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과 도로테아 (Hermann und Doroth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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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의 서사시

헤르만과 도로테아
(Hermann und Dorothea)
작가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초판 발행1797
장르


작품소개

6각운 기본운율의 연작시 9편으로 이루어진 괴테의 서사시이다. 프랑스 혁명군에게 쫓겨 온 독일 피난민 행렬 속에서 도로테아를 만난 헤르만이 빈부 차이 때문에 두 사람의 혼인을 반대하는 부친을 설득하여 신부로 맞이하게 되는 내용이 서사의 줄거리다. 그리스 신화의 아홉 명의 뮤즈를 각 시편의 제목으로 삼고 있는 이 서사시의 양식은 호메로스의 번역가로 알려진 요한 하인리히 포스의 목가(牧歌) <루이제>(1795)를 수용했다. 괴테는 종교혁명 당시 잘츠부르크 주교좌에서 바이에른으로 추방된 루터파 교인들의 이민사를 나폴레옹에게 쫓겨난 라인강 좌안(左岸)의 독일 피난민 이야기로 옮겨 놓았다. 이 서사시는 발표 당시 시민적 유능함과 독일 애국주의를 고취시키는 명작으로 쉴러, 헤겔, 빌헬름 폰 훔볼트 등의 호평을 받았다. 국내에서는 1921년 양하엽에 의해 처음 번역되었다(조선일보).


초판 정보

Goethe, Johann Wolfgang von(1797): Hermann und Dorothea. Epos in neun Gesängen. Berlin: Vieweg.


번역서지 목록

번호 개별작품제목 번역서명 총서명 원저자명 번역자명 발행연도 출판사 작품수록 페이지 저본 번역유형 작품 번역유형 비고
1 헤르만과 도로테아 (컬러版)世界短篇文學大系 2 古典主義文學 (컬러版)世界短篇文學大系 2 괴테 李鼎泰(이정태) 1971 博文社 274-321 편역 완역
2 헤르만과 도로테아 파우스트, 헤르만과 도로테아 世界文學全集 10 궤에테 金達湖(김달호) 1972 正音社 363-436 편역 완역
3 헤르만과 도로테아 世界文學全集 5 世界文學全集 5 괴에테 李孝祥(이효상) 1973 東西文化社 407-456 편역 개작 서사시를 산문으로 개작
4 헤르만과 도로테아 괴테 短篇集 世界短篇文學全集 1 괴테 朴煥德(박환덕) 1974 汎潮社 203-310 편역 개작 서사시를 산문으로 개작
5 헤르만과 도로테아 世界文學大全集 2 世界文學大全集 2 괴테 朴煥德(박환덕) 1974 大洋書籍 371-430 편역 완역
6 헤르만과 도로테아 (新譯)괴에테全集 5. 헤르만과 도로테아 (新譯)괴에테全集 5 괴에테 鄭鎭雄(정진웅) 1974 光學社 13-134 편역 완역
7 헤르만과 도로테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주니어版 世界文學名作選 3 괴에테 민영 1975 오월문화사 189-267 편역 개작 서사시를 산문으로 개작
8 헤르만과 도로테어 헤르만과 도로테어 外 世界의 敎養 괴에테 宋基昌(송기창) 1975 春秋閣 18-121 편역 개작 서사시를 산문으로 개작
9 헤르만과 도로테아 世界短篇文學大全集 2 世界短篇文學大全集. 古典主義文學 2 괴테 李鼎泰(이정태) 1975 大榮出版社 242-287 편역 완역
10 헤르만과 도로테아 世界短篇文學全集 4 世界短篇文學全集 4 괴에테 洪京鎬(홍경호) 1976 金字堂 12-86 편역 완역
11 헤르만과 도로테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레먼文庫 68 괴에테 민영 1980 靑字閣 189-267 편역 개작 서사시를 산문으로 개작
12 헤르만과 도로테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헤르만과 도로테아 外 (愛藏版)世界文學大全集 3 괴테 洪京鎬(홍경호) 1981 금성출판사 113-169 편역 완역
13 헤르만과 도로테아 젊은 베르테르의 번민, 헤르만과 도로테아 世界中篇文學選集 1 괴테 朴煥德(박환덕) 1983 汎潮社 203-310 편역 개작 서사시를 산문으로 개작
14 헤르만과 도로테아 世界短篇文學全集 4 (三省堂版)世界短篇文學全集 4 괴에테 洪京鎬(홍경호) 1984 三省堂 12-86 편역 개작 서사시를 산문으로 개작
15 헤르만과 도로테아 젊은 베르터의 슬픔, 헤르만과 도로테아, 親和力 Sunshine series, 世界文學全集 4 괴테 洪京鎬(홍경호) 1987 금성출판사 131-195 편역 완역
16 헤르만과 도로테아 (金星版)世界文學大全集 10 (金星版)世界文學大全集 10 괴테 洪京鎬(홍경호) 1990 金星出版社 131-195 편역 완역
17 헤르만과 도로테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헤르만과 도로테아 혜원세계문학 11 J.W.V.괴테 변상용 1991 혜원출판사 159-235 편역 개작 서사시를 산문으로 개작
18 헤르만과 도로테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Hongshin elite book's 33 J.W.괴테 장기진 1993 홍신문화사 199-288 편역 개작 서사시를 산문으로 개작



번역비평

1. 번역 현황 및 개관

<헤르만과 도로테아>는 1797년에 출간된 괴테의 “서사적 시”로, 프랑스혁명 전쟁을 배경으로 하여 라인강 오른쪽의 독일 소도시 출신의 헤르만과 라인강 왼쪽에서 건너온 피난민 도로테아의 사랑을 노래한다. 형식적으로는 헥사메터로 쓰인 하인리히 포스의 전원시 <루이제>(1781)와 그의 <오디세이아>(1781) 및 <일리아드>(1793) 번역에 영향을 받아 전체 2000여 행이 헥사메터로 되어 있으며, 전체 아홉 개의 노래는 고대 그리스 뮤즈들의 이름을 제목으로 하고 이야기의 진행 또는 동시대의 사건과 관련된 키워드로 된 부제를 가지고 있다(예: 칼리오페-운명과 동정, 테르프시코레-헤르만, 탈리아-시민, 클리오-시대 등). 이 작품에서는 프랑스혁명이라는 세계사적 사건과 라인강 오른쪽 독일 소도시에서 펼쳐지는 소시민적 일상이, 피난민 여성 도로테아와 이 도시의 주민 헤르만의 사랑을 통해 구체적으로 엮여 있다. 또한 고대화를 차용한 형식이 괴테 동시대 독일 소시민의 삶을 표현하는 데 사용되면서, 이질적인 요소들이 한데 뒤섞이고 있다.

괴테가 스스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했으며(에커만, <괴테와의 대화>), 독일에서는 <젊은 베르터의 고뇌> 이후 가장 큰 성공작이었던 <헤르만과 도로테아>는 우리나라에서는 300번 이상 번역된 <젊은 베르터의 고뇌>에 비하면 그렇게 많이 번역되거나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일제강점기인 1922년 양하엽이 <헬만과도로데아 – 最後의勝利>라는 제목으로 이 작품을 처음 번역한 것이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다가 1923년 영창서관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된다. 이 번역이 우리말 초역(初譯)이자 일제강점기의 유일한 번역이다. 1945년 이후 첫 번역은 1958년에 나온 김달호의 <헤르만과 도로테아>이고, 거의 같은 시기인 1960년에 최순봉의 <헤르만과 도로테에아>가 나왔다. 1968년에는 <괴에테문학전집>의 일부로 김정진의 번역이 실렸고, 그 후 1970~90년대 사이에는 상대적으로 여러 번역이 나왔는데, 특히 70년대 초반에 많이 몰려 있다(강두식, 이효상, 홍경호, 박환덕, 정진웅, 이정태). 가장 최근에 나온 번역은 이인웅의 것으로(1996, 2011), 1996년에 이미 처음 출간된 점을 고려하면 그 후 약 30년간 사실상 새로운 번역은 나오지 않은 셈이다.

본문에서는 이 번역본들 가운데 양하엽, 김달호, 최순봉, 이인웅의 번역본을 비교·분석하려고 한다.


2. 개별 번역 비평

1) 양하엽(양재명) 역의 <헬만과도로데아 - 最後의勝利>(1923)

양하엽의 <헬만과도로데아 - 最後의勝利>는 1921년 <조선일보>에 연재되었으나 이 연재물은 온전히 남아 있지 않다. 이 번역을 1923년 영창서관에서 단행본으로 펴낸 판본이 있으며, 이 또한 완역(完譯)이다.[1] <헤르만과 도로테아> 일본어 초역(初譯)이 1914년에 이루어진 것을 생각해 보면, 이 경우에는 예컨대 <젊은 베르터의 고뇌><파우스트>등에 비해 일본어와 한국어 번역의 시차가 그렇게 크지 않은 셈이다. 1920년대 초반은 우리말 번역사에 있어서, 외국문학 번역이 특히 일간지나 문예지들을 통해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주목할 만한 시기이다(박진영 2019 참조). <젊은 베르터의 고뇌>일제강점기 번역 다섯 개 중 네 개가 1920년대에 이루어졌으며, 그중 처음 두 개는 같은 해인 1923년에 나왔다. 번역자 양하엽(梁夏葉, 본명은 양재명)[2]은 1920년대 초반에 활동하던 번역가이다. 그는 <헬만과도로데아 – 最後의勝利>의 머리말에 해당하는 “한말삼알욈(한 말씀 아룀)”이라는 짧은 글(1923.11.1.)에서 이 작품이 호머의 <일리아드>를 모방하여 지은 서사시이며, 그래서 9장으로 나뉘고 각 장에 그리스 뮤즈의 이름이 각각 붙어 있다는 점을 설명한다. 또한 “프랑스의 혁명을 배경으로 삼은 연애 哀話를 묘사한 이 세계적 명작”을 소개하게 된 게 영광이라고 자신의 소회를 밝힌다. 저본이라든지 어떻게 해서 이 작품을 번역하게 되었는지 등에 대한 설명은 아쉽게도 찾아볼 수 없다. 짧지만 이 작품에 대해 상당히 정확한 정보를 담고 있는 이 글에서는 저자가 이 작품을 무엇보다도 “연애 哀話”로 이해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아마도 <젊은 베르터의 고뇌> 외에 일제강점기 시기에 이 작품이 소개된 중요한 이유였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책 뒷표지 안쪽에 실린 광고에서도 짐작할 수 있는데, 거기에는 영창서관에서 출간한 여러 연애물 가운데 하나로 “戀愛小說 最後의勝利(一名헬만과도로데아)”가 있다.

이 책에서 역자는 일제강점기 시기 많은 번역본의 경우에서처럼 저본을 밝히지 않는다. 그런데 제목이 “헬만과도로데아”, 첫 번째 장이 “캘리오페”(원제는 Kaliope)로 표기된 것을 보면 최소한 영어본을 참조한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볼 수 있다. 여러 영어 단어들이 사용된 점도 이러한 추측을 하게 한다(예: 『엑쓰프레ᄉᆑᆫ』(표정), 『썬데이』, 『스웻홈』, 『ᄶᅧ-ᄆᆡᆫ』族 등).

이 번역본은 괴테가 “서사적 시”라고 부른 <헤르만과 도로테아>를 산문으로 번역하는 선택을 했다. <헤르만과 도로테아> 번역본들을 보면 크게 보아 산문으로 번역한 역본과 운문으로 번역한 역본으로 나뉘는데, 산문 번역이 훨씬 많다. 운문으로 번역한 역자들은 김달호, 김정진, 박환덕, 정진웅, 이인웅 등이다. 헥사메터의 서사시로 된 형식은 이 작품 발표 당시의 동시대 독일인들에게도 낯선 것이었다. 외국어 번역에 있어서 운문으로 된 작품은 번역에 있어서 항상 원작의 형식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문제가 된다(서정시들뿐만 아니라 호메로스의 서사시나 셰익스피어의 희곡, 단테의 <신곡> 등). 그러나 운문 번역이라고 할지라도 서양어처럼 라임을 사용하지 않고 단어의 강약이 없는 한국어의 경우 서양 언어의 시적 형식을 살리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원작의 형식을 해체하여 산문으로 만들어 버리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은데, <헤르만과 도로테아> 번역의 경우에는 양하엽 역으로부터 시작하여 다수의 번역자들이 그런 번역 방식을 택하였다. 일본어로 된 <헤르만과 도로테아> 번역 역시 산문과 운문 번역으로 나뉘는데, 초역(1914년)을 보면 산문 형식으로 되어 있고, 이것이 양하엽의 우리말 초역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있을 것 같다. 1장의 부제인 “運命과同情”(Schicksal und Anteil)은 그 후 모든 번역이 이어받았는데, 특히 “동정”이라는 단어는 이미 일본어 초역에 등장한다(“運命と同情” 중 “同情”[うじょう, 도죠], 동정, 남의 어려운 처지를 가엾게 여기는 것). 그런데 그 후 나온 일본어 번역들에도 이 단어가 계속 쓰이지만, 다른 번역어(思いやり[おもいやり, 오모이야리], (남의 심정이나 입장을) 생각함(헤아림), 동정심, 배려; (고어) 상상, 사려, 분별)도 등장한다. 그에 비해 지금까지 나온 우리말 번역본들에는 “운명과 동정”으로 통일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양하엽 역은 1920년대 초반 한국의 상황에서 이 작품을 연애소설로 해석하였고, 이 해석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출발텍스트의 내용은 대체로 충실하게 들어가 있으나, 그것을 부분적으로 변형시킨 것이 계속해서 보인다. 문체상으로 보면 한자와 한국어가 병존, 경합하면서 새로운 한국어 문체가 실험되면서 만들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아직 한글 전용 표기까지는 가지 않고 한자가 병기되나, 전체적으로는 현대적인 우리말이 세련되고 아름답게 쓰이고 있다. 여기에 일본어와 영어 단어들(󰡔엑쓰프레ᄉᆑᆫ󰡕(die Mienen, “표정”(이인웅)), 󰡔ᄶᅧ-ᄆᆡᆫ󰡕族/獨逸사람, 獨逸民族과 공존, 󰡔썬데이󰡕 등)도 함께 쓰인다. 한자어 어휘들(牝馬,(빈마=암말), 馬房間), 일본어 단어들(천연자연 등)이 우리말과 함께 쓰이며(下男과 下人의 공존), 寺刹과 敎會가 ‘Kirche’의 번역어로 공존한다. 우리말과 한문이 섞여 있는 표기도 있고(예: 57쪽 性정이溫유하며, 참見하지 안코), 한 문장 안에 한자와 영어가 함께 쓰이기도 한다(예: 󰡔스웻홈󰡕을創造한다면(80)). 또한 마침표가 쓰이지 않거나 일본어 마침표가 쓰이기도 한다. 일본어 반복부호(‘々’, 오도리지)도 계속해서 쓰인다. ‘헬만’과 ‘헤ㄹ만’도 공존한다. 이런 점들을 보면 한문을 사용하던 문화에서 벗어나기 시작해 현대적 한국어의 창조로 나아가면서 일본어의 압도적 영향을 받으며 영어의 영향도 들어오는 상황이 이 1920년대 초 번역어의 어휘, 문장부호, 띄어쓰기, 문장들에도 반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낯선 외래어들이 종종 사용되는 데 비해서 이 번역본에서는 역자 주는 아주 최소한으로만 사용된다(부활절과 타미노라는 두 단어에만 설명이 있으며, 예컨대 각 장의 제목인 아홉 뮤즈의 이름에는 설명이 없다).

문체상으로는 감탄사(“아-”)가 빈번하게 사용되는 영탄조의 말투와 원문에는 없는 말줄임표의 잦은 사용을 특징으로 들 수 있다. 맨 처음 시작 부분(一. 캘리오페. 運命과同情)을 그 예로 볼 수 있다.

『아-洞內가 대단히쓸々도하에 맛치 장마에 쓸니여나간것갓고 ᄯᅩ한 불ᄭᅥ진뒤와갓네그려 내가 이世上을나온後로 이갓치나쓸々한ᄯᅢ를當해보기는 처음이겟네-(중략) 엇지도사람보기가드믄지 – 이동내에 지금남어잇는이를 모도합해논다고할것갓흐면 아마도 한五十人가량이나 될는지? 말는지?하에그려........아-好奇心이란것에도 반다시 그의終結이잇는것인지-착한져이들이 父母와妻子권속을다리고 져-라인江을건너 自己들의 生長한 故國山川을버리공-哀처러웁게도 逃망을하야셔 이곳으로ᄶᅩᆺ기여옴을보고자 이러틋ᄯᅳ거운 酷한더위에 ᄯᅡᆷ으로沐浴을 
아마도그이들은 大端이괴로울터이로다..........(양하엽, 1) 
»Hab ich den Markt und die Straßen doch nie so einsam gesehen!
 Ist doch die Stadt wie gekehrt! wie ausgestorben! Nicht funfzig,
 Deucht mir, blieben zurück von allen unsern Bewohnern.
 Was die Neugier nicht tut! So rennt und läuft nun ein jeder,
 Um den traurigen Zug der armen Vertriebnen zu sehen.[3]


이 영탄조의 말투는 또한 감정의 과장과 관련된다. 그래서 이 번역본의 문장들은 출발텍스트에 없는 부분이 추가되거나 출발텍스트의 일가 변형되면서 길어지고, 좀 더 상세해지며, 표현이 반복되거나 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die[die Fremde] gebt mir, Vater! Mein Herz hat
Rein und sicher gewählt; Euch ist sie die würdigste Tochter.«(841)
“그 처녀를 허락해 주세요. 아버지! 순수하고 
확실한 마음에서 선택했어요. 아주 귀염받는 며느리가 될 거예요.”(이인웅, 78)
『아바님?이제어마님ᄭᅦ셔말슴하옵신그女子를어더주십시시오............ 
아바님?그-女子는大端이참(眞)이옵고 ᄯᅩ한虛僞가업스며 마암은潔白함니다 아바님? 저는그女子이오면만족으로셍각하올ᄲᅮᆫ안이라 여러가지를샬피여보고서 擇한女子이옵기에 아바님ᄭᅦ對하와도 마암에마즈실터이올시다.......아바님 저는 그러한女子를내여바리고서 다른데장가들지는안켓슴니다 。生覺해주시옵소셔...』(양하엽, 57)

많은 경우에 이렇게 출발텍스트에서는 간결하게 표현된 부분이 도착텍스트에서는 장황해지고 사설이 길어지면서 감정을 고조시키거나 한국인에게 익숙한 정서, 사회적· 문화적 코드 또는 표현이나 말투로 향하게 된다. 그런 특징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젠더와 관련된 번역이다. 다음의 예문을 보면 번역자가 <헤르만과 도로테아>를 <춘향전>의 맥락 속으로 가지고 들어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現今헤ㄹ만의눈압헤는 그女子가아장々々거러오는것갓치 뭇득生覺이나게되얏다(92)” 번역자는 여러 곳에서 도로테아의 ‘연약함’과 헤르만의 ‘씩씩함과 남자다움’을 강조하는데, 원작에서는 도로테아가 ‘연약한’ 여성으로 그려지지 않아, 번역본 안에서는 번역자의 각색과 원작의 내용이 모순을 일으키기도 한다. 예컨대 원문에 “der gute, verständige Jüngling”(868; “선량하고 사려깊은 젊은이”, 이인웅 141)이라고 되어 있는 부분을 양하엽 역은 “씩씩하며사내다운헤르만은”(112)이라고 옮긴다. 또한 원문에 없는 말이 추가되기도 한다(남자도이러하겠거든 況-女子야 더말할것잇슴니가-- (79)) 반면 도로테아의 ‘연약함’은 특히 그녀의 신체 묘사와 관련하여 거듭 반복된다. “아조弱하게생기인處女아해”(16), “도로데아의 힘업시노은손”(117), “도로데아의 아모힘업는 몸”(120), “도로데아의 가비야웁고도 貴中한몸”(121), “그-女子는 弱한두손에다가 물통을 두고셔”(93) “可憐한 도로데아와 어느ᄯᅢ이든지 健全한靑年 헤ㄹ만사이는”(122) 등이 그 예이다. 이렇게 원문에 없는 연약함, 가벼움 등이 추가되는 반면, 다음의 예처럼 원문에 있는 도로테아의 건강한 신체에 대한 묘사는 생략된다. “Nun, als ich[...]/Sah die Stärke des Arms und die volle Gesundheit der Glieder,”(862, 밑줄 강조 필자)(“그 튼튼해 보이는 팔과 건강이 넘쳐흐르는 몸을 보았을 때”(이인웅, 126). 이런 도로테아의 각색된 이미지와 “女性의英雄的體軀”(121)(“die Heldengröße des Weibes”(870))라는 번역은 충돌을 일으킨다. 피난민으로 떠돌아다니고 있는 도로테아가 굽이 뾰족한 여성용 구두를 신었다는 덧붙여진 설정 역시 모순을 일으킨다. “구두는 요사이 佛蘭西에서 流行한다는 ᄭᅳᆺ- ᄲᅩ죽하고 뒤ᄭᅮᆷ치 홀죽한 新式구쓰를 신엇슴니다。”(65)

출발텍스트와 달라진 또 한 부분은, 마지막 장에서 목사가 헤르만과 도로테아를 약혼시키기 위해 헤르만 부모의 손에 끼워져 있는 반지를 빼어 두 사람에게 끼워줄 때, 도로테아의 손에 이미 약혼반지가 있는 것을 발견하는 장면이다. 출발텍스트에서는 목사가 도로테아에게 두 번째 약혼하는 거냐고 농담조로 말을 하고, 그녀가 이에 대한 대답으로 프랑스혁명을 위해 파리로 가서 싸우다 죽은 자신의 전 약혼자에 대해 설명한다(도로테아가 ‘서울巴里’로 가서 약혼자를 직접 만난 것으로 바꿈). 그리고나서 새 약혼반지를 옛 약혼반지와 나란히 낀다. 양하엽의 번역에서는 도로테아의 손에 있는 첫 번째 약혼반지를 발견한 목사가 눈치껏 이를 빼 몰래 던지고, 헤르만이 그녀에게 두 번째 약혼을 하는 거냐고 묻는다. 전 약혼자에 대해 설명을 하고 나서, ”이와갓치 말을맛친 도로데아는 牧使가버린 져의쳐음祈念半指를 주워가지고 이제의 새 祈念指環과 갓치둘을한손에 나란이 ᄭᅵ였다“(151) 작품의 맨 마지막에 “도로데아는 언제든지 나의것이야요..............”가 추가된다. 마지막에 덧붙여진 구절을 보면 부제인 “최후의승리”는 헤르만의 것인 것 같다.


2) 김달호 역의 <헤르만과 도로테아>(1958)

<파우스트>와 함께 묶여 정음사에서 나온 세계문학전집 10권으로 발간된 독문학자 김달호의 번역 <헤르만과 도로테아>는 1945년 이후 처음 나온 <헤르만과 도로테아>의 한국어 번역이자 독일어에서 우리말로 직접 옮긴 첫 번역이다. 전체 책의 앞부분에는 “해설”이 달려 있는데, 괴테의 생애 및 작품세계와 독일 고전주의 문학에 대한 간략한 소개 및 설명과 함께 주로 <파우스트>를 해설하고 있는 이 글에서 <헤르만과 도로테아>는 “목가적 서사시”라는 말과 함께 언급만 되고 있다. 각 장은 칼리이오페 篇, 테르프시코레 篇, 이런 식으로 뮤즈들의 이름으로 되어 있으며 그 왼쪽에 작은 글씨로 달린 역주로 이 뮤즈들의 이름을 설명하고 다시 부제인 “운명(運命)과 동정(同情), 헤르만...”이 달려 있다. 이런 장 구성은 뮤즈들의 이름에 대한 설명을 빼고는 원문과 동일하다.

이 번역은 <헤르만과 도로테아>를 최초로 운문으로 번역한 점에서도 그 의의가 있다.

「시장이나 거리가 이렇게 쓸쓸한 것을 여태까지 본 적이 없어. 쥐죽은 듯, 비로 쓸어낸 것 같군!」
마을 사람들 중에서 오십 명도 못 남았겠으니, 
호기심이란 무슨 일을 다 안저지르겠는가?
불쌍한 피란민들을 보겠다고 너나 할 것없이 내달으니 말이야.
피란민들이 지나가는 길까지는 적어도 한 시간은 가야 하는데
이 대낮에 무더운 먼지 속을 달려 가다니.(김달호, 365)

앞에서 인용했던 시작 부분은 김달호 역에서는 운문 형식으로 되어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독일어와는 다르게 우리말로 자연스럽게 읽히도록 행 바꿈을 한다. 또한 무척 자연스러운 구어체의 말투이다. 김달호 역은 바로 앞의 양하엽 역과는 34~36년의 시간 차이가 있기에 우리말에서는 큰 차이가 나타난다. 종종 한자가 사용되기는 하지만(예: 테르프시코레 篇, 譯註 등) 본문에서는 한글 전용 표기 원칙이 지켜지고 있다. 운문 형식이라는 낯설게 하는 요소와 구어체의 현대적 한국어라는 친근하고 일상적인 요소가 함께 만나고 있다.

또한 김달호 역에는 “시민(市民)”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양하엽의 번역에서는 “탈리아” 편의 부제로 시민이 한 번 등장하기는 하지만, 본문의 번역어에서는 출발텍스트에 종종 등장하는 “Bürger”라는 단어가 시민으로 번역되지 않고, 번역이 되지 않거나, 농민 등의 다른 단어로 대체되는 데 비해, 김달호 역에서는 이 단어가 본문에서도 “시민”으로 번역된다. “폴리힘니아 편”의 부제인 “Weltbürger” 역시 “세계시민(世界市民)”으로 번역된다(양하엽 역에서 이 부제가 “情多한 사람”으로 바뀌었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의 우리말 번역에서도 “Bürger”라는 단어가 일관되게 “시민”으로 옮겨진 것은 1990년대에 들어서야 이루어졌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김달호의 번역은 당시로서는 매우 시대를 앞서간 것이라 할 수 있다.

(생략) <행복하게 살아주오. 나는 가겠소. 지금은 지상의 모든 것이
동요하고 있으며, 모든 것이 서로 갈라지게 될 판국이니까.
제아무리 확고한 국가의 헌법이라 할지라도 기능을 잃고, 
재산은 원래의 소유주한테서 떨어져 나가고, 
친구는 친구를 이별하고, 애인은 애인을 이별해야 하는 세상이라오.
나는 당신을 두고 가오. 그러나 언제 어디서 다시 당신을 만나게
될지 그런걸 누가 알겠소? 어쩌면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이게 마지막인지도 모르겠소.
이세상에 사는 인간은 한낱 나그네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건 참 지당한 이야기 같소. 
너나없이 지금처럼 나그네가 되어버린 적은 일찌기 없었소.
땅은 이젠 자기 것이 아니고, 보물은 이리저리 옮아가고, 
금은보화는 녹아서 본래의 신성한 형태는 없어지고,
일체만물이 동요해서, 마치 형태를 갖춘 세계가 혼돈과 암흑으로
녹아 들어가버리고, 또 다시 새로운 형태를 빚어 내려는 모양이오. 
당신이 나에 대한 마음을 변치 않고, 언젠가 다시 세계의 폐허 위에서
만날 수가 있다면, 우리들은 거듭된 인간으로서, 
개조되고 자유의 몸이 되어, 운명에도 흔들리지 않는 존재가 아니겠소.
이러한 시대를 살아 넘긴 사람을 속박할 건 아무 것도 없을 테니까!
그러나 우리둘이 이러한 위험을 무사히 면하고,
언젠가 다시 서로 부둥켜 안고 기뻐할 날이 있으리라 믿어지지 않으니, 
부디 정처없이 떠돌아다닐 내 모습을 염두에 두고서, 
행복할 때나 불행할 때나 똑같은 용기를 가지고 대할 각오를 해주기를 바라오.(434)

이 대목을 양하엽 역과 비교해 보면 김달호 역이 갖는 특징이 드러난다.

아-당신은 언제ᄭᅡ지든지 幸福이넘치는 가온대에셔 便安이 잘지내시요 나는 이졔에 그만당신을 버리고 져永遠한幸福의나라 玉座로 가옴니다 누구이든지 이世上에셔 人間으로 살ᄯᅢ에 離別이란것이 업슬수 업는것이오 반다시 잇는것이닛가 우리人間이란것은 이軌道를 버셔나가기가 어려운 것이올시다요- 이世上이다말하는 强國일지라도 그나라의 國家憲法이란것은 破壞가 될것이며 金錢이란것도 이에ᄯᅡᆯ아셔 다-헛터질것이올시다 그ᄲᅮᆫ만안이라 親友는親友ᄭᅵ리셔로 分離가되겟고 情든사랑은 情든사랑ᄭᅵ리 離別할것이 올시다 이것이 모다 人間살이의 最後란것을 當한ᄯᅢ 卽 죽엄이란 구렁구렁으로 들어가게된 그ᄯᅢ에對한 原則이닛가 우리人間으로는 이 原理原則이란것을 바릴수 업는것이올시다 아나는 놋키실은 당신을 이졔 이곳에셔 놋코 어듸에셔 맛게될는지 모르겟슴니다 그러나 대략은 어디에셔 맛나게 될지암니다요 이것이 아마도 나의마지막 運命인 동시에 당신과 나의 마지막이될가봄니다 엇더한사람이 말하기를 이ᄯᅡᆼᄯᅥᆼ어리우에셔 生生하는 人間들은 暫時지나가는나그내와갓다든 이-참으로 우리人間은 이世上에서나 그내에지나지 안슴니다 이것도 宇宙의한갓 原理이닛가 權勢가잇다는사람도 맛치한가지이겟고 權勢가업는사람도 맛치한가지로 暫時살다가 참나그내와갓치 슬어지고 말것임니다 아- 이世上의 온갖寶物이라든가 金錢이란이것들도 空手來 하얏다가 空手去하는 世上의 原理를버셔 버리지 못할 것임니다 人間에게 닥치는바 運命이 이럿케되는 ᄯᅢ에 ᄯᅡᆯ아셔 이世上이란것도 작고작고 녜ㅅ世上 을바리게되고 새世上이란것이 닥쳐오게되는 것임니다요... 이-새世上! 안이 新天新地! 그곳에는 勿論 現世보다 나을것이올시다 그-世上이참의나라이요 참의 oo일것이외다 그곳은 自由 일지요 그곳은 平和일것임니다 그곳이 우리 人間들의oo하든바 유토피아일지요 참 樂園일것이올시다. 아-그 우리의 理想鄕인 新天新地를 當하게되는ᄯᅢ 勿論 그곳에셔 당신과내가 두 번다시 맛나게될것임니다 그맛나게되는ᄯᅢ에는 勿論이졔의形狀과갓치 안켓고 勿論이제 運命의 支配를받든것이 運命의 支配를 밧지안케된 自由 民일 것이외다 勿論運命에 左右하지안을 獨立한새-人間일것이올시다 勿論現在와갓치 混沌한이世上을 버서난 이에게는 束縛과拘碍가업는世上이올것임니다 그러나 그러나 이와갓치된 이世上의한 갓쓰리며괴로운것을바리고 幸福의 世上으로 깃붐을 누리려가는 나임으로 두번다시 당신을 맛나보기어려울것이지요! 참보기어려울 것이지요......도로데아씨? 두번다시보기 어려운이나의얼골을 자ㄹ記憶해두시엇다가 多幸한ᄯᅢ나 不幸한ᄯᅢ를 헤아리지말고 生覺이 날ᄯᅢ마다언제이나 한결갓치 生覺해주십시오-(149-150) 

김달호의 번역은 양하엽 역과 비교할 때, 양하엽 역 특유의 만연체적 반복 표현과 달리 간결하다. 또한 최순봉의 산문역과 대비해도 운문 특유의 호흡과 낯설게 하기 효과를 느낄 수 있다.


3) 최순봉 역의 <헤르만과 도로테에아>(1960)

김달호와 거의 비슷한 시기인 1960년에 역시 독문학자인 최순봉은 <헤르만과 도로테에아>라는 제목의 번역본을 출간하는데, 이것은 오직 <헤르만과 도로테아>만 실려 있는 단행본이다. 전문 지식에 바탕을 둔 상당히 상세한 해설이 덧붙여져 있다. 산문 형식으로 번역되어 있으며 세 개의 삽화가 삽입되어 있다는 점도 새롭다. 장의 제목은 김달호와 같은 방식으로 되어 있으나(칼리이오페 편 <운명과 동정>, 테르프시코레 편 <헤르만> 등), 다만 역주가 아니라 후주를 달아 설명을 뒤쪽에 모아 놓았다는 점이 다르다. 그래서 전체는 본문, 해설로 이루어져 있다. 후주(後註)는 13개로 그중 9개는 각 장의 제목이 되는 뮤즈들의 이름에 대한 설명(주 1, 3, 5, 6, 7, 8, 9, 11, 12)인 점을 고려하면 최소화되어 있다.

최순봉 역은 <헤르만과 도로테아> 한 작품만을 위한 단행본이므로, 역자는 <해설>에서 이 작품에 집중하여 작품의 생성사, 배경지식 등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가 언급하고 있는 것은 이 작품이 괴테의 창작 가운데 갖는 위치와 중요성이다. 역자는 이 작품이 <젊은 베르터의 고뇌>와 더불어 가장 널리 애독되는 괴테의 작품 가운데 하나임을 언급하면서도, 두 작품을 여러 측면에서 비교해 가며 차이를 언급하고 있다. 작품해설에서는 특히 <헤르만과 도로테아>가 괴테의 원숙기에 쓰인 작품임이 강조되며, <베르터>가 “병적인 상태”에서 쓰이고 독자들에게도 병적인 영향을 미치는 반면 <헤르만과 도로테아>는 “건설적이고 견실한 애정에 넘치는 분위기”를 가진 “시민생활의 찬가”라고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또한 <베르터>에 괴테의 직접적인 체험이 반영되어 있는데 비해 <헤르만과 도로테아>는 완성의 경지가 높은 예술작품이라는 것이 역자의 견해이다. 작품 생성사 및 이 작품에 소재를 제공한 괴킹의 이야기도 상당히 자세히 소개된다. 역자 최순봉은 이 해설에서 번역의 저본 (Goethes Hermann und Dorothea, F. Schöningh-Verlag, 1910; Hermann und Dorothea von Goethe, Hclt, 1915)과 본문 중 삽화의 출처(Schöningh판)를 밝힌다.

최순봉 역의 특징은 일제강점기의 초역인 양하엽과 나중의 곽복록 역처럼 산문역이라는 점이다. 시작 부분과 마지막 장의 주요 대목을 살펴보도록 한다.

시장이나 길거리가 이렇게 쓸쓸한 것을 나는 아직까지도 본 적이 없어. 거리는 마치 싹 쓸어버렸거나 한 사람도 남지 않고 죽어버린 것만 같군. 도시의 주민 전부 중에서 내가 보기에는 오십명도 못 남았겠으니, 호기심이란 무슨 일을 다 안저지르겠는지? 불쌍한 피란민들을 보겠다구 너나 할 것 없이 다 내달으니 말이야.(중략) 
행복하게 살아주오. 나는 가겠소. 지금은 지상의 모든것이 동요하고 있고, 모든 것이 서로 갈라지게 될 형편이니까. 아무리 확고부동한 국가의 헌법일지라도 기능을 잃고, 재산은 종래의 소유주한테서 떨어져가고, 친구는 친구를 이별하고, 애인은 애인과 헤어져야 하는 세상이라오. 나는 당신을 두고 가오. 그러나 언제 어디서 다시 당신을 만나게 될지 - 그런걸 누가 알겠소? 어쩌면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이게 마지막인지도 모르겠소. 이세상에 사는 인간은 한낱 나그네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건 참 지당한 이야기 같소. 너나없이 지금처럼 나그네가 되어버린 적은 일찌기 없었소. 땅은 이젠 자기 것이 아니고, 보물은 이리저리 옮아가고, 금은보화는 녹아서 본래의 신성한 형태는 없어지고, 일체만물이 동요해서, 마치 형태를 갖춘 세계가 혼돈과 암흑으로 녹아 들어가버리고, 또 다시 새로운 형태를 빚어 내려는 모양이오. 당신이 나에 대한 마음을 변치 않고, 언젠가 다시 세계의 폐허 위에서 만날 수가 있다면, 우리들은 거듭된 인간으로서, 개조되고 자유의 몸이 되어, 운명에도 흔들리지 않는 존재가 아니겠소. 이러한 시대를 살아 넘긴 사람을 속박할 건 아무 것도 없을 테니까! 그러나 우리둘이 이러한 위험을 무사히 면하고, 언젠가 다시 서로 부둥켜 안고 기뻐할 날이 있으리라 믿어지지 않으니, 부디 정처없이 떠돌아다닐 내 모습을 염두에 두고서, 행복할 때나 불행할 때나 똑같은 용기를 가지고 대할 각오를 해주기를 바라오.(108-109)

이 부분의 번역을 김달호나 이인웅의 운문 번역과 비교해 보면 차이가 드러난다. 산문 번역에서는 호흡이 길어지며, 운문 번역의 낯설게 하는 효과가 완화된다. 독자들에게 덜 낯선 번역이라는 데 초점을 맞춘 번역으로 볼 수 있다.


4) 이인웅 역의 <헤르만과 도로테아>(1996/2011)

이인웅의 번역 <헤르만과 도로테아>는 <젊은 베르터의 고뇌>와 함께 실려 먼저 1996년에 나왔다. 이후 2011년에 다시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독문학자이자 괴테 연구자인 이인웅의 번역은 운문 형식으로 되어 있다. 역자는 두 판본에서 모두 저본(1965년 판 함부르크 판본 2권)과 작품해설에 참조한 2차 문헌을 밝히고 있다. 1996년 번역과 2011년 번역에는 각각 다른 역자 해설이 실려 있다. 1996년 번역본에 실린 “작가와 작품해설”을 보면 번역자가 두 작품을 사랑이라는 주제로 묶어 하나는 “사랑의 죽음과 비극”을 그린 작품으로, 다른 하나는 “아름다운 사랑의 조화”를 노래한 작품으로 바라보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기에 번역된 두 작품은 바로 사랑에 대한 괴테의 양면적인 고백서이다. 사랑을 슬픔이라고 느끼는 사람이나, 아니면 사랑을 행복이라고 느끼는 사람이나 이 주인공들의 운명에서 정신적 위안이나 충고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364) 그래서 충실하고 상당히 상세한 작품에 대한 정보와 해설 속에서 <헤르만과 도로테아>는 주로 두 주인공 사이의 이상적인 사랑이라는 측면에서 해석된다. 아쉬운 점은 <헤르만과 도로테아>가(그리고 <젊은 베르터의 고뇌>도) 갖는 모순적이고 다층적인 성격, 그리고 시대사적이고 사회(비판)적인 측면에 대한 조명은 약화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헤르만과 도로테아>의 수용사에서 이 작품이 19세기에 독일 시민 계급의 가치를 전달하고 시민적이고 가부장적인 가족을 미화하는 애국적인 작품으로 이데올로기화되며 학교 교육을 위해 정전화되었던 사실에 비판적 거리를 두면서 이 작품을 새롭게 읽는 것과는 거리가 있게 된다. 2011년의 개정판은 <헤르만과 도로테아>만을 실은 단행본이며 작품해설 부분은 동일하다. 이 개정판에는 1996년 판본에 없는 각주가 본문 하단에 실려 작품 이해에 필요한 지식을 전달한다(총 68개). 주요 두 대목을 살펴보기로 한다.

시장이나 거리가 이렇게 한적한 것을 아직까지 본 적이 없어!
온 도시를 비로 쓸어 버린 것 같아! 다 죽어 버린 것 같기도 하고!
모든 주민들 중에서 채 50명도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아.
호기심이란 저지르지 않는 일이 없단 말이야! 그러니까 누구나가
불쌍한 피난민들의 비참한 행렬을 보겠다고 다투고 달려 나갔지.
피난민들이 지나가는 둑길까지는 족히 한 시간은 걸릴 텐데.
이 대낮에 뜨거운 먼지를 뒤집어쓰고 그곳까지 달려가다니!(3)
행복하게 살아 주오. 난 떠나가오. 지금은
지상의 모든 것이 동요하고, 모든 게 서로 분열하는 것 같기 때문이오. 
가장 굳건한 국가에서조차 기본법들이 해이해지고, 
재산은 본래의 옛 소유주로부터 떨어져 나가고, 
친구는 친구와 작별하고, 애인은 애인에게서 떠나고 있소.
난 당신을 여기 두고 가오. 언제고 어디서 당신을 다시 
만나게 될지 누가 알겠소? 아마도 이 대화가 마지막이 될 거요.
이 세상의 인간이란 나그네에 불과하다는 말은 옳은 말이오.
어느 때보다도 지금은 누구나 모두 나그네가 되어 버렸소.
대지는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니고, 보화들도 이리저리 옮겨 가며, 
금이나 은도 녹아내려 성스럽게 옛 형상을 감추고 있소.
모든 것이 동요해서, 마치 형성되어 있던 세계가 다시 
혼돈과 암흑으로 되돌아가 새로운 형상을 빚어내려는 것 같소.
당신이 마음을 그대로 간직해 주고, 언젠가 우리 이 세상의 
폐허 위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면, 우리는 새로워진 인간으로서,
변화된 형상에 자유로운 몸으로 운명으로부터도 해방될 거요.
이런 시대를 살아온 자를 그 무엇도 속박하지 못할 테니까요!(170)

이 번역은 운문 번역이면서 어색함과 낯섦보다는 자연스러움이 느껴지는, 마치 산문 번역과 운문 번역의 장점이 조화를 이루는 듯한 번역이다. 원문텍스트에 가장 가깝게 번역하려고 노력하였고, 추가되거나 삭제된 부분 없이 꼼꼼하게 번역하였다. 첫 번역에서 문화적 거리로 인해 삭제하거나 변형시켰던 부분들 역시 모두 출발텍스트에 가깝게 그대로 살리고, 필요한 부분에서는 하단의 각주를 통해 단어를 설명하였다. 그래서 문화의 낯설음을 번역 안에서 살린다. 또한 도로테아의 여러 측면을 소거하거나 도착문화의 독자들에게 익숙한 코드들로 바꾸거나 번역어를 추가하지 않고 그대로 번역하여 번역 안에 도로테아라는 인물의 다양성 역시 축소되지 않고 살아있다.

다른 한편 예컨대 “운명과 동정”이라는 번역어, 그리고 이 작품을 주로 헤르만과 도로테아의 사랑 이야기로 해석하는 점 등에서는 이 번역에서도 첫 번역의 영향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는 면도 볼 수 있다.


3. 평가와 전망

초역을 포함하여 중요한 네 개의 번역을 통해 살펴본 <헤르만과 도로테아> 번역은 크게 운문역과 산문역으로 나뉘며, 거의 대부분 독어독문학 전공자들에 의해 완역되어 전공 지식에 바탕을 둔 작품해설과 번역이 이루어졌다. 한국에서 <헤르만과 도로테아>는 <젊은 베르터의 고뇌>에 비해 널리 알려지거나 수용되지 않았고, 지금도 여전히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최근 독일에서도 과거의 수용에 거리를 두면서 이 작품을 새롭게 해석하는 흐름이 있다. 앞으로 작품에 대한 새로운 해석에 바탕을 두고 작품의 형식실험적 측면을 염두에 둔 번역들이 계속 나오리라고 생각한다.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양하엽(1923): 헬만과 도로데아. 영창서관.
김달호(1958): 헤르만과 도로테아. 정음사.
최순봉(1959): 헤르만과 도로테에아. 법문사.
이인웅(1996): 헤르만과 도로테아. 세창출판사.
이인웅(2023): 헤르만과 도로테아. 지식을만드는지식.

조향


  • 각주
  1. 일제강점기 시기 번역들의 경우에 완역보다는 부분발췌역이나 번역이 중단된 경우가 많은데, <헤르만과 도로테아>의 경우에는 작품의 길이가 길지 않다는 것도 완역이 가능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가 되지 않았을까 한다. 이후의 <헤르만과 도로테아> 번역본들 역시 거의 대부분 완역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양하엽 역은 완역일뿐 아니라 매우 수준 높은 번역이며, 다른 초역들이 그러하듯이 후대의 번역들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2. 양하엽(梁夏葉)의 본명은 양재명이다. 박진영은 1920년대를 번역의 전성기이자 희곡의 황금시대로 이끈 주역으로 이상수와 함께 양재명을 꼽는다. 양재명은 1922-24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괴테의 <헤르만과 도로테아 – 최후의 승리>,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역시 <조선일보> 연재), 오스카 와일드의 <살로메>(완역), 빌헬름 슈미트본의 <디오게네스>(완역)를 번역했으며, 직접 시와 희곡 등을 창작하기도 하였다. 박진영: 번역과 동아시아 세계문학. 소명, 2019, 99 이하 참조.
  3. Johann Wolfgang von Goethe(1994): Hermann und Dorothea. In: Johann Wolfgang von Goethe. Sämtliche Werke. Briefe, Tagebücher und Gespräche(=FA). Vol. 8. Frankfurt a. M.: Deutscher Klassiker Verlag, 807. 이하에서는 본문에 쪽수를 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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