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떠오르는 생각 (Nachtgedanken)"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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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 밤중의 상념 || 모든 이별에 앞서가라 - 독일대표 시선 || 창비세계문학 91 || 하인리히 하이네 || 최연숙 || 2023 || 창비 || 82-84 || 편역 || 완역 ||  
 
| 7 || 밤중의 상념 || 모든 이별에 앞서가라 - 독일대표 시선 || 창비세계문학 91 || 하인리히 하이네 || 최연숙 || 2023 || 창비 || 82-84 || 편역 || 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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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번역 현황 및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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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네의 시 <밤에 떠오르는 생각>은 시대 비판적·풍자적 시들을 묶은 연작 <시대시>(Zeitgedichte)의 마지막 시로 1844년 <신시집>(Neue Gedichte>에 실려 처음 발표되었다. 한국에서 <신시집>은 1989년 김수용에 의해 단 한 차례 완역되었을 뿐이나, <밤에 떠오르는 생각>은 2025년 현재까지 최소 일곱 명의 역자에 의해 번역되었다. <신시집>에 실린 작품 다수가 이미 다양한 하이네 시선집에 수록되어 여러 차례 소개된 것처럼 <밤에 떠오르는 생각>도 대부분 이런 경로로 국역되었다. 초역은 1965년 이동일의 번역 <밤이면>이다. 1920년대부터 한국에서 하이네 시가 다수 소개된 것을 고려할 때, 초역이 늦은 편이다. 초역 이후 한동안 새 번역이 없다가 1975년에서야 시인이자 독문학자인 김광규에 의해 재번역되었다. 이후 짜깁기식 번역이 여러 차례 나오기도 했으나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던 이 시는 1988년 김남주 시인의 번역시집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에 <밤에 나는 생각하네>라는 제목으로 실리며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이외에도 1987년 시인이자 아동문학가인 김명수도 이 시의 번역을 시도했고, 1989년 하이네를 전공한 독문학자 김수용이 <신시집>을 국내 최초로 완역함으로써 비로소 원전에 충실한 번역본이 나오게 되었다. 80년대 후반 이렇게 세 종이나 새 번역이 출판된 것은 하이네의 정치시가 소개되기 어려웠던 군사정권 하의 엄혹한 분위기가 87년 민주 항쟁으로 완화되었던 덕분일 것이다. <신시집>이 완역되기도 했고 정치시에 대한 관심도 퇴조하면서 그 뒤로 30년 넘게 새로운 번역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2022년에서야 독문학자 정명순이 시선집 <독일시독일서정>을 내면서 오랜만에 새로운 번역을 시도했고, 1년 뒤 독문학자 임홍배가 역시 독일시선집 <모든 이별에 앞서가라>(2023)에서 하이네의 대표시 중 하나로 이 시를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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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원제 “Nachtgedanken”은 ‘밤의 상념’ 혹은 ‘한밤의 생각’이라는 뜻의 비교적 일상적인 어휘이지만, 한국어로는 제각기 다르게 번역되었다. 이동일의 초역에서는 <밤이면>, 김광규는 <밤에 떠오르는 생각>, 김명수는 <밤생각>, 김남주는 <밤에 나는 생각하네>, 김수용은 <밤의 생각>, 정명순은 <밤의 상념>, 임홍배는 <밤중의 상념>이라고 제목을 옮겼다. 이외에도 70년대 중후반에 <야사(夜思)>라는 제목으로 번역되기도 했다. 제목은 다양하나 정확성 면에서 큰 차이가 없으므로 전체 개관에서만 표준 제목을 따르고 개별 번역비평에서는 역자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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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떠오르는 생각>은 하이네의 시 중에서도 소박하고 일상적인 어휘로 이루어져 있으며, 구문도 단순하고 사용된 상징이나 기교도 적은 편이다. 운율은 4음보 약강격에 쌍운(aabb)을 취하며 속마음을 덤덤하게 토로하는 어조이다. 또 시어의 반복이 많으며 이를 통해 특정한 효과를 낸다. 개별 번역 비평에서는 이러한 시의 형식적 특징이 어떻게 번역되어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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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시적 화자가 독일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가 눈여겨봐야 할 점이다. 주지하다시피 하이네는 망명 생활 중에 독일의 상황을 비판 · 풍자하는 시를 다수 남겼으며, 독일에 대한 향수를 토로하는 시를 쓰기도 했다. <밤에 떠오르는 생각>에서도 12년 동안이나 고국에 돌아가지 못하여 어머니와 생이별 상태에 놓여 있는 시적 화자는 독일에 대해 양가적 감정을 내비친다. 특히 “참나무와 보리수”라는 독일의 전통적 상징과 함께 독일의 지속성과 튼튼함이 강조되는 6연에서 이 감정은 매우 모호하게 드러난다. 우선 이것은 독일에 대한 시적 화자의 그리움을 표현한 것일 수 있다. 비슷한 주제를 다룬 하이네의 다른 시 <객지에서>(In der Fremde)에서 시적 화자는 이렇게 노래한다. “Ich hatte einst ein schönes Vaterland./Der Eichenbaum/Wuchs dort so hoch”<ref>Heinrich Heine(1972): Werke und Briefe in zehn Bänden. Bd. 1, Berlin und Weimar: Aufbauverlag, 277. (http://www.zeno.org/nid/20005024749) (최종확인일: 2025.09.02.)</ref>(한때 나는 아름다운 조국이 있었노라./참나무가/거기서 드높이 자랐고). 여기서 참나무는 시적 화자가 떠올리는 독일의 대표적인 아름다운 정경이다. 그렇다면 <밤에 떠오르는 생각> 6연에서 “참나무”가 자라는 독일은 긍정적인 대상, 그리움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러나 <밤에 떠오르는 생각>과 함께 <시대시>에 실린 다른 시 <안심하시오>(Zur Beruhigung)에서 “참나무”와 “보리수”는 반역도 혁명도 일으킬 깜냥이 없는 그저 우직하고 순종적이기만 한 게르만인들의 상징으로서 부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그렇다면 불과 몇 편 앞에서 이런 은유를 읽은 독자는 <밤에 떠오르는 생각>에서도 6연을 독일에 대한 시적 화자의 냉소적 아이러니의 표현으로 읽을 수 있다. 그러면 6연은 늙어가는 어머니와 달리 건재하기만 한 독일, 수많은 동지를 피 흘리게 했으나 여전히 변함없는 독일을 비꼬는 말로 읽힌다. 이제 개별 번역의 전반적인 특징을 살펴보면서 시적 화자가 독일에 대해 갖는 태도를 각 역자들이 어떻게 전달하는지 살펴보겠다. 원전 번역이 아닌 번역도 번역사적 중요성을 감안해 번역비평에 포함시켰음을 미리 일러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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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개별 번역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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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동일 역의 <밤이면>(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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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초역인 이동일 역은 1965년 하이네 시선집 <로오렐라이>(성문사)에 발표되었다(66-67쪽). 역자에 대한 정보가 책에 실려 있지 않아 이 번역이 원전 번역인지는 확실치 않다. 시선집 구성이 하이네의 대표 시집 순을 따른다는 점에서(1부는 <노래책>, 2부는 <신시집>, 3부는 <로만체로>, 4부는 <최후의 시집>) 나름의 전문성을 자랑하며, 해설에서 역자가 한국에서 당시까지 가장 많은 하이네 시를 수록한 번역서라고 자부하지만, 동일한 역자의 이름으로 같은 해, 같은 출판사에서 <괴에테시완역전집>과 <바이런 시 전집>이 출간된 정황으로 보아 원전 번역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하이네 시선집 <로오렐라이>는 이후 <장미의 기도>, <낙엽지는 오솔길>이라는 달라진 제목으로 (바이런, 괴테 시선집과 함께) 출판사를 옮겨가며 수 차례(1967년, 1968년, 1972년, 1977년) 재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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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일의 <밤이면>은 전체적으로 시의 내용을 매끄럽게 전달하고 시적 화자의 감정에 이입할 수 있도록 원문에는 없거나 느슨하게만 암시된 시행 간의 논리적 연결 관계를 명확히 한 것이 눈에 띈다. 가령 2연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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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e Jahre kommen und vergehn!/Seit ich die Mutter nicht gesehn,/Zwölf Jahre sind schon hingegangen;/Es wächst mein Sehnen und Verlan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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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는 오고 또 지나간다!/어머니를 만난지도/어언 열두 해가 흘렀건만/그리움은 점점 더 깊어져 갈뿐.(모든 밑줄 강조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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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연 3행 번역에서 역자는 “흘렀건만”이라는 어미를 사용하여 어머니를 보지 못하고 흘러버린 세월에 대한 야속함을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마찬가지로 4행에서도 “갈뿐”이라는 어미를 사용해 시적 화자의 무력함과 안타까움을 진하게 드러낸다. 이렇게 시적 화자의 감정을 증폭시키는 면모는 대부분의 문장을 ‘~다’ 어미를 사용해 덤덤하고 건조하게 끝낸 김수용 역과 비교해 보면 보다 뚜렷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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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는 오고 또 간다!/어머니를 보지 못한 이래/십이 년이 벌써 흘러갔다;/내 그리움과 동경은 커져만 간다.(김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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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독일에 대한 시적 화자의 태도가 이동일 역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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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utschland hat ewigen Bestand,/Es ist ein kerngesundes Land;/Mit seinen Eichen, seinen Linden,/Werd ich es immer wiederfin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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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영원히 뻗어나갈 나라/고장도 없이 튼튼한 나라다./그 떡갈나무와, 그 보리수를/나는 어느 때까지 기억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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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연 1행을 역자는 “독일은 영원히 뻗어나갈 나라”라고 번역했다. 이것이 3행에 나오는 떡갈나무와 보리수의 이미지를 빌려 왕성하게 자라는 나무의 상을 표현한 것인지, 아니면 시적 화자의 애국주의적 표현인지는 모르겠으나 독일이 계속해서 확장될 나라라고 말한다. 이에 비해 2행 “고장도 없이 튼튼한 나라다”는 아이러니한 느낌이 없지 않다. 독일에 대한 하이네의 태도를 고려해보면, 독일은 왜 이렇게 고장도 나지 않고 튼튼한 것인가 하는 불만 섞인 표현으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자는 시에 붙인 짤막한 해설에서 “조국과 어머니를 생각할 땐 독설가 <하이네>의 야유는 자취를 감추고 사모의 정만 우러났음”(67)이라고 쓰고 있어, 이러한 해석이 역자의 의도는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동일은 4행을 시적 화자가 독일의 상징 “떡갈나무”와 “보리수”를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해석함으로써 시적 화자가 다시는 독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임을 암시한다. 이를 통해 독일을 보다 아련하고 애틋한 그리움의 대상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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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it ich das Land verlassen hab,/So viele sanken dort ins Grab,/Die ich geliebt – wenn ich sie zähle,/So will verbluten meine See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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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독일을 하직한 뒤로/그 땅에서는 내가 사랑하던/많은 사람들이 죽어 없어졌다/그 분들을 생각할적마다 내 맘은 피를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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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초역이다 보니 정확하지 않은 번역이 눈에 띈다. 3행의 “zähle”를 ‘생각하다’라고 번역했는데 정확성도 떨어지지만 바로 뒷 연에서 같은 동사가 반복(“그러나 역시 헤어보지 않을순 없다Und zählen muß ich”)되므로 ‘헤어보다’로 동일하게 번역해야 한국 독자가 시어의 반복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이동일 역은 시어의 반복 기법을 잘 살리지 않아 번역문에서 이것을 음미할 가능성이 차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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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 ist, als wälzten sich die Leichen/Auf meine Brust - Gottlob! Sie weic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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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내 가슴 위를 시체가 딩굴어 가는듯한 이 마음,/―그러나 고맙게도 이런 마음은 차츰 사라져 간다!(밑줄 강조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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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고맙게도 시체들이 물러난다고 해야 할 것을 죽어간 동지들에 대한 부채감이 사라져간다고 해석했다. 이는 시적 화자가 느끼는 부채감이 의식적으로 억압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원문과 거리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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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연 종행에서 “die deutschen Sorgen”을 “독일의 우수”라고 번역하였는데, “독일에 대한 시름”(김광규)과 달리 독일 자체가 비탄이나 우울에 빠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는 혁명의 나라 “프랑스의 환한 햇살”과 보기 좋게 대조를 이루지만, 앞에서 나온 “고장도 없이 튼튼한 나라”로서의 독일과는 상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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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김광규 역의 <밤에 떠오르는 생각>(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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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일 역이 추정컨대 중역이라면, 원전 번역으로서 초역의 영예는 김광규 역 <밤에 떠오르는 생각>이 누려야 할 것이다(85-87쪽). 당시 부산대 독어교육과 교수이자 <문학과지성>에 막 등단한 신인 시인이었던 역자는 1975년 민음사 세계시인선 제22권에 하이네 시선집 <바다의 망령>을 발표했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번역 저본이 밝혀져 있다. 1970년에 나온 비스바덴판 2권짜리 하이네 전집을 기초로 했으며, 역주에 참고한 도서명도 함께 밝혀놓았다. 한독 대역본이며, “가급적 우리말의 어감을 살려 원문에 충실한 번역을 해보고자 노력했다”(12)는 번역 의도도 밝혀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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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규 역은 역자의 번역 지향에 맞게 원문의 표현을 최대한 존중하려고 노력한 부분이 눈에 띈다. 대표적으로 시적 화자가 자신의 어머니를 “늙은 여자/부인 die alte Frau”라고 부르는 부분을 김광규 역은 최대한 존중하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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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e alte Frau hat mich behext,/Ich denke immer an die alte,/Die alte Frau, die Gott erhal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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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늙은 부인이 나를 매혹했음인가,/나는 언제나 그녀만을 생각한다./그 늙은 부인을, 하느님 보호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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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e alte Frau hat mich so lieb,/Und in den Briefen, die sie schrieb,/Seh ich, wie ihre Hand gezittert,/Wie tief das Mutterherz erschütt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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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늙은 부인은 나를 무척 사랑했다,/이제 그녀가 쓴 편지를 보면,/얼마나 그녀의 손이 떨리고,/얼마나 어머니의 마음이 아팠는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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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역자들은 한국어로 어머니를 그렇게 부르는 것이 불손해 보일뿐더러 사모곡의 분위기를 해친다고 생각해서인지 그냥 어머니라고 옮겼다. 심지어 김명수는 “어머님”이라고 높여서 옮기기도 했다. 김광규 역시 이러한 직역이 한국어에서 어색할 수 있음을 충분히 의식하고 있어 이 ‘늙은 부인’이 어머니를 가리킨다는 것을 주를 달아 설명해 놓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그는 이 생경한 표현을 끝까지 관철시킨다. 심지어 인칭대명사 ‘sie’도 원문대로 ‘그녀’라고 옮긴다. 지금도 한국어에서 어머니를 ‘그녀’라고 부르면 어머니를 객관화하거나 거리를 두어 바라보는 효과가 생기는데, 당시에는 이 효과가 훨씬 컸으리라 짐작된다. 이로써 김광규 역은 이동일 역에 비해 시적 화자의 감정이 훨씬 절제되어 있고, 자신의 감정을 보다 거리를 두고 성찰적으로 바라보는 느낌을 준다. 물론 일부는 서투른 번역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가령 바로 위에서 인용한 4연에서 2행과 3행은 ‘그녀’라고 하고 4행은 “어머니의 마음”으로 옮겨 인칭대명사가 일관되지 않은 느낌을 주는 대목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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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김광규 역은 원시의 반복어법을 번역문에서 최대한 살려내고자 했다. 대표적으로 교차배열법(Chiasmus)이 사용된 부분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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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 wächst mein Sehnen und Verlangen.//Mein Sehnen und Verlangen wäch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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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갈수록 그립고 보고 싶다.//그리움과 보고싶음 점점 커진다.(김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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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은 점점 더 깊어져 갈뿐.//내 갈망은 자꾸만 늘어간다(이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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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과 동경만 더해 간다//그리움과 동경만이 더해 간다(김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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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그리움과 동경은 커져만 간다.//내 그리움과 동경은 커져만 간다.(김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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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립고 보고픈 마음이 갈수록 커진다.//그리움과 보고픔이 이토록 짙어짐은(정명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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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은 그리움 커져만 간다//보고 싶은 그리움 커져만 간다(임홍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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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시들을 훑어보기만 해도 원시의 교차배열법을 번역하는 일이 얼마나 까다로운지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역자들은 도치된 부분을 살리지 못했다. 이동일은 아예 반복과 교차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고, 김남주, 김수용, 임홍배는 (거의) 동일한 문장을 반복하는 방식을 택했다. 반복을 통해 일부 점층적 효과를 내기는 하였으나, 원문보다 단조로워 보인다. 정명순은 주술의 위치를 뒤집지는 않았지만, 두 번째로 반복되었을 때 이것을 주절로 만들어 단조로움을 피하였다. 이와는 달리 김광규는 첫 번째 문장의 “그립고 보고 싶다”를 두 번째 문장에서 명사화하여 교차배열법을 살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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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6연에서 역자는 시적 화자가 독일에 갖는 태도를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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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영원히 존속하리라,/독일은 속까지 썩지는 않은 나라./그곳의 떡갈나무, 그곳의 보리수와 함께/언제고 나는 독일을 다시 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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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는 “ein kerngesundes Land”를 “속까지 썩지는 않은 나라”라고 번역하였는데, 이것은 독일이 썩기는 썩었되, 속까지 썩지는 않은 나라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즉 독일이 부패하고 후진적인 나라이긴 하나, 그 근본에는 순수함과 저력이 있는 나라로 희망이 남아 있는 나라라는 의미를 전달한다. 이는 시적 화자가 독일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음을 전달하며, 언젠가는 독일에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씩씩하게 품는 것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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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떠오르는 생각>은 역자가 1980년에 에히터마이어(Echtermeyer)의 <독일시선집. 시초부터 현재까지. 벤노 폰 비제가 새로 엮음 Deutsche Gedichte von den Anfängen bis zur Gegenwart, neugestaltet von Benno von Wiese>(Düsseldorf 1974)에서 낭만주의부터 사실주의까지를 번역하여 낸 책 <19세기 독일시>(탐구당)에 시구의 어미 정도만 일부 수정되어 재수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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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일 역이 추정컨대 중역이라면, 원전 번역으로서 초역의 영예는 김광규 역 <밤에 떠오르는 생각>이 누려야 할 것이다(85-87쪽). 당시 부산대 독어교육과 교수이자 <문학과지성>에 막 등단한 신인 시인이었던 역자는 1975년 민음사 세계시인선 제22권에 하이네 시선집 <바다의 망령>을 발표했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번역 저본이 밝혀져 있다. 1970년에 나온 비스바덴판 2권짜리 하이네 전집을 기초로 했으며, 역주에 참고한 도서명도 함께 밝혀놓았다. 한독 대역본이며, “가급적 우리말의 어감을 살려 원문에 충실한 번역을 해보고자 노력했다”(12)는 번역 의도도 밝혀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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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규 역은 역자의 번역 지향에 맞게 원문의 표현을 최대한 존중하려고 노력한 부분이 눈에 띈다. 대표적으로 시적 화자가 자신의 어머니를 “늙은 여자/부인 die alte Frau”라고 부르는 부분을 김광규 역은 최대한 존중하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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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e alte Frau hat mich behext,/Ich denke immer an die alte,/Die alte Frau, die Gott erhal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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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늙은 부인이 나를 매혹했음인가,/나는 언제나 그녀만을 생각한다./그 늙은 부인을, 하느님 보호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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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e alte Frau hat mich so lieb,/Und in den Briefen, die sie schrieb,/Seh ich, wie ihre Hand gezittert,/Wie tief das Mutterherz erschütt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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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늙은 부인은 나를 무척 사랑했다,/이제 그녀가 쓴 편지를 보면,/얼마나 그녀의 손이 떨리고,/얼마나 어머니의 마음이 아팠는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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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역자들은 한국어로 어머니를 그렇게 부르는 것이 불손해 보일뿐더러 사모곡의 분위기를 해친다고 생각해서인지 그냥 어머니라고 옮겼다. 심지어 김명수는 “어머님”이라고 높여서 옮기기도 했다. 김광규 역시 이러한 직역이 한국어에서 어색할 수 있음을 충분히 의식하고 있어 이 ‘늙은 부인’이 어머니를 가리킨다는 것을 주를 달아 설명해 놓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그는 이 생경한 표현을 끝까지 관철시킨다. 심지어 인칭대명사 ‘sie’도 원문대로 ‘그녀’라고 옮긴다. 지금도 한국어에서 어머니를 ‘그녀’라고 부르면 어머니를 객관화하거나 거리를 두어 바라보는 효과가 생기는데, 당시에는 이 효과가 훨씬 컸으리라 짐작된다. 이로써 김광규 역은 이동일 역에 비해 시적 화자의 감정이 훨씬 절제되어 있고, 자신의 감정을 보다 거리를 두고 성찰적으로 바라보는 느낌을 준다. 물론 일부는 서투른 번역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가령 바로 위에서 인용한 4연에서 2행과 3행은 ‘그녀’라고 하고 4행은 “어머니의 마음”으로 옮겨 인칭대명사가 일관되지 않은 느낌을 주는 대목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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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김광규 역은 원시의 반복어법을 번역문에서 최대한 살려내고자 했다. 대표적으로 교차배열법(Chiasmus)이 사용된 부분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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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과 동경만 더해 간다//그리움과 동경만이 더해 간다(김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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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그리움과 동경은 커져만 간다.//내 그리움과 동경은 커져만 간다.(김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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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립고 보고픈 마음이 갈수록 커진다.//그리움과 보고픔이 이토록 짙어짐은(정명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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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은 그리움 커져만 간다//보고 싶은 그리움 커져만 간다(임홍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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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시들을 훑어보기만 해도 원시의 교차배열법을 번역하는 일이 얼마나 까다로운지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역자들은 도치된 부분을 살리지 못했다. 이동일은 아예 반복과 교차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고, 김남주, 김수용, 임홍배는 (거의) 동일한 문장을 반복하는 방식을 택했다. 반복을 통해 일부 점층적 효과를 내기는 하였으나, 원문보다 단조로워 보인다. 정명순은 주술의 위치를 뒤집지는 않았지만, 두 번째로 반복되었을 때 이것을 주절로 만들어 단조로움을 피하였다. 이와는 달리 김광규는 첫 번째 문장의 “그립고 보고 싶다”를 두 번째 문장에서 명사화하여 교차배열법을 살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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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6연에서 역자는 시적 화자가 독일에 갖는 태도를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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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영원히 존속하리라,/독일은 속까지 썩지는 않은 나라./그곳의 떡갈나무, 그곳의 보리수와 함께/언제고 나는 독일을 다시 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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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는 “ein kerngesundes Land”를 “속까지 썩지는 않은 나라”라고 번역하였는데, 이것은 독일이 썩기는 썩었되, 속까지 썩지는 않은 나라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즉 독일이 부패하고 후진적인 나라이긴 하나, 그 근본에는 순수함과 저력이 있는 나라로 희망이 남아 있는 나라라는 의미를 전달한다. 이는 시적 화자가 독일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음을 전달하며, 언젠가는 독일에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씩씩하게 품는 것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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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떠오르는 생각>은 역자가 1980년에 에히터마이어(Echtermeyer)의 <독일시선집. 시초부터 현재까지. 벤노 폰 비제가 새로 엮음 Deutsche Gedichte von den Anfängen bis zur Gegenwart, neugestaltet von Benno von Wiese>(Düsseldorf 1974)에서 낭만주의부터 사실주의까지를 번역하여 낸 책 <19세기 독일시>(탐구당)에 시구의 어미 정도만 일부 수정되어 재수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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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15일 (월) 12:45 판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 1797-1856)의 시

밤에 떠오르는 생각
(Nachtgedanken)
작가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
초판 발행1844
장르

작품소개

1844년에 발표한 독일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의 시이다. 1830년 7월 혁명을 지지하는 글을 발표하여 요주의 인물로 떠오른 하이네는 1831년 파리로 이주했다가 결국 그곳에서 남은 반평생을 살게 된다. 이 시는 하이네가 독일을 떠난 지 열두 해가 지났을 무렵에 쓰였다. 불면의 밤을 보내는 시적 화자는 독일을 생각하면 독일에 두고 온 어머니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연로한 모친을 걱정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을 토로한다. 이때 늙고 약한 어머니와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변함없이 건재한 “뼛속까지 튼튼한” 독일이 대비된다. 이제 시적 화자의 상념은 불의에 맞서 싸우다가 피 흘리고 죽어간 수많은 이들에게로 향한다. 밤새 가슴을 짓누르는 고통으로부터 시적 화자를 구해주는 것은 “프랑스의 화사한 햇살”과 그런 햇살을 닮은 미소를 지으며 들어오는 자기 아내다. 역시 낙후한 어둠의 독일과 혁명의 나라인 빛의 프랑스가 대비된다고 할 수 있다. 이 시는 “시대의 시”(Zeitgedichten) 연작의 마지막 시로, <신시집>에 실려 <독일. 겨울동화>와 함께 발표되었다. 시집은 출간되자마자 프로이센과 독일 연방국가에서 압류되고 시인에게 체포령이 떨어졌다. 집필 시기나 주제 면에서 ‘포어메르츠 Vormärz’(메테르니히 치하의 복고 체제를 비판하는 1848년 3월 혁명 발발 전의 문학)로 분류될 수 있으며, 시의 첫 구절 “독일을 생각하면 [...]”이 매우 유명하다. 시의 운율은 ‘쌍운’(aabb)이며, 주로 4음보 약강격을 보인다. 국내 초역은 1965년 이동일 역의 <밤이면>이다(성문사).

초판 정보

Heine, Heinrich(1844): Nachtgedanken. In: Neue Gedichte. Hamburg: Hoffmann und Campe, 274-276.


번역서지 목록

번호 개별작품제목 번역서명 총서명 원저자명 번역자명 발행연도 출판사 작품수록 페이지 저본 번역유형 작품 번역유형 비고
1 밤에 떠오르는 생각 바다의 亡靈 世界詩人選 22 하인리히 하이네 金光圭 譯 1975 民音社 85-90 편역 완역
2 야사(夜思) 하이네 詩集 世界의 詩人 2 하인리히 하이네 世界의 詩人 編纂會 編譯 1976 文化公倫社 25-28 편역 완역
3 야사(夜思) 아름다운 5월 하인리히 하이네 石鄕 編譯 1976 文化公論社 25-28 편역 완역
4 밤에 떠오르는 생각 19세기 독일시 探求新書 176 하인리히 하이네 金光圭 譯 1980 探求堂 74-119 편역 완역
5 밤에 나는 생각한다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김남주 번역시집 2 하인리히 하이네 김남주 1995 푸른숲 85-87 편역 편역
6 밤의 상념 독일시 : 독일 서정 하인리히 하이네 정명순 2022 전남대학교출판문화원 174-174 편역 완역
7 밤중의 상념 모든 이별에 앞서가라 - 독일대표 시선 창비세계문학 91 하인리히 하이네 최연숙 2023 창비 82-84 편역 완역


번역비평

1. 번역 현황 및 개관

하이네의 시 <밤에 떠오르는 생각>은 시대 비판적·풍자적 시들을 묶은 연작 <시대시>(Zeitgedichte)의 마지막 시로 1844년 <신시집>(Neue Gedichte>에 실려 처음 발표되었다. 한국에서 <신시집>은 1989년 김수용에 의해 단 한 차례 완역되었을 뿐이나, <밤에 떠오르는 생각>은 2025년 현재까지 최소 일곱 명의 역자에 의해 번역되었다. <신시집>에 실린 작품 다수가 이미 다양한 하이네 시선집에 수록되어 여러 차례 소개된 것처럼 <밤에 떠오르는 생각>도 대부분 이런 경로로 국역되었다. 초역은 1965년 이동일의 번역 <밤이면>이다. 1920년대부터 한국에서 하이네 시가 다수 소개된 것을 고려할 때, 초역이 늦은 편이다. 초역 이후 한동안 새 번역이 없다가 1975년에서야 시인이자 독문학자인 김광규에 의해 재번역되었다. 이후 짜깁기식 번역이 여러 차례 나오기도 했으나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던 이 시는 1988년 김남주 시인의 번역시집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에 <밤에 나는 생각하네>라는 제목으로 실리며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이외에도 1987년 시인이자 아동문학가인 김명수도 이 시의 번역을 시도했고, 1989년 하이네를 전공한 독문학자 김수용이 <신시집>을 국내 최초로 완역함으로써 비로소 원전에 충실한 번역본이 나오게 되었다. 80년대 후반 이렇게 세 종이나 새 번역이 출판된 것은 하이네의 정치시가 소개되기 어려웠던 군사정권 하의 엄혹한 분위기가 87년 민주 항쟁으로 완화되었던 덕분일 것이다. <신시집>이 완역되기도 했고 정치시에 대한 관심도 퇴조하면서 그 뒤로 30년 넘게 새로운 번역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2022년에서야 독문학자 정명순이 시선집 <독일시독일서정>을 내면서 오랜만에 새로운 번역을 시도했고, 1년 뒤 독문학자 임홍배가 역시 독일시선집 <모든 이별에 앞서가라>(2023)에서 하이네의 대표시 중 하나로 이 시를 소개했다.

시의 원제 “Nachtgedanken”은 ‘밤의 상념’ 혹은 ‘한밤의 생각’이라는 뜻의 비교적 일상적인 어휘이지만, 한국어로는 제각기 다르게 번역되었다. 이동일의 초역에서는 <밤이면>, 김광규는 <밤에 떠오르는 생각>, 김명수는 <밤생각>, 김남주는 <밤에 나는 생각하네>, 김수용은 <밤의 생각>, 정명순은 <밤의 상념>, 임홍배는 <밤중의 상념>이라고 제목을 옮겼다. 이외에도 70년대 중후반에 <야사(夜思)>라는 제목으로 번역되기도 했다. 제목은 다양하나 정확성 면에서 큰 차이가 없으므로 전체 개관에서만 표준 제목을 따르고 개별 번역비평에서는 역자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한다.

<밤에 떠오르는 생각>은 하이네의 시 중에서도 소박하고 일상적인 어휘로 이루어져 있으며, 구문도 단순하고 사용된 상징이나 기교도 적은 편이다. 운율은 4음보 약강격에 쌍운(aabb)을 취하며 속마음을 덤덤하게 토로하는 어조이다. 또 시어의 반복이 많으며 이를 통해 특정한 효과를 낸다. 개별 번역 비평에서는 이러한 시의 형식적 특징이 어떻게 번역되어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이외에도 시적 화자가 독일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가 눈여겨봐야 할 점이다. 주지하다시피 하이네는 망명 생활 중에 독일의 상황을 비판 · 풍자하는 시를 다수 남겼으며, 독일에 대한 향수를 토로하는 시를 쓰기도 했다. <밤에 떠오르는 생각>에서도 12년 동안이나 고국에 돌아가지 못하여 어머니와 생이별 상태에 놓여 있는 시적 화자는 독일에 대해 양가적 감정을 내비친다. 특히 “참나무와 보리수”라는 독일의 전통적 상징과 함께 독일의 지속성과 튼튼함이 강조되는 6연에서 이 감정은 매우 모호하게 드러난다. 우선 이것은 독일에 대한 시적 화자의 그리움을 표현한 것일 수 있다. 비슷한 주제를 다룬 하이네의 다른 시 <객지에서>(In der Fremde)에서 시적 화자는 이렇게 노래한다. “Ich hatte einst ein schönes Vaterland./Der Eichenbaum/Wuchs dort so hoch”[1](한때 나는 아름다운 조국이 있었노라./참나무가/거기서 드높이 자랐고). 여기서 참나무는 시적 화자가 떠올리는 독일의 대표적인 아름다운 정경이다. 그렇다면 <밤에 떠오르는 생각> 6연에서 “참나무”가 자라는 독일은 긍정적인 대상, 그리움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러나 <밤에 떠오르는 생각>과 함께 <시대시>에 실린 다른 시 <안심하시오>(Zur Beruhigung)에서 “참나무”와 “보리수”는 반역도 혁명도 일으킬 깜냥이 없는 그저 우직하고 순종적이기만 한 게르만인들의 상징으로서 부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그렇다면 불과 몇 편 앞에서 이런 은유를 읽은 독자는 <밤에 떠오르는 생각>에서도 6연을 독일에 대한 시적 화자의 냉소적 아이러니의 표현으로 읽을 수 있다. 그러면 6연은 늙어가는 어머니와 달리 건재하기만 한 독일, 수많은 동지를 피 흘리게 했으나 여전히 변함없는 독일을 비꼬는 말로 읽힌다. 이제 개별 번역의 전반적인 특징을 살펴보면서 시적 화자가 독일에 대해 갖는 태도를 각 역자들이 어떻게 전달하는지 살펴보겠다. 원전 번역이 아닌 번역도 번역사적 중요성을 감안해 번역비평에 포함시켰음을 미리 일러둔다.


2. 개별 번역 비평

1) 이동일 역의 <밤이면>(1959)

국내 초역인 이동일 역은 1965년 하이네 시선집 <로오렐라이>(성문사)에 발표되었다(66-67쪽). 역자에 대한 정보가 책에 실려 있지 않아 이 번역이 원전 번역인지는 확실치 않다. 시선집 구성이 하이네의 대표 시집 순을 따른다는 점에서(1부는 <노래책>, 2부는 <신시집>, 3부는 <로만체로>, 4부는 <최후의 시집>) 나름의 전문성을 자랑하며, 해설에서 역자가 한국에서 당시까지 가장 많은 하이네 시를 수록한 번역서라고 자부하지만, 동일한 역자의 이름으로 같은 해, 같은 출판사에서 <괴에테시완역전집>과 <바이런 시 전집>이 출간된 정황으로 보아 원전 번역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하이네 시선집 <로오렐라이>는 이후 <장미의 기도>, <낙엽지는 오솔길>이라는 달라진 제목으로 (바이런, 괴테 시선집과 함께) 출판사를 옮겨가며 수 차례(1967년, 1968년, 1972년, 1977년) 재간행됐다.

이동일의 <밤이면>은 전체적으로 시의 내용을 매끄럽게 전달하고 시적 화자의 감정에 이입할 수 있도록 원문에는 없거나 느슨하게만 암시된 시행 간의 논리적 연결 관계를 명확히 한 것이 눈에 띈다. 가령 2연을 보자.

Die Jahre kommen und vergehn!/Seit ich die Mutter nicht gesehn,/Zwölf Jahre sind schon hingegangen;/Es wächst mein Sehnen und Verlangen.
해는 오고 또 지나간다!/어머니를 만난지도/어언 열두 해가 흘렀건만/그리움은 점점 더 깊어져 갈뿐.(모든 밑줄 강조 필자)

2연 3행 번역에서 역자는 “흘렀건만”이라는 어미를 사용하여 어머니를 보지 못하고 흘러버린 세월에 대한 야속함을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마찬가지로 4행에서도 “갈뿐”이라는 어미를 사용해 시적 화자의 무력함과 안타까움을 진하게 드러낸다. 이렇게 시적 화자의 감정을 증폭시키는 면모는 대부분의 문장을 ‘~다’ 어미를 사용해 덤덤하고 건조하게 끝낸 김수용 역과 비교해 보면 보다 뚜렷이 드러난다.

해는 오고 또 간다!/어머니를 보지 못한 이래/십이 년이 벌써 흘러갔다;/내 그리움과 동경은 커져만 간다.(김수용)

다음으로 독일에 대한 시적 화자의 태도가 이동일 역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 보자.

Deutschland hat ewigen Bestand,/Es ist ein kerngesundes Land;/Mit seinen Eichen, seinen Linden,/Werd ich es immer wiederfinden.
독일은 영원히 뻗어나갈 나라/고장도 없이 튼튼한 나라다./그 떡갈나무와, 그 보리수를/나는 어느 때까지 기억하리라. 

6연 1행을 역자는 “독일은 영원히 뻗어나갈 나라”라고 번역했다. 이것이 3행에 나오는 떡갈나무와 보리수의 이미지를 빌려 왕성하게 자라는 나무의 상을 표현한 것인지, 아니면 시적 화자의 애국주의적 표현인지는 모르겠으나 독일이 계속해서 확장될 나라라고 말한다. 이에 비해 2행 “고장도 없이 튼튼한 나라다”는 아이러니한 느낌이 없지 않다. 독일에 대한 하이네의 태도를 고려해보면, 독일은 왜 이렇게 고장도 나지 않고 튼튼한 것인가 하는 불만 섞인 표현으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자는 시에 붙인 짤막한 해설에서 “조국과 어머니를 생각할 땐 독설가 <하이네>의 야유는 자취를 감추고 사모의 정만 우러났음”(67)이라고 쓰고 있어, 이러한 해석이 역자의 의도는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동일은 4행을 시적 화자가 독일의 상징 “떡갈나무”와 “보리수”를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해석함으로써 시적 화자가 다시는 독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임을 암시한다. 이를 통해 독일을 보다 아련하고 애틋한 그리움의 대상으로 만든다.

Seit ich das Land verlassen hab,/So viele sanken dort ins Grab,/Die ich geliebt – wenn ich sie zähle,/So will verbluten meine Seele.
내가 독일을 하직한 뒤로/그 땅에서는 내가 사랑하던/많은 사람들이 죽어 없어졌다/그 분들을 생각할적마다 내 맘은 피를 흘린다 

아무래도 초역이다 보니 정확하지 않은 번역이 눈에 띈다. 3행의 “zähle”를 ‘생각하다’라고 번역했는데 정확성도 떨어지지만 바로 뒷 연에서 같은 동사가 반복(“그러나 역시 헤어보지 않을순 없다Und zählen muß ich”)되므로 ‘헤어보다’로 동일하게 번역해야 한국 독자가 시어의 반복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이동일 역은 시어의 반복 기법을 잘 살리지 않아 번역문에서 이것을 음미할 가능성이 차단된다.

Mir ist, als wälzten sich die Leichen/Auf meine Brust - Gottlob! Sie weichen!
마치 내 가슴 위를 시체가 딩굴어 가는듯한 이 마음,/―그러나 고맙게도 이런 마음은 차츰 사라져 간다!(밑줄 강조 필자) 

또한 고맙게도 시체들이 물러난다고 해야 할 것을 죽어간 동지들에 대한 부채감이 사라져간다고 해석했다. 이는 시적 화자가 느끼는 부채감이 의식적으로 억압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원문과 거리가 멀다.

종연 종행에서 “die deutschen Sorgen”을 “독일의 우수”라고 번역하였는데, “독일에 대한 시름”(김광규)과 달리 독일 자체가 비탄이나 우울에 빠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는 혁명의 나라 “프랑스의 환한 햇살”과 보기 좋게 대조를 이루지만, 앞에서 나온 “고장도 없이 튼튼한 나라”로서의 독일과는 상충된다.


2) 김광규 역의 <밤에 떠오르는 생각>(2001)

이동일 역이 추정컨대 중역이라면, 원전 번역으로서 초역의 영예는 김광규 역 <밤에 떠오르는 생각>이 누려야 할 것이다(85-87쪽). 당시 부산대 독어교육과 교수이자 <문학과지성>에 막 등단한 신인 시인이었던 역자는 1975년 민음사 세계시인선 제22권에 하이네 시선집 <바다의 망령>을 발표했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번역 저본이 밝혀져 있다. 1970년에 나온 비스바덴판 2권짜리 하이네 전집을 기초로 했으며, 역주에 참고한 도서명도 함께 밝혀놓았다. 한독 대역본이며, “가급적 우리말의 어감을 살려 원문에 충실한 번역을 해보고자 노력했다”(12)는 번역 의도도 밝혀져 있다.

김광규 역은 역자의 번역 지향에 맞게 원문의 표현을 최대한 존중하려고 노력한 부분이 눈에 띈다. 대표적으로 시적 화자가 자신의 어머니를 “늙은 여자/부인 die alte Frau”라고 부르는 부분을 김광규 역은 최대한 존중하려고 했다.

Die alte Frau hat mich behext,/Ich denke immer an die alte,/Die alte Frau, die Gott erhalte!
그 늙은 부인이 나를 매혹했음인가,/나는 언제나 그녀만을 생각한다./그 늙은 부인을, 하느님 보호해 주소서!
Die alte Frau hat mich so lieb,/Und in den Briefen, die sie schrieb,/Seh ich, wie ihre Hand gezittert,/Wie tief das Mutterherz erschüttert.
그 늙은 부인은 나를 무척 사랑했다,/이제 그녀가 쓴 편지를 보면,/얼마나 그녀의 손이 떨리고,/얼마나 어머니의 마음이 아팠는가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역자들은 한국어로 어머니를 그렇게 부르는 것이 불손해 보일뿐더러 사모곡의 분위기를 해친다고 생각해서인지 그냥 어머니라고 옮겼다. 심지어 김명수는 “어머님”이라고 높여서 옮기기도 했다. 김광규 역시 이러한 직역이 한국어에서 어색할 수 있음을 충분히 의식하고 있어 이 ‘늙은 부인’이 어머니를 가리킨다는 것을 주를 달아 설명해 놓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그는 이 생경한 표현을 끝까지 관철시킨다. 심지어 인칭대명사 ‘sie’도 원문대로 ‘그녀’라고 옮긴다. 지금도 한국어에서 어머니를 ‘그녀’라고 부르면 어머니를 객관화하거나 거리를 두어 바라보는 효과가 생기는데, 당시에는 이 효과가 훨씬 컸으리라 짐작된다. 이로써 김광규 역은 이동일 역에 비해 시적 화자의 감정이 훨씬 절제되어 있고, 자신의 감정을 보다 거리를 두고 성찰적으로 바라보는 느낌을 준다. 물론 일부는 서투른 번역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가령 바로 위에서 인용한 4연에서 2행과 3행은 ‘그녀’라고 하고 4행은 “어머니의 마음”으로 옮겨 인칭대명사가 일관되지 않은 느낌을 주는 대목이 그렇다.

또 김광규 역은 원시의 반복어법을 번역문에서 최대한 살려내고자 했다. 대표적으로 교차배열법(Chiasmus)이 사용된 부분을 보자.

Es wächst mein Sehnen und Verlangen.//Mein Sehnen und Verlangen wächst.
날이 갈수록 그립고 보고 싶다.//그리움과 보고싶음 점점 커진다.(김광규)
그리움은 점점 더 깊어져 갈뿐.//내 갈망은 자꾸만 늘어간다(이동일)
그리움과 동경만 더해 간다//그리움과 동경만이 더해 간다(김남주)
내 그리움과 동경은 커져만 간다.//내 그리움과 동경은 커져만 간다.(김수용)
그립고 보고픈 마음이 갈수록 커진다.//그리움과 보고픔이 이토록 짙어짐은(정명순)
보고 싶은 그리움 커져만 간다//보고 싶은 그리움 커져만 간다(임홍배)

예시들을 훑어보기만 해도 원시의 교차배열법을 번역하는 일이 얼마나 까다로운지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역자들은 도치된 부분을 살리지 못했다. 이동일은 아예 반복과 교차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고, 김남주, 김수용, 임홍배는 (거의) 동일한 문장을 반복하는 방식을 택했다. 반복을 통해 일부 점층적 효과를 내기는 하였으나, 원문보다 단조로워 보인다. 정명순은 주술의 위치를 뒤집지는 않았지만, 두 번째로 반복되었을 때 이것을 주절로 만들어 단조로움을 피하였다. 이와는 달리 김광규는 첫 번째 문장의 “그립고 보고 싶다”를 두 번째 문장에서 명사화하여 교차배열법을 살려낸다.

문제의 6연에서 역자는 시적 화자가 독일에 갖는 태도를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독일은 영원히 존속하리라,/독일은 속까지 썩지는 않은 나라./그곳의 떡갈나무, 그곳의 보리수와 함께/언제고 나는 독일을 다시 보겠지. 

역자는 “ein kerngesundes Land”를 “속까지 썩지는 않은 나라”라고 번역하였는데, 이것은 독일이 썩기는 썩었되, 속까지 썩지는 않은 나라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즉 독일이 부패하고 후진적인 나라이긴 하나, 그 근본에는 순수함과 저력이 있는 나라로 희망이 남아 있는 나라라는 의미를 전달한다. 이는 시적 화자가 독일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음을 전달하며, 언젠가는 독일에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씩씩하게 품는 것으로 해석된다.

<밤에 떠오르는 생각>은 역자가 1980년에 에히터마이어(Echtermeyer)의 <독일시선집. 시초부터 현재까지. 벤노 폰 비제가 새로 엮음 Deutsche Gedichte von den Anfängen bis zur Gegenwart, neugestaltet von Benno von Wiese>(Düsseldorf 1974)에서 낭만주의부터 사실주의까지를 번역하여 낸 책 <19세기 독일시>(탐구당)에 시구의 어미 정도만 일부 수정되어 재수록되었다.


이동일 역이 추정컨대 중역이라면, 원전 번역으로서 초역의 영예는 김광규 역 <밤에 떠오르는 생각>이 누려야 할 것이다(85-87쪽). 당시 부산대 독어교육과 교수이자 <문학과지성>에 막 등단한 신인 시인이었던 역자는 1975년 민음사 세계시인선 제22권에 하이네 시선집 <바다의 망령>을 발표했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번역 저본이 밝혀져 있다. 1970년에 나온 비스바덴판 2권짜리 하이네 전집을 기초로 했으며, 역주에 참고한 도서명도 함께 밝혀놓았다. 한독 대역본이며, “가급적 우리말의 어감을 살려 원문에 충실한 번역을 해보고자 노력했다”(12)는 번역 의도도 밝혀져 있다. 김광규 역은 역자의 번역 지향에 맞게 원문의 표현을 최대한 존중하려고 노력한 부분이 눈에 띈다. 대표적으로 시적 화자가 자신의 어머니를 “늙은 여자/부인 die alte Frau”라고 부르는 부분을 김광규 역은 최대한 존중하려고 했다.

Die alte Frau hat mich behext,/Ich denke immer an die alte,/Die alte Frau, die Gott erhalte! 그 늙은 부인이 나를 매혹했음인가,/나는 언제나 그녀만을 생각한다./그 늙은 부인을, 하느님 보호해 주소서!

Die alte Frau hat mich so lieb,/Und in den Briefen, die sie schrieb,/Seh ich, wie ihre Hand gezittert,/Wie tief das Mutterherz erschüttert. 그 늙은 부인은 나를 무척 사랑했다,/이제 그녀가 쓴 편지를 보면,/얼마나 그녀의 손이 떨리고,/얼마나 어머니의 마음이 아팠는가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역자들은 한국어로 어머니를 그렇게 부르는 것이 불손해 보일뿐더러 사모곡의 분위기를 해친다고 생각해서인지 그냥 어머니라고 옮겼다. 심지어 김명수는 “어머님”이라고 높여서 옮기기도 했다. 김광규 역시 이러한 직역이 한국어에서 어색할 수 있음을 충분히 의식하고 있어 이 ‘늙은 부인’이 어머니를 가리킨다는 것을 주를 달아 설명해 놓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그는 이 생경한 표현을 끝까지 관철시킨다. 심지어 인칭대명사 ‘sie’도 원문대로 ‘그녀’라고 옮긴다. 지금도 한국어에서 어머니를 ‘그녀’라고 부르면 어머니를 객관화하거나 거리를 두어 바라보는 효과가 생기는데, 당시에는 이 효과가 훨씬 컸으리라 짐작된다. 이로써 김광규 역은 이동일 역에 비해 시적 화자의 감정이 훨씬 절제되어 있고, 자신의 감정을 보다 거리를 두고 성찰적으로 바라보는 느낌을 준다. 물론 일부는 서투른 번역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가령 바로 위에서 인용한 4연에서 2행과 3행은 ‘그녀’라고 하고 4행은 “어머니의 마음”으로 옮겨 인칭대명사가 일관되지 않은 느낌을 주는 대목이 그렇다. 또 김광규 역은 원시의 반복어법을 번역문에서 최대한 살려내고자 했다. 대표적으로 교차배열법(Chiasmus)이 사용된 부분을 보자.

Es wächst mein Sehnen und Verlangen.//Mein Sehnen und Verlangen wächst. 날이 갈수록 그립고 보고 싶다.//그리움과 보고싶음 점점 커진다.(김광규) 그리움은 점점 더 깊어져 갈뿐.//내 갈망은 자꾸만 늘어간다(이동일) 그리움과 동경만 더해 간다//그리움과 동경만이 더해 간다(김남주) 내 그리움과 동경은 커져만 간다.//내 그리움과 동경은 커져만 간다.(김수용) 그립고 보고픈 마음이 갈수록 커진다.//그리움과 보고픔이 이토록 짙어짐은(정명순) 보고 싶은 그리움 커져만 간다//보고 싶은 그리움 커져만 간다(임홍배)

예시들을 훑어보기만 해도 원시의 교차배열법을 번역하는 일이 얼마나 까다로운지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역자들은 도치된 부분을 살리지 못했다. 이동일은 아예 반복과 교차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고, 김남주, 김수용, 임홍배는 (거의) 동일한 문장을 반복하는 방식을 택했다. 반복을 통해 일부 점층적 효과를 내기는 하였으나, 원문보다 단조로워 보인다. 정명순은 주술의 위치를 뒤집지는 않았지만, 두 번째로 반복되었을 때 이것을 주절로 만들어 단조로움을 피하였다. 이와는 달리 김광규는 첫 번째 문장의 “그립고 보고 싶다”를 두 번째 문장에서 명사화하여 교차배열법을 살려낸다. 문제의 6연에서 역자는 시적 화자가 독일에 갖는 태도를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독일은 영원히 존속하리라,/독일은 속까지 썩지는 않은 나라./그곳의 떡갈나무, 그곳의 보리수와 함께/언제고 나는 독일을 다시 보겠지.

역자는 “ein kerngesundes Land”를 “속까지 썩지는 않은 나라”라고 번역하였는데, 이것은 독일이 썩기는 썩었되, 속까지 썩지는 않은 나라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즉 독일이 부패하고 후진적인 나라이긴 하나, 그 근본에는 순수함과 저력이 있는 나라로 희망이 남아 있는 나라라는 의미를 전달한다. 이는 시적 화자가 독일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음을 전달하며, 언젠가는 독일에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씩씩하게 품는 것으로 해석된다. <밤에 떠오르는 생각>은 역자가 1980년에 에히터마이어(Echtermeyer)의 <독일시선집. 시초부터 현재까지. 벤노 폰 비제가 새로 엮음 Deutsche Gedichte von den Anfängen bis zur Gegenwart, neugestaltet von Benno von Wiese>(Düsseldorf 1974)에서 낭만주의부터 사실주의까지를 번역하여 낸 책 <19세기 독일시>(탐구당)에 시구의 어미 정도만 일부 수정되어 재수록되었다.

바깥 링크

  1. Heinrich Heine(1972): Werke und Briefe in zehn Bänden. Bd. 1, Berlin und Weimar: Aufbauverlag, 277. (http://www.zeno.org/nid/20005024749) (최종확인일: 2025.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