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자 나탄 (Nathan der Weise)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Gotthold Ephraim Lessing, 1729-1781)의 희곡
작가 |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Lessing, Gotthold Ephrai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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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 발행 | 1779 |
장르 | 희곡 |
작품소개
1779년에 출간된 레싱의 드라마로 1783년 4월 14일 베를린의 되벨린쉐스 테아터에서 초연되었다. 십자군 시대 예루살렘에 사는 유대인 상인 나탄이 사업차 여행을 떠난 사이에 집에 불이 나 그의 양녀 레하가 죽을 뻔한 위기에 처했는데 정체불명의 십자군 기사가 목숨을 걸고 그녀를 구해 주고는 사라진다. 그는 포로로 끌려왔는데, 이슬람 황제인 살라딘 왕이 자기 동생과 닮았다는 이유로 목숨을 살려 준 기사단원이었다. 나탄은 아내와 일곱 아이가 기독교도들의 손에 몰살당했음에도 기독교도의 아이인 레하를 정성껏 기르고 있었다. 나중에 레하와 기사는 남매지간이며, 이 남매는 살라딘 왕의 조카임이 밝혀진다. 이 작품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어떤 종교가 진정한 종교인가 하는 살라딘 왕의 질문에 대해 나탄이 한 대답인 반지 우화이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세 형제는 아버지에게 유산으로 각각 행복의 반지를 물려받지만, 그중 하나만 진짜이고 나머지 두 개는 가짜이다. 세 형제는 모두 자신이 물려받은 반지가 진짜라고 다투다가 재판정에 가게 되는데, 재판관은 각자 자기 반지의 비밀스러운 힘이 드러나도록 경쟁하라고 하면서, “온화함과 진실한 믿음, 선행,/신에 대한 신실한 복종으로/보석의 힘이 드러나도록 도우라!”는 판결을 내린다. 유대인 양아버지 밑에서 자란 레하, 십자군 기사, 모슬렘인 살라딘 왕이 모두 가족이듯이 인류는 모두 한 가족이라는 메시지와, 계몽주의의 휴머니즘에 바탕을 둔 종교적 관용 정신이 잘 나타나 있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국내에서는 1973년에 박환덕에 의해 <현인 나탄>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번역되었다(문우사).
초판 정보
Lessing, Gotthold Ephraim(1779): Nathan der Weise. Ein dramatisches Gedicht, in fünf Aufzügen. Berlin: Christian Friedrich Voß und Sohn.
번역서지 목록
번호 | 개별작품제목 | 번역서명 | 총서명 | 원저자명 | 번역자명 | 발행연도 | 출판사 | 작품수록 페이지 | 저본 번역유형 | 작품 번역유형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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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인 나탄 | 현인 나탄 |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 | 박환덕 | 1973 | 문우사 | 편역 | 완역 | ||||
현자 나탄 | 현자 나탄 |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 | 강두식 | 1974 | 을유문화사 | 편역 | 완역 | ||||
현자 나탄 | 현자 나탄 |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 | 윤도중 | 1991 | 창작과비평사 | 편역 | 완역 | ||||
현자 나탄 | 현자 나탄 |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 | 윤도중 | 2019 | 지만지드라마 | 편역 | 완역 |
번역비평
1. 번역 현황 및 개관
<현자 나탄>은 독일 계몽주의의 대표적 작가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이 1779년에 발표한 드라마다. 이 작품은 계몽주의의 핵심 사상인 인류애와 관용, 이성적 사고를 주제로 하며, 특히 3막에 등장하는 반지 우화로 유명하다. 레싱의 이 마지막 작품 생성의 배경에는 레싱과 함부르크의 수석목사인 괴체(Johann Melchior Goeze) 간의 신학적 논쟁이 있다. 레싱은 친구 라이마루스(Hermann Samuel Reimarus)의 유고를 출판했는데, 이 글은 자연법칙과 이성에 기초한 신앙적 접근을 옹호한 내용이었다. 보수적인 신앙을 가진 괴체는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을 강력히 옹호하면서 두 사람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고, 그 결과 레싱은 일부 출판 금지 처분을 받았다. 이에 레싱은 자신의 본 영역인 문학으로 돌아와 이 희곡을 통해 이성, 종교적 관용 그리고 도덕적 가치에 대한 깊은 성찰을 촉구한다.
작품의 외적 형식은 고전주의 드라마의 구조를 따르며, 5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레싱은 이 작품에서 영국에서 유래한 5각 약강격 무운시행(Blankvers)을 사용한다. 이는 운율이 없는 자유로운 형식으로, 이를 통해 대화의 자연스러움과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대화를 잘 표현하였다. 레싱은 또한 이 드라마에 “5막의 극시”(dramatisches Gedicht)라는 부제를 붙였다. 이 작품은 비극적인 요소와 희극적인 요소를 모두 포함하고 있지만, 화해적 결말에도 불구하고 희극도 비극도 아닌 독특한 성격을 갖고 있어서 이와 같은 부제를 단 것으로 이해된다.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반지 우화는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서 차용해 변형한 것으로, 종교적 갈등을 해소하고 모든 종교가 내면적 도덕성과 진리를 공유할 수 있다는 계몽적 관용의 메시지를 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작품의 국내 소개 및 번역 현황을 보면, 1969년에 처음 반지 우화의 일부가 번역 소개된 이래 73년에 첫 완역본이 나왔고, 이후 2020년대까지 꾸준히 번역서가 출판되었다. 희곡이라는 장르를 고려했을 때 번역 건수가 상대적으로 많으며(15건), 편역과 발췌역이 다수 존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편역 또는 발췌역의 경우 “어린이 세계 고전 명작”이나 “논술 대비 세계명작문학” 총서 등에서 주로 반지 우화를 중심으로 번역된 것으로, “지혜로운 나탄”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것이 공통점이다. 이성, 관용의 정신이 이 우화를 통해 가장 분명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이런 번역/편역이 진행된 것으로 이해된다. 완역본은 총 7종이다. 박환덕과 강두식, 윤도중, 김은애 등 4명의 역자에 의해 이루어졌다. 박환덕, 강두식, 윤도중의 번역은 각기 다른 출판사를 통해 두 번씩 출판되었다. 2008년에 출판된 김은애의 번역은 유감스럽게도, 윤도중의 1991년 번역을 그대로 가져와 “현자 나탄”에서 “현인 나탄”으로 제목만 바꾼 것으로 드러났다.
이하에서는 박환덕의 국내 초역, 강두식과 윤도중의 번역 그리고 윤도중의 개정판에 대해 개별적으로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2. 개별 번역 비평
1973년에 문우사 “세계고전문학대전집” 3권으로 나온 박환덕 역의 <賢人 나탄>은 국내 첫 완역이라는 큰 의미를 지닌다. 역자는 “레싱의 시민극”이라는 제목의 해설을 통해 레싱이 독일 시민비극의 창시자라는 점을 강조하고, 독일 연극사에서 차지하는 중요한 위치에 대해 자세한 해설을 한다. 당시로서는 국내 독자들에게 계몽주의자 레싱을 소개하는 좋은 전문적인 정보라 생각된다. 또한 해설과 작품 곳곳에서 (원본에는 없는) 레싱과 관련한 사진들을 다수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역주가 매우 많은 것도 이 책의 특징으로 2막 1장의 경우 역주가 12개나 된다. 박환덕은 역주에서 작품의 배경을 이루는 십자군 전쟁 당시 역사적 사실이나 등장인물의 심리 상태, 그들 사이에 얽힌 비밀에 관해 설명하는데, 친절하게 정보를 전달하는 데 큰 의미를 둔 것 같다. 예전 번역서에서 종종 발견되는 오타나 맞춤법 오류가 거의 없는 등 번역과 출판에 신경을 많이 쓴 좋은 번역서라는 점이 이 책의 장점이라 하겠다.
박환덕 번역의 특징은 고전적, 문어체적인 면모가 강하고, 직역을 선호한다는 점이다. 작품의 첫머리에서 사업차 여행을 다녀온 유대인 상인 나탄에게 가정부 다야가 말하는 부분을 보자.
Wer zweifelt, Nathan, daß Ihr nicht Die Ehrlichkeit, die Großmut selber seid?(209)[1]
박환덕: 주인 어른, 누가 의심하겠어요, 나으리가 정직과 관대의 권화(勸化)가 아니시라고요?(328) 강두식: 누가 의심하겠어요, 나탄 나으리! 나으리가 정직하고 관대하시지 않다고 말이에요.(18)
박환덕은 위의 “정직과 관대의 권화”라는 표현에서 보듯 고전적이고 문어체적인 어휘를 자주 사용한다. 이는 강두식 역의 “정직하고 관대하시지 않다고”와 비교된다. 강두식은 die Ehrlichkeit와 die Großmut를 풀어서 형용사로 번역했고, “말이에요” 같은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어조로 번역했다. 반면에 박환덕은 원문의 명사 그대로 번역하면서 “아니시라고요”와 같이 격식을 갖춘 고풍스러운 스타일의 번역을 추구한다. 원문이 18세기에 쓰인 ‘고전문학’이라는 점(앞에서 말했듯 이 책은 “세계고전문학대전집”의 한 권으로 나왔음)을 감안할 때 박환덕 번역의 고전적인 문구와 어투는 원문의 분위기와 톤에 상응한다고 할 수 있겠다.
박환덕 번역의 이런 특징은 1막 3장에서 나탄과 그의 오랜 장기 친구인 탁발승(Derwisch) 사이의 대화에서도 잘 드러난다.
NATHAN. Was bringt dir deine Stelle? DERWISCH. Mir? Nicht viel. Doch Euch, Euch kann sie trefflich wuchern. Denn ist es Ebb’ im Schatz, ― wie öfters ist, ― So zieht Ihr Eure Schleusen auf: schießt vor, Und nehmt an Zinsen, was Euch nur gefällt. NATHAN. Auch Zins von Zins der Zinsen? DERWISCH. Freilich! NATHAN. Bis Mein Kapital zu lauter Zinsen wird. DERWISCH. Das lockt Euch nicht? ― So schreibet unsrer Freundschaft Nur gleich den Scheidebrief!(221)
나탄 그 지위는 자네에게 어떤 이익이 있는가? 탁발승 내게? 별 것은 없어. 그러나 자네에게라면 많은 이익이 있을지도 모르지. 왜냐 하면 자주 있는 일인데, 재산이 썰물이 되었을 때에는 자네는 자신의 둑을 끊으면 돼. 그렇게 해서 입체(立替)를 해 주고서 원하는 만큼 이식(利殖)을 취할 수 있지 않나. 나탄 이식(利殖)의 이식에서 이식을 말이지? 탁발승 물론이지! 나탄 내 자본은 이식(利殖)만으로 되어 버릴 것이다. 탁발승 마음이 내키지 않나? 그렇다면 당장에 우리들의 우정에 절연장(絶緣狀)을 쓰면 되네.(박환덕, 338)
입체(立替), 이식(利殖), 절연장(絶緣狀) 같은 한자어들과 친구를 “자네”라고 부르는 점, “있는가”, “것이다” 같은 어미들은 박환덕 번역의 고풍스럽고 문어체적인 면모를 잘 보여준다.
그런데 인물들 사이의 어투에서는 원문의 고풍스러운 측면이 종종 덜 반영되기도 한다. 위에서 보듯 나탄은 탁발승에게 du를 사용하고, 탁발승은 나탄에게 정중한 2인칭 대명사인 Ihr를 사용한다. Ihr는 18세기 이전에 사용되던 2인칭 존칭으로 이 작품이 발표된 18세기에는 Sie에 의해 대체되었다. <현자 나탄>보다 10여 년 먼저 나온 <민나 폰 바른헬름>에서 레싱은 7년 전쟁(1756-1763)을 시대적 배경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면서 18세기에 사용되던 친칭 du와 존칭 Sie를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현자 나탄>의 경우 시대적 배경이 12세기 십자군 전쟁 시기이기에 이를 고려하여 예전에 존대법으로 사용되던 2인칭 대명사 Ihr를 사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번역에서도 이런 점이 고려되어야 할 텐데, 박환덕은 나탄과 탁발승의 대화에서 두 사람이 서로 말을 놓는 것으로 번역했다. 위에서 다야가 나탄에게 Ihr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나으리”라고 하면서 존댓말로 번역했던 것과 비교된다. 나탄은 다야에게 du를 사용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하대의 어투로 번역했다. 불이 난 집에서 나탄의 딸 레하를 구한 젊은 신전기사가 처음에는 나탄에게 반말을 하다가 나중에는 존댓말을 쓰는데, 두 사람이 서로 Ihr로 호칭하는 점, 두 사람의 나이 차를 생각할 때 좀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준다.
강두식 역의 <현자 나탄>은 박환덕의 번역보다 1년 늦은 1974년 을유문화사의 세계문학전집 87권 “독일고전희곡선”을 통해 괴테, 쉴러, 프리드리히 헵벨의 작품과 함께 출간되었다. 이 책에는 레싱과 이 작품에 대해 길지 않은 해설이 실려 있으며, 박환덕의 역서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역주가 제법 많이 들어 있다. 강두식 역시 역주를 통해 독자들에게 작품 이해에 도움이 되는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강두식 번역의 특징은 앞에 박환덕의 번역을 얘기할 때 언급한 것처럼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어조와 현대적인 문체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여행에서 돌아온 나탄은 다야에게서 레하가 죽다 살아난 이후 정신 상태가 안정적이지 않다는 말을 듣는다. 그녀는 목숨을 걸고 자신을 구해준 신전기사를 천사라고 생각하며 숭배하는데, 그가 감사의 말을 전할 기회도 주지 않는 등 자신을 일방적으로 거부하자 감정적 혼란을 겪는다. 딸에 대해 잘 아는 나탄은 그녀의 마음속에서 이성(머리)과 감정(마음)이 충돌하고, 이 싸움에 환상이 끼어들면서 이성과 감정이 서로 역할을 바꾸기도 하는 것 같다며 이렇게 말한다.
- Schlimmer Tausch! - Das letztere, verkenn’ ich Recha nicht, Ist Rechas Fall: sie schwärmt.(211)
박환덕: 나쁜 교환(交換)이지. 내가 레햐를 잘못 보지 않았다면 그 아이의 경우는 후자일 것이다. 그 아이는 열중하고 있구나.(330) 강두식: 좋지 않은 바꿈질이지. 내가 레카를 잘못 보지 않았다면, 그 애의 경우는 후자일 것이다. 그 애는 지금 그 사람한테 열을 올리고 있다.(20)
여기서도 박환덕과 강두식 번역의 차이가 잘 드러난다. 박환덕은 “schlimmer Tausch”를 “나쁜 교환(交換)”으로 번역했고, 강두식은 “좋지 않은 바꿈질”로 번역했다. 그리고 “sie schwärmt.”에 대한 번역에서도 박환덕은 “그 아이는 열중하고 있구나”라고 직역한 반면, 강두식은 “그 애는 지금 그 사람한테 열을 올리고 있다”와 같이 약간의 의역을 곁들여 일상적이며 구어체적인 번역을 보여준다. 강두식 번역의 이런 문체적 특징은 종종 우리말식 표현으로도 나타난다. “Mach deine Rechnung nur nicht ohne Den Wirt.”(235)를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지는 말아라.”(39)라고 우리말 속담으로 의역했다(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주인 없이 계산하지 마라.”인데, 비유적으로는 “다른 사람을 배제하고 독립적으로 일을 처리하지 마라”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그리고 “조상타령”(77)이나 “옹고집통이”(106) 같은 표현도 이런 예라 하겠다. 강두식의 번역에서는 느낌표가 매우 자주 발견된다. 박환덕의 경우 마침표로 처리한 문장들을 강두식은 느낌표로 마무리하여 인물들의 감정을 고스란히 전하는데, 이는 원문의 영탄조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예루살렘 대주교의 첩자 노릇을 하라고 부탁하는 수도사에게 젊은 신전기사는 이렇게 말한다.
Natur, so leugst du nicht! So widerspricht Sich Gott in seinen Werken nicht! ― Geht Bruder! ― Erregt mir meine Galle nicht! ― Geht! geht!(231)
박환덕: 자연은 그와 같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가 창조하신 것 속에서 그와 같은 모순을 범하시지는 않는다. 이제 가 주십시오. 나를 화나게 하지 말아 주어요. 자, 자, 가 주세요!(346) 강두식: 자연, 그것은 거짓이 없읍니다! 하나님의 창조작업에는 모순이 있을 수 없읍니다! 자, 가십쇼, 수도사님! 제 비위를 건드리지 말아주십쇼! 자, 어서 가세요!(35-36)
신전기사는 포로가 된 자신을 자기 동생과 닮았다는 이유로 살려준 술탄 살라딘 왕을 배신하는 것은 자연법칙과 신의 뜻을 생각할 때 맞지 않고, 자신은 그런 짓을 할 수 없으니 화나게 하지 말고 그만 가라고 흥분하여 말한다. 박환덕 번역에서는 마지막에 한 번만 느낌표가 나오고, “가 주십시오”, “가 주세요” 같은 공손한 표현을 통해 신전기사의 화가 난 감정이 비교적 부드러운 어조로 전달된다. 반면에 강두식의 번역에서는 원문과 동일하게 느낌표를 자주 사용하는바, 이를 통해 신전기사의 감정이 강렬하고 직설적으로 전해지면서 그의 화가 난 상태가 더 분명하게 전달된다. 강두식의 번역에서는 인물들 간의 호칭이나 제삼자에 대한 호칭에서 종종 부적절한 번역이 발견되기도 한다. 살라딘 왕의 재정을 담당하는 탁발승이 살라딘 왕을 “그자”, “어리석은 놈”(29)이라고 말하는 것이나 (탁발승은 살라딘 왕이 어려운 사람들을 돕느라 재정 상태가 좋지 않은 선한 사람이라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신전기사가 나탄을 “유대인놈”(51)이라고 칭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원문에서는 수도사가 신전기사를 Ihr라고 정중한 2인칭 대명사로 칭하는데, 이것을 계속해서 “손님”이라고 번역하여 원문의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기도 한다. 레하와 다야 사이에서도 서로 du를 사용하는데, 레하가 다야에게 “너”라고 하면서 “-요”라는 존칭 어미를 사용하기도 하여 대화가 부자연스럽게 다가오기도 한다.
박환덕과 강두식의 번역본은 “세계고전문학대전집”이나 “독일고전희곡선” 같은 총서에서 다른 작가들의 작품과 함께 출간되었다면, 윤도중의 번역은 레싱의 시민비극인 <에밀리아 갈로티>와 함께 “레씽 희곡선”을 통해 출판되었다. 1991년 창작과비평사에서 나온 윤도중의 <현자 나탄>은 특히 레싱 전공자에 의한 번역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윤도중은 전공자로서 “레씽의 생애와 작품”이라는 제목의 해설에서 작가의 생애와 희곡론, 그리고 두 작품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그는 이 작품이 “비극과 같은 진지한 내용을 취급하고 있으나 희극과 같은 좋은 결말”을 갖는다고 평가하며, 당시에는 “비극과 희극의 중간에 위치하는 작품을 지칭하는 개념”이 없었기에 레싱은 이 작품에 “극시(劇詩)란 묘한 부제를 붙였”고, 이는 이 작품이 “운문(韻文)으로 되어 있음을 가리키기도” 한다며, 작가는 “강음이 5개 있는 오보격(五步格)의 약강격(弱强格) 시구를 사용”(308)했다고 설명한다. 이 희곡이 운문으로 쓰였다는 사실을 언급한 것은 윤도중이 처음이다. 그는 또 “역자의 능력이 부족하여 원어의 운율을 살리지 못하고 산문같이 옮긴 점에 유감을 표하며 독자들의 양해를 구하는 바이다”(308)라고 역자의 변을 밝힌다. 이런 점에서 윤도중의 역자로서의 진지함과 진솔함을 엿볼 수 있었다.
윤도중 번역본의 특징은 직역을 추구하면서도 원문의 의미가 잘 전달된다는 점이다.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슬람 황제 살라딘은 부유한 유대인 나탄에게 기독교와 유대교, 이슬람교 중 어느 종교가 참된 종교인지 물어 답변하게 하고, 그 과정에서 나탄에게서 돈을 빌리려 한다. 이것은 동생 시타의 조언에 따른 것인데, 시타는 나탄이 지혜로운 사람이니 그가 어떻게 답변하는지 들어보자며 이렇게 말한다.
Das Vergnügen Zu hören, wie ein solcher Mann sich ausredet; Mit welcher dreisten Stärk’ entweder, er Die Stricke kurz zerreißet; oder auch Mit welcher schlauen Vorsicht er die Netze Vorbei sich windet: dies Vergnügen hast Du obendrein.(270-271)
그런 사람이 어떤 교묘한 언변으로 빠져나가는지, 어떤 대담한 힘으로 올가미를 간단히 절단하든가 아니면 어떤 교묘한 조심성으로 그물을 피해가는가를 듣는 기쁨, 그런 즐거움을 덤으로 맛보실 거예요.(윤도중, 85)
윤도중은 “듣는 기쁨”을 중심으로 원문의 구조를 충실히 재현하며 번역했는데, “어떤 대담한 힘으로”(mit welcher dreisten Stärk’), “어떤 교묘한 조심성으로”(mit welcher schlauen Vorsicht) 같은 직역식 번역이 특히 그러하다. 다만 sich ausreden을 약간의 의역을 가미해 “어떤 교묘한 언변으로”로 옮겨 “어떤”이 3번 중복해 나타나게 함으로써 운율과 읽는 재미가 더해졌다.
같은 장면에서 살라딘은 돈을 조달하기 위해 옹졸한 흉계를 꾸미는 자신을 비판하면서 평소에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돈을 “der Kleinigkeiten kleinste”(270)라고 말한다. 박환덕은 이를 “천한 것 중에서도 가장 천한 것”(380)으로, 강두식은 “천한 물건 중에서도 가장 천한 것”(65)으로, 윤도중은 “하찮은 것 가운데 가장 하찮은 것”(85)으로 번역했다. 박환덕과 강두식은 “Kleinigkeiten”을 “천한 것” 또는 “천한 물건”으로 번역했는데, 이는 원문보다 더 부정적인 의미를 강조하고 있어 약간 과장된 느낌을 준다. 윤도중의 “하찮은 것”이라는 번역은 ‘작고 중요하지 않은’이라는 원문의 부정적인 뉘앙스를 가장 잘 전달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레하는 목숨을 걸고 자신을 구해준 신전기사를 천사라고 생각하면서, 그가 며칠 보이지 않자 어쩌면 죽었거나 병에 걸렸을 거라고 몽상하며 그를 돕기 위한 어떤 구체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데, 이런 레하에게 나탄이 하는 다음의 말을 살펴보자.
Begreifst du aber, Wie viel andächtig schwärmen leichter, als Gut handeln ist?(218)
박환덕: 그러나 ― 깊은 믿음 속에 꿈꾸고 있는 일이 착한 일을 하는 것보다 얼마나 쉬운지 알았지?(336) 강두식: 하지만 네가 알아두어야 할 것은 착한 행동을 하는 것보다 얌전하게 꿈을 꾼다는 것이 얼마나 쉬운 일인가 하는 점이다.(26) 윤도중: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보다 종교적 몽상에 빠지는 편이 얼마나 쉬운 일인지 이제야 이해하겠니?(21)
원문은 직접적인 질문 형식을 띠고 있고 “andächtig schwärmen”과 “gut handeln”이 이탤릭체로 강조되면서 비교되고 있다. 강두식은 의문문 형식을 살리지 않고 평서문으로 번역하면서 설명으로 형태를 바꾸었고, 박환덕은 전반적으로 문장 구조를 잘 유지했으나 “andächtig schwärmen”을 “깊은 믿음 속에 꿈꾸고 있는 일”이라고 역자의 해석을 곁들여 번역했다. 반면에 윤도중은 질문 형식을 잘 유지하면서 “이제야 이해하겠니?”라고 아빠가 딸에게 질문하는 친근한 형태로 번역했고, 비교되는 두 부분을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과 “종교적 몽상에 빠지는 편”이라는 번역을 통해 원문의 비교 의미를 명확하게 전달한다. 박환덕과 강두식의 번역본에서는 종종 인물들 사이의 어투나 호칭 면에서 어색한 측면이 발견되었는데, 윤도중의 번역본은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탁발승은 나탄에게 존댓말을 하면서 나탄을 “영감님”이라고 호칭하고, 나탄은 오랜 친구인 탁발승을 “자네”라고 칭하면서 하대를 하지만 어느 정도 예의를 갖추며 친근하게 대한다. “정말이군, 자네 말이 옳으이, 자넬 껴안아주고 싶네, 이 사람, 자네 아직 내 친구겠지?”(23) 윤도중의 번역본에서는 “-다네”나 “-했소”와 같은 고풍스러운 어미가 자주 사용되는데, 이 또한 작품의 시대적 배경인 12세기의 분위기에 걸맞은 것으로 판단된다. 레하와 다야는 서로 “-요”체를 사용하는데, 레하는 다야를 “아줌마”(76)라고 부르고, 다야는 레하를 “아가씨”(76)라고 불러 대화가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2019년 지만지드라마에서 단행본으로 나온 윤도중의 번역본은 역자가 일러두기를 통해 원본의 초판 정보와 번역에 사용한 저본 정보를 밝힌 점에서 번역과 관련한 시대적 변화 또는 발전적 측면을 엿볼 수 있는 번역서라 하겠다. 또한 역자는 자신이 “기존에 출간한 번역본을 수정해서 사용했고 은사 강두식 교수의 번역(《독일고전희곡선》 세계문학전집 87, 을유문화사)도 참고했음을 밝힌다.”(248쪽) 이로써 윤도중은 이 책이 기존 번역본의 수정본임을 분명히 하고 참고한 번역본의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정직한 번역가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는 이전 번역본에서와 같이 운문을 산문으로 번역한 점에 대해 양해를 구하면서, “원문에 단순히 운율을 맞추기 위해 사람의 이름이나 단어 등이 반복해서 나타나는 대목이 가끔 보이는데, 산문으로 옮기는 이상 불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하나만 남기고 생략했음을 밝힌다.”(247-248)
윤도중의 수정본은 현대 독자에게 친숙한 어휘와 어조로 그리고 구어체 쪽으로 전환했다는 점에서 기존 번역과 차이점을 보인다. 앞에서 참된 종교에 관한 질문에 나탄이 어떻게 대답하는지 들어보자며 시타가 살라딘에게 하는 말을 살펴보자.
윤도중(1991): 그런 사람이 어떤 교묘한 언변으로 빠져나가는지, 어떤 대담한 힘으로 올가미를 간단히 절단하든가 아니면 어떤 교묘한 조심성으로 그물을 피해가는가를 듣는 기쁨, 그런 즐거움을 덤으로 맛보실 거예요.(85) 윤도중(2019): 그런 사람이 어떻게 핑계를 댈지, 대담하게 올가미를 싹둑 잘라 버릴지, 아니면 교활하고 조심스럽게 올가미를 피해 갈지, 그런 걸 보고 듣는 즐거움을 덤으로 맛보실 거예요.(114)
기존 번역에서는 “어떤”이 세 번 반복되고 “교묘한 언변”, “대담한 힘”, “교묘한 조심성” 같은 어휘들이 문어체적이고 고풍스러운 뉘앙스를 풍긴다면, 수정본에서는 “어떻게 핑계를 댈지”, “대담하게 올가미를 싹둑 잘라 버릴지”, “올가미를 피해 갈지”와 같이 현대적이고 일상적이며 구어적인 표현으로 전환되었다. 그런데 “das Vergnügen zu hören”을 “듣는 기쁨”에서 “보고 듣는 즐거움”으로 바꾸었는데, 이것은 의역하면서 원문의 의미를 확장한 것으로 원문의 충실한 재현 면에서 볼 때 아쉬움이 있다.
나탄은 기독교도들에 의해 하루아침에 아내와 아들 일곱을 잃었는데, 그럼에도 기독교도의 아이인 레하를 양녀로 삼아 정성껏 길렀다. 그는 종교와 인종을 넘어선 사랑과 관용의 정신을 보여준다. 레하를 “나의 레하”(meine Recha)라고 말하는 나탄에게 다야가 소유한 것은 무엇이든 당당히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냐며 비난 섞인 어조로 말하자 나탄은 이렇게 대답한다.
Alles, was Ich sonst besitze, hat Natur und Glück Mir zugeteilt. Dies Eigentum allein Dank’ ich der Tugend.(208)
윤도중(1991): 내가 그밖에 가진 것은 모두 자연과 행운이 내게 주었지. 그러나 이 소유물만은 미덕으로 얻은 것이네.(8) 윤도중(2019): 그 애 말고 내가 가진 건 모두 자연과 행운이 베풀어 준 거야. 그 애만은 덕으로 얻었지.(8)
기존 번역은 “Alles, was Ich sonst besitze”와 “Eigentum”을 “내가 그밖에 가진 것”과 “소유물”로 직역하며 원문의 의미를 전달했다면, 수정본은 “그 애 말고 내가 가진 건”, “그 애”로 의역하면서 풀어서 구어적이고 친근한 표현으로 번역했다. 수정본은 약간의 의역을 곁들여 일상적이며 구어체적인 번역으로 현대 독자가 읽기 편하게 다듬어진 모습을 보여준다.
이 수정본에서 의역의 경향과 구어체적 어조가 나타나는 점은 강두식의 번역본을 참조한 예라 하겠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강두식은 “Mach deine Rechnung nur nicht ohne Den Wirt.”(235)를 우리말 속담으로 풀어서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지는 말아라.”(39)라고 번역했다. 윤도중은 91년의 번역에서는 이것을 “장기는 너 혼자 두는 게 아니다.”(42)라고 번역했다가 새 번역에서는 “김칫국부터 마시지는 말아라.”(54)라고 바꾸었다.
하지만 기존 번역의 참조가 더 나은 쪽으로의 전환만 촉발하지는 않은 것 같다. 앞에서 말했던 돈과 관련한 표현, 즉 “der Kleinigkeiten kleinste”(270)를 윤도중은 “하찮은 것 가운데 가장 하찮은 것”으로 직역하면서 ‘작고 중요하지 않은’이라는 의미의 klein을 원문의 의미에 가장 충실하게 전달했는데, 새 번역에서는 “천한 물건 가운데 가장 천한 걸”(113)로 수정했다. 이는 강두식의 번역 “천한 물건 중에서도 가장 천한 것”(65)을 참조한 결과로, 원문에 없는 “물건”이라는 단어가 추가되고 klein을 “천한”으로 의미를 축소한 결과를 낳았다.
3. 평가와 전망
레싱의 <현자 나탄>에 대한 네 편의 완역본을 살펴본 결과 크게 보아 문어체적이고 직역의 방식을 추구하는 경우(박환덕의 번역본과 윤도중의 초역)와 구어체적이고 의역의 방식을 추구하는 경우(강두식의 번역본과 윤도중의 수정본)로 나누어짐을 알 수 있었다. 전자의 경우 고풍스럽고 딱딱한 느낌을 주고, 후자의 경우 현대적이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었다. 이 작품이 희곡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의역과 구어체의 번역이 더 적합한 방식이라 생각되는데, 이러한 방식은 원문에의 충실성에서는 다소 아쉬움을 낳기도 했다. 또한 이 작품이 18세기에 발표된 희곡으로 12세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한다는 점, 왕과 대주교, 신전기사와 수도사, 상인과 보모, 하인 등 다양한 신분이 등장하는 신분제 사회에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는 점도 번역 과정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요소임도 알 수 있었다. 오늘날 번역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부각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번역가들은 자신만의 번역 방식과 전략을 세워 번역에 임해야 할 필요가 있다. 향후 이 작품의 번역에서도 기존 번역을 넘어서는 새로운 번역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
4. 개별 비평된 번역 목록
박환덕(1973): 현인 나탄. 문우사.
강두식(1974): 현자 나탄. 을유문화사.
윤도중(1991): 현자 나탄. 창작과비평사.
윤도중(2019): 현자 나탄. 지만지드라마.
바깥 링크
- ↑ Lessing, Gotthold Ehpraim(1996): Nathan der Weise. In: Ders.: Werke. Zweiter Band Trauerspiele·Nathan der Weise·Dramatische Fragmente. Darmstadt: Wissenschaftliche Buchgesellschaft, 205-347. 이하에서는 위에서처럼 본문에 쪽수만 표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