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분수 (Der römische Brunnen)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1875-1926)의 시
| 작가 | 콘라트 페르디난트 마이어(Conrad Ferdinand Meyer) |
|---|---|
| 초판 발행 | 1882 |
| 장르 | 시 |
작품소개
스위스 시인 콘라트 페르디난트 마이어의 시로 1882년 출간된 시집 <시집>에 실려 있다. 단연시인 이 작품은 전체가 총 8행으로 짜여 있으며, 각운 형식은 교차운(abab)이다. <로마의 분수>는 시적 대상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묘사하는, 이른바 사물시(Dinggedicht)에 속하는 시로서 이러한 부류의 원형이자 전형이라 하겠다. 이 시가 중심 소재로 삼고 있는 대상은 로마의 빌라 보르게세(Villa Borghese) 공원 안에 있는 해마(海馬)의 분수(Fontana dei Cavalli Marini)다. 마이어는 크기가 서로 다른 세 개의 분수대 “수반”과 그 사이에서 움직이는 물의 모습을 주관적 감상이나 설명 없이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시인은 여러 번 제목을 바꿔가며 수십 년 동안 무려 16번이나 개작을 시도했다. <로마의 분수>는 일곱 개의 버전 가운데 마지막 버전에 해당한다. 균형과 조화를 상징적 의미로 가지는 <로마의 분수>는 국내에선 김광규가 처음으로 번역해 1979년 시 모음집 <미라보 다리아래 세느江이 흐르고: 世界抒情詩100選>에 수록하였다(문장).
초판 정보
Meyer, Conrad Ferdinand(1882): Der römische Brunnen. In: Gedichte. Leipzig: Haessel, 125.
번역비평
1. 번역 현황 및 개관
스위스 취리히 출신의 콘라트 페르디난트 마이어는 19세기 ‘시적 사실주의’(Poetischer Realismus)를 대표하는 작가들 가운데 한 명이다. 40대 중반이라는 늦은 나이에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그는 무엇보다 노벨레 작가로 잘 알려져 있으나, 프리드리히 헵벨, 테오도르 슈토름 등과 더불어 사실주의 시대의 시문학이 명맥을 유지하는 데 일조한 시인이기도 하다. 마이어를 시인으로서 유명하게 만든 것은 이른바 ‘사물시’(Dinggedicht)라 불리는 것인데, 이는 시인 개인의 주관적 감상이나 설명을 배제한 채 시적 대상인 외부 세계와 사물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묘사하는 시이다. 마이어의 사물시는 훗날 특히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사물시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된다. 본 번역 비평에서 중점적으로 다루려 하는 <로마의 분수>는 마이어의 대표 시집 <시집>(Gedichte, 1882)에 실려 있으며, 다름 아닌 사물시의 원형이자 전형이라고 볼 수 있다.
마이어의 시작품은 국내에서는 일종의 미지의 영역에 해당한다. 그에 관한 연구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고, 본격적인 번역 작업이 시도된 적도 없다. 20여 편 남짓한 그리 많지 않은 작품이 우리말로 옮겨져(몇몇은 두 번 이상) 여러 시 모음집에 실려 있으며, <로마의 분수>의 경우 그 역사적 의미와 중요성에 걸맞게 마이어의 시 중에서 가장 많이 번역되었다. 1970년대 말 이래 국내에서 이루어진 <로마의 분수>의 번역 출판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이 시는 최초로 번역 소개한 김광규를 필두로 최연숙, 김정환, 정명순, 임홍배 등 5명의 번역자의 선택을 받았고(본래 직업 시인인 김정환 외에 나머지는 모두 독문학을 전공했다), 총 6종의 우리말 번역이 다양한 구성의 시선집에 담겨 출간되었다. 번역 시도의 성과 대부분이 2013년 이후에 나온 걸 보면 <로마의 분수>는 상당 기간 번역자들의 관심 밖에 놓여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2. 개별 번역 비평
Der römische Brunnen Aufsteigt der Strahl und fallend gießt Er voll der Marmorschale Rund, Die, sich verschleiernd, überfließt In einer zweiten Schale Grund; Die zweite gibt, sie wird zu reich, Der dritten wallend ihre Flut, Und jede nimmt und gibt zugleich Und strömt und ruht.[1]
<로마의 분수>와 관련해 마이어는 1858년 이탈리아를 여행한 후 시작(詩作)에 대한 영감을 얻는다. 그에게 영감을 준 대상은 바로 로마의 빌라 보르게세(Villa Borghese) 공원에 있는 해마(海馬)의 분수(Fontana dei Cavalli Marini)이다. 고전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예술 조형물을 제재로 한 마이어의 사물시는 그 외적 존재를 단순히 있는 그대로 묘사·재현한 것만은 아니다. 거기에는 다름 아닌 고도의 상징성이 함유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상징성은 무엇보다 적절한 시어 구사와 탄탄한 짜임새에 힘입은 바 크다. 마이어는 <로마의 분수>를 최종적으로 완성하는 데 있어 수십 년에 걸쳐 무려 16번이나 개작을 시도하였고(물론 그러는 사이 시의 제목도 여러 차례 바뀌었다), 그 결과 현재 총 7개의 버전이 남아 있다. 위 시편은 마지막 일곱 번째 버전에 해당한다. 요컨대, <로마의 분수>라는 시는 마이어가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세운 간결하면서도 기품 있는 언어적 조형물이라 할 수 있다. 이어지는 개별 번역 비평에서는 그의 그러한 노력이 우리말 번역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 주의 깊게 살피고자 한다.
1) 김광규 역의 <로마의 분수>(1979), <로마의 분수>(1980)
로마의 분수
위로 솟아 올랐다가 빛은 떨어지면서
대리석 둥근 水盤에 가득 쏟아지고,
이 수반은 베일을 쓰면서
두번째 수반의 바닥으로 넘쳐 흐르고,
이 수반은, 너무 가득 차면,
세번째 수반으로 물결치며 쏟아져 내려,
수반은 저마다 동시에 받고 주면서
흐르고 또한 고여 있다.(김광규, 282)
<로마의 분수>는 국내에선 김광규에 의해 처음 번역되어 1979년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다채로운 시인들의 작품을 선별해 담은 시 모음집 <미라보 다리아래 세느江이 흐르고: 世界抒情詩100選>(문장, 1979)에 수록됐다. 역자는 이듬해 이 버전을 거의 동일한 형태로 <19세기 독일시>(탐구당, 1980)에 실었는데, 두 버전 간에는 표기, 띄어쓰기 등에 있어 아주 작은 차이만 있을 뿐이다. 위의 역시(譯詩)는 문예사조와 작가에 대한 간결하고 집약적인 설명이 첨부된 탐구당 버전이다. 해당 버전은 함께 실린 원문(저본은 나와 있지 않다)과 마찬가지로 7행과 8행 사이에 한 줄을 띄운다. 그리고 후자는 들여쓰기 되어 있다. 아마도 김광규는 <시집> 초판의 원문을 참조한 듯한데, 다만 여기에서는 두 행이 서로 붙어 있다. 행 간격 문제는 역자의 특별한 의도가 아니라면 단순 오류로 보인다. 먼저 김광규의 번역을 운(Reim)의 측면에서 살펴보자. 각운 형식과 관련하여 원문은 abab cdcd 형태의 교차운을 갖추고 있다. 이 형식은 역시의 경우 연결 어미 ‘-면서’와 ‘-고’의 교차 사용을 통해 전반부 4행까지만 유지된다. 최연숙의 번역도 이와 유사한 양상을 보이는데, 역자는 연결 어미 ‘-며’와 종결 어미 ‘-는다’ 또는 ‘-ㄴ다’를 번갈아 가며 쓰고 있다. 앞의 둘에 비해 나머지 다른 번역들은 원문의 각운을 덜 의식한 것 같다.
개별 시어를 우리말로 옮김에 있어 우선 눈길을 끄는 것은 1행의 “Strahl”의 번역이다. 김광규는 이 단어를 “빛”으로 옮기고 있으며, 최연숙과 정명순은 각각 “빛줄기”(최연숙, 202)와 “빛”(정명순, 216)으로 옮김으로써 전자의 번역 방향과 보조를 같이한다. 물론 ‘빛’은 ‘Strahl’이라는 말의 가장 기본적인 뜻이고, 내뿜어져 나오는 물을 마이어가 은유적으로 표현했을 수 있다. 하지만 “gießt”, “überfließt”, “wallend”, “Flut”, “strömt” 등 물과 관련된 시어가 지배적으로 사용된 객관적 묘사의 사물시 <로마의 분수>에서 ‘빛’을 의미하는 “Strahl”은 어딘지 모를 위화감을 불러일으킨다. 이 독일어 단어엔 ‘빛’ 외에도 ‘(물·가스·증기의) 분출[분사](물)’이라는 뜻이 있으며, 이는 김정환의 번역에서 그대로 수용된다(“분출”(김정환, 514)). 사실 문제가 되는 “Strahl”은 다름 아닌 ‘솟구치는 물, 물기둥, 분수’ 등의 의미를 가지는 ‘Wasserstrahl’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이러한 가능성은 임홍배의 번역에서 구체화되고 있다(“분수”(임홍배, 216)).
다음으로 눈에 띄는 건 “-schale”를 “水盤”으로 번역한 것이다. 이 한자어는 사전적으로 ‘주로 물을 담아 꽃을 꽂거나 괴상하게 생긴 돌 따위를 넣어 두는 그릇’을 뜻하나, ‘물’과 ‘쟁반’이란 일차적으로 다가오는 의미는 해당 대상에 대한 직관적인 이해에 도움을 준다. 다른 역자들 가운데 최연숙과 정명순이 김광규의 번역을 따르고 있다. 이에 비해 김정환과 임홍배는 “-schale”를 물에 대한 내용을 뺀 채 각기 “사발”(김정환, 514)과 “함”(임홍배, 216)으로 옮기고 있다.
2) 최연숙 역의 <로마의 분수>(2013)
로마의 분수 빛줄기 위로 솟구치다가 떨어지며 둥근 대리석 수반 가득 붓는다. 수반은 몸을 감추며, 두번째 수반 바닥에서 넘쳐흐른다. 두 번째 수반이 가득 차오르면, 세번째 수반으로 쏟아져 내려흐른다. 수반은 동시에 주고 받으며, 흐르고 쉰다.(최연숙, 202)
김광규의 첫 번역이 나오고 30여 년이 지나 최연숙은 <로마의 분수>를 우리말로 옮겨 시 모음집 <독일시선집>(신아사, 2013)에 수록했다. 작가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작품에 대한 짧은 해설이 첨부되어 있으며, 저본에 대한 정보가 부재한 원문이 들어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Strahl”을 “빛줄기”로, “-schale”를 “수반”으로 번역한 것으로 보아 최연숙은 김광규의 번역을 (어떤 식으로든) 참조한 것처럼 보인다. 김광규의 역시와의 차이에 있어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1행의 “Aufsteigt”의 번역이다. 김광규가 해당 동사를 과거시제인 “위로 솟아 올랐다”(김광규, 282)로 옮긴 데 반해, 최연숙은 현재시제인 “위로 솟구치다”(최연숙, 202)로 옮김으로써 시의 다른 동사들과 시제를 맞추고 있다. 사실 이는 시제의 일치 문제라고만 할 수는 없다. 마이어가 직접 목도한 후 <로마의 분수>에서 생생하게 그리고 있는 대상과 관련하여 작동 과정의 선후 관계나 인과 관계는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건 7행과 8행이 시사하고 있듯이 동시성과 순환성이다. 달리 말해 자연에 귀속된 분수대의 물은 그 흐름의 시작과 끝을 알 수 없이 계속해서 그렇게 현재라는 시간 속에 존재한다. 따라서 최연숙의 번역 시도가 보다 타당하다 하겠다. 김정환과 임홍배 역시 모두 “Aufsteigt”를 우리말로 옮김에 있어 현재시제를 쓰고 있다(“오른다”(김정환, 514)와 “솟구치는”(임홍배, 216)).
최연숙의 번역에서 눈에 띄는 오역 하나를 얘기하자면 다음과 같다. 역자는 4행의 “In einer zweiten Schale Grund”를 “두번째 수반 바닥에서”로 옮기고 있는데, 3행의 끝 단어인 “überfließt”와 연결되는 “In”을 원문에선 장소이동이나 운동방향을 나타내는 4격 지배 전치사로 보는 것이 맞겠다. 김광규, 김정환, 임홍배 등은 해당 구절을 각각 “두번째 수반의 바닥으로”(김광규, 282), “두 번째 사발 바닥으로”(김정환, 514), “두번째 함의 바닥으로”(임홍배, 216) 등으로 번역하고 있다.
3) 김정환 역의 <로마의 분수>(2019)
로마의 분수 오른다 분출이 그리고 떨어지며 붓는다 그것이 대리석 사발 원(圓) 가득, 그리고 그 원이, 베일을 쓰며, 넘쳐흐른다 두 번째 사발 바닥으로; 두 번째가 준다, 너무 풍부해져, 세 번째에게 끓어오르며 제 범람을, 그리고 각자 모두 받고 준다 동시에 흐르고 쉬고.(김정환, 514)
26세에 시인으로서 작품활동을 시작한 김정환은 그동안 다방면에서 재기를 뽐내왔다. 번역도 거기에 속하는데, 그가 2019년 출간한 <독일시집>(자음과모음, 2019)에는 마이어의 <로마의 분수>를 비롯하여 모두 48명의 시 320편이 실려 있다. 원문은 수록되어 있지 않다.
첫인상이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지만, 김정환의 번역은 낯설다. 아니, 복합적 의미에서 생경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처럼 다소 성급해 보이는 판단은 본질적으로 다음의 물음과 연관돼 있다. 과연 그의 번역을 ‘번역’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인가? 김정환의 경우, 그는 한국어의 어순이나 표현 방식은 생각지 않으며, 우리말로 옮긴 독일어 단어를 거의 예외 없이 정확히 원래 있던 자리에 위치시킨다. 이 역자는 번역문이 우리말로 자연스럽게 잘 읽히는 것엔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인다. 가령 이런 식이다. 김정환은 1~2행의 “gießt / Er[Der Strahl] voll der Marmorschale Rund”를 “붓는다 / 그것이 대리석 사발 원(圓) 가득”으로 옮기고 있다. 이에 반해 다른 역자들은 “gießt”를 2행에 붙여 번역하고, ‘원, 구’ 등의 뜻을 가진 명사 “Rund”를 관형어 “둥근”으로 옮겨 “Marmorschale”의 번역과 합치는 등 단어들의 상관성을 의식하며, 역시의 흐름에 부드러움과 자연스러움을 부여하고자 애쓴다(“대리석 둥근 水盤에 가득 쏟아지고”(김광규), “둥근 대리석 수반 가득 붓는다”(최연숙), “둥근 대리석 함으로 가득히 쏟아지고”(임홍배)). 요컨대, 김정환의 번역은 (독문학 전공자에겐) 독일어를 열심히 공부한 사람이 사전을 찾아가며 독일어 단어 하나하나를 충실히 우리말로 ‘옮겨 놓은’ 것 같은 인상을 우선적으로 준다(실제로 그는 독일어를 매우 오랫동안 공부해 왔다). 물론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김정환의 역시에서 경험할 수 있는 그의 그로테스크한 번역 방식은 단순한 유희나 일탈이 아닌 하나의 원칙이자 법칙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2013년에 <나날들>(Days, 1964)로 유명한 영국 시인 필립 라킨(Philip Larkin, 1922~1985)의 시들을 같은 방식으로 번역해 출간한 바 있다. <독일시집> 말미에 있는 옮긴이의 말에서 김정환은 번역에 있어 다름 아닌 “생생하게 찢고 들어오는 구체 너머 즉물(卽物)의 언어”를 살리고자 노력했음을 밝히고 있다. 아마도 언어의 내용인 의미가 아니라 언어 그 자체를 먼저 즐기라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4) 정명순 역의 <로마 분수>(2022)
로마 분수 위로 솟구쳤다 대리석 수반 주위로 빛이 쏟아지듯 붓는다. 베일을 쓴 듯 첫째는 둘째 수반 주위로 넘쳐 흐른다. 풍성해진 둘째는 세째 수반에 파도치듯 쏟아져 내린다. 그렇게 수반은 저마다 주고 받으면서 흐르고 또 휴식한다.(정명순, 216)
정명순은 마이어의 시를 번역해 <로마 분수>라는 제목(다른 역시들의 제목에서 관형격 조사 ‘의’가 빠져 있다)과 함께 2022년 시 모음집 <독일 시 독일 서정>(전남대학교출판문화원, 2022)에 수록하였다. 저본은 표기되어 있지 않으며, 역시 바로 다음에 독일어 원문을 볼 수 있다. 최연숙과 마찬가지로 정명순 또한 김광규의 번역을 참조 대상으로 삼은 듯한데, 앞에서 말한 예들에 더해 “Aufsteigt”가 과거시제인 “위로 솟구쳤다”로 옮겨져 있다.
정명순의 번역과 나머지 다른 번역들을 비교할 때 우선 눈에 띄는 것은 2행의 “쏟아지듯 붓는다”, 3~4행의 “베일을 쓴 듯 [...] / [...] 넘쳐 흐른다”, 6행의 “파도치듯 쏟아져 내린다” 등의 구절에서 볼 수 있듯, 연결 어미 ‘-듯’(‘-듯이’의 준말)과 의존명사 ‘듯’(‘듯이’의 준말)의 사용이다(가령 김광규는 해당 원문을 “떨어지면서 / [...] 쏟아지고”, “베일을 쓰면서 / [...] 넘쳐 흐르고”, “물결치며 쏟아져 내려” 등으로 옮기고 있다). 이처럼 앞과 뒤의 내용이 비슷하거나 같다는 걸 나타내는 말이 쓰임으로써 고독한 관조자로 머물러 있어야 할 시적 화자의 주관적 개입이 직관적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이는 사물시의 본령과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 이러한 유형의 시에 있어 객관적 관찰과 묘사의 대상은 언어를 통해 화자의 감상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스스로) 내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정명순의 번역에서 2행과 4행의 “수반 주위로”는 원문의 내용을 보건대 명백한 오역으로 생각된다. 분수대의 물은 “수반”의 ‘바깥 둘레’가 아닌 안으로 쏟아져 내려 흘러넘치기 때문이다.
5) 임홍배 역의 <로마의 분수>(2023)
로마의 분수 솟구치는 분수가 떨어지면서 둥근 대리석 함으로 가득히 쏟아지고, 대리석 함은 자신을 감추면서 두번째 함의 바닥으로 흘러넘친다. 두번째 함이 가득 차올라 용솟음치며 세번째 함으로 넘쳐흐르니, 모두가 동시에 받으면서 주고 흐르면서 머무른다.(임홍배, 216)
<로마의 분수> 번역들 가운데 가장 최근 번역에 해당하는 임홍배의 번역은 2023년 출간된 시 모음집 <모든 이별에 앞서가라: 독일 대표시선>(창비, 2023)에 실려 있다. 이 시선집에는 요한 볼프강 폰 괴테부터 현역으로 활동 중인 시인에 이르기까지 모두 51명의 독일어권 시인 작품 105편이 수록돼 있다. 역자는 개별 작가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고 있으며, 역시 뒤에는 짧지만, 인상적인 해설이 이어진다. 원문은 들어 있지 않으나, <로마의 분수>의 경우는 책 말미에 저본이 밝혀져 있다.
가장 ‘순수한’ 의미에서 복제하듯이 마이어의 시를 우리말로 옮기려 한 김정환을 제외하면 나머지 네 역자는 전부 한국어의 표현 방식에 대한 고려 속에 번역을 시도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임홍배의 번역은 다른 번역들보다 더 자연스러운 우리말의 모습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전자에서는 원문의 동사 “Aufsteigt”가 그것의 주어를 수식하는 관형어 “솟구치는”으로 옮겨져 있는데(“위로 솟아 올랐다”(김광규), “위로 솟구치다”(최연숙), “위로 솟구쳤다”(정명순)), 이는 묘사 대상인 동작의 주체에 더 집중하게 할 뿐만 아니라 좀 더 정돈된 표현을 통해 1행과 2행의 연결을 보다 부드럽게 만든다. 또한 6행의 “wallend”가 “용솟음치며”로 옮겨진 것은 다소 밋밋한 느낌의 김광규와 정명순의 번역(“물결치며”(김광규), “파도치듯”(정명순))에 비해 더 많은 생동감을 역시에 부여한다. 이렇듯 유려한 한국어의 구사 능력과 더불어 이미 앞에서 언급한 “Strahl”을 “분수”로 옮긴 시도는 임홍배가 번역에 있어 작품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정확성 추구에도 관심이 큼을 나타낸다.
임홍배의 번역에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schale”를 “함”으로 옮긴 것이다. (사람들이 떠올리기 마련인) ‘함’(函)이란 무엇인가? 일차적으로 ‘옷이나 물건 따위를 넣을 수 있도록 네모지게 만든 상자’를 의미한다. 무언가를 담는다는 차원에서 이러한 ‘함’이 분수대의 물을 한가득 담아내는 용도로 사용되는 “-schale”의 번역어로 쓰인 것일까?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질로 만든 큰 독’이란 뜻을 지닌 ‘함’(㽉)도 있기는 하다. 둘 다 역어로서는 직관적인 이해가 쉽지 않다. 역시에 대한 파악의 정도를 높이기 위해 적어도 한 번은 한자를 병기하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3. 평가와 전망
국내에서 독자나 연구자 모두에게 시인으로서의 마이어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음에도 <로마의 분수>만큼은 지금까지 여러 차례 번역자의 선택을 받았다. ‘가독성’엔 별 관심이 없는 듯한 김정환의 번역이 극단적 실험 형태를 띠고 있는데 반해, 김광규, 최연숙, 정명순, 임홍배 등은 그들의 역시에 대한 일차적 접근이 무리 없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 바꿔 말한다면 그들의 역시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읽히는 것에 기본적으로 관심과 주의를 기울인다. <로마의 분수>는 단순하고 소박한 언어로 쓰인 짧은 시이기는 하지만, 시를 시답게 번역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작업인지를 다시 한번 ‘새롭게’ 일깨워 준다. 앞으로 마이어의 시를 좋은 번역을 통해 좀 더 자주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김광규(1979): 로마의 분수. 문장.
김광규(1980): 로마의 분수. 탐구당.
최연숙(2013): 로마의 분수. 신아사.
김정환(2019): 로마의 분수. 자음과모음.
정명순(2022): 로마 분수. 전남대학교출판문화원.
임홍배(2023): 로마의 분수. 창비.
- 각주
- ↑ 독일어 원문은 다음 판본을 이용한다. Meyer, Conrad Ferdinand(1991): Der römische Brunnen. In: Sämtliche Werke in zwei Bänden. Vol. 2. München: Artemis & Winkler Verlag, 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