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자 나탄 (Nathan der We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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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Gotthold Ephraim Lessing, 1729-1781)의 희곡

현자 나탄 (Nathan der Weise)
작가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Lessing, Gotthold Ephraim)
초판 발행1779
장르희곡


작품소개

1779년에 출간된 레싱의 드라마로 1783년 4월 14일 베를린의 되벨린쉐스 테아터에서 초연되었다. 십자군 시대 예루살렘에 사는 유대인 상인 나탄이 사업차 여행을 떠난 사이에 집에 불이 나 그의 양녀 레하가 죽을 뻔한 위기에 처했는데 정체불명의 십자군 기사가 목숨을 걸고 그녀를 구해 주고는 사라진다. 그는 포로로 끌려왔는데, 이슬람 황제인 살라딘 왕이 자기 동생과 닮았다는 이유로 목숨을 살려 준 기사단원이었다. 나탄은 아내와 일곱 아이가 기독교도들의 손에 몰살당했음에도 기독교도의 아이인 레하를 정성껏 기르고 있었다. 나중에 레하와 기사는 남매지간이며, 이 남매는 살라딘 왕의 조카임이 밝혀진다. 이 작품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어떤 종교가 진정한 종교인가 하는 살라딘 왕의 질문에 대해 나탄이 한 대답인 반지 우화이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세 형제는 아버지에게 유산으로 각각 행복의 반지를 물려받지만, 그중 하나만 진짜이고 나머지 두 개는 가짜이다. 세 형제는 모두 자신이 물려받은 반지가 진짜라고 다투다가 재판정에 가게 되는데, 재판관은 각자 자기 반지의 비밀스러운 힘이 드러나도록 경쟁하라고 하면서, “온화함과 진실한 믿음, 선행,/신에 대한 신실한 복종으로/보석의 힘이 드러나도록 도우라!”는 판결을 내린다. 유대인 양아버지 밑에서 자란 레하, 십자군 기사, 모슬렘인 살라딘 왕이 모두 가족이듯이 인류는 모두 한 가족이라는 메시지와, 계몽주의의 휴머니즘에 바탕을 둔 종교적 관용 정신이 잘 나타나 있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국내에서는 1973년에 박환덕에 의해 <현인 나탄>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번역되었다(문우사).


초판 정보

Lessing, Gotthold Ephraim(1779): Nathan der Weise. Ein dramatisches Gedicht, in fünf Aufzügen. Berlin: Christian Friedrich Voß und Sohn.


번역서지 목록

1. 번역 현황 및 개관

<현자 나탄>은 독일 계몽주의의 대표적 작가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이 1779년에 발표한 드라마다. 이 작품은 계몽주의의 핵심 사상인 인류애와 관용, 이성적 사고를 주제로 하며, 특히 3막에 등장하는 반지 우화로 유명하다. 레싱의 이 마지막 작품 생성의 배경에는 레싱과 함부르크의 수석목사인 괴체(Johann Melchior Goeze) 간의 신학적 논쟁이 있다. 레싱은 친구 라이마루스(Hermann Samuel Reimarus)의 유고를 출판했는데, 이 글은 자연법칙과 이성에 기초한 신앙적 접근을 옹호한 내용이었다. 보수적인 신앙을 가진 괴체는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을 강력히 옹호하면서 두 사람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고, 그 결과 레싱은 일부 출판 금지 처분을 받았다. 이에 레싱은 자신의 본 영역인 문학으로 돌아와 이 희곡을 통해 이성, 종교적 관용 그리고 도덕적 가치에 대한 깊은 성찰을 촉구한다.

작품의 외적 형식은 고전주의 드라마의 구조를 따르며, 5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레싱은 이 작품에서 영국에서 유래한 5각 약강격 무운시행(Blankvers)을 사용한다. 이는 운율이 없는 자유로운 형식으로, 이를 통해 대화의 자연스러움과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대화를 잘 표현하였다. 레싱은 또한 이 드라마에 “5막의 극시”(dramatisches Gedicht)라는 부제를 붙였다. 이 작품은 비극적인 요소와 희극적인 요소를 모두 포함하고 있지만, 화해적 결말에도 불구하고 희극도 비극도 아닌 독특한 성격을 갖고 있어서 이와 같은 부제를 단 것으로 이해된다.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반지 우화는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서 차용해 변형한 것으로, 종교적 갈등을 해소하고 모든 종교가 내면적 도덕성과 진리를 공유할 수 있다는 계몽적 관용의 메시지를 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작품의 국내 소개 및 번역 현황을 보면, 1969년에 처음 반지 우화의 일부가 번역 소개된 이래 73년에 첫 완역본이 나왔고, 이후 2020년대까지 꾸준히 번역서가 출판되었다. 희곡이라는 장르를 고려했을 때 번역 건수가 상대적으로 많으며(15건), 편역과 발췌역이 다수 존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편역 또는 발췌역의 경우 “어린이 세계 고전 명작”이나 “논술 대비 세계명작문학” 총서 등에서 주로 반지 우화를 중심으로 번역된 것으로, “지혜로운 나탄”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것이 공통점이다. 이성, 관용의 정신이 이 우화를 통해 가장 분명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이런 번역/편역이 진행된 것으로 이해된다. 완역본은 총 7종이다. 박환덕과 강두식, 윤도중, 김은애 등 4명의 역자에 의해 이루어졌다. 박환덕, 강두식, 윤도중의 번역은 각기 다른 출판사를 통해 두 번씩 출판되었다. 2008년에 출판된 김은애의 번역은 유감스럽게도, 윤도중의 1991년 번역을 그대로 가져와 “현자 나탄”에서 “현인 나탄”으로 제목만 바꾼 것으로 드러났다.

이하에서는 박환덕의 국내 초역, 강두식과 윤도중의 번역 그리고 윤도중의 개정판에 대해 개별적으로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2. 개별 번역 비평

1) 이병찬 역의 <친화력>(1968) 박환덕 역의 <현인 나탄>(1973)

1973년에 문우사 “세계고전문학대전집” 3권으로 나온 박환덕 역의 <賢人 나탄>은 국내 첫 완역이라는 큰 의미를 지닌다. 역자는 “레싱의 시민극”이라는 제목의 해설을 통해 레싱이 독일 시민비극의 창시자라는 점을 강조하고, 독일 연극사에서 차지하는 중요한 위치에 대해 자세한 해설을 한다. 당시로서는 국내 독자들에게 계몽주의자 레싱을 소개하는 좋은 전문적인 정보라 생각된다. 또한 해설과 작품 곳곳에서 (원본에는 없는) 레싱과 관련한 사진들을 다수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역주가 매우 많은 것도 이 책의 특징으로 2막 1장의 경우 역주가 12개나 된다. 박환덕은 역주에서 작품의 배경을 이루는 십자군 전쟁 당시 역사적 사실이나 등장인물의 심리 상태, 그들 사이에 얽힌 비밀에 관해 설명하는데, 친절하게 정보를 전달하는 데 큰 의미를 둔 것 같다. 예전 번역서에서 종종 발견되는 오타나 맞춤법 오류가 거의 없는 등 번역과 출판에 신경을 많이 쓴 좋은 번역서라는 점이 이 책의 장점이라 하겠다.

박환덕 번역의 특징은 고전적, 문어체적인 면모가 강하고, 직역을 선호한다는 점이다. 작품의 첫머리에서 사업차 여행을 다녀온 유대인 상인 나탄에게 가정부 다야가 말하는 부분을 보자.

Wer zweifelt, Nathan, daß Ihr nicht 
Die Ehrlichkeit, die Großmut selber seid?(209)[1]
박환덕: 주인 어른, 누가 의심하겠어요, 나으리가 정직과 관대의 권화(勸化)가 아니시라고요?(328)
강두식: 누가 의심하겠어요, 나탄 나으리! 나으리가 정직하고 관대하시지 않다고 말이에요.(18) 

박환덕은 위의 “정직과 관대의 권화”라는 표현에서 보듯 고전적이고 문어체적인 어휘를 자주 사용한다. 이는 강두식 역의 “정직하고 관대하시지 않다고”와 비교된다. 강두식은 die Ehrlichkeit와 die Großmut를 풀어서 형용사로 번역했고, “말이에요” 같은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어조로 번역했다. 반면에 박환덕은 원문의 명사 그대로 번역하면서 “아니시라고요”와 같이 격식을 갖춘 고풍스러운 스타일의 번역을 추구한다. 원문이 18세기에 쓰인 ‘고전문학’이라는 점(앞에서 말했듯 이 책은 “세계고전문학대전집”의 한 권으로 나왔음)을 감안할 때 박환덕 번역의 고전적인 문구와 어투는 원문의 분위기와 톤에 상응한다고 할 수 있겠다.

박환덕 번역의 이런 특징은 1막 3장에서 나탄과 그의 오랜 장기 친구인 탁발승(Derwisch) 사이의 대화에서도 잘 드러난다.

NATHAN. Was bringt dir deine Stelle? 
DERWISCH. Mir? Nicht viel. Doch Euch, Euch kann sie trefflich wuchern. Denn ist es Ebb’ im Schatz, ― wie öfters ist, ― So zieht Ihr Eure Schleusen auf: schießt vor, Und nehmt an Zinsen, was Euch nur gefällt.
NATHAN. Auch Zins von Zins der Zinsen? 
DERWISCH. Freilich! 
NATHAN. Bis Mein Kapital zu lauter Zinsen wird. 
DERWISCH. Das lockt Euch nicht? ― So schreibet unsrer Freundschaft Nur gleich den Scheidebrief!(221)
나탄 그 지위는 자네에게 어떤 이익이 있는가?
탁발승 내게? 별 것은 없어. 그러나 자네에게라면 많은 이익이 있을지도 모르지. 왜냐 하면 자주 있는 일인데, 재산이 썰물이 되었을 때에는 자네는 자신의                                             둑을 끊으면 돼. 그렇게 해서 입체(立替)를 해 주고서 원하는 만큼 이식(利殖)을 취할 수 있지 않나. 
나탄 이식(利殖)의 이식에서 이식을 말이지? 
탁발승 물론이지! 
나탄 내 자본은 이식(利殖)만으로 되어 버릴 것이다. 
탁발승 마음이 내키지 않나? 그렇다면 당장에 우리들의 우정에 절연장(絶緣狀)을 쓰면 되네.(박환덕, 338)

입체(立替), 이식(利殖), 절연장(絶緣狀) 같은 한자어들과 친구를 “자네”라고 부르는 점, “있는가”, “것이다” 같은 어미들은 박환덕 번역의 고풍스럽고 문어체적인 면모를 잘 보여준다.

그런데 인물들 사이의 어투에서는 원문의 고풍스러운 측면이 종종 덜 반영되기도 한다. 위에서 보듯 나탄은 탁발승에게 du를 사용하고, 탁발승은 나탄에게 정중한 2인칭 대명사인 Ihr를 사용한다. Ihr는 18세기 이전에 사용되던 2인칭 존칭으로 이 작품이 발표된 18세기에는 Sie에 의해 대체되었다. <현자 나탄>보다 10여 년 먼저 나온 <민나 폰 바른헬름>에서 레싱은 7년 전쟁(1756-1763)을 시대적 배경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면서 18세기에 사용되던 친칭 du와 존칭 Sie를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현자 나탄>의 경우 시대적 배경이 12세기 십자군 전쟁 시기이기에 이를 고려하여 예전에 존대법으로 사용되던 2인칭 대명사 Ihr를 사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번역에서도 이런 점이 고려되어야 할 텐데, 박환덕은 나탄과 탁발승의 대화에서 두 사람이 서로 말을 놓는 것으로 번역했다. 위에서 다야가 나탄에게 Ihr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나으리”라고 하면서 존댓말로 번역했던 것과 비교된다. 나탄은 다야에게 du를 사용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하대의 어투로 번역했다. 불이 난 집에서 나탄의 딸 레하를 구한 젊은 신전기사가 처음에는 나탄에게 반말을 하다가 나중에는 존댓말을 쓰는데, 두 사람이 서로 Ihr로 호칭하는 점, 두 사람의 나이 차를 생각할 때 좀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준다.

  1. Lessing, Gotthold Ehpraim(1996): Nathan der Weise. In: Ders.: Werke. Zweiter Band Trauerspiele·Nathan der Weise·Dramatische Fragmente. Darmstadt: Wissenschaftliche Buchgesellschaft, 205-347. 이하에서는 위에서처럼 본문에 쪽수만 표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