 없었다. 다만 드넓은 광장엔 여기저기 흩어져 <u>희끄무레하게 빛나는 가로등 불빛들</u>, 그리고 개선문의 석조 아치만 눈에 띄었다. <u>거인처럼 치솟은</u> 개선문은 안개 속으로 자취를 감추며, 위로는 <u>우울증에 빠진</u> 하늘을 떠받들고, 밑으로는 무명용사의 묘지에서 고독하고 창백하게 타오르는 불길을 지켜 주는 듯했다. 무명용사의 묘지는 <u>밤의</u> <u>황량함 속에서</u> 인류 최후의 묘지처럼 보였다.(장희창 2015, 16-17) | ||
| + | |||
| + | 위의 몇 가지 번역 중 이영구의 번역과 송영택의 번역은 글자 하나도 다르지 않고 동일하다. 그 외의 역자들은 다소간 표현상의 차이 속에서, 다시 말해 우리말 어휘 선택이나 어휘들의 연결 방식에서 오역이라기보다는 자신만의 방식을 보여주면서, 최대한 감상적이고, 시적 문장을 재현해낸다. 이것은 역자에게 허용된 선택의 공간이자 각 역자의 언어적 습관과 특성이 드러나는 차이의 공간이 될 것이다. 특히 길게 연속되는 마지막 문장의 경우 예외 없이 두세 문장으로 나누어 번역하였다. 이는 최대한 자연스러운 도착어의 문장 구조와 사유 구조에 상응하고자 애쓴 결과이지만, 관계사를 통해 긴 문장에도 자연스럽게 읽히는 원문의 리듬과는 분명 차이가 나는 선택이라 하겠다. 다시 말해 의미 전달을 위해 문장의 리듬을 달리한 ‘자국화’ 번역의 경우에 해당한다 하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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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3) '''[[#장희창(2015)|장희창 역의 <개선문 1,2>(2015)]]<span id="장희창(2015)R" />''' | ||
| + | |||
| + | <개선문>은 “세대마다 문학의 고전은 새로 번역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1998년부터 다시 발간되기 시작한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에 포함되어 2015년 장희창에 의해 다시 번역되었다. 그는 2010년에 이미 같은 출판사에서 레마르크의 [[사랑할 때와 죽을 때 (Zeit zu leben und Zeit zu sterben)|<사랑할 때와 죽을 때>]]를 펴낸 바 있다. | ||
| + | |||
| + | 장희창의 번역에서 눈에 띄는 것은 대단히 순화하고 부드러워진 언어이다. 이미 수십 차례 번역되고 출판된 만큼 외국어가 가지는 언어적 낯섦이나 생경한 이음새 없이 유려한 우리말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다. | ||
| + | |||
| + | “Rede keinen Unsinn. Das ist <u>ein ziemlich großes Luder</u>.” | ||
| + | “Was?” sagte Revic. | ||
| + | “<u>Ein Luder</u>. Keine Hure. Wenn du ein Russe wärest, würdest du das verstehen.” | ||
| + | Ravic lachte. “Dann muß sie sich sehr geändert haben. <u>Servus</u>, Boris! <u>Gott segne deine Augen</u>.”(93) | ||
| + | |||
| + | 이를 여러 역자들은 다음과 같이 옮긴다. | ||
| + | |||
| + | “어리석은 소리 작작 하게. <u>제법 대단한 말괄량일세</u>.” | ||
| + | “뭐라고?” 라고 라비크가 물었다. | ||
| + | “<u>말광량이야</u>. <u>창녀가 아니라 말광량이지</u>. 자네가 러시아인이라면 그걸 이해하련만.” | ||
| + | 라비크는 웃었다. “그럼 달라진 게로군, <u>실례하네</u>, 보리스! <u>눈을 조심하게나</u>.”(구기성, 82) | ||
| + | |||
| + | “어리석은 소리 말게. 그녀는 <u>닳고 닳은 여자</u>야.” | ||
| + | “뭐라구?”하고 라빅은 물었다. | ||
| + | “<u>여간내기가 아니란 말이야. 창녀는 아니야. 닳았어</u>. 자네가 러시아 사람이라면 알 수 있을 텐데 말야.” | ||
| + | 라빅은 소리내어 웃었다. “그렇다면 아주 달라진 게로군, 보리스, <u>실례하네</u>. <u>자네 눈을 소중하게 하라고!</u>”(이영구, 86) | ||
| + | |||
| + | “어리석은 소리 말게. 그녀는 이젠 <u>닳고 닳은 여자야</u>.” | ||
| + | “뭐라고?” | ||
| + | 라비크가 물었다. | ||
| + | “<u>여간내기가 아니란 말이야. 창녀는 아니지만 대단한 여자야</u>. 자네가 러시아 사람이라면 알 수가 있었을 텐데.” | ||
| + | 라비크는 소리내어 웃었다. | ||
| + | “그럼 아주 달라진 게로군. 자, 보리스, <u>실례하겠네</u>. <u>자네의 눈을 소중하게 하라고</u>.”(정영호, 108) | ||
| + | |||
| + | “멍청한 소린 그만두게. 그 여자는 <u>닳고 닳은 여자야</u>!” | ||
| + | “뭐라고?” 라비크가 물었다. | ||
| + | “<u>걸레야</u>. 매춘부는 아니지만, 자네가 러시아 사람이라면 금방 알 텐데.” | ||
| + | 라비크는 큰소리로 웃었다. “그럼 그 여잔 아주 달라진 거로군. <u>실례하네</u>, 보리스! <u>자네의 감식안에 축복이 있기를!</u>”(장희창, 138-139) | ||
| + | |||
| + | 장희창은 deine Augen을 ‘자네의 감식안’으로 옮겨 그간에 반복되던 오역이나 살짝 빗나간 오해를 피했고, 나아가 Luder를 ‘걸레’로 옮기는 기지(?)를 발휘했다. 이렇게 오늘날의 언어감각에 맞게 다듬어진 번역은 새로운 세대의 독자들을 맞이하기 위해 필요한 작업일 수 있다. 그러나 Servus를 다른 역자들과 마찬가지로 “실례하네”로 옮긴 것은 이전 번역본들을 답습한 것으로 보인다. | ||
| + | |||
| + | 또한 장희창은 라빅과 조앙 마두의 관계가 진행될수록 두 사람의 대화에서 라빅은 해라체를, 조앙 마두는 해요체를 사용하여 두 사람이 대등한 관계라기보다는 라빅이 우월적 위상을 취하는 듯한 뉘앙스를 준다. 이는 기존의 역자들이 사용했던 하오체가 줄 수 있는 고어적 느낌을 피하고, 갖은 시련을 겪은 주인공의 짐짓 굳어진 심리 상태를 반영하는 어투라 하더라도 자칫 남성중심적인 인상을 줄 소지가 있어 보인다. | ||
| + | |||
| + | 장희창의 번역을 비롯하여 앞으로 나올 번역들은 마치 모국어처럼 편안하게 읽히는 천의무봉(天衣無縫)의 번역이나 지나치게 매끄러워진 우리말 구사에 주력하기보다는 이 소설에 두텁게 덧씌워진 통속소설의 이미지를 벗겨내는 데 일조해야 하지 않을까. | ||
| + | |||
| + | |||
| + | 4) '''[[#김소연(2006)|김소연 엮은이, 그린이 김순생의 <개선문>(2006)<ref>이와 유사하게 청소년물로 출판된 개선문의 종류도 대단히 다양하다. 그중에 몇 가지 예를 들면 대일출판사의 세계명작 85 <개선문>(1995), 한국교육산업출판사에서 나온 수학능력연구회 역 <개선문>(1996) 등이 있다.</ref>]]<span id="김소연(2006)R"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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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여기서 삼성비엔씨(주)에서 펴낸 <개선문>을 별도의 항목으로 다루고자 하는 이유는 많은 축약 번역 혹은 편역의 사례에 해당되어 한 번쯤 언급할 필요성이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이 판본은 논리논술과 함께 하는 세계문학, 주니어 논술문학 시리즈 중 한 권이다. 청소년들의 논리논술을 도와준다는 것이 이 시리즈가 내건 슬로건이지만, 실제로 이런 류의 세계문학 시리즈의 구성 목록은 성인들을 위한 일반적인 세계문학 목록과 대동소이하다. | ||
| + | |||
| + | 지금까지 세계문학은 오랫동안 전세계인들의 사랑을 받아온 양서임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이 방대하고 난해하여 청소년들이 쉽게 다가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니어 논술문학은 청소년 세대들의 눈높이에 역점을 두고 편집을 하였습니다. 폭넓은 문학 작품 감상은 물론 등장인물의 소개, 감상 포커스, 줄거리, 작가 및 작품 세계를 자세히 다루었으며, 논리논술문항을 수록하였습니다. | ||
| + | |||
| + | 이처럼 ‘세계문학’ 혹은 ‘양서’를 통한 사고 및 논술 능력을 전면에 내세우는 축약 번역 혹은 편역은 청소년들의 접근성을 높이고 고전이 가지는 교육적 가치를 확산한다는 데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런 명작 시리즈는 실제로 청소년들에게 고전에 관한 관심을 높이고 독서 습관을 기르게 하는 입문서로 작용해 왔다. 이때 무엇보다 서사구조를 단순화하여 작품의 길이를 대폭 줄이고 줄거리 위주로 재구성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조야한) 삽화를 곁들인 경우도 적지 않다. 이 경우 인물들의 혼재된 시점이나 심리적으로나 감정적으로 복잡하게 얽힌 부분을 최소화하여 핵심적인 이야기만을 중심으로 전개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로 인해 언어예술로서 문학이 가지는 상징이나 은유와 비유 등 다양한 문학적 장치들이 사라지고, 언어적, 문체적 요소들이 대폭 감소하는 것은 피하기 어렵다. 또한 청소년을 위한 비교적 쉬운 언어로 바꾸어 쓰는 과정에서 원작이 가진 사유의 깊이나 정서적 감동이 사라지기도 한다. | ||
| + | |||
| + | 김소연이 엮은 <개선문>의 경우 청소년 독자들에게 2차세계대전 발발 직전이란 시대적 상황이 정확히 전달되지 않는 점이 아쉽다. 나아가 독자들은 라비크가 하케를 살해하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려운데, 라비크가 게슈타포에게 고문을 당하고 그 과정에서 애인 시빌이 자살을 하는 등 과거 사실에 대한 언급이 누락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청소년에게 살해가 줄 수 있는 잔인성이나 충격 등을 고려했으리라는 추측도 가능하겠으나 하케에 대한 복수 서사가 이 작품의 주요 모티프 중 하나이자 라빅에게 주어진 일종의 정치적 행위가 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내도 좋았을 것이다. 또한 이처럼 축약 번역으로 읽는 데 익숙해진 청소년들이 긴 분량의 원작 읽기를 회피하는 경향이 생길 수 있는 점도 유념해야 할 것이다.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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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3. '''평가와 전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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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애초에 전쟁문학, 반전소설이란 카테고리로 분류되던 <개선문>은 한국사회가 점차 대중소비사회로 진입하는 가운데 작품에 내재된 대중성이나 통속성을 강하게 부각시키면서 이제는 반전소설로서의 이미지보다는 멜로드라마 혹은 대중소설로 읽히는 경향이 강해졌다. | ||
| + | |||
| + | 앞서 지적한 바대로 출판사들은 위험 부담이 적고 초기 비용이 적게 든다는 이유로 문학적 가치와 대중적 인지도가 검증된 작품들을 선호하고 무분별하게 양산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하지만 출판사들의 이 같은 생존 전략은 하나의 작품을 고전문학의 반열에서 베스트셀러 문학, 대중문학으로, 심지어는 질 낮은 통속문학이자 오락 문학으로 위상을 격하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쯤 되면 대중의 사랑이란 이름으로 예술작품을 착취하고 싸구려 소모품으로 전락시킨다고도 할 수 있다. 이는 베누티가 말하는 번역사의 ‘스캔들’에 해당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으며, 오직 상업적 의도로 원작의 품격을 훼손하는 이들에게 번역의 윤리란 한갓 허울뿐인 개념에 불과하다. | ||
| + | |||
| + | 이른바 축약식 번역에서도 보다 세심한 가공이 필요할 것이다. 기왕에 청소년물로 구성할 경우 역사적 배경이나 시대적 상황,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에 대한 왜곡이나 검열보다는 다음 세대에게 미지의 세계를 경험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무엇보다 출판사들과 편집인들은 영업상의 안전을 위해 기존의 작가와 작품을 편의주의식으로 재출판하기보다는 새로운 작가와 작품의 발굴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 ||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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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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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채정근(1950): 개선문. 정음사.<br> | ||
| + | 구기성(1962): 개선문. 을유문화사.<br> | ||
| + | 이영구(1975): 개선문. 삼성출판사.<br> | ||
| + | 정영호(1980): 개선문. 삼성당.<br> | ||
| + | 송영택(1983): 개선문. 을지출판사.<br> | ||
| + | 김소연(2005): 개선문 – 변신, 주니어 논술문학, 삼성비앤씨.<br> | ||
| + | 장희창(2015): 개선문 1, 2. 민음사. | ||
| + | |||
| + | |||
| + | <div style="text-align: right">안미현</div> | ||
| + | |||
| + | |||
| + | *'''각주''' | ||
| + | <reference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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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16일 (화) 02:27 기준 최신판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Erich Maria Remarque, 1898-1970)의 소설
| 작가 |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Erich Maria Remarque) |
|---|---|
| 초판 발행 | 1945 |
| 장르 | 소설 |
작품소개
1945년에 영어로 먼저 출판된 독일 작가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장편소설로 2차 세계 대전 직전 파리로 피난 온 피난민들의 삶을 그린다. 1948년에 루이스 마일스톤에 의해 미국에서 영화화되었다. 1938년 독일의 외과의사 라빅은 나치 정권의 박해를 피해 파리로 도피한다. 프랑스에서 불법 체류하는 그는 언제라도 쫓겨날 위험에 시달리며, 자신의 불법적 지위를 악용하는 양심 없는 프랑스 의사들에게 경제적인 착취를 당한다. 라빅은 나치에 의한 고문과 추방을 잊지 못한다. 그는 다른 추방자들, 독일과 오스트리아계 유대인, 스페인 사람들, 러시아 사람들과 함께 비슷한 운명을 나눈다. 자신은 이미 사랑할 능력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지만, 파시스트들에게서 도망쳐온 이탈리아 여가수 조안 마두와 사랑에 빠진다. 정치권 소식은 엄청난 전쟁이 다가옴을 예감하게 한다. 여행객으로 가장한 독일 비밀경찰들 가운데서 라빅은 과거 자신을 고문한 하케를 발견한다. 그는 여행안내원으로 가장해 그를 끌어내어 살해하고 시체를 제거한다. 소설은 조안 마두가 질투하는 애인에 의해 치명상을 입는 것으로 끝난다. 라빅이 죽어가는 그녀 옆에 머무르면서 두 사람은 서로의 사랑을 고백한다. 그 후 독일군은 폴란드로 진격하고 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된다. 라빅은 아무런 저항도 없이 프랑스 경찰에게 체포되어 독일인 수용소로 옮겨간다. 프랑스가 패할 경우 자신은 나치에게 살해당할 것을 알면서도 그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다. 이 소설은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어 1945년부터 1948년 사이에 이미 22개 국어로 번역되었다. 국내 초역은 1950년 채연근에 의해 이루어졌다(정음사).
초판 정보
Remarque, Erich Maria(1945): Arch of Triumph. Sorell, Walter / Lindley, Denver(Tr.). Springfeld, OH: Collier’s 116.
<단행본 초판> Remarque, Erich Maria(1945): Arch of Triumph. Sorell, Walter / Lindley, Denver(Tr.). New York: Appleton-Century.
<독일어 초판> Remarque, Erich Maria(1946): Arc de Triomphe. Roman. Zürich: F.G. Micha.
번역서지 목록
| 번호 | 개별작품제목 | 번역서명 | 총서명 | 원저자명 | 번역자명 | 발행연도 | 출판사 | 작품수록 페이지 | 저본 번역유형 | 작품 번역유형 | 비고 |
|---|---|---|---|---|---|---|---|---|---|---|---|
| 凱旋門 | 凱旋門 |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 蔡廷根 | 1950 | 正音社 | 5-627 | 완역 | 완역 | |||
| 2 | 개선문 | 世界名作 다이제스트. 1, 햄릿 외 | 르마루크 | 正信社編輯部 編 | 1959 | 正信社 | 175-230 | 편역 | 축역 | ||
| 凱旋門 | 凱旋門, 西部戰線 異狀없다 | 世界文學全集 42 | 레마르크 | 丘冀星 | 1962 | 乙酉文化社 | 8-419 | 편역 | 완역 | 초판 | |
| 4 | 凱旋門 | 凱旋門 | 世界文學全集 後期 19 | 레마르크 | 姜斗植 | 1964 | 正音社 | 15-423 | 완역 | 완역 | |
| 5 | 凱旋門 | 쟝 크리스토프 外 | 世界名作選集 4 | 레마르크 | 金光洲 | 1965 | 硏學社 | 53-74 | 편역 | 편역 | |
| 6 | 凱旋門 | 凱旋門 | 世界文學全集, 後期 19 | 레마르크 | 姜斗植 | 1967 | 正音社 | 15-423 | 완역 | 완역 | |
| 7 | 凱旋門 | (컬러版)世界의 文學大全集 28 西部戰線 異狀 없다, 凱旋門 |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 朴煥德 | 1971 | 同和出版公社 | 179-579 | 편역 | 완역 | ||
| 8 | 凱旋門 | 凱旋門 | 레마르크 | 黃龍夏 | 1972 | 大韓出版社 | 11-467 | 완역 | 완역 | ||
| 9 | 凱旋門 | 凱旋門 | 레마르크 | 孫載駿 | 1972 | 主婦生活社 | - | 확인불가 | 확인불가 | 상호대차 제공불가 | |
| 10 | 凱旋門 | 西部戰線 異狀없다 | 세계의문학대전집 28 | 레마르크 | 박환덕 | 1972 | 同和出版社 | 179-579 | 편역 | 완역 | |
| 11 | 凱旋門 | 凱旋門 | 世界文學全集 46 | 에리히 M. 레마르크 | 姜斗植 | 1973 | 正音社 | 13-423 | 완역 | 완역 | |
| 12 | 凱旋門 | 凱旋門 | 世界文學大全集 16 | 레마르크 | 洪京鎬 | 1974 | 大洋書籍 | 9-411 | 완역 | 완역 | |
| 13 | 凱旋門 | 레마르크全集 | 레마르크全集 2 |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 洪京鎬 | 1974 | 汎潮社 | 21-522 | 완역 | 완역 | 초판 제2권 |
| 14 | 凱旋門 | 凱旋門 (上) | 三中堂文庫 67 | 레마르크 | 洪京鎬 | 1975 | 三中堂 | 5-392 | 편역 | 완역 | 상권 |
| 15 | 개선문 | 개선문 | 世界文學全集 2 | 에리히 레마르크 | 박종호 | 1975 | 凱旋門出版社 | 11-467 | 완역 | 완역 | |
| 16 | 凱旋門 | 西部戰線異常없다, 凱旋門 | (컬라版)世界의 文學大全集 28 | 레마르크 | 박환덕 | 1975 | 同和出版公社 | 179-579 | 완역 | 완역 | 1970 초판, 1975 중판 |
| 17 | 凱旋門 | 凱旋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 孫載駿 | 1975 | 大洋出版社 | - | 편역 | 완역 | 덕성여자대학교 도서관 소장: 훼손으로 쪽수 확인불가 | |
| 18 | 凱旋門 | 凱旋門 (下) | 三中堂文庫 68 | 레마르크 | 洪京鎬 | 1975 | 三中堂 | 5-387 | 편역 | 완역 | 하권 |
| 19 | 凱旋門 | 凱旋門 | (三省版)世界文學全集 49 | 레마르크 | 李榮久 | 1976 | 三省出版社 | 13-431 | 완역 | 완역 | |
| 20 | 凱旋門 | 凱旋門 | 世界文學全集 11 | 레마르크 | 洪京鎬 | 1978 | 平凡社 | 11-397 | 편역 | 완역 | |
| 21 | 개선문 | 개선문 |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 김순배 | 1978 | 오성출판사 | 9-524 | 완역 | 완역 | ||
| 22 | 凱旋門 | 世界文學大全集. 凱旋門 | 28 | 레마르크 | 鄭永鎬 | 1980 | 文學堂 | 9-524 | 완역 | 완역 | 4판 |
| 23 | 凱旋門 | 凱旋門 | 世界文學全集 6 | 레마르크 | 金順培 | 1981 | 暢日出判事 | 9-524 | 완역 | 완역 | |
| 24 | 凱旋門 | 凱旋門 | 世界文學 6 | 레마르크 | 金順培 | 1981 | 三信 | 9-524 | 완역 | 완역 | |
| 25 | 凱旋門 | 凱旋門 | (The)World literature, 世界文學大全集 28 | 레마르크 | 鄭永鎬 | 1982 | 三省堂 | 7-524 | 완역 | 완역 | 1986년 개정판 발행 |
| 26 | 凱旋門 | 凱旋門 (Ⅰ) | 世界文學全集 22 | 레마르크 | 南廷賢 | 1982 | 知星出版社 | 11-448 | 편역 | 완역 | |
| 27 | 凱旋門 | 凱旋門 | 愛藏版)世界文學大全集 49 | 레마르크 | 鄭永鎬 | 1982 | 금성출판사 | 5-447 | 완역 | 완역 | |
| 28 | 凱旋門 | 凱旋門 | 世界文學全集 4 | 레마르크 | 金順培 | 1982 | 民衆圖書 | 13-518 | 완역 | 완역 | |
| 29 | 凱旋門 | 凱旋門 (Ⅱ) | 世界文學全集 23 | 레마르크 | 南廷賢 | 1982 | 知星出版社 | 11-426 | 편역 | 완역 | |
| 30 | 개선문 | 개선문 | 마당문고 51 | 레마르크 | 송영택 | 1983 | 마당 | 5-416 | 완역 | 완역 | |
| 31 | 凱旋門 | 凱旋門 (Ⅰ) | (特選)世界文學全集 20 | 레마르크 | 南廷賢 | 1983 | 時代文化社 | 11-448 | 편역 | 완역 | 1권 |
| 32 | 凱旋門 | 凱旋門 (Ⅱ) | (特選)世界文學全集 21 | 레마르크 | 南廷賢 | 1983 | 時代文化社 | 11-426 | 편역 | 완역 | 2권 |
| 33 | 개선문 | 개선문 | (가정판)세계문학전집 | 레마르크 | 송영택 | 1984 | 영 | 7-322 | 완역 | 완역 | |
| 34 | 凱旋門(上) | 개선문 (상) | 레마르크全集 4 |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 洪京鎬 | 1984 | 汎潮社 | 21-270 | 완역 | 완역 | 5판 제4권 |
| 35 | 凱旋門 (下) | 개선문 (하) | 레마르크全集 5 |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 洪京鎬 | 1984 | 汎潮社 | 11-262 | 완역 | 완역 | 5판 제5권 |
| 36 | 凱旋門 | 世界文學全集. V.46 | 레마르크 | 강두식 | 1984 | 正音文化社 | 15-423 | 완역 | 완역 | ||
| 37 | 개선문 | 개선문 |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 김기선 | 1985 | 학원사 | - | 확인불가 | 확인불가 | 소재확인불가 | |
| 38 | 개선문 | 개선문 | 世界文學大全集, (The)World literature 25 | 레마르크 | 鄭永鎬 | 1986 | 三省堂 | 21-522 | 완역 | 완역 | 개정판; 1982년이 이전판 |
| 39 | 개선문 | 개선문 | (삼성판)세계문학전집, World's famous classics 40 | 레마르크 | 이영구 | 1986 | 삼성출판사 | 13-486 | 완역 | 완역 | 13판; 1984년 9월 초판 발행 |
| 40 | 개선문 | 개선문 | 레마르크 | 김태화 | 1986 | 正岩 | 5-432 | 완역 | 완역 | ||
| 41 | 개선문 | (精選)世界代表文學選集. v.4 | 레마르크 | 확인불가 | 1986 | 文仁出版社 | 25-45 | 편역 | 편역 | 축역 | |
| 42 | 개선문 | 개선문 | (The)Golden classics, 골든世界文學全集 32 | 레마르크 | 강두식 | 1987 | 中央文化社 | 19-477 | 완역 | 완역 | |
| 43 | 凱旋門 | 凱旋門 | Sunshine series, 世界文學全集 56 | 레마르크 | 金大範 | 1987 | 금성출판사 | 3-528 | 완역 | 완역 | |
| 44 | 개선문 | 다이아몬드世界文學大全集 38 개선문 | 다이아몬드世界文學大全集 38 | 레마르크 | 鄭周永 | 1987 | 靑化 | 87-442 | 완역 | 완역 | |
| 45 | 개선문 | 개선문 | 學園세계문학 50 | 에리히 레마르크 | 김홍진 | 1987 | 學園社 | 15-464 | 완역 | 완역 | |
| 46 | 개선문 | 개선문Ⅰ | 한권의 책 93 | 에리히 레마르크 | 김홍진 | 1988 | 學園社 | 11-243 | 완역 | 완역 | 1권 |
| 47 | 개선문 | 개선문Ⅱ | 한권의 책 94 | 에리히 레마르크 | 김홍진 | 1988 | 學園社 | 11-247 | 완역 | 완역 | 2권 |
| 48 | 개선문 | 개선문 | (The)world literature, (High seller)世界文學大全集 24 | 레마르크 | 홍경호 | 1988 | 교육문화사 | 11-452 | 완역 | 완역 | |
| 49 | 개선문 | 개선문 |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38 | 에리히 레마르크 | 홍경호 | 1988 | 범우사 | 11-526 | 완역 | 완역 | |
| 50 | 개선문 | 개선문 | Kemongsa's literary works, (우리시대의)세계문학 23 | 레마르크 | 홍경호 | 1988 | 계몽사 | 3-459 | 완역 | 완역 | |
| 51 | 개선문 | 개선문 | Silver world literature 18 | 레마르크 | 강두식 | 1988 | 中央文化社 | 7-560 | 완역 | 완역 | |
| 52 | 개선문 | 개선문 | 乙支選書 54 | E.M.레마르크 | 송영택 | 1988 | 을지출판사 | 9-495 | 완역 | 완역 | |
| 53 | 개선문 | 개선문 | 삼성기획신서 7 | 레마르크 | 성동민 | 1989 | 삼성기획 | 9-510 | 완역 | 완역 | |
| 54 | 개선문 | 개선문 | 靑木 精選 世界文學 24 | 레마르크 | 김진현 | 1989 | 靑木 | 7-442 | 완역 | 완역 | |
| 55 | 개선문 | 개선문Ⅰ | 그랜드북스 174 | 레마르크 | 金敏英 | 1989 | 一信書籍公社 | 7-260 | 완역 | 완역 | 1권 |
| 56 | 개선문 | 개선문 Ⅱ | 그랜드북스 175 | 레마르크 | 金敏英 | 1989 | 一信書籍公社 | 7-249 | 완역 | 완역 | 2권 |
| 57 | 개선문 | 개선문 | 영상세계문학 | Erich Maria Remarque | 홍경호 | 1990 | 어문각 | 3-386 | 완역 | 완역 | |
| 58 | 개선문 | 개선문 | (High seller)世界文學大全集, (The) world literature 24 | 레마르크 | 홍경호 | 1990 | 교육문화사 | 9-452 | 완역 | 완역 | |
| 59 | 凱旋門 | 凱旋門 | (金星版)世界文學大全集, World's famous classics 108 | 레마르크 | 金大範 | 1990 | 金星出版社 | 3-528 | 완역 | 완역 | |
| 60 | 개선문 | 개선문 | 靑木 精選 世界文學 24 | 레마르크 | 김진현 | 1991 | 靑木 | 7-442 | 완역 | 완역 | 중판 |
| 61 | 개선문 | 개선문 | 삼성판 세계문학전집 40 | 레마르크 | 李榮久 | 1991 | 삼성출판사 | 13-486 | 완역 | 완역 | |
| 62 | 개선문 | 개선문 | 하서세계문학 22 | E.M. 레마르크 | 윤순호 | 1991 | 하서출판사 | 7-532 | 완역 | 완역 | |
| 63 | 개선문 | 개선문 | 世界名作 100選 21 | 레마르크 | 김민영 | 1991 | 일신서적출판사 | 7-437 | 완역 | 완역 | 중판 |
| 64 | 개선문 | 개선문 | Ever books.삼성세계문학 31 | 레마르크 | 이영구 | 1992 | 삼성출판사 | 11-498 | 완역 | 완역 | |
| 65 | 개선문 | 개선문 | 혜원세계문학 23 | E.M. 레마르크 | 신승야 | 1992 | 혜원출판사 | 5-510 | 완역 | 완역 | |
| 66 | 개선문 | 개선문 | 마당세계문학전집 28 | 에리히 레마르크 | 홍경호 | 1993 | 마당 | 3-386 | 완역 | 완역 | |
| 67 | 개선문 | 개선문 | 골든세계문학선 15 | 레마르크 | 강두식 | 1994 | 중앙미디어 | 3-508 | 완역 | 완역 | |
| 68 | 개선문 | 개선문. 1 | 우리시대의 세계문학 9 | 레마르크 | 홍경호 | 1994 | 계몽사 | 9-332 | 편역 | 완역 | 1권 |
| 69 | 개선문 | 개선문 | Highclass book 38 | 레마르크 | 성동민 | 1995 | 육문사 | 9-510 | 완역 | 완역 | |
| 70 | 개선문 | (必讀) 세계대표문학 | 레마르크 | 확인불가 | 1996 | 한국교육산업 | 325-351 | 편역 | 편역 | 편저자에 의한 축약 번역 | |
| 71 | 개선문 | 개선문 |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Jan-45 | 에리히 M. 레마르크 | 홍경호 | 1999 | 범우사 | 9-550 | 완역 | 완역 | 2판; 1988년 초판 발행 |
| 72 | 개선문 | 개선문 | 사고·논술 텍스트 100선 20 | E.M. 레마르크 | 송영택 | 2001 | 한국뉴턴 | 7-466 | 완역 | 완역 | |
| 73 | 개선문 | 개선문 | 사고·논술 텍스트 100선, Selection for thinking & writing 20 | E.M. 레마르크 | 송영택 | 2002 | 뉴턴코리아 | 7-466 | 완역 | 완역 | |
| 74 | 개선문 | 개선문 | (The)golden classics, 골든세계문학전집 43 | 레마르크 | 姜斗植 외 | 2005 | JDM중앙출판사 | 3-508 | 완역 | 완역 | 2판 |
| 75 | 개선문 | 개선문, 변신 | 주니어 논술문학 18 | 레마르크 | 확인불가 | 2005 | 삼성비엔씨 | 9-98 | 편역 | 편역 | 내용 축약 |
| 개선문 | 개선문 | 그랑프리 세계 대표 문학, (초등학교·중학교 교과서에 나오는)논리논술 세계 대표 문학 3 | E.M. 레마르크 | 김소연 엮음 | 2006 | 삼성비엔씨 | 9-112 | 편역 | 편역 | ||
| 77 | 개선문 | 개선문 | 에리히 M. 레마르크 | 홍경호 | 2013 | 범우 | 11-550 | 완역 | 완역 | ||
| 78 | 개선문 | 개선문 | 문예 세계문학선 16 |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 송영택 | 2014 | 문예출판사 | 5-617 | 완역 | 완역 | 2판 1쇄 |
| 개선문 | 개선문 1 | 세계문학전집 331 |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 장희창 | 2015 | 민음사 | 7-379 | 완역 | 완역 | ||
| 80 | 개선문 | 개선문 2 | 세계문학전집 332 |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 장희창 | 2015 | 민음사 | 7-382 | 완역 | 완역 |
번역비평
1. 번역 현황 및 개관
1929년 출판된 <서부전선 이상없다>를 필두로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작가로 꼽혀도 무방하다. 국내에서는 1930년 <서부전선 이상없다>를 시작으로 그의 주요 작품들이 차례로 번역되었다. 그중에서도 레마르크가 누린 인기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개선문>은 1950년에 채정근에 의해 처음 번역된 이후 지금까지 70여 종의 번역본이 나와 있다, 레마르크가 일찍부터 한국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고, 그의 작품이 문학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이나 의의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이처럼 많은 번역본이 현재도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는 사실은 긍정적이지만은 않는 기현상에 해당한다고도 볼 수 있는데, 그 원인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자.
1946년에 원작이 출판된 <개선문>의 경우 현재 저작권은 소멸되었고, 오늘날은 인류 공통의 자산에 해당하는 셈이다. 그러나 저작권이 살아있던 시절에도 베른 협약의 효력이 발생한 1996년까지 <개선문>은 부단히, 그리고 가차 없이 한국의 출판사들에 의해 착취되었다. 1950년대 후반부터 국내 출판사들이 앞다투어 내놓았던 전집류의 단골 목록으로 빠지지 않았고, 전집과 더불어 출판계의 또 하나의 축을 이루었던 문고판으로도 적극적으로 출판되었다. 심지어 1980, 90년대 논술이 대학입시에 주요 대목을 차지하던 시절에는 사고 및 논술 문고의 일환으로도 활용되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토록 <개선문>의 번역에 열광하게 했는가? 그것은 무엇보다 여러 세대의 독자들을 매료시킨 작품내재적 요인이 크겠지만 그 외에도 흔히 ‘전보문’이라 불리는 원작의 글쓰기에서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극단적으로 짧고 의미전달이 상대적으로 분명한 레마르크의 문장들은 많은 역자들에게 번역에 도전할 용기를 주지 않았을까?
또한 수많은 번역을 낳게 한 대중적 인기의 원인은 일정 부분 이 작품의 영화화에서도 찾을 수 있다. 1948년 개봉한 루이스 마일스톤 감독의 영화가 국내에서는 1954년 7월 28일 수도극장에서 처음 개봉되어 전쟁의 와중에서 문화와 예술에 갈증을 느끼던 한국 관객들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1953년 정전협정이 체결된 이듬해인 1954년 ‘한국영화입장세면세조치’[1]가 도입되어 국내에서도 영화 제작에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 실제로 극장가의 상영작 중에는 외국영화, 특히 미국영화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
영화 <개선문>은 원작의 시각적 이미지를 강화하고,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2차세계대전 직전 파리의 불안하고 절망적인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연출했다. 어두운 조명(키아로스쿠로 Chiaroscuro 조명)과 그림자를 적극 활용한 느와르 영화 풍의 분위기는 불법 난민들의 고단한 삶과 미래의 불확실성을 효과적으로 재현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원작이 내포하고 있는 크고 작은 인간적인 에피소드를 생략하고 남녀 주인공의 애정관계에 집중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는데, 이는 이 작품을 반전 소설이나 휴머니즘 소설보다는 전쟁을 배경으로 한 비극적이고 애절한 멜로드라마로 인식하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또한 4시간에 달하는 초벌 편집본을 2시간으로 대폭 줄이는 과정에서 서사적 개연성이나 캐릭터의 몰입도가 깨졌다는 비판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당대 최고의 배우들(잉그리드 버그만, 샤를르 보이에 등)과 막대한 제작비, 뛰어난 감독 등으로 국내에서도 널리 회자되었고, 원작 소설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어지는 개별 번역 비평에서는 이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이국성’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해 보려 한다. 2차세계대전 직전의 프랑스 파리라는 공간적 배경은 말할 것도 없고, 유대인의 도피를 도왔다는 죄목으로 여러 차례 수감되었다가 이곳에 불법 체류 중인 독일인 의사 라빅과 혼혈 여배우 조앙 마두의 관계, 곳곳에서 몰려든 피난민들의 혼돈과 불안이 지배하는 대도시의 분위기 속에는 이국적 정서가 다분하다. 특히 여주인공 조앙 마두는 혼혈 여배우로, 혼혈이란 정체성은 그녀의 불안정한 삶과 사회적 주변성, 그리고 사랑과 인간관계에서의 복잡한 감정들을 강조하는 장치로 사용되면서 소설의 이국적 이미지를 강화한다.
이에 더하여 1933년 이미 스위스로 넘어갔고 1939년부터는 미국에서 망명 생활을 하며 글을 썼던 작가의 초국가적인 삶의 방식도 이 작품의 ‘이국성’에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소설의 번역에서는 이국성 혹은 국제성을 어떻게 살려내는지, 또한 이국성과 불가분하게 연결되는 감상성이나 시적 정서를 비롯한 복합적인 심리적 갈등을 어떻게 우리말로 재현해내는지가 번역의 중요한 사안이 될 수 있다. 나아가 기록적인 중복번역이 문제가 되는 만큼 축약 번역 혹은 편역의 문제 또한 짚어보고자 한다.
2. 개별 번역 비평
<개선문>의 국내 최초 번역자로 알려진 채정근(1910-1950?)은 일제 강점기와 해방공간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신문기자, 번역가, 예술인이지만, 한국전쟁 동안 북으로 옮겨간 이후부터의 행방은 모호하다. 일본 유학을 시도한 바 있고 일본어에 능통했던 그가 이 소설을 일본어판에서 옮겼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지만, 실제로 그는 처음에는 ‘콜리어스’지에 실린 연재물을, 나중에는 크로웰 콜리어 출판사에서 출판된 영어판에서 옮긴 것으로 밝히고 있다. 그는 애초에 출판을 목적으로 하기보다는 “소설 공부로 정독할 기회”[3]를 갖고자 한 것이 본래의 의도였다고 말한다.
그는 번역의 완결성을 위해 프랑스 번역본도 참고했고, 마지막 교정을 볼 때는 일본어 번역본도 참고했다고 전한다. 하지만 둘 다 영어본보다 생략된 곳이 많았다고 지적하는데, “프랑스어 역본은 묘사의 간결을 위한 것으로 보이나. 일본어 역본은 가다가 몇 줄씩 그냥 뺀 곳이 드문드문 있고, 또 오독에 의한 것으로 보여지는 오역이 적지 아니 산재하였다”(222)고 기술하는 것을 보면 그가 여러 외국어에 박식했고, 무엇보다 충실한 번역을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지를 알 수 있다. 그의 번역은 책의 말미에 수많은 각주를 달아 지명이나 인명, 혹은 중요한 사실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는 등 단순히 오락적인 독서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대단히 진지하고 치밀한 일종의 ‘연구번역’에 가까운 성격을 띤다. 그는 작가가 “제2차세계대전의 전날 밤의 유로프를 그리며 모든 것의 부정으로부터 모든 것의 긍정에의 심적 경과를 묘파”(221)했으며, 그 점에서 일본어 역자가 “‘일종의 실존주의’로 단정한 것도 일리가 있을”(같은 곳) 것이라고 별도의 기고문에서 덧붙인 것을 보면,[4] 그 역시 이 작품을 실존주의적 계열로 이해하는 듯하다. 하지만 일본어 역자나 그 말에 동조하는 채정근 자신도 실제로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함으로써 전쟁이 시작되고, 주인공을 비롯한 많은 사람이 어딘지도 모르게 실려 가는 결말 부분을 ‘모든 것의 긍정’으로 심정이 바뀌었다고 본 것은 독특하다.
채정근의 번역에서 두드러지는 부분은 앞서 언급한 이국성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했다는 점이다. 그는 외래어를 상당히 많이, 즐겨 사용한 것이 눈에 띄고 (빠쟈마, 클로-붜, 빠리장...) 이 작품에 유독 많은 낯선 지명과 인명 등 외국어 표현과 관련해서는 조선어학회의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을 따르고 있다고 밝히면서 최대한 정확성을 꾀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당시의 외래어 표기법이 오늘날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예를 들면 조앙을 쟌느로 표기한다) 그의 번역은 영어본이나 우리말 모두에게 대단히 충실한 번역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또한 본문에 나오는 외국어 대화들도 그대로 살리고자 했다. 예를 들어 주인공 라비크가 자신을 고문했던 게슈타포 출신의 하케와 파리에서 예기치 않게 만나 대화하는 장면에서 “아우프 비더 젠”(441)이라고 독일어로 말하는 장면이나 “도너베터(440)”와 같은 말들은 그대로 음차(transcription)하는 방식을 택한다. 나아가 라빅과 하케가 독일어로 대화를 나누는 부분은 원문에서는 별도로 이탤릭체로 표기되어 있는데, 이 부분을 방점 표시를 통해 구분하였다.
이국성과 관련하여 작품의 결말 부분에서 정부(情夫)의 총에 맞은 조앙 마두가 죽어가는 장면을 살펴보자. 최후의 순간 점차 의식을 잃어가는 그녀는 라빅 앞에서 무의식적으로 어린 시절의 언어인 이탈리아어로 말한다. 여기에는 모든 의식과 사고가 사라져갈 때 인간에게 남은 언어는 유년 시절의 언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Sie sprach die Sprache ihrer Kindheit. Sie war zu müde für das andere, Ravic nahm ihre leblosen Hände [...] “Mi ami?” Es war die Frage eines Kindes, das sich schlafen legen will. Es war die letzte Müdigkeit hinter allen anderen. [...] “Sono stata... sempre con te...” “Baciami...”[...] Sie hatten immer in einer geborgten Sprache miteinander gesprochen. Jetzt, zum erstenmal, sprach jeder, ohne es zu wissen in seiner. Die Barrieren der Worte fielen, und sie verstanden sich mehr als je. “Sino stata ... perdura... senza di te...”(470-471; 모든 밑줄 강조 필자)[5]
여자는 어린 시절의 말로 말하였다. 다른 나라 말에 지친 것이었다. 라비크는 여자의 생명없는 손을 잡았다. “미 아미, 투? (당신도 저를 사랑하셔요?)” 이는 잠들려는 어린애의 물음이었다. 다른 모든 것을 초월한 마지막 피로였다. [...] “소노 스-타타-셈프레 콘 테 (저는 당신과 ... 언제나 함께 있었어요...)” [...] 이때까지는 언제나 서로 남한테서 빌린 국어로 말하였었다. 그런데 지금 처음으로, 이를 의식하지 않고서, 서로 자기들의 모국어로 말하는데, 말의 장벽은 허물어지어 서로 언제보다도 더 잘 이해하는 것이었다. “바치아미 (키쓰해 주셔요.) [...] “손 스타-타, 페르두타 센짜 더 테 (저는 당신 없이는 못살아요.)”(616)
이처럼 외국어 원문을 음차하고 한국어 번역을 병기하는 방식은 이후 다수의 번역자들에게도 그대로 계승되었다.[6] 하지만 세밀한 노력을 기울인 채정근의 번역본은 그가 북으로 넘어간 후에는 남한의 출판계에서 더 이상 유통되지 않았고, 다른 역자들의 번역으로 대체되었다. 그의 국내 최초 번역본을 출판했던 정음사도 다른 번역으로 대체했고, 현재 채정근의 판본은 구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2) 구기성 역의 <개선문>(1962)과 여타의 번역들
채정근의 초역 이후 강두식을 비롯하여 많은 독문학자들이 <개선문>의 번역에 착수하였다. 실제로 어지간한 독문학자들은 대부분 이 작품의 번역에 관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7] 이들의 번역은 출판사와 출판연도를 바꿔가며 여러 차례 발행되는 경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들의 번역은 일부 개인적인 문체적 특징을 제외하면 서로 큰 차이가 없어, 뚜렷한 변별 요소를 찾기 어렵다.
이국성에 더하여 그것과 직결되는 서정적, 시적 문체를 옮기는 문제를 살펴보자. 레마르크는 보고나 객관적인 서술을 위해서는 짧고 간결한 문장을, 심리 상태나 사유하는 부분에서는 길고 시적인 문장을 사용한다. 특유의 간결체 문장 사이사이에 인물의 내면적 고뇌와 회상 장면 등에서는 긴 복합문을 사용하여 다층적이고 복잡한 감정의 연속적 흐름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따라서 짧은 문장과 긴 문장, 객관성이 두드러지는 문장과 주관적이고 감정적 혹은 감상적인 문장의 혼합을 적절히 옮김으로써 전체적인 리듬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인물들의 미묘하고 복잡다단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미세한 감정의 변화를 나타내는 어휘나 뉘앙스를 옮기는 것이 중요한데, 대부분의 역자들은 직역보다는 얼마간의 의역을 통해 정서적, 시적 뉘앙스를 살리는 방안을 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관점에서 몇몇 역자의 번역을 비교해 보자.
다음은 소설의 초반에 개선문을 묘사하는 장면이다. 실제로 개선문은 반복적으로 묘사되면서 단순한 배경으로서뿐 아니라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상징적 구심점의 역할을 한다. 거대하고 웅장한 개선문과 어디에도 소속될 수 없는 절박한 인간들, 장구한 역사와 필멸의 개인이 대면하는 장소인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인들과는 달리, 각처에서 모여든 난민들에게 그것은 승리의 상징이 아니라 오히려 무력감과 소외된 아웃사이더라는 인식을 한층 더 강하게 불러일으킨다.
Sie erreichten den Etoile. Der Platz lag im rieselnden Grau mächtig und unendlich vor ihnen. Der Nebel hatte sich verdichtet, und die Straßen, die rundum abzweigten, waren nicht mehr zu sehen. Nur noch der weite Platz war da mit den verstreuten, trüben Monden der Laternen und dem steinerenen Bogen des Arc, der sich riesig im Nebel verlor, als stütze er den schwermütigen Himmel und schütze unter sich die einsame, bleiche Flamme auf dem Grab des Unbekannten Soldaten, das aussah wie das letzte Grab der Menschheit inmitten von Nacht und Verlassenheit.(15) 그들은 에뜨왈르에 이르렀다. 이 광장은 그들 앞에 보슬보슬 내리는 잿빛의 비에 젖어 우람하고 끝도 없이 가로놓여 있었다. 안개는 짙어져 있었다. 그래서 방사상으로 갈라진 거리들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다만 널따란 광장만이, 사방에 흩어져 있는 가로등의 희미한 달들과 석조의 아치를 지니고 거기 있었을 따름이었다. 이 아아치는 안개 속에 그 거대한 모습이 스며들어 흡사 우울한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것 같았으며, 그 밑에, 밤과 고독의 틈바구니에 끼어 있는 인류 최후의 무덤처럼 보이는 무명용사의 묘 위를 비쳐주고 있는, 호젓하고 파리한 불꽃을 지켜주고 있는 것 같았다.(구기성 1962, 14)
그들은 에뜨와르까지 왔다. 광장은 보슬보슬 내리는 회색의 이슬비 속에 기다랗고 끝없이 가로누워 있었다. 안개가 짙어서, 광장에서 팔방으로 갈라져 나간 길들은 이제 분간할 수가 없었다. 다만 끝없이 널다란 광장에는 가로등의 달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서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석조 아아치는 우뚝 솟아 안개 속에 자취를 감추고, 마치 우울에 쌓인 하늘을 떠받들어, 그 밑에 자리잡은 무명전사의 묘지에서 타고 있는 외롭고 희푸른 불길을 지키고 있는 것 같았다. 무명전사의 묘지는 밤의 어둠과 고독 속에서 인류의 마지막 묘지처럼 보였다.(이영구 1976, 18)
그들은 에뚜알 광장에 이르렀다. 광장은 보슬비 내리는 침침한 어둠 속에 기다랗게 누워 있었다. 짙은 안개 탓으로 광장에서 갈라져 나가는 길들을 분간할 수조차 없었다. 다만 그 넓은 광장 여기저기에는 가로등들이 희미하게 눈을 뜨고 있었고, 우뚝 솟은 개선문 석조 아치는 안개 속에 모습을 감춘 채였다. 마치 암울한 하늘을 떠받들고, 그 아래 묻힌 무명 용사들의 묘지에서 타고 있는 버림받은 창백한 불길을 지켜주고 있는 듯이. 무명 용사의 묘지는 고독한 밤에 묻혀 인류의 마지막 묘소처럼 보였다.(정영호 1980, 27)
그들은 에뜨와르까지 왔다. 광장은 보슬보슬 내리는 회색의 이슬비 속에 기다랗고 끝없이 가로누워 있었다. 안개가 짙어서 팔방으로 갈라져 나간 길들은 이제 분간할 수가 없었다. 다만 끝없이 널다란 광장에는 가로등의 달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서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석조 아치는 우뚝 솟아 안개 속에 자취를 감추고, 마치 우울에 싸인 하늘을 떠받들어, 그 밑에 자라잡은 무명전사의 묘지에서 타고 있는 외롭고 희푸른 불길을 지키고 있는 것 같았다. 무명전사의 묘지는 밤의 어둠과 고독 속에서 인류의 마지막 묘지처럼 보였다.(송영택 1983, 17)
그들은 에투알 광장까지 걸어갔다. 광장은 보슬비 내리는 잿빛 어둠 속에서 거대하고 무한한 모습으로 그들 앞에 누워 있었다. 안개가 짙게 깔려, 광장을 중심으로 갈라져 나간 길들은 더 이상 분간할 수 없었다. 다만 드넓은 광장엔 여기저기 흩어져 희끄무레하게 빛나는 가로등 불빛들, 그리고 개선문의 석조 아치만 눈에 띄었다. 거인처럼 치솟은 개선문은 안개 속으로 자취를 감추며, 위로는 우울증에 빠진 하늘을 떠받들고, 밑으로는 무명용사의 묘지에서 고독하고 창백하게 타오르는 불길을 지켜 주는 듯했다. 무명용사의 묘지는 밤의 황량함 속에서 인류 최후의 묘지처럼 보였다.(장희창 2015, 16-17)
위의 몇 가지 번역 중 이영구의 번역과 송영택의 번역은 글자 하나도 다르지 않고 동일하다. 그 외의 역자들은 다소간 표현상의 차이 속에서, 다시 말해 우리말 어휘 선택이나 어휘들의 연결 방식에서 오역이라기보다는 자신만의 방식을 보여주면서, 최대한 감상적이고, 시적 문장을 재현해낸다. 이것은 역자에게 허용된 선택의 공간이자 각 역자의 언어적 습관과 특성이 드러나는 차이의 공간이 될 것이다. 특히 길게 연속되는 마지막 문장의 경우 예외 없이 두세 문장으로 나누어 번역하였다. 이는 최대한 자연스러운 도착어의 문장 구조와 사유 구조에 상응하고자 애쓴 결과이지만, 관계사를 통해 긴 문장에도 자연스럽게 읽히는 원문의 리듬과는 분명 차이가 나는 선택이라 하겠다. 다시 말해 의미 전달을 위해 문장의 리듬을 달리한 ‘자국화’ 번역의 경우에 해당한다 하겠다.
<개선문>은 “세대마다 문학의 고전은 새로 번역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1998년부터 다시 발간되기 시작한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에 포함되어 2015년 장희창에 의해 다시 번역되었다. 그는 2010년에 이미 같은 출판사에서 레마르크의 <사랑할 때와 죽을 때>를 펴낸 바 있다.
장희창의 번역에서 눈에 띄는 것은 대단히 순화하고 부드러워진 언어이다. 이미 수십 차례 번역되고 출판된 만큼 외국어가 가지는 언어적 낯섦이나 생경한 이음새 없이 유려한 우리말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다.
“Rede keinen Unsinn. Das ist ein ziemlich großes Luder.” “Was?” sagte Revic. “Ein Luder. Keine Hure. Wenn du ein Russe wärest, würdest du das verstehen.” Ravic lachte. “Dann muß sie sich sehr geändert haben. Servus, Boris! Gott segne deine Augen.”(93)
이를 여러 역자들은 다음과 같이 옮긴다.
“어리석은 소리 작작 하게. 제법 대단한 말괄량일세.” “뭐라고?” 라고 라비크가 물었다. “말광량이야. 창녀가 아니라 말광량이지. 자네가 러시아인이라면 그걸 이해하련만.” 라비크는 웃었다. “그럼 달라진 게로군, 실례하네, 보리스! 눈을 조심하게나.”(구기성, 82)
“어리석은 소리 말게. 그녀는 닳고 닳은 여자야.” “뭐라구?”하고 라빅은 물었다. “여간내기가 아니란 말이야. 창녀는 아니야. 닳았어. 자네가 러시아 사람이라면 알 수 있을 텐데 말야.” 라빅은 소리내어 웃었다. “그렇다면 아주 달라진 게로군, 보리스, 실례하네. 자네 눈을 소중하게 하라고!”(이영구, 86)
“어리석은 소리 말게. 그녀는 이젠 닳고 닳은 여자야.” “뭐라고?” 라비크가 물었다. “여간내기가 아니란 말이야. 창녀는 아니지만 대단한 여자야. 자네가 러시아 사람이라면 알 수가 있었을 텐데.” 라비크는 소리내어 웃었다. “그럼 아주 달라진 게로군. 자, 보리스, 실례하겠네. 자네의 눈을 소중하게 하라고.”(정영호, 108)
“멍청한 소린 그만두게. 그 여자는 닳고 닳은 여자야!” “뭐라고?” 라비크가 물었다. “걸레야. 매춘부는 아니지만, 자네가 러시아 사람이라면 금방 알 텐데.” 라비크는 큰소리로 웃었다. “그럼 그 여잔 아주 달라진 거로군. 실례하네, 보리스! 자네의 감식안에 축복이 있기를!”(장희창, 138-139)
장희창은 deine Augen을 ‘자네의 감식안’으로 옮겨 그간에 반복되던 오역이나 살짝 빗나간 오해를 피했고, 나아가 Luder를 ‘걸레’로 옮기는 기지(?)를 발휘했다. 이렇게 오늘날의 언어감각에 맞게 다듬어진 번역은 새로운 세대의 독자들을 맞이하기 위해 필요한 작업일 수 있다. 그러나 Servus를 다른 역자들과 마찬가지로 “실례하네”로 옮긴 것은 이전 번역본들을 답습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장희창은 라빅과 조앙 마두의 관계가 진행될수록 두 사람의 대화에서 라빅은 해라체를, 조앙 마두는 해요체를 사용하여 두 사람이 대등한 관계라기보다는 라빅이 우월적 위상을 취하는 듯한 뉘앙스를 준다. 이는 기존의 역자들이 사용했던 하오체가 줄 수 있는 고어적 느낌을 피하고, 갖은 시련을 겪은 주인공의 짐짓 굳어진 심리 상태를 반영하는 어투라 하더라도 자칫 남성중심적인 인상을 줄 소지가 있어 보인다.
장희창의 번역을 비롯하여 앞으로 나올 번역들은 마치 모국어처럼 편안하게 읽히는 천의무봉(天衣無縫)의 번역이나 지나치게 매끄러워진 우리말 구사에 주력하기보다는 이 소설에 두텁게 덧씌워진 통속소설의 이미지를 벗겨내는 데 일조해야 하지 않을까.
4) 김소연 엮은이, 그린이 김순생의 <개선문>(2006)[8]
여기서 삼성비엔씨(주)에서 펴낸 <개선문>을 별도의 항목으로 다루고자 하는 이유는 많은 축약 번역 혹은 편역의 사례에 해당되어 한 번쯤 언급할 필요성이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이 판본은 논리논술과 함께 하는 세계문학, 주니어 논술문학 시리즈 중 한 권이다. 청소년들의 논리논술을 도와준다는 것이 이 시리즈가 내건 슬로건이지만, 실제로 이런 류의 세계문학 시리즈의 구성 목록은 성인들을 위한 일반적인 세계문학 목록과 대동소이하다.
지금까지 세계문학은 오랫동안 전세계인들의 사랑을 받아온 양서임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이 방대하고 난해하여 청소년들이 쉽게 다가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니어 논술문학은 청소년 세대들의 눈높이에 역점을 두고 편집을 하였습니다. 폭넓은 문학 작품 감상은 물론 등장인물의 소개, 감상 포커스, 줄거리, 작가 및 작품 세계를 자세히 다루었으며, 논리논술문항을 수록하였습니다.
이처럼 ‘세계문학’ 혹은 ‘양서’를 통한 사고 및 논술 능력을 전면에 내세우는 축약 번역 혹은 편역은 청소년들의 접근성을 높이고 고전이 가지는 교육적 가치를 확산한다는 데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런 명작 시리즈는 실제로 청소년들에게 고전에 관한 관심을 높이고 독서 습관을 기르게 하는 입문서로 작용해 왔다. 이때 무엇보다 서사구조를 단순화하여 작품의 길이를 대폭 줄이고 줄거리 위주로 재구성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조야한) 삽화를 곁들인 경우도 적지 않다. 이 경우 인물들의 혼재된 시점이나 심리적으로나 감정적으로 복잡하게 얽힌 부분을 최소화하여 핵심적인 이야기만을 중심으로 전개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로 인해 언어예술로서 문학이 가지는 상징이나 은유와 비유 등 다양한 문학적 장치들이 사라지고, 언어적, 문체적 요소들이 대폭 감소하는 것은 피하기 어렵다. 또한 청소년을 위한 비교적 쉬운 언어로 바꾸어 쓰는 과정에서 원작이 가진 사유의 깊이나 정서적 감동이 사라지기도 한다.
김소연이 엮은 <개선문>의 경우 청소년 독자들에게 2차세계대전 발발 직전이란 시대적 상황이 정확히 전달되지 않는 점이 아쉽다. 나아가 독자들은 라비크가 하케를 살해하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려운데, 라비크가 게슈타포에게 고문을 당하고 그 과정에서 애인 시빌이 자살을 하는 등 과거 사실에 대한 언급이 누락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청소년에게 살해가 줄 수 있는 잔인성이나 충격 등을 고려했으리라는 추측도 가능하겠으나 하케에 대한 복수 서사가 이 작품의 주요 모티프 중 하나이자 라빅에게 주어진 일종의 정치적 행위가 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내도 좋았을 것이다. 또한 이처럼 축약 번역으로 읽는 데 익숙해진 청소년들이 긴 분량의 원작 읽기를 회피하는 경향이 생길 수 있는 점도 유념해야 할 것이다.
3. 평가와 전망
애초에 전쟁문학, 반전소설이란 카테고리로 분류되던 <개선문>은 한국사회가 점차 대중소비사회로 진입하는 가운데 작품에 내재된 대중성이나 통속성을 강하게 부각시키면서 이제는 반전소설로서의 이미지보다는 멜로드라마 혹은 대중소설로 읽히는 경향이 강해졌다.
앞서 지적한 바대로 출판사들은 위험 부담이 적고 초기 비용이 적게 든다는 이유로 문학적 가치와 대중적 인지도가 검증된 작품들을 선호하고 무분별하게 양산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하지만 출판사들의 이 같은 생존 전략은 하나의 작품을 고전문학의 반열에서 베스트셀러 문학, 대중문학으로, 심지어는 질 낮은 통속문학이자 오락 문학으로 위상을 격하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쯤 되면 대중의 사랑이란 이름으로 예술작품을 착취하고 싸구려 소모품으로 전락시킨다고도 할 수 있다. 이는 베누티가 말하는 번역사의 ‘스캔들’에 해당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으며, 오직 상업적 의도로 원작의 품격을 훼손하는 이들에게 번역의 윤리란 한갓 허울뿐인 개념에 불과하다.
이른바 축약식 번역에서도 보다 세심한 가공이 필요할 것이다. 기왕에 청소년물로 구성할 경우 역사적 배경이나 시대적 상황,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에 대한 왜곡이나 검열보다는 다음 세대에게 미지의 세계를 경험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무엇보다 출판사들과 편집인들은 영업상의 안전을 위해 기존의 작가와 작품을 편의주의식으로 재출판하기보다는 새로운 작가와 작품의 발굴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채정근(1950): 개선문. 정음사.
구기성(1962): 개선문. 을유문화사.
이영구(1975): 개선문. 삼성출판사.
정영호(1980): 개선문. 삼성당.
송영택(1983): 개선문. 을지출판사.
김소연(2005): 개선문 – 변신, 주니어 논술문학, 삼성비앤씨.
장희창(2015): 개선문 1, 2. 민음사.
- 각주
- ↑ 한국영화 면세조치는 전후 한국영화 산업의 부흥을 이끈 중요한 정책적 전환점이었다. 이승만 정부가 시행한 이 조치는 국산영화에 대한 입장세(관람세)를 면제함으로써 한국영화의 제작과 소비를 장려하려는 목적이었다. 6.25 전쟁 이후 폐허가 된 사회에서 영화는 국민의 정서적 위로와 문화적 활력소 역할을 했다. 면세조치 이후 영화 제작 편수가 급증했고, (1955년 15편에서 1959년 111편으로 증가) 한국영화의 첫 번째 중흥기를 여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실제 극장가에서는 제작비나 기술력에서 우위에 있던 외국영화의 상영이 압도적이었다.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 참고.
- ↑ 이동조 편저(2006): 저널리스트 채정근 작품집,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머리말 참고. 채정근은 1910년 평양에서 출생하여 숭실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 건너가 릿교(立敎) 대학에 입학했다가 중퇴한 후 귀국하여 1932년 1월에 동아일보 신의주 지국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하였다. 조선일보로 자리를 옮겨 1939년부터 1940년 폐간 때까지 근무하였다. 그 이후 ‘라미라 가극단’ 결성단원으로, 번역작가로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해방 이후에는 고려문화사를 창립하여 ‘민성’ 등의 잡지를 발간했고, ‘전조선문필가협회’ 등에 참여하여 문화 건국 사업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나 채정근은 1950년 인민군 치하의 서울에 남았다가 보위부에 출두한 후 북으로 간 것으로만 알려져 있을 뿐 그 이후의 소식을 알 수 없다.
- ↑ 채정근(2006): 저널리스트 채정근 작품집, 도서출판 모시는 사람들, 221.
- ↑ 레마르크는 일본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누렸는데, 태평양 전쟁의 폐해를 직접 체험했던 일본 독자들에게 레마르크의 작품이 주는 반전 메시지는 깊은 공감대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전쟁의 외형적이고 물리적 파괴뿐 아니라 인간 내면의 황폐함과 불안감을 다룬 이 작품은 전쟁의 비극성, 인간의 고독과 소외, 절망 속에서의 사랑과 희망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추구함으로써 전쟁 직후의 일본 사회에서 큰 인기를 얻었던 것이다.
- ↑ Remarque, Erich Maria(2003): Arc de Triomphe. Köln: Kiepenheuer & Witsch 2003년 판을 사용했고, 이후로는 위에서처럼 괄호 안에 쪽수만 표기한다.
- ↑ 구기성의 경우도 원어를 번역하지 않은 채 그대로 두는 방법을 취했다.(411) 그것은 이영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정영호는 위의 부분을 음차하지 않고 아예 이탈리아 원어를 그대로 남겨두는 방식을 취했다. 이들은 이국성을 살리기 위해 외국어를 전략적으로 사용한 경우에 해당한다.
- ↑ 구기성(1962), 강두식(1964), 김광주(1965), 박환덕(1971), 손재준(1972), 홍경호(1974), 박종호(1975), 이영구(1976), 정영호(1980), 남정현(1983), 송영택(1983), 김기선(1985), 김홍진(1987), 윤순호(1991), 장희창(2015) 등의 독문학자와 그 외 독문학자가 아닌 다른 역자들도 <개선문>의 번역자에 이름을 올렸다.
- ↑ 이와 유사하게 청소년물로 출판된 개선문의 종류도 대단히 다양하다. 그중에 몇 가지 예를 들면 대일출판사의 세계명작 85 <개선문>(1995), 한국교육산업출판사에서 나온 수학능력연구회 역 <개선문>(1996)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