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오와 마술사 (Mario und der Zauberer)"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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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1 || 마리오와 魔術師 || 選擇된 人間, 토니오 크뢰거 外 || 世界文學全集 19 || 토마스 만 || 朴鍾緖(박종서) || 1959 || 正音社 || 243-290 || 편역 || 완역 || 초판 | + | | <div id="박종서(1959)" />[[#박종서(1959)R|1]] || 마리오와 魔術師 || 選擇된 人間, 토니오 크뢰거 外 || 世界文學全集 19 || 토마스 만 || 朴鍾緖(박종서) || 1959 || 正音社 || 243-290 || 편역 || 완역 || 초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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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2 || 마리오와 魔術師 || 펠릭스 크룰의 告白, 幻滅, 토니오 크뢰거, 마리오와 魔術師 || 世界文學全集 ; 第1期 4 || 토마스 만 || 姜斗植(강두식) || 1959 || 東亞出版社 || 435-484 || 편역 || 완역 || | + | | <div id="강두식(1959)" />[[#강두식(1959)R|2]] || 마리오와 魔術師 || 펠릭스 크룰의 告白, 幻滅, 토니오 크뢰거, 마리오와 魔術師 || 世界文學全集 ; 第1期 4 || 토마스 만 || 姜斗植(강두식) || 1959 || 東亞出版社 || 435-484 || 편역 || 완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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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 마리오와 마술사 || 간텐바인, 마리오와 마술사 || 新選世界文學全集 6 || 토마스 만 || 姜斗植(강두식) || 1969 || 啓蒙社 || 365-422 || 편역 || 완역 || | | 3 || 마리오와 마술사 || 간텐바인, 마리오와 마술사 || 新選世界文學全集 6 || 토마스 만 || 姜斗植(강두식) || 1969 || 啓蒙社 || 365-422 || 편역 || 완역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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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 마리오와 魔術師 || 토마스 만 短篇集 || 文藝文庫 20 || 토마스 만 || 姜斗植(강두식) || 1973 || 文藝出版社 || 189-272 || 편역 || 완역 || 초판 | | 7 || 마리오와 魔術師 || 토마스 만 短篇集 || 文藝文庫 20 || 토마스 만 || 姜斗植(강두식) || 1973 || 文藝出版社 || 189-272 || 편역 || 완역 || 초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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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8 || 마리오와 魔術師 || 토마스 만 短篇集 || 世界短篇文學全 12 || Thomas Mann || 池明烈; 李甲圭(지명렬; 이갑규) || 1974 || 汎潮社 || 166-238 || 편역 || 완역 || 초판 | + | | <div id="지명렬(1974)" />[[#지명렬(1974)R|8]] || 마리오와 魔術師 || 토마스 만 短篇集 || 世界短篇文學全 12 || Thomas Mann || 池明烈; 李甲圭(지명렬; 이갑규) || 1974 || 汎潮社 || 166-238 || 편역 || 완역 || 초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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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 마리오와 魔術師 || 토마스 만 中篇選 || 三中堂文庫 60 || 토마스 만 || 池明烈(지명렬) || 1975 || 三中堂 || 153-223 || 편역 || 완역 || | | 9 || 마리오와 魔術師 || 토마스 만 中篇選 || 三中堂文庫 60 || 토마스 만 || 池明烈(지명렬) || 1975 || 三中堂 || 153-223 || 편역 || 완역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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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 마리오와 마술사 || 마리오와 마술사 || 세계문학 5 || 토마스 만 || 확인불가 || 1990 || 시대평론 || 7-95 || 완역 || 완역 || | | 22 || 마리오와 마술사 || 마리오와 마술사 || 세계문학 5 || 토마스 만 || 확인불가 || 1990 || 시대평론 || 7-95 || 완역 || 완역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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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23 || 마리오와 마술사 || 토니오 크뢰거, 트리스탄, 베니스에서의 죽음 || 세계문학전집 8 || 토마스 만 || 임홍배 || 1998 || 민음사 || 109-186 || 편역 || 완역 || 1998년도 초판 1쇄 발행 당시에는 '토니오 크뢰거, 트리스탄'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으나 대략 2003년부터는 '토니오 크뢰거, 트리스탄, 베니스에서의 죽음'으로 제목이 변경된 것으로 보임. 그 이후로는 이 제목으로 고정된 채 쇄를 거듭했기에 1쇄 당시의 제목이 아닌 본 제목으로 기록함 | + | | <div id="임홍배(1998)" />[[#임홍배(1998)R|23]] || 마리오와 마술사 || 토니오 크뢰거, 트리스탄, 베니스에서의 죽음 || 세계문학전집 8 || 토마스 만 || 임홍배 || 1998 || 민음사 || 109-186 || 편역 || 완역 || 1998년도 초판 1쇄 발행 당시에는 '토니오 크뢰거, 트리스탄'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으나 대략 2003년부터는 '토니오 크뢰거, 트리스탄, 베니스에서의 죽음'으로 제목이 변경된 것으로 보임. 그 이후로는 이 제목으로 고정된 채 쇄를 거듭했기에 1쇄 당시의 제목이 아닌 본 제목으로 기록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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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 마리오와 마술사 || 토마스 만 단편선 || 사르비아 총서 609 || 토마스 만 || 지명렬 || 2002 || 범우사 || 191-274 || 편역 || 완역 || 2판 | | 24 || 마리오와 마술사 || 토마스 만 단편선 || 사르비아 총서 609 || 토마스 만 || 지명렬 || 2002 || 범우사 || 191-274 || 편역 || 완역 || 2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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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 마리오와 마술사 || (생각의 깊이를 더해 주는) 괴테, 토마스 만, 니체의 명언들 || || 토마스 만 || 윤순식 || 2009 || 누멘 || 86-87 || 편역 || 편역 || | | 26 || 마리오와 마술사 || (생각의 깊이를 더해 주는) 괴테, 토마스 만, 니체의 명언들 || || 토마스 만 || 윤순식 || 2009 || 누멘 || 86-87 || 편역 || 편역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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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27 || 마리오와 마술사 || 마리오와 마술사 || 클래식 레터북 시리즈 025 || 토마스 만 || 염정용 || 2014 || 인디북 || 7-110 || 편역 || 완역 || | + | | <div id="염정용(2014)" />[[#염정용(2014)R|27]] || 마리오와 마술사 || 마리오와 마술사 || 클래식 레터북 시리즈 025 || 토마스 만 || 염정용 || 2014 || 인디북 || 7-110 || 편역 || 완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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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 마리오와 마술사 || 토마스 만 작품집 || 범우 세계 문학 작품집 시리즈 || 토마스 만 || 지명렬 || 2017 || 범우 || 17-115 || 편역 || 완역 || | | 28 || 마리오와 마술사 || 토마스 만 작품집 || 범우 세계 문학 작품집 시리즈 || 토마스 만 || 지명렬 || 2017 || 범우 || 17-115 || 편역 || 완역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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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개별 번역 비평''' | '''2. 개별 번역 비평''' | ||
| − | 1) 박종서 역의 <마리오와 마술사>(1959/1974) | + | 1) '''[[#박종서(1959)|박종서 역의 <마리오와 마술사>(1959/1974)]]<span id="박종서(1959)R" />''' |
| − | 토마스 만이 국내에 번역 소개된 것은 1950년대 후반부터다. 1959년에 박종서, 박찬기, 강두식, 정경석이 토마스 만의 소설들을 번역 출판하면서 토마스 만이 국내 독자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박종서는 정음사 세계문학전집 38권을 통해 <마리오와 마술사>, <선택받은 사람>,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토니오 크뢰거>를 번역 출판했는데, 이 네 작품 모두 국내 초역이다. 토마스 만의 국내 소개 및 수용에 박종서가 작지 않은 역할을 담당했다고 할 수 있겠다. 박종서의 이 번역서에는 작가의 작품세계 전반에 대한 해설과 작품 연보가 실려 있는데, <마리오와 마술사>에 대해서는 “앞날의 정치적 활동을 예시하는 듯한 작품”(박종서 1974, 7)으로 평가하면서 작가가 이 작품을 “파시즘의 심리학”이라고 말했다고 소개한다. | + | 토마스 만이 국내에 번역 소개된 것은 1950년대 후반부터다. 1959년에 박종서, 박찬기, 강두식, 정경석이 토마스 만의 소설들을 번역 출판하면서 토마스 만이 국내 독자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박종서는 정음사 세계문학전집 38권을 통해 <마리오와 마술사>, <[[선택받은 사람 (Der Erwählte)|선택받은 사람]]>,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Der Tod in Venedig)|베네치아에서의 죽음]]>, <[[토니오 크뢰거 (Tonio Kröger)|토니오 크뢰거]]>를 번역 출판했는데, 이 네 작품 모두 국내 초역이다. 토마스 만의 국내 소개 및 수용에 박종서가 작지 않은 역할을 담당했다고 할 수 있겠다. 박종서의 이 번역서에는 작가의 작품세계 전반에 대한 해설과 작품 연보가 실려 있는데, <마리오와 마술사>에 대해서는 “앞날의 정치적 활동을 예시하는 듯한 작품”(박종서 1974, 7)으로 평가하면서 작가가 이 작품을 “파시즘의 심리학”이라고 말했다고 소개한다. |
박종서 번역의 특징은 토마스 만 특유의 장문의 문체를 살려 번역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단어들을 빠짐없이 번역하여, 번역문의 분량이 다른 역자들의 그것보다 긴 것도 특징이다. 마술사 치폴라가 공연 중에 자신의 의지를 완전히 배제하고 공동체, 즉 관객의 의지를 그대로 실행에 옮기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 말하면서 그런 자기 일이 매우 힘들다고 강조하는 다음 부분을 살펴보자. | 박종서 번역의 특징은 토마스 만 특유의 장문의 문체를 살려 번역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단어들을 빠짐없이 번역하여, 번역문의 분량이 다른 역자들의 그것보다 긴 것도 특징이다. 마술사 치폴라가 공연 중에 자신의 의지를 완전히 배제하고 공동체, 즉 관객의 의지를 그대로 실행에 옮기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 말하면서 그런 자기 일이 매우 힘들다고 강조하는 다음 부분을 살펴보자. | ||
| − | Die Fähigkeit, sagte er, sich seiner selbst zu entäußern, zum Werkzeug zu werden, im unbedingtesten und vollkommensten Sinne zu gehorchen, sei nur die Kehrseite jener anderen, zu wollen und zu befehlen; es sei ein und dieselbe Fähigkeit; Befehlen und Gehorchen, sie bildeten zusammen nur ein Prinzip, eine unauflösliche Einheit; wer zu gehorchen wisse, der wisse auch zu befehlen, und ebenso umgekehrt; der eine Gedanke sei in dem anderen einbegriffen, wie Volk und Führer ineinander einbegriffen seien, aber die Leistung, die äußerst strenge und auftreibende Leistung, sei jedenfalls seine, des Fühers und Veranstalters, in welchem der Wille Gehorsam, der Gehorsam Wille werde, dessen Person die Geburtstätte beider sei, und der es also sehr schwer habe. Thomas Mann(1990): Mario und der Zauberer. Ein tragisches Reiseerlebnis. In: Thomas Mann. Gesammelte Werke in dreizehn Bänden. Vol. 8. Frankfurt a. M.: Fischer Taschenbuch Verlag, 691-692. 이하에서는 본문에 쪽수를 표시한다. | + | Die Fähigkeit, sagte er, sich seiner selbst zu entäußern, zum Werkzeug zu werden, im unbedingtesten und vollkommensten Sinne zu gehorchen, sei nur die Kehrseite jener anderen, zu wollen und zu befehlen; es sei ein und dieselbe Fähigkeit; Befehlen und Gehorchen, sie bildeten zusammen nur ein Prinzip, eine unauflösliche Einheit; wer zu gehorchen wisse, der wisse auch zu befehlen, und ebenso umgekehrt; der eine Gedanke sei in dem anderen einbegriffen, wie Volk und Führer ineinander einbegriffen seien, aber die Leistung, die äußerst strenge und auftreibende Leistung, sei jedenfalls seine, des Fühers und Veranstalters, in welchem der Wille Gehorsam, der Gehorsam Wille werde, dessen Person die Geburtstätte beider sei, und der es also sehr schwer habe.<ref>Thomas Mann(1990): Mario und der Zauberer. Ein tragisches Reiseerlebnis. In: Thomas Mann. Gesammelte Werke in dreizehn Bänden. Vol. 8. Frankfurt a. M.: Fischer Taschenbuch Verlag, 691-692. 이하에서는 본문에 쪽수를 표시한다.</ref> |
자기 자신을 단념해버리고 남의 뜻을 받은 도구가 되어, 어디까지나 절대적이며 완전한 의미에 있어서 남한테 복종하는 능력은 의지로써 명령하는 다른 한 쪽 능력의 일면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 두 종류의 능력은 결국 하나이며, 명령과 복종은 서로 합쳐서 한 개의 원리, 헤칠수 없는 통일체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복종할 수 있는 사람, 다시 말하면 그런 사람은 명령할 수 있는 자이며, 명령할 수 있는 자는 복종할 수 있는 자에 지나지 않는다. 마치 국민과 그 지도자가 둘인 동시에 하나인 것처럼, 한 쪽 사상이 딴 사상 속에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극도로 곤란하고 신심을 소모하는 실천은 어떻든간에 지도자이며 주재자(主宰者)로서의 임무이며, 그러한 지도자일수록 의지는 복종이고 복종은 의지가 되는 것이며, 의지와 복종이 생겨나는 곳은 바로 그러한 인물이기 때문에, 그의 생활은 사실 괴롭기 한이 없는 것이다.(박종서 1974, 272) | 자기 자신을 단념해버리고 남의 뜻을 받은 도구가 되어, 어디까지나 절대적이며 완전한 의미에 있어서 남한테 복종하는 능력은 의지로써 명령하는 다른 한 쪽 능력의 일면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 두 종류의 능력은 결국 하나이며, 명령과 복종은 서로 합쳐서 한 개의 원리, 헤칠수 없는 통일체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복종할 수 있는 사람, 다시 말하면 그런 사람은 명령할 수 있는 자이며, 명령할 수 있는 자는 복종할 수 있는 자에 지나지 않는다. 마치 국민과 그 지도자가 둘인 동시에 하나인 것처럼, 한 쪽 사상이 딴 사상 속에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극도로 곤란하고 신심을 소모하는 실천은 어떻든간에 지도자이며 주재자(主宰者)로서의 임무이며, 그러한 지도자일수록 의지는 복종이고 복종은 의지가 되는 것이며, 의지와 복종이 생겨나는 곳은 바로 그러한 인물이기 때문에, 그의 생활은 사실 괴롭기 한이 없는 것이다.(박종서 1974, 27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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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만이 세미콜론을 사용하여 문장을 길게 가져갔다면 박종서는 “-이며”를 사용하여 원문의 호흡과 문체를 존중하면서 긴 문장을 만들어냈다. 이런 장문들로 인해 가독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국내 초역이면서도 당시의 번역 현황에 비추어 볼 때 번역이 매우 양호한 편이고, 노벨상 작가이자 독일의 대문호 특유의 문체를 엿볼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번역자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박종서의 번역은 이후 60년대와 80년대에도 재출판되면서 이 작품의 국내 수용에 한 축을 담당했다. | 토마스 만이 세미콜론을 사용하여 문장을 길게 가져갔다면 박종서는 “-이며”를 사용하여 원문의 호흡과 문체를 존중하면서 긴 문장을 만들어냈다. 이런 장문들로 인해 가독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국내 초역이면서도 당시의 번역 현황에 비추어 볼 때 번역이 매우 양호한 편이고, 노벨상 작가이자 독일의 대문호 특유의 문체를 엿볼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번역자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박종서의 번역은 이후 60년대와 80년대에도 재출판되면서 이 작품의 국내 수용에 한 축을 담당했다. | ||
| − | 2) 강두식 역의 <마리오와 마술사>(1959/1973/2013) | + | 2) '''[[#강두식(1959)|강두식 역의 <마리오와 마술사>(1959/1973/2013)]]<span id="강두식(1959)R" />''' |
| − | 강두식의 번역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총 9회로 가장 많이, 꾸준히 출판되면서 가장 많이 읽힌 번역본이 아닐까 생각된다. 여기서는 1973년에 제1판 1쇄가 나온 문예출판사의 2013년도 제3판 재쇄를 비평에 참고하였다. <토니오 크뢰거>를 대표작품으로 내건 <토마스 만 단편선>에서 역자는, 작가가 “무솔리니 통치 시대의 이탈리아 체류에서 얻은 소재를 특별한 기교 없이 써내려간 여행기와 같은 인상을 주는 이 작품은 당시 이탈리아에 떠돌던 공포 정치의 분위기를 너무나도 분명하게 포착”한 것으로, “우중을 희롱하는 독재 정치에 대한 상징”(강두식, 272-273)이라고 해설한다. 작품에 대한 이런 특성 규정 및 해설이 민주화를 열망하는 국내 상황과 맞물리면서 지속적인 출판으로 이어지지 않았나 생각된다. | + | 강두식의 번역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총 9회로 가장 많이, 꾸준히 출판되면서 가장 많이 읽힌 번역본이 아닐까 생각된다. 여기서는 1973년에 제1판 1쇄가 나온 문예출판사의 2013년도 제3판 재쇄를 비평에 참고하였다. <[[토니오 크뢰거 (Tonio Kröger)|토니오 크뢰거]]>를 대표작품으로 내건 <토마스 만 단편선>에서 역자는, 작가가 “무솔리니 통치 시대의 이탈리아 체류에서 얻은 소재를 특별한 기교 없이 써내려간 여행기와 같은 인상을 주는 이 작품은 당시 이탈리아에 떠돌던 공포 정치의 분위기를 너무나도 분명하게 포착”한 것으로, “우중을 희롱하는 독재 정치에 대한 상징”(강두식, 272-273)이라고 해설한다. 작품에 대한 이런 특성 규정 및 해설이 민주화를 열망하는 국내 상황과 맞물리면서 지속적인 출판으로 이어지지 않았나 생각된다. |
강두식의 번역은 전반적으로 원문의 상황 또는 분위기를 잘 파악하여 전달하는 편이다. 소설의 끝부분에서 마술사 치폴라가 마리오에게 최면을 걸어 마술사를 실베스트라로 착각하여 키스하게 만드는 장면을 살펴보자. | 강두식의 번역은 전반적으로 원문의 상황 또는 분위기를 잘 파악하여 전달하는 편이다. 소설의 끝부분에서 마술사 치폴라가 마리오에게 최면을 걸어 마술사를 실베스트라로 착각하여 키스하게 만드는 장면을 살펴보자. | ||
| + | Wenn <u>ich mich</u> an ihre Stelle versetze, siehst du, und die Wahl habe zwischen so einem geteerten Lümmel, so einem Salzfisch und Meeresobst ― und einem Mario, einem Ritter der Serviette, der sich unter den Herrschaften bewegt, der den Fremden gewandt Erfrischungen reicht und <u>mich</u> liebt mit wahrem, heißem Gefühl, ― meiner Treu, so ist die Entscheidung meinem Herzen nicht schwer gemacht, so weiß <u>ich</u> wohl, wem ich es schenken soll, wem ganz allein ich es längst schon errötend geschenkt habe. Es ist Zeit, daß er’s sieht und begreift, mein Erwählter! Es ist Zeit, daß du mich siehst und erkennst, Mario, mein Liebster ... Sage, wer bin ich?(709; 밑줄 필자 표기) | ||
| − | + | 내가 만일 그 처녀라면 말이오, 알겠소. 한 작자는 먹칠한 듯한 불한당, 바다의 과실이고―또 한 분, 바로 이 마리오 씨, 손님들 사이를 오락가락하시며, 외국 손님들에게 솜씨 있게 마실 것을 돌리시는 냅킨의 기사 양반, 더구나 저를 진실하고 열렬한 마음으로 사랑해주시는 분―저의 잊을 수 없는 분, 이 둘 중의 누구를 택할까, 어떤 분에게 사랑을 바칠까, 그런 것쯤은 저도 잘 알고 있어요. 벌써 오래전부터 저는 부끄러우면서도 한 분에게 이미 제 마음을 바치고 있었어요. 제 마음을 짐작하시고 생각해주실 때가 되지 않았어요, 여보세요! 저를 보시고 본심을 알아줄 때가 되지 않았어요. 네, 마리오 씨, 나의 사랑... 말해보세요, 저를 아시겠어요?(강두식, 263-26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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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베스트라를 짝사랑하는 마리오의 마음을 간파한 마술사는 마리오를 무대로 불러 위와 같은 말들로 현혹한다. 원문의 첫 문장은 조건, 가정의 의미의 wenn 접속사로 시작하는 비교적 긴 문장으로 첫 번째 일인칭 대명사 ich와 mich는 마술사 자신이고 두 번째부터 ich와 mich는 실베스트라이다. 마술사는 마리오에게 말하는 도중 은연중에 실베스트라로 화하여 그녀가 마리오에게 직접 말하는 것처럼 꾸민다. 강두식은 한 문장 안에서 일인칭 대명사가 지칭하는 이가 달라지는 이런 상황을 잘 인지하여 번역함으로써 원문의 의미와 분위기를 잘 전달하였다. 다만 마리오의 연적이라 할 수 있는 또 다른 청년, 원문에는 “einem geteerten Lümmel, so einem Salzfisch und Meeresobst”로 되어 있는데, 이를 “먹칠한 듯한 불한당, 바다의 과실”로 번역한 점이나 –임홍배는 이를 “소금에 절인 생선인지 짠물에 담근 과일인지 모를 그런 까무잡잡한 건달”(임홍배, 183)로 번역함- 긍정적 뉘앙스의 “아아” 정도의 감탄사인 “meiner Treu”를 “저의 잊을 수 없는 분”으로 번역한 점, 그리고 so 이하의 부문장 부분에서 원문의 순서를 따르지 않은 점들도 발견되지만, 원문의 복잡한 상황을 비교적 잘 전달하여 잘 읽히는 편이다. | 실베스트라를 짝사랑하는 마리오의 마음을 간파한 마술사는 마리오를 무대로 불러 위와 같은 말들로 현혹한다. 원문의 첫 문장은 조건, 가정의 의미의 wenn 접속사로 시작하는 비교적 긴 문장으로 첫 번째 일인칭 대명사 ich와 mich는 마술사 자신이고 두 번째부터 ich와 mich는 실베스트라이다. 마술사는 마리오에게 말하는 도중 은연중에 실베스트라로 화하여 그녀가 마리오에게 직접 말하는 것처럼 꾸민다. 강두식은 한 문장 안에서 일인칭 대명사가 지칭하는 이가 달라지는 이런 상황을 잘 인지하여 번역함으로써 원문의 의미와 분위기를 잘 전달하였다. 다만 마리오의 연적이라 할 수 있는 또 다른 청년, 원문에는 “einem geteerten Lümmel, so einem Salzfisch und Meeresobst”로 되어 있는데, 이를 “먹칠한 듯한 불한당, 바다의 과실”로 번역한 점이나 –임홍배는 이를 “소금에 절인 생선인지 짠물에 담근 과일인지 모를 그런 까무잡잡한 건달”(임홍배, 183)로 번역함- 긍정적 뉘앙스의 “아아” 정도의 감탄사인 “meiner Treu”를 “저의 잊을 수 없는 분”으로 번역한 점, 그리고 so 이하의 부문장 부분에서 원문의 순서를 따르지 않은 점들도 발견되지만, 원문의 복잡한 상황을 비교적 잘 전달하여 잘 읽히는 편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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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3) '''[[#지명렬(1974)|지명렬 역의 <마리오와 마술사>(1974)]]<span id="지명렬(1974)R"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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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지명렬의 <마리오와 마술사>는 1974년 처음 출판된 후 2017년까지 총 8회 출판되었는바, 강두식의 번역본과 함께 이 소설의 국내 수용에 한 축을 담당한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서는 1985년 초판 1쇄가 나온 범우사의 1992년 초판 3쇄를 비평에 참고했다. 지명렬은 토마스 만 자신이 “언어에 대한 국민적 책임을 절감하고 단어 하나 문장 하나하나에 지대한 관심과 주의를 기울여 조금도 소홀히 하지 않았”(지명렬, 11)다며, 그렇기에 번역에 더욱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번역에 임하는 역자의 자세를 밝힌 점이 눈에 띈다. | ||
| + | 그럼 소설의 첫 장면에 대한 번역을 살펴보자. | ||
| + | Die Erinnerung an Torre di Venere ist atmosphärisch unangenehm. Ärger, Gereiztheit, Überspannung lagen von Anfang an in der Luft, und zum Schluß kam dann der Choc mit diesem schrecklichen Cipolla, in dessen Person sich das eigentümlich Bösartige der Stimmung auf verhängnishafte und übrigens menschlich sehr eindrucksvolle Weise zu verkörpern und bedrohlich zusammenzudrängen schien.(658) | ||
| + | |||
| + | 톨레 디 베네레의 추억에는 어쩐지 전체적으로 불쾌한 것이 있다. 분노, 흥분, 과도한 긴장, 이런 것들이 처음부터 주변 분위기에 떠돌고 있어서 결국에는 그 무서운 치폴라의 사건이 폭발하고 말았던 것이다. 치폴라라는 인물 속에는 그 도시의 분위기에 잠겨 있었던 특이하게 악독한 무엇인가가 숙명적으로, 그러나 인간적으로는 대단히 인상 깊게 상징되어 겁날 만큼 압축되어 있었던 것 같다.(지명렬, 16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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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소설의 이 첫 문장들은 이탈리아의 휴양지 토레 디 베네레에서 마술사 치폴라를 둘러싸고 벌어진 사건을 회상하면서 서술된다는 사실을 던져주면서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런데 표현이 매우 압축적이어서 번역이 쉽지 않은 편이다. 지명렬은 두 번째 문장의 처음 세 명사를 “분노, 흥분, 과도한 긴장”으로 단어 그대로 직역했는데, “짜증스럽고 자극적이며 지나치게 긴장된”(109)으로 번역한 임홍배나 “짜증나고 긴장되는 분위기”(9)로 번역한 염정용의 번역 방식과 비교된다. 그리고 평범하지 않았던 휴양지의 분위기를 지배하는 무엇인가가 치폴라라는 인물 속에 압축되어 있다가 결국 터지고 말았다고 말하는 문장 후반부 관계절 번역도 직역을 추구하면서 의미 전달을 잘해준다. 이는 “치폴라라고 하는 이 인간의 이면에는 그 독특한 분위기 속에 감돌고 있던 이루 말할 수 없이 잔악스러운 것이, 숙명적이면서도 한편 인간적으로는 아주 인상 깊이 상징되고, 위협적으로 압축되어 있는 것 같았다.”(박종서, 245)나 “그 치폴라라는 인간의 성질 속에는 그 도시의 분위기가 지니고 있었던 특이한, 악독한 그 무엇이 숙명적으로, 하지만 동정심을 가지고 본다면 대단히 인상 깊게 드러나 있었고, 겁이 나도록 압축되어 있었다.”(강두식, 189) 보다 원문을 가장 잘 이해하여 전달해준다고 하겠다. 충격이라는 의미의 단어 Choc를, 즉 치폴라로 인해 받은 충격을 “사건”으로 번역한 것만 원문과 조금 다른 예외라 하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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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지명렬은 가급적 문자 그대로의 직역을 추구하기에 화용적 맥락을 중시한 강두식의 번역과 차이를 보인다. 강두식은 앞에서 마리오를 현혹하던 장면에서 마리오와 그의 연적을 “한 분”, “한 작자”로 번역했는데, 지명렬은 “한편은”, “또 한편은”(227)으로 번역했다. 무대로 나간 두 청년이 글을 쓸 줄 모른다고 말할 때도 지명렬은 “쓸 줄 모르는데요.”, “나도 못 쓰는데요.”(192)라고 다소 밋밋하게 번역했다. 그리고 공작부인에 대한 부분에서도 강두식은 서술자에게 감정이입을 하여 비꼬는 투로 번역했는데, 지명렬의 번역에서는 그런 점이 전혀 엿보이지 않는다.<ref>지명렬의 번역은 다음과 같다. “그럴 때면 입술을 산호같이 빨갛게 칠해서 돋보이게 한 대공 부인이 우아하게 발을 디디며 걸어 나오는 것을 곧잘 보았다. 영국 여자에게 보육을 맡기고 있는 사랑하는 아기의 모습을 보러 나오는 것인데, 우리 가족 일행이 바로 옆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169)</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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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또한 강두식 번역에서 자주 등장한 낮잡아 이르는 표현들이 지명렬의 번역에서는 “여자”(166), “불구자”(189), “딸아이”(208)로 순화되어 나타난다. 딱 한 번 곱사등이 마술사 치폴라에 대해 “병신 특유의”(183)라는 표현을 쓰긴 했지만, 강두식 번역에서 “병신”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했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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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지명렬은 토마스 만의 “언어와 표현의 정교함”(지명렬, 11)을 십분 인지하면서 직역을 통해 원문에 충실한 번역을 시도했다 하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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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4) '''[[#임홍배(1998)|임홍배 역의 <마리오와 마술사>(1998)]]<span id="임홍배(1998)R"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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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임홍배의 <마리오와 마술사>는 1998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권에 토마스 만의 다른 단편들과 함께 실려 나왔다. 기존의 역자들은 이 작품의 부제인 Ein tragisches Reiseerlebnis에 주목하지 않았는데, 임홍배가 처음으로 “어느 비극적인 여행 체험기”라고 번역하여 제목 아래에 병기했다. 임홍배는 각주 형식의 역주를 통해 다른 역자들보다 훨씬 많은, 작품 이해에 도움이 되는 정보들도 제공한다. 예를 들어, 마술사가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 이탈리아어 단어들로 말장난을 해서 관중을 웃기는 장면에서 원문에는 해당 이탈리아어가 제시되어 있다. 다른 역자들은 이 이탈리아어 자체를 번역에 넣지 않고 그냥 넘어간 반면 임홍배는 그것들을 적어주고 그 단어가 지닌 이중적 의미를 역주를 통해 알려주어 그것이 왜 말장난인지 알게 해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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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임홍배의 번역본은 가독성이 매우 좋은 유려한 번역을 선사한다. 휴양지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 때문에 계속 머물 것인지 떠날 것인지, 둘 사이에서 거듭 고민하다가 결국 머물게 된 서술자의 다음 진술을 살펴보자. | ||
| + | Um alles zu sagen: Wir blieben auch deshalb, weil der Aufenthalt uns merkwürdig geworden war, und weil Merkwürdigkeit ja in sich selbst einen Wert bedeutet, unabhängig von Behagen und Unbehagen. Soll man die Segel streichen und dem Erlebnis ausweichen, sobald es nicht vollkommen danach angetan ist, Heiterkeit und Vertrauen zu zeugen? Soll man >abreisen<, wenn das Leben sich ein bißchen unheimlich, nicht ganz geheuer oder etwas peinlich und kränkend anläßt? Nein doch, man soll bleiben, soll sich das ansehen und sich dem aussetzen, gerade dabei gibt es vielleicht etwas zu lernen.(66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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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그곳에 계속 머물러 있었던 것은 이 휴양지가 신기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신기함이란 편하든 불편하든 상관없이 그 자체로 어떤 가치를 의미하는 것이다. 어떤 체험이 완벽하게 유쾌함과 신뢰감을 주지는 않을 것 같다고 해서 대뜸 돛을 내리고 체험을 회피해야 옳을까? 인생에서 다소 섬뜩하고 꼭 편하지만은 않은 일이 벌어진다고 해서, 다소 괴롭거나 속상한 일이 생긴다고 해서 인생을 <떠나는> 것이 옳을까? 그럴 수는 없다. 그대로 머물러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인생을 구경해야 하고, 인생을 향해 자신을 드러내 보여야 한다. 그래야만 뭔가 배울 게 생기는 것이다.(임홍배, 125-12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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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어떤 마적인 힘의 유혹에 빠져 계속 머물 것인지 아니면 곧장 떠날 것인지, 둘 사이에서 고민하는 주인공의 상황이 –이는 토마스 만 특유의 모티프로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Der Tod in Venedig)|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의 아센바흐와 <[[마의 산 (Der Zauberberg)|마의 산]]>의 한스 카스토르프도 같은 고민에 빠져서 갈등한다- 이 작품에서도 나타나는데, 그런 원문의 내용, 서술자의 고민이 고스란히 느껴지기에 독자는 작품세계에 빠져 독서하게 된다. 그런데 원문과 번역문을 좀 자세히 들여다보면 번역문의 문장 개수가 원문의 그것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장을 짧게 나누어 번역함으로써 가독성을 높인 것인데, 토마스 만 특유의 호흡이 긴 장문의 문체를 느낄 수 없는 점이 아쉽게 느껴진다. 문체를 살리면서 가독성도 높이는 번역이 절대 쉽지 않음도 실감하게 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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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임홍배의 번역본은 전반적으로 매우 우수한데, 마리오가 마술사를 실베스트라로 착각하여 키스하는, 앞에서 인용했던 장면 번역에서 작지 않은 실수를 드러낸다. | ||
| + | 이보라구, 한쪽에는 소금에 절인 생선인지 짠물에 담근 과일인지 모를 그런 까무잡잡한 건달이 있고, 또 한쪽에는 마리오처럼 냅킨 시중까지 들어주는 기사님이 있네. 그 기사는 뭇 신사들 사이에서 움직이고, 외국인들에게 솜씨 있게 신선한 음식을 날라다 주며, 또 진정으로 뜨거운 감정으로 사랑한단 말일세. 내가 만일 실베스트라의 입장에서 둘 중에 한 사람을 고른다면, 여보게, 어렵지 않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결정을 내릴 수 있을걸세. 내 마음을 누구에게 바쳐야 할지 잘 알고 있지. 사실은 벌써 오래전부터 오직 한쪽 남자에게만 얼굴을 붉히며 마음을 바쳐왔단 말일세. 바로 그대가 선택되었으니, 이제 이 마음을 알아주고 잡아줄 때가 되었네.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누구인지 알아볼 때가 되었다구, 마리오, 내 사랑!...... 말해 봐, 내가 누구지?(임홍배, 183-18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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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앞에서 말한 것처럼 마술사는 위의 말들로 마리오를 현혹하는바, 은연중에 실베스트라로 화하여 그녀가 마리오 자신에게 말하는 것으로 혼동하게 만든다. 원문에서 처음 말하는 사람은 마술사 자신이지만 어느 순간 실베스트라가 마리오에게 말하는 것처럼 전환한 것이다. 그런데 임홍배는 계속해서 마술사가 마리오에게 말하는 것으로 하다가 마지막에 가서만 실베스트라가 말하는 방식으로 번역했다. 그런데 여기서도 “마리오, 내 사랑!...... 말해 봐, 내가 누구지?”라고 말하는 화자의 어투는 실베스트라 보다는 마술사에 가깝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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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임홍배의 번역본은 소설의 부제를 빠트리지 않고 유려한 문장으로 번역한 장점이 있는가 하면 중요한 장면에서 상황 전달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오점도 보여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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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5) '''[[#염정용(2014)|염정용 역의 <마리오와 마술사>(2014)]]<span id="염정용(2014)R"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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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염정용의 <마리오와 마술사>는 이 작품을 표제작으로 하여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Der Tod in Venedig)|베네치아에서의 죽음]]>과 묶여 인디북 출판사의 “클래식 레터북 시리즈” 025번으로 2014년에 나왔다. 이 번역서에는 내용 이해에 도움을 주려는 의도로 보이는 여러 장의 삽화가 삽입되어 있는데, 독일문학은 무겁고 어렵다고 생각하는 일반 독자나 신세대 독자들에게 좀 더 다가가기 위한 시도로 이해된다. 그런 의도 때문인지 전문적인 작품해설이나 작가 연보 대신에 역자 후기를 통해 두 작품에 대한 간략한 소개만 제공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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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 시리즈, 이 번역서의 이런 특성은 자연스럽게 가독성을 가장 우선시하는 번역으로 이어진다. 소설의 첫 문장들에 대한 번역을 살펴보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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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토레 디 베네레는 기억 속에 불쾌한 느낌으로 남아 있는 곳이다. 처음부터 어쩐지 짜증나고 긴장되는 분위기가 느껴지더니 결국 나중에는 그 끔찍한 치폴라 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고 말았다. 치폴라라는 인물은 인간적으로 유달리 사악한 분위기를 풍기는 데다 불길하면서도 위태로워 보이는 것이 매우 인상적인 사람이었다.(염정용, 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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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앞에서 원문을 제시했었는데, 소설의 첫 문장 주어는 die Erinnerung, 즉 토레 디 베네레에 대한 기억이다. 그리고 두 번째 문장의 주어는 Ärger, Gereiztheit, Überspannung 등 세 개의 명사들이다. 기존의 네 역자는 모두 원문의 주어를 비롯한 문장 구조를 지켜 번역했는데, 염정용은 다른 번역 방식을 추구했다. 첫 문장에서는 토레 디 베네레라는 장소가 주어가 되면서 그곳과 관련한 기억은 상대적으로 뒤로 밀려난다. 두 번째 문장에서도 주어인 명사들을 풀어서 번역함으로써 이 단어들의 깊이, 강도가 훨씬 약해진다. 그리고 두 번째 문장 후반부에서는 관계절을 통해 치폴라라는 인물과 이 도시의 분위기 사이의 유사성이 설명되고 있는데, 역자는 이것을 이 인물의 성격을 설명하는 쪽으로 바꾸어 놓았다. 원문의 구조와 표현 방식을 존중하지 않고 우리말 표현 방식에 더 중점을 두고 번역한 것인데, 그래서 번역 소설이 아니라 한국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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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염정용은 가독성을 위해 문장을 짧게 끊어서 번역하기도 한다. 마술사 치폴라가 등장하여 말하기 시작하자 그가 말을 잘한다고 관중들이 칭찬하는 장면에서 서술자는 이탈리아 사람들은 말의 사회적 가치를 매우 존중한다며 이렇게 말한다. | ||
| + | Man spricht mit Vergnügen, man hört mit Vergnügen ― und man hört mit Urteil. Denn es gilt als Maßstab für den persönlichen Rang, wie einer spricht; Nachlässigkeit, Stümperei erregen Verachtung, Eleganz und Meisterschaft verschaffen menschliches Ansehen, weshalb auch der kleine Mann, sobald es ihm um seine Wirkung zu tun ist, sich in gewählten Wendungen versucht und sie mit Sorgfalt gestaltet.(680) | ||
| + | |||
| + | 그들은 유쾌하게 말하고 유쾌하게 듣는다. 그리고 들으면서 판단을 내린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어떻게 말하느냐는 개인의 수준을 판단하는 척도로 통하기 때문이다. 부주의하고 어설프게 말하면 경멸받는다. 우아하게 달변으로 말하면 인간적인 존경심을 얻는다. 그래서 이 왜소한 남자도 자신의 위력을 보여야 할 때는 즉시 나무랄 데 없는 어법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세심하게 다듬는 것이다.(염정용, 50) | ||
| + | |||
| + | |||
| + | 원문은 두 개의 문장으로 되어 있는데, 염정용은 6개로 나누어서 번역했다. 그로 인해 가독성은 올라갔지만 토마스 만 특유의 문체는 잘 느껴지지 않는다. 반면에 박종서와 지명렬은 장문으로 번역함으로써 작가의 문체를 반영하려 노력했는데, 가독성은 좀 떨어지는 문제를 노출하기도 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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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염정용의 번역서는 2000년대 들어서 이 소설을 다시 번역한 점, 독자층을 넓게 확보하기 위해 삽화를 삽입한 점, 가독성에 중점을 두고 우리말식으로 번역한 점, 그래서 외국 소설을 읽을 때의 낯섦이 아닌 한국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주는 점이 특징이라 하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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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3. 평가와 전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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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마리오와 마술사>는 1959년 박종서와 강두식에 의해 처음 번역 출판됐는데, 이들은 이 작품과 다른 작품들을 묶어 함께 소개하면서 토마스 만을 국내에 알리는 초석을 놓았다. 마찬가지로 1세대 독문학자인 지명렬도 번역에 가담하여 70년대에 번역서를 냈고, 이들 세 역자의 번역본은 이후 지속적으로 재출판되었다. 초창기 번역은 당시의 번역현황에 비추어볼 때 매우 양호하다고 할 수 있는데, 재출판의 과정에서 개선되는 경향은 크지 않은 것 같다. 한편 독문학 발전기인 1980년대 이후에 새로운 번역자에 의한 번역은 활발하지 않은 편이다. 그리고 토마스 만 전공자에 의한 번역이 없는 점도 특기할만하다. 다른 작품들과 함께 묶여 출판되는 여건상 이 작품에 대한 자세한 작품해설이 제공되지 않은 점, 지명렬 외에는 역자들이 번역 전략 또는 번역에 임하는 자세를 밝히지 않은 점도 지적하고 싶다. 토마스 만의 다른 작품 등 여러 번 번역된 작품의 경우 번역의 역사에서 모종의 발전이 관찰되곤 하는데, 이 작품의 경우 그렇지 않은 것 같아 아쉬움을 자아낸다. 앞으로는 토마스 만 전공자에 의해 작가의 문체를 살리면서도 가독성이 좋은 번역이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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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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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박종서(1959/1974): 마리오와 마술사. 정음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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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두식(1959/1973/2013): 마리오와 마술사. 문예출판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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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지명렬(1975/1985): 마리오와 마술사. 범우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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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임홍배(1998): 마리오와 마술사. 민음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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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염정용(2014): 마리오와 마술사. 인디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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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11일 (수) 03:36 기준 최신판
토마스 만(Thomas Mann, 1875-1955)의 소설
| 작가 | 토마스 만(Thomas Mann) |
|---|---|
| 초판 발행 | 1930 |
| 장르 | 소설 |
작품소개
1930년에 발표된 토마스 만의 중편소설이다. 토레 디 베네레라는 이탈리아의 해변가 휴양지에서 주인공 가족은 군중심리와 민족주의에서 야기된 불쾌한 작은 사건을 경험한 후에 서커스를 보러 간다. 서커스에서 치폴라라는 이름을 가진 곱사등이 마술사는 관객들을 차례차례 마술로 압도한다. 마술의 절정은 관객에게 최면을 걸고 심리전을 펴 그의 자유의지를 빼앗고 마술사의 명령에 복종케 해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하게 만드는 것이었는데, 안지올리에라 부인과 마리오에게서 그 최고조 상태에 이른다. 특히 마리오에게 내면의 비밀스런 사랑을 고백하고 환각 속에서 마술사를 연인으로 알고 키스하게 만들며 행복의 절정에 다다르는 장면을 연출하여 관객의 비웃음을 자아내는데 이에 최면에서 깨어난 마리오는 치폴라를 쏘아 죽인다. 이 작품은 환각과 심리적인 기만으로 군중을 현혹하는 치폴라를 통하여 당대의 이탈리아의 파시즘을 경고하고, 더 나아가 나치의 파시즘을 예견한 것으로 해석된다. 1959년 박종서에 의해 처음 번역되었다(정음사).
초판 정보
Mann, Thomas(1930): Mario und der Zauberer - Ein tragisches Reiseerlebnis. In: Velhagen und Klasings Monatshefte 8, 113-136.
<단행본 초판> Mann, Thomas(1930): Mario und der Zauberer. Berlin: S. Fischer.
번역서지 목록
| 번호 | 개별작품제목 | 번역서명 | 총서명 | 원저자명 | 번역자명 | 발행연도 | 출판사 | 작품수록 페이지 | 저본 번역유형 | 작품 번역유형 | 비고 |
|---|---|---|---|---|---|---|---|---|---|---|---|
| 마리오와 魔術師 | 選擇된 人間, 토니오 크뢰거 外 | 世界文學全集 19 | 토마스 만 | 朴鍾緖(박종서) | 1959 | 正音社 | 243-290 | 편역 | 완역 | 초판 | |
| 마리오와 魔術師 | 펠릭스 크룰의 告白, 幻滅, 토니오 크뢰거, 마리오와 魔術師 | 世界文學全集 ; 第1期 4 | 토마스 만 | 姜斗植(강두식) | 1959 | 東亞出版社 | 435-484 | 편역 | 완역 | ||
| 3 | 마리오와 마술사 | 간텐바인, 마리오와 마술사 | 新選世界文學全集 6 | 토마스 만 | 姜斗植(강두식) | 1969 | 啓蒙社 | 365-422 | 편역 | 완역 | |
| 4 | 마리오와 魔術師 | 選擇된 人間, 토니오 크뢰거 外 | 世界文學全集 38 | 토마스 만 | 박종서 | 1969 | 正音社 | 243-290 | 편역 | 완역 | 중판, 총서번호 19에서 38로 변화 |
| 5 | 마리오와 魔術師 | 토마스 만 短篇集 | 世界短篇文學大系 15 | 토마스 만 | 崔鉉(최현) | 1971 | 尙書閣 | 143-206 | 편역 | 완역 | |
| 6 | 마리오와 魔術師 | 펠릭스 크룰의 告白 外 | 世界文學大系 11 | 토마스 만 | 姜斗植(강두식) | 1971 | 世界文學社 | 435-484 | 편역 | 완역 | |
| 7 | 마리오와 魔術師 | 토마스 만 短篇集 | 文藝文庫 20 | 토마스 만 | 姜斗植(강두식) | 1973 | 文藝出版社 | 189-272 | 편역 | 완역 | 초판 |
| 마리오와 魔術師 | 토마스 만 短篇集 | 世界短篇文學全 12 | Thomas Mann | 池明烈; 李甲圭(지명렬; 이갑규) | 1974 | 汎潮社 | 166-238 | 편역 | 완역 | 초판 | |
| 9 | 마리오와 魔術師 | 토마스 만 中篇選 | 三中堂文庫 60 | 토마스 만 | 池明烈(지명렬) | 1975 | 三中堂 | 153-223 | 편역 | 완역 | |
| 10 | 마리오와 魔術師 | 토마스 만 短篇集 | 世界短篇文學全集 12 | Thomas Mann | 池明烈; 李甲圭(지명렬; 이갑규) | 1975 | 汎潮社 | 166-238 | 편역 | 완역 | 중판, 실린 작품 증가 |
| 11 | 마리오와 魔術師 | 異邦人, 마리오와 魔術師 | 世界靑春文學名作選 5 | 토마스 만 | 확인불가 | 1975 | 學園出版社 | 119-192 | 편역 | 완역 | 판권기에 75년 학원 7월호 부록이라 밝히고 있음 |
| 12 | 마리오와 魔術師 | 世界文學全集, 13 | 新選 世界文學全集 13 | 토마스 만 | 姜斗植(강두식) | 1976 | 三珍社 | 11-58 | 편역 | 완역 | |
| 13 | 마리오와 마술사 | 토니오 크레가 | Short book 4 | 토마스만 | 池明烈(지명렬) | 1977 | 汎潮社 | 166-238 | 편역 | 완역 | 초판, 1985년 중판 / 중판의 판권기에 따라 초판을 찾아냈으나 소장기관이 없어 실물을 확인하지 못함. 일부 정보는 중판에 따라 기입 |
| 14 | 마리오와 魔術師 | 마리오와 마술사, 간텐바인, 아담, 너는 어디 가 있었나 | 世界文學大全集 30 | 토마스 만 | 姜斗植(강두식) | 1980 | 太極出版社 | 11-58 | 편역 | 완역 | |
| 15 | 마리오와 魔術師 | 토마스 만 短篇集 | 世界短篇文學大系 15 | 토마스 만 | 崔鉉(최현) | 1980 | 尙書閣 | 143-206 | 편역 | 완역 | 작품(프리데만)과 연보가 추가된 중판 |
| 16 | 마리오와 魔術師 | 토니어 크뢰거 | 해외걸작단편집 5 | 토마스 만 | 강두식 | 1982 | 文藝出版社 | 189-272 | 편역 | 완역 | 초판과 다른 순서로 구성된 중판으로 2006년판까지 이 순서대로 작품이 구성되어 출판됨 |
| 17 | 마리오와 魔術師 | 世界中篇文學選集, 8 | 世界中篇文學選集 8 | 토마스 만 | 池明烈(지명렬) | 1983 | 汎潮社 | 101-174 | 편역 | 완역 | |
| 18 | 마리오와 마술사 | 토마스 만 단편선 | 범우사르비아문고 112 | 토마스 만 | 池明烈(지명렬) | 1985 | 汎友社 | 161-230 | 편역 | 완역 | 초판 |
| 19 | 마리오와 魔術師 | 토니어 크뢰거 | 文藝敎養選書 45 | 토마스 만 | 姜斗植(강두식) | 1986 | 文藝出版社 | 189-272 | 편역 | 완역 | 2006년판 판권기에 적힌 1987년 2판은 찾을 수 없음, 따라서 이 판본이 2판임이 유력함 / 책표지, 표제면과 (토니어 크뢰거) 본문에서의 (토니오 크뢰거) 저작 제목이 다름 |
| 20 | 마리오와 魔術師 | 選擇된 人間, 토니오 크뢰거 外 | 世界文學全集 38 | 토마스 만 | 朴鍾緖(박종서) | 1986 | 正音文化社 | 243-290 | 편역 | 완역 | 정음문화사의 초판 |
| 21 | 마리오와 마술사 | 트리스탄 | 호암명작신서 7 | 토마스 만 | 이영규 | 1987 | 호암출판사 | 225-284 | 편역 | 완역 | |
| 22 | 마리오와 마술사 | 마리오와 마술사 | 세계문학 5 | 토마스 만 | 확인불가 | 1990 | 시대평론 | 7-95 | 완역 | 완역 | |
| 마리오와 마술사 | 토니오 크뢰거, 트리스탄, 베니스에서의 죽음 | 세계문학전집 8 | 토마스 만 | 임홍배 | 1998 | 민음사 | 109-186 | 편역 | 완역 | 1998년도 초판 1쇄 발행 당시에는 '토니오 크뢰거, 트리스탄'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으나 대략 2003년부터는 '토니오 크뢰거, 트리스탄, 베니스에서의 죽음'으로 제목이 변경된 것으로 보임. 그 이후로는 이 제목으로 고정된 채 쇄를 거듭했기에 1쇄 당시의 제목이 아닌 본 제목으로 기록함 | |
| 24 | 마리오와 마술사 | 토마스 만 단편선 | 사르비아 총서 609 | 토마스 만 | 지명렬 | 2002 | 범우사 | 191-274 | 편역 | 완역 | 2판 |
| 25 | 마리오와 마술사 | 토니오 크뢰거 | 문예세계문학선 45 | 토마스 만 | 강두식 | 2006 | 문예출판사 | 195-278 | 편역 | 완역 | 3판 |
| 26 | 마리오와 마술사 | (생각의 깊이를 더해 주는) 괴테, 토마스 만, 니체의 명언들 | 토마스 만 | 윤순식 | 2009 | 누멘 | 86-87 | 편역 | 편역 | ||
| 마리오와 마술사 | 마리오와 마술사 | 클래식 레터북 시리즈 025 | 토마스 만 | 염정용 | 2014 | 인디북 | 7-110 | 편역 | 완역 | ||
| 28 | 마리오와 마술사 | 토마스 만 작품집 | 범우 세계 문학 작품집 시리즈 | 토마스 만 | 지명렬 | 2017 | 범우 | 17-115 | 편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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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비평
1. 번역 현황 및 개관
토마스 만이 1930년에 발표한 이 중편소설은 1929년 8월과 9월, 작가가 휴가 중에 해변의 흔들의자에서 집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휴가를 가서도 글을 쓰는 데 익숙해 있던 만은 당시 집필하던 대작 <요셉과 그 형제들>의 자료들을 갖고 가 집필하는 대신, 3년 전 이탈리아에서의 휴가 기억 외에는 어떤 자료도 필요하지 않은 작은 작품을 쓰기로 결심하고 이 작품을 썼다. 이 소설은 처음부터 유난히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작가의 주요 작품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고, 독일어 수업 교재로도 자주 이용된다. 이 소설의 초기 수용은 대체로 비정치적이었다가, 2차 대전 이후에는 파시즘과의 연관성 속에서, 즉 이 소설이 파시즘에 대한 분석을 제공한다는 가정하에 수용되었다. 작가 자신도 처음에는 정치적인 의도에서 이 작품을 쓴 것이 아니라고 했는데 1940년대에 가서는 “독재자에 의한 강간 경고”라고 정치적인 해석을 제시했다. 현재 이 소설은, 최면술로 군중을 현혹하고 기만하는 마술사 치폴라를 통해 당시 이탈리아의 파시즘을 경고하고, 나아가 나치의 파시즘을 예견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제 국내 번역 현황을 살펴보면, 2024년 7월 현재 총 28종의 번역서가 나와 있다. 초역은 1959년 3월 박종서에 의해 이루어졌으며(정음사), 같은 해 9월 강두식도 번역서를 출판했다(동아출판사). 이들 두 사람의 번역본은 1960년대에 총서번호를 달리하거나 출판사를 바꾸어 다시 출판되면서 이 작품의 국내 수용을 담당했다. 1970년대와 80년대에는 번역서 수가 9종과 8종으로 급격하게 늘어났는데, 새로운 번역자에 의한 것은 각각 2종과 1종뿐이다. 70년대에 최현과 지명렬이, 80년대에 이영규가 새롭게 번역서를 냈을 뿐 기존 역자들의 번역이 재출판된 것이다. 90년대 이후 새로운 번역자는 각각 98년과 2014년에 번역서를 낸 임홍배와 염정용이며, 이 시기의 번역서 또한 2종, 3종씩으로 7~80년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번역서가 출판되었다. 그래서 확인 불가 두 종과 편역서 한 종을 제외하고 완역은 7명의 번역자에 의해 25종이 나온 셈이다. 독일문학 1세대라 할 수 있는 강두식(9회), 지명렬(8회), 박종서(3회), 최현(2회)의 번역본이 이 소설의 국내 수용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으며, 90년대부터는 번역서 출판이 상대적으로 저조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중편소설이라는 이 작품의 특성상 <토마스 만 단편선> 속의 한 작품으로 출판된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 작품이 표제작으로 출판된 경우는 염정용의 번역서가 유일하다.
이하에서는 이 작품의 국내 초역인 박종서의 번역본과 국내 수용의 상당 부분을 담당한 강두식, 지명렬의 번역본 그리고 비교적 최근에 번역한 임홍배와 염정용의 번역서를 개별적으로 자세히 살펴보려 한다.
2. 개별 번역 비평
1) 박종서 역의 <마리오와 마술사>(1959/1974)
토마스 만이 국내에 번역 소개된 것은 1950년대 후반부터다. 1959년에 박종서, 박찬기, 강두식, 정경석이 토마스 만의 소설들을 번역 출판하면서 토마스 만이 국내 독자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박종서는 정음사 세계문학전집 38권을 통해 <마리오와 마술사>, <선택받은 사람>,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토니오 크뢰거>를 번역 출판했는데, 이 네 작품 모두 국내 초역이다. 토마스 만의 국내 소개 및 수용에 박종서가 작지 않은 역할을 담당했다고 할 수 있겠다. 박종서의 이 번역서에는 작가의 작품세계 전반에 대한 해설과 작품 연보가 실려 있는데, <마리오와 마술사>에 대해서는 “앞날의 정치적 활동을 예시하는 듯한 작품”(박종서 1974, 7)으로 평가하면서 작가가 이 작품을 “파시즘의 심리학”이라고 말했다고 소개한다.
박종서 번역의 특징은 토마스 만 특유의 장문의 문체를 살려 번역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단어들을 빠짐없이 번역하여, 번역문의 분량이 다른 역자들의 그것보다 긴 것도 특징이다. 마술사 치폴라가 공연 중에 자신의 의지를 완전히 배제하고 공동체, 즉 관객의 의지를 그대로 실행에 옮기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 말하면서 그런 자기 일이 매우 힘들다고 강조하는 다음 부분을 살펴보자.
Die Fähigkeit, sagte er, sich seiner selbst zu entäußern, zum Werkzeug zu werden, im unbedingtesten und vollkommensten Sinne zu gehorchen, sei nur die Kehrseite jener anderen, zu wollen und zu befehlen; es sei ein und dieselbe Fähigkeit; Befehlen und Gehorchen, sie bildeten zusammen nur ein Prinzip, eine unauflösliche Einheit; wer zu gehorchen wisse, der wisse auch zu befehlen, und ebenso umgekehrt; der eine Gedanke sei in dem anderen einbegriffen, wie Volk und Führer ineinander einbegriffen seien, aber die Leistung, die äußerst strenge und auftreibende Leistung, sei jedenfalls seine, des Fühers und Veranstalters, in welchem der Wille Gehorsam, der Gehorsam Wille werde, dessen Person die Geburtstätte beider sei, und der es also sehr schwer habe.[1]
자기 자신을 단념해버리고 남의 뜻을 받은 도구가 되어, 어디까지나 절대적이며 완전한 의미에 있어서 남한테 복종하는 능력은 의지로써 명령하는 다른 한 쪽 능력의 일면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 두 종류의 능력은 결국 하나이며, 명령과 복종은 서로 합쳐서 한 개의 원리, 헤칠수 없는 통일체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복종할 수 있는 사람, 다시 말하면 그런 사람은 명령할 수 있는 자이며, 명령할 수 있는 자는 복종할 수 있는 자에 지나지 않는다. 마치 국민과 그 지도자가 둘인 동시에 하나인 것처럼, 한 쪽 사상이 딴 사상 속에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극도로 곤란하고 신심을 소모하는 실천은 어떻든간에 지도자이며 주재자(主宰者)로서의 임무이며, 그러한 지도자일수록 의지는 복종이고 복종은 의지가 되는 것이며, 의지와 복종이 생겨나는 곳은 바로 그러한 인물이기 때문에, 그의 생활은 사실 괴롭기 한이 없는 것이다.(박종서 1974, 272)
토마스 만이 세미콜론을 사용하여 문장을 길게 가져갔다면 박종서는 “-이며”를 사용하여 원문의 호흡과 문체를 존중하면서 긴 문장을 만들어냈다. 이런 장문들로 인해 가독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국내 초역이면서도 당시의 번역 현황에 비추어 볼 때 번역이 매우 양호한 편이고, 노벨상 작가이자 독일의 대문호 특유의 문체를 엿볼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번역자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박종서의 번역은 이후 60년대와 80년대에도 재출판되면서 이 작품의 국내 수용에 한 축을 담당했다.
2) 강두식 역의 <마리오와 마술사>(1959/1973/2013)
강두식의 번역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총 9회로 가장 많이, 꾸준히 출판되면서 가장 많이 읽힌 번역본이 아닐까 생각된다. 여기서는 1973년에 제1판 1쇄가 나온 문예출판사의 2013년도 제3판 재쇄를 비평에 참고하였다. <토니오 크뢰거>를 대표작품으로 내건 <토마스 만 단편선>에서 역자는, 작가가 “무솔리니 통치 시대의 이탈리아 체류에서 얻은 소재를 특별한 기교 없이 써내려간 여행기와 같은 인상을 주는 이 작품은 당시 이탈리아에 떠돌던 공포 정치의 분위기를 너무나도 분명하게 포착”한 것으로, “우중을 희롱하는 독재 정치에 대한 상징”(강두식, 272-273)이라고 해설한다. 작품에 대한 이런 특성 규정 및 해설이 민주화를 열망하는 국내 상황과 맞물리면서 지속적인 출판으로 이어지지 않았나 생각된다.
강두식의 번역은 전반적으로 원문의 상황 또는 분위기를 잘 파악하여 전달하는 편이다. 소설의 끝부분에서 마술사 치폴라가 마리오에게 최면을 걸어 마술사를 실베스트라로 착각하여 키스하게 만드는 장면을 살펴보자.
Wenn ich mich an ihre Stelle versetze, siehst du, und die Wahl habe zwischen so einem geteerten Lümmel, so einem Salzfisch und Meeresobst ― und einem Mario, einem Ritter der Serviette, der sich unter den Herrschaften bewegt, der den Fremden gewandt Erfrischungen reicht und mich liebt mit wahrem, heißem Gefühl, ― meiner Treu, so ist die Entscheidung meinem Herzen nicht schwer gemacht, so weiß ich wohl, wem ich es schenken soll, wem ganz allein ich es längst schon errötend geschenkt habe. Es ist Zeit, daß er’s sieht und begreift, mein Erwählter! Es ist Zeit, daß du mich siehst und erkennst, Mario, mein Liebster ... Sage, wer bin ich?(709; 밑줄 필자 표기)
내가 만일 그 처녀라면 말이오, 알겠소. 한 작자는 먹칠한 듯한 불한당, 바다의 과실이고―또 한 분, 바로 이 마리오 씨, 손님들 사이를 오락가락하시며, 외국 손님들에게 솜씨 있게 마실 것을 돌리시는 냅킨의 기사 양반, 더구나 저를 진실하고 열렬한 마음으로 사랑해주시는 분―저의 잊을 수 없는 분, 이 둘 중의 누구를 택할까, 어떤 분에게 사랑을 바칠까, 그런 것쯤은 저도 잘 알고 있어요. 벌써 오래전부터 저는 부끄러우면서도 한 분에게 이미 제 마음을 바치고 있었어요. 제 마음을 짐작하시고 생각해주실 때가 되지 않았어요, 여보세요! 저를 보시고 본심을 알아줄 때가 되지 않았어요. 네, 마리오 씨, 나의 사랑... 말해보세요, 저를 아시겠어요?(강두식, 263-264)
실베스트라를 짝사랑하는 마리오의 마음을 간파한 마술사는 마리오를 무대로 불러 위와 같은 말들로 현혹한다. 원문의 첫 문장은 조건, 가정의 의미의 wenn 접속사로 시작하는 비교적 긴 문장으로 첫 번째 일인칭 대명사 ich와 mich는 마술사 자신이고 두 번째부터 ich와 mich는 실베스트라이다. 마술사는 마리오에게 말하는 도중 은연중에 실베스트라로 화하여 그녀가 마리오에게 직접 말하는 것처럼 꾸민다. 강두식은 한 문장 안에서 일인칭 대명사가 지칭하는 이가 달라지는 이런 상황을 잘 인지하여 번역함으로써 원문의 의미와 분위기를 잘 전달하였다. 다만 마리오의 연적이라 할 수 있는 또 다른 청년, 원문에는 “einem geteerten Lümmel, so einem Salzfisch und Meeresobst”로 되어 있는데, 이를 “먹칠한 듯한 불한당, 바다의 과실”로 번역한 점이나 –임홍배는 이를 “소금에 절인 생선인지 짠물에 담근 과일인지 모를 그런 까무잡잡한 건달”(임홍배, 183)로 번역함- 긍정적 뉘앙스의 “아아” 정도의 감탄사인 “meiner Treu”를 “저의 잊을 수 없는 분”으로 번역한 점, 그리고 so 이하의 부문장 부분에서 원문의 순서를 따르지 않은 점들도 발견되지만, 원문의 복잡한 상황을 비교적 잘 전달하여 잘 읽히는 편이다.
강두식은 상황 전달을 중시하다 보니 때로는 화용적 맥락을 많이 고려한 번역을 보여준다. 위의 번역문에서 마리오는 “한 분”으로, 그의 연적은 “한 작자”로 번역되었는데, 원문에는 이러한 구분이 없다. 마술사가 산수 문제를 푸는 마술을 보여주기 위해 숫자를 받아써 줄 청년 두 명을 무대로 불러냈는데, 그들이 자기들은 글씨를 쓸 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을 “쓸 줄 모르는뎁쇼”, “저도 못하는뎁쇼”(강두식, 222)라고 번역한 것도 그 한 예라 하겠다. 그리고 일인칭 서술자가 이탈리아의 휴양지 호텔에서 자기 가족이 부당하게 방을 옮기게 만든 한 공작부인에 대해 말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럴 때면 입술을 산호처럼 새빨갛게 칠한 공작 부인이 아기작거리는 걸음걸이로 나타나시는 것을 볼 수도 있었다. 영국 여자로 하여금 보살피게 한 귀염둥이 어린애들을 돌아보겠다고 나오시는 것인데, 우리들, 전염이 될까 무서운 집안이 곁에 있는 줄은 꿈에도 생각 못하신다.”(강두식, 197) 여기서도 “나타나시는”, “나오시는”, “못하신다” 같은 표현은 역자가 서술자의 감정에 이입되어 번역했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이 또한 맥락을 고려한 것으로 독자에게 미소를 짓게 만든다. 강두식의 번역본에서는 1973년 이 번역본 초판 당시의 시대적, 문화적 배경에 따른 어휘들이 종종 발견된다. “여편네 소견”(194), “병신”(218), “계집아이”(241) 등의 어휘들이 그것이다. 특히 병신이라는 단어는 매우 자주 사용되는데, 당시에는 이런 식의 낮잡아 이르는 말들이 일반적이었을지라도 판을 달리하여 출판될 때 시대적, 문화적 배경에 맞게 순화되었으면 어땠을지 생각해 본다.
지명렬의 <마리오와 마술사>는 1974년 처음 출판된 후 2017년까지 총 8회 출판되었는바, 강두식의 번역본과 함께 이 소설의 국내 수용에 한 축을 담당한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서는 1985년 초판 1쇄가 나온 범우사의 1992년 초판 3쇄를 비평에 참고했다. 지명렬은 토마스 만 자신이 “언어에 대한 국민적 책임을 절감하고 단어 하나 문장 하나하나에 지대한 관심과 주의를 기울여 조금도 소홀히 하지 않았”(지명렬, 11)다며, 그렇기에 번역에 더욱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번역에 임하는 역자의 자세를 밝힌 점이 눈에 띈다. 그럼 소설의 첫 장면에 대한 번역을 살펴보자.
Die Erinnerung an Torre di Venere ist atmosphärisch unangenehm. Ärger, Gereiztheit, Überspannung lagen von Anfang an in der Luft, und zum Schluß kam dann der Choc mit diesem schrecklichen Cipolla, in dessen Person sich das eigentümlich Bösartige der Stimmung auf verhängnishafte und übrigens menschlich sehr eindrucksvolle Weise zu verkörpern und bedrohlich zusammenzudrängen schien.(658)
톨레 디 베네레의 추억에는 어쩐지 전체적으로 불쾌한 것이 있다. 분노, 흥분, 과도한 긴장, 이런 것들이 처음부터 주변 분위기에 떠돌고 있어서 결국에는 그 무서운 치폴라의 사건이 폭발하고 말았던 것이다. 치폴라라는 인물 속에는 그 도시의 분위기에 잠겨 있었던 특이하게 악독한 무엇인가가 숙명적으로, 그러나 인간적으로는 대단히 인상 깊게 상징되어 겁날 만큼 압축되어 있었던 것 같다.(지명렬, 161)
소설의 이 첫 문장들은 이탈리아의 휴양지 토레 디 베네레에서 마술사 치폴라를 둘러싸고 벌어진 사건을 회상하면서 서술된다는 사실을 던져주면서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런데 표현이 매우 압축적이어서 번역이 쉽지 않은 편이다. 지명렬은 두 번째 문장의 처음 세 명사를 “분노, 흥분, 과도한 긴장”으로 단어 그대로 직역했는데, “짜증스럽고 자극적이며 지나치게 긴장된”(109)으로 번역한 임홍배나 “짜증나고 긴장되는 분위기”(9)로 번역한 염정용의 번역 방식과 비교된다. 그리고 평범하지 않았던 휴양지의 분위기를 지배하는 무엇인가가 치폴라라는 인물 속에 압축되어 있다가 결국 터지고 말았다고 말하는 문장 후반부 관계절 번역도 직역을 추구하면서 의미 전달을 잘해준다. 이는 “치폴라라고 하는 이 인간의 이면에는 그 독특한 분위기 속에 감돌고 있던 이루 말할 수 없이 잔악스러운 것이, 숙명적이면서도 한편 인간적으로는 아주 인상 깊이 상징되고, 위협적으로 압축되어 있는 것 같았다.”(박종서, 245)나 “그 치폴라라는 인간의 성질 속에는 그 도시의 분위기가 지니고 있었던 특이한, 악독한 그 무엇이 숙명적으로, 하지만 동정심을 가지고 본다면 대단히 인상 깊게 드러나 있었고, 겁이 나도록 압축되어 있었다.”(강두식, 189) 보다 원문을 가장 잘 이해하여 전달해준다고 하겠다. 충격이라는 의미의 단어 Choc를, 즉 치폴라로 인해 받은 충격을 “사건”으로 번역한 것만 원문과 조금 다른 예외라 하겠다.
지명렬은 가급적 문자 그대로의 직역을 추구하기에 화용적 맥락을 중시한 강두식의 번역과 차이를 보인다. 강두식은 앞에서 마리오를 현혹하던 장면에서 마리오와 그의 연적을 “한 분”, “한 작자”로 번역했는데, 지명렬은 “한편은”, “또 한편은”(227)으로 번역했다. 무대로 나간 두 청년이 글을 쓸 줄 모른다고 말할 때도 지명렬은 “쓸 줄 모르는데요.”, “나도 못 쓰는데요.”(192)라고 다소 밋밋하게 번역했다. 그리고 공작부인에 대한 부분에서도 강두식은 서술자에게 감정이입을 하여 비꼬는 투로 번역했는데, 지명렬의 번역에서는 그런 점이 전혀 엿보이지 않는다.[2]
또한 강두식 번역에서 자주 등장한 낮잡아 이르는 표현들이 지명렬의 번역에서는 “여자”(166), “불구자”(189), “딸아이”(208)로 순화되어 나타난다. 딱 한 번 곱사등이 마술사 치폴라에 대해 “병신 특유의”(183)라는 표현을 쓰긴 했지만, 강두식 번역에서 “병신”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했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지명렬은 토마스 만의 “언어와 표현의 정교함”(지명렬, 11)을 십분 인지하면서 직역을 통해 원문에 충실한 번역을 시도했다 하겠다.
임홍배의 <마리오와 마술사>는 1998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권에 토마스 만의 다른 단편들과 함께 실려 나왔다. 기존의 역자들은 이 작품의 부제인 Ein tragisches Reiseerlebnis에 주목하지 않았는데, 임홍배가 처음으로 “어느 비극적인 여행 체험기”라고 번역하여 제목 아래에 병기했다. 임홍배는 각주 형식의 역주를 통해 다른 역자들보다 훨씬 많은, 작품 이해에 도움이 되는 정보들도 제공한다. 예를 들어, 마술사가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 이탈리아어 단어들로 말장난을 해서 관중을 웃기는 장면에서 원문에는 해당 이탈리아어가 제시되어 있다. 다른 역자들은 이 이탈리아어 자체를 번역에 넣지 않고 그냥 넘어간 반면 임홍배는 그것들을 적어주고 그 단어가 지닌 이중적 의미를 역주를 통해 알려주어 그것이 왜 말장난인지 알게 해준다.
임홍배의 번역본은 가독성이 매우 좋은 유려한 번역을 선사한다. 휴양지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 때문에 계속 머물 것인지 떠날 것인지, 둘 사이에서 거듭 고민하다가 결국 머물게 된 서술자의 다음 진술을 살펴보자.
Um alles zu sagen: Wir blieben auch deshalb, weil der Aufenthalt uns merkwürdig geworden war, und weil Merkwürdigkeit ja in sich selbst einen Wert bedeutet, unabhängig von Behagen und Unbehagen. Soll man die Segel streichen und dem Erlebnis ausweichen, sobald es nicht vollkommen danach angetan ist, Heiterkeit und Vertrauen zu zeugen? Soll man >abreisen<, wenn das Leben sich ein bißchen unheimlich, nicht ganz geheuer oder etwas peinlich und kränkend anläßt? Nein doch, man soll bleiben, soll sich das ansehen und sich dem aussetzen, gerade dabei gibt es vielleicht etwas zu lernen.(669)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그곳에 계속 머물러 있었던 것은 이 휴양지가 신기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신기함이란 편하든 불편하든 상관없이 그 자체로 어떤 가치를 의미하는 것이다. 어떤 체험이 완벽하게 유쾌함과 신뢰감을 주지는 않을 것 같다고 해서 대뜸 돛을 내리고 체험을 회피해야 옳을까? 인생에서 다소 섬뜩하고 꼭 편하지만은 않은 일이 벌어진다고 해서, 다소 괴롭거나 속상한 일이 생긴다고 해서 인생을 <떠나는> 것이 옳을까? 그럴 수는 없다. 그대로 머물러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인생을 구경해야 하고, 인생을 향해 자신을 드러내 보여야 한다. 그래야만 뭔가 배울 게 생기는 것이다.(임홍배, 125-126)
어떤 마적인 힘의 유혹에 빠져 계속 머물 것인지 아니면 곧장 떠날 것인지, 둘 사이에서 고민하는 주인공의 상황이 –이는 토마스 만 특유의 모티프로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의 아센바흐와 <마의 산>의 한스 카스토르프도 같은 고민에 빠져서 갈등한다- 이 작품에서도 나타나는데, 그런 원문의 내용, 서술자의 고민이 고스란히 느껴지기에 독자는 작품세계에 빠져 독서하게 된다. 그런데 원문과 번역문을 좀 자세히 들여다보면 번역문의 문장 개수가 원문의 그것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장을 짧게 나누어 번역함으로써 가독성을 높인 것인데, 토마스 만 특유의 호흡이 긴 장문의 문체를 느낄 수 없는 점이 아쉽게 느껴진다. 문체를 살리면서 가독성도 높이는 번역이 절대 쉽지 않음도 실감하게 된다.
임홍배의 번역본은 전반적으로 매우 우수한데, 마리오가 마술사를 실베스트라로 착각하여 키스하는, 앞에서 인용했던 장면 번역에서 작지 않은 실수를 드러낸다.
이보라구, 한쪽에는 소금에 절인 생선인지 짠물에 담근 과일인지 모를 그런 까무잡잡한 건달이 있고, 또 한쪽에는 마리오처럼 냅킨 시중까지 들어주는 기사님이 있네. 그 기사는 뭇 신사들 사이에서 움직이고, 외국인들에게 솜씨 있게 신선한 음식을 날라다 주며, 또 진정으로 뜨거운 감정으로 사랑한단 말일세. 내가 만일 실베스트라의 입장에서 둘 중에 한 사람을 고른다면, 여보게, 어렵지 않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결정을 내릴 수 있을걸세. 내 마음을 누구에게 바쳐야 할지 잘 알고 있지. 사실은 벌써 오래전부터 오직 한쪽 남자에게만 얼굴을 붉히며 마음을 바쳐왔단 말일세. 바로 그대가 선택되었으니, 이제 이 마음을 알아주고 잡아줄 때가 되었네.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누구인지 알아볼 때가 되었다구, 마리오, 내 사랑!...... 말해 봐, 내가 누구지?(임홍배, 183-184)
앞에서 말한 것처럼 마술사는 위의 말들로 마리오를 현혹하는바, 은연중에 실베스트라로 화하여 그녀가 마리오 자신에게 말하는 것으로 혼동하게 만든다. 원문에서 처음 말하는 사람은 마술사 자신이지만 어느 순간 실베스트라가 마리오에게 말하는 것처럼 전환한 것이다. 그런데 임홍배는 계속해서 마술사가 마리오에게 말하는 것으로 하다가 마지막에 가서만 실베스트라가 말하는 방식으로 번역했다. 그런데 여기서도 “마리오, 내 사랑!...... 말해 봐, 내가 누구지?”라고 말하는 화자의 어투는 실베스트라 보다는 마술사에 가깝다.
임홍배의 번역본은 소설의 부제를 빠트리지 않고 유려한 문장으로 번역한 장점이 있는가 하면 중요한 장면에서 상황 전달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오점도 보여준다.
염정용의 <마리오와 마술사>는 이 작품을 표제작으로 하여 <베네치아에서의 죽음>과 묶여 인디북 출판사의 “클래식 레터북 시리즈” 025번으로 2014년에 나왔다. 이 번역서에는 내용 이해에 도움을 주려는 의도로 보이는 여러 장의 삽화가 삽입되어 있는데, 독일문학은 무겁고 어렵다고 생각하는 일반 독자나 신세대 독자들에게 좀 더 다가가기 위한 시도로 이해된다. 그런 의도 때문인지 전문적인 작품해설이나 작가 연보 대신에 역자 후기를 통해 두 작품에 대한 간략한 소개만 제공한다.
이 시리즈, 이 번역서의 이런 특성은 자연스럽게 가독성을 가장 우선시하는 번역으로 이어진다. 소설의 첫 문장들에 대한 번역을 살펴보자.
토레 디 베네레는 기억 속에 불쾌한 느낌으로 남아 있는 곳이다. 처음부터 어쩐지 짜증나고 긴장되는 분위기가 느껴지더니 결국 나중에는 그 끔찍한 치폴라 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고 말았다. 치폴라라는 인물은 인간적으로 유달리 사악한 분위기를 풍기는 데다 불길하면서도 위태로워 보이는 것이 매우 인상적인 사람이었다.(염정용, 9)
앞에서 원문을 제시했었는데, 소설의 첫 문장 주어는 die Erinnerung, 즉 토레 디 베네레에 대한 기억이다. 그리고 두 번째 문장의 주어는 Ärger, Gereiztheit, Überspannung 등 세 개의 명사들이다. 기존의 네 역자는 모두 원문의 주어를 비롯한 문장 구조를 지켜 번역했는데, 염정용은 다른 번역 방식을 추구했다. 첫 문장에서는 토레 디 베네레라는 장소가 주어가 되면서 그곳과 관련한 기억은 상대적으로 뒤로 밀려난다. 두 번째 문장에서도 주어인 명사들을 풀어서 번역함으로써 이 단어들의 깊이, 강도가 훨씬 약해진다. 그리고 두 번째 문장 후반부에서는 관계절을 통해 치폴라라는 인물과 이 도시의 분위기 사이의 유사성이 설명되고 있는데, 역자는 이것을 이 인물의 성격을 설명하는 쪽으로 바꾸어 놓았다. 원문의 구조와 표현 방식을 존중하지 않고 우리말 표현 방식에 더 중점을 두고 번역한 것인데, 그래서 번역 소설이 아니라 한국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든다.
염정용은 가독성을 위해 문장을 짧게 끊어서 번역하기도 한다. 마술사 치폴라가 등장하여 말하기 시작하자 그가 말을 잘한다고 관중들이 칭찬하는 장면에서 서술자는 이탈리아 사람들은 말의 사회적 가치를 매우 존중한다며 이렇게 말한다.
Man spricht mit Vergnügen, man hört mit Vergnügen ― und man hört mit Urteil. Denn es gilt als Maßstab für den persönlichen Rang, wie einer spricht; Nachlässigkeit, Stümperei erregen Verachtung, Eleganz und Meisterschaft verschaffen menschliches Ansehen, weshalb auch der kleine Mann, sobald es ihm um seine Wirkung zu tun ist, sich in gewählten Wendungen versucht und sie mit Sorgfalt gestaltet.(680)
그들은 유쾌하게 말하고 유쾌하게 듣는다. 그리고 들으면서 판단을 내린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어떻게 말하느냐는 개인의 수준을 판단하는 척도로 통하기 때문이다. 부주의하고 어설프게 말하면 경멸받는다. 우아하게 달변으로 말하면 인간적인 존경심을 얻는다. 그래서 이 왜소한 남자도 자신의 위력을 보여야 할 때는 즉시 나무랄 데 없는 어법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세심하게 다듬는 것이다.(염정용, 50)
원문은 두 개의 문장으로 되어 있는데, 염정용은 6개로 나누어서 번역했다. 그로 인해 가독성은 올라갔지만 토마스 만 특유의 문체는 잘 느껴지지 않는다. 반면에 박종서와 지명렬은 장문으로 번역함으로써 작가의 문체를 반영하려 노력했는데, 가독성은 좀 떨어지는 문제를 노출하기도 했다.
염정용의 번역서는 2000년대 들어서 이 소설을 다시 번역한 점, 독자층을 넓게 확보하기 위해 삽화를 삽입한 점, 가독성에 중점을 두고 우리말식으로 번역한 점, 그래서 외국 소설을 읽을 때의 낯섦이 아닌 한국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주는 점이 특징이라 하겠다.
3. 평가와 전망
<마리오와 마술사>는 1959년 박종서와 강두식에 의해 처음 번역 출판됐는데, 이들은 이 작품과 다른 작품들을 묶어 함께 소개하면서 토마스 만을 국내에 알리는 초석을 놓았다. 마찬가지로 1세대 독문학자인 지명렬도 번역에 가담하여 70년대에 번역서를 냈고, 이들 세 역자의 번역본은 이후 지속적으로 재출판되었다. 초창기 번역은 당시의 번역현황에 비추어볼 때 매우 양호하다고 할 수 있는데, 재출판의 과정에서 개선되는 경향은 크지 않은 것 같다. 한편 독문학 발전기인 1980년대 이후에 새로운 번역자에 의한 번역은 활발하지 않은 편이다. 그리고 토마스 만 전공자에 의한 번역이 없는 점도 특기할만하다. 다른 작품들과 함께 묶여 출판되는 여건상 이 작품에 대한 자세한 작품해설이 제공되지 않은 점, 지명렬 외에는 역자들이 번역 전략 또는 번역에 임하는 자세를 밝히지 않은 점도 지적하고 싶다. 토마스 만의 다른 작품 등 여러 번 번역된 작품의 경우 번역의 역사에서 모종의 발전이 관찰되곤 하는데, 이 작품의 경우 그렇지 않은 것 같아 아쉬움을 자아낸다. 앞으로는 토마스 만 전공자에 의해 작가의 문체를 살리면서도 가독성이 좋은 번역이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박종서(1959/1974): 마리오와 마술사. 정음사.
강두식(1959/1973/2013): 마리오와 마술사. 문예출판사.
지명렬(1975/1985): 마리오와 마술사. 범우사.
임홍배(1998): 마리오와 마술사. 민음사.
염정용(2014): 마리오와 마술사. 인디북.
- 각주
- ↑ Thomas Mann(1990): Mario und der Zauberer. Ein tragisches Reiseerlebnis. In: Thomas Mann. Gesammelte Werke in dreizehn Bänden. Vol. 8. Frankfurt a. M.: Fischer Taschenbuch Verlag, 691-692. 이하에서는 본문에 쪽수를 표시한다.
- ↑ 지명렬의 번역은 다음과 같다. “그럴 때면 입술을 산호같이 빨갛게 칠해서 돋보이게 한 대공 부인이 우아하게 발을 디디며 걸어 나오는 것을 곧잘 보았다. 영국 여자에게 보육을 맡기고 있는 사랑하는 아기의 모습을 보러 나오는 것인데, 우리 가족 일행이 바로 옆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