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시집 (West-östlicher Divan)

Root (토론 | 기여)님의 2025년 6월 20일 (금) 14:24 판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의 시

서동시집 (West-östlicher Divan)
작가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초판 발행1819
장르

작품소개

괴테가 14세기 페르시아 시인 하피스의 시 독일어 번역본을 읽고 자극을 받아 쓴 12편의 연작시이다. 각 편에는 ‘가인’, ‘하피스’, ‘사랑’, ‘명상’, ‘불만’, ‘격언’, ‘티무르’, ‘줄라이카’, ‘술집 소년’, ‘비유’, ‘배화교도’, ‘천국’이라는 소제목이 달려 있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피폐해진 유럽을 떠나고자 하는 갈망과 생명의 시원(始原)으로서의 동방 세계에 대한 절실한 동경을 동서양 문화의 융합이라는 시적 목표 아래 시공을 초월한 하피스와의 대화 형식을 기본으로 하고, 그를 따라 시와 사랑과 술을 예찬한다. 괴테는 당시 독자들의 호응이 시원치 않아 <서동시집의 더 나은 이해를 위한 메모와 논고>를 따로 발표했으나, 헤겔은 <서동시집>을 괴테의 작품 가운데 가장 풍부하고 완숙의 경지에 이른 작품이라고 칭찬했으며, 하이네도 상징성이 풍부한 <서동시집>의 언어를 높이 평가하였다. 아우구스트 폰 플라텐의 <가젤>(1821), 프리드리히 뤼커트의 <동방의 장미>(1822), 빅토르 위고의 <동방>(1829) 등이 창작되는 계기가 되었다. 국내에서는 1968년 강두식에 의해 처음 번역되었다(휘문출판사).

초판 정보

Goethe, Johann Wolfgang von(1819): West-östlicher Divan. Stuttgart: Cottaische Buchhandlung.


번역서지 목록

번호 개별작품제목 번역서명 총서명 원저자명 번역자명 발행연도 출판사 작품수록 페이지 저본 번역유형 작품 번역유형 비고
서동시집 서동시집 괴테 최두환 2002 시와 진실 2-239 완역 완역
서동(西東) 시집 서동시집 대산세계문학총서 052 괴테 안문영 외 2006 문학과지성사 5-442 완역 완역
서동 시집 서동시집 괴테전집 2 괴테 김용민 2007 민음사 3-375 완역 완역
(괴테) 서·동 시집 서동시집 괴테 전영애 2012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4-435 완역 완역
5 괴테 서·동 시집 괴테 서·동 시집 괴테 전영애 2015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3-435 완역 완역
괴테 시선. 6, 서동시집(1819/1827) 괴테 시선. 6, 서동시집(1819/1827) 괴테 시선 6 괴테 임우영 2021 지식을만드는지식 3-930 완역 완역
7 서·동 시집 서·동 시집 괴테 전집 4 괴테 전영애 2021 완역 완역


번역비평

1. 번역 현황 및 개관

노년의 지혜와 완숙한 시적 경지가 집약된 것으로 평가받는 괴테의 대작 <서동시집>은 우리에게 번역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운다. 그에게 창조적 영감을 불어넣어 준 14세기 페르시아 시인 하피스의 시집을 괴테는 1814년에 출간된 하머(Joseph von Hammer)의 독일어 번역으로 읽었기 때문이다. 총 196편의 시를 열두 묶음, 즉 12서(Buch)로 나누어 싣고 오리엔트의 문화와 시문학에 관한 방대한 연구 <보다 나은 이해를 위하여 Besserem Verständniss>를 덧붙인 초판은 1819년에 출간되었으며, 여기에다 43편의 시를 추가하여 총 239편의 시를 수록한 <신 시집 Neuer Divan>은 1827년에 나왔다. 국내에 완역된 <서동시집>은 대개 함부르크판 또는 프랑크푸르트판 괴테 전집을 번역 저본으로 삼은 것으로 1827년의 증보판을 토대로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서동시집>에 실린 시들 중 널리 알려진 개별 시편은 시집 전체의 완역이 나오기 전에 이미 산발적으로 번역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부적 Talismane>, <되살아난 지난날 Im Gegenwärtigen Vergangenes>, <복된 동경 Selige Sehnsucht> 및 <줄라이카의 서 Buch Suleika>에 속한 시 네 수, 이렇게 총 일곱 수의 시가 탐구당의 <탐구 신서> 시리즈 중 한 권으로 1980년에 출간된 <독일 고전주의시> (황윤석 역)에 실려있다. 그러나 <서동시집> 시편 전체의 번역은 이보다 이십여 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나왔다. 2002년 독문학자 최두환이 번역, 발행한 <서동시집>은 239편의 방대한 시집의 초역으로서 의의가 있으나 괴테의 시집 초판이 오리엔트에 관한 연구를 함께 품고 있다는 점에서는 불완전하다고 할 수 있겠다. 초역에서 함께 번역하지 않은 산문 부분, ‘<서동시집>의 더 나은 이해를 위한 메모와 논고’까지 포함한 번역은 2006년 열일곱 명의 괴테 독회 회원들의 공동 번역(대표 역자: 당시 괴테 학회 회장 안문영)으로 출간되었다. 초역의 역자 최두환은 공동 번역의 역자로도 이름을 올리고 있는데, 한국 괴테 학회 산하의 괴테 독회를 처음으로 창설한 이가 바로 그이므로 <서동시집> 번역의 역사에서 그의 공로가 매우 크다 하겠다. 불과 반년 후인 2007년 5월에 나온 김용민의 번역은 다시 산문 편 없이 시부분만 완역했으며, 2012년에 출간된 전영애의 번역은 산문 편을 포함한 완역을 1권으로, 상세한 해설과 관련 논문들을 수록한 <괴테 서·동 시집 연구>를 2권으로 하여 총 두 권으로 출간되었다. 전영애 역시 2006년 공동 번역의 역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 2021년에 나온 임우영의 번역 역시 산문 편을 포함한 완역으로 각 서의 앞머리에 개관을 싣고 또 시마다 상세한 해설을 덧붙이고 있다. 가장 최근인 2024년에 나온 번역본의 역자는 장희창으로 역시 괴테 독회의 공동 번역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모든 번역본이 상세한 역주를 붙이고 있으며, <서동시집>의 시편을 완역한 역자들이 모두 대학 강단에 섰던 독문학자라는 점은 괴테가 만년에 쓴 이 시집을 번역하는 일이 그만큼 학술적 전문성을 요구하는 작업이라는 점을 방증한다.

아래에서는 초역부터 2021년에 나온 역본까지 총 다섯 종의 번역본을 대상으로 하여 각 번역본의 주요 특징을 먼저 살펴본 후, <서동시집>의 첫 번째 서인 ‘가인의 서 Buch des Sängers’를 여는 첫 번째 시 <헤지라 Hegire>를 중심으로 번역을 비교해 본다. 원문은 다수의 번역이 저본으로 삼고 있는 함부르크판 전집에서 인용한다.

		HEGIRE

Nord und West und Süd zersplittern,
Throne bersten, Reiche zittern,
Flüchte du, im reinen Osten
Patriarchenluft zu kosten,
Unter Lieben, Trinken, Singen		         5
Soll dich Chisers Quell verjüngen.

Dort, im Reinen und im Rechten,
Will ich menschlichen Geschlechten
In des Ursprungs Tiefe dringen,
Wo sie noch von Gott empfingen		        10
Himmelslehr’ in Erdesprachen
Und sich nicht den Kopf zerbrachen.

Wo sie Väter hochverehrten,
Jeden fremden Dienst verwehrten;
Will mich freun der Jugendschranke:		15
Glaube weit, eng der Gedanke,
Wie das Wort so wichtig dort war,
Weil es ein gesprochen Wort war.

Will mich unter Hirten mischen,
An Oasen mich erfrischen,			20
Wenn mit Karawanen wandle,
Schal, Kaffee und Moschus handle;
Jeden Pfad will ich betreten
Von der Wüste zu den Städten.

Bösen Felsweg auf und nieder		        25
Trösten, Hafis, deine Lieder,
Wenn der Führer mit Entzücken
Von des Maultiers hohem Rücken
Singt, die Sterne zu erwecken
Und die Räuber zu erschrecken.		        30 

Will in Bädern und in Schenken,
Heil’ger Hafis, dein gedenken,
Wenn den Schleier Liebchen lüftet,
Schüttelnd Ambralocken düftet.
Ja, des Dichters Liebeflüstern			35
Mache selbst die Huris lüstern.

Wolltet ihr ihm dies beneiden
Oder etwa gar verleiden,
Wisset nur, daß Dichterworte
Um des Paradieses Pforte			40
Immer leise klopfend schweben,		
Sich erbittend ew’ges Leben. (HA 2, 7-8. 강조 필자)


2. 개별 번역 비평

1) 최두환 역의 <서동시집>(2002)


<서동시집>의 산문 부분을 제외하고 시 부분만 완역한 최두환의 <서동시집>은 역자가 직접 운영하는 출판사 시와 진실에서 2002년 간행되었다. 역자 후기에서 역자는 작품의 역사적 배경과 집필 당시 괴테가 처한 상황을 <서동시집>의 시편을 예로 들어 설명하면서, 작품의 생성사와 마리안네 폰 빌레머(Marianne von Willemer)의 영향, 전체 열두 편의 시편을 간략히 개관하고 있다. 그는 동방 세계에 이미 관심을 기울여 온 사람에게는 산문편이 필요 없다는 괴테의 말을 인용하며 앞의 두 시편이 전체 시집의 길잡이 역할을 해주기도 하고 오늘날은 국제화 시대이므로 괴테가 염려했던 민족주의적 편협성이 해소된 것을 전제로 산문편의 번역은 다음 기회로 미룬다고 설명한다. 역자는 함부르크판 전집을 번역 저본으로 하고 헨드릭 비루스(Hendrik Birus) 교수가 편집하고 주석을 단 프랑크푸르트판 전집의 주석을 참조했음을 밝히고 있다. 이후의 모든 번역이 이 판본을 참조했음을 밝히고 있는 것을 보면, 비루스 교수의 <서동시집> 판본이 이 시집을 더 깊이 이해하고 번역을 시도하는 데에 결정적 기여를 한 것으로 보인다. 최두환 역의 <서동시집>은 괴테 독회 공역이나 김용민 역본과 마찬가지로 함부르크판 전집을 원본으로 했음을 밝히고 있지만, 다른 점이 한 가지 있다. 이후에 나온 이 두 역본은 괴테가 1827년 증보판에 싣지 않고 빼놓은 시들 중 함부르크판 전집의 편집자인 에리히 트룬츠(Erich Trunz)가 선별한 ‘유고 중에서 Aus dem Nachlass’까지 함께 번역했으나 최두환의 초역은 이 부분을 제외했다. 우선 <헤지라>의 초역은 아래에 전문을 인용한다.

		헤지레

북녘도 서녘도 남녘도 갈기갈기 찢겨지고 있다.		
옥좌들 무너지고 왕국들 부들부들 떨고 있다.		
달아나라, 순수한 동녘 땅으로				
옛 족장들의 숨결 만끽하기 위해,				
사랑과 술과 노래 즐기며				 5
키저의 원천수로 젊어져야 하느니.			 

그곳, 순수와 올곧음의 고장에서				
 인류의 원초적 심저(心底)에까지 파고들리라.		
하늘의 가르침 지상의 언어로				
하늘님에게서 직접 받아들이고				10
이러쿵저러쿵 따지지 않던 사람들			
아직 살아 있던 곳					

조상들 높이 떠받쳐 모시고				
그 어느 낯선 것에도 복종하길 거부하던 사람들		
아직 살고 있던 곳					15
 그곳에서 젊음의 제한된 삶 즐기리			
믿음 넓고 지모(智謀)는 짧은,				
그곳에선 말씀이 얼마나 소중했던가			
하늘님이 직접 하신 말씀이었기에.			

 목자들 틈에 끼여 가리				20
가다가 오아시스에서 상쾌하게 물 마시리			
털목도리랑 커피랑 사향이랑 사고 팔며			
카라반과 함께 가리					
어떠한 외길이라도 따라 나서리				
사막에서 도시로, 도시에서 사막으로.			25

험난한 바윗길 오르내릴 때				
위안이어라 하피스여, 그대의 노래			
낙타 등에 높이 앉은 안내자				
신나게 노래 부르면					
별들 잠에서 깨어나고			                30
도적들은 놀라 달아난다오.				

온천에서, 주막에서					
하피스 성인이여, 나 그대를 생각하리다.			
사랑스런 아가씨 너울 살짝 열어제치어
살랑이는 머리카락 용연 향내 풍길 때면 말이요,		35
그렇소, 시인이 속삭이는 사랑의 말은
천상의 선녀들마저 설레게 한다 하질 않소.		 

너희가 시인의 이런 능력 시샘하려 든다면,
또는 심지어 그를 괴롭히려 까지 한다면,
한 가지만 알아 두라, 시인의 말은			40
언제나 나직이 파라다이스
문가 두드리며 떠돌고 있노라
영원한 생명을 갈구하면서.   [강조: 필자]		43  

우선 주목할 부분은 (<가인의 서> 권두에 붙은 모토를 제외하면) <서동시집>을 여는 첫 번째 시인 이 시의 제목 표기가 번역본에 따라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시의 원제목은 ‘Hegire’며, 최두환은 ‘헤지레’, 괴테독회는 ‘헤지르’, 김용민과 임우영은 ‘헤지라’, 전영애는 ‘에쥐르[헤지라]’로 표기했다. ‘Hegire’는 아랍어 ‘Hedschra’의 프랑스어 표기(hégire)에서 빌려온 것으로 <서동시집>의 아랍어 표기를 검토해 준, (괴테가 ‘친구’로 부르는) 코제가르텐(Kosegarten)은 수정 메모에서 아랍어식 표기는 독자에게 너무 낯설고 야만적으로 들릴 수 있으며 또한 이 단어는 프랑스식 표기를 통해 유럽에서 통용되었다고 설명한다(FA Ⅲ/1, 293; Ⅲ/2, 883). 괴테 자신이 독자를 배려하여 당시에 통용되는 표기를 선택한 점을 고려할 때, 이 제목은 오늘날 한국에서 통용되는 표현, 즉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된 ‘헤지라’로 옮기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최두환의 번역은 대체로 원문의 내용에 충실한 편이나 부사나 어구를 보충하여 설명하는 식으로(“갈기갈기”, “부들부들”, “이러쿵저러쿵”) 시행의 길이가 길어지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사막으로부터 도시까지”(전영애 역)를 “사막에서 도시로, 도시에서 사막으로”와 같이 옮기는 식이다. 출간된 연도는 뒤따르는 번역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지만, 역자의 연배가(1935~) 높아서인지 “원천수”, “심저”, “하늘님”, “너울” 등 다소 고풍스러운 표현들이 자주 등장하며 “천상의 선녀들”처럼 자국화하는 경향도 보인다. 반면, 이후의 모든 번역은 ‘후리들’로 음차 표기하고 “이슬람교의 천국에 사는 영원한 성 처녀들”(김용민 역)과 같은 각주를 달았다. 이 시 번역의 경우에도 초역의 영향력은 막강함을 볼 수 있는데, 초역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지는 후속 번역의 사례를 보면 다음과 같다.

Flüchte du, im reinen Osten
Patriarchenluft zu kosten,
Unter Lieben, Trinken, Singen    5
달아나라, 순수한 동녘 땅으로	
옛 족장들의 숨결 만끽하기 위해,	
사랑과 술과 노래 즐기며 (최두환)[이하 인용문의 모든 강조 표시는 필자의 것임]

달아나라 그대여, 순수한 동방에서
옛 족장들의 숨결을 맛보아라. 
사랑과 술과 노래 더불어 (괴테 독회) 

그대 피하라, 순수한 동방東方에서
족장族長의 공기를 맛보러 가라
사랑과 술과 노래 가운데서 (전영애)

초역의 역자도 참여한 공동 번역에서는 “옛 족장들의 숨결”이라는 표현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명사화된 동사원형 표현(Lieben, Trinken, Singen)을 “사랑과 술과 노래”로 번역한 것을 괴테 독회의 공동역자들과 전영애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반면 아래의 예처럼 김용민은 “족장” 대신 “가부장”이라는 단어를 선택하고 5행도 동사의 성격을 살려서 다르게 번역한다. 오늘날 ‘가부장’이라는 단어에는 부정적인 늬앙스가 많이 축적되었으므로 고대 동방의 세계를 연상시키는 ‘족장’을 택하고 5행은 김용민의 번역처럼 동사 형태로 번역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대여 달아나게나, 순수한 동방에서
가부장의 대기를 맛보게나
사랑하고 마시고 노래하는 가운데 (김용민)

위의 사례보다 역자의 시 해석이 더 강하게 들어가는 대목에서도 초역의 영향력이 확인된다.

Wie das Wort so wichtig dort war,  17
Weil es ein gesprochen Wort war.  
그곳에선 말씀이 얼마나 소중했던가	
하늘님이 직접 하신 말씀이었기에. (최두환) 

거기선 말씀이 얼마나 소중했던가.
신께서 들려주신 말씀이었으니. (괴테 독회) 

신께서 들려주신 말이었기에
그곳에선 말이 그렇듯 중요하였다. (김용민)
그곳에선 말이 그리 귀중했잖은가
아직은 말로 전한 말이었기에. (전영애)


18행(3연)의 원문에서는 ‘누가’ 말했는지가 드러나 있지 않으나 최두환은 “하늘님”으로 해석했으며, 뒤따르는 역자들도(괴테 독회, 김용민) “신”으로 특정했다. 위에서 인용한 17~18행은 <서동시집> 전체에서 가장 두운이 많이 쓰인 대목 중 하나로 고대 아랍 문화에서 지배적이었던 구어성(Mündlichkeit)을 찬양하고 있다는 비루스의 주석을 참조했을 때(FA Ⅲ/2, 889), 종교적 측면만을 강조하는 것보다는 전영애의 번역처럼 구어적인 문화 전체가 두드러지도록 번역하는 편이 더 적절해 보인다.

마지막으로 초역에서 이후의 번역보다 탁월한 점 한 가지를 살펴보려 하는데, 그것은 바로 역자가 이 시에서 인칭대명사의 흐름에 주의를 기울여 잘 포착했다는 점이다. 우선 독일어 원문에서 인칭대명사의 전개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도표로 만들면 다음과 같다.

연 / 행 원어 (독일어) 해석
1연 3행 du 너 / 그대
2~4연 Will ich, Will mich, Will mich
5연 Hafis deine Lieder 그대의
6연 Will + dein
“Heil’ger Hafis, dein gedenken”
나 + 그대
7연 Wolltet ihr 너희 / 그대들


이 시에서 “du”는 1연에서는 시적 자아 자신을 가리키고, 나머지는 하피스를 호명하는 맥락에서 쓰인다. 그리고 7연의 “ihr”는 독자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FA Ⅲ/2, 885) 그래서 “du”를 일관되게 “그대”로 번역하는 것보다는 시적 자아 자신을 가리킬 때는 ‘너’로 번역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 아닌가 싶다. 나머지 모든 역자가 이러한 구분 없이 “dein(e), du”가 나올 때마다 “그대”로 번역한 데에 반해 최두환의 번역은 3행의 “du”에 대한 번역을 아예 생략했는데, 이는 명령형이므로 가능한 선택이기도 하지만 또 명령문에 굳이 ‘du’를 넣어서 강조한 시인의 의도를 고려하면 ‘너’를 넣어주었으면 더 좋았으리라 판단된다. 마지막 연의 “ihr”를 김용민과 전영애는 “그대들”로 번역한 데에 반해, 최두환은 “너희”로 번역함으로써 하피스를 지칭하는 “그대”와 더 확실하게 구분되는 효과가 있다. 한편, 괴테 독회는 7연의 “ihr”가 전혀 드러나지 않게 “이러한 시인을 시기하거나/ 귀찮게 여기는 자는”처럼 옮겼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원문에 나타나는 인칭대명사의 변화 양상은 최두환의 번역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난다고 평가할 수 있다.


2) 괴테 독회 공역의 <서동(西東) 시집>(2006)

괴테 독회 회원 17인이 공동으로 번역한 <서동(西東) 시집>은 문학과지성사에서 2006년 11월 출간되었다 (책 제목의 표기가 ‘서동 시집’, 세로쓰기로 ‘서동시집’, ‘서동(西東) 시집’ 등 표지, 책등, 내지별로 모두 달라 이 장의 제목은 발행 정보가 있는 면을 기준으로 했고 이하에서는 <서동 시집>으로 표기한다). 이 번역본은 공동 번역으로 책날개와 ‘옮긴이 소개’에서 열일곱 명의 역자를 소개하고 있으며, 개별 부분을 누가 번역했는지에 대한 정보는 없다. 대신 대표 역자 안문영이 <작품 해설>의 끝에 공동 번역 과정을 소개하며 회원 상호 간의 교환 교열을 반복하였으며 번역에 따른 모든 책임은 일괄 정리를 맡은 본인에게 있음을 밝히고 있다. 핵심적인 내용에 집중하여 비교적 간결한 그의 작품 해설은 우선 <서동시집>의 문학사적 의의, 작품 구성, 이 작품의 영향 및 후대의 평가를 소개한 후, <메모와 논고>의 개요와 의의, 즉 동방학의 개방적 수용과 창의적 해석이라는 측면을 설명한다. 또한 번역의 원본이 함부르크판 괴테 전집임을 밝히고 있으며, 이는 산문 편의 제목(<서동시집>의 더 나은 이해를 위한 메모와 논고)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프랑크푸르트판을 저본으로 삼은 것으로 보이는 전영애의 번역에서는 이 부분의 제목이 <보다 나은 이해를 위하여>이다. 괴테 독회의 공역은 바로 이 오리엔트 연구 부분, <메모와 논고>까지 포함한 최초의 완역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초역과 4년의 시차가 있으면서 또 초역의 역자가 공동 번역에 함께 참여한 괴테 독회의 공동 번역은 전반적으로 어휘나 표현이 현대화되었으며 원문의 직역보다는 자유로운 한국어 표현을 지향하는 경향을 보인다.

나 목동들 틈에 섞여
오아시스에서 목을 축이리라. 20
카라반을 따라 방랑하며
숄과 커피와 사향(麝香)을 팔고
사막으로 도시로
모든 길 누비고 다니리라. (괴테 독회)

나, 목동들 틈에 섞여
오아시스에서 목을 축이리라 20
대상들과 함께 떠돌며
숄이며 커피며 사향을 팔고
사막에서 도시에 이르는
모든 길을 걸어 보리라. (김용민)


위에 인용한 두 번역 모두 원문(Jeden Pfad will ich betreten / Von der Wüste zu den Städten.)의 시행 순서를 한국어 어순에 자연스럽도록 뒤바꾼 점이 눈에 띈다. 23~24행의 번역을 비교해 보면, 김용민은 직역에 가깝게 번역한 데에 반해, 괴테 독회는 텍스트에 묘사된 내용을 바탕으로 상황을 훨씬 더 자유롭게 구성했다. 이런 경향은 “대상들과 함께(mit Karawanen)”를 “카라반을 따라”로 옮긴 데에서도 드러난다.


3) 김용민 역의 <서동 시집>(2007)

김용민이 산문편 없이 시편만 완역한 <서동 시집>은 2007년 5월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발행 시기가 괴테독회의 공동 번역과 불과 반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데, 역자는 1996년 초벌 번역을 마쳤으나 출판사 서랍에서 잠자고 있던 원고를 다시 수정하며 프랑크푸르트판 괴테 전집과 기존 완역본의 도움을 받았음을 직접 밝히고 있다. 그 밖에도 그는 번역에 대해 비교적 상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원문의 뜻과 형식을 살려 보려 노력”하였지만 “미흡하기만 하다”(376)는 자평과 함께, 가독성을 고려하다 보니 원문보다 시행을 늘리거나 줄이기도 했다는 사실도 언급한다. 최두환과 마찬가지로 산문편을 번역본에 넣지 않은 이유에 관해서도 설명하는데, 괴테의 글이 일정한 시대적 한계를 지니며 이 부분이 개별 시들을 이해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번역 저본은 앞선 번역본들과 마찬가지로 함부르크판 전집이며, 주석 역시 앞선 역본들과 마찬가지로 함부르크판과 프랑크푸르트판 모두를 참조했음을 밝히고 있다. 작품 해설에서는 이 시집의 역사적 배경, 작품 생성사, 마리안네 빌레머와의 사랑, 「줄라이카 시편」에서 마리안네의 역할, 시집 전체의 주제와 특징 등에 대해 설명한다.

김용민은 위에서 본 예에서도 그랬듯이 원문의 시행 순서를 꼭 지키기보다는 자유롭게 재구성해서 배치하는 편이며, 원래의 시행에 없는 단어를 보충해서라도 독자에게 시의 맥락을 전달하는 방식을 선택한다.

Bösen Felsweg auf und nieder 25
Trösten, Hafis, deine Lieder,
Wenn der Führer mit Entzücken
Von des Maultiers hohem Rücken
Singt, die Sterne zu erwecken
Und die Räuber zu erschrecken. 30

험한 바윗길을 오르내릴 때면
하피스, 그대의 노래가 위안을 주리라
노새의 높다란 등 위에서
선도자가 황홀하게
별들을 깨우고, 강도들을 쫓기 위해
그대의 노래를 부를 때면. (김용민)

험한 바윗길 오르내릴 때
위안을 주는구나, 하피스여, 그대 노래
대장이 신명나게
노새의 높은 등에서
노래 부를 때, 별들을 깨우려
도둑을 쫓으러 노래 부를 때 (전영애)

험한 바윗길 오르내리며
하피스여, 그대의 노래가 위안이 된다.
대장(隊長)이 나귀 등에 높이 앉아
그 황홀한 노래 불러 별들 잠 깨우고
도적을 물리칠 때면. (괴테 독회)


원문에는 ‘노래하다 Singt’라는 동사밖에 없지만 인용한 시연에서 카라반의 대장이 부르는 노래가 하피스의 노래임은 자명하다. 그리고 그 노래가 하피스의 노래임을 드러내는 방식은 역자마다 다른데, 김용민은 26행의 “그대의 노래”를 가져와서 삽입, 반복함으로써 이를 보여준다. 괴테 독회는 원문의 부사(“황홀하게”)를 관형어(“황홀한”)로 바꾸어 “노래” 앞에 붙이면서 그 앞에 다시 “그”라는 수식어를 부가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한다. 위의 인용문에서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은 시행의 순서다. 김용민과 괴테 독회의 번역은 원문의 시행 순서를 그대로 지키지 않았으며, 괴테 독회의 경우 심지어 6행을 5행으로 줄였다. <헤지라>는 전체 7연으로 각 연은 세 개의 쌍운(Paarreim)으로 이루어진 6행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말 번역에서 각운까지 살리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이렇게 정형화된 형식을 갖춘 시인 만큼 최소한 6행 구성은 살리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이런 면에서 전영애의 <헤지라> 번역은 원문의 시행 순서를 지키려고 매우 의식적으로 노력한 점이 돋보인다. 26행(“위안을 주는구나, 하피스여, 그대 노래”)은 최두환과 마찬가지로 어순까지도 원문과 마찬가지로 배치했다. 그러나 최두환 번역은 총 42행의 원문 시행이 43행으로 한 행 늘어나 있다. 물론 한 권의 시집 전체에서 시행 배치를 원문과 똑같이 하는 것은 한국어의 어순을 고려하면 쉽지 않은 일이고 전영애의 번역도 다른 시들에서는 시행 순서가 바뀌는 경우가 종종 눈에 띈다. 한편, 전영애의 번역에서는 “노래 부를 때”가 29, 30행에서 반복되는데, 독일시의 운율을 우리말로 살리기는 어렵지만 최소한의 운율감을 주고자 하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4) 전영애 역의 <서·동 시집>(2012)

전영애 역본은 2012년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에서 제1권 <서·동 시집>, 제2권 <서·동 시집 연구>를 상자 포장한 세트로 출간되었다. 기존의 번역본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개 프랑크푸르트 전집의 주석을 참조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는 각주를 많이 달았는데, 이 번역본은 아예 연구서를 별책으로 추가하였다는 점에서 ‘연구번역’의 성격이 더 강하다고 하겠다. 그리고 이 연구서의 공저자가 바로 프랑크푸르트 전집의 편집자인 헨드릭 비루스 교수라는 점에서 이 역본은 대중성보다는 학술성을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학술적인 이 역본에서 번역 대본을 명시적으로 밝히는 부분을 찾을 수 없는 점은 뜻밖이다. 이는 역자가 프랑크푸르트 판본을 대본으로 삼았음을 너무 당연시해서 오히려 빠뜨린 것으로 보이는데, 비루스 교수와 공저한 연구서와 그가 추가한 <*> 표시에 대한 언급으로 미루어 이 판본을 저본으로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프랑크푸르트 판본은 <서동시집>과 연관된 모든 자료가 수록된 방대한 판본인 만큼, 전영애의 역본은 시편의 경우 1827년 <서동시집>만을 완역했으며, ‘유고遺稿에서’라는 제목으로 일부 시를 추가하면서 발행자들이 선별한 시편 중 역자가 고른 것이라는 설명을 붙이고 있다. 앞선 두 역본(괴테 독회, 김용민)이 함부르크 판본의 ‘유고 중에서’에 실린 모든 시를 번역한 데에 반해, 전영애의 역본에는 이 중에서 한 편이 빠져 있다.

우선 언급할 한 가지 점은 총 열두 묶음으로 구성된 <서동시집>에서 이 묶음의 단위 ‘Buch’를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소설의 경우에는 흔히 ‘권’으로 번역되는 이 단어를 초역의 역자 최두환은 ‘서’로 번역했고 전영애도 이 역어를 받아들여 ‘가인의 서’와 같이 번역했다. 반면, 다른 역자들은 ‘시편’(괴테 독회, 김용민)이나 ‘편’(임우영)을 선택했다. 앞선 시행 비교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전영애의 <헤지라> 번역은 원문의 시행 순서를 지켜서 번역하며 가급적 운율감을 살리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시의 운율성에 대한 고려는 전반적으로 조사나 부연설명을 덜어낸 간결한 표현에서도 엿보인다. 예컨대 다른 역자들이 시의 맥락에 맞춰 “사랑스런 아가씨”(최두환), “사랑스러운 이”(김용민), “아가씨”(괴테 독회) 등으로 번역한 “Liebchen”을 전영애는 간결하게 “사랑”으로 번역했다.

목욕장에서 선술집에서
성 하피스여, 그대를 생각하겠노라
사랑이, 베일을 살짝 쳐들 때
암브라 향 고수머리 흔들어 향기 풍길 때.
시인의 사랑의 속삭임은
후리까지도 음탕하게 만들잖는가 (전영애)

온천에서 그리고 주막에서
성스러운 하피스여, 그대를 생각하리라.
사랑스러운 이가 베일을 살짝 들어 올려
송진 향 나는 머리 냄새를 풍길 때면
그대, 시인의 사랑의 속삭임은
후리들마저도 설레게 한다. (김용민)

반면, 34행(“Schüttelnd Ambralocken düftet.”)의 경우, 원문은 간결하지만, 이를 번역하면 “암브라 향 고수머리 흔들어 향기 풍길 때.”(전영애)처럼 길어질 수밖에 없는데 이때는 간결성보다는 정확성을 추구하고 있다. “송진 향 나는 머리 냄새를 풍길 때면”(김용민) 같은 번역은 비슷한 길이지만 ‘흔들다(Schüttelnd)’와 ‘곱슬머리 (Locken)’의 의미는 살리지 못했다. 그러나 인용한 두 번역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는 마지막 행인데 36행의 “Mache … lüstern”을 김용민을 비롯한 나머지 역자 모두 ‘설레게 한다’ 정도로 번역한 데에 반해, 전영애는 “음탕하게”로 직접적이고 과감하게 해석했다. 그리고 “후리(Huri)”에 관한 역주에서 이 단어가 창녀를 의미하는 ‘Hure’와 발음이 비슷하다는 점을 지적함으로써 자신의 해석을 뒷받침한다. 필자가 보기에 “설레게”는 원문의 의미를 너무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반면, “음탕하게”는 또 과한 느낌도 있어서 “욕망하게” 정도가 어떨까 조심스럽게 제안해 본다.


5) 임우영 역의 <서동 시집>(2021)


2021년 지만지에서 출간된 임우영의 역본은 번역 저본으로 함부르크판과 프랑크푸르트판 전집을 사용했음을 밝히고 있다. 이 번역본은 앞선 번역본들과 편집 형식을 달리한 점이 눈에 띄는데, 우선 책머리에 작품의 생성사, 전기적 배경 등을 소개하고 각 시편(서)의 권두에 그 시편 전체에 대한 간략한 해설을 붙이고 다시 개별 시마다 시 뒤에 해제를 붙이는 식으로 작품 해설에 매우 공을 들였다. 번역과 관련해서는 “가급적 원문의 행에 따라 번역하려고 했지만, 우리말에 너무 어색한 경우에는” 행을 바꾸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다섯 번째 완역본이니만큼 앞선 번역본의 좋은 점을 수용하는 경향이 보이는 한편으로, 원문에 없는 표현을 집어넣거나 단어를 중복해서 쓰는 경향도 보인다.

북쪽과 서쪽과 남쪽이 산산조각 나면서, 
권좌들은 부서지고, 제국들은 떨고 있다 
그대여 달아나서, 아직 순수한 동방에서 
족장들과 가부장들의 향기를 만끽해라. 
사랑하고, 마시고 노래 부르면서 
키저의 샘물로 젊어져야 하리라. 

순수하고 올바르게 사는 그곳에서 
나는 마음씨 따뜻한 종족들의 
깊은 기원 속으로 파고들리라. 
아직 신으로부터 지상의 언어로 
하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도 
골머리 앓지 않았던 그곳에서.

위의 인용문 3행의 “아직”은 원문에는 아예 없는 표현이다. 그리고 4행의 “족장들과 가부장들의 향기” 같은 경우는 ‘Patriarchen’이라는 한 단어를 족장이나 가부장 중 선택해서 번역하지 않고 둘 다 같이 쓰고 있으며 ‘Luft’ 역시 ‘대기’, ‘공기’, ‘숨결’ 등 원래의 의미에 가까운 여러 선택지 대신 “향기”라는 다른 표현으로 옮겼다. “아직”을 삽입한 것은 역자의 적극적인 해석적 개입이라 이해할 수도 있겠으나 “족장들과 가부장들의” 같은 반복은 혹 시행의 길이를 비슷하게 맞춰서 시의 형식적인 부분을 보완하려는 시도였을까 추측해 본다. 앞에서 인용한 최두환의 초역 2연이 시행별로 들쭉날쭉한 것과 달리 임우영의 번역은 1연과 비슷하게 2연 역시 시행의 길이가 엇비슷하게 맞는 것도 이런 추측을 뒷받침해 준다. 8행의 “menschlichen Geschlechten”은 “인류”(최두환, 김용민, 괴테 독회), “인간의 족속들”(전영애) 정도로 번역하는 것이 맥락상 더 적절해 보이나, 임우영은 ‘menschlich’를 ‘barmherzig’, ‘freundlich’의 의미로 보아 “마음씨 따뜻한 종족들”로 번역했고 이로써 부수적으로 시행의 길이가 늘어나서 2연 전체가 시각적으로 안정감 있게 되었다.


3. 평가와 전망

지금까지 괴테의 <서동시집> 시편을 기준으로 했을 때의 완역본 총 5종을 전반적인 특징과 첫 번째 시 <헤지라>를 중심으로 비교해 보았다. 그 과정에서 어떻게 원문의 운율을 조금이라도 살릴 수 있을 것인가, 서로 다른 언어 구조로 인해 시행의 순서를 지켜가며 번역하기가 어렵지만 그래도 이를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인가, 역자의 해석적 자유는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을 것인가 등등 시 번역의 난제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해 보았다. 이 시집에 들어있는 세계시민주의와 비교 문학(문화)적 시각, 문화상대주의 등 당대로선 굉장히 앞서갔던 괴테의 사상이 어느덧 너무 당연해서 낡은 것이 되어가는가 싶었지만, 2025년 오늘의 세계정세를 보면 전혀 그렇지 않으며 오히려 바로 지금 여기에서 다시 소환되어야 할 가치들로 보인다. 노년의 괴테가 자신에게 새로운 다른 문화를 자기 것으로 흡수, 소화하여 내놓은 이 시집은 한국의 번역자와 연구자에게 그렇게 융합된 두 문화를 우선 이해하고 다시 우리의 것으로 매개하는 이중의 과제를 안겨준다. 전문적인 독문학 연구자들이 녹록지 않은 이 과제에 뛰어들어 지난 이십여 년간 <서동시집>에 관한 이해를 획기적으로 심화시켜 왔다. 이러한 선배 연구자들의 노고에 감사하며 선행 번역본을 토대로 <서동시집>에 관한 연구가 한국에서도 더 활발하게 이루어지길, 다시 십여 년이 흐를 때쯤 새 시대에 발맞춘 더 좋은 번역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최두환(2002): 서동시집. 시와 진실.

괴테독회 공동번역(2006): 서동(西東) 시집. 문학과지성사.

김용민(2007): 서동 시집. 민음사.

전영애(2012): 서·동 시집.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임우영(2021): 괴테 시선 Ⅵ - 서동시집. 지식을만드는지식.


조성희


바깥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