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노래 (Liebeslied)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1875-1926)의 시
작가 |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
---|---|
초판 발행 | 1907 |
장르 | 시 |
작품소개
초판 정보
번역서지 목록
번호 | 개별작품제목 | 번역서명 | 총서명 | 원저자명 | 번역자명 | 발행연도 | 출판사 | 작품수록 페이지 | 저본 번역유형 | 작품 번역유형 | 비고 |
---|---|---|---|---|---|---|---|---|---|---|---|
愛歌 | 朝光 | 朝光 4 | 릴케 | 윤태웅 | 1942 | 151-152 | 편역 | 완역 | |||
사랑의 노래 | 릴케 詩集 | 라이너 마리아 릴케 | 구기성 | 1960 | 131-132 | 편역 | 완역 | ||||
사랑의 노래 | 검은 고양이 | 세계시인선 9 | 라이너 마리아 릴케 | 김주연 | 1973 | 민음사 | 36 | 완역 | 완역 | ||
사랑의 노래 | 릴케 詩集 | Rainer Maria Rilke | 손재준 | 1984 | 正音社 | 141 | 편역 | 완역 | |||
5 | 사랑의 노래 | 두이노의 비가 | 라이너 마리아 릴케 | 손재준 | 2014 | 열린책들 | 162 | 완역 | 완역 | ||
사랑의 노래 | 이별의 꽃 | 라이너 마리아 릴케 | 김재혁 | 1973 | 43 | 완역 | 완역 | ||||
7 | 사랑의 노래 | 두이노의 비가 外 | 릴케전집 2 | 라이너 마리아 릴케 | 김재혁 | 2000 | 책세상 | 163 | 완역 | 완역 | |
사랑의 노래 | 릴케 신시집 |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고전 ; 시 | 라이너 마리아 릴케 | 이정순 | 2001 | 현암 | 29 | 완역 | 완역 |
번역비평
1. 번역 현황 및 개관
이충섭의 <한국의 독어독문학 관계 번역문헌 정보 1906-1990>에 의하면 일제강점기 말기인 1936년 4월에 조선일보가 창간한 월간지 <여성> 1936년 6월호에 박용철이 번역 소개한 (마리아께 드리는) <소녀의 기도>가 한국어로 가장 먼저 번역된 릴케의 시다. 한국현대시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박용철이 도쿄 아오야마 학원 중등부를 거쳐 외국어대학 유학생 시절에 릴케의 문학에 심취함으로써 릴케의 한국 수용사가 시작된 셈이다.[1] 릴케의 시 <사랑의 노래>(Liebes-Lied)는 이미 윤태웅이 <愛歌>라는 제목으로 일제강점기 말기인 1935년 10월부터 조선일보 자매지로 발간된 월간문예지 <朝光> 1942년 4월호에 릴케의 <嚴肅한 瞬間>(Ernste Stunde), 그리고 초기시집 <나의 축제를 위하여>의 제사(題詞)와 시 한 편을 제목 없이 함께 번역 게재하였다. 김효중, 윤태웅의 릴케시 번역 고찰, 번역학연구, 2005, 제6권 1호(19-44), 21-22, 28쪽 참조. 김효중은 윤태웅이 “제목이 있는 시를 번역해 놓음으로써 제목이 없는 시편들을 번역해 놓은 박용철과 비교된다”고 했는데, 이런 주장은 원본 대조를 하지 않은 탓이다.
이 시는 윤태웅 이후 몇몇 선집에 개별적으로 소개되었을 거로 짐작되지만, 1960년 구기성(丘冀星)이 릴케의 시를 초기부터 후기까지 시기별로 선정하여 <릴케詩集>을 펴낼 때 이 시를 수록함으로써 비로소 이 시가 릴케의 시 전체의 창작 발전단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구기성은 <신시집> 가운데 <사랑의 노래>, <詩人의 죽음>, <子午線의 天使>, <표범>, <1906년의 自畵像> 등 5편을 옮겨 실었다.
김주연(金柱演)이 <검은 고양이>(민음사, 1973)라는 제목으로 펴낸 릴케 시 선집에는 훨씬 많은 21편의 시들을 <신시집>에서 뽑아 소개하고 여기에 <사랑의 노래>를 수록하였다. 손재준(孫載駿)도 릴케 시 선집을 40년 이상의 시간차를 두고 2회 펴내고(<릴케 詩集>, 정음사 1973; <두이노의 비가>, 열린책들, 2014) 매번 <사랑의 노래>를 선정, 수록하였다.
2000년은 한국 릴케 수용사의 한 획을 그은 해로 기억할 만하다. 출판사 책세상에서 명실공히 한글세대에 속한 젊은 번역가들이 공동으로 참여한 완역 릴케 전집 12권을 펴냈기 때문이다. 제1, 2권에 전 생애에 걸친 릴케의 대표시집들을 수록하고, <두이노의 비가 外>라고 별도의 제목을 부친 제2권에 <형상시집>, <신시집(제1권, 제2권)>, <마리아의 생애>, <두이노의 비가>,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 「진혼곡>을 수록했는데. <사랑의 노래>가 <신시집>, 제1권의 세 번째 자리에 놓이게 됨으로써 지금까지와는 전혀 새로운 주제와 표현법의 맥락을 얻게 되었다. 2001년에 현암사에서 펴낸 이정순 번역의 <릴케 신시집>은 비록 <신시집> 제1권만의 완역이지만, 원문 텍스트의 문화적 이해와 번역어의 구사에서 독보적인 경지를 이뤄냈다고 할 수 있다.
<사랑의 노래>는 릴케의 중기를 대표하는 <신시집>(제1권, 1906)에 실려 있는 것으로서 파리에서 조각가 로댕의 작업방식에 큰 자극을 받은 릴케가 이른바 ‘사물시’(Ding-Gedicht)의 이상을 추구하던 시기에 쓴 것이다. 로댕과의 만남은 그때까지 많은 시를 써왔던 릴케에게 큰 충격과 깨달음을 준 사건이었다. 이미 그 당시 많은 시를 써서 발행하기도 했던 릴케는 서정시가 주관적 감정의 표현에 그쳐서는 안 되고, 마치 조각가가 하나의 조형물을 유기체처럼 빚어내듯이, 시인도 언어를 매개체 삼아 시적 대상에 대응하는 ‘언어예술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깨달았다. 그렇게 새로운 창작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 릴케는 될수록 주관적 감정의 직접적 표현을 배제하고, 사물 자체에 대응하는 언어구조물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2] 이렇게 새로운 목표를 염두에 두고 쓴 시들을 모아 시집을 발간할 때, 릴케는 단순히 ‘새롭다’라는 점을 내세워서 ’새로운 시들‘이라는 뜻의 <신시집>(Neue Gedichte)이라는 제목을 선택했다. 릴케는 로댕의 손에서 하나의 조형물이 태어날 때, 조각가의 손이 얼마나 세심하게 오브제의 표면을 다듬어 명암이 뚜렷한 입체물을 빚어내는가에 주목하고, 그러한 작업방식을 시어의 운용에 적용하려고 했다. 물론 릴케는 나중에 이러한 시 창작법의 한계를 느끼고 또 한 번 결정적인 전회를 겪게 되지만,[3] <신시집>은 일반적으로 그 표현기법 면에서 보들레르 이후 유럽 현대시를 이끈 프랑스 상징주의에 상응하는 중요성을 지닌다고 평가된다.
<신시집>의 시들을 번역할 때 주의해야 할 첫째 사항은, 각 시의 시어가 의도하고 지향하는 객관성의 구체성을 파악하는 일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사랑의 노래>에서 문제되는 것은 우선 서정시 일인칭의 기능이다. 시인과 서정시 일인칭을 동일시하면 안 된다는 것을 전제한다면 ‘나’의 진술로 이루어지는 이 시는 일종의 역할시 또는 배역시(Rollen-Gedicht)이다. 이 시는 서정시 일인칭 ’나’가 느끼는 사랑의 감정을 현악기라는 사물을 통하여 그려낸 것인데, 그 사랑의 감정이 이중적이다. 그것이 언어로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살펴야 한다.
LIEBES-LIED Wie soll ich meine Seele halten, daß sie nicht an deine rührt? Wie soll ich sie hinheben über dich zu andern Dingen? Ach gerne möchte ich sie bei irgendwas Verlorenem im Dunkel unterbringen an einer fremden stillen Stelle, die nicht weiter schwingt, wenn deine Tiefen schwingen. Doch alles, was uns anrührt, dich und mich, nimmt uns zusammen wie ein Bogenstrich, der aus zwei Saiten eine Stimme zieht. Auf welches Instrument sind wir gespannt Und welcher Geiger hat uns in der Hand? O süßes Lied.
이 시의 제목 ‘사랑의 노래’와 맨 끝 구절 ‘달콤한 노래’의 관계는 단순하지 않다. ‘달콤한 노래’가 서정시 일인칭과 그 상대가 부르는 노래, 이 시의 언어적 표면에는 나타나지 않는 노래를 가리킨다면, ‘사랑의 노래’는 그 전체, 즉 서정시 일인칭이 느끼는 구속감과 감미로움이라는 상반된 감정을 표현하는 이 시 자체의 주제를 가리킨다.
이런 관점에 주목하여 윤태웅의 <愛歌>, 구기성, 김주연, 손재준, 김재혁, 이정순이 번역한 <사랑의 노래>를 연대순으로, 특히 번역에 실현된 ‘번역전략’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번역자가 분명하지 않은 경우, 또는 기존의 번역본을 편집한 것이 분명하다고 추정되는 경우는 고찰 대상에서 제외하였다.[4]
2. 개별 번역 비평
윤태웅은 “1930년대 번역의 선두주자이던 박용철의 릴케 시 번역을 계승한 번역가로서 1940년대 우리 번역문학사의 한 획을 그은 번역가”[5]라고 평가된다. 윤태웅은 1943년까지 <朝光> 지 외에 <春秋> 지에도 릴케의 시 몇 편을 더 번역, 소개하였으며 이미 1941년에 <文友> 지 6월호에 릴케의 시 <가을>(Herbst)과 <고독>(Einsamkeit)을 소개하였다.[6]
<조광> 지는 릴케의 시를 150-153쪽 상단을 할애하여 하단에 게재된 계용묵(桂容黙)의 수필 <落款> 위에 얹어 놓은 형태로 편집하였다. 산문이나 시나, 당시의 관습대로, 세로쓰기 편집은 동일하지만, 산문의 촘촘한 글자배열에 비해 시는 행간도 넓고, 짧은 행 아래는 그대로 빈 여백을 두어 산문보다는 여유로운 공간배치를 한 점에서 시와 산문의 특질을 살리기 위한 편집인의 뜻을 짐작할 수 있다.[7] 독일어 원제목을 병기하는 동시에 한자어 ‘愛歌’를 번역시의 제목으로 삼은 것도 아직 한자 사용이 우세했고, 한글-한자가 병용되던 당시의 관습을 따른 것이다. 다만 그 발음만으로는 ‘哀歌’와 혼동될 우려가 있다.
愛歌 (Liebeslied) 1 당신의마음에는 닿지도 아니하게 2 어떻게 나는 나의마음을 간직하고있어야 하리까. 3 어떻게 나는 그것을 높이어야 하리까 당신우으로 다른 것에다가. 4 아아 나는 그것을 무엔가 어둠속에다가 잃어버릴 것만으로서 5 감추어 두고도싶다. 6 당신의깊은마음이 흔들리어도 흔들리질않을 7 아지도못할 어느종용한곳에다가 - 8 그러나 당신과 내게 닿는 모든 것은 9 두줄우에서 한 音響을 그어내는 10 바이올린의 시울이하는것처럼 우리를 하나로만들고 만다. 11 우리들은 어떠한樂器우에 놓이어있는것일까. 12 그리고 우리들은 어떠한演奏者의 손속에 있는것일 까. 13 오오 아름다운 노래.[8]
이 시가 게재된 지면의 형편상 하나의 시행 말미의 넘치는 부분을 다음 행으로 넘긴 것을 감안하면 번역문의 시행은 원문에 맞춰 13행이지만, 원문의 월행(越行) 또는 행간도약(行間跳躍, Enjambement) 부분은 모두 무시하고, 번역문에서 각 시행은 깔끔한 문장 단위로 정돈되어 있다. 즉 “시행의 엇부침”이라고도 불리는, 시의 운율(Metrum) 구조에 매우 중요한 원문의 이 요소가 번역문에서는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
이 번역은 ’~까”와 “~다”라는 의문형과 서술형 두 가지 종결어미를 사용하고 있는데, 의문형은 상대를 향한 ‘대화’, 서술형은 혼자 말하는 ‘독백’의 성격을 부각시킨다. 원문에 ‘나’와 ‘너’가 분명하게 표시되어 있으므로 너를 향한 나의 말을 대화의 형식으로 파악하고, 거기에 맞는 형식으로 옮긴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의문형이 시의 앞부분과 뒷부분에서 경어체와 일반체를 혼용함으로써, 너에 대한 나의 태도, 또는 자세가 일관성을 잃고 있다.
다음으로 어휘의 번역은 대체로 큰 오류가 없어 보이지만, 번역어 선택에 따른 미묘한 의미상의 차이가 발생한다. 우선 “Seele”를 “마음”으로 옮겼는데, 일반적으로, 특히 릴케의 시에서는 Herz도 ‘마음’의 뜻으로 쓰이므로 Seele는, 이후의 번역자들이 모두 그렇게 했듯이, ‘영혼’으로 옮기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halten”을 “간직하다”로 옮긴 것은 원문의 halten이 Haltung(자세, 태도)에 가까운 의미, 즉 사랑은, 또는 사랑의 마음은 ‘간직’하는 어떤 대상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태도’에 달렸다는, ‘소유하지 않는 사랑’으로까지 전개될 수 있는 릴케 고유의 주제를 살짝 빗나가고 있다. 이 동사는 이 시에서 사용된 다른 동사들, 즉 hinheben, unterbringen에 의해 부연되고 있으므로, 이 세 동사 상호 간의 적절한 의미관계를 번역에서도 살려낼 필요가 있다. “hinheben”을 “높이다”로 옮겨서 “당신우으로/ 다른 것에다가”와 함께 ‘높이 올려놓다’의 뜻에 가까운 뉘앙스에 너무 치우치게 되었다. 4행; “잃어버릴것만으로서”는 과거분사형을 미래형으로 잘못 봤을 뿐만 아니라 (따라서 “잃어버린 것”이 옳음), 그것을 “감추어두다”의 직접 목적어로 씀으로써 meine Seele와 혼동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물론 “감추어두다”는 “unterbringen”에 대응하는 번역어인데, ‘(갖다) 놓다’ 또는 ‘보관하다’의 사전적 의미로 볼 때, “감추다”는 서정시 일인칭의 소극적 태도에 대한 번역자의 과도한 해석을 반영하고 있다. “Bogenstrich”를 “바이얼린의 시울”로 옮긴 것은 그 독창성이 돋보인다. 다만 “aus zwei Saiten”을 “두줄우에서”로 옮김으로써 전치사 ‘aus’의 의미가 ‘auf’로 바뀌었다. 제13행은 감탄어인데, 원문에 일치시켜 명사만 옮겼을 뿐, 영탄을 표현하는 조사를 붙이지 않은 점이 두드러진다. 다만 “süß”를 “아름다운”으로 옮겼으나, 이는 ‘달콤한’ 또는 ‘감미로운’으로 옮긴 번역자들이 대부분이다.
김효중은 윤태웅이 박용철의 뒤를 이어 1940년대에 “릴케의 번역 소개를 주도”[9] 한 중요한 번역가로 규정하고, 그의 번역을 “객관적으로 검증”[10]할 필요가 있음을 역설했다. 그는 윤태웅이 1930년대의 박용철의 선행 작업을 통하여 릴케 시에 대한 이해가 용이했으리라는 문화사적 여건을 지적하는 한편, 영문학 전공자로서 릴케 시의 영역본을 참조했을 개연적 가능성을 언급하는 동시에, 당시 독한사전이 없었던 시절에 “독일어를 일본어로 풀어 놓은 독화사전과 독일어를 영어로 풀어놓은 독영사전에 의지”[11]하여 1) 시행의 순서를 원문과 맞추려는 노력, 2) 원문에 충실한 적합한 표현을 찾으려는 노력, 3) 우리말다운 향취를 내려는 데 최선을 다함 등을 장점으로 꼽았다.
1 당신의 영혼을 건드리지 않으려면 2 어이 나의 영혼을 간직하오리까? 어이 그것을 3 당신을 넘어 다른 것에로 돌릴수 있사오리까?‘ 4 오 그 어느 暗黑의 잃어진 것 곁에서 5 당신의 마음이 떨고 있어도 흔들리지 않는 6 낯 설고 고요한 場所에 7 나의 영혼을 내려뜨리고 싶소이다. 8 허나 우리를, 당신과 나를 건드리는 온갖 것은 9 두 줄의 絃에서 한 音을 자아내는 10 提琴의 활처럼 우리를 한데 사로잡소이다. 11 어느 樂器 위에 우리는 매어져 있는 것이오니까? 12 그리고 어느 演奏者가 우리를 손에 쥐고 있는 것이오니까? 13 오 甘味로운 노래여.
구기성은 독일 본 대학교수를 역임한 독문학 전문가로서 이 시 전체를 서정시 일인칭이 상대방에게 자신이 느끼는 사랑의 고뇌를 고백하는 말로 재현하고 있다. 경어체를 일관되게 사용함으로써 역할시의 주인공이 사랑하는 상대방을 높여 부르는, 일종의 문학적 관습이라고 할 만한, 일관된 태도를 구체화하는 데 성공했다. 다만 맨 끝 제13행은 조사 없이 명사만을 옮긴 윤태웅의 번역과 다르게 호격조사 “~여”를 명사에 첨가하였으며, 분명하게 상대방을 향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영탄조가, 비록 수사학적 의문이라 할지라도, 상대방에게 향하는 의문문으로 끝나는 그 이전의 진술과 일치하지 않는다. hinheben, unterbringen을 ‘넘어 (...로) 돌리다, 내려뜨리다’로 번역하여, über jm. hinheben과 unterbringen의 낱말에 함축된 상하운동의 방향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deine Tiefe’를 “당신의 마음”으로 옮긴 것은 독일어에서 deine는 친칭인데, 경칭으로 바꾼 것과 ‘마음’에 원문에서 의도하는 ‘깊이’의 의미가 사라진 것 등 두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그리고 Bogenstrich의 번역어로 “提琴의 활”을 선택했는데, ‘(활) 긋기’에 해당하는 ‘-strich’의 뜻이 누락되었을 뿐만 아니라, ‘제금’을 굳이 바이올린의 별칭으로 사용한 것이 적절한가 하는 의문을 남긴다. 그리고 ‘~소이다, ~오리까, ~오니까’ 같은 경어체 동사의 어미가 지니는 고풍의 분위기가 이 시에 적합한가도 의문이다.
1 내 영혼이 당신의 영혼에 닿지 않고서 2 어찌 내 영혼을 간직하리까? 어찌 내가 3 당신 위 다른 사물에게로 내 영혼을 쳐 올려버 릴 수 있으리까? 4 오, 어둠 속에서 잃어버린 어떤 것 옆, 5 당신의 깊은 마음이 흔들려도 흔들리지 않는 6 조용하고 낯선 곳에 7 내 영혼을 가져가고 싶습니다. 8 우리에게 당신과 나의 몸에 닿는 모든 것은 9 확실히, 두 줄의 현에서 한 음을 짜내는 10 弓形의 바이얼린처럼 우리를 한데 묶어 놓습 니다. 11 어떤 악기에 우리는 얽혀져 있는 것인가요? 12 어떤 바이얼린이스트가 우리를 사로잡은 것인 가요? 13 오, 달콤한 노래입니다.
김주연도 숙명여대 교수를 역임하고 평론가로도 활동한 저명한 독문학 전문가인데, 구기성과 마찬가지로 이 시 전체를 사랑하는 상대를 향한 서정시 일인칭의 고백 형식으로 재현하고 있으며, 역시 경어체를 일관되게 사용한다. 그러나 구기성의 번역과 두드러지게 다른 점은 우선 제13행을 명사로만 끝내지 않고 주격조사를 첨부하여 서술문으로 만든 것이다. 그 결과 이 시구의 “달콤한 노래”가 지칭하는 내용의 호소력이 단순한 감탄사의 경우보다 더욱 강조되는 효과를 지닌다. ‘hinheben’을 ‘쳐 올려버리다’로 번역한 것은, 상대를 향한 마음의 움직임을 직선운동으로 파악하고, 그 방향을 저지하는 행동을 강조한 결과다. 사랑을 방향성을 지닌 마음의 움직임으로 파악하는 것은 ‘unterbringen’을 ‘가져가다’로 번역한 데에서도 나타난다. ‘~에(bei etwas) 놓아두다’라는 정지된 공간개념은 피하고 ‘쳐 올리다’라는 동적 개념에 일치시킨 것이다. “弓形의 바이얼린”은 구기성의 “弓形의 활”이 현을 내리긋는 도구를 뜻하는 반면 악기 자체를 의미하므로, ‘Bogenstrich’에서 ‘-strich’의 뜻이 반영되지 않았다. ‘얽혀져 있다’는 ‘gespannt sein’의 번역인데, ‘zusammen/nehmen’을 ‘묶어놓다’로 번역한 것과 마찬가지로, 현악기의 ‘줄 매기’와 ‘줄긋기’라는 음악적 표현매개의 근거를 지워버린 결과를 가져왔다. ‘사로잡다’(12행)는 ‘in der Hand haben’을 번역한 것으로서, 원문이 현악기 연주자가 악기를 손에 들고 있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반면, 이 번역에서는 그 연주자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꼼짝못하게 포로로 잡는 폭군의 이미지로 나타난다. 한편 ‘Spieler’를 다른 번역자처럼 ‘연주자’로 옮기지 않고 ‘바이얼린이스트’라는 번역어를 선택한 것은 ‘弓形의 바이얼린’에 상응하는 번역으로서, 번역텍스트에 멋스러움을 더할 수도 있지만, 원문에서는 오히려 피하고 있는 이러한 구체화는 현악기의 범주를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 시는 <검은 고양이>라는 제목으로 발간된 릴케 시 선집에 실려 있는데, 독한 대역판으로 나온 이 시집에는 릴케의 <신시집> 제1권에서 12편, <신시집> 제2권에서 9편, <형상시집>에서 9편, <시도집> 또는 <기도시집>에서 8편, <가신봉제>에서 2편, 그리고 이들 시집과 별도로 발표된 시 2편을 싣고 있다. 말하자면 ‘사물시’의 목표를 자각하기 이전에 창작된 시들도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은 <사랑의 노래>에 표현된 악기의 은유가 지니는 객관적 상관물로서의 기능을 번역전략에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할 수 있다.
손재준은 고려대학교 교수를 역임한, 시인으로도 잘 알려진 독문학 전문가로서 릴케의 시 선집을 2회 발간하였다. 1973년에 나온 <릴케 詩集>에 실린 <사랑의 노래>와 41년 후 2014년에 <두이노의 비가>라는 제목으로 발간된 릴케 시 선집에 수록된 <사랑의 노래>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I. 1 당신의 영혼을 흔들지 않으려면 2 나의 영혼이 있어 무엇하랴. 어찌 3 당신을 지나 다른 것에로 오를 수 있을까. 4 아, 어둠 속에 잃어진 그 어느 것, 5 당신의 깊은 가슴이 흔들리면 6 더는 흔들리지 않을 어느 낯선 고요한 자리에 7 고이 간직하고 싶은 나의 영혼. 8 허나 당신과 나를 흔들어대는 것은 모조리 9 두 줄의 현에서 한 소리를 낳는 10 제금의 활같이 우리를 사로잡나니 11 우리를 이은 악기는 어떤 것인가? 12 우리를 손에 든 연주자는 누구인가? 13 아, 사랑스런 노래.
II. 1 너의 영혼에 내 영혼이 닿지 않도록 2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어떻게 내 영혼을 3 너를 넘어 다른 것에로 드높일 수 있을까? 4 아, 나는 그것을 어둠 속 어느 잃은 것 옆에 5 너의 깊은 마음이 흔들려도 흔들리지 않는 6 어느 남모르는 조용한 자리에 숨겨두고 싶다. 7 그래도 너와 나를 스치는 모든 것은 8 두 현에서 한 소리를 불러내는 바이올린의 활처럼 9 우리를 하나이게 한다. 10 어떤 악기 위에 우리는 퍼져 있는 몸일까? 11 어느 연주자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일까? 12 아, 달콤한 노래여.
손재준은 릴케의 <사랑의 노래>를 경어체를 쓰지 않고 일반체로 옮긴 유일한 번역가이다. 따라서 서정시 일인칭과 그 상대가 동등한 관계로 나타나며, 사랑은 어떤 우열관계도 없는 순수한 감정 상태로 표현된다. 이러한 번역전략은 41년의 시차를 두고도 변함이 없다. 물론 어구 번역은 달라진 부분이 있다. 그러나 가장 두드러지게 바뀐 것이 있다면 전체 13행이 12행으로 짧아졌다는 점이다. 원문 텍스트의 제4~7행을 제4~6행으로 줄인 결과다. 이것은 시어의 배열구성을 바꾸어도 본래의 뜻을 크게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가능할 것 같다. 원문과 면밀하게 대조해 보면, 원문의 제4행과 제5행이 번역문의 제4행으로 줄여진 것을 알 수 있다. 이때 가장 큰 변화는 동사의 위치에서 일어났다. 즉 원문의 제4, 제5행에 조동사와 본동사로 분산되어있는 동사(‘möchte ... unterbringen’)가 번역문에서는 제6행 끝에 놓였다 (“숨겨두고 싶다”). 이는 한국어와 독일어의 문법적 차이에서 기인하는 필연적 현상이므로 피할 수 없다. 그 밖에 어구 번역에서 문제 삼을 수 있는 것은 ‘hinheben’을 ‘드높이다’로, ‘ziehen’을 ‘불러내다’로, 그리고 ‘gespannt sein’을 ‘펴져 있다’로 옮긴 것 등인데, 이는 오역이라기보다는 번역문 전체의 문체와 어울리는가 하는 문제를 남긴다. 손재준 번역에서 가장 자유로운 부분은 제2행에 나타난다. 이는 1, 2차 번역에 똑같이 나타나고 있다. “나의 영혼이 있어 무엇하랴?”(1973) /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2014). 1차 번역은 논외로 치더라도, 2차 번역은 halten 동사의 뜻을 “막다”로 파악한 것이 분명하다. 끝으로 “사랑스런 노래여”가 “달콤한 노래여”로 수식어를 원문의 ‘süß’에 더 가깝게 바꾸긴 했지만, 감탄어구로서 그 독립적 성격은 변함이 없어, 그 이전까지의 대화체와의 불일치도 그대로 남게 되었다.
김재혁도 고려대 교수를 역임했으며, 시인과 번역가로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독문학 전문가로서, 릴케 전집 1, 2권에 수록된 릴케의 모든 시들을 번역하였고, 특히 <릴케와 한국의 시인들>(고려대학교 출판부, 2006)은 릴케의 한국 수용사에 관한 매우 중요한 저작이다. 그는 1973년에 <이별의 꽃>이라는 제목으로 릴케 시 선집 번역본을 냈고, 여기에 <사랑의 노래>를 실었다. 그리고 2000년 릴케 전집을 출판사 책세상에서 12권으로 낼 때, 그 제2권을 <두이노의 비가 外>로 제목을 달고, 여기에 릴케의 대표적인 시집을 완역하여 한 권으로 묶었는데, 이렇게 그 생성순서에 따라 배열된 릴케의 다른 시집들과 함께 수록된 <사랑의 노래>는 비로소 그 자리를 온전히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우선 <이별의 꽃>에 실린 <사랑의 노래> 번역은 다음과 같다.
1 당신의 영혼을 건드리지 않으려면 2 내 영혼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 어떻게 하면 이 영혼이 3 당신을 넘어 다른 사물들을 향해 솟을 수 있나요? 4 아, 어둠 속 깊은 곳 잃어버린 것들 곁에 5 나의 영혼을 숨겨두고 싶습니다. 6 당신의 깊은 곳이 움직일 때도 꼼짝 않는 7 낯설고 조용한 그곳에. 8 그러나 그대와 나, 그래 우리를 건드리는 모든 것은 9 두 현에서 나와 한 목소리를 내는 10 운궁법(運弓法)처럼 우리를 합쳐 줍니다. 11 어떤 악기를 우리는 가슴 졸이며 기다리나요? 12 어떤 바이올린 주자(奏者)가 우리를 손에 넣을까요? 13 아, 달콤한 노래여.
이 번역은 27년 후에도 별로 달라지지 않은 채 전집 2권에 실려 있다. 사소하게 달라진 어구는 4개뿐이다(다른 사물들을 -> 다른 것들을(제3행)/ 잃어버린 것들 -> 잃어버린 어떤 것들(제4행) / 움직일 때도 -> 흔들릴 때도(제6행)/ 두 현에서 나와 -> 두 현으로(제9행): 밑줄은 필자가 친 것). 그러나 “어떤 악기를 우리는 가슴 졸이며 기다리나요?”(제11행)를 “어떤 악기 위에 우리는 팽팽히 드리워져 있나요?”로 바꿈으로써 ‘gespannt sein’에 대한 오역을 바로잡았다. 물론 ‘팽팽히 드리워져 있다’가 악기 줄이 매어있는 모습에 대한 묘사로서 적절한가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이 번역에는 다른 어디에서도 볼 수 없고, 물론 원문에도 없는, ‘언어적 제스처’라고나 할 만한 어구가 첨가되었다. 제8행의 ”그래“가 그것이다. 이 말은 “그대와 나” 다음에 이것에 대한 다른 표현, 즉 “우리”라는 말에 대한 서정시 일인칭의 강한 긍정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꼭 필요한 첨언인가? 그리고 다른 문장은 전부 경어체로 되어 있는데, 혼잣말에 가까운 이 표현으로 전체 문체의 통일성이 깨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통일성의 문제가 단순히 문체의 범위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은 제13행의 번역에 여전히 남아있다. “eine Stimme”(제10행)를 ”한 목소리“로 옮긴 번역문은 원문에서 이탤릭체로 표시한 “eine”의 강조점이 반영되지 않았으며, ‘Stimme’는 악기의 현(絃)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 그냥 (악기의) ‘소리’라고 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다. ‘hinheben’을 ‘솟다’로 옮긴 것은 무엇보다 타동사를 자동사로 바꿈으로써 서정시 일인칭의 주체적 의지로 움직여야 할 ‘영혼’을 오히려 주어의 자리에 놓게 하였다. “당신의 깊은 곳”은 “deine Tiefen”을 그대로 옮긴 것이나, 그 “깊은 곳”이 마음속을 가리키고 있음을 당연한 전제로 여긴 듯하다. 그러나 “Bogenstrich”를 “운궁법(運弓法)”으로 옮기고 “바이올린 따위[등]의 현악기에서 활을 쓰는 법”이라는 주석을 달아놓은 것은 창의적이다. 번역텍스트 제1행과 제2행은 원문의 dass 이하 부문장을 주문장 앞에 놓은 결과인데, 이것은 모든 번역자가 같다. 다만 halten에 해당하는 번역어는 없고, 그냥 “어떻게 해야 하나요?”로 옮김으로써, ‘영혼’이 halten의 대상인 줄 아는 서정시 일인칭의 속절없는 태도만 부각시키고 있다.
김재혁은 이 시의 첫 구절에 “예술가적 사명과 현실적 사랑 사이에서 릴케가 겪은 극도의 긴장관계를 표현하고 있다”고 주석을 달았다. 그와 같은 전기적 사실에 대한 배경적 지식이 이 시 텍스트 자체의 이해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시 텍스트 자체는 “예술가적 사명”에 대한 언급도 없고, 그것이 왜 “현실적 사랑”과 긴장 관계에 있는지, 설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이 시는 서정시 일인칭의 진술을 통해서, 그리고 악기에 매여 있는 현의 비유를 통해서, 사랑의 운명적인 구속성과 그로부터의 해방 의지의 상반된 감정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이정순은 동국대 교수를 역임한 독문학 전문가이며, 릴케의 초기 산문 <신의 이야기>(1975)를 비롯하여 시 선집 <릴케 시집>(2001)과 <신시집>(2001), <두이노의 비가>(2006), 그리고 헤르만 헤세, 게오르크 트라클, 엘제 라스커쉴러의 서정시를 번역하여 출판했고, 특히 릴케 시에 관한 주제 비평적 논문을 다수 발표하여, 명실공히 릴케 전공자라 할 만하다. <사랑의 노래>는 <신시집>의 3번째 시로 실려 있다.
1 나의 영혼이 당신 영혼에 닿지 않으려면 2 나는 그것을 어떻게 간직하여야 합니까? 어떻게 나의 영혼을 3 당신을 넘어 다른 사물들에게로 들어올릴 수 있을까요? 4 아, 그것을 어두운 곳, 어느 잃어버린 것 곁에, 5 당신의 깊은 내면이 흔들릴 때도 덩달아 동요하지 않을 6 낯설고 고요한 장소에 간직하고 싶습니다. 7 하지만 우리, 당신과 나에 와 닿는 모든 것이 8 두 가닥의 현絃으로 한 가닥의 소리를 자아내는 9 활놀림運弓法처럼 우리를 합쳐 잡습니다. 10 어떤 악기 위에 우리는 당겨 매어져 있는 것입니까? 11 그리고 어느 제금가提琴家가 우리를 들고 있는 것입니까? 12 오, 감미로운 노래여.
이정순은 릴케의 <신시집> 1권을 완역하면서, 초기와 달라진 릴케의 시 창작상의 변화와 사물시, 특히 ‘예술사물’의 이상과 사물시의 관계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를 바탕으로, “<신시집>의 언어는 [...] 직정적 서정시가 아니”[12]기 때문에 그것을 읽을 때나 번역할 때 “그런 ‘사로잡힘’의 절제”[13]가 요구된다고 전제하고, 자신의 번역작업을 “정교한 ‘사물화 작업’에 동참시키”[14]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 번역도 다른 번역과 비슷한 문제점이 보인다. 우선 경어체를 씀으로써 원문의 친칭 사용과 다르다. 이것은 물론 거의 모든 ‘연애시’에서 사랑을 어떤 숭고한 것으로 여기고, 따라서 사랑은 사모하는 상대에게 ‘바치는 것’이라는 중세 기사도가 관행처럼 된 사정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간직하다’라는 번역어를 halten과 unterbringen에 동일하게 사용하는 것은 행위의 자세와 이행과정이라는 뉘앙스의 차이를 드러내지 못한다. “aus zwei Saiten eine Stimme”에 상응하는 “두 가닥의 현으로 한 가닥의 소리를”은 원문에 없는 한국어 단위 명칭 ‘가닥’을 첨부한 것은 번역이 목표어의 언어적 상황에 맞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명제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원문에서 단어를 강조하기 위해 사용된 이탤릭체는 사라졌지만 단순한 부정관사로 밋밋하게 처리될 뻔한 말이 단위 명칭에 의해 표현력을 얻게 되었다. 이 사실은 그다음 김재혁이 창의적으로 번역한 運弓法을 병기(並記)하면서도 “활놀림”이라는 한국어 표현을 앞세우는 데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strich’가 포함하고 있는 ‘streichen’의 뜻을 살린다면 ‘활긋기’라는 번역이 더 나을 수도 있다.) 그런데 Spieler를 “제금가提琴家”라는 한자어로 옮긴 것은 “활놀림”의 지향점과 일치하지 않는다.
3. 평가와 전망
‘시의 번역은 불가능하다.’ 이것은 등가성의 원칙을 운율에 적용할 때 더욱 자명하게 들린다. 독일의 시인들이 그리스어 시 형식을 빌릴 때 모음의 장단에 기초를 둔 그리스 시의 운율을 (불)규칙적인 강세위치의 구조로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은 잘 알려진 바다. 조어(祖語)가 같고 언어의 친족성이 뚜렷한 그리스어와 독일어 사이에 그처럼 극복할 수 없는 차이가 존재하는데, 하물며 문법구조가 완전히 다른 독일어로 된 시를 한국어로 옮기는 작업은 처음부터 무리다. 다만 ‘시’라는 장르의 기능이 일상어와는 다른 어떤 곳에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물론 원문 텍스트에 대한 언어적 문화적 차원의 깊고 정확한 이해와 더불어 목표어에 대한 올바르고 풍부한 경험이 대전제가 되어야 한다.
릴케의 <사랑의 노래>는 연애시가 분명하다. 서정시 일인칭 ‘나’가 있고, 그 상대방 ‘너’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나와 너의 대화는 아니다. 어쩌면 너는 영원히 들을 수 없는 나만의 넋두리에 그칠지 모른다. “두 가닥의 현에서 한 가닥의 소리를” 자아낸다는 진술에 너는 동의할 수 있을까? 만일 그렇다면 서로의 영혼이 닿지 않게 하고 싶다는 나의 마음을 너도 아는 것일까? 따로 떨어지고 싶다고 하면서도,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그 ‘한 가닥의 소리’는 또 왜 달콤하게 느껴지는가? 나는 또 왜 나의 영혼이 “어둠속에 잃어버려진 것들”을 향하게 하고 싶은가? 이런 복잡한 의문들을 이 텍스트는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원문 텍스트에서 릴케가 사용하고 있는 동사들 (halten, hinheben, unterbringen, zusammen nehmen, ziehen, haben, gespannt sein) 각각이 의도하는 본래의 뜻뿐만 아니라, 그 상호관계, 그리고 주제와 연결된 뉘앙스를 어떻게 포착하느냐에 따라 번역어가 달라지고 있다. 그리고 ‘나’와 ‘너’의 관계는 원문의 친칭에도 대체로 경어체로 번역되고 있다.
릴케 시 수용의 초기 단계에서, 독한사전도 없던 시절에, 독일문학 전공자도 아닌 윤태웅에 의해 번역된 <사랑의 노래>가 도달한 정확성은 놀라운 바가 있다. 앞으로도 이 시는 많은 번역자를 자극할 것이고, 그에 따라 미세한 차이를 보이는 새로운 번역이 나타날 것이다. 그것은 문학 텍스트의 원천적인 ‘빈 공간’의 여유가 허락하는 것이요, 수용자 내지 번역자의 언어적 문화적 조건의 변화에 따를 수밖에 없는 현상이다.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윤태웅(1942): 愛歌. 「朝光」 제4호, 150-151.
구기성(1960): 사랑의 노래, <릴케 詩集>, 131-132.
김주연(1973): 사랑의 노래, <검은 고양이>, 36.
손재준(1973): 사랑의 노래, <릴케 詩集>, 141.
손재준(2014): 사랑의 노래, <두이노의 비가>, 162.
김재혁(1973): 사랑의 노래, <이별의 꽃>, 43.
김재혁(2000): 사랑의 노래, <두이노의 비가 外>, 163.
이정순(2001): 사랑의 노래, <릴케 신시집>, 29.
바깥 링크
- ↑ 이충섭, 한국의 독어독문학 관계 번역문헌 정보 1906-1990, 한국문화사 1990, 801쪽.
- ↑ ‘사물시’에서 주체와 객체의 관계에 대해서는 릴케 연구가들에 따라 다른 견해를 보인다. 릴케의 사물시를 유럽의 상징주의 전통에서 파악하는 Brigitte L. Bradley는 릴케가 <신시집>에서 묘사하는 사물은, Lloyd James Austin의 “corrélatif objektif”라는 용어를 원용하여, “내면적 또는 정신적 사건의 객관적 상관물”이라고 했다. Brigitte L. Bradley, Rainer Maria Rilkes Der Neuen Gedichte anderer Teil. Entwicklungsstufe seiner Pariser Lyrik. Bern und München 1976, 8쪽 이하 참조.
- ↑ 릴케가 1914년에 쓴 <전회>(Wendung)라는 시는 일종의 서시(序詩)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지금까지 쓴 시를 ‘시각의 작품(Werk des Gesichts)’이라고 정의하고 앞으로는 ‘심장의 시(Herz-Werk)’를 써야겠다는 목표를 내세운다.
- ↑ 예컨대 石鄕編譯이라는 이름으로 1976년 文化公論社에서 발간한 <릴케 詩集>에 「戀歌」라는 제목으로 실린 릴케의 <사랑의 노래>는 1973년에 발행된 김주연의 번역을 대부분 그대로 옮긴 것처럼 보인다. 책 뒤의 저작권을 포함한 출판정보를 알리는 부분에 “編輯 校正” 담당자 3인의 이름이 적혀있지만, “石鄕”과 동일시할 수 있는 아무런 근거를 찾을 수 없다.
- ↑ 김효중, 위의 글, 19쪽.
- ↑ 이충섭, 위의 글, 801쪽, 또한 김효중, 위의 글 21쪽, 28쪽 참조.
- ↑ 특히 릴케의 시에는 그의 아내가 만든 릴케의 두상(頭像) 사진과 함께 간단한 소개의 글을 달아놓았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는 가로쓰기로 된 이 글은 불과 100년이 안 된 글이지만, 금석지감을 불러일으킨다: “릴케는 二十世紀가 낳은 獨逸의 詩聖이라고까지 부른다. 이 塑像은 그의 夫人 클라라·릴케女史의 作이나 後日에 이 詩聖의 像이 競賣에 붙게 되자 히트러-總統에게 最高價로 落札된 것을 보아도 獨逸이 얼마나 그를 사랑하는가를 알 수 있다.
- ↑ 띄어쓰기나 시행 구분은 잡지의 편집을 그대로 살렸다.
- ↑ 김효중, 위의 글, 20쪽.
- ↑ 같은 글, 40쪽. 김효중은 윤태웅이 번역한 릴케의 시 <애가>, <엄숙한 시간>, <소녀의 노래>를 각각 다른 번역본과 비교하면서 원문번역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검증하고 있으나,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선 이 세 작품의 발생사(<애가>:<신시집>1907, <엄숙한 시간>;<형상시집>1902/1906, <소녀의 노래>;<나의 축제를 위하여>1899)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그 시들이 놓인 위치를 전혀 고려하지 않아 엉뚱한 개념을 잘못 연결시키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릴케의 “세계내면공간”(Weltinnenraum)은 1914년 뮌헨에서 뜬 <거의 모든 사물이 느끼라는 신호를 보낸다>(Es sinkt zu Fühlung fast aus allen Dingen)라는 시에 비로소, 그리고 유일하게 나오는 시구이기 때문에 이 개념을 1898년에 쓴 초기시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김효중, 위의 글, 35쪽 참조)
- ↑ 같은 곳.
- ↑ 이정순, 릴케 신시집, 현암사 2001, 17쪽.
- ↑ 같은 곳.
- ↑ 같은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