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 (Wilhelm Meisters Wanderjahre oder Die Entsagenden)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의 소설
| 작가 |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
|---|---|
| 초판 발행 | 1821 |
| 장르 | 소설 |
작품소개
괴테의 마지막 소설로,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와 느슨하게 연결되나 독립된 소설로도 볼 수 있다. “또는 체념하는 사람들”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초판은 1821년에 출간되었다. 오늘날 널리 읽히는 재판은 1829년에 출간되었는데, 초판에 비해 새로운 노벨레들, 두 개의 잠언 모음과 시가 추가되었다. 이 소설에서 본 줄거리는 삽입된 노벨레나 동화, 편지, 일기, 잠언 모음, 시 등에 의해 계속 중단된다. 전지적 서술시점을 취하는 화자가 등장하였던 <수업시대>에 비해 <편력시대>는 허구적 편집자의 역할이 커진 아카이브 소설이다. <수업시대> 끝부분에서 나탈리에와 맺어진 빌헬름은 “탑의 모임”의 일원으로서 유용한 직업을 수행하며 편력을 해야 하는 의무를 지게 되는데, 아들 펠릭스가 이 길의 동반자가 된다. 그들은 성 요제프 2세 가족을 알게 되고, 또 그 사이 광산 전문가가 되어 몬탄으로 이름을 바꾼 야르노를 다시 만나게 되기도 하며, 백부라고 불리며 자신의 영지를 근대적으로 운영하려는 한 개혁 귀족의 장원에서 그의 조카 헤르질리에와 레나르도, 그들의 친척인 지혜롭고 신비한 여성 마카리에 등도 알게 된다. 레나르도의 소개로 만난 수집가 노인을 통해 교육주를 추천받은 빌헬름은 펠릭스를 그곳에 맡긴다. 빌헬름은 레나르도의 부탁을 받고, 과거에 소작료가 미납된 아버지와 함께 백부의 장원에서 쫓겨날 때 도움을 주지 못해 레나르도가 안타까운 마음으로 찾고 있는 밤색 피부의 아가씨 나호디네의 행방을 수소문하게 된다. 레나르도는 탑의 모임과 공동으로 미국으로 이주하여 그곳에 유토피아를 건설하려는 계획을 세우지만, 다른 한편 이주자 동맹의 일원인 오도아르트는 유럽 내에서 이상 사회를 건설하자고 주장하여, 이주자 동맹은 두 집단으로 나뉘어 계획을 진행한다. 그 사이 외과의사가 된 빌헬름도 여기에 합류한다. 헤르질리에를 짝사랑하다 거절당하자 말을 타고 질주하다 사고를 당해 목숨이 위태로워진 펠릭스를 빌헬름이 외과 기술로 살려내고 그들이 쌍둥이 형제처럼 포옹을 하는 장면으로 작품은 끝난다. 삽입된 여러 노벨레들은 소설 본문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체념이라는 공통적인 주제로 연결된다. 위에서 언급한 형식적 특성들로 인해 이 소설은 발표된 후에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오늘날에는 현대적인 소설로 평가받으며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우리말로는 1968년에 장기욱이 처음 옮겼다(휘문출판사).
초판 정보
Goethe, Johann Wolfgang von(1821): Wilhelm Meisters Wanderjahre oder Die Entsagenden. Ein Roman von Goethe. Erster Theil. Stuttgart/Tübingen: Cotta'sche Buchhandlung.
번역서지 목록
| 번호 | 개별작품제목 | 번역서명 | 총서명 | 원저자명 | 번역자명 | 발행연도 | 출판사 | 작품수록 페이지 | 저본 번역유형 | 작품 번역유형 | 비고 |
|---|---|---|---|---|---|---|---|---|---|---|---|
| 1 | 危險한 내기 | (컬러版)世界短篇文學大系 2 古典主義文學 | (컬러版)世界短篇文學大系 2 | 괴테 | 李鼎泰(이정태) | 1971 | 博文社 | 269-273 | 편역 | 편역 | |
| 2 | 오십 세의 사나이 | (新譯)괴에테全集 5. 헤르만과 도로테아 | (新譯)괴에테全集 5 | 괴에테 | 鄭鎭雄(정진웅) | 1974 | 光學社 | 331-408 | 편역 | 편역 | <오십 세의 사나이>(331-408), <멜지이네의 이야기>(409-442)에 실림 |
| 3 | 危險한 내기 | 世界短篇文學大全集 2 | 世界短篇文學大全集. 古典主義文學 2 | 괴테 | 李鼎泰(이정태) | 1975 | 大榮出版社 | 237-241 | 편역 | 편역 |
번역비평
1. 번역 현황 및 개관
괴테의 마지막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이하 편력시대로 약칭)는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이하 <수업시대>로 약칭)와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독립된 소설로 읽을 수 있는데, 부제는 “또는 체념하는 사람들 oder die Entsagenden”이다. 이 소설도 <수업시대>처럼 괴테의 시들 또는 <젊은 베르터의 고뇌>나 <헤르만과 도로테아>, <파우스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게 번역되었다. <수업시대>의 경우에는 소설 속에 실린 시들이 먼저 여러 차례 번역되고 나서 전체 소설이 나중에 번역된 것과 달리, <편력시대>의 경우에는 작품 속에 삽입된 여러 노벨레들(<오십 세의 남자>, <위험한 내기>, <새로운 멜루지네> 등)이 따로 번역된 것은 전체 소설이 1968년에 <괴테전집>의 일부로 완역된 이후이다. 두 소설 모두 전체 작품으로 처음 소개된 것은 조희순의 <괴-테의 生涯와 그 作品>에서이다. 괴테 서거 100주년을 기념하는 <문예월간 文藝月刊> 특집호(4호, 1932년)에 실린 이 글에서 조희순은 “윌헬름·마이스터-의修業時代”를 “一種의敎養小說”로 소개하며, 이 작품을 “프랑크푸르트時代부터 와이마-ㄹ時代ᄭᅡ지의 괴-테의生活과 經驗을 藝術化한 것이다”라고 하면서 주로 괴테의 전기적 사실과 연결시켜 해석한다.[1] 조희순은 <편력시대> 역시 전기적 관점에서 해석하는데 이 부분을 좀 더 자세히 고찰해 보도록 한다.
1807년에 시작한 「윌헬름•마이스터-의 遍歷時代」(三券)는 그後創作熱의 減退와 쉴러-의 주금에依하야 指導OO하는 사람이업서짐等에依하야 二十二年後 卽一八二九年에 完城되엇다. 「윌헬름•마이스터-의 修業時代」의 最後에 윌헬름으 그 愛人나타리-에를어더 實行과勞動 人生의意味를찻고 이에安定하게되엇섯다. 그러나 그는愛人나타리-에와의 幸福도버리고 ᄯᅩ다시 遍歷의길을 ᄯᅥ나게된다. 한곳에서 오래滯在하지 안할것을 條件으로하야 그는 各處를 漂迫流浪하는 동안에 왼갓社會와 사람을接觸하야 結局은 斷念과勞動의 敎訓을엇게된다는 것이 이小說의 挭槪다. 그의 創作力의 衰退에인지 혹은 그의老年에 原因함인지 이小說에는 그의特長인女性描寫가저거 無味乾燥하고 부드럽고 ?한情緖가 업다고ᄭᅡ지 評을듯게된다. 그러나 이小說의特色은 修業時代의 중심사상은 空想的一個人의 自由스러운 人間性과 活動的實行的 生活에잇섯슴에 反하야 이遍歷時代에는 國家全體의 發展과幸福에對한 考察이 主題가되는 것이다. 참으로 이小說中에는 괴-테의人生觀, 國家, 社會, 敎育에對한 見解가 各種의形式으로써問題가되고 議論이되고잇다. 要컨대 이小說의主題는 OO한道德과 時代O인組織에의하야 그存在가危殆하든 獨逸社會는 一大革新을 要한다는 그의改革主義思想에서 出發한 것이다. 思想家로서의 政治家로서의 괴-테生涯中의 OOO에서出發한 人類社會의 進化와向上의 길을指示하려는 亦是一種의 敎養小說이다.(이상 강조는 모두 필자에 의함)
여기에는 <편력시대> 수용 초기에 있었던 작품에 대한 비판적 견해들이 담겨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노(老) 괴테의 인생관, 세계관의 총체가 담긴 작품이라는 이 소설에 대한 또 다른 전형적인 평가 역시 담겨 있다. 같은 해인 1932년에 서항석은 <괴-테의 社會思想>이라는 글에서 <편력시대>의 사회소설로서의 측면을 소개한다.[2]
이 글은 <편력시대>에 대한 좀 더 본격적인 소개라고 볼 수 있다. “이一篇은 主人公 「뷜헬름」이 社會意識에로 成長해가는 過程과 아울러 社會意識그自體의 進展하는 過程을 取扱한것이다.” 저자는 수공업이 갖는 의미, 몬탄이 주장하는 “一方面의時代 Die Zeit der Einseitigkeit”, 백부의 장원, 교육주 등 작품에서 사회적인 측면과 관련된 부분을 상당히 자세하고 깊이 있게 소개하고 있다. 같은 해에 나온 이 두 독문학자의 소개글에서 나중에 <편력시대> 번역자들에게서 발견되는 작품 해석의 방향을 미리 볼 수 있다.
<빌헬름 마이스터> 소설들 전체가 우리말로 번역되기까지는 조희순과 서항석의 이 소개로부터 30여 년의 시간이 더 걸렸다. 예전에 <수업시대>에 대한 번역비평에서도 밝혔듯이, 한국에서 괴테는 ‘낭만주의자’로 먼저 수용되었다가 1930년대에 가서 ‘고전주의자’ 괴테로 관심이 확대되었는데,[3] <빌헬름 마이스터> 소설들에서 미뇽이나 하프 연주자의 노래들이 우선적으로 번역·수용된 것 역시 이런 수용사적인 맥락과 관련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고, <베르터>와 <파우스트>가 먼저 번역되어 대중에게 열광적으로 수용된 후에 대학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독어독문학자들이 <빌헬름 마이스터> 소설들을 번역하게 된 것 역시, 시차가 있기는 하지만 일본의 경우와 유사한 패턴이라고 볼 수 있다. 두 마이스터 소설들 가운데서도 <편력시대>는 <수업시대>에 비해 연구도 훨씬 더 적게 되어 있고, 일반 대중의 인지도도 더 낮은데, 그 이유는 <수업시대>가 ‘독일 교양소설의 전범’이라는 문학사적 평가가 보여주듯이 대표성을 가진다는 사실, 또 <편력시대>가 형식적, 내용적 측면에서 볼 때 더 복잡하고 난해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수업시대>가 총 5개의 완역(장기욱, 정진웅, 강두식, 박환덕, 안삼환)이 있는 것에 비했을 때 <편력시대>가 지금까지 우리말로 총 3번 완역되었다는 것은 결코 적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초역인 <윌헬름 마이스터의 遍歷時代>는 1968년 장기욱의 번역으로 <괴에테문학전집>에 수록되었다. 두 번째 번역인 곽복록 역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방랑시대>는 1995년 <괴테전집> 편집위원회(회장 지명렬)에서 기획한 <괴테전집> 16권으로 예하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곽복록의 번역은 1999년에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 또는 체념의 사람들>로 제목이 바뀌어 서울대출판부에서 다시 나왔으며, 2016년에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와 한 권으로 묶여 출간되기도 하였다(동서문화사). 세 번째로는 1999년에 괴테독회에서 번역한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가 있다. 본문에서는 이 세 번역본을 비교·분석하려고 한다.
2. 개별 번역 비평
1) 정경석 역의 <시와 진실>(1962)장기욱 역의 <윌헬름 마이스터의 遍歷時代>(1968)
국내 초역인 장기욱의 번역본은 1968년에 <괴에테 문학전집>(휘문출판사) 4권에 <윌헬름 마이스터의 遍歷時代>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강두식이 번역한 <서간문>과 함께 실려 있다. 장기욱은 이 작품 해설에서 번역의 저본이 함부르크 판본(Hamburger Ausgabe)의 8권임을 밝히고 있는데 이는 세 역자의 경우 모두 동일하다. <수업시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제목이 ‘빌헬름’ 마이스터가 아니라 ‘윌헬름’ 마이스터로 표기된 것(또한 발레리네는 ‘왈레리네’로 표기)은 초기에 영어로 번역된 <수업시대>를 통해 이 소설을 접했던 일본어 번역본들의 영향을 받은 <수업시대> 초역(역시 장기욱 역)과 같은 경우가 아닐까 싶다.[4]
역자는 번역 뒤에 실린 해설에서 이 작품의 주요 주제인 체념을 다룬다. 탑의 모임에 의해 빌헬름에게 부과된 제약, 즉 한 곳에 사흘 이상 머물 수 없고 다음에 이동할 때는 “이십 리 이상” 떨어져야 하며 같은 곳에 일 년 안에 다시 오지 못한다는 규정을 두고 “同志들을 만나도 과거와 미래를 이야기하지 못하고 오직 현재만을 문제로 하라는 것이다. 요컨대 한 고장에 정들지 말고 托鉢僧과 같은 체념을 가지고 인생을 觀照하라는 것이다.”라고 해석한다. “체념이란 여기서 방종을 금하고 도를 깨닫는다는 뜻”이다. “체념은 단념은 아니다, 무위가 아니다. 이것은 인간에 대한 집약을 불가결의 요소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업이라는 것이 제2의 주제이다.” 여기서 해설자는 이 주제가 “세계적 결사”라는 모습으로 나타나며, “더 좋은 세계를 이룩하기 위한 협조”를 작품 도처에서 볼 수 있다고 한다. 교육이 제3의 주제로 이어지는데, 이는 더 좋은 세계를 이룩하기 위해 “새로운 유능한 인간을 만드는 것이 그 기본여건”이 되기 때문이다. 해설자는 교육주를 통해 괴테의 교육에 대한 진지한 관심이 드러난다고 본다. 장기욱의 해설에도 노년의 괴테의 인생관의 표현이라는, 이미 조희순의 소개에서도 볼 수 있었던 <편력시대>에 대한 관점이 담겨 있다. “인생은 어떤 것인가, 만년의 괴테는 미로에 빠진 여러 사랑의 실례로서 이를 묘사하려 하였고, 체념에 입각하여 인간능력의 한계를 자각하여 자기욕망을 제한하고 이지를 가지고 어떤 특정한 분야에서 전체에 봉사하는 것이 참다운 사업이라 함으로써 인생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를 해명하려 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편력시대>는 노년의 괴테의 인생관을 담은, 일종의 “지혜의 책”(Trunz, HA Bd. 8, S. 527[Kommentar]) 같은 것이 된다, 에르하르트 바르에 의하면, 이는 초기에 이 작품이 난해함과 형식적 통일성의 결여를 이유로 비난을 받다가 긍정적으로 평가받기 시작한 첫 번째 전환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에리히 트룬츠의 견해이기도 하다. 우리말로 된 세 번역본은 모두 에리히 트룬츠가 편집한 함부르크 판본을 저본으로 삼음으로써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큰 틀에서 볼 때 대체로 <편력시대>에 대한 이와 같은 해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 곽복록 역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방랑시대>(1992, 1995, 1999, 2014)
곽복록의 번역본은 1992년 현대소설사에서 나왔고, 1995년 <괴테전집> 편집위원회(회장 지명렬)에서 기획한 <괴테전집> 16권으로 예하출판사에서 다시 출간되었다. 이 두 판본에서는 제목을 <빌헬름 마이스터의 방랑시대>로 번역하였지만 나중에 나온 판본들에서는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로 바꾸었다(서울대출판부, 1999; 동서문화사 2014). 예하출판사 판본(<방랑시대>)에서는 번역 시작 앞부분의 <일러두기>에서 번역의 저본을 괴테 전집 함부르크 판본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일러두기를 보면 함부르크 판본을 모두 번역하려고 기획했었다는 걸 알 수 있다.[5] 제목이 있는 페이지를 넘기면 “<괴테전집>을 펴내면서”라는 글이 실려 있다. <편력시대> 한 권에 대한 것은 아니지만 이 소설의 번역과도 관련된 전체적인 기획이기 때문에 이 번역본을 이해하는 데 참조가 되는 곁텍스트라고 할 수 있는 이 서문에서는 “시성(詩聖)”, “천재적 지성의 총체이며 전인적 보편시인”이라는 괴테상을 볼 수 있다. 단지 문인이었을 뿐만 아니라 정치가, 자연과학자, 사상가이기도 했던 괴테의 다면성을 연구해야 할 필요를 “괴테전집 발간의 당위성”으로 역설하고 있다. 이 서문에서는 괴테의 생애와 작품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영향력”이 “시대를 초월하여 영원히 인간의 본질을 명확하게 파악하여 건전하고 원만한 인간성 형성을 촉구해 준다는 점”에 있다고 보았다.
작품 번역 뒤에 실린 작품 해설의 제목은 “인류에게 남긴 메시지”이다. 이 작품해설에서 역자는 “생의 전영역을 포괄하는 이 소설은 바로 노년의 괴테가 인류에게 남긴 유언이며 메시지인 것이다”라고 본다. 장기욱의 해설과 방향이 유사하지만 곽복록의 해설이 보이는 차이는 사회소설, 시대소설로서의 측면이 좀 더 강조되는 것이다. “<수업시대>에서는 빌헬름의 인격적 발전이 테마였지만 여기서는 인간과 사회가 중심이 되는 것이다.”(곽복록, 580) ‘노년의 문체’와 ‘노년의 지혜’를 강조하면서도 또한 <편력시대>를 시대소설, 사회소설로 본 것 또한 트룬츠의 견해였다. 곽복록은 <편력시대?의 내용적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미학적 측면에서의 현대성을 강조하는데, 그런 점에서 볼 때 <편력시대>는 “현대소설의 많은 테크닉을 예견”하는 “새로운 소설”이다.
뒤에 나오는 김숙희 역과 비교해 볼 때 곽복록 역은 좀 더 한자가 많이 쓰이고 문어적인 특징을 갖는다. 몇 가지만 예를 들면 곽복록 역에서 “탑의 결사”라고 번역한 부분을 김숙희 역은 “탑의 모임”이라고 옮긴다. 3부 9장의 시작 부분을 보자. “최고로 뜻깊은 날이 밝아왔다. 오늘은 일반적인 이주(移住)에로의 제일보가 시작되는 날이었다.”(곽복록. 448) “가장 뜻깊은 날이 밝아왔다. 오늘이 바로 모두들 이주해 가기 위한 제1보를 내딛는 날이었다.”(김숙희 외 II, 103) (“Der höchst bedeutende Tag war angebrochen, heute sollten die ersten Schritte zur allgemeinen Fortwandrung eingeleitet werden[...].”) 그날 레나르도가 한 연설 마지막 부분을 보자.
언제까지나 땅에 매달려 있지 말라, 그대로 눌러앉아 머물지 말고
새로이 결심하여 힘차게 발을 내디디라! 과감하고 힘차게 뛰어나가세!
머리와 팔뚝에 신바람의 힘만 배면 머리와 팔뚝에 신바람 나면,
어디로 가나 그대의 집이다. 어딜 가나 다 내 고향이로세,
햇빛을 즐기는 곳엔 햇빛 즐길 수 있는 곳이면,
근심걱정이 없는 법. 모든 근심 사라진다네.
우리, 이 세상에 흩어져 살라고 우리 모두 흩어져 살라고
세상은 이처럼 넓도다. 이 세상 이렇게 넓은 거라네.
(곽복록, 457-458) (김숙희 외 II, 114)
Bleibe nicht am Boden heften, 땅에 발목을 매어놓지 말고
Frisch gewagt und frisch hinaus! 용감히 힘차게 앞으로!
Kopf und Arm mit heitern Kräften, 머리와 팔에 경쾌한 힘을 주면
Überall sind sie zu Haus; 집은 가는 곳마다 있으려니.
Wo wir uns der Sonne freuen, 태양을 즐기는 곳에
Sind wir jede Sorge los. 근심과 걱정이 없으려니.
Daß wir uns in ihr zerstreuen, 우리 서로 흩어져 살기에
Darum ist die Welt so groß. 세상은 이처럼 넓으니.
(3. Buch, 9. Kap.) (장기욱, 323)
이 부분에서도 곽복록 역의 문체적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 이런 예는 무척 많은데 또 다른 예로는 작품의 마지막 부분인 3장 18장을 들 수 있다. 여기서 빌헬름은 응급조치를 통해 자신의 아들을 구해 낸 후 자신의 옷을 깔고 누운 아들 펠릭스를 바라보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Wirst du doch immer aufs neue hervorgebracht, herrlich Ebenbild Gottes! [...] und wirst du sogleich wieder beschädigt, verletzt von innen oder von außen.”
“숭고한 신과 같은 모습을 한 자여! 너는 쉬지 않고 새로이 창출되어지는 것이다 [...] 그것도 곧 다시 상처를 받고 내부에서 또는 외부에서 상처를 입으면서.”(곽복록, 538)
“찬란한 신의 형상을 닮은 아이야, 너는 항상 새로이 거듭나리라! 금방 또 다시 다쳐 마음이나 몸에 상처를 입을지라도!”(김숙희 외 II, 202)
이 두 번역을 비교해 보면 문어적인 번역을 하는 곽복록 역의 특징을 알 수 있다. 곽복록 역은 1999년 서울대출판부에서 괴테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여 다시 나올 때에는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 – 또는 체념의 사람들>로 제목을 바꾸고, 번역의 저본이 프랑크푸르트 판본(Deutscher Klassiker Verlag)임을 밝혔다.
바깥 링크
- ↑ 조희순(1932): 괴-테의 生涯와 그 作品. 문예월간 4, 12; 조우호(2010): 근대화 이후 한국의 괴테 수용 연구. 코기토 689, 143-171; 이유영・김학동・이재선(1976): 한독문학비교연구 I, 164.
- ↑ 서항석(1932): 괴-테의 社會思想. <비판> 2권 4호, 75-78. 다음의 글 또한 참조할 것. 조우호 2010, 152 이하; 이유영・김학동・이재선 1976, 173 이하.
- ↑ 김규창 2001, 253; 조우호 2010, 145 이하.
- ↑ Naoji Kimura(1997): Jenseits von Weimar. Goethes Weg zum Fernen Osten. Bern[u.a.]: Peter Lang, 95-97.
- ↑ 예하출판사에서 기획되었던 <괴테전집> 가운데 실제로 출간된 작품은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박환덕 역), <빌헬름 마이스터의 방랑시대>(곽복록 역) 두 권뿐인 것 같다. 한편 이와 거의 동시에 민음사에서도 <괴테전집> 번역에 착수하였다. 지금 조사해 보면 민음사에서 출간된 괴테 작품들 가운데 일부에만 괴테전집이라는 제목과 번호가 붙어 있다(괴테전집 01(괴테시집), 02(서동시집), 03(파우스트), 07(친화력), 08-09(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10-11(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 12(색채론), 13(예술론), 14(문학론). 그 이전에도 몇몇 <괴테전집>이라고 불리는 기획들이 있었다(현대소설사(<프랑스 종군기 外>(장상용 역), <로마 체류기>(정서웅 역)).