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전선 이상없다 (Im Westen nichts Neues)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Erich Maria Remarque, 1898-1970)의 소설
| 작가 |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Erich Maria Remarque) |
|---|---|
| 초판 발행 | 1928 |
| 장르 | 소설 |
작품소개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장편소설로 1차 세계 대전의 참혹상을 나이 어린 군인의 시각으로 그려낸다. 1929년 책의 형태로 출판되기 전에 1928년 <포시쉐 차이퉁>에 연재되었다. 레마르크 자신은 이 소설이 정치적 의도를 갖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세계문학에서는 반전소설의 고전으로 분류된다. 1930년 루이스 마일스톤에 의해 영화화되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레마르크는 이 소설로 인해 나치의 적으로 분류되었다. 1차 세계 대전에서 서부전선에 배치된 파울 보이머는 전투가 잠시 중단된 사이에 학창 시절을 회상한다. 칸토렉 선생님의 애국적인 연설은 전 학급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참전을 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기본 훈련을 받는 동안 이미 지금까지 학교에서 배운 가치들이 무용지물임을 깨닫는다. 그러면서도 보이머와 친구들은 전장에서 생존하는 방법을 체득해 간다. 잠시 고향에 휴가를 온 그는 그사이 전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했음을 알게 되고 가족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참호의 처참한 양상을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실망한 채 전선으로 되돌아온 그는 적의 공격을 받아 부상 당하고 몇 주 동안 간이병원에서 지내다가 다시 전선으로 돌아온다. 그 후 몆 주 사이에 보이머의 친구들은 가스나 수류탄 공격을 받고 하나씩 죽어간다. 전쟁이 끝나기 직전 보이머도 파편에 맞아 죽는다. 부대의 보고서에는 ‘서부전선 이상없음’이라고 기록된다. 국내에서는 1930년 피득에 의해 <西部戰線은 조용하다>라는 제목으로 처음 번역되었다(조선기독교창문사).
초판 정보
Remarque, Erich Maria(1928): Im Westen nichts Neues. In: Vossische Zeitung 10. Nov. 1928.
<단행본 초판>
Remarque, Erich Maria(1929): Im Westen nichts Neues. Berlin: Propyläen-Verlag.
번역서지 목록
| 번호 | 개별작품제목 | 번역서명 | 총서명 | 원저자명 | 번역자명 | 발행연도 | 출판사 | 작품수록 페이지 | 저본 번역유형 | 작품 번역유형 | 비고 |
|---|---|---|---|---|---|---|---|---|---|---|---|
| 西部戰線은 조용하다 | 西部戰線은 조용하다 | 에릭 마리아 레마륵 | 彼得 | 1930 | 朝鮮耶蘇敎書會 | 1-258 | 완역 | 중역 | 영어에서 중역 | ||
| 2 | 西部戰線은 조용하다 | 西部戰線은 조용하다 | 에릭 마리아 레마록 | 彼得 | 1930 | 朝鮮耶蘇敎書會 조선야소교서회 | 1-258 | 완역 | 완역 | 중역 | |
| 3 | 西部戰線 異狀업다 | 西部戰線 異狀업다 | 삼천리 3권 9호 | 루마루케 | 역자미상 | 1931 | 三千里社 삼천리사 | - | 확인불가 | 확인불가 | 아단문고 소장 |
| 4 | 西部戰線 별탈업다 | 西部戰線 별탈업다 | 映畵時代 1권 1호 | 레마르크 | 松月洞人 | 1931 | 映畵時代 | 38-42 | 발췌역 | 편역 | |
| 西部戰線 異狀없다 | 西部戰線 異狀없다 | 葦聲文庫 37 | 레마르크 | 朴煥德 | 1959 | 法文社 | 5-249 | 완역 | 완역 | ||
| 6 | 西部戰線 異狀없다 | 凱旋門, 西部戰線 異狀없다 | 世界文學全集 42 | 레마르크 | 丘冀星 | 1962 | 乙酉文化社 | 421-583 | 편역 | 완역 | |
| 7 | 서부전선 이상 없음 | 호숫가의 집딸 外 | 世界文學選集 6 |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 역자미상 | 1964 | 合同出版社 | 150-188 | 편역 | 완역 | |
| 西部戰線 異狀없다 | (컬러版)世界의 文學大全集 28 西部戰線 異狀 없다, 凱旋門 | (컬러版)世界의 文學大全集 28 |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 姜斗植 | 1971 | 同和出版公社 | 23-178 | 편역 | 완역 | ||
| 9 | 西部戰線 異狀없다 | 西部戰線 異狀없다 | 세계의문학대전집 28 | 레마르크 | 강두식 | 1972 | 同和出版社 | 23-178 | 편역 | 완역 | |
| 10 | 西部戰線 이상없다 | 레마르크全集 | 레마르크全集 1 |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 朴煥德 | 1974 | 汎潮社 | 17-236 | 편역 | 완역 | 초판 제1권 |
| 11 | 西部戰線異常없다 | 西部戰線異常없다, 凱旋門 | (컬라版)世界의 文學大全集 28 | 레마르크 | 강두식 | 1975 | 同和出版公社 | 23-178 | 완역 | 완역 | 1970 초판, 1975 중판 |
| 12 | 西部戰線 異狀없다 | 西部戰線 異狀없다 | 三中堂文庫 53 |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 朴煥德 | 1975 | 三中堂 | 5-291 | 완역 | 완역 | |
| 13 | 서부전선 이상없다 | 서부전선 이상없다 | 마당문고 87 |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 강두식 | 1983 | 마당문고사 | 5-242 | 완역 | 완역 | |
| 14 | 西部戰線 이상없다 | 西部戰線 이상없다 | 레마르크全集 1 |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 朴煥德 | 1984 | 汎潮社 | 17-236 | 완역 | 완역 | 5판 제1권 |
| 15 | 서부 전선 이상없다 | 서부 전선 이상없다 | Short book 55 | 레마르크 | 朴煥德 | 1986 | 범조사 | 9-303 | 완역 | 완역 | |
| 16 | 서부전선 이상없다 | (精選)世界代表文學選集. v.4 | 레마르크 | 확인불가 | 1986 | 文仁出版社 | 11-24 | 편역 | 편역 | 축역 | |
| 17 | 서부전선 이상없다 | 서부전선 이상없다 | 乙支選書 47 | E.M.레마르크 | 신영진 | 1987 | 을지출판사 | 5-301 | 완역 | 완역 | |
| 18 | 서부전선 이상없다 | 서부전선 이상없다(외) |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55 | 에리히 레마르크 | 박환덕 | 1989 | 범우사 | 13-210 | 편역 | 완역 | |
| 19 | 서부전선 이상없다 | 서부전선 이상없다, 춘희 | 마당세계문학전집 19 | 에리히 레마르크 | 강두식 | 1993 | 마당 | 3-213 | 편역 | 완역 | |
| 20 | 西部戰線 異狀없다 | 西部戰線 異狀없다 | 에이스 문고 3 | 레마르크 | 朴煥德 | 1993 | 三中堂 | 5-286 | 완역 | 완역 | |
| 21 | 서부전선 이상없다 | 서부전선 이상없다 | 世界名作 100選 89 | 레마르크 | 김민영 | 1994 | 一信書籍出版社 | 5-285 | 완역 | 완역 | |
| 22 | 서부전선 이상 없다 | 서부전선 이상 없다 | Hongshin elite books 89 | E.M. 레마르크 | 이경석 | 1994 | 홍신문화사 | 11-302 | 완역 | 완역 | |
| 서부 전선 이상 없다 | 서부 전선 이상 없다 | Mr. Know 세계문학 |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 홍성광 | 2006 | 열린책들 | 9-230 | 완역 | 완역 | ||
| 24 | 서부 전선 이상 없다 | 서부 전선 이상 없다 | 열린책들 세계문학 67 |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 홍성광 | 2009 | 열린책들 | 9-304 | 완역 | 완역 | 세계문학판 1쇄; 2006년 초판 발행 |
번역비평
1. 번역 현황 및 개관
<서부전선 이상없다>는 19세의 나이로 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던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가 젊은 군인의 시각에서 전쟁의 참상을 그린 소설이다. 애초에 베를린의 주요 일간지 <포시쉐 차이퉁>에 (1928년 11월 10일-12월 9일) 연재되었던 이 작품이 1929년 프로필레엔 출판사에서 단행본의 형태로 출판되자마자 엄청난 부수가 팔려나갔다. 작가 자신은 이 작품을 비정치적인 소설이라고 표명했지만, 전세계적으로 대표적인 반전소설로 받아들여지자 나치당은 1933년 분서사건 때 이 작품도 함께 불태웠다. 평화를 갈망하던 시대정신을 표방하는 것으로 각광 받은 이 책은 출판된 그해 바로 영어로 옮겨졌고, 1930년 미국 영화감독 루이스 마일스톤 Lewis Milestone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져 이듬해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함으로써 더욱 명성을 더해갔다.[1]
일본어판에 의해 부분적으로 소개된 적은 있지만, 일제 치하에 있던 우리나라에서 이 소설이 1930년에 이미 완역되었다는 것은 놀라움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 국내 최초의 번역은 러시아계 유대인으로 선교활동을 위해 우리나라에 와 있던 피득(彼得)에 의한 것이다. 그러다가 1950년대 말부터 한국 독문학자들에 의해 새로운 번역이 이루어지는데, 1959년 박환덕에 이어 구기성(1962), 강두식(1971)의 번역이 뒤따른다. 이를 바탕으로 1970년대에 레마르크 번역은 정점에 달한다고 할 수 있는데, 1974년 레마르크 전집(범조사)이 출판되었다는 것이 그 같은 사실을 말해준다.[2]
6권으로 된 이 전집의 1권에 박환덕의 번역으로 <서부전선 이상없다>가 동일 역자의 <네 이웃을 사랑하라>와 함께 포함되었다. 당시 레마르크가 세계적으로 인기 작가 중 한 사람으로 꼽혔던 만큼 이 한국어판 레마르크 ‘전집’에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독문학자들이 다수 참여하였다. 이는 (한국)전쟁에 대한 트라우마가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던 우리 사회에서 레마르크의 작품이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게오르규의 <25시> 등과 함께 강력한 대중적 인기를 누렸음을 말해준다. 1980년대에도 여러 판본이 나왔으나 이른바 ‘해적판’이거나 박환덕과 강두식의 번역이 출판사를 바꾸어가면서 재출판된 것이었고, 1990년대부터는 레마르크의 인기가 분명한 하향곡선을 그리면서 새로운 출판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던 것이 2000년대 홍성광에 의해 새로 번역되었음에도 이전의 인기를 되찾기에는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저자의 이름은 에릭 마리아 레미르륵, 루마루케, 레마륵을 거쳐 레마르크로 정착되고, 작품 제목은 1930년대에 <西部戰線은 조용ᄒᆞ다>(피득) <西部戰線 별탈업다>(송월동인) <서부전선 이상없다>(박환덕) 등으로 변화한다.
문학사에서는 흔히 이 작품을 표현주의와는 구분되는 신사실주의적 작품으로 분류하곤 하는데, 화자가 자기주장이나 감정 표현을 가급적 억제한 채, 사실에 바탕을 두고 사실 자체가 말하게 한다는 것이다. 좀 더 자세히 읽다 보면 급박하게 돌아가는 전투 상황에 대한 묘사와 이어지는 소강상태에서 전장의 일상에 대한 묘사가 교대로 나타나면서, 전투 상황에 대한 묘사는 긴박하고 간결한 문체가 주를 이루는 데 반해, 과거에 대한 회상이나 기억 장면은 상대적으로 느린 속도를 유지한다. 또한 작가가 ‘서사적 과거 Erzählpräteritum’를 시종일관 사용하는 대신 의도적으로 현재시제를 많이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전장의 사실성과 물(질)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고, 이때 현재시제는 문법적 차원을 넘어 사건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듯한 ‘현재화 Vergegenwärtigung’란 문체적 효과로 작동한다. 이 글에서는 전쟁터의 여러 상황을 묘사하는 데 사용된 언어적, 문체적 특성, 서술 템포, 시제, 번역 화자의 에토스 등을 중심으로 여러 번역본을 비교해 보기로 한다.
2. 개별 번역 비평
1) ' 피득 역의 <서부전선은 조용ᄒᆞ다>(1930)
이 작품의 최초 번역은 1930년 피득에 의한 것으로 1929년 영어판이 나오자마자 이를 저본으로 국한문혼용체로 옮긴 것이다. 실제로는 피득의 번역 이전에 일본어판에 따른 작품 광고나 소개, 부분 번역이 동아일보 등 국내 일간지 등에 실렸던 바 있다. 역자인 피득의 본명은 알렉산더 A. 피터스(Alexander Albert Pieters, 1871-1958)로, 한국선교 초창기의 성경번역자, 찬송가 작사가, 복음 전도자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러시아의 정통파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러시아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일본으로 가서 기독교로 개종했다. 이후 신학을 공부하러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의 맥코믹 신학교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1895년 24세 때 미국성서공회 소속 권서(勸書)의 자격으로 한국에 왔다. 언어에 특별한 재능을 가진 그는 히브리어는 물론 라틴어, 그리스어, 러시아어,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 등에 능숙했고, 한국에 온 지 불과 2년 만에 한국어를 익혀 평소 애송하던 성경의 <시편> 62편을 번역하여 1898년에 ‘시편촬요’(詩篇撮要)[3]를 출판했다. 1910년에는 구약성경 전체를 한글로 번역하여, 그에게는 구약의 최초 한글 번역자란 명칭이 부여된다.
성경과 찬송가 등을 주로 번역한 피터스가 <서부전선은 조용ᄒᆞ다>를 옮긴 것은 이 책의 세계적인 명성에 힘입은 것이기도 하지만, “전쟁의 잔학성에 대한 고발과 반전 사상의 고취에 그 목적이 있다”[4]고 밝힌다. 그는 이를 위해 1929년 Arthur Wesley Wheen의 영어 번역본 <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를 저본으로 삼았다. Wheen의 이 영어 제목은 독일어 원제목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지만 이미 영미문학사의 일부가 되었고, 최초 번역자를 기리는 의미에서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1930년 조선야소교서회에서 간행된 <西部戰線은 조용ᄒᆞ다>는 국한문혼용체로 세로쓰기로 이루어졌고 원저자를 에릭 마리아 레마륵으로 표기하고 있다. 피터스는 서문에서 레마르크가 이 소설을 쓴 목적에 대해 “자기의 소년 동지들이 얼마쯤은 생환하였다마는 그 마음이 크게 상(傷)해서 살았다 하여도 거의 죽은 자와 일반이고 소년에게뿐 아니라 전국에 미친 영향을 보면 전쟁의 해독(害毒)이 얼마나 큰 줄을 알 것이다. 그런고로 그 호참(壕塹)의 정형(情形)이며 창사(廠舍)의 생활이며 야전 병원과 휴가(休假)의 형편이 어떠한 것을 써서 공개하기 위함이다”(서문)라고 설명한다. 근현대 외국문학의 한국어 번역상황을 망라한 김병철은 이 번역본을 영어본과 비교하여 “내용이나 문단 나누기 등의 형식적인 측면에 있어서도 그런대로 나무랄 데가 없다”[5]고 평가한다. 다른 역문들과의 비교를 위해 살펴볼 부분은 마지막 장인 12장의 아래 부분이다.
나는毒瓦欺를조곰마신ᄶᆞᄃᆞᆰ에二週刊療養休暇를밧앗다. 그래셔조고마ᄒᆞ東山에셔날마다日光浴을ᄒᆞ고잇스면서 곳休戰될듯ᄒᆞ다고 나는밋엇다. 그러케되면次次집으로도라갈것이다.
그리ᄒᆞ고보닛가 나의 성각이거긔ᄶᆞ지긋치고 그 以上은나아가지 안ᄂᆞᆫ다. 나를큰힘이잡아다리고 기ᄃᆡ리고잇ᄂᆞᆫ것은 情緖라ᄒᆞᄂᆞᆫ그것이다. 生活의欲이다. 故鄕ᄉᆞ랑이다. 肉身이다. 救援을밧은깃븜의興趣이다. 그러치만거긔는 生活의 別目的이란것이업셧다.(김병철 770쪽에서 재인용)
이 부분의 독일어 원문과 영어 번역은 다음과 같다.
Ich habe vierzehn Tage Ruhe, weil ich etwas Gas geschluckt habe. In einem kleinen Garten sitze ich den ganzen Tag in der Sonne. Der Waffenstillstand kommt bald, ich glaube es jetzt auch. Dann werden wir nach Hause gehen,
Hier stocken meine Gedanken und sind nicht weiterzubringen. Was mich mit Übermacht hinzieht und erwartet, sind Gefühle. Es ist Lebensgier, es ist Heimatgefühl, es ist das Blut, es ist der Rausch der Rettung. Aber es sind keine Ziele.(257)[6]
I have been given fourteen days’ rest because I swallowed a bit of gas. I sit all day in a little garden in the sunshine. There will soon be an armistice, I beliebe in it too, now. Then we shall go home.
My thoughts stop there and I can’t push them on any further. What attracts me so strongly and awaits me are raw feelings - lust for life, desire for home, the blood itself, the intoxication of escaping. But these aren’t exactly goals.[7]
실제로 이 부분은 단기간에 한글을 배운 외국인이 한 번역치고는 놀라울 정도인 것이 분명하지만, 지나치게 한자가 많고 구소설식 문투로 인해 독자층을 확보하는 데는 제약이 있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예를 들어 야소교식 철자법을 따르고 있어 당시의 독자들이 접근하기에도 어려움이 없지 않았다. 또한 원문의 12장 모두를 번역했지만 실제로는 몇몇 장면이 빠져 있는데, 이 생략된 장면들은 특히 성적인 묘사가 드러나는 부분으로 선교사였던 피터스가 의도적으로 삭제한 것으로 추정된다.[8]
수용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외국인에 의해 이루어진 이 한국어 최초 번역의 영향력은 제한적이었고, 당시의 지식인들은 오히려 같은 해에 나온 일본어 번역을 더 선호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어쨌건 이 소설은 일본 제국주의 치하에서 고통받던 우리나라 지식인들에게 강력한 호소력을 지녔고, 많은 비평과 토론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당시 카프 KAPF 계열의 연극단체 ‘신건설’은 나웅의 연출로 1933년 이 작품을 연극무대에 올렸는데, 이것은 극장에서 공연된 최초의 카프 계열 프로극단의 공연으로 기록된다.[9] 하지만 이 같은 시도는 이후 일본 경찰에 의해 저지당했고 이 단체의 많은 회원들은 체포되었으며 급기야 1935년에 카프는 해체되기에 이른다. 이 사건은 당시 좌파 지식인들이 이 작품을 사회주의 문학 노선에 탁월하게 부합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또 이 번역본은 1930년대에 세 번이나 ‘역간’되었다(이병철 1975, 770).
1930년에 나온 피득의 번역 이후 해방과 한국 전쟁의 와중에 1940년대와 50년대에 새로운 번역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은 비단 이 작품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번역사의 전반적인 현상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러다가 한국 전쟁이 끝나고 몇 년이 지난 1959년에 박환덕 역의 <서부전선 이상없다>가 출판되었다. 이 번역서에는 여전히 세로쓰기가 적용되지만 피득의 국한문혼용체보다 한자가 많이 줄었고, 필요시에는 한글 뒤에 괄호를 두어 표기하고 띄어쓰기도 오늘날과 거의 일치한다.
나는 2주일간의 휴가를 얻었다. 독까스를 약간 마셨기 때문이다. 작은 뜰에서 하루 종일 햇빛을 쐬면서 지냈다. 곧 휴전이 될 것 같았다. 나도 이제는 그렇게 믿게 되었다. 그렇게 되며는 그때야말로 집에 돌아가게 된다.
내 생각은 여기에서 그치고 그 이상 진전되지는 않았다. 나를 커다란 힘으로 이끌어가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그것은 정서다. 생활에 대한 의욕이다. 향수다. 피다. 살아난 기쁨의 흥분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아무런 목적이라는 것도 없었다.(247)
이 부분에 대한 박환덕의 번역에서 눈에 띄는 것은 피득과 마찬가지로 원문의 현재 시제를 과거형으로 번역했다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정서다. 생활에 대한 의욕이다. 향수다. 피다. 살아난 기쁨의 흥분이다.”에서처럼 그는 다른 역자들과는 달리, 심지어는 원저자와도 차별화하여 주어를 생략하고 극도로 짧은 문장을 만들었다. 이것은 거의 외침에 가깝게 들리면서 번역화자의 절실한 감정으로 읽히게 한다. 박환덕 번역의 특징을 살펴보기 위해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Tjaden und Müller haben ein paar Waschschüsseln aufgetrieben und sie sich bis zum Rand gestrichen voll geben lassen aus Reserve. Tjaden macht das aus Freßsucht, Müller aus Vorsicht. Wo Tjaden es läßt, ist allen ein Rätsel. Er ist und bleibt ein magerer Hering.(7)
탸덴과 뮐러가 어디선지 양판을 서너 개를 가지고 와서 거기에다 넘쳐흐를 정도로 하나 가득히 얻었다. 누구나가 나중의 즐거움을 위해서 얻은 것인데, 탸덴은 탐식에서, 뮐러는 만일의 준비를 위해서 얻은 것이었다. 탸덴은 그렇게 욕심을 부려도 도대체 뱃속 어디에다 넣어 버리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는 언제나 빼빼 마른 멸치 같았기 때문이다.(6)
여기서도 박환덕은 상당히 자유롭게 도착어를 구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나중의 즐거움을 위해서 얻은 것인데 aus Reserve” 또는 “탸덴은 그렇게 욕심을 부려도 도대체 뱃속 어디에다 넣어 버리는지 아무도 모른다 Wo Tjaden es läßt, ist allen ein Rätsel.”처럼 보충 설명을 더하여 의미를 분명히 하려는 방식이나 “빼빼 마른 멸치 ein magerer Hering”에서처럼 한국어의 비유법을 적극 사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처럼 박환덕은 원문의 의미를 가급적 상세하게 전달하기 위한 열망으로 도착어 독자 친화적인 가공을 시도한다.
박환덕의 번역이 비록 국내 초역은 아니지만 처음으로 독일어 저본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그의 공로를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는 또한 레마르크의 다른 작품들도 다수 번역하여 이 작가의 이름을 국내 일반 독자에게 알리는 데 큰 몫을 했고, 역으로 레마르크 번역은 그의 번역 목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위상을 차지한다.
구기성은 <서부전선 이상없다>에 대해 따로 긴 해설을 붙이지는 않았으나 1938년 레마르크가 국적을 상실한 사실을 언급하면서 “이 시기에는 독일 문학의 전통이 국외로 옮겨져 갔다고 말하는 문학사가도 있을 정도로 망명문학이 독일 문학의 중요한 일익을 담당했었음을 부정할 나위 없는 사실이다”(4)라고 작품 해설에 쓰고 있는 것을 보면 1930년대 좌파 지식인들이 주로 사회주의적 관점에서 이 작품을 수용했던 것과는 달리 망명문학적 관점을 강조한 듯한 인상을 준다. 앞에서 인용했던 부분을 구기성은 다음과 같이 옮긴다.
나는 독가스를 조금 들이마셨기 때문에 二 주일 간 정양을 했다. 나는 조그만 정원에서 온 종일 햇볕을 쪼이며 앉아 있다. 곧 휴전이 된다는 것을 이제는 나도 역시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면 우리는 집에 갈 것이다.
여기서 내 생각은 막혀버려 영 앞으로 나가지지 않았다. 나를 압도적인 힘으로 끌어당기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감정이었다. 생활 의욕이며 향토감이며, 피며, 구원의 흥분이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아무런 목표도 없었다.(582)
위의 또 다른 인용문을 그는 다음과 같이 옮긴다.
티야텐과 뮐러가 대야를 두서너 개 구해 와서 예비로 대야의 가장자리까지 넘치도록 가득 담아두었다. 티야덴은 탐식벽에서 그랬고 뮐러는 조심성에서였다. 티야덴이 그것을 모두 어디에 집어넣는지 모두에겐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여전히 깡마른 청어 같았던 것이다.(423)
위의 두 인용문에서 보는 것처럼 구기성은 문장의 구조나 의미에 있어 거의 가감 없이 원문에 충실한 번역 경향을 보인다. 그는 번역의 단위를 문장 차원에 두는 박환덕과는 달리 문장의 구조에 있어서나 어휘 선택에서까지 가장 독일어에 가깝게 다가감으로써 일종의 ‘문자번역’을 시도한다. 그러다 보니 원문의 ‘ein magerer Hering’을 ‘깡마른 청어’로 옮겼지만, “빼빼 마른 멸치”로 옮긴 박환덕과 비교해 우리말 관용적 어법이란 측면에서는 다소 어색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박환덕과 다음에 다루게 될 강두식이 레마르크의 작품을 출판사를 바꾸어가며 여러 차례 재출판하면서 국내 레마르크 수용을 주도해 온 것에 비해, 구기성의 번역은 도착어 독자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당시 국내 번역 풍토에서는 나름대로 독자적인 노선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첫 번째 인용문에서 ‘Gefühle’란 단어를 피득에서부터 대부분의 역자가 ‘정서’로 옮긴 것을 따르지 않고 ‘감정’으로 옮긴 것도 한 예라 하겠다.
<서부전선 이상없다>의 번역에 상대적으로 늦게 착수한 강두식은 작품 뒤에 붙인 해설에서 “<서부 전선 이상없다>는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에 발표된 소설로서 전쟁문학사상 찬란한 금자탑을 세운 작품이다. 전쟁 문학 중에서도 특히 반전 문학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으며, 애국적인 색채는 전혀 찾아볼 수 없고, 범 세계적인 관점에서 전쟁을 비판하고 있다”고 쓴다. 공통으로 살펴볼 부분은 다음과 같다.
나는 독가스를 좀 마셨기 때문에 二주일간의 휴가를 얻었다. 아담한 정원에 앉아서 나는 하루 종일 햇빛을 쬐고 있었다. 이제는 나도 휴전이 곧 되리라는 것을 시인하게 되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고향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여기서 내 생각은 막혀 더 생각할 수가 없었다. 여러 가지 정서가 나를 힘있게 끌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한 정서란 생의 의욕이요, 향수요, 핏줄이며, 구원에 대한 황홀감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정서에는 어떠한 목적이란 없었다.(177)
차덴과 뮐러는 두어 개의 양푼을 얻어와 철철 넘도록 담아서 감추어 두었다. 차덴은 식충이고 뮐러는 용의주도한 놈이니 그럴 만도 하였다. 차텐은 그렇게 처먹는 것이 다 어디로 가는지 기막힐 노릇이다. 그놈은 그래도 빼빼 말라 있었다.(25)
위의 인용문의 경우 강두식은 도착어 구사에 적극 개입하여 번역화자의 파토스를 담은 강력한 언어를 (철철 넘도록, 처먹는, 기막힐)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고 종종 비속어(식충, 놈, 처먹는...) 사용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어지는 부분에서 원문의 ‘große Vorliebe für Mädchen’을 ‘계집에게 미쳐 있는 놈이다’ 등과 같은 표현은 군인들의 실제 대화에 가장 현실적으로 다가간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분을 다른 역자들과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원문: Leer, der einen Vollbart trägt und große Vorliebe für Mädchen aus den Offizierspuffs hat, [...] 강두식: 덥석부리 레어는 장교 위안소의 계집에게 미쳐 있는 놈이다. 박환덕: 레어라는 사나이는 수염 속으로부터 얼굴을 내밀고 있는데 장교 위안소의 여인에게 굉장한 열을 올리고 있었다. 구기성: 레에어, 그는 얼굴이 온통 수염 속에 파묻혀 있으며 장교 위안소의 아가씨들을 대단히 좋아하고 있는 자이다. 홍성광: 얼굴이 온통 구레나룻으로 덮인 레어는 장교 위안소의 아가씨들에게 한참 열을 올리고 있다.
이처럼 ‘Mädchen’이란 단어에 대한 역어가 계집, 여인, 아가씨들로 다양한 차이를 보이는데, 강두식의 경우 비교적 젠더중립적인 여인이나 아가씨라는 단어 대신 ‘계집’을 선택한 것은 여성비하적이고 비속어에 가깝게 보이나 컨텍스트 상으로는 오히려 전쟁터의 리얼리티를 살린 듯하다. 이처럼 강두식의 번역은 소설이 쓰인 당시의 실제 상황을 최대한 반영하고 번역화자의 파토스가 강하게 이입된 번역이라 부를 수 있다.
1980년대 이후 레마르크의 인기가 한풀 꺾이면서 한동안 새로운 번역이 등장하지 않다가 2000년대에 들어 비로소 새 번역이 시도되었는데, 열린책들에서 나온 홍성광의 번역이 그것이다. 이전 역자들에 비해 반전이나 반공 이데올로기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세대인 홍성광의 번역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언어적·정서적 순화 현상이다. 이미 작품이 출판된 지 수십 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 나온 그의 번역에서는 전장의 언어가 가지는 급박성과 참혹성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사변적인 언어로 옮겨간 듯한 인상을 준다. 전쟁터의 다급함이나 폭력성, 잔인함을 담은 어휘들은 순화되고, 흔히 ‘전보문’이라 불리는 단문 대신 문장의 길이 또한 길어짐으로써 전체적인 흐름이 느려지고 언어적으로도 정제된 느낌을 주는 것이다. 이 같은 특징은 아래 인용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차덴과 뮐러는 어디선가 세숫대야를 몇 개 구해 와서는 여분의 음식을 넘칠 정도로 가득 담아 왔다. 차덴이 그런 일을 하는 것은 음식을 탐하기 때문이고, 뮐러가 그런 일을 하는 것은 만일을 위해서다. 차덴은 그렇게 꾸역꾸역 먹어 대는데도 그게 다 어디로 가는지 모두들 궁금해할 따름이다. 왜냐하면 그는 예나 지금이나 멸치같이 비쩍 마른 말라깽이이기 때문이다.(9)
위의 도착문은 원문이나 앞의 역자들에 비해 훨씬 긴 호흡을 가지고 문장의 템포도 눈에 띄게 느려짐으로써 독자들은 원문을 읽었을 때와는 다소 다른 느낌을 받는다. 비속어 또한 거의 찾아볼 수 없이 평상시의 일상어에 가까워 전장의 언어로 보기에는 점잖고 품위 있는 언어를 사용한다. 이로써 원문의 군더더기 없이 절제되고 전보문 같은 단발적인 언어와는 얼마간의 차이를 보이는데, 수십 년이 지난 탓에 상황의 급박성이나 현실감은 사라지고 이 작품이 다른 번역자에 의해서라 할지라도 이미 여러 차례 번역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초기 번역들이 주는 생경함이나 낯설음 대신 안정되고 다듬어진 느낌을 준다.
나는 독가스를 좀 마셨기 때문에 2주간의 휴가를 얻는다. 어떤 작은 뜰에서 나는 하루 종일 햇볕을 쬐며 앉아 있다. 나도 이제 얼마 안 있으면 휴전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나의 생각은 여기서 막혀 더 이상 진전되지 않는다. 나를 우세한 힘으로 끌고 가고 기다리는 것은 이런 감정들이다. 그것은 생존에 대한 욕망이고,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며, 피인 동시에 살아남은 것에 대한 희열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아무런 목적이 없다.(302)
위의 문장들에서 보는 것처럼 홍성광의 번역은 작가가 사용한 현재 시제를 제대로 살려낸 유일한 번역이고, 이 점에서는 분명 진보된 측면을 보여준다. 이처럼 그는 서사적 과거란 통상적인 소설문법을 지양함과 동시에 시제 또한 문법적 차원을 넘어 문체적 요소로 활용하려는 작가의 의도에 부응한다.
하지만 이에 비해 “그것은 생존에 대한 욕망이고,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며, 피인 동시에 살아남은 것에 대한 희열이다.”와 같은 도착문에서는 하나의 긴 문장으로 만듦으로써 이전 세대 역자들이 보여주는 간결성이나 다급성은 사라져버린다. 이는 전쟁을 직접 겪었던 앞 세대의 역자들과는 다소 다른 번역 에토스, 다시 말해 전쟁을 간접적으로만 겪은 이른바 ‘포스트 메모리’ 세대가 보여주는 일종의 거리감과 객관적 성찰성이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
3. 평가와 전망
레마르크 작품은 1970년대까지 한국 독자들의 열렬한 애호를 받았지만, 전쟁의 기억이 조금씩 옅어져 가던 1980년대부터는 그 인기가 서서히 식어감을 볼 수 있다. 그와 더불어 국내의 레마르크 번역도 1970년대에 정점을 이루고 그 이후로는 차츰 뜸해지는 현상을 보인다.
애초에 일제 식민치하에서 조국의 해방을 원했던 좌파 지식인들은 1930년에 번역된 이 작품을 자신들의 사회주의적 열광에 부응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면, 1960년대 군부독재를 거치는 동안 한국 독자들은 오히려 반공 이데올로기와 연결지으면서 30년대와는 다른 세계관 위에서 이 소설을 수용하였다. 나아가 1980년대부터는 반식민이나 반공이 아닌 전반적인 휴머니즘의 이상으로 읽어내는 경향을 보였고, 오늘날에는 여러 차례의 영화화를 통한 시각적 이미지와 더불어 한 시대를 풍미하던 베스트셀러의 이미지가 더 강하게 부각되는 듯하다. 이처럼 변화하는 시대정신은 알게 모르게 번역자들의 의식에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각각의 번역서들 또한 역으로 당대의 시대정신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부전선 이상없다>는 오늘날까지도 세계문학에서 반전문학의 대표작품으로 굳건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번역사적 차원에서 보자면 각각의 단행본 번역이 인기를 끌면 1960년대부터 유행했던 세계문학전집에 단골 목록으로 수록되고 나아가서는 전집으로 출판되었다는 점에서 레마르크 역시 다른 작가들의 경우와 비슷한 길을 걷는다. 또한 위에서 살펴본 바대로 각각의 번역자들은 자신이 처한 시대적 요구에 따라 서로 차별화되는 특징을 보여주면서 작가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다양한 시각을 제공한다.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피득(1930): 西部戰線은 조용하다. 조선야소교서회.
박환덕(1959): 서부전선 이상없다. 법문사.
구기성(1962): 서부전선 이상없다. 을유문화사.
강두식(1971): 서부전선 이상없다. 동화출판공사.
홍성광(2006): 서부전선 이상없다. 열린책들.
- 각주
- ↑ 이후에는 1979년 TV 영화로도 제작되었고, 2022년에는 에두아르트 베르거 Edward Berger에 의해 최초의 독일 영화로 제작되어 2023년 오스카상을 받았다.
- ↑ 1974년 범조사에서 출판된 레마르크 전집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었다. 1권: 서부전선 이상없다(박환덕 역), 너의 이웃을 사랑하라(박환덕 역), 2권: 개선문(홍경호 역), 3권: 귀로(송영택 역), 4권: 리사본의 밤(김재민 역), 생의 불꽃(홍경호 역), 5권: 낙원의 그늘(박상배 역), 6권: 검은 오벨리스크(강두식 역).
- ↑ 촬요는 선집이란 뜻
- ↑ 김병철(1983): ‘전쟁문학’의 기념비, 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 없다, 동아일보, 1983.8.17, 11면에서 재인용
- ↑ 김병철(1975): 한국근대번역문학사연구, 을유문화사, 770
- ↑ Remarque, Erich Maria(1998): Im Westen nichts Neues. Köln: Kiepenheuer and Witsch. 이하에서는 위에서처럼 본문에 쪽수만 표기한다.
- ↑ Remarque, Erich Maria(1996): 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 London: Vinatage Books, 199.
- ↑ 김미연(2021): 1차대전 소설의 독법 - 1930년대 서부전선 이상 없다의 수용을 중심으로 -, 반교어문연구, 59권, 159-201, 184-186. 피터스에 의해 삭제된 부분 중 하나인 8장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Jetzt sind sie schon ganz stumpf und gleichgültig, die meisten onanieren nicht einmal mehr, so schwach sind sie, obschon es doch damit sonst oft so schlimm ist, daß sie es sogar barackenweise tun.(171)
- ↑ Ahn, Mi-Hyun(2002): Ein ewiger Liebhaber. Das Bild Erich Maria Remarques in Korea, in: Erich Maria Remarque Jahrbuch, XII, 112-133, 117; 이민영(2015): 프로연극운동의 방향 전환, 극단 신건설, 민족문학사연구 59, 민족문학사연구소, 378~385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