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성 없는 남자 (Der Mann ohne Eigenschaften)"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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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한 이 카카니엔에 대해 희한한 말들이 또 얼마나 많은가! 예를 들면 그 나라는 <u>황제-왕국k.k</u>의 나라 그리고 <u>황제적이고 왕국적k.u.k.</u>이었다. 그 약자 <u>카카k.k.</u> 또는 <u>카운트카k.u.k</u>의 하나를 그곳에서는 일이 있을 때마다 누구나 달고 다녔다.(고원, 42)<ref>Überhaupt, wie vieles Merkwürdige ließe sich über dieses versunkene Kakanien sagen! Es war zum Beispiel kaiserlich-königlich und war kaiserlich und königlich; eines der beiden Zeichen k.k. oder k.u.k. trug dort jede Sache und Person.(33)</ref> | 멸망한 이 카카니엔에 대해 희한한 말들이 또 얼마나 많은가! 예를 들면 그 나라는 <u>황제-왕국k.k</u>의 나라 그리고 <u>황제적이고 왕국적k.u.k.</u>이었다. 그 약자 <u>카카k.k.</u> 또는 <u>카운트카k.u.k</u>의 하나를 그곳에서는 일이 있을 때마다 누구나 달고 다녔다.(고원, 42)<ref>Überhaupt, wie vieles Merkwürdige ließe sich über dieses versunkene Kakanien sagen! Es war zum Beispiel kaiserlich-königlich und war kaiserlich und königlich; eines der beiden Zeichen k.k. oder k.u.k. trug dort jede Sache und Person.(33)</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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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역자는 “kaiserlich-königlich”를 “황제-왕국k.k”으로, “kaiserlich und königlich”를 “황제적이고 왕국적k.u.k.”으로 옮겨서 원문에 없는 k.k.와 k.u.k를 임의적으로 삽입한다. 아마도 이어지는 문장에 있는 약자인 “k.k. oder k.u.k.”를 “카카k.k. 또는 카운트카k.u.k”로 용이하게 음차 번역을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번역하면 알파벳 약자의 내용이 드러나지 않는다. 독일어를 모르는 독자라면 왜 “카카k.k”이고 “카운트카k.u.k”인지 모를 것이고, 알파벳을 King 혹은 Kingdom의 약자로 생각하거나 Kaiser(Emperor)를 떠올릴 것이다. 독일어를 배운 독자라면 “카”가 독일어 알파벳의 음가임을 알겠지만 역사적 배경을 모르면 ‘카카’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1867-1918)을 아이러니하게 지칭하는 약자임을 모를 것이다. 이처럼 역자가 언어적, 역사적 사실을 주석으로 설명하거나 보충하지 않기 때문에 독자층을 독일어와 오스트리아의 역사를 알고 있는 이들로 국한하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 여기서 역자는 “kaiserlich-königlich”를 “황제-왕국k.k”으로, “kaiserlich und königlich”를 “황제적이고 왕국적k.u.k.”으로 옮겨서 원문에 없는 k.k.와 k.u.k를 임의적으로 삽입한다. 아마도 이어지는 문장에 있는 약자인 “k.k. oder k.u.k.”를 “카카k.k. 또는 카운트카k.u.k”로 용이하게 음차 번역을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번역하면 알파벳 약자의 내용이 드러나지 않는다. 독일어를 모르는 독자라면 왜 “카카k.k”이고 “카운트카k.u.k”인지 모를 것이고, 알파벳을 King 혹은 Kingdom의 약자로 생각하거나 Kaiser(Emperor)를 떠올릴 것이다. 독일어를 배운 독자라면 “카”가 독일어 알파벳의 음가임을 알겠지만 역사적 배경을 모르면 ‘카카’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1867-1918)을 아이러니하게 지칭하는 약자임을 모를 것이다. 이처럼 역자가 언어적, 역사적 사실을 주석으로 설명하거나 보충하지 않기 때문에 독자층을 독일어와 오스트리아의 역사를 알고 있는 이들로 국한하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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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를 염두에 두고 책을 만들었다는 독자 친화적인 방향성은 번역의 전략을 결정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고원이 “도시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특유의 걸음걸이가 있는 법이다”라고 번역한 문장을 안병률은 “도시란, 사람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걷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안병률 1권, 12)라고 설명하는 식으로 옮겼다. 이 문장은 고원의 번역에 비해서 훨씬 읽기가 수월하다. 그런데 ‘도시의 걸음걸이’라는 은유적 표현이 갖는 말의 맛이 없어지는 아쉬움이 생긴다. 물론 원작의 어떤 부분들은 고도로 농축된 어휘, 특이한 어휘조합, 복합적인 문장 등이 있어서 힘들여 번역해도 이해하기 어렵고, 이런 까닭에 독자를 위해서 가독성을 높이는 번역이 불가피해 보이기도 한다. 일례로 차량과 보행자들로 붐비는 도로의 역동적 상태를 묘사하는 부분을 보자. | 독자를 염두에 두고 책을 만들었다는 독자 친화적인 방향성은 번역의 전략을 결정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고원이 “도시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특유의 걸음걸이가 있는 법이다”라고 번역한 문장을 안병률은 “도시란, 사람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걷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안병률 1권, 12)라고 설명하는 식으로 옮겼다. 이 문장은 고원의 번역에 비해서 훨씬 읽기가 수월하다. 그런데 ‘도시의 걸음걸이’라는 은유적 표현이 갖는 말의 맛이 없어지는 아쉬움이 생긴다. 물론 원작의 어떤 부분들은 고도로 농축된 어휘, 특이한 어휘조합, 복합적인 문장 등이 있어서 힘들여 번역해도 이해하기 어렵고, 이런 까닭에 독자를 위해서 가독성을 높이는 번역이 불가피해 보이기도 한다. 일례로 차량과 보행자들로 붐비는 도로의 역동적 상태를 묘사하는 부분을 보자. | ||
| − | Autos schossen aus schmalen, tiefen Straßen in die Seichtigkeit heller Plätze. Fußgängerdunkelheit bildete wolkige Schnüre. Wo kräftigere Striche der Geschwindigkeit quer durch ihre lockere Eile fuhren, verdickten sie sich, rieselten nachher rascher und hatten nach wenigen Schwingungen wieder ihren gleichmäßigen Puls.(9) | + | Autos schossen aus schmalen, tiefen Straßen in die Seichtigkeit heller Plätze. <u>Fußgängerdunkelheit</u> bildete <u>wolkige Schnüre</u>. Wo <u>kräftigere Striche der Geschwindigkeit</u> quer durch ihre <u>lockere Eile</u> fuhren, verdickten sie sich, rieselten nachher rascher und hatten nach wenigen Schwingungen wieder ihren gleichmäßigen Puls.(9) |
Fußgängerdunkelheit, wolkige Schnüre. kräftigere Striche der Geschwindigkeit, lockere Eile. 이런 표현에 부딪히는 역자의 난감함을 상상해보라. 여기서 서술자는 광장의 도로에서 차량과 보행자들이 뒤섞였다가 흩어지는 모습을 속도의 차이와 밀도의 변화를 써서 추상적인 이미지로 만든다. 원문에 가깝게 번역한 신지영의 번역은 다음과 같다. | Fußgängerdunkelheit, wolkige Schnüre. kräftigere Striche der Geschwindigkeit, lockere Eile. 이런 표현에 부딪히는 역자의 난감함을 상상해보라. 여기서 서술자는 광장의 도로에서 차량과 보행자들이 뒤섞였다가 흩어지는 모습을 속도의 차이와 밀도의 변화를 써서 추상적인 이미지로 만든다. 원문에 가깝게 번역한 신지영의 번역은 다음과 같다. | ||
2025년 5월 7일 (수) 13:37 판
틀:AU000069의 소설
| 작가 | 로베르트 무질(Robert Musil) |
|---|---|
| 초판 발행 | 1957 |
| 장르 | 소설 |
작품소개
로베르트 무질의 장편소설이며 1930년에 1권이 출간되었고 1932년에 2권이 출간되었다. 1권은 1부 1-19장과 2부 20-123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2권은 3부로 1-38장이다. 각 부와 매 장마다 소제목이 있어서 일종의 안내자 역할을 한다. 무질은 1913년 8월부터 1914년 7월, 1차 세계대전 발발까지 일 년을 소설의 시간적 배경으로 구상했으며, 공간적 배경은 "카카니엔"으로 불리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의 수도인 빈이다. 1942년 작가의 사망으로 소설은 미완성으로 남았고, 작가 생전에 출판된 판본에서 이야기되는 시간은 대략 1914년 초반 정도까지이다. 전체적으로 전지적 시점에서 서술되는데 철학적인 면모가 두드러지는 ‘에세이’적인 장에서는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변환되며, 많은 경우 서술자의 시점이 주인공 울리히의 시점과 같다. 소설이 상당 부분 울리히를 비롯해서 등장인물의 의식적인 생각에 집중하면서 그것을 드러내는 대화로 이루어진 사유 중심의 소설이기 때문이다.
1부에서는 주인공인 울리히의 가계와 성장 과정 및 그의 세계관이 이야기된다. 울리히는 군인, 공학자, 수학자로의 교육을 받았으나 직업을 포함하여 자신의 사회적 존재를 규정하는 좌표들을 갖지 않는 '특성 없는 남자'로 남기로 한다. 적극적으로 수동적인 그의 입장은 현실에 비판적인 '가능성 감각 Möglichkeitssinn'으로 집약된다. 자수성가한 법률가인 아버지는 합스부르크 왕가를 구심점으로 하는 사회질서에 편입하도록 채근하고 울리히는 "평행운동 Parallelaktion"에 명예사무총장으로 참여하게 된다. 2부는 평행운동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평행운동은 1918년에 있을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즉위 70주년을 거국적인 행사로 준비하는 애국 운동이다. 울리히의 사촌뻘인 디오티마의 살롱을 중심으로 회의와 회동을 반복하지만 모든 것을 포괄하는 최고의 이념을 찾지 못하고, 하나둘 모여든 엘리트들은 서로 다른 입장만을 확인한다. 라인스도르프 백작, 디오티마, 아른하임이 평행운동의 구심점을 이루는데, 특히 아른하임은 대부호이자 대저술가이며 심지어 미적 감각마저 갖춘 인물로 세계관과 가치관에서 울리히와 대척점을 이룬다. 아른하임은 '영혼과 돈이 합쳐지고 이상과 권력이 하나로 뭉치는 것'을 당연시하며 현실의 권력 관계와 기존 질서에 찬동한다. 이 외에 울리히와 교류하는 레오 피셸의 가족, 학창시절 친구인 발터와 클라리세 부부, 군인 시절 상사였던 슈툼 폰 보르트베어 장군 등이 2부에서 뻗어 나가는 이야기들에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울리히의 활동 반경 밖에 인물로는 매춘녀 살해범 모스부르거가 있다. 안과 밖, 현실과 상상, 망상과 인식의 경계가 무너진 인물로 그의 책임능력 여부에 대한 사법적 판단, 정신의학적 진단, 언론과 대중의 관심이 또 하나의 이야기를 이룬다.
3부에서 울리히는 아버지의 장례식을 계기로 유년기 이후 떨어져 살던 누이 아가테와 재회한다. 오누이는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샴쌍둥이처럼 닮았다고 느끼고, 울리히는 아가테한테서 자신과 완벽히 어울리는 존재를 알아본다. 아가테는 염오하는 남편인 하가우어를 떠나서 울리히의 집으로 들어오고 둘은 도덕의 인습을 뛰어넘어 합일에 이르는 "다른 상태 Der andere Zustand"를 지향한다. (작가가 남긴 유고에 의하면 그들은 근친상간적인 뉘앙스를 띠는 '분열이 극복되고 합일의 상태 속으로 지양된 유토피아'적인 관계를 '한순간' 맺는다). 3부에서는 울리히와 아가테의 이야기가 중심을 이루는데, 울리히는 새로운 의미의 사랑을 의식하면서 그 전까지 가졌던 아이러니한 태도에서 멀어져 좀 더 진지한 태도로 옮겨간다. 평행운동은 그 사이 참여자들이 늘었는데 그만큼 더 관념들만 즐비할 뿐 어떤 결과에 다다르지 못한다. <특성 없는 남자>는 미완임에도 불구하고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 마르셀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함께 20세기 유럽의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발전과 진보에 대한 작가의 날카로운 문제의식, 현대사회와 현대인의 분열적 상태에 대한 예지력 있는 분석이 에세이즘적인 서술 방식과 어우러진 기념비적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는 부분적으로 번역되어 출판되다가 2022년에 신지영의 번역으로 처음 완역 출간되었다(나남).
초판 정보
Musil, Robert(1930): Der Mann ohne Eigenschaften. Erstes Buch. Berlin: Rowohlt Verlag.
번역서지 목록
| 번호 | 개별작품제목 | 번역서명 | 총서명 | 원저자명 | 번역자명 | 발행연도 | 출판사 | 작품수록 페이지 | 저본 번역유형 | 작품 번역유형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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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비평
1. 번역 현황 및 개관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나란히 유럽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현대의 고전으로 평가된다. 무질은 1930년에 1부와 2부로 이루어진 1권을 출간했고, 1932년에 2권 3부를 미완결 상태로 출간했다. 무질은 이후에도 작품의 완성에 매달렸으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소설은 미완성의 상태로 남았다. 1942년 4월 망명지인 스위스의 취리히에서 뇌출혈로 쓰러진 날 오전에도 책상에서 소설의 원고를 손보고 있었다고 한다. 무질은 엄청난 양의 유고를 남겼고, 작가의 사후 1943년에 아내인 마르타 무질이 유고를 정리하여 출간한 바 있다. 국내에서는 현재까지 작가가 생전에 발표한 1권과 2권을 기준으로 완역의 여부를 말한다.
미완성이지만 이 소설은 출판 당시에 이미 1,600페이지를 넘는 분량이었다. 독일어권에서도 이 소설을 통독한 독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분량도 방대하지만, ‘아이러니’와 ‘에세이즘’으로 집약되는 무질의 독특한 사유와 난해한 문체가 소설을 읽는 즐거움을 쉽게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더하여 특이한 조어, 낯선 비유, 복합문 등이 만드는 언어의 미로는 번역으로 살리기가 몹시 어려워서 한국어로 이 소설을 읽을 독자를 위한 번역은 오랫동안 이루어지지 못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율리시스>가 20세기가 끝나기 전에 완역된 데 비해 훨씬 늦은 2010년에 비로소 <특성 없는 남자>의 초역이 출간되었다. 고원의 <특성 없는 남자 1>로 원작 1권의 74장까지 번역한 중도역(中途譯)이다.[1] 2013년에는 안병률이 원작의 1권에서 83장까지 번역하여서 <특성 없는 남자 1>과 <특성 없는 남자 2>로 각각 출간하였다. 그 후 안병률은 원작 1권을 끝까지 번역하여 2021년에 <특성 없는 남자 3>으로 출간했으며, 이에 병행하여 세 권을 합본하여 출간하면서 전작들을 소소히 수정하였다. 2022년에는 신지영이 완역한 <특성 없는 남자 1-5>가 출간되었다. 이 번역이 완역으로서는 초역이며,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의 일환으로 출간되었다. 2023년에는 박종대가 원작을 완역하였고, <특성 없는 남자 1-3>으로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25권으로 출간되었다. 2024년에는 안병률이 원작의 2권을 번역하여 <특성 없는 남자 4>로 출간했는데, 이로써 안병률의 번역 또한 완역의 대열에 합류하였다. 이들 세 번역자는 십여 년이 넘는 시간을 <특성 없는 남자>의 번역에 바쳤다고 한다. 작가 로베르트 무질은 문자 그대로 죽는 날까지 필생의 역작을 썼고, 번역자들 또한 오랜 시간 열정을 품은 용기와 성실한 노고로 필생의 번역을 세상에 나오게 한 것이다. 이들은 모두 아돌프 프리제 Adolf Frisé가 편집한 로베르트 무질 전집(Gesammelte Werke in 9 Bänden) 중 1권 <Der Mann ohne Eigenschaften>을 저본으로 했으며, 안병률과 박종대는 소피 윌킨스 Sophie Wilkins의 영어 번역본도 참조했음을 밝히고 있다.
이로써 <특성 없는 남자>는 아주 오랜 시간 번역을 기다린 후에 마침내 3종의 완역본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특별한 번역사를 갖게 되었다. 이는 독일어 문학의 국내 수용의 역사에서도 큰 성과라 할 것이다. 독일어 문학을 한국어로 옮기는 번역의 토양이 무르익고 풍부해진 방증이기도 하며, 국내 독일어 문학의 수용과 연구에서 오래된 숙제가 드디어 해결된 의의도 크고, 전문가들의 담론장에서만 회자되어온 로베르트 무질의 작품세계가 한국의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지는 토대가 마련된 의미도 있다.
2. 개별 번역 비평
밀란 쿤데라는 <특성 없는 남자>를 다시 읽고 싶을 때면 그저 손이 가는 대로 아무 페이지나 열어서 읽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각 장이 그 자체로 놀라움이며 발견”이기 때문이다.[2] 한국어 번역자들도 입을 모아 <특성 없는 남자>가 ‘사유 소설’이며 줄거리보다 한 장 한 장에 담긴 사유가 돋보인다고 말한다. 고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책을 독파하려는 독자는 결국 완독에 실패할 것”이라고 단언하면서, “선택적인 독서”를 추천한다(고원, 514). 실제로 이 소설책을 통독한 사람이라면 끝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음에 놀라는 한편, 모든 것이 이해되기를 요구하는 것에 현기증을 느낄 것이다. 무질은 이야기가 하나의 “줄기 Faden”(650)를 따라가는 전통적인 서사를 버리고, 무한히 연결되면서 생겨나는 “면 Fläche”들, 들뢰즈식으로 말하면 리좀처럼 퍼져나가는 서사를 실험한다. 하나의 어휘도 접합과 접목, 접속하기에 따라서 의미의 가능성에 열려있다.
[...] so wie das eine Wort Hart, je nachdem, ob die Härte mit Liebe, Roheit, Eifer oder Strenge zusammenhängt, vier ganz verschiedene Wesenheiten bezeichne, [...](250 f.)[3] (이하 모든 밑줄 강조는 필자)
여기서 서술자는 어휘 “Hart”의 사전적인 뜻을 받아들이는 대신에 “강함”이 “사랑, 조야함, 열성, 엄격함” 중 무엇과 연결되느냐에 따라서 네 개의 완전히 다른 본질을 나타낸다고 말한다. 번역자들도 hart에 상응하는 적절한 역어의 선택과 결정에 있어서, “견고함”(고원, 378), “지독한”(안병률 2권, 124), “단단하다”(신지영 2권, 119), “지독하다”(박종대 1권, 388) 등으로 차이를 보인다. 이 어휘들은 모두 사랑, 조야함, 열성, 엄격과 결합될 수 있고 그때마다 말의 몸을 바꾼다. 요컨대 어떤 것도 오역이 아니면서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다르다. 때로는 어휘를 도착어로 어떻게 변환하는가에 따라서 4종의 다른 문장이 되기도 한다.
일이 우리를 수중에 넣었다. 우리는 이 안에서 밤낮으로 움직이고 이 안에서 다른 일도 다 한다.(신지영 1권, 57)
우리는 속도에 얽매여 산다. 밤낮으로 빠르게 달리고, 다른 모든 일도 빠르게 처리한다.(박종대 1권, 46)
일이 우리를 안내하고 있는 것이다. 낮이고 밤이고 사람들은 그 속에서 여행하며 그 안에서 다른 모든 것을 또 한다.(고원, 40)
우리는 일상의 손에 달려있다. 우리는 밤낮없이 일상으로 달려가며, 그 어떤 것도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안병률 1권, 53)
밑줄 친 문장들은 “Die Sache hat uns in der Hand. Man fährt Tag und Nacht in ihr und tut auch noch alles andre darin”(32)를 번역한 것이다. 신지영의 번역은 die Sache를 “일”로 번역했고, 현대의 사람들에게 ‘일’이 생활의 기준이 되었다는 문장이 이어진다. 박종대의 번역에서는 같은 어휘가 “속도”로 옮겨졌고, 현대의 생활이 ‘빠르게’ 돌아간다는 문장이 뒤따른다. “일”, “속도”, 게다가 안병률 번역의 “일상”이라는 어휘는 거의 공통점이 없다. 원문에서도 die Sache는 이 맥락에서 저 맥락으로 바꿔가면서 사전적인 뜻으로 환원되지 않은 채, 상황이나 사실 혹은 사물로 유동하는 의미 가능성에 열려있다. 원작이 의미를 고정하지 않고 가능성의 영역을 탐색하기 때문에, 역자는 작가의 의도를 캐물어야 하고 행간을 읽는 해석 작업을 어렵게 해야 한다. 또 그렇게 하더라도 의미의 복수(複數)적인 가능성을 단수의 번역어로 재단해야 하기에 네 편의 번역서에서 그저 손이 가는 대로 한 장을 열어서 정독하다 보면 해당 번역자의 개성과 번역의 특징이 얼추 드러난다. 여기서는 번역자의 번역 의도가 실제 번역에 반영되는 것을 중심으로 개별 번역을 훑어보려고 한다. 4종의 번역을 비교하는 구체적인 사례는 주로 소설 전체의 축소판과도 같은 1장, 그 유명한 “카카니엔”이 나오는 8장, 울리히가 경찰서에 임의동행하는 40장, 에세이즘에 대한 사유가 나오는 62장 정도로 한정한다.
1) 고원 역의 <특성 없는 남자 1>(2010)
고원은 로베르트 무질의 초기 단편인 <조용한 베로니카의 유혹 Die Versuchung der stillen Veronika>로 학위논문을 쓴 독문학자로 전위적인 구체시를 쓴 시인으로도 알려져 있다. 고원은 원래 총 3권으로 완역을 구상하였으며, 책의 제목에 첫 번째 권임을 표시했는데 후속 번역이 따르지는 않았다.
<특성 없는 남자>에서 가장 유명한 부분인 1장은 새로운 서사의 가능성을 시도하는 작가의 문제의식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내용은 1913년 8월의 어떤 날 빈(Wien)의 번화한 대로를 걷는 상류층의 남녀 한 쌍이 교통사고가 난 현장을 목격하는 것이다. 소설의 시간과 장소가 제시되며, 인물이 등장하고, 사건이 일어남으로써, 일견 소설이 이야기하기를 시작하는 관습을 따르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 작가는 서사의 전통과 결별하는 서술적 실험을 한다. 서술자가 서술하는 한편 그 내용을 상대화하고 심지어는 ‘아무것도 아니야’는 식으로 회수하는 것이다. 시공간은 특수하지 않고 인물은 특정되지 않으며 사건은 특별나지 않다. 숙녀와 신사의 존재는 밝혀지지 않고, 교통사고는 지침에 따라서 처리되고 잊힌다. 1장의 제목도 “Woraus bemerkenswerterweise nichts hevorgeht”로, 관계부사 woraus가 이끄는 종속문만 있을 뿐 주절이나 주어가 없다. 이 문장을 네 명의 번역자는 뉘앙스를 달리하면서 옮긴다.
주목할 만한 방식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안병률 1권, 11) 여기서는 어떤 일도 주목할 만한 방식으로 일어나지 않는다.(박종대 1권, 11) 주목할 만하게도, 여기서는 아무 일도 더 일어나지 않는다.(신지영 1권, 23)
안병률과 박종대의 번역은 부분 부정으로 읽힌다. 일의 성격이나 일어나는 방식 때문에 주목할 필요가 없거나, 혹은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태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된다. 안병률과 박종대가 “주목할 만한 방식으로는”, “주목할 만한 방식으로” 등 명사구를 만든 데 비해서 신지영의 번역은 “주목할 만하게도”를 부사구로 만들어 쉼표 뒤의 문장 전체를 수식한다. 그래서 이 번역은 전체 부정으로 읽힌다.[4] 고원의 번역은 위 세 번역과 결을 달리한다.
어떤 주목할만한 방식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가.(고원, 5)
이 제목은 의문부호를 일부러 생략한 의문문인지 혹은 의문형 종결어미 “~않는가”를 수사적으로 사용한 평서문인지 애매하다. “어떤”이라는 관형사를 부가했고 “주목할만한”을 형용사로 써서 명사 “방식”을 두 번 수식하기 때문에 약간 혼란스러운 느낌이 들기도 한다.
1장의 첫 문단은 기상 분석으로 시작하는데, 학술적 보고서나 일기도처럼 기압, 기온, 습도를 관측하고 관찰된 데이터를 천문학 연감과 비교한다.
대서양 위에서는 바로미터의 최저치가 자리잡고 있었다. [...] 저기압 [...] 고기압 [...] 등온선과 등서선 [...] 온도는 연중기온 [...] 불규칙한 온도변화 [...] 해뜨는 시각과 해지는 시각, 달뜨는 시각과 달지는 시각, 달과 금성 그리고 토성의 빛의 양의 변화 [...] 천문학의 달력 [...] 수증기는 최고치의 표면장력 [...] 습도는 낮았다. 약간 구식 같기도 하지만, 사실을 제대로 잘 나타내는 단어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때는 1913년의 아름다운 8월의 어느 날이었다.(고원, 5)
고원의 번역은 기상학과 천문학에 쓰이는 전문적인 용어와 개념으로 이루어진 원문을 무난하게 잘 전달한다. 마지막에 서술자가 소설의 관습적인 도입부를 인용하듯이 시간을 알려주는 문장 “Es war ein schöner Augusttag des Jahres 1913”도 “때는”을 넣어서 매끄럽게 옮긴다. 그런데 첫 줄의 “바로미터의 최저치”는 “ein barometrisches Minimum”을 부분적으로 음차 번역을 한 것으로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독자에게는 난해하다. 바로미터는 ‘기압계’라는 등가어가 있고 번역자들은 “저기압”(안병률, 신지영), 혹은 “기압계상 최저기압”(박종대)으로 옮겼다. 이와 달리 ‘바로미터’로 옮긴 점은 역자의 어떤 주관적인 태도로 다가온다. 이런 경우는 “카카니엔”의 번역에서 다시금 나타난다.
멸망한 이 카카니엔에 대해 희한한 말들이 또 얼마나 많은가! 예를 들면 그 나라는 황제-왕국k.k의 나라 그리고 황제적이고 왕국적k.u.k.이었다. 그 약자 카카k.k. 또는 카운트카k.u.k의 하나를 그곳에서는 일이 있을 때마다 누구나 달고 다녔다.(고원, 42)[5]
여기서 역자는 “kaiserlich-königlich”를 “황제-왕국k.k”으로, “kaiserlich und königlich”를 “황제적이고 왕국적k.u.k.”으로 옮겨서 원문에 없는 k.k.와 k.u.k를 임의적으로 삽입한다. 아마도 이어지는 문장에 있는 약자인 “k.k. oder k.u.k.”를 “카카k.k. 또는 카운트카k.u.k”로 용이하게 음차 번역을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번역하면 알파벳 약자의 내용이 드러나지 않는다. 독일어를 모르는 독자라면 왜 “카카k.k”이고 “카운트카k.u.k”인지 모를 것이고, 알파벳을 King 혹은 Kingdom의 약자로 생각하거나 Kaiser(Emperor)를 떠올릴 것이다. 독일어를 배운 독자라면 “카”가 독일어 알파벳의 음가임을 알겠지만 역사적 배경을 모르면 ‘카카’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1867-1918)을 아이러니하게 지칭하는 약자임을 모를 것이다. 이처럼 역자가 언어적, 역사적 사실을 주석으로 설명하거나 보충하지 않기 때문에 독자층을 독일어와 오스트리아의 역사를 알고 있는 이들로 국한하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역자가 독자의 이해를 그다지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원문의 독특한 문학적 표현을 살리는 효과가 발생하는 측면도 있다. 문장 “Städte lassen sich an ihrem Gang erkennen wie Menschen”(9)은 대도시 빈에서 발생하는 움직임을 사람의 걸음걸이로 비유하고 있는 문장인데, 역자는 “도시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특유의 걸음걸이가 있는 법이다”(고원, 6)라고 원문의 함축성이 잘 드러나도록 번역했다. 다만, 이런 사례로부터 고원의 번역이 등가성을 번역의 전략으로 삼아서 원문의 직역을 지향한다고 섣불리 유추하기는 곤란하다.
도시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특유의 걸음걸이가 있는 법이다. 두 눈을 뜨면서 그는 거리의 동선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 방식에 따라 어떤 뚜렷한 세목을 통해 그것을 알게 되는 것보다 훨씬 빨리 똑같은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가 그것을 하기 위해 다만 상상하기만 하면 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어떤 것에도 해를 끼치지는 않을 것이다.(고원, 6)
이 대목에서는 함축적인 첫 문장에 원문을 필요 이상으로 풀고 길게 설명하는 문장이 이어진다. 원문을 직역한 신지영의 문장은 “그럴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뿐이라도 해로울 것은 없다”(신지영 1권, 24)는 식으로 간결하며, 설명을 덧붙여도 “그게 가능하다는 생각이 착각이라고 해도 상관없다”(박종대 1권, 12)는 정도이다. 이렇듯이 고원의 번역은 종종 문장을 장황하게 하거나 늘어지게 한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오스트리아라는 명칭이 국가적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폐기되었으나, 일상생활에서는 국명으로 사용되고 있는 이유를 ‘감정이 국법만큼 중요하며 규정이 현실 생활의 진지함을 표현하지 않는다’라고 표현한 원문의 경우[6], 고원의 번역은 “그것은 국가의 법과 규정이 인생의 실제적 진지함을 의미하지 않는 것처럼, 감정 또한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고원, 42)로 원문의 내용을 전달하고는 있으나, 번역자가 상당히 주관적으로 원작의 문장을 읽고 번역하는 것으로 보인다.
고원의 <특성 없는 남자 1>은 이 작품의 초역으로 제목으로만 유명했던 소설의 실체를 한국의 독자들에게 처음으로 보여준 의의가 있다. 그가 번역한 제목인 “특성 없는 남자”는 그 후 국내 독문학자와 번역자에 의해서 표준제목으로 수용되었다. 그런데 고원의 번역에서는 원문의 다양한 의미 가능성의 탓으로 돌릴 수 없는 모호함과 애매함이 종종 나타나곤 한다. 1장의 교통사고 대목에서 만나게 되는 문장 “마치 죽은 듯 누워있는 한 남자가 보도의 턱으로 옮겨 놓인 상태의 빈자리로 조심스럽게 깊이 내려가고 있었다”(고원, 7)처럼 비문에 가까운 번역도 있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에서 엄청났던 “민족들 간 투쟁 nationale(n) Kämpfe”를 “국가 간의 싸움”(고원, 42)으로 사실관계에 틀리게 번역하는 등 역자의 임의적이고 주관적인 판단이 앞서는 경향이 나타나서 초역의 한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2) 안병률 역의 <특성 없는 남자 1-4>(2013, 2021, 2024)
안병률은 출판인으로 그가 번역한 <특성 없는 남자 1-4>를 출간한 출판사 북인더갭의 대표이다. 번역자로서는 이 소설 외에도 몇 편의 번역서를 낸 바 있으나, 2013년, 2021년, 2024년에 순차적으로 출간한 <특성 없는 남자>가 가장 중요한 번역서일 것이다. 안병률은 매번 역자의 말에서 “좀 더 많은 대중들에게 다가가고 싶어서” 번역서를 펴내는 출판인의 면모를 보인다. 2013년에는 “가급적 각권의 분량을 가볍게 하여 누구라도 쉽게 독파하는 책”으로 만들고 싶어서 <특성 없는 남자 1>과 <특성 없는 남자 2>로 분권해서 편집했다고 밝히며, 2021년에 <특성 없는 남자 3>을 출간했을 때는 번역의 공을 독자의 관심과 후원으로 돌린다. 그리고 2024년에 원작의 2권을 완역한 <특성 없는 남자 4>에서도 독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요컨대 안병률은 가능한 한 많은 독자가 이 책을 ‘독파’하기를 바라면서 번역을 기획한 것이다.
독자를 염두에 두고 책을 만들었다는 독자 친화적인 방향성은 번역의 전략을 결정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고원이 “도시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특유의 걸음걸이가 있는 법이다”라고 번역한 문장을 안병률은 “도시란, 사람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걷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안병률 1권, 12)라고 설명하는 식으로 옮겼다. 이 문장은 고원의 번역에 비해서 훨씬 읽기가 수월하다. 그런데 ‘도시의 걸음걸이’라는 은유적 표현이 갖는 말의 맛이 없어지는 아쉬움이 생긴다. 물론 원작의 어떤 부분들은 고도로 농축된 어휘, 특이한 어휘조합, 복합적인 문장 등이 있어서 힘들여 번역해도 이해하기 어렵고, 이런 까닭에 독자를 위해서 가독성을 높이는 번역이 불가피해 보이기도 한다. 일례로 차량과 보행자들로 붐비는 도로의 역동적 상태를 묘사하는 부분을 보자.
Autos schossen aus schmalen, tiefen Straßen in die Seichtigkeit heller Plätze. Fußgängerdunkelheit bildete wolkige Schnüre. Wo kräftigere Striche der Geschwindigkeit quer durch ihre lockere Eile fuhren, verdickten sie sich, rieselten nachher rascher und hatten nach wenigen Schwingungen wieder ihren gleichmäßigen Puls.(9)
Fußgängerdunkelheit, wolkige Schnüre. kräftigere Striche der Geschwindigkeit, lockere Eile. 이런 표현에 부딪히는 역자의 난감함을 상상해보라. 여기서 서술자는 광장의 도로에서 차량과 보행자들이 뒤섞였다가 흩어지는 모습을 속도의 차이와 밀도의 변화를 써서 추상적인 이미지로 만든다. 원문에 가깝게 번역한 신지영의 번역은 다음과 같다.
자동차들은 좁고 깊은 거리에서 얕고 밝은 광장으로 튀어 나갔다. 어두운 색의 보행자 무리가 구름 같은 띠들을 형성했다. 완만한 속도의 이 띠들은 속도가 더 붙은 굵은 획들이 가로질러 달리는 곳에서는 잠시 두꺼워졌다가 그 후 더 빨리 흘러갔고, 몇 번 진동을 겪은 다음 다시 규칙적인 맥박을 되찾았다.(신지영 1권, 23)
이 번역은 유일하게 보행자 무리가 주어인 원문을 제대로 살리고 있다. 보행자들이 빨리 내달리는 자동차들 때문에 걸음을 멈추면서 밀집도가 높아지고, 차들이 지나간 후 발걸음의 속도를 높여 흩어지고, 점차 보행의 속도가 규칙적으로 된다. 다만, 리듬과 박동의 이미지는 단박에 그려지지 않고 몇 번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내용이 전해진다. 이 장면을 안병률은 이렇게 옮긴다.
차들이 좁고 깊숙한 거리에서 밝은 광장의 평지로 달려나왔다. 보행자들의 검은 무리가 구름 같은 선을 이루었다. 속도가 만드는 힘찬 선이 차들의 부주의한 조급함을 가로지르는 곳에서 차들은 뒤엉켰고, 이내 빠르게 흐르다가, 잠시 동요하더니 다시 그들의 일반적인 흐름을 되찾았다.(안병률 1권, 11-12)
안병률의 번역은 문장의 내용을 독자가 알기 쉽도록 가공하여 전달한다. 신지영의 번역과 비교하면 원문에 없는 “차들의 부주의한 조급함”이 삽입되었고, ‘완만한 속도’는 누락되었고, “두꺼워졌다”는 “뒤엉키다”로 대체되었고, 보행자 무리는 번역에서 사라진다. 그리고 이런 단순화를 거쳐서 원문이 그려낸 이미지의 추상성이 약화된다.
독자에게 친화적인 번역의 경향은 한 쌍의 남녀가 등장하는 대목에서도 나타난다. 이들은 “세련된 옷차림과 행동, 대화방식”(안병률 1권, 13)으로 보아 한 눈에도 상류층에 속하는 게 드러난다. 그런데 원작의 서술자는 두 인물의 개별적이며 고유한 정체를 밝히지 않고 수수께끼로 남긴다.
그들이 누구인지는 아직 수수께끼인 것이다. 사람들은 아주 특이한 방식으로 이 수수께끼를 풀기도 하는데, 그 방식이란 만약 그들이 50걸음을 걸은 후에도 어디에서 서로를 만났는지 생각나지 않으면 서로 잊어버리는 방식이다.(안병률 1권, 13)
원문인 “so steht man vor dem Rätsel, wer sie seien”이라는 표현은 ‘수수께끼 앞에 선다’는 뜻인데 안병률의 번역에서는 “그들이 [...] 수수께끼인 것이다”라는 평범한 문장으로 바뀐다. 여기서는 원작의 내용을 알기 쉽게 옮기려는 번역의 의도가 원작의 문학적인 요소를 옮기는 데 방해가 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원작에서 이 문장에 뒤따르는 문장 “Lebhafte Menschen empfinden solche Rätsel sehr oft in den Straßen”이 번역에서 누락되었다. 번역과 교정 과정에서 일어난 단순 실수이겠으나, 작가도, 역자도, 독자도 관심을 기울이는 소설의 도입부라는 점에서 역자가 문장의 복잡성을 줄이고자 생략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영 억지는 아닐 것이다.
안병률의 번역은 전체적으로 볼 때 한국어로 이 소설을 읽을 독자에게 한 발짝이라도 가깝게 무질의 책을 가져가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분명 역자가 무질의 소설에서 느끼는 “문학적 순간의 황홀함”(안병률 4권, 622)을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원문을 변환하는 것이 번역에 있어서 중요한 전략인 점은 틀림없다. 하지만 내용을 전하기 위해서 원문의 낯선 표현을 지우거나 문장을 두루뭉술하게 깎아내는 점은 되돌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번역의 전략이 무질의 문장을 쉽게 만들기에 있으면, 무질 특유의 복합적인 문장을 이루는 요소들과 아이러니한 울림을 만드는 요소들이 축소되거나 생략되어 원작의 문학성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부작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단, 이 짤막한 비평은 2013년과 2021년에 출간된 1권, 2권, 3권에 국한해서 리뷰한 것으로, 2024년에 출간된 <특성 없는 남자 4>에 확대 적용될 수 없다.
- ↑ 지금까지 출간된 번역서들은 모두 한 권 이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병률의 번역은 1-4권, 신지영의 번역은 1-5권, 박종대의 번역은 1-3권이다. 이렇게 권수가 다른 것은 국내 출판사의 편집과 출판에 따른 것이며, 독일어 원작의 분권 기준과 무관하다.
- ↑ 밀란 쿤데라(2012): 커튼. 소설을 둘러싼 일곱 가지 이야기. 민음사, 101.
- ↑ 독일어 원문은 다음 판본을 이용한다. Musil, Robert(1996): Der Mann ohne Eigenschaften. Adolf Frisé (Ed.). Reinbek bei Hamburg: Rowohlt. 원문 인용 시 본문에 쪽수를 표기한다.
- ↑ 이하 이 번역비평의 3) 신지영 역의 <특성 없는 남자 1-5>(2022) 참조
- ↑ Überhaupt, wie vieles Merkwürdige ließe sich über dieses versunkene Kakanien sagen! Es war zum Beispiel kaiserlich-königlich und war kaiserlich und königlich; eines der beiden Zeichen k.k. oder k.u.k. trug dort jede Sache und Person.(33)
- ↑ [...] daß Gefühle ebenso wichtig sind wie Staatsrecht und Vorschriften nicht den wirklichen Lebensernst bedeuten.(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