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 (Wilhelm Meisters Wanderjahre oder Die Entsagen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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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의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
(Wilhelm Meisters Wanderjahre oder Die Entsagenden)
작가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초판 발행1821
장르소설


작품소개

괴테의 마지막 소설로,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와 느슨하게 연결되나 독립된 소설로도 볼 수 있다. “또는 체념하는 사람들”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초판은 1821년에 출간되었다. 오늘날 널리 읽히는 재판은 1829년에 출간되었는데, 초판에 비해 새로운 노벨레들, 두 개의 잠언 모음과 시가 추가되었다. 이 소설에서 본 줄거리는 삽입된 노벨레나 동화, 편지, 일기, 잠언 모음, 시 등에 의해 계속 중단된다. 전지적 서술시점을 취하는 화자가 등장하였던 <수업시대>에 비해 <편력시대>는 허구적 편집자의 역할이 커진 아카이브 소설이다. <수업시대> 끝부분에서 나탈리에와 맺어진 빌헬름은 “탑의 모임”의 일원으로서 유용한 직업을 수행하며 편력을 해야 하는 의무를 지게 되는데, 아들 펠릭스가 이 길의 동반자가 된다. 그들은 성 요제프 2세 가족을 알게 되고, 또 그 사이 광산 전문가가 되어 몬탄으로 이름을 바꾼 야르노를 다시 만나게 되기도 하며, 백부라고 불리며 자신의 영지를 근대적으로 운영하려는 한 개혁 귀족의 장원에서 그의 조카 헤르질리에와 레나르도, 그들의 친척인 지혜롭고 신비한 여성 마카리에 등도 알게 된다. 레나르도의 소개로 만난 수집가 노인을 통해 교육주를 추천받은 빌헬름은 펠릭스를 그곳에 맡긴다. 빌헬름은 레나르도의 부탁을 받고, 과거에 소작료가 미납된 아버지와 함께 백부의 장원에서 쫓겨날 때 도움을 주지 못해 레나르도가 안타까운 마음으로 찾고 있는 밤색 피부의 아가씨 나호디네의 행방을 수소문하게 된다. 레나르도는 탑의 모임과 공동으로 미국으로 이주하여 그곳에 유토피아를 건설하려는 계획을 세우지만, 다른 한편 이주자 동맹의 일원인 오도아르트는 유럽 내에서 이상 사회를 건설하자고 주장하여, 이주자 동맹은 두 집단으로 나뉘어 계획을 진행한다. 그 사이 외과의사가 된 빌헬름도 여기에 합류한다. 헤르질리에를 짝사랑하다 거절당하자 말을 타고 질주하다 사고를 당해 목숨이 위태로워진 펠릭스를 빌헬름이 외과 기술로 살려내고 그들이 쌍둥이 형제처럼 포옹을 하는 장면으로 작품은 끝난다. 삽입된 여러 노벨레들은 소설 본문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체념이라는 공통적인 주제로 연결된다. 위에서 언급한 형식적 특성들로 인해 이 소설은 발표된 후에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오늘날에는 현대적인 소설로 평가받으며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우리말로는 1968년에 장기욱이 처음 옮겼다(휘문출판사).

초판 정보

Goethe, Johann Wolfgang von(1821): Wilhelm Meisters Wanderjahre oder Die Entsagenden. Ein Roman von Goethe. Erster Theil. Stuttgart/Tübingen: Cotta'sche Buchhandlung.

번역서지 목록

번호 개별작품제목 번역서명 총서명 원저자명 번역자명 발행연도 출판사 작품수록 페이지 저본 번역유형 작품 번역유형 비고
1 危險한 내기 (컬러版)世界短篇文學大系 2 古典主義文學 (컬러版)世界短篇文學大系 2 괴테 李鼎泰(이정태) 1971 博文社 269-273 편역 편역
2 오십 세의 사나이 (新譯)괴에테全集 5. 헤르만과 도로테아 (新譯)괴에테全集 5 괴에테 鄭鎭雄(정진웅) 1974 光學社 331-408 편역 편역 <오십 세의 사나이>(331-408), <멜지이네의 이야기>(409-442)에 실림
3 危險한 내기 世界短篇文學大全集 2 世界短篇文學大全集. 古典主義文學 2 괴테 李鼎泰(이정태) 1975 大榮出版社 237-241 편역 편역

번역비평

1. 번역 현황 및 개관


괴테의 마지막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이하 편력시대로 약칭)는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이하 <수업시대>로 약칭)와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독립된 소설로 읽을 수 있는데, 부제는 “또는 체념하는 사람들 oder die Entsagenden”이다. 이 소설도 <수업시대>처럼 괴테의 시들 또는 <젊은 베르터의 고뇌>나 <헤르만과 도로테아>, <파우스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게 번역되었다. <수업시대>의 경우에는 소설 속에 실린 시들이 먼저 여러 차례 번역되고 나서 전체 소설이 나중에 번역된 것과 달리, <편력시대>의 경우에는 작품 속에 삽입된 여러 노벨레들(<오십 세의 남자>, <위험한 내기>, <새로운 멜루지네> 등)이 따로 번역된 것은 전체 소설이 1968년에 <괴테전집>의 일부로 완역된 이후이다. 두 소설 모두 전체 작품으로 처음 소개된 것은 조희순의 <괴-테의 生涯와 그 作品>에서이다. 괴테 서거 100주년을 기념하는 <문예월간 文藝月刊> 특집호(4호, 1932년)에 실린 이 글에서 조희순은 “윌헬름·마이스터-의修業時代”를 “一種의敎養小說”로 소개하며, 이 작품을 “프랑크푸르트時代부터 와이마-ㄹ時代ᄭᅡ지의 괴-테의生活과 經驗을 藝術化한 것이다”라고 하면서 주로 괴테의 전기적 사실과 연결시켜 해석한다.[1] 조희순은 <편력시대> 역시 전기적 관점에서 해석하는데 이 부분을 좀 더 자세히 고찰해 보도록 한다.

1807년에 시작한 「윌헬름•마이스터-의 遍歷時代」(三券)는 그後創作熱의 減退와 쉴러-의 주금에依하야 指導OO하는 사람이업서짐等에依하야 二十二年後 卽一八二九年에 完城되엇다. 「윌헬름•마이스터-의 修業時代」의 最後에 윌헬름으 그 愛人나타리-에를어더 實行과勞動 人生의意味를찻고 이에安定하게되엇섯다. 그러나 그는愛人나타리-에와의 幸福도버리고 ᄯᅩ다시 遍歷의길을 ᄯᅥ나게된다. 한곳에서 오래滯在하지 안할것을 條件으로하야 그는 各處를 漂迫流浪하는 동안에 왼갓社會와 사람을接觸하야 結局은 斷念과勞動의 敎訓을엇게된다는 것이 이小說의 挭槪다. 그의 創作力의 衰退에인지 혹은 그의老年에 原因함인지 이小說에는 그의特長인女性描寫가저거 無味乾燥하고 부드럽고 ?한情緖가 업다고ᄭᅡ지 評을듯게된다. 그러나 이小說의特色은 修業時代의 중심사상은 空想的一個人의 自由스러운 人間性과 活動的實行的 生活에잇섯슴에 反하야 이遍歷時代에는 國家全體의 發展과幸福에對한 考察이 主題가되는 것이다. 참으로 이小說中에는 괴-테의人生觀, 國家, 社會, 敎育에對한 見解가 各種의形式으로써問題가되고 議論이되고잇다. 要컨대 이小說의主題는 OO한道德과 時代O인組織에의하야 그存在가危殆하든 獨逸社會는 一大革新을 要한다는 그의改革主義思想에서 出發한 것이다. 思想家로서의 政治家로서의 괴-테生涯中의 OOO에서出發한 人類社會의 進化와向上의 길을指示하려는 亦是一種의 敎養小說이다.(이상 강조는 모두 필자에 의함) 


여기에는 <편력시대> 수용 초기에 있었던 작품에 대한 비판적 견해들이 담겨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노(老) 괴테의 인생관, 세계관의 총체가 담긴 작품이라는 이 소설에 대한 또 다른 전형적인 평가 역시 담겨 있다. 같은 해인 1932년에 서항석은 <괴-테의 社會思想>이라는 글에서 <편력시대>의 사회소설로서의 측면을 소개한다.[2]

이 글은 <편력시대>에 대한 좀 더 본격적인 소개라고 볼 수 있다. “이一篇은 主人公 「뷜헬름」이 社會意識에로 成長해가는 過程과 아울러 社會意識그自體의 進展하는 過程을 取扱한것이다.” 저자는 수공업이 갖는 의미, 몬탄이 주장하는 “一方面의時代 Die Zeit der Einseitigkeit”, 백부의 장원, 교육주 등 작품에서 사회적인 측면과 관련된 부분을 상당히 자세하고 깊이 있게 소개하고 있다. 같은 해에 나온 이 두 독문학자의 소개글에서 나중에 <편력시대> 번역자들에게서 발견되는 작품 해석의 방향을 미리 볼 수 있다.

<빌헬름 마이스터> 소설들 전체가 우리말로 번역되기까지는 조희순과 서항석의 이 소개로부터 30여 년의 시간이 더 걸렸다. 예전에 <수업시대>에 대한 번역비평에서도 밝혔듯이, 한국에서 괴테는 ‘낭만주의자’로 먼저 수용되었다가 1930년대에 가서 ‘고전주의자’ 괴테로 관심이 확대되었는데,[3] <빌헬름 마이스터> 소설들에서 미뇽이나 하프 연주자의 노래들이 우선적으로 번역·수용된 것 역시 이런 수용사적인 맥락과 관련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고, <베르터>와 <파우스트>가 먼저 번역되어 대중에게 열광적으로 수용된 후에 대학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독어독문학자들이 <빌헬름 마이스터> 소설들을 번역하게 된 것 역시, 시차가 있기는 하지만 일본의 경우와 유사한 패턴이라고 볼 수 있다. 두 마이스터 소설들 가운데서도 <편력시대>는 <수업시대>에 비해 연구도 훨씬 더 적게 되어 있고, 일반 대중의 인지도도 더 낮은데, 그 이유는 <수업시대>가 ‘독일 교양소설의 전범’이라는 문학사적 평가가 보여주듯이 대표성을 가진다는 사실, 또 <편력시대>가 형식적, 내용적 측면에서 볼 때 더 복잡하고 난해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수업시대>가 총 5개의 완역(장기욱, 정진웅, 강두식, 박환덕, 안삼환)이 있는 것에 비했을 때 <편력시대>가 지금까지 우리말로 총 3번 완역되었다는 것은 결코 적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초역인 <윌헬름 마이스터의 遍歷時代>는 1968년 장기욱의 번역으로 <괴에테문학전집>에 수록되었다. 두 번째 번역인 곽복록 역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방랑시대>는 1995년 <괴테전집> 편집위원회(회장 지명렬)에서 기획한 <괴테전집> 16권으로 예하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곽복록의 번역은 1999년에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 또는 체념의 사람들>로 제목이 바뀌어 서울대출판부에서 다시 나왔으며, 2016년에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와 한 권으로 묶여 출간되기도 하였다(동서문화사). 세 번째로는 1999년에 괴테독회에서 번역한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가 있다. 본문에서는 이 세 번역본을 비교·분석하려고 한다.


2. 개별 번역 비평

1) 장기욱 역의 <윌헬름 마이스터의 遍歷時代>(1968)

국내 초역인 장기욱의 번역본은 1968년에 <괴에테 문학전집>(휘문출판사) 4권에 <윌헬름 마이스터의 遍歷時代>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강두식이 번역한 <서간문>과 함께 실려 있다. 장기욱은 이 작품 해설에서 번역의 저본이 함부르크 판본(Hamburger Ausgabe)의 8권임을 밝히고 있는데 이는 세 역자의 경우 모두 동일하다. <수업시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제목이 ‘빌헬름’ 마이스터가 아니라 ‘윌헬름’ 마이스터로 표기된 것(또한 발레리네는 ‘왈레리네’로 표기)은 초기에 영어로 번역된 <수업시대>를 통해 이 소설을 접했던 일본어 번역본들의 영향을 받은 <수업시대> 초역(역시 장기욱 역)과 같은 경우가 아닐까 싶다.[4]

역자는 번역 뒤에 실린 해설에서 이 작품의 주요 주제인 체념을 다룬다. 탑의 모임에 의해 빌헬름에게 부과된 제약, 즉 한 곳에 사흘 이상 머물 수 없고 다음에 이동할 때는 “이십 리 이상” 떨어져야 하며 같은 곳에 일 년 안에 다시 오지 못한다는 규정을 두고 “同志들을 만나도 과거와 미래를 이야기하지 못하고 오직 현재만을 문제로 하라는 것이다. 요컨대 한 고장에 정들지 말고 托鉢僧과 같은 체념을 가지고 인생을 觀照하라는 것이다.”라고 해석한다. “체념이란 여기서 방종을 금하고 도를 깨닫는다는 뜻”이다. “체념은 단념은 아니다, 무위가 아니다. 이것은 인간에 대한 집약을 불가결의 요소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업이라는 것이 제2의 주제이다.” 여기서 해설자는 이 주제가 “세계적 결사”라는 모습으로 나타나며, “더 좋은 세계를 이룩하기 위한 협조”를 작품 도처에서 볼 수 있다고 한다. 교육이 제3의 주제로 이어지는데, 이는 더 좋은 세계를 이룩하기 위해 “새로운 유능한 인간을 만드는 것이 그 기본여건”이 되기 때문이다. 해설자는 교육주를 통해 괴테의 교육에 대한 진지한 관심이 드러난다고 본다. 장기욱의 해설에도 노년의 괴테의 인생관의 표현이라는, 이미 조희순의 소개에서도 볼 수 있었던 <편력시대>에 대한 관점이 담겨 있다. “인생은 어떤 것인가, 만년의 괴테는 미로에 빠진 여러 사랑의 실례로서 이를 묘사하려 하였고, 체념에 입각하여 인간능력의 한계를 자각하여 자기욕망을 제한하고 이지를 가지고 어떤 특정한 분야에서 전체에 봉사하는 것이 참다운 사업이라 함으로써 인생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를 해명하려 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편력시대>는 노년의 괴테의 인생관을 담은, 일종의 “지혜의 책”(Trunz, HA Bd. 8, S. 527[Kommentar]) 같은 것이 된다, 에르하르트 바르에 의하면, 이는 초기에 이 작품이 난해함과 형식적 통일성의 결여를 이유로 비난을 받다가 긍정적으로 평가받기 시작한 첫 번째 전환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에리히 트룬츠의 견해이기도 하다. 우리말로 된 세 번역본은 모두 에리히 트룬츠가 편집한 함부르크 판본을 저본으로 삼음으로써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큰 틀에서 볼 때 대체로 <편력시대>에 대한 이와 같은 해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 곽복록 역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방랑시대>(1992, 1995, 1999, 2014)

곽복록의 번역본은 1992년 현대소설사에서 나왔고, 1995년 <괴테전집> 편집위원회(회장 지명렬)에서 기획한 <괴테전집> 16권으로 예하출판사에서 다시 출간되었다. 이 두 판본에서는 제목을 <빌헬름 마이스터의 방랑시대>로 번역하였지만 나중에 나온 판본들에서는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로 바꾸었다(서울대출판부, 1999; 동서문화사 2014). 예하출판사 판본(<방랑시대>)에서는 번역 시작 앞부분의 <일러두기>에서 번역의 저본을 괴테 전집 함부르크 판본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일러두기를 보면 함부르크 판본을 모두 번역하려고 기획했었다는 걸 알 수 있다.[5] 제목이 있는 페이지를 넘기면 “<괴테전집>을 펴내면서”라는 글이 실려 있다. <편력시대> 한 권에 대한 것은 아니지만 이 소설의 번역과도 관련된 전체적인 기획이기 때문에 이 번역본을 이해하는 데 참조가 되는 곁텍스트라고 할 수 있는 이 서문에서는 “시성(詩聖)”, “천재적 지성의 총체이며 전인적 보편시인”이라는 괴테상을 볼 수 있다. 단지 문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정치가, 자연과학자, 사상가이기도 했던 괴테의 다면성을 연구해야 할 필요를 “괴테전집 발간의 당위성”으로 역설하고 있다. 이 서문에서는 괴테의 생애와 작품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영향력”이 “시대를 초월하여 영원히 인간의 본질을 명확하게 파악하여 건전하고 원만한 인간성 형성을 촉구해 준다는 점”에 있다고 보았다. 작품 번역 뒤에 실린 작품 해설의 제목은 “인류에게 남긴 메시지”이다. 이 작품해설에서 역자는 “생의 전영역을 포괄하는 이 소설은 바로 노년의 괴테가 인류에게 남긴 유언이며 메시지인 것이다”라고 본다. 장기욱의 해설과 방향이 유사하지만 곽복록의 해설이 보이는 차이는 사회소설, 시대소설로서의 측면이 좀 더 강조되는 것이다. “<수업시대>에서는 빌헬름의 인격적 발전이 테마였지만 여기서는 인간과 사회가 중심이 되는 것이다.”(곽복록, 580) ‘노년의 문체’와 ‘노년의 지혜’를 강조하면서도 또한 <편력시대>를 시대소설, 사회소설로 본 것 또한 트룬츠의 견해였다. 곽복록은 <편력시대?의 내용적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미학적 측면에서의 현대성을 강조하는데, 그런 점에서 볼 때 <편력시대>는 “현대소설의 많은 테크닉을 예견”하는 “새로운 소설”이다.

뒤에 나오는 김숙희 역과 비교해 볼 때 곽복록 역은 좀 더 한자가 많이 쓰이고 문어적인 특징을 갖는다. 몇 가지만 예를 들면 곽복록 역에서 “탑의 결사”라고 번역한 부분을 김숙희 역은 “탑의 모임”이라고 옮긴다. 3부 9장의 시작 부분을 보자. “최고로 뜻깊은 날이 밝아왔다. 오늘은 일반적인 이주(移住)에로의 제일보가 시작되는 날이었다.”(곽복록. 448) “가장 뜻깊은 날이 밝아왔다. 오늘이 바로 모두들 이주해 가기 위한 제1보를 내딛는 날이었다.”(김숙희 외 II, 103) (“Der höchst bedeutende Tag war angebrochen, heute sollten die ersten Schritte zur allgemeinen Fortwandrung eingeleitet werden[...].”) 그날 레나르도가 한 연설 마지막 부분을 보자.

언제까지나 땅에 매달려 있지 말라,          그대로 눌러앉아 머물지 말고
새로이 결심하여 힘차게 발을 내디디라!      과감하고 힘차게 뛰어나가세!
머리와 팔뚝에 신바람의 힘만 배면           머리와 팔뚝에 신바람 나면, 
어디로 가나 그대의 집이다.                 어딜 가나 다 내 고향이로세,
햇빛을 즐기는 곳엔                         햇빛 즐길 수 있는 곳이면, 
근심걱정이 없는 법.                        모든 근심 사라진다네.
우리, 이 세상에 흩어져 살라고              우리 모두 흩어져 살라고
세상은 이처럼 넓도다.                      이 세상 이렇게 넓은 거라네.
(곽복록, 457-458)                          (김숙희 외 II, 114)
Bleibe nicht am Boden heften,             땅에 발목을 매어놓지 말고
Frisch gewagt und frisch hinaus!          용감히 힘차게 앞으로! 
Kopf und Arm mit heitern Kräften,         머리와 팔에 경쾌한 힘을 주면
Überall sind sie zu Haus;                 집은 가는 곳마다 있으려니.
Wo wir uns der Sonne freuen,              태양을 즐기는 곳에
Sind wir jede Sorge los.                  근심과 걱정이 없으려니. 
Daß wir uns in ihr zerstreuen,           우리 서로 흩어져 살기에
Darum ist die Welt so groß.              세상은 이처럼 넓으니.
(3. Buch, 9. Kap.)                        (장기욱, 323)

이 부분에서도 곽복록 역의 문체적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 이런 예는 무척 많은데 또 다른 예로는 작품의 마지막 부분인 3장 18장을 들 수 있다. 여기서 빌헬름은 응급조치를 통해 자신의 아들을 구해 낸 후 자신의 옷을 깔고 누운 아들 펠릭스를 바라보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Wirst du doch immer aufs neue hervorgebracht, herrlich Ebenbild Gottes! [...] und wirst du sogleich wieder beschädigt, verletzt von innen oder von außen.”
“숭고한 신과 같은 모습을 한 자여! 너는 쉬지 않고 새로이 창출되어지는 것이다 [...] 그것도 곧 다시 상처를 받고 내부에서 또는 외부에서 상처를 입으면서.”(곽복록, 538)

“찬란한 신의 형상을 닮은 아이야, 너는 항상 새로이 거듭나리라! 금방 또 다시 다쳐 마음이나 몸에 상처를 입을지라도!”(김숙희 외 II, 202)

이 두 번역을 비교해 보면 문어적인 번역을 하는 곽복록 역의 특징을 알 수 있다. 곽복록 역은 1999년 서울대출판부에서 괴테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여 다시 나올 때에는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 – 또는 체념의 사람들>로 제목을 바꾸고, 번역의 저본이 프랑크푸르트 판본(Deutscher Klassiker Verlag)임을 밝혔다.


3) 김숙희 외 역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1999)

김숙희 외 역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은 괴테독회 회원 17명의 공역이다. 괴테독회는 1992년에 시작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독문학자들의 괴테 저작 독회 모임이다. 민음사에서 기획하였던 괴테전집의 10권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 역시 책 맨 앞에 실린 일러두기에서 함부르크 판본을 저본으로 삼았음을 밝히고 있다. 2권 끝에는 <공동번역을 내면서>라는 일종의 역자 후기(역자들을 대표하여 안삼환이 씀)와 누가 어느 부분을 번역했는지를 밝히는 <번역 분담표>, 그리고 김숙희의 작품 해설 “노시인 괴테가 보여주는 지혜의 총화 – 공동체의 이상과 체념의 미학”이 <작가 연보>와 함께 차례로 실려 있다. <공동번역을 내면서>에는 이 책을 번역한 괴테독회의 설립 과정과 독회 설립 후 첫 독서 텍스트로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를 읽고 번역한 과정 및 번역기획이 서술되어 있다. 필자는 괴테독회 회원들이 당시 함께 읽을 첫 텍스트로 <편력시대>를 선택한 이유가 이 소설이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절실한 현실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이 번역의 특이성은 단지 공역일 뿐만 아니라 5년여에 걸친 독회에서 공동으로 토론을 거친 작업의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김숙희의 작품 해설에서는 그 제목처럼 “노시인 괴테가 도달한 인생의 모든 지혜의 총화”와 “노년의 문체”가 강조되어 있으면서도 이 소설의 사회소설, 시대소설로서의 성격도 지적한다. <편력시대>에서 핵심적인 ‘체념 Entsagung’과 ‘공동체’라는 주제, 작품의 생성사와 판본, 수용에 대해 학문적인 깊이가 담긴 해설은 함께 책을 읽는 공동작업을 통해 이룬 괴테 연구의 깊이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보아 괴테독회의 번역은 장기욱 역과 곽복록 역에 비해 우리말로 좀 더 자연스럽고 이해하기 쉬우며 현대적인 표현이 눈에 띄는데, 이렇게 되는 과정에서 풀어서 쓰거나 좀 더 길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위에서 든 예들을 제외하고서도 예컨대 마카리에를 가리키기 위한 “Seherin”(3부 15장)이라는 단어를 장기욱 역이 “천리안(千里眼)인 그녀”(372), 곽복록 역이 “영시자(靈視者)인 그녀”(527)로 번역한 반면 괴테독회 역은 “투시력을 갖춘 그녀”(II, 191)로 번역하였다. 또 “Apotheose”라는 단어 역시 다른 번역들에서는 “신화(神化)”(장기욱, 106), “신격화”(곽복록, 139)로 번역한 반면 “신처럼 변화하여 올라가실 운명”이라고 번역하였다. 또 “eine Lanzarette”는 “유엽도(柳葉刀)”(장기욱, 378), “난절도(亂切刀)”(곽복록, 537)라는 오늘날 잘 쓰이지 않는 어려운 한자어로 번역되었다가 괴테독회 역에서는 “수술용 메스”(II, 201)로 번역되었다.


그 밖의 비교 사항은 다음과 같다.


(1) 편력 遍歷/방랑 放浪 (Wandererjahre, wandern, Wanderer)

제목에 들어 있는 “Wanderjahre”는 ‘편력시대’(장기욱, 김숙희 외, 곽복록 1999), ‘방랑시대’(곽복록) 두 가지로 번역되었다. 일본어로는 “遍歷時代”이다. 영어로는 ‘travels’, ‘journeyman years’, ‘years of travel’ 등이 있다. ‘journeyman’은 ‘Geselle로서 Wanderschaft에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독일어에서 ‘Wanderjahr(e)’라는 말은 과거에 쓰이던 단어로 ‘Jahr der Wanderschaft eines Handwerksgesellen’(dwds)이다. 이 단어를 영어에서처럼 1) journeymen years로 번역하는 것과 2) years of travel로 번역하는 것은 해석의 차이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즉 첫 번째는 도제, 직인, 장인[6]의 세 단계로 이루어진 수공업의 수련 과정 가운데 두 번째 단계인 ‘직인(職人)(또는 도제)/게젤레 시절’(직인(또는 도제)/게젤레(으)로서 여러 작업장으로 돌아다니며 배우는 시절)을 뜻한다고 볼 수 있고, 두 번째 번역은 그런 의미를 담고 있기는 하지만 좀 더 폭넓은 뜻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직인’(또는 도제)이라는 번역은 ‘journey’라는 말이 이미 영어의 ‘journeyman’이라는 단어 안에 들어가 있는 데 비해 그 단어 자체가 바로 선명하게 ‘wandern’하는 시절이라는 뜻을 한국어 독자에게 전달해 주지는 않는다. 반대로 기존에 존재하던 편력시대/방랑시대라는 번역은 ‘wandern’한다는 의미는 분명히 전달하지만 우리말로만 읽었을 때 이것이 수공업의 수련과정과 관련된 편력/방랑이라는 의미는 전달되기 어렵다. ‘時代(じだい)’라는 일본어가 개인의 ‘시절’을 뜻하기도 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예컨대 소년 시절은 ‘少年時代(しょうねんじだい)’, 학창 시절은 ‘学生時代(がくせいじだい) 등)’ ‘수업시대’, ‘편력시대’와 다른 번역어를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7] 김숙희 외 역에는 “Wanderjahre”를 “편력시절”이라고 번역한 부분이 발견된다(“더욱 더 마음을 가다듬고 더욱더 꿋꿋하게 편력시절을 마무리하고 싶은 소망이 갈수록 절실해집니다.”[8](김숙희 외 II, 291-292, 강조는 필자에 의함. 곽복록 역에서는 “방랑시대”).

제목을 “방랑시대”, “편력시대”로 번역한 것에 따라 곽복록 역 및 김숙희 외 역에서는 본문에 등장하는 ‘Wanderer’라는 단어도 각각 ‘방랑자’, ‘편력자’로 번역되어 있다(단, 김숙희 외 역에는 ‘방랑자’라는 단어도 등장하며, 같은 단어가 ‘여행자’(곽복록), 나그네(김숙희 외), 길손(장기욱)이라고 번역된 경우도 있다). 곽복록 역은 1999년판에서는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 – 또는 체념의 사람들>이라는 제목을 가지게 됨으로써 본문에 등장하는 ‘Wanderer’의 번역을 ‘방랑자’라고 했던 부분도 모두 편력자로 바꾸었다.


(2) 체념

‘die Entsagenden’, ’Entsagung’은 세 번역본 모두에서 ‘체념의 사람들/체념하는 사람들’, ‘체념’으로 번역되어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다만 여기서 이 번역어를 잠시 언급하려고 하는 이유는 이것이 아직까지 다른 번역어 없이 ‘체념’으로 번역되면서도 우리말 ‘체념 諦念’[9]이 주는 대체로 소극적,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계속 토론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체관(諦觀)[10], 극기복례(克己復禮)[11] 등의 제안이 있었으나 아직 소수 의견으로 존재한다.‘die Entsagenden’은 체념의 사람들, 체념하는 사람들, 체념한 자들로 번역되는데, 이 사이에도 의미상의 차이가 미세하게 존재한다. 그리고 아래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종교적인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 과거와 미래에 대해 말해서는 안되며 오로지 현재에 대해서만 몰두해야 한다는 것, 이것 또한 체념한 자들의 독특한 의무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체념하는 사람으로서의 수행자에게 부과된 독특한 의무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도 있었다. 즉 서로 만나서도 과거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서는 안 되며 오로지 현재에만 마음을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김 I, 49)


(3) 교육주/교육촌 die pädagogische Provinz

빌헬름이 아들 펠릭스를 맡기기 위해 레나르도와 그의 친구인 골동품을 수집하는 노인의 소개로 찾아가는 곳은 2부 1장의 내용을 이루고 있다. 이곳은 연구에서 “die pädagogische Provinz”라고 칭해지는데, 정작 소설 본문에는 이 단어가 등장하지 않고 “교육단체 eine pädagogisch Verbindung”, “그 지역 die Provinz”으로 언급된다. 이에 대한 번역은 “교육주”(곽), “교육촌”(김) 등으로 차이가 나는데, 여기서 언급된 “Provinz”가 행정구역상의 ‘주 州’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지역, 장소 등을 의미하는 것임을 감안하면 널리 알려진 ‘교육주’라는 번역은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다. ‘교육촌’이라는 번역은 ‘-촌(村)’이라는 접미사가 ‘마을’, ‘지역’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면 이 소설에 나타난 Provinz의 뜻에 좀 더 가까울 수 있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촌’이라는 단어는 그냥 ‘지역’보다는 ‘시골’ 또는 ‘마을’로서의 느낌을 주기도 한다.


(4) 노벨레 <Wer ist der Verräter?>: 배반자/발설자

장기욱과 곽복록의 번역에서는 모두 <배반자는 누구인가?>라고 되어 있는 반면, 김숙희 외 역에서는 <발설자는 누구인가?>라고 되어 있다. 이 노벨레의 내용을 살펴보면 제목은 율리에와 결혼하기로 정해진 루치도르가 자신의 마음속에서 생긴 그녀의 언니 루친데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밖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방안에서 혼잣말로 중얼거린 것을 벽을 통해 가족들이 모두 들어 알게 되고 결국 루치도르는 루친데와, 율리에는 안토니와 맺어지게 된 일과 관련된다. 그러므로 이 경우에는 ‘verraten’을 ‘발설하다’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노벨레의 내용에 더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사전적으로 볼 때 우리말에 ‘발설하다’라는 동사는 있지만, ‘발설자’라는 명사는 없다.[12]


(5) 등장인물들 사이의 위계

1부 3장과 4장에는 <수업시대>에 나왔던 야르노가 몬탄으로 이름을 바꾸어 다시 등장하며 빌헬름과 재회한다. 야르노와 빌헬름의 관계는 곽복록 역에서 가장 위계적으로 나타나고(야르노가 빌헬름에게 하대를 한다), 김숙희 외 역에서 가장 대등하게 나타난다. 장기욱 역은 그 중간이다(야르노의 하오체). 빌헬름은 시민계급이지만 귀족인 나탈리에와 맺어지고 탑의 모임의 일원이 되어 개혁귀족인 로타리오, 레나르도 등과 어울리게 된다. 이들은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가운데에는 유명한 “일면성의 시대” 장면도 있다. 빌헬름은 신분상승을 했다고도 볼 수 있는데, 몬탄과 야르노의 관계에 있어서의 위계와 친소에 대한 해석이 번역본마다 다르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때까지는 다방면의 교양이 유리하고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왔어요.” - “그 시대에는 그럴 수도 있었겠지”하고 몬탄이 대답했다. “다면성이란 것은 원래 일면적인 인간이 활동할 수 있는 기본요소를 준비해 둘 뿐이지. 지금이야말로 일면적인 인간이 활동할 수 있는 장이 충분히 주어져 있지. 그렇고 말고, 지금은 일면성의 시대지. 그것을 깨닫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나 남을 위해서, 이런 의미에서 활동하는 사람은 행복하지. [...] 자네를 하나의 기관으로 만들라, 그러면 인류는 일반 생활 속에서 자네에게 어떤 지위를 호의적으로 줄 것이라고 기대해도 되지.”(곽복록, 44) 
“그렇지만 지금까지는 다방면의 교양이 유익하고 필요한 것으로 간주되어 오지 않았습니까.” “지난 시대엔 그럴 수도 있었지요.” 몬탄이 대답했다. “다양성이란 원래 일면적인 전문성이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줄 뿐이지요. 그런데 바로 지금은 전문적인 것이 활동할 여지가 충분히 주어져 있습니다. 그래요, 지금은 전문성의 시대입니다. 이것을 파악하고 그 전문성의 뜻을 살려 자신과 다른 사람을 위해 활동하는 사람에게 복 있을진저. [...] 우선 당신 자신을 하나의 도구로 만든 다음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당신에게 어떤 자리를 마련해 주리라는 것은 보장된 거나 다름없어요.”(김숙희 외 I, 47)

이런 경향은 다른 대목들에서도 발견된다. 예컨대 1부 11장(<Das nussbraune Mädchen>)에 등장하는 레나르도와 밤색 소녀(나호디네) 사이의 대화에서도 곽복록 역에서는 둘 사이의 위계가 훨씬 더 강조되는 반면, 김숙희 외 역에서는 완화된다.

‘할 수 있는 일은 다 할게, 제발 진정해!’/‘안되는 일이라도 해주세요!’(장기욱, 113)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보겠어. 안심해도 돼.’/‘할 수 없는 일까지도 해 주세요.’(곽복록, 149)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겠으니 제발 진정하시오, 아가씨”/“할 수 없는 일이라도 꼭 해 주세요.”(김숙희 외 I, 171)
‘Ich will das Unmögliche tun, beruhig dich, mein Kind!’/‘Tun Sie das Unmögliche!’(1. Buch, 11 Kap.)


(6) 수공업/손기술

Sich auf ein Handwerk beschränken ist das Beste.(1. Buch, 4. Kap.)
한 가지 업에 자신을 국한시키는 것, 이것이 최고요.(장기욱, 40)
한 가지 직종에 전념하는 것, 이것이 제일 좋아.(곽복록, 45)
한 가지 손기술에 자신을 국한시키는 것, 그것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김숙희 외 I, 48)

곽복록은 다른 부분들에서는 “Handwerk”를 “수공업”으로 번역하고, 김숙희 외 역은 “손기술”로 일관되게 번역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어로 ‘손기술’은 사전적으로는 ‘Handwerk’가 아니라 이와 다른 뜻을 갖는다.[13]



3. 평가와 전망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의 번역은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의 경우와 유사하게, 세 번역 모두 독문학자들의 번역이며, 특히 세 번째 번역은 독문학자 그룹의 공동 독서와 집단 토의를 통해 이루어진 번역이다. 그래서 세 번역은 모두 전문적인 독문학 지식을 바탕으로 한 수준 높은 번역으로 괴테연구에 탄탄한 기초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독일에서는 <편력시대>에 대한 연구가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어 <편력시대>가 “노년의 문체”를 보여주는 “노년의 지혜의 책”이라는 트룬츠의 테제에서 이미 1970년대부터 벗어나 아주 다양한 해석을 보여주고 있다. 카프카 번역 비평을 예로 보면, 카프카 연구에 있어서 몸, 제스처 같은 주제에 대한 관심이 번역 비평에 있어서도 그런 요소들에 주목하게 하였다. 그렇듯이 <편력시대>에 대한 새로운 연구들은 새로운 번역을 낳고 또 기존의 번역을 바라볼 때도 새로운 시선으로 볼 수 있게 할 것이다.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장기욱(1968): 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 휘문출판사.

김숙희 외(1999):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 1-2. 민음사.

곽복록(1992): 빌헬름 마이스터의 방랑시대. 현대소설.

곽복록(1995): 빌헬름 마이스터의 방랑시대. 예하.

곽복록(1999):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 또는 체념하는 사람들. 서울대출판부.

곽복록(2014):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 동서문화사.


조 향

바깥 링크

  1. 조희순(1932): 괴-테의 生涯와 그 作品. 문예월간 4, 12; 조우호(2010): 근대화 이후 한국의 괴테 수용 연구. 코기토 689, 143-171; 이유영・김학동・이재선(1976): 한독문학비교연구 I, 164.
  2. 서항석(1932): 괴-테의 社會思想. <비판> 2권 4호, 75-78. 다음의 글 또한 참조할 것. 조우호 2010, 152 이하; 이유영・김학동・이재선 1976, 173 이하.
  3. 김규창 2001, 253; 조우호 2010, 145 이하.
  4. Naoji Kimura(1997): Jenseits von Weimar. Goethes Weg zum Fernen Osten. Bern[u.a.]: Peter Lang, 95-97.
  5. 예하출판사에서 기획되었던 <괴테전집> 가운데 실제로 출간된 작품은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박환덕 역), <빌헬름 마이스터의 방랑시대>(곽복록 역) 두 권뿐인 것 같다. 한편 이와 거의 동시에 민음사에서도 <괴테전집> 번역에 착수하였다. 지금 조사해 보면 민음사에서 출간된 괴테 작품들 가운데 일부에만 괴테전집이라는 제목과 번호가 붙어 있다(괴테전집 01(괴테시집), 02(서동시집), 03(파우스트), 07(친화력), 08-09(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10-11(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 12(색채론), 13(예술론), 14(문학론). 그 이전에도 몇몇 <괴테전집>이라고 불리는 기획들이 있었다(현대소설사(<프랑스 종군기 外>(장상용 역), <로마 체류기>(정서웅 역)).
  6. ‘Lehrling’, ‘Geselle’, ‘Meister’를 이야기하는데, 이는 수습공, 도제, 명장(안삼환. 괴테사전(2016), 224)이라고도 함.
  7. 한국어로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표준국어대사전에 ‘전성시대’가 전성기라는 의미로 수록되어 있다) ‘시대’라는 말은 역사적, 사회적인 함의를 갖는다. 개인적인 의미로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반면 일본어로 ‘시대’는 ‘시절’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그래서 일본어로 ‘遍歷時代’로 번역된 것이 아닌가 추측이 된다.
  8. “[...] der Wunsch, meine Wanderjahre mit mehr Fassung und Stetigkeit zu vollenden, wird immer dringender.”(2. Buch, 6. Kap., 강조는 필자에 의함)
  9. 체념(살필 諦, 생각할 念): 1) 희망을 버리고 아주 단념함 2) 도리를 깨닫는 마음. 사전상으로는 이렇게 두 가지 뜻이 있으나 일상에서는 주로 1번 뜻으로 많이 쓰이고 있는 것 같다.
  10. 체관(諦觀): 1) 사물의 본체를 충분히 꿰뚫어 봄. 또는 사물을 상세히 살펴봄. ≒체시. 2) 품었던 생각을 아주 끊어 버림.(=단념)
  1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는 “자기자신의 사욕을 극복하고 예(禮)로 돌아갈 것을 가리키는 유교용어”로 설명되어 있다. “『논어』 안연편(顔淵篇)에서 공자가 제자인 안연에게 인(仁)을 실현하는 방법을 설명한 말이다. 오늘날의 말로 바꾸어 말하면, 충동적이고 감성적인 자아를 의지로 극복하여 예법을 갖춘 교육적 인간상인 군자(君子)의 이상으로 돌아감을 일컫는다.”
  12. 조우호는 <괴테사전>에서 ‘발설자’와 ‘발설한 자’ 두 단어를 모두 사용한다. 괴테사전, 227, 230 참조.
  13. 손기술/손 기술: 『체육』 씨름에서, 손을 사용하여 상대편을 공격하는 기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