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꽃 (Astern)"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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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 이동승 역의 <과꽃>(1971), (198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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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동승은 <과꽃>을 국내 최초로 번역했으며 십 년 후에는 초역을 수정하는 재번역을 하였다. | ||
| + | 두 번의 번역시 전문은 다음과 같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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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과꽃― 灼熱하는 날들. 과꽃― 灼熱하는 날들, | ||
| + | 낡은 盟誓, 그리고 强制, 낡은 맹서, 그리고 강제, | ||
| + | 神들은 저울과 神들은 저울과 | ||
| + | 주저하는 時間을 押留한다. 주저하는 시간을 押留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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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또다시 금빛나는 家畜의 무리 하늘과, 빛, 만발한 꽃들은, | ||
| + | 하늘, 광명, 그리고 면사포, 또 한번 황금빛 가축의 무리, | ||
| + | 낡은 生成은 또한 무엇을 낡은 생성은 무엇을 | ||
| + | 낡은 날개 아래 품고 있는가? 죽어가는 날개 아래 품고 있을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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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또다시 그 渴望하던 것, 또 한 번 그 갈망하던 것, | ||
| + | 그 陶醉를, 그리고 장미의 그대― 그 陶醉, 장미의 그대― | ||
| + | 여름은 停止하고 기대서서 여름은 정지하고 기대어 서서 | ||
| + | 제비의 무리들을 보고 있었다. 제비들을 보고 있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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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벌써 確信이 눈을 뜬 곳에 이미 확신이 눈을 뜬 곳에, | ||
| + | 또다시 臆測, 또 다시 억측이 나타났으니: | ||
| + | 제비는 물결을 타고 가면서 제비들은 물결을 스쳐가면서 | ||
| + | 遍歷과 밤을 마시고 있다. 遍歷과 밤을 마시고 있다. | ||
| + | (이동승 1971, 266) (이동승 1981, 30)(이하 밑줄 강조는 평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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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초역과 재번역을 나란히 놓고 보면 변한 것 보다 변하지 않은 것이 더 눈에 띈다. 시어의 상당수를 이루는 명사, “작열, 맹서, 강제, 압류, 가축, 갈망, 도취, 확신, 억측” 등이 초역 상태 그대로 재번역으로 이동되었다. “der Flor”를 면사포로 오역한 것만 “만발한 꽃”으로 수정되었을 뿐이다. 벤의 시 <Astern>을 가장 이 시답게 하는 것이 뭔지 확 잡히지 않으나, 그것의 한 구성 요소가 명사와 명사화인 것은 확실하다. 이 시에는 명사가 다수일 뿐 아니라, 매 연의 1행과 2행은 술어 없이 명사들이 병렬되어 있다. 동사가 있을 곳에는 “das alte Werden”, “ein Vermuten”처럼 동사가 명사로 조탁되고, “schwälende Tage”, “sterbende Flügel”처럼 동사가 형용사화된다. 이런 까닭에 이동승이 두 번역에서 번역자의 의지가 느껴지도록 명사를 수정하지 않은 점에 주목하게 된다. 1971년에 번역한 1연은 토씨 하나 변하지 않고 1981년의 재번역에 고스란히 옮겨졌다. “작열하는 날들”은 불꽃이 강렬히 타오르는 이미지로 뜨거운 여름의 한가운데 있는 듯하다. 뜨겁게 불타오르는 날들에 “강제”적으로 시간을 압류하는 신들이 대구를 이룬다. 신들이 강제를 당했을 리는 없을 터, 신들은 그들의 위력으로 시간을 무효화한다. “주저하는 시간을”에 해당하는 원문은 “eine zögernde Stunde”로 부사로 읽는 게 문법적이지만, 이동승의 번역처럼 목적어로 읽으면 신들의 압류 대상임이 확실히 드러난다. 이동승의 <과꽃> 1연은 여름의 한 가운데서 신들이 시간의 흐름을 정지시키고, 이로써 여름이 계속될 것 같은 연상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서 “과꽃―”은 그만 철모르고 빨리 꽃을 피운 셈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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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번에는 초역과 비교해서 재번역에서 변한 지점을 보자. 벤의 원작 시 <Astern>에는 쉼표, 줄표, 쌍점 등으로 끝나는 시행들이 많고 이는 문장부호의 기능을 넘어 벤이 ‘기예 Artistik’라고 불렀던 형식화와 구성화의 한 특성을 보여준다. 벤은 타이프라이터로 쓴 초고에서는 4연의 2행을 “wo längst die Gewißheit wacht -”로 써서 줄표를 넣었는데, 출판을 위한 원고에서는 줄표를 쌍점으로 바꾸었다. 이로써 3행과 4행, 즉 제비가 저공비행으로 밤을 가로지르며 떠나가는 것이 2행의 자명한 사실의 내용이 된다. 1연에서 신들이 시간의 흐름을 잠시 멈추었지만 4연에서는 계절의 변화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이다. 이동승은 1971년의 번역에서는 “또다시 臆測,”이라고 하여 쉼표로 시행을 매겼고 1981년의 번역에서는 쉼표를 쌍점으로 바꾸어 원작 시와 문장부호를 똑같이 만든다. 1971년의 쉼표는 전반부와 후반부 사이에 휴지부를 만들어, 확신과 억측이 공존하는 전반부와 제비가 날아가는 후반부의 연결이 필연적이지 않다. 1981년 번역에 있는 쌍점은 제비들이 떠나는 후반부를 전반부 “또 다시 억측이 나타났으니:”의 내용으로 만든다. 1연에서 신들이 시간을 압류하였고 시간은 여름에 정지해 있어서, 4연에서 제비들의 길 떠남이 뜨거운 계절에 맞지 않는 억지스러운 추측이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동승의 <과꽃>은 벤의 <Astern>과는 상당히 다른 번역시이다. 이동승의 번역은 오롯이 혼자서 원문을 감당해야 하는 초역의 무게 아래 오역이 대단하나, 독일의 현대 시문학에서 중요하게 평가되는 시를 처음으로 소개하고 알린 의의는 여전히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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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 이승욱 역의 <과꽃>(199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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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승욱은 독문학자이면서 1991년에 계간지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한 후 여러 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하다. 이승욱이 번역한 <과꽃>은 시선집 <혼자 있는 사람은>에 실려 있다. 이 책은 벤의 시집 <靜詩 Statische Gedichte>에 실린 44편 중 42편을 번역하여 엮은 것으로, 비록 완역은 아니지만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이 시집 전체를 번역의 대상으로 삼은 의의가 있으며, 또 상당한 분량의 해설을 첨부하여 시집과 시인의 시론을 소개하는 의미가 있다. 이승욱이 번역한 <과꽃>은 다음과 같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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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과꽃―, 팽창된 날들, | ||
| + | 해묵은 맹서, 마력, | ||
| + | 신들은 머뭇거리는 시간을 | ||
| + | 천칭 저울에 갖다 댄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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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또 한번 금빛 가축의 무리 | ||
| + | 하늘, 빛, 꽃핀 한 철, | ||
| + | 무엇이 이 케케묵은 생성을 | ||
| + | 죽어 가는 날개 아래 보듬고 있는가? | ||
2025년 5월 6일 (화) 04:22 판
틀:AU000059의 시
| 작가 | 고트프리트 벤(Gottfried Benn) |
|---|---|
| 초판 발행 | 1936 |
| 장르 | 시 |
작품소개
고트프리트 벤이 쓴 시로 1936년 1월 잡지 <시. 문예지>(Das Gedicht. Blätter für die Dichtung)에 실렸다. 총 16행으로 4행-4행-4행-4행의 4연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교차운 abab을 갖고 있다. 명사들을 병렬하면서 서술어를 생략하는 것이 특징적이며 1,2,3연의 첫 행과 둘째 행에는 술어가 없다. 제목인 과꽃은 시의 첫 어휘이기도 하다. 과꽃은 여름부터 가을까지 피는 꽃으로, 이 시에서는 '생성'의 시간이 지속되면서 그 끝이 확연한 지점을 상징한다. 과꽃이 가리키는 남은 여름날들은 불꽃이 사그라들고 열기가 남은 상태이다. 시적 화자는 이 상태를 신들이 얼마간 천칭의 균형을 맞추는 거라고 해석한다. 2연에서는 황금빛으로 찬란했던 여름에 속하는 하늘, 광명, 만개한 꽃이 소환된다. 이로써 여름이 끝나는 징조("죽어가는 날개")와 함께 지난 여름날의 "오래된 생성"이 공존한다. 3연에서 여름은 의인화되어 일련의 행동을 하는데, "멈췄고 기대어섰고 응시하였다"로 과거형이어서 한여름의 찬연한 생성은 이제 한물가고 있다. 여름이 응시하는 대상은 따뜻한 곳을 향하여 떠나는 제비들이다. 2,3,4연은 매번 "다시 한번"으로 시작한다. 이 어휘는 어떤 과정의 돌이킬수 없는 끝을 가리키면서 '아직도'와 '이미'의 경계를 저울질하는 시의 내용을 절묘하게 담아낸다. 4연은 "다시한번 추측하기"로 시작하여 '천칭의 균형'이 겨울로 기우는 것을 지연하고 '아직도'를 기대하는 멜랑콜리한 정조가 나타난다. 하지만 이어지는 시행들은 제비들이 여정을 떠났다는 '이미 확실한 사실'을 알려준다. 벤은 1935년부터 하노버에서 군의관으로 있으면서 그해 여름과 초가을에 몇 편의 시를 썼는데 그 중 <다시 한번(Noch einmal)> 과 <여름이 끝나는 날(Tag, der den Sommer endet)>이 이 시 <과꽃>과 비슷한 주제를 형상화한다. 이 시가 처음 발표되었을 때는 나치가 지배한 시대적 상황때문에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벤은 나치정권이 몰락한 후 1948년에 시집 <정역학적인 시들 (Statische Gedichte)>에 이 시를 재수록했고 이후 시인의 대표적인 '자연시'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국내 초역은 1971년 이동승의 번역으로 <20세기시선>에 실렸다.(을유문화사)
초판 정보
Benn, Gottfried(1936): Astern. In: Das Gedicht. Blätter für die Dichtung. 2(7), Hamburg.
번역서지 목록
| 번호 | 개별작품제목 | 번역서명 | 총서명 | 원저자명 | 번역자명 | 발행연도 | 출판사 | 작품수록 페이지 | 저본 번역유형 | 작품 번역유형 | 비고 |
|---|---|---|---|---|---|---|---|---|---|---|---|
| 물결치는 물 가에서 | 世界戰後問題詩集 | 世界戰後問題詩集 9 | 카슈니츠 | 전혜린 | 1962 | 新丘文化社 | 184 | 편역 | 완역 | ||
| 해변에서 | 시집 : 영국·미국·독일·프랑스 편 | 오늘의 世界文學 11 | 마리 루이제 카슈니츠 | 구기성 | 1970 | 民衆書館 | 199 | 편역 | 완역 | ||
| 해변에서 | 20世紀 獨逸詩. 2 | 探求新書 178 | 마리 루이제 카쉬니츠 | 이동승 | 1981 | 探求堂 | 80-81 | 편역 | 완역 | ||
| 해변에서 | 어린 시절의 뜰이여 : 사랑의 명시모음 : beautiful land | 카시니쯔 | 김선영 | 1985 | 세일사 | 24 | 편역 | 완역 | |||
| 해변에서 | 어린 시절의 뜰이여 : 사랑의 명시모음 : beautiful land | 카시니쯔 | 김선영 | 1985 | 세일사 | 24 | 편역 | 완역 |
번역비평
1. 번역 현황 및 개관
<과꽃 Astern>은 독일 현대시를 대표하는 문제적 시인 고트프리트 벤이 1935년에 쓴 시이다. 벤은 나치가 정권을 잡은 해인 1933년에 나치에 동조하는 글을 발표했고, 프로이센 예술아카데미(Preußische Akademie der Künste)의 문학 부문 책임자로 아카데미가 나치의 기관으로 전락하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열광은 짧았고 곧 차갑게 식어, 벤은 1934년에 자칭 귀족적인 내적 망명의 길을 택했다. <Astern>은 완전히 고립된 상태에 있던 벤이 1935년 8월 말과 9월 초 사이에 하노버의 시청회관 테라스에서 쓴 것으로 추정되는데, 친구인 욀체 F. W. Oelze에게 보낸 9월 3일 자 서신에 이 시를 동봉했다. 그 후 이 시는 1936년 <시 Gedichte>에 처음 실렸고, 같은 해에 시인의 오십 세를 기념해서 인쇄한 <시선집 Ausgewählte Gedichte>에도 실렸다. 이 시집은 나치의 기관지로부터 원색적인 비난과 욕설을 받았고, 시 <Astern>도 주목받지 못했다. 벤은 1938년에 집필 금지 조치를 당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치 정권이 무너진 후 1948년에 벤은 시집 <정역학적 시들 Statische Gedichte>에 <Astern>을 다시 실었다. 주로 1937년부터 쓴 시들을 선별적으로 수록한 이 시집은 시인의 명성을 공고히 했고 전후 독일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Astern>은 오늘날 벤의 대표적인 시로 평가되고 또 가장 유명한 시 중 한 편으로 손꼽힌다. 국내에서는 이동승, 이승욱, 윤동하, 임홍배 등 네 명의 번역자가 총 다섯 번 번역하였으며, 주로 독일대표시인 시선집이나 고트프리트 벤 시선집에 수록되어 있다. 첫 번역은 1970, 80년대에 활발한 번역 활동을 했던 독문학자 이동승의 <과꽃>으로 이 번역시는 1971년 <20세기 시선>에 독일을 대표하는 시인과 시로 수록되었다. 이동승은 십 년 후에 초역을 수정했고, 탐구당에서 기획, 출판한 탐구신서 178권, <20세기 독일시 (II)>에 다시 실었다. 저본 정보는 없으나 원작 시를 번역과 나란히 배치한 대역(對譯)이다. 그 후 이승욱이 1992년에 번역했다. 이승욱의 <과꽃>은 역자가 편역한 벤의 시선집 <혼자 있는 사람은>(청하)에 수록되어 있다. 1994년에는 윤동하의 번역이 출판되었으나, 이동승의 번역과 같아서 표절이 의심된다. 최근에는 임홍배가 번역했고 2023년에 시선집 <모든 이별에 앞서가라. 독일 대표시선>(창비)에 수록되었다. 임홍배의 번역에는 시에 대한 개별적인 해설도 첨부되어 있다.
2. 개별 번역 비평
벤의 시 <Astern>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번역비평에 앞서서 본 논평자의 번역을 덧붙여본다.
Astern – schwälende Tage, 과꽃 – 잔열타는 날들, Alte Beschwörung, Bann, 오랜 주문(呪文), 주술(呪術) die Götter halten die Waage 신들은 망설이는 시간에 eine zögernde Stunde an. 천칭의 수평을 잡는다. Noch einmal die goldenen Herden 다시 한 번 금빛 나는 무리 der Himmel, das Licht, der Flor, 하늘, 빛, 꽃무리, Was brütet das alte Werden 무엇을 오래된 생성이 unter den sterbenden Flügeln vor? 스러지는 날개 품에서 부화하는가? Noch einmal das Ersehnte, 다시 한 번 열망했던 것, den Rausch, der Rosen Du - 도취, 장미의 그대 - der Sommer stand und lehnte 여름이 멈춰 섰고 기대었고 und sah die Schwalben zu, 그리고 제비들을 응시했다. noch einmal ein Vermuten, 다시 한 번 어떤 추측, wo längst Gewißheit wacht: 이미 자명함이 눈 뜬지 오래인데: die Schwalben streifen die Fluten 제비들이 물결을 스치며 und trinken Fahrt und Nacht. 여정과 한밤을 마신다.
시의 제목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보자. 독일어 원제는 Astern으로 이 시의 번역자들은 전부 과꽃으로 번역했다. Astern과 과꽃은 국화과에 속하는데, 속(Genus)이 다르다.[1]
둘은 닮은 모양이지만 같은 꽃이 아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과꽃을 예전부터 동북아시아에서 야생하는 꽃으로 규정하면서, 유럽에서 유입된 아스터와 구별한다. 그런데 시에 쓰인 꽃에 굳이 학명을 들이밀 필요가 있을까? 시에 쓰였다면 필경 은유일 테니 말이다. 시적 메타포로서 한국의 과꽃은 누나에 대한 그리움으로 친숙하다. “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 꽃밭 가득 예쁘게 피었습니다/ 누나는 과꽃을 좋아했지요/ 꽃이 피면 꽃밭에서 아주 살았죠.” 이 노래에 들어있는 과꽃은 소슬한 슬픔과 그리움의 정조를 담고 있다. 벤의 시에서는 Astern이 제목으로 한번, 그리고 시의 첫 어휘 “Astern―”로 한번 나오는데, 줄표를 달고 있어 잔영을 드리우며 여운을 남긴다. 여운을 끄는 것은 어떤 슬픔의 행위이다. 끝날 것을 알지만 제 쪽에서는 결단하지 않으려는 머뭇거림이라고 보면, 여운에 담긴 정조도 그리움과 아주 다르지는 않다. 과꽃과 Astern은 도저히 데칼코마니가 되지 않고, 하나가 다른 하나로 대체될 수 없다. 그런데 서로가 ‘먼 그대’인 두 꽃은 어딘가 포개어진다. 부재를 알면서 그리움을 묻히고 있는 한국의 동요 “과꽃”과 줄표의 꼬리를 길게 끄는 독일어 시 <Astern>은 닮은 구석이 있어 보인다. 원작 시와 번역시도 이렇지 않을까? 시의 원천적인 번역 불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번역시 <과꽃>은 원작 시 <Astern>과 어디쯤에선가 포개진다. 그리고 그것은 전적으로 원작 시에서 도착어로 옮겨와야 할 것을 찾아내는 번역자의 선택과 결정에 달려있다. 이 점에 유의하면서 이동승, 이승욱, 임홍배의 번역시 <과꽃>의 특징들을 짚어보기로 한다.
1) 이동승 역의 <과꽃>(1971), (1981)
이동승은 <과꽃>을 국내 최초로 번역했으며 십 년 후에는 초역을 수정하는 재번역을 하였다. 두 번의 번역시 전문은 다음과 같다.
과꽃― 灼熱하는 날들. 과꽃― 灼熱하는 날들, 낡은 盟誓, 그리고 强制, 낡은 맹서, 그리고 강제, 神들은 저울과 神들은 저울과 주저하는 時間을 押留한다. 주저하는 시간을 押留한다. 또다시 금빛나는 家畜의 무리 하늘과, 빛, 만발한 꽃들은, 하늘, 광명, 그리고 면사포, 또 한번 황금빛 가축의 무리, 낡은 生成은 또한 무엇을 낡은 생성은 무엇을 낡은 날개 아래 품고 있는가? 죽어가는 날개 아래 품고 있을까? 또다시 그 渴望하던 것, 또 한 번 그 갈망하던 것, 그 陶醉를, 그리고 장미의 그대― 그 陶醉, 장미의 그대― 여름은 停止하고 기대서서 여름은 정지하고 기대어 서서 제비의 무리들을 보고 있었다. 제비들을 보고 있었다. 벌써 確信이 눈을 뜬 곳에 이미 확신이 눈을 뜬 곳에, 또다시 臆測, 또 다시 억측이 나타났으니: 제비는 물결을 타고 가면서 제비들은 물결을 스쳐가면서 遍歷과 밤을 마시고 있다. 遍歷과 밤을 마시고 있다. (이동승 1971, 266) (이동승 1981, 30)(이하 밑줄 강조는 평자)
초역과 재번역을 나란히 놓고 보면 변한 것 보다 변하지 않은 것이 더 눈에 띈다. 시어의 상당수를 이루는 명사, “작열, 맹서, 강제, 압류, 가축, 갈망, 도취, 확신, 억측” 등이 초역 상태 그대로 재번역으로 이동되었다. “der Flor”를 면사포로 오역한 것만 “만발한 꽃”으로 수정되었을 뿐이다. 벤의 시 <Astern>을 가장 이 시답게 하는 것이 뭔지 확 잡히지 않으나, 그것의 한 구성 요소가 명사와 명사화인 것은 확실하다. 이 시에는 명사가 다수일 뿐 아니라, 매 연의 1행과 2행은 술어 없이 명사들이 병렬되어 있다. 동사가 있을 곳에는 “das alte Werden”, “ein Vermuten”처럼 동사가 명사로 조탁되고, “schwälende Tage”, “sterbende Flügel”처럼 동사가 형용사화된다. 이런 까닭에 이동승이 두 번역에서 번역자의 의지가 느껴지도록 명사를 수정하지 않은 점에 주목하게 된다. 1971년에 번역한 1연은 토씨 하나 변하지 않고 1981년의 재번역에 고스란히 옮겨졌다. “작열하는 날들”은 불꽃이 강렬히 타오르는 이미지로 뜨거운 여름의 한가운데 있는 듯하다. 뜨겁게 불타오르는 날들에 “강제”적으로 시간을 압류하는 신들이 대구를 이룬다. 신들이 강제를 당했을 리는 없을 터, 신들은 그들의 위력으로 시간을 무효화한다. “주저하는 시간을”에 해당하는 원문은 “eine zögernde Stunde”로 부사로 읽는 게 문법적이지만, 이동승의 번역처럼 목적어로 읽으면 신들의 압류 대상임이 확실히 드러난다. 이동승의 <과꽃> 1연은 여름의 한 가운데서 신들이 시간의 흐름을 정지시키고, 이로써 여름이 계속될 것 같은 연상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서 “과꽃―”은 그만 철모르고 빨리 꽃을 피운 셈이다.
이번에는 초역과 비교해서 재번역에서 변한 지점을 보자. 벤의 원작 시 <Astern>에는 쉼표, 줄표, 쌍점 등으로 끝나는 시행들이 많고 이는 문장부호의 기능을 넘어 벤이 ‘기예 Artistik’라고 불렀던 형식화와 구성화의 한 특성을 보여준다. 벤은 타이프라이터로 쓴 초고에서는 4연의 2행을 “wo längst die Gewißheit wacht -”로 써서 줄표를 넣었는데, 출판을 위한 원고에서는 줄표를 쌍점으로 바꾸었다. 이로써 3행과 4행, 즉 제비가 저공비행으로 밤을 가로지르며 떠나가는 것이 2행의 자명한 사실의 내용이 된다. 1연에서 신들이 시간의 흐름을 잠시 멈추었지만 4연에서는 계절의 변화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이다. 이동승은 1971년의 번역에서는 “또다시 臆測,”이라고 하여 쉼표로 시행을 매겼고 1981년의 번역에서는 쉼표를 쌍점으로 바꾸어 원작 시와 문장부호를 똑같이 만든다. 1971년의 쉼표는 전반부와 후반부 사이에 휴지부를 만들어, 확신과 억측이 공존하는 전반부와 제비가 날아가는 후반부의 연결이 필연적이지 않다. 1981년 번역에 있는 쌍점은 제비들이 떠나는 후반부를 전반부 “또 다시 억측이 나타났으니:”의 내용으로 만든다. 1연에서 신들이 시간을 압류하였고 시간은 여름에 정지해 있어서, 4연에서 제비들의 길 떠남이 뜨거운 계절에 맞지 않는 억지스러운 추측이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동승의 <과꽃>은 벤의 <Astern>과는 상당히 다른 번역시이다. 이동승의 번역은 오롯이 혼자서 원문을 감당해야 하는 초역의 무게 아래 오역이 대단하나, 독일의 현대 시문학에서 중요하게 평가되는 시를 처음으로 소개하고 알린 의의는 여전히 있다.
2) 이승욱 역의 <과꽃>(1992)
이승욱은 독문학자이면서 1991년에 계간지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한 후 여러 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하다. 이승욱이 번역한 <과꽃>은 시선집 <혼자 있는 사람은>에 실려 있다. 이 책은 벤의 시집 <靜詩 Statische Gedichte>에 실린 44편 중 42편을 번역하여 엮은 것으로, 비록 완역은 아니지만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이 시집 전체를 번역의 대상으로 삼은 의의가 있으며, 또 상당한 분량의 해설을 첨부하여 시집과 시인의 시론을 소개하는 의미가 있다. 이승욱이 번역한 <과꽃>은 다음과 같다.
과꽃―, 팽창된 날들, 해묵은 맹서, 마력, 신들은 머뭇거리는 시간을 천칭 저울에 갖다 댄다.
또 한번 금빛 가축의 무리 하늘, 빛, 꽃핀 한 철, 무엇이 이 케케묵은 생성을 죽어 가는 날개 아래 보듬고 있는가?
바깥 링크
- ↑ Astern의 학명은 Aster L.이고 과꽃의 학명은 Callistephus chinensis (L.) N.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