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광대 (Ein Hungerkünst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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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의 소설

단식광대 (Ein Hungerkünstler)
작가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초판 발행1922
장르소설


작품소개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으로서 1922년 피셔 출판사에서 발행하는 독일문학잡지 <디 노이에 룬트샤우>에 처음 발표되었다. 이후 1924년 다른 세 산문 작품과 함께 출판되었다. <단식광대>를 책제목으로 삼은 이 작품집은 그의 생전 마지막 출판물이다. 이 작품은 카프카의 미완성 소설 <성>의 집필이 정체된 1922년 초봄에 쓰였다. 실제 독일어 제목은 “단식예술가” 이지만 한국어 번역으로는 “단식광대”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단식을 재미로 보고 경탄하는 구경꾼들에게 단식가는 행위예술가이기 이전에 광대와 같다. 굶주림을 작품의 주제로 삼은 이 작품은 일차세계대전이 끝나고 궁핍했던 당시의 사회상이나, 혹은 당대 실제로 단식을 업으로 삼아 전시하던 단식가들의 존재를 역사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단식능력을 생업으로 삼은 단식예술가는 창살로 이루어진 우리에 갇혀 지내면서 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음식을 먹지 않고도 견뎌내는지 구경꾼들에게 직접 보여주며 경탄을 일으킨다. 굶는 일은 그에게 너무나 간단한 일인데도, 사람들이 그의 단식을 의심하는 것이 그에겐 가장 괴로운 일이다. 또한 그의 매니저는 40일 만에 단식을 끝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단식이 끝나면 바로 그에게 먹을 것을 제공한다. 하지만 단식예술가는 계속 단식을 할 수 없다는 것에 슬퍼하고, 자신의 단식이 제대로 이해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언제나 우울해진다. 이제 시대가 변하여 단식은 더 이상 구경꾼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단식예술가는 매니저와 헤어지고, 서커스단의 일원이 되어 짚 깔린 우리 속에서 지내고 있다. 여기서도 그는 계속 단식을 이어가지만 관객들은 그의 존재조차 거의 알아채지 못한다. 일꾼이 어느 날 짚풀 속에서 쪼그라진 그를 발견한다. 죽기 직전인 상태에서 이제 그는 왜 자신이 단식을 해왔는지 그 진짜 이유를 밝힌다. 그건 그가 맛있는 음식을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음식이 있었다면 그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잘 먹었으리라고 말한다. 이제 그는 죽어 나가고, 그가 있던 우리 속에는 젊고 힘찬 표범이 들어와 살며 구경꾼들의 활기찬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한국어 초역은 1960년 구기성에 의해 이루어졌다(양문사).


초판 정보

Kafka, Franz(1922): Ein Hungerkünstler. In: Die neue Rundschau. Berlin: S. Fischer, 983-992.

<단행본 초판> Kafka, Franz(1924): Ein Hungerkünstler. Vier Geschichten. Berlin: Die Schmiede.


번역서지 목록

번호 개별작품제목 번역서명 총서명 원저자명 번역자명 발행연도 출판사 작품수록 페이지 저본 번역유형 작품 번역유형 비고
1 굶는 광대 관찰 양문문고 28 프란츠 카프카 丘冀星(구기성) 1960 陽文社 39-88 편역 완역
2 斷食광대 카프카 短篇集 서문문고 38 프란츠 카프카 九冀星 1972 瑞文堂 135-195 편역 완역
3 굶는 광대 變身 文藝文庫(문예문고) 22 프란츠 카프카 李德衡(이덕형) 1973 文藝出版社 157-175 편역 완역
4 斷食하는 광대 카프카 短篇集 世界短篇文學全集(세계단편문학전집) 14 카프카 洪京鎬 1974 汎潮社 228-241 편역 완역
5 단식하는 광대 변신 (세계명작시리즈 9-여학생 12월호 부록) 9 프란츠 카프카 洪京鎬(홍경호) 1975 女學生社 147-179 편역 완역
6 굶는 광대 첫사랑 굶는 광대 사냥군의 手記 세계청춘문학명작선 2 프란쯔 카프카 확인불가 1975 學園出版社 201-217 편역 완역
7 단식하는 광대 世界短篇文學全集 세계단편문학전집 15 카프카 洪京鎬 1976 金字堂 20-46 편역 완역
8 단식하는 광대 카프카, 슈니츨러 세계단편문학전집 15 카프카 홍경호 1976 삼덕출판사 20-46 편역 완역
9 斷食하는 광대 變身 삼중당문고 344 프란츠 카프카 洪京鎬(홍경호) 1977 三中堂 133-161 편역 완역
10 굶는 광대 變身(外) 文藝文庫 22 프란츠 카프카 李德衡 1977 文藝出版社 155-175 편역 완역
11 굶는 광대 굶는 광대 프란츠 카프카 金昌活 1978 태창出版部 26-41 편역 완역
12 斷食 광대 아메리카, 變身, 流刑地에서 外 愛藏版世界文學大全集(애장판 세계문학대전집) 29 프란츠 카프카 洪京鎬 1981 금성출판사 377-385 편역 완역
13 단식사 심판 주우세계문학 9 프란츠 카프카 韓逸燮(한일섭) 1982 主友 313-321 편역 완역
14 단식하는 광대 세계단편문학전집 15 프란츠 카프카 洪京鎬 1984 三省堂 20-46 편역 완역
15 단식하는 광대 카프카 篇 World great short stories, (三省堂版) 世界短篇文學全集 15 카프카 洪京鎬 譯 1986 三省堂 20-46 편역 완역
16 굶는 광대 變身 문예교양전서 48 프란츠 카프카 李德衡(이덕형) 1987 文藝出版社 157-175 편역 완역
17 斷食(단식) 광대 아메리카, 變身, 短篇 완역판 세계문학 Sunshine Series 44 프란츠 카프카 洪京鎬 1987 금성출판사 424-433 편역 완역
굶는 광대 타락 外 세계명단편 100선4/독일어권Ⅰ 프란츠 카프카 전영애 1987 삼성미술문화재단 120-136 편역 완역
19 단식예인 카프카短篇選 (카프카단편선) 풍림명작신서 시리즈 47 카프카 崔俊煥 1989 豊林出版社 66-80 편역 완역
20 단식 수도자 변신, 유형지에서(외)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46 프란츠 카프카 박환덕 1989 汎友社 257-268 편역 완역
21 단식 수도자 변신·유형지에서(외)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19_2 프란츠 카프카 박환덕 1989 범우사 244-289 편역 완역
22 斷食(단식) 광대 아메리카, 變身, 短篇 금장판 세계문학대전집 88 카프카 洪京鎬 1990 金星出版社 424-433 편역 완역
23 단식사 변신 한권의책 171 프란츠 카프카 한일섭 1990 學園社 117-130 편역 완역
24 단식사 심판 Touchstone books 17 카프카 한일섭 1992 學園社 313-323 편역 완역
25 단식사 변신 한권의 책 79 카프카 한일섭 1994 학원사 117-130 편역 완역
26 굶는 광대 변신.유형지에서 프란츠 카프카 단편집 6 프란츠 카프카 안성암 1995 글벗사 165-179 편역 완역
27 단식 수도자 변신, 유형지에서 (외)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19_2 프란츠 카프카 박환덕 1995 범우사 265-292 편역 완역
28 어느 단식 광대 변신 : 단편전집 카프카 전집 1 프란츠 카프카 이주동 1997 솔출판사 288-301 편역 완역
단식광대 변신 계명교양총서 6 프란츠 카프카 염승섭 1998 계명대학교출판부 151-166 편역 완역
30 단식 광대 변신, 시골의사 프란츠 카프카 이덕형 2001 문예출판사 167-186 편역 완역
31 어느 단식 광대 변신 : 단편전집 카프카 전집 1 프란츠 카프카 이주동 2003 솔출판사 288-301 편역 완역
32 단식 광대 변신.시골의사 문예 세계문학선 20 프란츠 카프카 이덕형 2004 문예출판사 141-157 편역 완역
33 단식광대 카프카 문학 : 유형지에서 외 4편.2 프란츠 카프카 金保會 2005 보성 120-145 편역 완역
34 단식 광대 관찰 Mr. know 세계문학 프란츠 카프카 홍성광 2007 열린책들 259-306 편역 완역
35 굶는 광대 변신 : 변신 외 3편 수록 프란츠 카프카 정제광 2007 지경사 163-188 편역 완역
36 단식광대 카프카 변신 월드 노블 시리즈 프란츠 카프카 이지영 2007 보성출판사 161-182 편역 완역
37 단식 광대 카프카 : 변신, 화부 Classic together 3 프란츠 카프카 박철규 2007 아름다운날 303-319 편역 완역
38 단식 광대 변신: 프란츠 카프카 중단편집 열린책들 세계문학 10 프란츠 카프카 홍성광 2010 열린책들 273-284 편역 완역
39 단식 광대 독수리 보르헤스 세계문학 컬렉션; 바벨의 도서관 15 프란츠 카프카 조원규, 이승수 2011 바다출판사 21-38 편역 완역
40 단식 광대 카프카 단편집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고전선집 프란츠 카프카 권혁준 2011 지만지고전천줄 65-85 편역 완역
41 단식광대 카프카 단편집 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프란츠 카프카 권혁준 2013 지식을만드는지식 163-184 편역 완역
42 단식 광대 변신.시골의사 Classic together 3 프란츠 카프카 박철규 2013 아름다운날 303-319 편역 완역
43 단식 광대 변신 프란츠 카프카 장혜경 2013 푸른숲주니어 151-168 편역 완역
44 단식 광대 선고 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큰글씨책 프란츠 카프카 권혁준 2014 지식을만드는지식 165-183 편역 완역
45 단식 예술가 칼다 기차의 추억 프란츠 카프카 이준미 2014 하늘연못 507-527 편역 완역
단식술사 선고 을유세계문학전집 72 프란츠 카프카 김태환 2015 을유출판사 223-238 편역 완역
47 단식광대 카프카 단편선 월드클래식 시리즈 8 프란츠 카프카 엄인정 2015 매월당 109-124 편역 완역
48 단식광대 변신 외 Never ending world book 7 프란츠 카프카 김시오 2015 브라운힐 183-206 편역 완역
49 단식광대 변신.단식광대 프란츠 카프카 김형국 2016 인터북스 107-125 편역 완역
50 단색쟁이 카프카 우화집 프란츠 카프카 김진언 2017 玄人 114-134 편역 완역
51 단식광대 카프카 대표 단편선 프란츠 카프카 김시오 2017 한비미디어 183-206 편역 완역
52 어느 단식 광대 변신 : 단편전집 카프카 전집 1 프란츠 카프카 이주동 2017 솔출판사 288-301 편역 완역
53 어느 단식 광대 프란츠 카프카 세계문학단편선 37 프란츠 카프카 박병덕 2020 현대문학 340-354 편역 완역
54 단식광대 변신·단식 광대 창비세계문학 78 프란츠 카프카 편영수; 임홍배 2020 창비 156-169 편역 완역


번역비평

1. 번역 현황 및 개관

<단식광대>는 카프카의 대표적인 단편소설들 가운데 하나로, 1922년 <디 노이에 룬트샤우>에 처음 발표되었고, 1924년 <최초의 고뇌>와 <작은 여인>, <요제피네, 여가수 또는 쥐의 종족>과 함께 <단식광대>라는 작품집으로 묶여 사후에 다시 출간되었다. 보통 이 소설은 예술과 예술가로서의 존재에 대한 카프카의 관점이 들어있는 작품들, 특히 예술과 삶의 대립 관계를 형상화한 작품들 가운데 하나로 여겨진다. 또한 <변신>, <어느 개의 연구>, <실종자> 등 ‘굶기/굶주림 Hungern/Hunger’ 모티브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카프카의 다른 작품들과의 관련 속에서 해석되기도 한다.

이 단편소설은 1959년 구기성에 의해 <굶는 광대>(양문사)라는 제목으로 처음 번역되었으며, 1957년에 초역이 나온 <변신>처럼, 카프카의 작품 중에서 비교적 일찍 번역된 것들 가운데 속한다. 번역은 1959년부터 2023년 사이에 총 55개가 있는데, 이 중 중복된 것과 번역가 미상을 제외하면 27종이 된다. 초역 후 1970년대에는 이덕형(1973), 홍경호(1974), 김창활(1978)의 번역이 나왔고, 1980년대에는 박환덕(1980), 한일섭(1982), 이덕형(1987), 전영애(1987), 최준환(1989)의 번역이, 1990년대에는 안성암(1995), 이주동(1997), 염승섭(1998)의 번역이 이어졌다. 2000년 이후에는 권혁준(2014), 김태환(2015), 목승숙(2023) 등 카프카 연구자들 및 홍성광(2010) 등 전문번역가들의 번역본을 포함하여 그 이전까지 나왔던 것보다 훨씬 많은 번역이 등장하였다. 본문에서는 이 번역본들 가운데 뚜렷한 개성이 드러나는 박환덕, 전영애, 염승섭, 김태환, 목승숙의 번역본을 비교·분석하려고 한다.


2. 개별 번역 비평

1) 박환덕 역의 <단식 수도자>(1980)

박환덕은 제목인 “Hungerkünstler”를 “단식 수도자”라고 번역하였다. 유럽에 20세기 초에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엔터테인먼트의 일종인 이 직업 자체는 종교적인 수도 생활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자발적인 금식 및 금욕, 40일 단식 등에서는 종교적인 모티브를 볼 수 있다. 그래서 단식광대에 대한 감시인들이 있기는 했지만 이 감시가 그저 형식에 지나지 않았던 이유로 제시된 문장(“die Ehre seiner Kunst verbot dies.)[1]을 박환덕 번역본에서는 “수도(修道)의 명예가 그것을 금한 것이다.”(280)라고 옮긴다. 전체적으로 한자어가 상대적으로 많은 것도 문체적 특징인데(진미가효(眞味佳肴), 견강부회(牽强附會), 산회(散會) 등), 그중에서도 특히 무념무상(無念無想)(280), 일심불란(一心不亂)(280) 등의 불교적·종교적 표현들이 사용되는 것도 “단식 수도자”라는 번역어와 잘 연결된다.

또 흥미로운 지점은 주인공의 40일 단식이 끝나는 행사 때 흥행주가 나타나는 장면의 번역이다. “Der Impresario kam, hob stumm [...] die Arme über den Hungerkünstler, so, als lade er den Himmel ein, sich sein Werk hier auf dem Stroh anzusehn, diesen bedauernswerten Märtyrer, welcher der Hungerkünstler allerdings war, nur in ganz anderem Sinn[...].”(DzL 339) 이 부분을 위의 번역본에서는 다음과 같이 옮긴다. “흥행주가 와서 잠자코 [...] 단식 수도자의 팔을 머리 위로 쳐들었다. 그것은 마치 이 짚 위에 앉아 있는 신의 아들인 이 불쌍한 순교자를 하늘이여 굽어살피소서 하고 손짓으로 부르는 것 같았다.”(283) 밑줄 친 부분을 대부분의 번역본에서는 “하늘의 작품”으로 번역하고, 일부 번역본들은 “흥행주의 작품”으로 번역한다. 이 부분을 ‘하늘’과 관련시키느냐 아니면 흥행주(매니저, Impressario)와 관련시키느냐에 따라 작품 해석의 방향이 달라진다. 단식광대가 ‘하늘의 작품’이라고 보는 것은 모든 인간이 하늘/신의 피조물이라는 일반적인 의미에 더해 단식광대의 단식 행위 및 모습도 하늘/신의 뜻이거나 거기에 가 닿으려는 행위라는 종교적인 의미가 된다. 반면 단식광대가 ‘흥행주의 작품’이라고 볼 경우, 이 단식광대의 퍼포먼스가 갖는 상업적인 쇼로서의 성격이 강조된다. 박환덕의 번역본은 “하늘의 작품”으로 해석하는 방향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부분을 “신의 아들”이라고까지 함으로써 종교적 의미를 더 강화한다. 그런데 ‘Hungerkünstler’가 이처럼 단식 수도자로, 때때로 그냥 ‘수도자’로 번역될 경우, 번역본의 독자들이 작품 속에서 왜 ‘수도자’가 우리 안에서 단식 퍼포먼스를 하며 구경거리가 되는지, 왜 흥행주와 함께 또는 “큰 곡마단”(287)에서 일하는지, 왜 40일 단식 후에 “증명서 Zeugnis”(282)가 교부되는지 이해하기는 쉽지 않고, 독자는 주인공이 원래 수도자였는데 “생업 Beruf”(286)으로 “단식 흥행 Schauhungern”을 하게 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기 쉽다. 또한 “sein Werk”를 인간이 일반적으로 신의 피조물이라든지, 모든 것이 신의 뜻이라든지 하는 일반적인 의미를 넘어 “신의 아들”로 번역되면, ‘Hungerkünstler’가 예수를 패러디하는 것으로 번역자가 해석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해석은 종교의 경지로까지 고양된, 또는 종교의 자리를 대체할 정도로 절대적인 예술 또는 기예를 이 작품이 표현하고 있다고 보면 하나의 가능한 해석이기도 하다. 다음의 문장도 이런 의미에서 해석할 수 있다. “사실 단식 수도자는 순교자였다. 다만 전혀 다른 의미에서의 순교자이다.”(283-284) “순교자 Märtyrer”라는 단어가 원래 자신의 확신이나 신념(원래는 신앙) 때문에 자신을 희생하고 박해나 신체적 고통, 죽음까지 받아들이는 사람을 의미하며(Duden 참조) 어원적으로 “증인 Zeuge”이라는 뜻(mártyr(μάρτυρ))에서 나왔다면, 단식광대는 어떤 의미에서 ‘순교자’라고 할 수 있는가? 그는 어떤 체계를 가진 ‘신념’이나 ‘신앙’을 가지고 있다기보다는, 그래서 이런 것들을 ‘위해’ 단식을 한다기보다는, 자신의 몸으로 단식을 하는 행위 그 자체가 그가 장인의 경지로 잘할 수 있는 그의 기예인 것이다. 또한 단식은 신앙을 위해 기꺼이 받아들이고 참아야 하는 신체의 고통이 아니라, 그에게는 가장 쉬운 일이다. 이처럼 그에게 있어서는 단식과 신앙이 분리된 것이 아니며, 단식은 고통스러운 일도 아니다. 그런데 그가 최고의 경지로 이 단식이라는 기예를 행하면 그 끝에는 생물학적인 죽음이 따른다. 따라서 이 단식이라는 기예는 무엇을 ‘위해’ 감수하는 고통과 죽음이 아니라, 그 자체로 죽음을 잉태하고 있는 기예이며, 따라서 단식광대를 이런 의미에서 “다른 의미에서의 순교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 임홍배는 매니저가 40일 단식이 끝난 후 단식광대에게 음식을 억지로 먹이는 예를 들면서 단식광대가 “몸의 상품적 가치가 소멸할 때까지 자신의 의지에 반해서 사육되는 ‘순교자’”[2]라고 하면서 이를 과거의 종교적 믿음의 자리에 들어선 자본주의 문화사업의 맥락에서 바라본다.

박환덕 번역본에서는 원문에서 길게 이어진 한 문단을 여러 문단으로 나누고 하나의 긴 문장을 여러 개의 문장으로 나누어 가독성을 높이고 있는데, 이는 많은 번역본에서 나타나는 특성이다.


2) 전영애 역의 <굶는 광대>(1987)

전영애 역의 <굶는 광대>는 안삼환이 번역한 토마스 만의 <타락>과 무질의 <지빠귀>, 김석도가 옮긴 헤세의 <에밀 콜프> 등의 다른 독일 단편소설들과 함께 “세계명단편 100선”이라는 총서 중 4권인 “독일어권” 편에 실려 있다. 안삼환은 작품 선정의 글에서 독일 소설이 ‘쓴맛’이 나지만 인식을 선사한다고 말하는데(3), 카프카의 <굶는 광대> 역시 바로 이런 특징을 가진 독일 소설의 대표적인 예이자 카프카라는 작가의 경향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실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전영애는 번역본 바로 뒤에 실린 <작품 해설> “고립된 예술의 비극성을 비유”에서 카프카의 이 작품을 실제로 존재했던 “굶는 광대 혹은 단식사”라는 직업에 대한 문화사적인 기록일 뿐만 아니라 “카프카가 찾은 예술가 실존의 한 비유”(139)로 바라보면서, “모든 공동체 밖에서, 궁극적으로 죽음 가운데서나 절대화될 수 있는 고립된 예술 세계의 은유”(139)라는 벤노 폰 비제의 해석을 제시한다. 또한 이 작품을 카프카적 유머의 좋은 예로 바라보는 견해도 소개하고 있다.

다른 번역본들에 비해 전영애 번역본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문체상의 특징이다. 대표적인 예를 하나만 들면 다음과 같다. “당시에는 온 도시가 굶는 광대에 관심이 쏠려 하루하루 굶는 날짜가 더해감에 따라 관심도 고조되었으니 누구나 적어도 하루에 한번쯤은 굶는 광대를 보고자 하였다. 하여 나중에는 여러 날을 창살 쳐진 작은 우리 앞에 앉아 있는 예약자들이 있었고 야간에까지도 관람이 계속되었는데 효과를 올리기 위해 횃불을 밝혔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우리를 바깥에 들어다 내놓는데 그럴 때 굶는 광대를 구경하게 되는 것은 바로 어린이들이었다, [...] 이따금씩 입술을 축이려고 자그마한 유리잔에 입을 대곤 하는 모습을.”(120-121) 카프카의 텍스트에서 이 부분은 25행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전영애는 이를 25행의 두 문장으로 번역하였다. 특히 “하여~모습을.”까지는 22행으로 이루어진 한 문장이며, 독일어 텍스트에서는 세미콜론으로 문장들이 계속 이어지는데 번역본에서는 쉼표가 사용되며, 독일어의 문장 구조처럼 한국어 문장에서도 어린아이들이 바라보는 굶는 광대의 모습이 목적어로 문장 마지막에 오도록 하여 통상적인 한국어 문장의 어순이 바뀐다. 이와 같은 번역은 한 문장이 세미콜론으로 연결된 여러 부분들로 길게 이어지고는 하는 카프카 특유의 문체를 살리고자 하는 시도로 보인다. 염승섭의 번역본 역시 이런 시도를 하고 있으나 전영애의 번역본은 이 측면에서 가장 일관성이 있고 급진적이다. 소위 말하는 도착언어의 ‘가독성’보다는 원문 텍스트를 가장 ‘충실하게’ 번역하는 데 초점을 맞추려는 번역 기획이다.

또 하나 다른 번역들과 차이가 나면서 해석상 흥미로운 부분은 단식광대가 단식을 마쳤을 때의 장면 묘사 가운데에서 발견할 수 있다. 위의 번역본에서는 다음과 같다. “흥행주가 와서 아무 말없이[...] 굶는 광대 머리 위로 두 팔을 쳐든다, 마치 하늘에다 대고 여기 지푸라기 위에 있는 자신의 작품을, 이 가련한 순교자 – 사실 굶는 광대는 전혀 다른 뜻에서 가련한 순교자이기도 했다 – 를 한번 보아 달라고 청하기라도 하는 듯한 시늉이었다[...].”(125-126) 밑줄 친 부분을 대부분의 번역본에서는 “하늘의 작품”으로 해석하는데 이 번역본에서는 이를 “흥행주의 작품”(이주동, 염승섭, 이준미 역 등 역시)으로 번역함으로써 단식광대의 퍼포먼스를 매니저의 이윤 추구를 위한 수단이 되는 쇼로 바라본다.

제목인 “Hungerkünstler”는 전영애 번역본에서는 “굶는 광대”로, “(Hunger)kunst”라는 단어는 “굶는 기예(技藝)”(133)로, “Künstler”는 경우에 따라 “예인(藝人)”[3](121, 130)으로 번역되어 있는데, 이러한 번역에서는 굶는다는 행위가 이 작품에서 갖는 ‘기예’로서의 성격이 좀 더 부각된다. (예: “[...] die Ehre seiner Kunst verbot dies.”(DzL 335) “그의 예인으로서의 명예심이 그런 짓을 금하는 것이다.”(121)) 광대, 곡마단(曲馬團), 예인 등의 단어와 함께 이처럼 단식광대의 존재와 그가 하는 행위와 관련된 단어들의 번역에서는 지배 계층의 예술 또는 국가 의례에서 사용되거나 백성을 교화하기 위한 공식적인 예술과는 구분되는 한국의 전통 연희 또는 기예나 곡예(曲藝)와 관련된 개념들이 주로 사용된다. 이런 번역어들의 선택은 ‘Hungerkünstler’를 도착어가 속한 한국 문화의 독자들에게 익숙한 전통 연희 문화의 맥락 속으로 가져온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러한 문화 자체가 다시 도착 문화의 독자들에게도 점점 낯설어지게 된다.

제목을 ‘굶는 광대’로 번역할 경우, 전통적으로 판소리, 연극, 여러 곡예 등의 연희를 하던 ‘광대’의 존재와 ‘굶는’ 행위 사이의 연결은 느슨하다. 즉 굶는 행위 자체가 광대가 사람들 앞에서 벌이는 연희의 내용 또는 광대의 숙련된 기예의 핵심을 이룬다는 사실은 제목에서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또한 한국어에서 ‘굶다’와 ‘단식하다’는 의미상 차이를 낳는다. 굶다는 단순히 ‘끼니를 거르다’라는 의미인 반면, 단식(斷食) 또는 절식(絶食)은 ‘일정 기간 동안 의식적으로 음식을 먹지 않다’(표준국어대사전)는 사전적 의미에서 볼 수 있듯이, 단순히 일회성으로 또는 우발적으로 끼니를 거르는 것이 아닌,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의식적으로 일정 기간 음식을 거부하는 의지적 행위인 것이다. 즉 독일어 ‘hungern’보다는 ‘fasten’에 가깝다. 전통적으로 단식이 특히 종교적인 맥락에서 세속적 욕망을 멀리하면서 절대자 또는 진리에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의도에서 행해진 것이라면, 이 작품에서 ‘Hungerkünstler’에게 단식은 그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 그의 기예 그 자체이면서 다른 한편으로 흥행주에게는 이윤을 가져다주는 사업이기도 하다. ‘Hungerkünstler’는 이윤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이지만, 자기 기예의 완성을 바라고, 이에 대한 대중의 이해와 관심을 바란다. 그러나 대중은 그의 기예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의 관심은 변덕스럽다.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서 서커스 감독관은 대중에게 완전히 잊힌 상태에서 계속 단식을 하고 있는 ‘Hungerkünstler’를 짚 더미 속에서 발견하는데, 그는 자신이 대중에게 항상 경탄을 바랐던 점에 대해 용서를 청한다. 또한 자신의 기예가 입에 맞는 음식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행했던 것이었으며, 만일 그런 음식을 찾았더라면 사람들의 주목을 끌려고 하는 일 없이 다른 사람들처럼 배부르게 먹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대중에게 잊힌 상태에서야 그는 비로소 타의에 의해 제한된 기한이나 거짓된 연출 없이 원 없이 단식을 할 수 있게 되고 그 기예의 완성은 그의 물리적, 생물학적 존재의 소멸, 즉 죽음이다. 이 상태에서 그의 ‘기예’는 이윤이나 인기에의 강박, 허영심과 다른 차원에서 계속되고 그 ‘완성’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그가 이제 막 완성시키려고 하는 이 기예, 더하기의 방향이 아닌 빼기의 방향인, 그래서 그 끝은 소멸과 죽음이 될 수밖에 없는 이 기예가 사실은 자기 입에 맞는 음식을 발견하지 못한 상황의 강제에 의한 것이었다고, 그래서 그런 음식을 찾기 위한 기다림이었다고 그는 죽기 직전에 밝히는 것이다. 독일어 ‘hungern’이라는 동사에 ‘(어떤 것을 향한) 강렬한 욕구, 욕망을 느끼다’, ‘Hunger’라는 명사에 ‘(먹고자 하는) 강한 욕구나 욕망’이라는 뜻이 있는 것을 보아도 단식광대의 굶는 행위, 굶주림에는 이미 빼기의 방향만 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현존하는 양식에 대한 극한의 부정은 바로 미지의 양식에 대한 극한의 욕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계속 단식하고자 하는 단호한 확신 속에 숨을 거둔 그는 분명히 다른 의미의 ‘순교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다른’ 음식은 <변신>에서는 음악이고, <단식광대>에서는 단식광대가 죽은 후 등장하는 젊은 표범이 암시하는, 자유조차도 그리워하지 않는 듯 보이는, 자유조차도 함께 지니고 다니는 듯한, 삶의 기쁨이 흘러나오는 ‘고귀한 몸’, 즉 의식과 신체가, 주객이 분열되지 않은 충일한 현존재가 아닐까. 그렇다면 단식광대의 단식이라는 기예는 거짓 양식 또는 입에 맞지 않는 양식을 거부하면서 진정한 양식이 부재함을 부재로 받아들이며 그 부정성을 극한까지 견디는 방식이 아닐까 한다. 또한 마지막 장면은 여기서 더 나아가 표범의 ‘고귀한 몸’까지도 우리 안에 넣어 이번에는 단식광대 대신에 엔터테인먼트의 대상으로 삼는 대중의 모습의 깊은 부정성을 보여준다.


3) 염승섭 역의 <단식광대>(1998)

염승섭 역은 계명대학교 출판부에서 나온 <변신>이라는 제목의 카프카 단편선에 실려 있다. “머리말”에서 염승섭은 교양 수업에 쓰기 위한 학습 자료의 목적으로 카프카의 대표적인 단편 몇 개를 골라 새로 번역하였다고 하면서, 이러한 목적을 위해 “독일어 원문 즉 카프카의 문체적 특성을 최대한으로 반영하는 데 충실을 기했다”(iv)고 말한다. 1970년에 파울 라베 Paul Raabe가 펴낸 카프카 단편 전집(Sämtliche Erzählungen, Frankfurt a. M.: S. Fischer)을 저본으로 삼았으며 번역에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영역본도 참고했다고 밝히고 있다.

염승섭 번역본에서 가장 독특한 점은 각주의 사용이다. 이 각주들은 다양하게 사용된다. 이는 단식광대가 마른 것을 카프카가 펠리체 바우어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기 자신이 자기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여윈 사람이라고 한 전기적 사실과 관련시키기도 하고, 카프카의 할아버지가 푸주한이어서 육류를 혐오하였지만 타인이 왕성한 식욕을 가지고 식사하는 것을 즐겁게 바라보았다는 것을 역시 펠리체 바우어에게 보낸 편지를 전거로 들면서 단식광대의 감시인들이 밤새 감시를 한 후 왕성한 식욕으로 아침 식사를 하는 장면과 연결시킨다. 또 40일이라는 단식 기간이 성경에 나오는 모세, 엘리야, 예수의 단식 기간과 관련된다는 사실을 지적하기도 하지만, 이 역시 카프카가 사막에서 인간세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그 자신의 이미지를 보았다는 전기적 사실과 연관 짓는다. 또한 하나의 긴 문장으로 된 부분을 “독일어 원문의 문체적 긴장감을 충실히 반영하고자 하여, 한국어 구문에 보더 적합한 여러 작은 문장들로 나누지 않았음”(152)을 알리며 번역자의 번역 기획을 밝히기도 한다. 또한 어떤 부분은 단식광대의 심리상태를 알리는 체험화법임을 알려 주기도 하고, 마지막 각주에서는 박환덕 역에서 오역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지적하기도 한다. 각주의 사용 자체가 독특하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더 독특한 것은 각주 사용의 다양성 및 통상적인 각주 사용과 구별되는 위와 같은 용법이다. 그 가운데 <단식광대>의 여러 대목을 카프카의 전기적 사실들과 연관 짓는 부분들은 작품 해석에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오히려 반대가 될 수 있는 요소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주 사용은 대학에서의 교양 수업을 위한 학습 자료로 쓴다는 목적에 부합하는 학구적인 번역의 특성으로 볼 수 있다. 염승섭 번역본에서 각주는 번역자의 기획과 작품에 대한 해석, 타인의 번역에 대한 의견을 밝히는, 번역자가 자신의 번역과 타인의 번역을 위한 정보를 제공하고 이에 대해 성찰하는 메타번역적인 공간으로 보인다.

문단 구분 역시 본문에 충실하게 번역하기 위해, 가독성을 위해 임의로 바꾸지 않았다. “Ein Eingeweihter/die Eingeweihten”[4]이라는 단어들도 다른 번역자들은 “전문가(들)”(전영애 121, 123), “소식통(들)”(박환덕 280, 282), “관계자(들)”(김태환 224, 226), “알 만한 사람들”(임홍배 157, 159),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목승숙 140, 142)이라고 번역하였는데, 염승섭 번역본에서는 한 번은 “그 내막을 아는 이들”(152)이라고 비슷하게 번역했지만, 다른 한 번은 “어느 비전(祕傳)의 전수자”(154)라고 원어의 본뜻에 가장 가깝게 직역하였다. 이런 번역 선택은, 이것이 적절한 번역인가의 판단을 떠나, 염승섭 번역본의 한 특징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볼 수 있다.


4) 김태환 역의 <단식술사>(2015)

김태환 역에서는 여러 번역본 가운데서 유일하게 제목을 “단식술사”로, “Hungerkunst”를 “단식술”로 번역하였다.[5] 후자에서는 굶는 행위가 항해술, 건축술, 최면술, 산파술, 조산술처럼 하나의 독립된 개념이 되고, 그런 일을 직업적으로 하는 단식술사 역시 그러하다. 또한 “-술(術)”이라는 개념은 예술보다는 “기술 또는 재주”(독일어 Kunst가 가진 1) 예술 2) 기술 3) 인공이라는 세 가지 뜻 중 2번)라는 뜻을 가진다. 이를 기예로 번역한 전영애 역과 크게 보아 유사한 방향이지만, 여기서 ‘기술’이라는 측면이 더 강조되어 있다.(전영애 역, 박환덕 역에서 예를 들었던 문장, “die Ehre seiner Kunst verbot dies.”(DzL 335)가 여기서는 “그의 기술에 걸려 있는 명예가 그런 짓을 허용하지 않았던 것이다.”(224)로 번역되어 있다.) “굶는 광대”나 “단식예술가, 단식광대” 등의 번역에서 “굶는다는 행위/단식한다는 행위”와 “광대/예술가” 사이의 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데 비해 “단식술사”라는 번역어는 이 두 개념이 하나로 통일되어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기술과 예술 사이의 모호한 관계가 가질 수 있는 장점에 비해 오히려 내포된 의미가 축소되는 측면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Hungerkunst’라는 단어가 독일어 Kunst(그리고 그리스어 technē와 그 번역어인 라틴어 ars)가 갖는 여러 가지 뜻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는 반면에 한국어 번역 ‘단식술사’는 그중 하나를 선택한 것이다. 단식술사는 단식술을 (직업적으로) 행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단식술은 조산술, 항해술, 사격술과 같은 의미에서 하나의 “기술”이다. 그렇다면 조산술사, 항해술사, 사격수와 다르게 왜 단식술사의 행위는 단순히 자신의 직업을 수행하는 행위가 아니라 유흥을 목적으로 하는 공연의 일부가 되는가? ‘Fastenkunst’라는 단어도 있는데, 이는 “Hungerkunst”와는 다르게 문자 그대로 단식을 특정한 목적을 위해 잘하는 기술, 단식술을 의미한다. 이 용어와 비교해 보면 ‘Hungerkunst’라는 말이 갖는 의미의 차이가 드러난다. 여기서는 단식의 기술뿐만 아니라 그것을 사람들 앞에서 전시하는 유흥인 ‘Schauhungern’ 두 가지가 다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맨 마지막에 등장하는 표범과의 대조 속에서 본다면, 그리고 그 표범마저도 우리 속에 가두어놓고 바라보는 엔터테인먼트 사업 및 그 바탕에 놓인 (현대 서구)인(간)의 욕구라는 맥락에서 바라본다면, 이 ‘Kunst’에는 자연(표범)과 대조되는 인위, 인공이라는 Kunst의 세 번째 뜻도 들어있다고 볼 수 있다.

문체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김태환의 역본은 독일어 텍스트의 문단 구조를 그대로 살리기 위해 임의로 문단을 나누거나 하지 않으면서도, 세미콜론으로 길게 이어지는 문장들을 전영애 번역본에서와 같이 쉼표로 길게 이어지게 하지 않고 짧은 문장들로 읽기 쉽게 하였다. 어휘 사용에 있어서도 현대적이며 일상적인 용어들을 사용하여 시대의 변화와 달라진 언어 감각을 반영하였다. 예컨대 서커스단, 하이라이트 프로그램, 매니저, 단식 쇼, 정기관람객 등의 어휘가 그러하다. 또한 다음의 예들에서는 독일어 부분을 우리말로 쉽게 이해가 가도록 바꾸고 필요하면 좀 더 설명하면서 개입하기도 한다. 예1) “im schwarzen Trikot”(DzL 334): “몸에 달라붙는 검은 옷을 입고”(223) 예2) “[der Aufseher] legte den Finger an die Stirn, um damit den Zustand des Hungerkünstlers dem Personal anzudeuten”(DzL 348). “(감독관은) 손가락을 이마에 대면서 직원들에게 단식술사의 정신이 정상이 아님을 암시했다.”(236)


5) 목승숙 역의 <단식예술가>(2023)

역시 카프카 연구자인 목승숙의 번역은 “Hungerkünstler”를 “단식예술가”로 옮긴다. 이 단어를 “단식 예술가”로 옮긴 이준미(2014)의 번역과의 차이는,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후자에서는 단식이라는 행위와 예술(가)와의 관계가 모호한 반면, “단식예술가”로 옮기면 주인공은 ‘‘단식예술’을 행하는 이’가 된다는 것이다. “단식예술가”라는 번역은 이 단어를 “단식술사”로 옮긴 김태환의 번역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다른 한편 ‘beaux-arts/fine arts’라는 개념이 서구에서도 18세기에야 등장하기 시작하였으며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넘어와 20세기 초반에 ‘예술’이라는 용어로 확립되기 시작한 역사와 혼란상을 살펴보면, ‘Hungerkunst’에서의 ‘Kunst’를 ‘-술(術)’이라고 번역하거나 ‘예술’이라고 번역하는 이 두 번역은 방향은 다르지만 여러 의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한다는 점에서는 유사하다. 그래서 목승숙 역의 경우에는 ‘예술’을 강조하면서 ‘Kunst’가 갖는 다른 의미들이 탈락된다. 이에 따라 위에서 예를 든 문장인, “die Ehre seiner Kunst verbot dies.”(DzL 335)”도 “예술가의 명예가 그것을 금지한 것이다.”로 번역되어 있다. 카프카의 가장 마지막 작품들에 속하는 <단식광대>와 <요제피네, 여가수 또는 쥐의 종족> 등이 주로 카프카의 예술 및 예술가에 대한 관점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된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이러한 방향의 번역은 작품에 대한 주요 해석의 흐름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이 번역본의 역자 해설에서도 이러한 경향을 읽을 수 있다. 즉 이 작품에 나타나는 단식 행위는 구경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대중을 위한 오락이자 구경거리이지만, 단식을 직접 몸으로 행하는 주인공의 입장에서는 이런 차원을 넘어 예술로 격상된다. 그는 자신의 예술을 인정받고 싶어하지만, 대중은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역자는 “무소속성과 혼종적 경계인”이라는 제목의 작품 해설에서 여동생의 바이올린 연주를 “미지의 양식”으로 여겼던 <변신>의 잠자와 단식예술가를 연결시키면서, 그가 추구하던 음식 역시 “정신적 차원의 양식이자 자신의 예술가적 행위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라고 본다. 다른 한편 카프카 문학에 담겨 있는 유머도 독자가 놓치지 않아야 할 중요한 요소로 바라보는 이 작품 해설은 입맛에 맛는 음식이 없어 단식을 한 것일 뿐이었다는 단식예술가의 마지막 고백에 담긴 “희비극성”을 지적하며, 단식예술가의 죽음으로 끝나는 작품의 결말을 대체로 비극적으로 바라본 기존의 경향과 다르게 이에 대한 긍정적인 해석의 가능성 역시 전달한다.


3. 평가와 전망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Hungerkünstler’라는 단어의 번역은 굶는 광대로부터 시작해서 단식광대, 단식 수도자, 단식술사, 단식 예술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는데, 이 다양성은 주로 유럽에서 ‘Kunst’라는 단어가 갖는 여러 가지 함의와 의미의 변천사 및 이 말이 일본을 거쳐 한국에 ‘예술/(기)술/기예’라는 말로 번역되는 과정의 혼란과 관련되며 또한 카프카 연구의 성과도 반영하고 있다. 번역과 번역 비평은 텍스트를 반복해서, 또 깊이 읽는 작업이며 새로운 발견의 여정이다. 앞으로의 번역본들에서는 텍스트에 대한 어떤 다른 해석들이, 또 미래 세대의 감각에 맞는 어떤 새로운 한국어 문체와 표현들이 나타날지, 미래에 도래할 번역들이 기다려진다.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박환덕(1980): 단식 수도자. 범우사.

전영애(1987): 굶는 광대. 삼성미술문화재단.

염승섭(1998): 단식광대. 계명대학교출판부.

김태환(2015): 단식술사. 을유출판사.

목승숙(2023): 단식예술가. 아르테.


조 향

바깥 링크

  1. Franz Kafka(1994): Ein Hungerkünstler. In: Franz Kafka: Drucke zu Lebzeiten. Frankfurt a.M.: S. Fischer, 335. 이하에서는 DzL이라는 약어와 함께 쪽수를 본문에 표기함.
  2. 프란츠 카프카(2020): 변신·단식광대: 프란츠 카프카 단편선. 편영수·임홍배 옮김, 창비, 266.
  3. “예인”에 대한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여러 가지 기예를 닦아 남에게 보이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 배우, 만담가, 곡마사와 같은 사람을 이른다.” 예시: 예인 집단, 떠돌이 예인 생활. 예문: “일제 시대 만주에서부터 곡마단에 몸담아 온 단장은 예인에 대한 긍지가 대단해서….”(최인호, <지구인>)
  4. “[...] denn die Eingeweihten wußten wohl, daß der Hungerkünstler während der Hungerzeit niemals, unter keinen Umständen, selbst unter Zwang nicht, auch das Geringste nur gegessen hätte [...].”(DzL 335) “Er allein nämlich wußte, auch kein Eingeweihter sonst wußte das, wie leicht das Hungern war.”(DzL 337)
  5. 가장 많은 번역은 “단식광대” 또는 “단식 광대”이며, “굶는 광대”, “단식하는 광대”, “어느 단식 광대”가 유사한 번역에 속한다. 그 밖에는 “단식예인”, “단식 예술가” 또는 “단식예술가”, “단식사”, “단식쟁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