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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종서 역의 <마리오와 마술사>(1959/1974)
 
1) 박종서 역의 <마리오와 마술사>(1959/1974)
  
토마스 만이 국내에 번역 소개된 것은 1950년대 후반부터다. 1959년에 박종서, 박찬기, 강두식, 정경석이 토마스 만의 소설들을 번역 출판하면서 토마스 만이 국내 독자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박종서는 정음사 세계문학전집 38권을 통해 <마리오와 마술사>, <선택받은 사람>,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토니오 크뢰거>를 번역 출판했는데, 이 네 작품 모두 국내 초역이다. 토마스 만의 국내 소개 및 수용에 박종서가 작지 않은 역할을 담당했다고 할 수 있겠다. 박종서의 이 번역서에는 작가의 작품세계 전반에 대한 해설과 작품 연보가 실려 있는데, <마리오와 마술사>에 대해서는 “앞날의 정치적 활동을 예시하는 듯한 작품”(박종서 1974, 7)으로 평가하면서 작가가 이 작품을 “파시즘의 심리학”이라고 말했다고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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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만이 국내에 번역 소개된 것은 1950년대 후반부터다. 1959년에 박종서, 박찬기, 강두식, 정경석이 토마스 만의 소설들을 번역 출판하면서 토마스 만이 국내 독자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박종서는 정음사 세계문학전집 38권을 통해 <마리오와 마술사>, <<nowiki>><</nowiki>[[선택받은 사람]]<<nowiki>></</nowiki>>, <<nowiki>><</nowiki>[[베네치아에서의 죽음]]<<nowiki>></</nowiki>>, <<nowiki>><</nowiki>[[토니오 크뢰거]]<<nowiki>></</nowiki>>를 번역 출판했는데, 이 네 작품 모두 국내 초역이다. 토마스 만의 국내 소개 및 수용에 박종서가 작지 않은 역할을 담당했다고 할 수 있겠다. 박종서의 이 번역서에는 작가의 작품세계 전반에 대한 해설과 작품 연보가 실려 있는데, <마리오와 마술사>에 대해서는 “앞날의 정치적 활동을 예시하는 듯한 작품”(박종서 1974, 7)으로 평가하면서 작가가 이 작품을 “파시즘의 심리학”이라고 말했다고 소개한다.  
  
 
박종서 번역의 특징은 토마스 만 특유의 장문의 문체를 살려 번역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단어들을 빠짐없이 번역하여, 번역문의 분량이 다른 역자들의 그것보다 긴 것도 특징이다. 마술사 치폴라가 공연 중에 자신의 의지를 완전히 배제하고 공동체, 즉 관객의 의지를 그대로 실행에 옮기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 말하면서 그런 자기 일이 매우 힘들다고 강조하는 다음 부분을 살펴보자.  
 
박종서 번역의 특징은 토마스 만 특유의 장문의 문체를 살려 번역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단어들을 빠짐없이 번역하여, 번역문의 분량이 다른 역자들의 그것보다 긴 것도 특징이다. 마술사 치폴라가 공연 중에 자신의 의지를 완전히 배제하고 공동체, 즉 관객의 의지를 그대로 실행에 옮기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 말하면서 그런 자기 일이 매우 힘들다고 강조하는 다음 부분을 살펴보자.  

2025년 6월 11일 (수) 03:00 판

토마스 만(Thomas Mann, 1875-1955)의 소설

마리오와 마술사
(Mario und der Zauberer)
작가토마스 만(Thomas Mann)
초판 발행1930
장르소설


작품소개

1930년에 발표된 토마스 만의 중편소설이다. 토레 디 베네레라는 이탈리아의 해변가 휴양지에서 주인공 가족은 군중심리와 민족주의에서 야기된 불쾌한 작은 사건을 경험한 후에 서커스를 보러 간다. 서커스에서 치폴라라는 이름을 가진 곱사등이 마술사는 관객들을 차례차례 마술로 압도한다. 마술의 절정은 관객에게 최면을 걸고 심리전을 펴 그의 자유의지를 빼앗고 마술사의 명령에 복종케 해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하게 만드는 것이었는데, 안지올리에라 부인과 마리오에게서 그 최고조 상태에 이른다. 특히 마리오에게 내면의 비밀스런 사랑을 고백하고 환각 속에서 마술사를 연인으로 알고 키스하게 만들며 행복의 절정에 다다르는 장면을 연출하여 관객의 비웃음을 자아내는데 이에 최면에서 깨어난 마리오는 치폴라를 쏘아 죽인다. 이 작품은 환각과 심리적인 기만으로 군중을 현혹하는 치폴라를 통하여 당대의 이탈리아의 파시즘을 경고하고, 더 나아가 나치의 파시즘을 예견한 것으로 해석된다. 1959년 박종서에 의해 처음 번역되었다(정음사).


초판 정보

Mann, Thomas(1930): Mario und der Zauberer - Ein tragisches Reiseerlebnis. In: Velhagen und Klasings Monatshefte 8, 113-136.

<단행본 초판> Mann, Thomas(1930): Mario und der Zauberer. Berlin: S. Fischer.


번역서지 목록

번호 개별작품제목 번역서명 총서명 원저자명 번역자명 발행연도 출판사 작품수록 페이지 저본 번역유형 작품 번역유형 비고
1 마리오와 魔術師 選擇된 人間, 토니오 크뢰거 外 世界文學全集 19 토마스 만 朴鍾緖(박종서) 1959 正音社 243-290 편역 완역 초판
2 마리오와 魔術師 펠릭스 크룰의 告白, 幻滅, 토니오 크뢰거, 마리오와 魔術師 世界文學全集 ; 第1期 4 토마스 만 姜斗植(강두식) 1959 東亞出版社 435-484 편역 완역
3 마리오와 마술사 간텐바인, 마리오와 마술사 新選世界文學全集 6 토마스 만 姜斗植(강두식) 1969 啓蒙社 365-422 편역 완역
4 마리오와 魔術師 選擇된 人間, 토니오 크뢰거 外 世界文學全集 38 토마스 만 박종서 1969 正音社 243-290 편역 완역 중판, 총서번호 19에서 38로 변화
5 마리오와 魔術師 토마스 만 短篇集 世界短篇文學大系 15 토마스 만 崔鉉(최현) 1971 尙書閣 143-206 편역 완역
6 마리오와 魔術師 펠릭스 크룰의 告白 外 世界文學大系 11 토마스 만 姜斗植(강두식) 1971 世界文學社 435-484 편역 완역
7 마리오와 魔術師 토마스 만 短篇集 文藝文庫 20 토마스 만 姜斗植(강두식) 1973 文藝出版社 189-272 편역 완역 초판
8 마리오와 魔術師 토마스 만 短篇集 世界短篇文學全 12 Thomas Mann 池明烈; 李甲圭(지명렬; 이갑규) 1974 汎潮社 166-238 편역 완역 초판
9 마리오와 魔術師 토마스 만 中篇選 三中堂文庫 60 토마스 만 池明烈(지명렬) 1975 三中堂 153-223 편역 완역
10 마리오와 魔術師 토마스 만 短篇集 世界短篇文學全集 12 Thomas Mann 池明烈; 李甲圭(지명렬; 이갑규) 1975 汎潮社 166-238 편역 완역 중판, 실린 작품 증가
11 마리오와 魔術師 異邦人, 마리오와 魔術師 世界靑春文學名作選 5 토마스 만 확인불가 1975 學園出版社 119-192 편역 완역 판권기에 75년 학원 7월호 부록이라 밝히고 있음
12 마리오와 魔術師 世界文學全集, 13 新選 世界文學全集 13 토마스 만 姜斗植(강두식) 1976 三珍社 11-58 편역 완역
13 마리오와 마술사 토니오 크레가 Short book 4 토마스만 池明烈(지명렬) 1977 汎潮社 166-238 편역 완역 초판, 1985년 중판 / 중판의 판권기에 따라 초판을 찾아냈으나 소장기관이 없어 실물을 확인하지 못함. 일부 정보는 중판에 따라 기입
14 마리오와 魔術師 마리오와 마술사, 간텐바인, 아담, 너는 어디 가 있었나 世界文學大全集 30 토마스 만 姜斗植(강두식) 1980 太極出版社 11-58 편역 완역
15 마리오와 魔術師 토마스 만 短篇集 世界短篇文學大系 15 토마스 만 崔鉉(최현) 1980 尙書閣 143-206 편역 완역 작품(프리데만)과 연보가 추가된 중판
16 마리오와 魔術師 토니어 크뢰거 해외걸작단편집 5 토마스 만 강두식 1982 文藝出版社 189-272 편역 완역 초판과 다른 순서로 구성된 중판으로 2006년판까지 이 순서대로 작품이 구성되어 출판됨
17 마리오와 魔術師 世界中篇文學選集, 8 世界中篇文學選集 8 토마스 만 池明烈(지명렬) 1983 汎潮社 101-174 편역 완역
18 마리오와 마술사 토마스 만 단편선 범우사르비아문고 112 토마스 만 池明烈(지명렬) 1985 汎友社 161-230 편역 완역 초판
19 마리오와 魔術師 토니어 크뢰거 文藝敎養選書 45 토마스 만 姜斗植(강두식) 1986 文藝出版社 189-272 편역 완역 2006년판 판권기에 적힌 1987년 2판은 찾을 수 없음, 따라서 이 판본이 2판임이 유력함 / 책표지, 표제면과 (토니어 크뢰거) 본문에서의 (토니오 크뢰거) 저작 제목이 다름
20 마리오와 魔術師 選擇된 人間, 토니오 크뢰거 外 世界文學全集 38 토마스 만 朴鍾緖(박종서) 1986 正音文化社 243-290 편역 완역 정음문화사의 초판
21 마리오와 마술사 트리스탄 호암명작신서 7 토마스 만 이영규 1987 호암출판사 225-284 편역 완역
22 마리오와 마술사 마리오와 마술사 세계문학 5 토마스 만 확인불가 1990 시대평론 7-95 완역 완역
23 마리오와 마술사 토니오 크뢰거, 트리스탄, 베니스에서의 죽음 세계문학전집 8 토마스 만 임홍배 1998 민음사 109-186 편역 완역 1998년도 초판 1쇄 발행 당시에는 '토니오 크뢰거, 트리스탄'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으나 대략 2003년부터는 '토니오 크뢰거, 트리스탄, 베니스에서의 죽음'으로 제목이 변경된 것으로 보임. 그 이후로는 이 제목으로 고정된 채 쇄를 거듭했기에 1쇄 당시의 제목이 아닌 본 제목으로 기록함
24 마리오와 마술사 토마스 만 단편선 사르비아 총서 609 토마스 만 지명렬 2002 범우사 191-274 편역 완역 2판
25 마리오와 마술사 토니오 크뢰거 문예세계문학선 45 토마스 만 강두식 2006 문예출판사 195-278 편역 완역 3판
26 마리오와 마술사 (생각의 깊이를 더해 주는) 괴테, 토마스 만, 니체의 명언들 토마스 만 윤순식 2009 누멘 86-87 편역 편역
27 마리오와 마술사 마리오와 마술사 클래식 레터북 시리즈 025 토마스 만 염정용 2014 인디북 7-110 편역 완역
28 마리오와 마술사 토마스 만 작품집 범우 세계 문학 작품집 시리즈 토마스 만 지명렬 2017 범우 17-115 편역 완역



번역비평

1. 번역 현황 및 개관

토마스 만이 1930년에 발표한 이 중편소설은 1929년 8월과 9월, 작가가 휴가 중에 해변의 흔들의자에서 집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휴가를 가서도 글을 쓰는 데 익숙해 있던 만은 당시 집필하던 대작 <요셉과 그 형제들>의 자료들을 갖고 가 집필하는 대신, 3년 전 이탈리아에서의 휴가 기억 외에는 어떤 자료도 필요하지 않은 작은 작품을 쓰기로 결심하고 이 작품을 썼다. 이 소설은 처음부터 유난히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작가의 주요 작품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고, 독일어 수업 교재로도 자주 이용된다. 이 소설의 초기 수용은 대체로 비정치적이었다가, 2차 대전 이후에는 파시즘과의 연관성 속에서, 즉 이 소설이 파시즘에 대한 분석을 제공한다는 가정하에 수용되었다. 작가 자신도 처음에는 정치적인 의도에서 이 작품을 쓴 것이 아니라고 했는데 1940년대에 가서는 “독재자에 의한 강간 경고”라고 정치적인 해석을 제시했다. 현재 이 소설은, 최면술로 군중을 현혹하고 기만하는 마술사 치폴라를 통해 당시 이탈리아의 파시즘을 경고하고, 나아가 나치의 파시즘을 예견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제 국내 번역 현황을 살펴보면, 2024년 7월 현재 총 28종의 번역서가 나와 있다. 초역은 1959년 3월 박종서에 의해 이루어졌으며(정음사), 같은 해 9월 강두식도 번역서를 출판했다(동아출판사). 이들 두 사람의 번역본은 1960년대에 총서번호를 달리하거나 출판사를 바꾸어 다시 출판되면서 이 작품의 국내 수용을 담당했다. 1970년대와 80년대에는 번역서 수가 9종과 8종으로 급격하게 늘어났는데, 새로운 번역자에 의한 것은 각각 2종과 1종뿐이다. 70년대에 최현과 지명렬이, 80년대에 이영규가 새롭게 번역서를 냈을 뿐 기존 역자들의 번역이 재출판된 것이다. 90년대 이후 새로운 번역자는 각각 98년과 2014년에 번역서를 낸 임홍배와 염정용이며, 이 시기의 번역서 또한 2종, 3종씩으로 7~80년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번역서가 출판되었다. 그래서 확인 불가 두 종과 편역서 한 종을 제외하고 완역은 7명의 번역자에 의해 25종이 나온 셈이다. 독일문학 1세대라 할 수 있는 강두식(9회), 지명렬(8회), 박종서(3회), 최현(2회)의 번역본이 이 소설의 국내 수용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으며, 90년대부터는 번역서 출판이 상대적으로 저조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중편소설이라는 이 작품의 특성상 <토마스 만 단편선> 속의 한 작품으로 출판된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 작품이 표제작으로 출판된 경우는 염정용의 번역서가 유일하다.

이하에서는 이 작품의 국내 초역인 박종서의 번역본과 국내 수용의 상당 부분을 담당한 강두식, 지명렬의 번역본 그리고 비교적 최근에 번역한 임홍배와 염정용의 번역서를 개별적으로 자세히 살펴보려 한다.


2. 개별 번역 비평

1) 박종서 역의 <마리오와 마술사>(1959/1974)

토마스 만이 국내에 번역 소개된 것은 1950년대 후반부터다. 1959년에 박종서, 박찬기, 강두식, 정경석이 토마스 만의 소설들을 번역 출판하면서 토마스 만이 국내 독자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박종서는 정음사 세계문학전집 38권을 통해 <마리오와 마술사>, <><선택받은 사람<></>,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토니오 크뢰거<></>를 번역 출판했는데, 이 네 작품 모두 국내 초역이다. 토마스 만의 국내 소개 및 수용에 박종서가 작지 않은 역할을 담당했다고 할 수 있겠다. 박종서의 이 번역서에는 작가의 작품세계 전반에 대한 해설과 작품 연보가 실려 있는데, <마리오와 마술사>에 대해서는 “앞날의 정치적 활동을 예시하는 듯한 작품”(박종서 1974, 7)으로 평가하면서 작가가 이 작품을 “파시즘의 심리학”이라고 말했다고 소개한다.

박종서 번역의 특징은 토마스 만 특유의 장문의 문체를 살려 번역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단어들을 빠짐없이 번역하여, 번역문의 분량이 다른 역자들의 그것보다 긴 것도 특징이다. 마술사 치폴라가 공연 중에 자신의 의지를 완전히 배제하고 공동체, 즉 관객의 의지를 그대로 실행에 옮기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 말하면서 그런 자기 일이 매우 힘들다고 강조하는 다음 부분을 살펴보자.

 Die Fähigkeit, sagte er, sich seiner selbst zu entäußern, zum Werkzeug zu werden, im unbedingtesten und vollkommensten Sinne zu gehorchen, sei nur die Kehrseite jener anderen, zu wollen und zu befehlen; es sei ein und dieselbe Fähigkeit; Befehlen und Gehorchen, sie bildeten zusammen nur ein Prinzip, eine unauflösliche Einheit; wer zu gehorchen wisse, der wisse auch zu befehlen, und ebenso umgekehrt; der eine Gedanke sei in dem anderen einbegriffen, wie Volk und Führer ineinander einbegriffen seien, aber die Leistung, die äußerst strenge und auftreibende Leistung, sei jedenfalls seine, des Fühers und Veranstalters, in welchem der Wille Gehorsam, der Gehorsam Wille werde, dessen Person die Geburtstätte beider sei, und der es also sehr schwer habe.[1]
자기 자신을 단념해버리고 남의 뜻을 받은 도구가 되어, 어디까지나 절대적이며 완전한 의미에 있어서 남한테 복종하는 능력은 의지로써 명령하는 다른 한 쪽 능력의 일면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 두 종류의 능력은 결국 하나이며, 명령과 복종은 서로 합쳐서 한 개의 원리, 헤칠수 없는 통일체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복종할 수 있는 사람, 다시 말하면 그런 사람은 명령할 수 있는 자이며, 명령할 수 있는 자는 복종할 수 있는 자에 지나지 않는다. 마치 국민과 그 지도자가 둘인 동시에 하나인 것처럼, 한 쪽 사상이 딴 사상 속에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극도로 곤란하고 신심을 소모하는 실천은 어떻든간에 지도자이며 주재자(主宰者)로서의 임무이며, 그러한 지도자일수록 의지는 복종이고 복종은 의지가 되는 것이며, 의지와 복종이 생겨나는 곳은 바로 그러한 인물이기 때문에, 그의 생활은 사실 괴롭기 한이 없는 것이다.(박종서 1974, 272) 

토마스 만이 세미콜론을 사용하여 문장을 길게 가져갔다면 박종서는 “-이며”를 사용하여 원문의 호흡과 문체를 존중하면서 긴 문장을 만들어냈다. 이런 장문들로 인해 가독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국내 초역이면서도 당시의 번역 현황에 비추어 볼 때 번역이 매우 양호한 편이고, 노벨상 작가이자 독일의 대문호 특유의 문체를 엿볼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번역자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박종서의 번역은 이후 60년대와 80년대에도 재출판되면서 이 작품의 국내 수용에 한 축을 담당했다.


2) 강두식 역의 <마리오와 마술사>(1959/1973/2013)

강두식의 번역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총 9회로 가장 많이, 꾸준히 출판되면서 가장 많이 읽힌 번역본이 아닐까 생각된다. 여기서는 1973년에 제1판 1쇄가 나온 문예출판사의 2013년도 제3판 재쇄를 비평에 참고하였다. <토니오 크뢰거>를 대표작품으로 내건 <토마스 만 단편선>에서 역자는, 작가가 “무솔리니 통치 시대의 이탈리아 체류에서 얻은 소재를 특별한 기교 없이 써내려간 여행기와 같은 인상을 주는 이 작품은 당시 이탈리아에 떠돌던 공포 정치의 분위기를 너무나도 분명하게 포착”한 것으로, “우중을 희롱하는 독재 정치에 대한 상징”(강두식, 272-273)이라고 해설한다. 작품에 대한 이런 특성 규정 및 해설이 민주화를 열망하는 국내 상황과 맞물리면서 지속적인 출판으로 이어지지 않았나 생각된다.

강두식의 번역은 전반적으로 원문의 상황 또는 분위기를 잘 파악하여 전달하는 편이다. 소설의 끝부분에서 마술사 치폴라가 마리오에게 최면을 걸어 마술사를 실베스트라로 착각하여 키스하게 만드는 장면을 살펴보자.

Wenn ich mich an ihre Stelle versetze, siehst du, und die Wahl habe zwischen so einem geteerten Lümmel, so einem Salzfisch und Meeresobst ― und einem Mario, einem Ritter der Serviette, der sich unter den Herrschaften bewegt, der den Fremden gewandt Erfrischungen reicht und mich liebt mit wahrem, heißem Gefühl, ― meiner Treu, so ist die Entscheidung meinem Herzen nicht schwer gemacht, so weiß ich wohl, wem ich es schenken soll, wem ganz allein ich es längst schon errötend geschenkt habe. Es ist Zeit, daß er’s sieht und begreift, mein Erwählter! Es ist Zeit, daß du mich siehst und erkennst, Mario, mein Liebster ... Sage, wer bin ich?(709; 밑줄 필자 표기)
내가 만일 그 처녀라면 말이오, 알겠소. 한 작자는 먹칠한 듯한 불한당, 바다의 과실이고―또 한 분, 바로 이 마리오 씨, 손님들 사이를 오락가락하시며, 외국 손님들에게 솜씨 있게 마실 것을 돌리시는 냅킨의 기사 양반, 더구나 저를 진실하고 열렬한 마음으로 사랑해주시는 분―저의 잊을 수 없는 분, 이 둘 중의 누구를 택할까, 어떤 분에게 사랑을 바칠까, 그런 것쯤은 저도 잘 알고 있어요. 벌써 오래전부터 저는 부끄러우면서도 한 분에게 이미 제 마음을 바치고 있었어요. 제 마음을 짐작하시고 생각해주실 때가 되지 않았어요, 여보세요! 저를 보시고 본심을 알아줄 때가 되지 않았어요. 네, 마리오 씨, 나의 사랑... 말해보세요, 저를 아시겠어요?(강두식, 263-264) 

실베스트라를 짝사랑하는 마리오의 마음을 간파한 마술사는 마리오를 무대로 불러 위와 같은 말들로 현혹한다. 원문의 첫 문장은 조건, 가정의 의미의 wenn 접속사로 시작하는 비교적 긴 문장으로 첫 번째 일인칭 대명사 ich와 mich는 마술사 자신이고 두 번째부터 ich와 mich는 실베스트라이다. 마술사는 마리오에게 말하는 도중 은연중에 실베스트라로 화하여 그녀가 마리오에게 직접 말하는 것처럼 꾸민다. 강두식은 한 문장 안에서 일인칭 대명사가 지칭하는 이가 달라지는 이런 상황을 잘 인지하여 번역함으로써 원문의 의미와 분위기를 잘 전달하였다. 다만 마리오의 연적이라 할 수 있는 또 다른 청년, 원문에는 “einem geteerten Lümmel, so einem Salzfisch und Meeresobst”로 되어 있는데, 이를 “먹칠한 듯한 불한당, 바다의 과실”로 번역한 점이나 –임홍배는 이를 “소금에 절인 생선인지 짠물에 담근 과일인지 모를 그런 까무잡잡한 건달”(임홍배, 183)로 번역함- 긍정적 뉘앙스의 “아아” 정도의 감탄사인 “meiner Treu”를 “저의 잊을 수 없는 분”으로 번역한 점, 그리고 so 이하의 부문장 부분에서 원문의 순서를 따르지 않은 점들도 발견되지만, 원문의 복잡한 상황을 비교적 잘 전달하여 잘 읽히는 편이다.

강두식은 상황 전달을 중시하다 보니 때로는 화용적 맥락을 많이 고려한 번역을 보여준다. 위의 번역문에서 마리오는 “한 분”으로, 그의 연적은 “한 작자”로 번역되었는데, 원문에는 이러한 구분이 없다. 마술사가 산수 문제를 푸는 마술을 보여주기 위해 숫자를 받아써 줄 청년 두 명을 무대로 불러냈는데, 그들이 자기들은 글씨를 쓸 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을 “쓸 줄 모르는뎁쇼”, “저도 못하는뎁쇼”(강두식, 222)라고 번역한 것도 그 한 예라 하겠다. 그리고 일인칭 서술자가 이탈리아의 휴양지 호텔에서 자기 가족이 부당하게 방을 옮기게 만든 한 공작부인에 대해 말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럴 때면 입술을 산호처럼 새빨갛게 칠한 공작 부인이 아기작거리는 걸음걸이로 나타나시는 것을 볼 수도 있었다. 영국 여자로 하여금 보살피게 한 귀염둥이 어린애들을 돌아보겠다고 나오시는 것인데, 우리들, 전염이 될까 무서운 집안이 곁에 있는 줄은 꿈에도 생각 못하신다.”(강두식, 197) 여기서도 “나타나시는”, “나오시는”, “못하신다” 같은 표현은 역자가 서술자의 감정에 이입되어 번역했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이 또한 맥락을 고려한 것으로 독자에게 미소를 짓게 만든다. 강두식의 번역본에서는 1973년 이 번역본 초판 당시의 시대적, 문화적 배경에 따른 어휘들이 종종 발견된다. “여편네 소견”(194), “병신”(218), “계집아이”(241) 등의 어휘들이 그것이다. 특히 병신이라는 단어는 매우 자주 사용되는데, 당시에는 이런 식의 낮잡아 이르는 말들이 일반적이었을지라도 판을 달리하여 출판될 때 시대적, 문화적 배경에 맞게 순화되었으면 어땠을지 생각해 본다.


권선형


  • 각주
  1. Thomas Mann(1990): Mario und der Zauberer. Ein tragisches Reiseerlebnis. In: Thomas Mann. Gesammelte Werke in dreizehn Bänden. Vol. 8. Frankfurt a. M.: Fischer Taschenbuch Verlag, 691-692. 이하에서는 본문에 쪽수를 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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