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Die Tendenz)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 1797-1856)의 시
작가 |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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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 발행 | 1844 |
장르 | 시 |
작품소개
1842년에 창작된 하인리히 하이네의 시로 4개의 5행 연, 총 20행으로 구성된 일종의 선동시이다. 이 시는 독일의 시인들에게 개인적이고 낭만주의적 사랑 노래나 비더마이어적이고 목가적인 분위기의 시 대신 조국의 자유를 위한 투쟁의 노래, 즉 국민의 영혼을 사로잡아 행동을 촉발할 수 있는 노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칼과 대포가 될 수 있는 노래를 부르라고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마지막 연에서는 하이네 특유의 아이러니가 등장한다. 5연에서 마지막 압제자가 달아날 때까지 칼과 대포의 시를 노래하되 가능한 한 ‘보편적으로’ 유지하라는 언급은 당시 유행하던 애국적인 경향시, 즉 예술성(개성)을 포기하고 정치적 구호(보편성)로 전락한 시를 조롱한 것으로 보인다. 서병각이 1936년 6월 25일자 <조선일보>에 <오뇌의 시인 하이네 연구>(9)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글에 <경향>의 4연 중 1연을 번역하고 간단한 해설을 첨가한 것이 국내 최초 소개이다. 이오류는 1956년 <하이네 시집>(대문사)의 권두시로 이 시를 완역하여 실었다.
초판 정보
Heine, Heinrich(1844): Die Tendenz. In: Neue Gedichte. Hamburg: Hoffmann und Campe, 252-253.
번역서지 목록
번호 | 개별작품제목 | 번역서명 | 총서명 | 원저자명 | 번역자명 | 발행연도 | 출판사 | 작품수록 페이지 | 저본 번역유형 | 작품 번역유형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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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 오뇌의 시인 하이네 연구 1 | 조선일보 6월 14일자 | 하이네 | 서병각 | 1936 | 조선일보사 | 편역 | 완역 | |||
경향 | 하이네 시집 | 하이네 | 김금호 | 1949 | 동문사 | 완역 | 완역 | ||||
3 | 경향 | 세계명작시인선집 1 | 세계명작시인선집 1 | 하이네 | 이오류 | 1956 | 대문사 | 편역 | 완역 | ||
경향 | 로오렐라이 | 하인리히 하이네 | 이동일 | 1965 | 성문사 | 편역 | 완역 | ||||
경향 | 하이네 시집 | 하인리히 하이네 | 전혜숙 | 1968 | 문음사 | 편역 | 완역 | ||||
경향 | 하이네의 명시. 시화집 | 하인리히 하이네 | 이상일 | 1978 | 한림출판사 | 완역 | 완역 | ||||
경향 | 신시집. 하이네시집 | 하인리히 하이네 | 김수용 | 1989 | 문학과지성사 | 완역 | 완역 |
번역비평
1. 번역 현황 및 개관
1842년에 <우아한 세계를 위한 신문 Zeitung für die elegante Welt>에 처음 발표되었던 하인리히 하이네의 시 <경향 Die Tendenz>은 개별적으로 발표된 다른 시들과 더불어 나중에 <시대시 Zeitgedichte>라는 제목의 연작시에 열세 번째 시로 포함되어 시집 <신시집 Neue Gedichte>(1844)에 실렸다. 1840년대 초부터 독일에서 유행한 ‘경향문학’은 미학적 측면을 고려하지 않은 채 오직 정치적 선동만을 추구하였다. ‘시대시’라는 연작시의 제목에서 하이네가 이러한 경향시와는 거리를 두는 참여시를 의도했음을 유추할 수 있다. 하이네의 초기시가 감상적인 낭만주의 분위기를 그리면서 이것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아이러니를 사용했다면, ‘시대시’는 예술성을 배제하고 정치적 구호로 전락한 경향시의 분위기를 모방하면서 아이러니를 통해 경향시의 결핍된 예술성과 실천력이 결여된 공허한 외침을 조롱하고 있다.
4개의 5행 연, 총 20행으로 구성된 이 시는 얼핏 보기에 일종의 선동시처럼 보인다. 이 시는 독일의 시인들에게 개인적이고 감상적인 사랑 노래나 비더마이어적이고 목가적인 분위기 시 대신 조국의 자유를 위한 투쟁의 노래, 즉 국민의 영혼을 사로잡아 행동을 촉발할 수 있는 노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칼과 대포가 될 수 있는 노래를 부르라고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마지막 연에서는 하이네 특유의 아이러니가 등장한다. 5연에서 마지막 압제자가 달아날 때까지 칼과 대포를 노래하되 가능한 한 ‘보편적으로 allgemein’ 유지하라는 언급은 당시 유행하던 애국적인 경향시, 즉 예술성(개성)을 포기하고 정치적 구호(보편성)로 전락한 시를 조롱한 것으로 보인다.
서병각(1936, 최초 소개, 일부 번역), 김금호(1949, 최초 완역. 1956년 필명 이오류로 재간), 이동일(1965), 전혜숙(1968), 이상일(1978), 박재삼(1982, 전혜숙의 번역과 유사), 김선영(1985. 이상일의 번역과 유사), 김수용(1989) 등에 의해 이 시가 번역되었다. 하이네의 시(선)집이 50권 이상 출간되었지만 대부분 서정시에 치중되었다. 그의 사회시나 정치시는 번역된 작품 수나 출간된 빈도가 현저히 낮지만, 이 시는 하이네의 사회참여시 중 자주 번역된 편에 속한다. 번역 비평의 대상은 서병각, 김금호/이오류, 이동일, 이상일, 전혜숙, 김수용이 번역한 <경향>이다.
Deutscher Sänger! sing und preise Deutsche Freiheit, daß dein Lied Unsrer Seelen sich bemeistre Und zu Thaten uns begeistre, In Marseillerhymnenweise. Girre nicht mehr wie ein Werther, Welcher nur für Lotten glüht – Was die Glocke hat geschlagen Sollst du deinem Volke sagen, Rede Dolche, rede Schwerter! Sei nicht mehr die weiche Flöte, Das idyllische Gemüt ─ Sei des Vaterlands Posaune, Sei Kanone, sei Kartaune, Blase, schmettre, donnre, töte! Blase, schmettre, donnre täglich, Bis der letzte Dränger flieht ─ Singe nur in dieser Richtung, Aber halte deine Dichtung Nur so allgemein als möglich.[1]
2. 개별 번역 비평
영화 시나리오를 주로 썼던 서병각은 1936년 6월 14일부터 6월 28일까지 11회에 걸쳐 <오뇌(懊惱)의 시인(詩人) 하이네 연구(硏究)>라는 제목으로 하이네 평전을 <조선일보>에 연재하였다. 그는 <서론>에서 하이네를 “시대(時代)의 동요(動搖)와 고뇌(苦惱)를 가장 예리(銳利)한 붓으로 표시(表示)”한 서정시인이자 시사시인(時事詩人), 독설가이자 사회비평가라고 소개하고 있다(<오뇌의 시인>(1) 오뇌의 시인 하이네 연구 1. 실린곳: 조선일보 1936년 6월 14일. ). 연재된 9번째 기고문에서 서병각은 시 <경향(傾向)>의 4연 중 2연을 번역하여 국내 최초로 소개하였다.
獨逸의 歌手여 讃頌하여라 獨逸의 自由를— 너의 노래가 우리의 靈魂을 支配하고 우리를 實行에 奮起케하는 마르세이유의 讃歌의 曲으로 오즉 롯테를 위하야만 불타는 웰텔가티— 恨歎마라 무엇이 鍾을 치는지 너의 民族에게 알리워라 匕首여 말하야라 長劍이여 말하여라(하략(下略))[2]
서병각은 원문을 매우 충실하게 직역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2연에서 “무엇이 종을 치는지”(3행)는 종이 울린 것 또는 종이 울린 이유, 즉 ‘종소리의 의미’라는 뜻으로 파악되어야 할 터이지만 주어와 목적어를 혼동한 듯하다. 4행에서 비수와 장검은 명령법 동사 ‘말하라’의 목적어임에도 주어로 옮겨지고 말았다. 신문 기고문의 지면상의 한계 때문에 3연과 4연이 생략되었지만, 서병각의 번역은 비교적 정확한 번역으로 이 작품을 최초로 소개한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1956년에 발간된 <세계명작시인선집1>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하이네 시집’(이오류 역)이고, 2부는 ‘와아즈와스 시집’(이능구 역)이다. 1956년 시집의 첫머리에 실린 역자 서문 ‘하이네와 그의 시’의 말미에는 특이하게 이오류가 아니라 ‘1948년 12월 김금호가 쓰다(一九四八年 金琴湖 識)’라고 인쇄되어 있다. 이오류(李午柳)는 시인이자 수필가 및 언론인으로 활동했던 이상로(李相魯)의 필명이다. 그의 이력에서 메이지학원 고등문학부를 중퇴한 사실을 확인했지만, 독일어를 전공했는지는 불분명하다. 김금호라는 이름은 1949년 동문사에서 발간된 <하이네 시집>의 역자로도 등장한다. <세계명작시인선집1>과 <하이네 시집>의 서문의 연도와 목차를 비교해 보면, 번역시의 제목과 순서 그리고 쪽수까지 동일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김금호’는 이상로의 또 다른 필명이라 유추된다.
김금호는 역자 서문에서 지금까지 “일개(一오뇌의 시인 하이네 연구 9. 실린곳: 조선일보 1936년 6월 25일.箇) 감상적(感傷的)인 연애시인(戀愛詩人)”으로 알려진 하이네의 “진정(眞正)한 자태(姿態)”를 드러나게 할 목적으로 종래의 연애시편과 더불어 하이네의 “혁명시인(革命詩人) 민중시인(民衆詩人)으로서의 진면목(眞面目)”을 나타내는 “사회시(社會詩)”도 선별했음을 밝히고 있다. 그는 20여 편의 사회비판적인 후기시를 번역함으로써 연애시인으로서의 면모뿐만 아니라 “자유(自由)의 전사(戰士)”, “세계적 민주주의(世界的 民主主義)의 선구자(先驅者)”, “억센 투사(鬪士)”의 면모도 대중에게 알리고자 했다. 그는 이 시집의 권두시로 <경향(傾向)>을 소개하고 있다.
獨逸의 詩人이어! 노래하라, 讚揚하라, 독일의 자유로! 그대의 읊는 노래 내 마음을 끌어잡고 말세이유의 노래와도 같이 우리를 實行으로 옴기기까지. 이제는 샬로테만을 위하여 속태우는 베르테르처럼 중얼거리지는 말라 ─ 鐘소리가 드높이 알려준 일을 民衆의 귀에 들려라 匕首로 말하여라, 檢으로 말하여라! 이제는 연연한 피리는 내여던져라, 牧歌的인 感情도 내여던져라 ─ 그대 祖國의 喇叭이 되여라 카농砲가 되여라 野砲가 되여라, 불어라, 소리쳐라, 울려라 죽여라! 불어라, 소리쳐라, 울려라, 매일(每日), 최후의 壓制者가 다라나기까지 ─ 오직 이 傾向만을 노래하여라, 다만 그대의 詩風은 될수록 通俗的이어라.(3-4)
무엇보다 이 번역은 이 시를 완역한 초역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으며, 후일의 번역에 못지않게 상당히 정확하다. 어색한 부분이 없진 않지만 내용을 파악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우선 1연 1행의 Sänger(가수)를 ‘시인’으로 옮긴 점이 눈에 띈다. 7명의 번역자 중 ‘시인’으로 옮긴 번역자는 김금호와 더불어 김선영과 김수용이 있다. 1연에서 “노래하라, 찬양하라, 독일의 자유로!”(1연 2행)라고 번역된 부분의 원문을 참조한다면 “독일의 자유”는 “노래하고 찬양하라”의 목적어이며, 따라서 “독일의 자유로”보다는 “독일의 자유를”이라고 번역되어야 할 것이다. 원문의 부문장(2-4행)은 ‘당신들의 노래가 우리의 영혼을 사로잡고 고무시켜 우리가 행동하게 만들다’라는 의미인데, “실행으로 옮기기까지”(4행)라는 부사구로 의역되었다. 아마도 “노래하라, 찬양하라”(2행)와 호응 관계를 이룰 의도로 짐작된다. 이렇듯 그의 번역은 원문의 문장 구조보다는 한국어 표현의 자연스러움에 중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원문의 각 연은 5행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번역시의 3연은 마지막 5행을 4연의 1행에 배치하고, 원문의 4행과 5행을 하나의 행(번역시 4연 5행)으로 옮겼다. 번역자의 의도가 개입된 것인지, 아니면 조판 상의 오류인지는 불분명하다.
독일의 가수들이여! 노래하라, 찬양하라, 독일의 자유를, 자네의 노래가 우리들 영혼을 지배해서 <말세이유>의 찬가(讚歌)로 우리들을 실행의 대열 속에다 휩쓸어 넣으라 오로지 <롯테>만을 위하여 애태운 <벨테르>같은 그런 그리움과 사랑의 탄식은 그쳐라 ─ 종소리가 드높이 무엇을 고하고 있는가 자네는 빨리 민중에게 고해야 한다 비수로써 말해라, 칼로 부르짖어라! 이미 감상의 피리소리는 끝났다 목가적(牧歌的)인 기분은 내버려라 ─ 조국의 나팔이 되어라 대포가 되고 포탄이 되어라 불어라, 울려라, 떨쳐라, 죽여라! 불어라, 울려라, 떨쳐라, 날마다 최후의 압제자가 도망칠 때까지 ─ 단지 이 경향에서만 노래하라 그러나 자네의 시풍(詩風)은 되도록 통속되어야지.(65-66)
역자 이동일에 관한 정보는 확인하기 어려웠다. 이동일은 1965년 <로오렐라이>라는 하이네 번역시집을 출간하였다. ‘머리말’에서 출간 당시까지 하이네 번역시집 중 가장 많은 편수를 싣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하이네의 초기시부터 후기시까지 망라하여 엮은 번역시집의 말미에 ‘하이네 소전’이라는 제목의 평전이 실려 있다. 그의 번역은 국한문 혼용체가 아니라 한글 위주에 한자를 병기하고 있다.
원시는 각 연이 5행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특이하게 번역시의 1연은 4행으로 구성되었다. 약간의 의역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정확하게 번역되었고 내용의 전달에 무리가 없다. 매끄럽지 못한 부분을 한두 가지 언급하자면, ‘마르세이유 찬가 방식으로’라는 의미의 원문을 “말세이유의 찬가로”(1연 3행)라고 단정적으로 옮김으로써 독일의 가수가 마르세이유 찬가를 불러야 한다는 어색한 논리가 전개된다. “Sei nicht mehr die weiche Flöte / Das idyllische Gemüt –”(3연 1-2행)은 “이미 감상의 피리소리는 끝났다 / 목가적인 기분은 내버려라”로 번역되었다. 명령법 현재를 직설법 과거(“끝났다”)로 옮김으로써 독일 가수에 대한 현재의 요청이 불분명하게 전달된다. 하지만 “내버려라”는 의역은 문맥상 의미를 잘 전달하고 있다. 4연 3행의 “단지 이 경향에서만 노래하라”에서 ‘경향’의 원문은 “Richtung (방향)”이다. 김금호가 이미 ‘경향’이라고 번역하였지만, 시 전체의 의미를 고려하면 적절한 번역어라 할 수 있다.
도이취의 가인(歌人)이여 노래하라 찬양하라 도이취의 자유를, 너의 노래가 우리들의 영혼을 매혹하듯이 그리고 마르세이즈의 선율로 우리들을 행위에로 분기시키듯이. 이제는 롯데 하나만에 열을 올리던 베르테르와 같은 달콤한 말은 그만두어라 ─ 경종이 알린 것을 너희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 검을 노래하라, 칼을 노래하라. 이제는 약한 피리소리가 되지마라 목가적인 정서는 그만 두어라 ─ 조국의 드높은 나팔이 되라 총대롱이 되라 대포가 되라 불어라 쳐라 울려라 죽여라! 불어라 쳐라 울려라 날마다 압제자가 마지막 하나까지 달아나도록 ─ 이런 방향에서 만이 노래하는 것이다 그러나 너희 노래를 되도록 모두들에게 적합하도록 불러야 한다.(184-185)
도입부에서 전혜숙은 “Deutscher Sänger!”를 “도이취의 가인이여”로 옮긴 것에 반해 다른 번역자들은 대부분 “독일의…”로 옮기고 있다. Deutschland의 중국 음역은 ‘德意志(덕의지)’ 또는 ‘德國(덕국)’이며, 일본어 음역인 ‘도이쯔(ドイツ)’의 한자 표기는 ‘독일(獨逸)’이다. 이 일본어 음역이 한국에 수용되어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한때 오늘날 ‘불란서(佛蘭西)’를 ‘프랑스’로 표기하듯이, ‘덕국’이나 ‘독일’을 원음에 가깝게 ‘도이치’로 표기하자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굳어진 관행이 아직 깨어지지 않고 있다.
원시의 1연은 느낌표를 사용한 돈호법과 명령법 동사가 연달아 등장하면서 시작됨으로써(“Deutscher Sänger! sing und preise”) 독자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이어지는 dass-부문장(1연 2행-5행)은 일반적으로 결과나 목적을 나타낸다. 이 번역시에서는 이 부분이 비교 문장으로 옮겨졌고 원시의 감탄부호도 생략됨으로써 이런 호소나 선동의 의미가 약화되고 있다.
Rede Dolche, rede Schwerter!(하이네) 匕首여 말하야라 長劍이여 말하여라(서병각) 匕首로 말하여라, 檢으로 말하여라!(김금호) 비수로써 말해라, 칼로 부르짖어라!(이동일) 검을 노래하라, 칼을 노래하라.(전혜숙) 비수를 말해라, 칼을 일러 주어라.(이상일) 단검을, 칼을 말하시오!(김수용)
이전의 번역과는 달리 2연 4행이 문법적으로 정확하게 번역되고 있지만, 짧은 칼(Dolche)을 ‘검’으로 옮김으로써 연이어 등장하는 “칼”과 구별되지 못한 점은 아쉽다. 명사인 단검과 장검은 문법적으로 동사의 목적어이다. 이 목적어를 서병각은 주어로, 김금호와 이동일은 부사로, 전혜숙 이후의 번역은 목적어로 옮기고 있다. 일반적인 한국어 어법으로는 부사로 의역해도 문제없을 듯하지만, 이 시에서는 목적어로 번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혁명의 도구인 칼을 들고 직접 투쟁하는 것이 아니고, 예술성도 결여된 채 공허한 구호만 남발하는(=칼만 읊어대는) 경향문학을 조롱하려는 하이네의 의도를 고려한다면 말이다. 하이네는 이러한 경향시를 후일 “운을 맞춘 신문기사”(B9, 438)라고 비판한 바 있다.
독일의 가수들이여! 노래하라 찬양하라 독일의 자유를 자네의 노래가 우리들 영혼을 지배해서 마르세이유의 찬가(讚歌)처럼 우리를 실행의 대열 속에다 휩쓸어 넣으라. 오로지 로테만을 위하여 애태운 베르테르처럼은 탄식하지 말라. 신호의 종소리는 어떻게 울리는가. 자네는 빨리 그것을 민중에게 알려라. 비수를 말해라, 칼을 일러 주어라. 이제 감상의 피리는 그쳐라 목가적(牧歌的)인 기분은 내버려라 조국의 나팔이 되어라 대포가 되고 포탄이 되어라 불어라, 울려라, 떨쳐라, 죽여라! 불어라, 울려라, 떨쳐라, 날마다 최후의 압제자가 도망칠 때까지─ 단지 그 방향만 향해서 노래하라 그러나 자네의 노래는 아무나 알아들을 수 있게 하라.(94)
약 20년 전에 출간된 이동일의 번역과 비교해 볼 때, 이상일의 번역은 여러 부분에서 이동일의 번역과 유사하거나 동일한 표현들이 보이지만 개선된 부분도 눈에 띈다. 가로쓰기를 하여 한글세대 독자가 훨씬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번역이다. 2연의 경우, 원시는 5행이지만 번역시는 4행으로 인쇄되었다. 그리고 원시의 문장부호를 잘 살리지 못한 것은 아쉬운 점이다.
독일의 시인이여! 독일의 자유를 노래하고 찬미하시오. 당신의 노래가 우리의 영혼을 사로잡을 수 있도록, 우리가 열광되어 행동할 수 있도록, 마르세이유 찬가 식으로 노래하시오. 더 이상 베르터처럼 하소연이나 읊지는 마시오, 이 자는 오로지 로테만을 향해 타올랐지요─ 종이 울리는 의미를 당신 나라 백성들에게 말해야 하오, 단검을, 칼을 말하시오! 더 이상 연약한 피리나 목가적 정조가 되지 마시오─ 조국의 나팔이 되시오, 대포가 되시오, 카르타우네포가 되시오, 나팔 불고 쾅쾅대며 천둥치고 죽이시오! 나팔 불고 쾅쾅대며 천둥치시오, 날마다, 마지막 압제자가 달아날 때까지─ 오로지 이 방향으로 노래하시오 그러나 당신의 시를 가능한 한 보편적으로 유지하시오.(185-186)
독일 유학파이자 하이네를 전공한 독일문학 교수인 김수용은 독일어와 하이네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독일시를 한국어로 정확하게 옮기고 있다. 또한 그의 번역에는 4개의 각주가 있어 시의 이해를 돕고 있다. 주석의 도움을 받지 않고 출발어의 표현과 의미를 도착어로 자연스럽게 옮길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시의 경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가독성을 해치더라도 주석을 달아서 독자의 이해를 도울 것인지 아니면 가독성과 도착어의 자연스러운 표현에 중점을 둘 것인지는 전적으로 번역자의 결정에 달려있다. 하이네의 시에는 대개 끝부분에 허를 찌르는 역설적 아이러니가 있는데 이 시도 예외는 아니다. 더구나 이 시의 아이러니는 마지막의 펀치라인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우선 역자의 주석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마르세이유 찬가”(1연 5행)에 번역자는 “프랑스 혁명 당시 혁명군의 노래이자 후에 프랑스 국가가 된 ‘라 마르세이유’, 이 노래는 19세기 초반 프랑스 혁명, 또는 자유주의적 혁명의 상징이었다.”라는 주석을 달고 있다. “마르세이유 찬가 식으로”(1연 5행)의 원문은 “In Marseillerhymnenweise”이다. 일반적으로 두 단어나 세 단어로 표현될 수 있는 어휘가 하나의 단어로 결합되어 신조어를 이루고 있다. 평범하지 않은 이 조어 방식도 아이러니의 신호로 볼 수 있다. 혁명 가요이자 현재 프랑스 국가인 ‘라 마르세예즈’는 모두 15절이며 “무장하라, 시민들이여, / 대오를 갖추라, / 전진, 전진! / 저 더러운 피가 / 우리의 밭고랑을 적시도록!”[3]이라는 후렴구가 있다. 선동과 투쟁을 의도한 이 노래에서 문학성이나 예술성을 찾기는 쉽지 않으며, 이러한 속성은 경향문학의 속성과 상통한다. 아이러니가 내포된 이러한 신조어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번역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둘째, 번역자는 “베르터”(2연 1행)에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터의 고통에서 베르터는 로테에 대한 못 이룰 사랑을 비관하여 자살했다.”라는 주석을 달고 있다. 베르터는 역자의 각주처럼 로테에 대한 사랑 때문에 자살한 괴테의 동명의 소설의 주인공이다. 감상에 젖어 목적 달성을 포기한 죽음은 대의를 위한 죽음도 아니고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죽음도 아니다. 하이네는 <낭만파>(Die Romantische Schule, 1835)에서 ‘예술시대’를 대표하는 괴테의 작품을 피그말리온이 만든 조각상의 불모성 Kinderlosigkeit에 비유하면서 예술세계에 안주한 그의 현실 무관심주의를 비판한 바 있다(B5, 393-395). 이 시에 언급된 베르터는 감상적 개인주의와 현실 무관심주의를 동시에 조롱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셋째, 번역자는 “카르타우네포”(3연 4행)에 “카르타우네포: 15-16세기에 쓰이던 대포.”라는 간결한 주석을 달고 있다. 다른 번역과 비교해 보자.
Sei Kanone, sei Kartaune(하이네)
카농砲가 되여라 野砲가 되어라(김금호) 대포가 되고 포탄이 되어라(이동일) 총대롱이 되라 대포가 되라(전혜숙) 대포가 되고 포탄이 되어라(이상일) 대포가 되시오, 카르타우네포가 되시오(김수용)
김수용 이전의 번역들은 공히 ‘카르타우네’를 일반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야포’나 ‘포탄’ 또는 ‘대포’ 등으로 의역하였지만, 김수용은 직역하고 있다. 60-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참고문헌을 사용하여 카르타우네의 원의미를 파악할 방도가 쉽지 않았기에 의역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번역어가 어색한 느낌을 주지도 않으며, 전후 문맥을 고려하더라도 자연스러운 듯하다. 카르타우네는 공성전에 사용되었던 대포로서 20㎏이 넘는 쇠공을 포탄으로 사용하고, 무게는 약 3,600㎏에 달하며, 20마리 이상의 말이 운반했던 대포였다.[4]
18세기 이후 전쟁 형태가 바뀜에 따라 대포는 운반이 용이하고 사거리가 긴 방향으로 변화되었다. 하이네가 활동했던 19세기에 카르타우네는 크고 무거우며 이동도 불편하고 사거리도 짧아서 실효성을 잃은 구시대의 유물인 셈이다. 그럼에도 구닥다리 카르타우네포를 언급한 것은 허장성세만 부릴 뿐이지 현실적 행동이나 실천력은 미미한 경향문학을 조롱하기 위함이라 볼 수 있다.
“당신의 시를 ~ 유지하시오”: 이 부분은 하이네의 전형적인 반어적 종결을 보여준다. 위에서 행동하는 혁명적 문학을 요구한 하이네는 이 구절을 통해 오로지 ‘경향’만 앞세운 당시의 경향 문학과 자신을 구분하고 있다. ‘개성’이 말살되고 ‘보편성’만을 강조한 시는 정치적 선동시는 될 수 있으나 예술성은 상실한 시이다.(김수용의 원주)
마지막 행에 달린 짧지 않은 네 번째 주석은 이 시를 이해하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이 주석이 없다면 대부분의 독자는 이 시를 경향시처럼 자유를 위한 투쟁에 참여하라는 선동시로 간주할 것이다. 마지막 행의 ‘보편성’은 하이네가 경향문학에 대해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했던 표현으로서, 경향 작가들의 추상적이고 맹목적인 열정과 예술성이 결여되어 구호로 전락한 경향시를 지칭한다. 경향 곰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운문서사시 <아타 트롤>(Atta Troll, 1843)의 서문에서 하이네는 자유에 대한 경향시인의 맹목적인 열광을 “죽음을 불사하고 보편성의 바다로 뛰어드는 쓸모없는 열광의 안개”(B7, 494)에 비유하였다.
이 시의 화자는 명령법을 과도하게 반복 사용하여(1연 2회, 2연 4회, 3연 7회, 4연 5회) ‘독일의 시인’에게 자유에 대한 열망과 혁명 의식을 고취시키는 여러 가지 요구를 하는 듯하다. 하이네는 반복을 아이러니의 신호로 자주 사용했다. 여기서 반복된 요청은 당대 경향시의 문체를 흉내 낸 것으로 보인다. 끝에서 두 번째 행에서 접속사 “그러나 Aber”가 등장하지만, 진술의 수신자가 바뀌는 것도 아니고 색다른 요구나 호소가 등장하지도 않는다. 다만 이전의 다양하고 자유로운 호소에 약간의 제약(“오직 nur”)을 가할 뿐이다. 마지막 행의 ‘보편성’의 의미가 각주에 밝힌 대로 경향시의 속성을 가리킨다면 “그러나”는 역접의 의미가 아니라 순접의 의미이며, 독자의 시선을 끌기 위한 장치로 볼 수 있다. 끝에서 세 번째 행의 “오로지 이 방향”이란 첫 행부터 그 이전까지 언급된 추상적인 구호들이다. 이렇게 보자면, 1행의 “독일의 시인”이란 다름 아닌 경향문학 작가임이 드러난다. 결국 이 시는 이런 식으로 추상적인 구호만 앞세운 경향문학 및 그 작가들의 무용하고 모호한 열정을 조롱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3연의 1-2행(“더 이상 연약한 피리나 / 목가적 정조가 되지 마시오─”)은 원문을 충실하게 옮긴 것으로 보이지만 ‘목가적 정조가 되지 말라’는 구절은 어색한 느낌을 준다. 의역한 김금호의 번역(“이제는 연연한 피리는 내여던져라, /목가적(牧歌的)인 감정(感情)도 내여던져라 ─”)이 더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3. 평가와 전망
이 시의 여러 번역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대체로 향상된 결과를 보여준다. 서병각의 번역은 이 작품을 최초로 소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하이네의 삶과 작품을 간결하게 소개하는 신문 기사라는 형식으로 인해 일부만 번역된 한계가 있었다. 김금호/이오류의 번역은 이 시를 최초로 완역했다는 의의가 있다. 독일어 원시와 비교해 보면 문법적인 정확도는 떨어진다. 그 까닭이 자연스러운 한국어 표현에 대한 탐구 때문인지는 불분명하다. 부분적으로는 직역보다 더 자연스러운 의역도 있다. 이동일의 번역은 이전의 번역에 비해 전반적으로 개선되었지만, 원시의 의미보다는 한국어 표현에 치중하여 어색한 부분이 있다. 전혜숙의 번역은 Deutschland라는 국명의 한국어 표기에 대해 다시 한번 숙고하게 한다. 김수용의 번역은 정확한 직역에다 각주를 덧붙여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특히 네 번째 주석은 이 시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 중요한 도우미 역할을 한다. 하지만 다른 주석의 경우 해당 사실만 간략히 언급되어 언급된 대상이 시의 내용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어떤 아이러니가 숨어 있는지 잘 드러나지 않는 아쉬움이 있다. 이 시는 번역자로 하여금 주석의 사용 여부와 방법, 아이러니가 포함된 구절의 번역 방식에 관해 고민하게 만든다.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서병각(1939): 경향. 조선일보.
김금호(1949): 경향. 동문사.(하이네 시집)
이오류(1956): 경향. 대문사.(세계명작시인선집 1)
이동일(1965): 경향. 성문사.(로오렐라이)
전혜숙(1968): 경향. 문음사.(하이네 시집)
이상일(1978): 경향. 한림출판사.(하이네의 명시. 시화집)
김수용(1989): 경향. 문학과지성사.(신시집. 하이네시집)
바깥 링크
- ↑ Heine, Heinrich(1981): Sämtliche Schriften in zwölf Bänden. Bd. 7. Hg. von Klaus Briegleb. München/Wien, 422-423.(=B7, 422-423.)
- ↑ 오뇌의 시인 하이네 연구 9. 실린곳: 조선일보 1936년 6월 25일.
- ↑ 프랑스의 국가: https://ko.wikipedia.org/wiki/%ED%94%84%EB%9E%91%EC%8A%A4%EC%9D%98_%EA%B5%AD%EA%B0%80
- ↑ https://en.wikipedia.org/wiki/Kartouwe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